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날 때부터 힘든 일을 해보았나?

정삼열 | 2024.04.16 10:14
아침 나절에 잠시 대야장에 들렸다 돌아와 하루종일 집에서 땅을 파며 지냈다. 추가로 가시오이 몇개와 여주 모종 몇개를 구해 텃밭 구석 구석에 심었다.

딱히 갈 곳도 없지만 준공검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심사가 편치 못해 이럴 땐 힘들게 땅을 파는게 시름을 잊을 수 있단 생각에 무리하면서 까지 힘든 일을 자처하게 된다.

분명히 힘든 일이지만 농사도 취미를 붙히다 보면 재미가 있다. 요즘 내가 읽는 책은 대게가 농사에 관한 것과 건축에 관련된 것들이다. 귀촌하여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사례를 눈여겨 보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40년동안 몸담아왔던 교단과 교회, 그리고 영성에 관한 전제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에 밀린 활천 잡지를 가볍게 읽기도 한다.

호수에 내려앉아 한가롭게 지내는 새들도 비상할 날개는 언제나 잘 다듬어 놓듯 단순히 예전의 향수에 젖어서가 아니라 또다른 운명적인 이끌림을 따르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아직 내게 존재하기 때문에 가끔이지만 교단의 풍향을 살피곤 한다. 

지난 시절 애환을 함께 했던 흔적을 찾아 교회 홈피를 뒤척이며 향수에 젖어 보기도 한다. 사진첩을 넘기며 추억에 잠겨 보는 것도 시간을 보내기엔 적절하다. 오래전 글을 통해 교감을 나누었던 분들을 회상하며 댓글도 읽는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발상이지만 짧은 멘트 한줄에 웃고 울었던 날들이 주마등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해맑은 웃음을 짓는 모습들을 보노라니 조금 더 건강했더라면 추억을 더 많이 남겼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아쉽긴 하지만 시련이 있기에 더 성숙해짐을 경험할 수 있다. 어려서 부터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설마 이것이 브레이크가 될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련이 있었기에 오히려 감사를 배우게 되었다.   

시련의 때에 인내하는 자세로 믿음 안에 견고히 서라. 그 상급이 심히 크기 때문이라.(Stand firm in the faith with a patient attitude during the times of testing, for the rewards are very great.) 시련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온전함을 낳고 온전함은 하나님의 형상 곧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으로 연합되는 놀라운 영광과 축복을 얻게 된다. 또한 십자가 복음과 주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성령님 안에 시련을 통과한 후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예비한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이다(약1장). 

우리가 생각하기에 양은 생김새를 보아 온순하고 주인 말에 순종을 잘하고 지혜로와 보이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양과 염소에 대하여 대비적인 관점으로 설교를 수없이 많이 했지만 양은 옳고 염소는 나쁘다는 건 비유적인 말씀이지 생리적으로 차별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온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보다는 제 맘대로 행동할 때가 많이 있고 더군다나 어리석기가 이를 데 없어서 주인의 속을 이만저만 섞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로 어리석은가 하면 한 여름 땡볕에는 그 두꺼운 양털을 뒤집어쓰고 서로 서로 몸을 맞대고 모여 있으면서 덥다고, 반대로 한 겨울철에는 서로 떨어져 꼼짝도 않고 있으면서 춥다고 소리 높여 운다고 하니, 양이라는 동물은 분명 돌머리 끼가 있는 동물임온 틀림없는 듯 하다.

더군다나 양은 머리도 나쁜 것이 교만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한 겨을 추위가 몰아칠 때 운동을 하지도 않고 서로 몸을 비빔으로 서로의 체온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하는 데 자기의 털의 따스함만 믿고 잘난 척 하다가 얼어죽는 양들이 패 많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양의 습성을 잘 아는 노련한 목자들은 그래서 양의 털을 일부러 한 겨울에 깍는다고 한다. 

한 겨울에 양의 털을 깍는 것이 어찌보면 잔인한 처사인 것 같지만 양은 털이 없어야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부지런히 은동을 하여 얼어죽는 일도 없고 추우니까 몸을 서로 벼댐으로 서로 돕고 사는 법을 깨닫게 되어서 무리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목자는 양에게 적당한 고난을 줌으로 오히려 그것으로 큰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즉, 고난의 상황을 주는 것이 오히려 주인의 배려라 할 수 있겠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난이 꼭 손해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고난은 오히려 우리가 미처 알지 뜻했던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노련하고 완벽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지시만, 때로는 우리에게 적당 어려움을 주시고 또 그 고난을 이겨 나가게 하심으로 우리가 평안알 때 알지 못했던 더 많은 유익한 것들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리라.

내 주변에 답답한 현실 문제로 고민이 깊어지는 친구들이 많다. 치킨집 시작했다 망한 친구도 있고, 노래방을 개업했다가 파리만 날리는 친구도 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는게 돈버는 길이라며 지금은 욕심을 버릴 때이지 꿈을 꿀 때가 아니라며 마누라 눈치보기 어려우면 텃밭을 얻어줄테니 농사라도 지으라고 권면하는데 사업을 시작했다가 낭패를 맛본 친구들이 여럿이다.  

힘든 일은 해보지 않아 안된다며 지레 겁을 먹고 도리질한다. 잘 아는 목사님중에 은퇴하고 택시 기사로 일하는 분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지금은 자금을 투입하는 사럽을 해서는 안되고 자본금이 들어가지 않는 경비원이나 주유하는 알바로 뛰라니 그나마 시급이 올라 고용하는 곳이 없다며 끌탕이다. 편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소개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한 할 일이 있지 않다. 걸핏하면 자신은 펜대만 잡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할 일이 있을리만무하다. 나도 처음엔 할 일이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똥지게라도 짊어지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와서 보니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난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몇번 교회를 건축하면서도 미리 자금을 만들어 놓고 공사를 시작하거나 돈을 빌릴 수 있는 안전장치와 값을 수 있는 여력을 충분히 검토하고서야 일을 벌렸다. 막연하게 '믿음으로'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는 말이다. 난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한다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난 그런 믿음이 없었기에 항상 내 처지를 먼저 생각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그림만을 그렸다. 

어떤 때는 좀 더 모험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 볼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목회를 하려하니 남들보다 뒤쳐질 때가 많았다. 지금도 난 '믿음'과 '깡'을 구별하지 못한다. 나 아니어도 모든 사람에게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셔야 하는 하나님을 피곤하게 할까봐 차라리 내가 피곤한게 낳겠다는 생각에 그냥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일을 하다보니 크게 하질 못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난 그렇게 살 생각이다. 나보다 더 급한 분들이 많은데, 공연히 일을 벌려놓고 감당못해 하나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오전에 일을 마쳤지만 아직 빈터가 많은데 백여평의 땅을 놀리기가 뭐해 고구마라도 심을까를 생각하다 일단 일주일에 걸쳐 땅을 파기로 했다. 트렉터를 이용하면 30븐도 안걸리고 하다못해 관리기를 빌려 땅을 파면 수월하겠지만 내 주특기인 호미질로 밭갈이를 하겠다고 오기(?)를 부리기로 했다. 하루에 30m씩 일주일만 땅을 파면 일곱 두럭을 팔 수 있고 몇일있다가 거름을 주고 고구마 순을 사다가 심을 생각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얼마던지 내가 먹을만큼은 얻을 수 있고 이삼만원이면 고구마 한상자를 사서 먹을 수 있으며 이삭줍기를 해도 몇상자는 취득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만한 힘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고 내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싶어 일을 자처한다. 

시장에서 팥떡 반개를 구입하여 식사로 대신했다. 만원짜리 한덩이를 사라고 강요하지만 반절로 잘라 오천원에 구입했다. 

이걸 다먹으려면 이틀 정도는 걸릴지 모르지만 먹기 싫은 밥대신 군것질로 한끼를 떼우는 것도 지혜(?)이다. 주일날 남겨둔 야채셀러드와 떡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 민생고를 해결해 준다. 다시 어두움이 내리 깔리기 시작한다. 오랫만에 호미질을 했더니 허리와 팔뚝이 욱신거리지만 비가 그치고 황혼이 깃든 서쪽 노을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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