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고 있는 걸 나만 몰랐다.

정삼열 | 2024.04.18 09:01
나는 자주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노여움이 생기면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하고 가슴 한켠에 쌓아 놓는 성격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내 자신 스스로 무너지는 허약한 체질이다. 

나는 아주 친해지기 전까진 농담도 하지 않는다. 내가 맘을 털어 놓는 사람은 두어명밖에 없을 정도이다. 이런 성격이기에 촌구석으로 숨어 들었고 혼자서 일하는게 더 마음이 편하다.  

얼마 전 형수는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면서 나이 먹어가면서 모습도 비슷하단다. 선친은 평생동안 가만히 있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적에 흙벽돌을 직접 찍어 예배당을 짓는 모습이 선하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 예배당은 겉은 벽돌로 감쌓았지만 안쪽은 여전히 흙벽돌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난 오늘 하루종일 비닐 하우스와 텃밭을 오가며 초여름 날씨에 무진장 땀을 흘렸다. 하우스 안은 30도를 훌쩍 넘긴 그야말로 동남아 날씨보다 더 덥다. 고양이들도 더운지 하우스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복은 물론 티셔츠에 점버까지 입고 비지땀을 흘렸다. 지인에게서 얻어 온 '머우'를 심고 해바라기도 제법 많이 심었다. 물론 고구마 두럭도 오늘 예정된 분량만큼 만들었다. 열상자만 수확하면 되기에 많이 심을 필요는 없지만 순 먹는 고구마도 심으려 무리하고 있다.  

오늘까지 준공검사가 안나오면 낭패를 보게 되는데 일단 원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건축자를 닥달하여 해질 때까지 준공검사를 끝내라고 압박을 하고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주지시켰다. 그간 수개월 동안 시간을 주었음에도 늦장을 부리다 이제서야 허둥대는 모습에 좋은 성격 다 버릴 정도로 심사가 편하지 못하다. 왠만하면 화를 내지 않지만 이런 땐 더운지 추운지를 모를 정도로 몰아의 지경에 빠지고 만다. 

내가봐도 난 엉뚱하면서도 참 미련스런 구석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성질도 온순한 편이면서 급한 편이다. 물론 내 생전에 누구와 얼굴 붉히며 싸워 본 일이 단 한번도 없다면 믿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돌아가신 선친이나 조부님도 평생동안 누구와 다툰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오남매 전체가 대체적으로 그런 편이다. 

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가장 경멸한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폭력도 역시 가장 저질적인 행위라고 믿고 있다. 난 내 생애를 통털어 단 한번 사람을 때려 보았다. 12사단 37연대 군목으로 있을 때 군목님 허락이라며 '가라'로 휴가증을 만들어 휴가를 나간 군종병에게 당장 부대로 복귀하지 않으면 탈영보고를 하겠다는데도 내 성격을 간파하고 성질을 돋구게 하여 몇차례 일명 '빠따'를 친게 유일한 흠이다.

지금 감리교단 목사로 있는데 언젠가 만나게 되면 사과할 생각이지만 당시 초임 군목으로 부임하고 보니 고참 군종병들이 군목을 길들이려는 풍토가 있어 교육상 군기를 잡으려 했던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전임군목은 매달 군종병에게 포상 휴가를 보내 주었다며 은근히 겁박하는 걸 몇번 참다가 매를 들었는데 그후 상당히 군기가 잡힌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군에서 구타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엔 초저녁에 줄빠따를 맞아야 잠을 편히 잘 수 있을 정도로 구타가 심하여 군종 활동이 더 활발해야 했었다. 최전방 GOP 부대라 사고를 예방하는 임무가 더해져 예하부대의 상황에 늘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기에 군종병들의 활동이 중요한데 초임이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고참병을 제대로 잡아 놓았더니 전군 최우수 군목으로 선정되어 단기이면서도 당시 황영시 육참총장의 표창을 받고 울산경비사령부로 영전했었다.

하지만 매값으로 받았다는 생각에 늘 마음에 걸린다. 본인은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그 땐 감정적인 문제보다 고참 하나를 제대로 잡으려 기회를 엿보던 순간이었기에 재수없이 걸려들어 희생양이 된 그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연대뿐만 아니라 군단 포병부대와 삼청교육대까지 관리해야 하기에 군종병 숫자도 많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 본의아닌 강성을 택한게 미안하기만 하다.

내일부턴 건축현장으로 출근해야겠기에 사실상 오늘까지만 텃밭일을 할 수 있기에 몇일간 무리를 했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도 더 손이 붓고 허리를 꼼짝할 수가 없다. 손가락 마디 마디마다 굳은 살이 박혀 거칠기가 짝이없다. 평소에 일하던 사람이라면 별거아니겠으나 전혀 일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는 입에 거품이 생길 정도여서 돈 몇푼아끼려다가 큰 돈 들어가는게 아니냐는 친구녀석들의 우려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난 혼자하기로 작정했기에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다보면 근육도 생기고 아픈 것도 사라질거라고 믿고 있다.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서 인지 누가 곁에 있으면 더 부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무인도에서 생활하지 않는 이상 사람사는 집에 사람 찾아 오는 일을 말릴 수는 없기에 동네 어른들이 예고없이 드나 드는 것을 모르는 척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남에게 보여주는 건 가능하면 안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꼭 심사받는 기분이라 그렇다. 난 나무는 물론 채소 이름도 몇가지외엔 잘 알지도 못했고, 지금도 내가 심어놓고도 이게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래서 씨앗을 심을 때에도 포장지를 세워 놓고 새싹이 나오는 걸 유심히 살핀다.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하면서 식물을 키우고 부억일도 유튜브를 보면서 반찬을 만든다. 라면외엔 레시피가 없으면 할줄아는 요리가 없다. 

요즘 잘나가는 여성들의 결혼관이 바뀌고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3고’(고수입, 고학력, 고신장) 남성이 최고의 결혼 상대자였지만, 요즘 여성들은 ‘3평’(평균적인 수입, 평범한 외모, 평온한 성격)을 찾는다고들 한다. 경제 불황 영향으로 ‘3고’라고 부를 만한 남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큰 이유지만, 더 큰 이유는 여성들이 사치스러운 생활보다 평범한 생활을 선호하면서 생긴 풍속이다. 

나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고에 젖어 살기에 남편은 죽어라 일하고 아내는 자식을 잘키우고 살림을 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요즘은 여성이 남편보다 수입이 많을 경우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하는 전업 ‘주부’를 맡고 아내가 밖에서 마음껏 일한다는 부부도 적지 않다.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여성과,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쿠맨’(육아를 하고 있는 남성. 육아의 일본어 발음이 ‘이쿠지’)의 조합도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것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옛날 어른들이 보면 남자 구실을 못하는 놈이라고 질타를 받았을게 뻔하지만 요즘은 흉이 아니다. 영어로 남편을 'husband'라고 한다. 이 말은 ‘집을 묶는 사람’ 하우스 바운드(house bound)에서 왔다. 남편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틀을 짜고 모든 것을 묶는 일을 한다. 또한 아내를 'wife'라고 하는 것은 ‘피복을 짠다’는 의미라고 한다. 

남편은 윤곽과 틀을 만들어 주고, 아내는 그 틀에 무늬를 넣어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부부의 즐거움이다. 수천년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이런 즐거움이 있는 곳에 달콤한 애칭까지 더해져 행복한 가정을 이루워왔던게 사실이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인지 아내가 큰 틀을 짜고 남편이 무늬를 넣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역할이 바뀐 것이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남편이 육아에 전념한다고 흉이되는 것도 아니다. 남자도 할 수 있으면 '부엌데기'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남자라고 해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권위적인 생각으로 살면 제명대로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난 주일 오후에 친구들 부부를 초청하여 조촐한 파티를 했는데 설거지는 물론 요리도 거의 기능공 수준으로 능수능란하게 하는 걸 보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만 허풍선이로 살았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앉아서 밥상을 받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상추를 씻고 푸성귀를 다듬는 걸 보니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시대가 변한 것이고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천상 천덕구니가 될뿐이다. 

시대에 따라 모든게 변하고 있다. 언어도 그렇다. 말이 생성되고 소멸되지만, 아름답고 의미도 고운, 우리의 말들이 유행이란 혼돈 속에 함몰되어가는 풍조가 아쉽기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흔히 부부간의 한자어 호칭은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보배와 같다 하여 여보(如寶)라 하고,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마땅히 내 몸과 같다하여 당신(當身)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의 부부관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호칭이 아니겠는가? 호칭문화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저속하게 변해 가는 것은 문제이다. 호명(呼名)에 관한 관점을 분명히 하는게 중요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더라'는 한 시인의 말처럼, 이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가 지닌 속뜻이란 것이 참 의미심장하다.

나를 주변에서 '선생' '사장'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으니 대게는 그렇게 불러준다. 한번도 기업을 해본 적이 없어도 다들 그렇게 부른다. 노가다 판에서 잡부 일을 하는 사람도 사장이라고 불러줘야 좋아라 한다. 문제는 호칭이 아니라  내 근본이 무엇인가를 아는게 중요하다.

B.S 나즈니시의 행복론에 보면 법률가로 대성한 사람이 은퇴하던 날,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슬픈 표정을 짓자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묻는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그는 "대부분 나를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하지만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며 뜻밖의 말을 되뇌인다. "나는 사실 무용수가 되고 싶었지만 원치 않는 일에 일생을 소비했고, 이젠 기회가 사라진 것에 대하여 후회한다. 나는 우유보다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우유가 몸애 좋다고 강요하는 바람에 마시고 싶은 물을 마시지 못했다"며 강요받는 삶에 대하여 회한을 들어내었다.

타인의 기대를 신경쓰지 않고, 내 자신이 내키는 대로 하면 남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가 근원적으로 품고 있는 걱정이다.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입는 상처다. 사람들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그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전정한 '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신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게 하셨는데, 나는 도중에 길을 잃고 영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것, 비록 그 자리가 많은 인기를 얻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주목을 받는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가 아니라면 성공 못한 것인 데, 이를 착각하고 있렀다.

사람들은 괜한 목사인척하고 장로인척하며 산다. 이를 흉내 낸 복사본 인생을 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유사 이래로 인류는 늘상 남들을 카피해왔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흉내내는 동물이다. 흉내내기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생존본능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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