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은 보잘게 없지만

정삼열 | 2024.05.01 09:36
만약 누군가를 만났는데 서 있는 자세가 움츠러져 있거나 걸음걸이가 힘이 없고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면 그 남자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제아무리 멋진 슈트를 입고, 잘 빠진 스포츠카를 탔다고 해도 어정쩡한 자세라면 전혀 멋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요즘 내 모습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씁쓰레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준공문제로 한달 가까히 신경을 쓴 탓인지 그 전보다 초췌해 보이는 탓도 있지만 근래는 입맛을 잃어 거의 포만감을 느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아침은 원래 먹지 않고 새벽 5시30분이면 출근하기에 그렇다 치고 점심도 인부들이 맛있게 먹는 광경을 물끄럼이 바라볼뿐 식욕이 없어 반그릇을 비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좋은 자세가 나올리 만무하다. 동기생 중 아직도 얼굴이 팽팽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나이에 비해 겉늙어 보이는 것하며 허리가 굽어진 자세는 이미 멋하고는 담쌓은 경우인지라 자신감이 점점 결여되어 가는 기분이 든다. 자세는 곧 그 사람이 가진 자신감의 표현이고, 더 나아가 그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게끔 하는 기준이 된다. 

특히 비즈니스맨에게는 거래의 중요한 요인으로까지 작용한다. 그러니 남자가 어깨를 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거울앞에 서 본지가 오래되었지만 어쩌다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처진 어깨를 올리고 아랫 배에 힘을 주어 본다. 나도 모르게 굽어진 허리를 펴고 어께를 올려보지만 이미 노인네 형세가 짙게 드리워진 몰골이라 고쳐지거나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을 버린지 오래이다.  

하지만 외모는 어쩔 수 없지만 추하게 늙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만큼은 죽는날까지 변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날마다 한다.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늙은이는 나이가 많아서 중년이 지난 사람일 뿐이다. 즉, 다 자라서 나이를 먹으면 늙은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늙은이가 어른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른은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붙일 수 있는 명사이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이 착각하는 대부분의 오류는 늙은이와 어른을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늙은이들은 어디 가서나 대접 받기를 원한다. 늙은이(=어른)이기 때문에 자리를 양보 받아야하고, 혜택을 받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남보다 우선시되는 관심을 받아야한다.  

늙은이이기 때문에 젊은이를 탓할 수 있고, 자기 생각이 올바르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늙은이와 어른을 동일시하는 바보같은 늙은이들의 추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이지 꼭 늙은이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는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늙은이는 꼭 어른이라는 비례되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노인이 되었어도 추하게 늙지않고 내 할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고 사는게 중요하다. 나는 주제 넘은 소리같지만 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존재하고 아직도 내 사명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 묷이라고 생각되면 아무리 힘든 일이더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몫'이란 ‘목숨’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한 말인 것 같다. ‘몫’이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추적해보고, 만일 그것을 발견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과업이라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러고 보면 몫이란 자기에게 돌아오는 권리쯤으로 해석할 말은 아닌게 분명하다.   

내 주변엔 자기 몫을 찾으려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다.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19세기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 5월 25일∼1882년 4월 27일)은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식이며 흉내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라고 말한다. 마땅히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책임이 있음을 설명하는 데, 인류는 이 몫을 추구하고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문명을 구축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몫은 무엇인가'를 심도깊게 생각해 보질 못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맡겨진 고유한 몫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유일한 몫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최소한 학교에서 16년 이상을 공부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안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이로인해 세계 제일의 문맹퇴치률을 자랑한다.  

내가 대학을 준비하던 시절만 해도 '예비고사'란게 있어 50% 정도는 대학 입학할 시험기회조차 박탈해 버렸고, 그중에서도 대학 본고사에 합격하여 진학하는 사람은 절반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7~80%는 대학 문턱에도 들어가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방대학은 정원 미달로 교수들이 학생을 찾아다닐 정도이다.  

그런데 그 많은 고급 인력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일정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힘으로 사고할 능력이 생기면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배움의 길에 들어서야 하는 데, 대한민국의 학교에선 우리하곤 상관없는 남 이야기만을 학습한다.

'몫'을 '사명'이라고 가르치질 않고 '권리'라고 가르친다. 다른 사람의 몫마저 빼앗으려 하니 이젠 자기의 몫을 안빼앗기려 혈투를 벌려야하는 고단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명의 사(使)자는 '심부름할 사' 자(字)이다. 학교에 가보면 작은 심부름 하는 사람을 소사(小使)라 부른다. 소사와 대칭되는 말로 나라엔 대사(大使)가 있다. 특별한 임무를 맡은 사람을 특사(特使)라하고 긴급한 일을 수행하는 밀사(密使)가 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천사(天使)라고 부르고, 목사를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자라고 해서 사자(使者)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사명의 사(使)자는 의미심장한 글자이다. 사명이란 말을 영어로는 'Misson'이라고 하는 데, 이 말은 'Missio'에서 유래된 말로 '보낸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직분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어진 존재라는 뜻이다.  

먹을 때만 '몫'을 찾는 사람은 하위인생이다. 나는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히고'라는 찬송을 즐겨 부른다. 내 유일한 '몫'은 구주를 높히는 일이라는 찬송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스위스의 위대한 사상가 칼·힐티(Karl Hilthey. 1833-1909)는 일찍이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목적에 쓰겠다고 작정한 그 목적을 깨달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명감을 사적 소유에서 찾으면 소인이 되고, 인류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의지에서 찾으면 성자가 된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석학 구너 뮈르달(Gunner Myrdal)은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 (Adam Smith)의 명작 국부론(國富論)이 출간된 지 200년 후 이에 대해 「국빈론」(國貧論)을 썼다. 그는 '남아시아 제국민의 빈곤에 대한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의 빈곤은 자원이나 자본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지역 주민의 불합리한 생활태도와 인습적인 사회제도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가 가난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주민들의 의식구조와 정신자세와 인생관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자원이 무궁무진하고 인구도 제일 많으며 기후 여건도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좋지만 잘살지 못하는 이유는 사명에서 찾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사명은 주어진 사명과 스스로 찾은 사명과 주어진 사명을 새롭게 진보시킨 사명이 있다. 내 묷을 경제적인 이익으로 한정하고 지나치게 주장하면 불화가 생긴다. 내 묷을 사명으로 인식할 때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내 묷이란 아예 없었던 것이고, 그것은 세상 떠나는 순간에 누구나 깨닫는 보편적인 진리다.  

스티브잡스가 병상에서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시지를 보면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 정점에 도달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이라고 거의 느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부(富)라는 것이 내게는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에 의해 조성된 환상과는 달리,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성이란 것을 모두의 마음속에 넣어 주셨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스티브잡스가 병상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세지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임종은 예외없이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숙명적인 문제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노년기만큼 죽음의 문제가 일상적인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기는 없다. 그러므로 노년기에는 인생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며, 죽음에 대한 태도와 대처방안은 노년기의 삶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며, 죽음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반금기영역(semi-taboo)`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즘 병원에서 임종의 순간을 지켜주는 '임종로봇'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봤다. 최근 미국 언론 씨넷은 이 로봇이 패드를 댄 껴안는 환자 오른쪽에 설치된 팔과 죽어가는 환자에게 조심스런 메시지를 전달해 편안하게 해주도록 설계된 녹음된 기계음성으로 구성돼 있다고 소개했다. 

세상에 이런 시대가 왔나 싶다. 사람보다 더 친밀한 전자기기. 죽는 순간마저도 사람 대신에 기계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왠지 서글퍼진다. 이 로봇이 탄생된 이유에는 임종순간을 지키지 못할 것을 대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이 세상과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계와 마주해야 한다니. 그게 더 환자를 고독하게 하진 않을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임종은 마땅히 집에서 하는 것이 상례였다. 집을 떠나 사망하는 것을 객사(客死)라고 부르며 꺼렸기 때문에 오래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돌아가실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지켜 보는 가운데 운명을 달리했는데, 이제는 사망자 10명 중 1명만 집에서 임종한다고 한다, 

초년 목회 시절 집에서 임종하는게 보편적이었기에 임종을 앞둔 교우들의 곁을지키며 임종 예배를 드렸고 직접 염(殮)을 하고 염포로 감싸는 일에 익숙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수의를 입힌 교우들이 족히 50명은 되었고, 마지막 가는 길에 성경을 읽어주며 찬송을 부르고 천성을 향하는 성도들을 이끌어 주었다. 

어떤 땐 밤을 새워가며 임종을 지켜 드렸다. 유족들이 너무도 고마워하던 기억이 새롭지만 천국가는 성도를 배웅하며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이야말로 목회자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임종은 고사하고 염도 염쟁이가 다해 버리니 목사는 장례식만 치룬다. 장례식이야 누가 하던 임종은 목사가 했으면 하는데 가족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주 박목사님이 바다에 나가 잡아 오신 소라를 받아 들고 갑짜기 광어회가 먹고 싶단 생각이 들어 횟집으로 향했지만 생각만큼 입에서 땡기질 않는다. 엉덩이 살과 허벅지 근육이 빠져 나가면 장수하긴 글렀다고 하지만 식탐이 줄어 버렸으니 아마도 백살까진 무리일듯 싶다. 하지만 늙은이가 되진 않으려 한다. 외형은 보잘 것 없지만 멋지게 늙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5월 7일날 선유도 장자도 등 고군산 바다로 바다 낚시를 가자는데 생각할 겨늘도 없이 오케이했다. 어차피 놀래미 한마리 정도 건져 올릴지 모르지만 푸른 바다를 보며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할 타임이다. 드디어 석달만에 준공검사가 나와 내일쯤 법원에 보존 등기를 하고 다음주에 매매자에게 등기를 넘겨 주면 한시름을 덜게 된다. 바다를 본 후 곧바로 수주받은 신축건물을 지어야 한다. 

연속 두개의 집을 지어 주어야 하는데 당분간은 내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다. 요즘같이 금리가 높고 환률이 미친0 널뛰듯 할 땐 멈추는게 상책이다. 아직 미분양된 집이 다 팔릴 때까지 숨고르기를 하며 바람을 피하는게 좋을듯 싶다. 풀은 바람보다 일찍 눞는다고 했던가? 조금 고개를 숙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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