옛날 생각이 갑자기

오형칠 | 2024.04.19 01:06

옛날 생각이 갑자기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종종 본다. 신앙 이야기다.

며칠 전, P 이야기를 보았다. 그 시절은 인권이란 말이 없었다.

P는 산골에 살았다. 어느 날이다. 담임 선생이 아이들 성적 통계를 내라 했다. 주판으로 계산하던 시절이라, 통계를 내려고 성적표를 폈다. 자기 성적이 눈에 쑥 들어왔다. 40, 50점이 보였다.

"아니, 이건 내 성적이 아니야."

성적표를 가지고 선생님에게 갔다.

"선생님, 이건 내 성적이 아닙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주판으로 얼굴을 내리친 다음 그것도 모자라 빈 교실로 데리고 가서 심하게 때렸다. 얼굴에 피범벅이 되어 울면서 산고개를 넘어 집에 왔다. 아버지 눈에 불이 번쩍였다.

"네 얼굴이 이게 뭐냐?"

아버지 얼굴색은 하얗게 변했다. 목발을 짚고 벌떡 일어선 아버지는 산을 넘어 숨을 헐떡이며 학교에 갔다. 학교 앞 점방에서 가게 주인에게 그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했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잘잘못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폭력을 행한 선생님 잘못이다. 무지하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선생님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간증을 듣는 순간 나도 옛날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이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 운동장, 골목에는 놀아줄 친구가 없었다. 무료했다.

당시 상황은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온 나라는 잿더미가 되었다. 군인들이 주둔하던 동광초등학교를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조무래기들은 골목길과 학교 운동장에서 전쟁 노래를 부르고, 전쟁놀이하면서 놀았다.

내가 사는 골목길은 산 아래로 폭이 2정도 개울이 있다. 생활 폐수와 쓰레기들이 범벅이 되었다. 사람들은 연탄재와 깨진 유리병을 버렸다. 문제가 일어나던 바로 그날, 골목길을 천천히 내려가다가 부서진 녹이 슨  연탄집게 하나를 발견했다. 이게 핵폭탄이 될 줄 몰랐다. 냉큼 내려가서 그걸 집어 들고 땅바닥을 툭툭 치면서 학교 운동장을 지나 위로 올라갔다.

계단이 막 끝나는 지점에서 깜짝 놀랐다.

"야 이놈, 네놈 짓이구나."

X 교장 선생님이었다.

키가 작고 꾸부정하면서 성질이 대쪽 같다 하여 우리는 꼬챙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교장실에 갔다. 방과 후라 교무실에는 키 큰 체육 선생 한 분밖에 없었다.

교장 선생님은 달리아를 좋아해 ''자 교실 주위에 빙 둘러 가며 심었다. 학교를 빙 돌아보다가 뿌리째 뽑힌 달리아를 발견했다. 화가 난 그분은 범인을 잡기만 하면 혼내주겠다고 벼르는 중 내가 든 연탄집게를 보고 범인을 단정했다.

"네가 달리아를 뽑았지?"

"아니요."

"네가 들고 있는 건 뭐야?"

"이거 도랑에서 주웠어요."

교장 선생 말은 바로 법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교장실에 세워놓았다. 일반 선생님도 무서운데, 교장 선생님 앞이라 말해서 무엇하랴. 머리를 푹 숙이고 서 있는 나를 숙직 교사에게 넘겼다.

교장실과 교장실은 붙어있었다. 체육 선생은 교무실 창문 옆 의자에 앉은 나에게 말했다.

", 큰일 났다. 6학년에 올라가지도 못해."

그 말은 무서웠다.

"6학년에 올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두 사람 모두 나를 범인으로 여겼다. 얼마 후 나를 풀어주었다.

기가 푹 죽어 살금살금 집에 들어갔다. 어디에 갔다가 지금 왔느냐, 묻는 사람도 없었다.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 자리에 누웠다. 내가 단지 연탄집게를 들었다는 이유로 달리아와 연탄집게 한데 묶어 나를 죄인이라고 단정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답답해 잠이 오지 않았다. 결심했다.

"어른이 되면 복수하겠다."

한편 몰래 국화꽃을 학교 정원에 심어 교장 선생님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조회 시간에 이렇게 착한 어린이가 우리 학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네가 달리아를 뽑은 놈이야 하면 끝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중절모와 검은 테 안경을 쓴 키 작은 교장 선생님이 실루엣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얼마나 어린 가슴에 상처가 되었던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교장실에 붙잡혀가던 일이고 교장실에 쪼그려 앉아 있던 생각이 난다. 만일 내가 달리아를 파헤쳤더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므로 그때 난 별난 아이였다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내 맘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아홉 사람 죄인을 놓칠지라도 무고한 죄인 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선생님들이여, 힘이 없고 약하다고 죄인 아닌 죄인을 죄인 만들지 말기 바란다.

P와 나 같은 사람이 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4.4.14.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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