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의 버린돌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될 수 있슴

정삼열 | 2024.04.24 13:04
우리가 흔히 쓰는 말중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를 깬다’는 말이 있고 이보다 더 길게 ‘재수가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는 말도 있다.

재수는 운수라고 생각하여 점을 쳐서 알아내려고 하고, 신앙 행위를 통하여 얻으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수 이야기를 잘 한다. 나부터가 그러니까 말이다.  

누군가로 인해 나는 재수가 좋은 인간이 되고 혹은 누군가에게 내가 재수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소매치기가 수년간 붙잡히지 않고 해오다가 어느 날 붙잡히면 재수가 없는 것이 된다.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물론 비신앙적인 용어이긴 하지만 일상 흔히 사용하는 말이기에 생각해 본건데 나는 과연 재수가 있는 사람일까? 아님, 재수없는 사람일까? 무속의 굿에 재수굿이 있고, 불교에서도 재수발원이나 재수불공이 있다. 흔히 재수가 없다는 말은 자신의 행동의 잘잘못에 관계없이 주변의 환경이 도와주지 못해서 생겨나는 어려움을 말한다.

흔히 재수없다는 말은 운수 따위가 순탄하지 못하고 나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상한 사람의 태도나 행동이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재수 없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상하고 재수가 없는 사람일까? 나도 재수로 말하면 없는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여지껏 지낸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좋은 아내, 좋은 자식, 좋은 교회를 만났고 좋은 교우들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았다. 가끔 재수없이 교통경찰에게 몇번 딱지를 끊긴 것외엔 그런대로 잘 살았다. 당연히 그것은 은혜라 생각하지만 재수좋은 사람이라 해도 시비할 생각은 없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구레네 사람  시몬은 분명 참 억세게 재수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시골로부터  와서 그냥 골고다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붙들려서 그는 결국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억지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자기 자신도 참 재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결국 시몬은 그 억지로 한 그 일로 인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이었지만, 형들의 시기로 죽을 뻔하고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가 많은 고생을 했고, 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몇 년씩이나 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같이 보였고 세상 말로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의지하고 나아 간다. 감옥살이하면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어 하는 일마다 주님께서 잘 이루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감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사귀게 되었고 꿈 해몽도 해서 결국 이집트의 재상이 된 것이다. 

후에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후하게 대접했고, 아버지 야곱이 죽은 다음에 요셉이 복수할까봐 형들이 두려워 할 때도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그들을 위로한다. 

운이 좋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걸 확신한 사람의 찬가란 말일게다. 사람들 중엔 지나치게 운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 운이 있고 없고를 따지려 한다. 

그러나 정작 나는 운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고, 운을 믿지 않는다고 못을 박아 놓는다. 그 흔한 신문 한 귀퉁이에 있는 운세조차 쳐다보지 않고 완벽한 현실주의자인 척하며 운이란 한낱 기분 좋게 만드는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나 싼 값에 좋은 땅이나 건물을 산 사람을 보면 슬며시 쳐다보지도 않던 ‘운’이라는 글자를 생각도 없이 내 뱉고 만다. ‘저 사람 참 운 좋은 사람이네.’라고...그래서 뛰는 놈위에 나는 놈, 나는 놈위에 운 좋은 놈이란 말이 회자되는가 보다.

우리 민족은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모르지만 모든 불행을 숙명적(宿命的)으로 해석하면서 인생의 불행이 휘몰아 칠 때 자기의 운명론(運命論)으로 맡기고 삶을 저주하며 불행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基督敎)문화에서는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나 가혹한 고난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칠지라도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고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조상 때문에”, “내 사주팔자(四柱八字)때문에” 하면서 모든걸 운명으로 돌리면서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생각은 불신앙적이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고백하였다. 위대한 사상과 신앙과 인격은 다 고난의 산물이다. 그래서 시련과 고통을 한국의 전통적인 운명론으로 비관하면서 도피주의자의 방법으로 응하지 말고,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하였다.

나 역시 재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긴 하지만 그 재수를 믿고 살진 않는다. 말하자면 은혜로 산다. 그 많은 약점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나를 지켜 왔음을 고백한다. 시골에 정착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은혜가 항상 나에게 임함을 느끼며 체험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운이 좋고 재수가 좋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적인 은혜안에 내가 있음을 나는 믿는다.

작년 초 60년된 절친이 치매로 세상을 하직했다. 어쩌다 카톡을 통해 근황을 확인하는데 요즘 하는 일마다 속시원한게 없으니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모양이다. 남편복은 고사하고 자식복도 없으니 지지리도 복이 없다며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이번 生은 글렀다면 또다른 生이 있다는 말인가 싶어 생각이 복잡해 졌다. 

교회 권사인데 설마 윤회설을 믿는다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아직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은데 아무리 답답하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글렀다고 체념하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표현은 약간 다르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왜 그렇게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가. 

나는 성경 말씀중에 행 4:11절에 나오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He is the stone you builders rejected, which has become the capstone.”(Acts 4:11)' 

버린 돌’은 시편 118편에서 다윗이 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상을 엎으시고는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시며 자신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장인이 쓸모없이 버린 돌이 주춧돌이 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런 표현인가? 대통령, 대학총장, 장관, 예술가 등등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냐’고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찬란한 영광이나 엄청난 행운울 누리던 순간이 아니라 가난과 고생과 어려움이 많았던 때를 떠올린다. 많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어머니가 식은 밥에 신김치와 멸치를 넣고 한참 끓여 푹 퍼져 김치죽을 공급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꿀맛이었다고 말한다.

건축자의 버린돌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가 아니라 버려진 돌이지만 어디에 놓여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다음 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보면, '다시 태어나면 이 영감과 결혼할 거냐'고 묻는 질문에 기상천외한 답이 나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을테니까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가 아니라 남은 시간만이라도 후회없도록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흘러버린 과거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얼마만한 분량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한 일이다. 나쁜짓을 할 시간도 얼마 없지만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가능하면 후회없이 살려 노력중이다. 

지금까진 내 멋대로, 내 맘대로 살아 온게 사실이다. 내 중심적으로 살았다.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우기며 살았다. 나에겐 분명히 소중하고 바쁜 일이지만 남들도 그런건 아니다. 나에겐 긴급한 일이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는다. 나는 긴급한 사정을 들으면 내 일처럼 뒤를 봐주고, 남 어려운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손해를 무진장 보았다. 지금도 그것이 올무가 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가 아니라 '아직 안글렀다'고 자위를 한다.

여지껏 운이 좋아 산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 왔고 앞으로도 운같은 건 믿지도 않겠지만 은혜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축복이며 갈구해야 할 명제이다. 오늘만 해도 재수 옴붙은 날이라 할만 하지만 은혜로 살아가는 과정중 일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넓게 쓰려고 마음먹었다. 

아침엔 많은 비가 내려 할 일이 없어 일찍 집을 나섰지만 금방 날이 좋아지면서 공연히 거리로 나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후회가 밀려 왔다. 의사의 불친절에 의대 정원을 3천명쯤으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친절한 의사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노여움을 해소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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