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쌍놈이 항렬만 높다'

정삼열 | 2024.05.06 10:31
정원 잔디밭엔 잡초가 심술을 부리고 있어 힘겨운 싸움을 벌리고 있다. 잡초와의 전쟁이란 말을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가지런한 정원을 만들고 싶은 욕심때문에 잡초를 보는 죽시 뽑지만 여부족을 느낀다.

건축일을 할랴, 텃밭을 일구면서 틈틈히 잡초제거를 해야하기에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농촌 일은 잡초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년내내 잡초와 씨름하면서도 결국 이기질 못할 정도로 잡초의 생명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데, 초기에 잡지 않으면 장마철엔 아예 포기할 정도로 곤란한 존재이기에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풀을 뽑게 된다. 임업이나 목회도 마찮가지 이겠지만 초기에 수형을 잡지 못하면 나중엔 수형이 잡히질 않는다. 

주변엔 소나무 붐이 일어나 너도 나도 밭에 소나무를 심었지만 제대로 가꾸질 못해 거져 가져가라 해도 가져 갈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는 농가들이 많다. 소나무는 제대로 가꾸질 못하면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인생살이도 첫단추를 잘못 꿰면 나중은 전부 잘못되고 되고, 그런 의미에서 목회도 초창기가 중요하다. 

개척 초기의 구성원이 그 교회의 전통이되고 질을 형성한다. 가끔 후배들의 교회를 컨설팅해줄 때가 있는 데, 난 선임장로나 가장 유력한 교인 몇을 보면 그 교회의 장래를 예견할 수 있다. 초기에 잘못 세우면 나중엔 절대 고쳐지질 않는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자기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걸 감안하면 초기에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복음적이고 신앙적인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목회자들은 잘 알 것이다.

나는 내 정원안에 있는 나무들에게서 난 이런 교훈을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 나무일 때, 묘목일 때 이미 싹수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어제가 어린이날이라고 큰 딸 작은 딸, 그리고 네명의 손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손자들이 반듯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이젠 나만 걱정하면 될텐데 항상 손자들이 능력있는, 능력이 없으면 열정을 가지도록, 열정이 없으면 겸손하도록, 그것마저 부족하다면 염치를 아는 인물이 될길 기도하고 열망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여린 딸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손주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나보다 훨씬 잘 키우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하곤 한다. 어릴 때 부터 얼마나 신앙적으로 잘 키우는지 고맙기만 하다. 어릴 때 아이들 기죽인다고 천방지축으로 키우면 나중엔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신자가 아쉽다 해도 신앙적인 훈련과 제대로 된 영성을 길러 주어야 한다. 

나중으로 미루다가는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고 상투를 잡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무를 매만질 때마다 가지치기를 철저히 해주고 가차없이 자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아깝다고 미루면 나중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허우대만 멀쩡한 나무가 될뿐이다.  

어릴 때 시골 고향에 내려가면, 잘 모르는 동네 노인들을 길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 분들은 보통 “네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고 “너 뉘 집 아들이냐?”고 묻는다. 아버지의 함자를 말하면 “아무개 아들이구먼”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팔자걸음으로 지나간다.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점 이외에는 궁금한 것도 없고, 친절한 인사를 주고받는 일도 없이, 근엄한 자세로 팔을 휘저으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양반집에서 상놈이 나는 법은 가끔있지만 상놈 집안에서는 양반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 아버지를 보면 자식은 보나마나란 말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아버지의 위치가 중요했다. 헛기침 한번에 가정의 질서가 유지되었고, 그 무언의 동작 하나에 가정은 굴러가곤 했었다. 헛기침은 멀리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때문에 배려의 문화가 되기도 했다. 혹시라도 내가 다가가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고 있음을 멀리에서 알려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중에 '못된 쌍놈이 항렬만 높다'는 말이 있다. 아무나 '에헴'한다고 그 권위를 존중하는게 아니다. 예전 어르신들은 배운 거 없고 가진 것 없었어도 충분히 존경받을만 했다. 은근과 끈기로 자식들을 모두 길러냈을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잘 흥분하지 않는다. 자제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인간은 대부분 자제하지 못해서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자유를 얻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자신이 되고 싶다면 본능적인 욕구를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는 단지 힘이 센 자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자제할 줄 아는 자이다. 지속적인 단련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진 자다. 그래서 무기력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세상에 2만여개의 직업군 중에 목사라는 직업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물론 목사는 직업이 아니라 직분이지만 말이다. 내가 그 안에 몸담고 살았으니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타적인 삶을 살기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직분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었다.

그런데 내 주변의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여유가 없고 유모어 감각이 없는 무거운 중압감에 짖눌린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지만 말이다.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조그만 일에도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쉴 새 없이 사람을 만나지만 감성이 바닥난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보고있다. 

자신을 향한 날 선 비판에 발끈하며 신앙은 두번째치고 이성마저 마비되는 걸 수없이 목격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도로 단련되어 있을 것 같아도 너무나도 취약한 것에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많이 두드린 쇠가 더욱 강하다. 담금질은 모든 강한 것들이 가진 스펙(specification)이다. 나는 수십년 동안 함께 한 동역자 중에 '욱성질'때문에 기피하는 친구가 있다. 화를 낼만한 일이 아닌 데, 분노의 감정을 너무 자주 표출한다. 

일반인이 아닌 목회자라면 최소한 천번쯤 두들기고 수많은 담금질을 통해 세워진 분들이라고 믿고 싶은 데, 전혀 그런 모습이 눈에 띄질 않는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가 맛있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배추가 죽어야 한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몸통을 쪼개지며 소금에 절여지고, 일정 기간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맛있는 김치가 된다. 한낱 밥상에 오르는 김치도 저러할진 데, 우리네 인생도 저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숙성이 덜된 사람일 수록 ‘욱성질'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편향된 생각을 여과없이 표출하는 사람은 '겉절이' 정도의 인간이다. 그래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절)"고 하셨다. 

우리 사회는 하루건너 한 번씩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건사고가 보도된다.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을 벌이다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하고, 경쟁적인 보복 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옛말에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속이 뒤틀린 사람이 있다. 내 젊었을 때부터 거의 우상시했던 사람이 있다. 그의 헤어 스타일과 말투까지도 닮고 싶어 흉내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흔적조차를 지우려 애를 쓰고 있다.누굴 탓하기 전에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형편없었다는 반증이기에 부끄러움을 감추고 산다. 

사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거룩하단 기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의 눈에 들어난 것은 빙산의 일각 정도인데, 그 작은 걸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환호하고 열광하는게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린이날 연휴기간동안 비가 내린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틈을 타서 손주들을 앞세우고 인근 대야장 생활학습을 나갔다. 도시에 사니 상설시장은 알지만 오일장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 같아 복잡한 오일장을 누비며 세상엔 이런 곳도 있다는 걸 체험시켰다. 번데기도 사먹고 꽈배기와 뻥튀기 옥수수 등 길거리 음식도 시식했다.

마치 동남아 야시장을 방문할 때 처럼 시장은 먹거리가 풍성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왁자지껄 이틀 동안 할에비에게 힐링을 주고 다시 인천으로 떠났다. 아마 연휴 마지막날이라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닐텐데 어버이날을 겸해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문해 준 아내와 딸들이 빗길에 잘 도착했는지, 아님 아직 길거리에 있는지 걱정이지만 나 역시 이즈음에는 울산에서 인천에서 그리고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운전대를 잡고 부모님을 뵈러 긴 여정을 보낸 기억이 또렷하여 행복했던 추억에 잠겨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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