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쎄게하고 모종을 심어 본다.

정삼열 | 2024.04.19 11:06
날씨가 심상치 않다. 아침 나절에는 쌀쌀한 것 같아도 한낮은 이미 여름의 문턱에 들어 선 것처럼 기온의 차이가 극심하다. 

오늘은 절기상 곡우(穀雨)였다. 곡우는 24절기 중 하나이자 6번째 절기에 속하며 봄철에 존재하는 마지막 절기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에 들어 설 것 같다. 

매년 4월 20일을 기준으로 청명(淸明) 다음으로 15일 이후에 곡우가 들어 잇는데, 곡우라는 이름은 곡식을 뿌린다는 뜻으로 봄철을 맞이하여 새싹과 새순이 돋아나고 영농기를 맞이하여 곡물재배가 성한 시기인 봄철을 맞아 농촌에서 농사시기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절기이자 봄비가 내려서 곡식이 윤택해 진다는 뜻도 있다. 

농촌에서는 곡우가 되면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깔게 되는데 부정을 탔거나 액운이 끼어있는 사람은 볍씨를 볼 수 없도록 가마니를 덮어둔다는 정설이 있다. 청명과 입하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0°에 해당할 때이다. 음력 3월, 양력 4월 20일경이 되며, 그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하여 볍씨를 담갔는데, 이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였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는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속신(俗信)이 있기 때문이다.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이다. 그래서 전라남도나 경상남북도·강원도 등지에서는 깊은 산이나 명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간다. 곡우물은 주로 산다래나 자작나무·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는다. 곡우물을 먹기 위해서는 곡우 전에 미리 상처낸 나무에 통을 달아두고 여러날 동안 수액(樹液)을 받는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가 지나고 이제 겨우 봄이 온 것 같은데 봄의 마지막 절기라니 세월의 무상함과 빠름을 실감한다. 한 나라 안에서도 다른 곳에 사는 것처럼 기후는 다양해졌다. 지구 온난화로 바다 수온은 1.6도가 상승해 제주도에선 아열대 어종이 생겼다고 하고, 동해에서는 한류성 어류가 점점 없어지고 난류성 어류인 조기가 잡힌다고 한다.  

하지만 4월 하순임에도 난데없는 꽃샘추위로 꽃봉오리가 절정에 오르다가도 움츠려 드는 이변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런 기후 변화가 사람 몸에 주는 변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하기에 내복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예전엔 겨울이 좋았었는데 요즘은 여름이 더 좋다. 

포크레인과 인부들에게 일을 시켜 놓고 시청을 항의성 방문하여 준공검사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건축사와 토목설계사의 불찰로 차질이 불가피하다지만 민원인의 피해가 극심하니 선처를 바란다며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한바탕 쑈를 했다. 시청을 나서면서 내 표정이 거의 연기자 수준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결정적이었던지 조건부 준공검사가 허락되었단 소식을 곧바로 전해졌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았지만 그간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담당자에게 한동안은 살갑게 대하지 못할 것 같다. 아직도 해결책이 없을 거란 생각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걸 생각하면 고소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내일쯤이면 자기들의 노력으로 해결되었다고 생색낼 때 모른척해줄 생각이다. 내가 민원을 제기했다는 말은 감출 생각이다.  

현장으로 돌아와 보니 별로 반갑지 않은 악동이 기다리고 있다. 자금난으로 경매에 붙혀질 위기에 놓인 땅이 싯가의 절반 가량의 가격에 매물로 나왔다며 현장을 방문해 보자고 졸라댄다. 그런 호조건이라면 내 차례까지 돌아올리가 없을테고 지금은 일을 만들 때가 아니라 수습해야 할 시점이기에 거절했는데 날 돈키호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간의 내 행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정키호테'는 풍차를 보면 돌진할 거라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풍차를 보고 돌진할 정도로 무모하진 않다.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Don Quixote)"는 서구 문학에서 가장 널리 읽혀지는 고전 중 하나이다. 당시 유행하던 중세 기사 이야기에 대한 희극적 풍자로 착상된 이 소설은 기사 이야기를 읽고 환상에 빠진 나이든 기사가 현세주의적인 종자(從者) 산초 판사와 함께 늙어빠진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을 찾아 여행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난 때로 내가 돈키호테가 아닌가 하는 상상에 잠길 때가 있다. 그래서 두 딸과 카톡을 할 때가 많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무모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두 딸들은 아버지의 하는 일에 대하여 절대적 찬성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아버지가 선택한 일에 대하여 적극 찬동하지만 건강을 염려하여 쉬면서 하라고 안스러워 할뿐이다.  

그러고 보면, '정키호테'는 아닌 것 같다. 이 시대 정말 돈키호테는 누구인가? 우리에겐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괴짜’를 가리키는 별명이 됐지만 그는 일단 독서광이다. 행동가형 인물에겐 어울리지 않은 전력처럼 보이지만 여하튼 그는 사색가형의 대명사 햄릿보다도 더 많은 책을 읽었을지 모른다. 그는 경작지를 다 팔아치워가며 자신의 서가를 기사소설들로 채우고 밤낮으로 읽었다. 

그 결과 마침내는 정신이상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직접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명예를 세우기 위해” 방랑기사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사라진 전설의 기사들을 모델로 하여 다시 복원하고자 한 기사도란 무엇인가. “처녀들의 순결을 지키고, 과부들을 보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나 고아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그는 ‘네 것, 내 것’이란 구별이 없이 모두가 행복했던 ‘황금시대’를 다시 꿈꾼다. 그를 시대착오적인 미치광이라고 매도 할 수 있는가? 방랑기사로 나선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돌진하고 시골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전설적인 맘브리노의 투구로 오인한다. 주인의 착각이 너무 심한 듯하여 하인 산초조차도 핀잔을 던지자 돈키호테는 이렇게 나무란다.

“자네에게 세숫대야로 보이는 그것이 나에게는 맘브리노 투구로 보이는 것이고, 또 딴 사람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 난 지금 내 눈에는 거대한 풍차가 거인으로 보이고 대야가 맘브리노 투구로 보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돈키호테라 해도 애써 변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밭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도 거의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냥 땀흘리면서 지난 세월을 반추하고 있을뿐이다.  

미친 사람 취급이야 받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 염려하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잘 알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이상하게 취급하면 않된다. 사실인즉 그렇다. 나와같지 않으면 모두가 비정상적으로 취급하는 시대에서 때로는 돈키호테라고 불리워질지도 모르지만 눈에 콩깍지 씐 돈키호테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어떤 땐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풍차로 돌진할 때도 있다.  

트렉터를 빌려 로타리를 치면 불과 오육만원 정도면 홀리팜 전체를 갈아 엎을 수 있는데도 난 호미 한자루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는 장애가 진즉 왔는데도 난 내 자신을 혹사시킨다. 난 내 글을 누가 보는지, 어떤 반응이 있는지를 한번도 의식해 본 일이 없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구상도 없이 내 마음이 가는대로 스케치하듯 졸필이지만 내 일상을 적고 있다.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결국 내 삶을 유턴시켜야 했던 멍울진 가슴을 진정시키기엔 이 순간이 필요하기에 무모한 짓을 하고 있을뿐이다. 인생도 허업, 목회도 허업이라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주님을 위한 헌신이야 생명을 쏟아부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퇴색되어 가는 사명감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과의 대접 받음을 누리고 가슴에 꽃 달고 단상에 앉고 박수도 받지만 다 바람과 같다.  

이걸 알기까지 칠십년이 넘게 걸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최소한 나이 이른을 되어야 한다. 나 역시 조금있으면 내 것은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이란 걸 알게되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에 불과하다. 형이 내 텃밭을 보더니 이젠 전문가가 되었다며 어쩜 이리 잘 키웠느냐며 부러워 한다. 

그 거야말로나에게는 虛業이다. 농사를 지어 수익을 올리는 것도 아니며 잘 키워 놓아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1/100도 안된다. 옥수수 감자를 보고 벌써 군침을 흘리는 사람이 있고 자기 것이라고 찜해 놓았다. 고얀것들, 그렇게 힘들게 심을 땐 콧배기도 안보이던 것들이 수확할 때만 나타난다.  그래도 밉지 않다. 

어차피 생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즐겼으니 알맹이는 내가 모두 가진셈이다. 정원안에 있는 개복숭아 열매를 탐내는 친구도 있다. 효소로 만들면 좋다는데 이미 복숭아 꽃을 감상했으니 나에게는 필요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먼저 따가는 놈이 임자라니 아직 자라지 않아 콩알만한데, 열매를 따려 달겨든다.  

모두를 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진정시켰다. 내 텃밭안에 먹거리가 무진장하다. 손주들에게 줄 걸 제외한 모든 걸 나눠주려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걸 虛業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주는 즐거움도 작지 않지만 생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만끽하며 인생을 반추(反芻)했으니 그나마 수지맞는 장사를 한셈이다. 

아침마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오늘 하루도 지독한 열기속에 용캐도 살아 남으라고 덕담을 건네는 이 기분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아직은 그늘속으로 피하면 찜통 더위는 아니지만 자외선이 강한 노지에서 생명을 키우는 식물들을 보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쏟아진다. 모두가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데 나는 그렇게 악랄(?)하게 살질 못했다. 죽을 각오를 했더라면 더 많은 결과를 얻었을테지만 너무 한가롭게 살아 온 지난날의 미숙함이 나를 아프게 한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나와 있고 예정된 일도 없어 퇴근길에 시장에 들려 수박 참외 풋호박 모종 몇개를 구입했다. 일전에 심었는데 모두 매말라 죽어 버렸다. 한낮은 여름이지만 저녁엔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지니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선 아직 이른감이 있단 생각이 드는데 넝쿨이 한없이 뻗어가니 하우스 안에서 키울 수 없어 실한 걸로 다시 심으려 한다. 내일 비가 내린 후 기도 열심히 하고 심을 생각이다. 기도하고 심으면 안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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