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언챙이더냐.

정삼열 | 2024.04.14 11:16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무엇이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유대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시'의 '다윗 왕의 반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으라"고!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때 솔로몬이 일러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정작 명언을 남긴 솔로몬 자신은 말년에 향락으로 자신을 망쳤지만 말이다. 

지난 몇년동안 나는 현역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다. 세속화된 거라는 소릴 듣는다면 할말이 없지만 느낌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현역시절이나 최근까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 많던 날들을 허비했었다. 안늙을줄 알았고 안아풀줄 알았으며 아무 할일이 없을 땐 주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먹여 주실 거라고 믿었다. 

심지어는 안죽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장 추한 모습으로 늙어 버렸고 중환자로 벌써 세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공중에 나는 새가 되어 날개쭉지가 부러질 정도로 먹이를 찾아 날아야 하고 세상을 졸업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걸 요즘들어 더 실감하고 있다. 

세상일이란 '이 또한 지나가고 만다'는 걸 이제는 분명하면서도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세상은 소풍 왔다가 홀연히 떠나는 곳이다. 얼마전 울산옥동중앙교회 창립 40주년이라고 초청을 받았지만 핑게를 대고 가지 않았다. 울산 경비사령부 군종참모로 재직중 전역을 앞두고 부대 앞에 천막을 지고 민간교회를 개척하였다. 지금은 대형교회가 되었지만 나는 울산을 떠난 이후 단한번도 울산을 방문해 본적이 없다. 

인천에서도 24년동안 목회를 하였지만 12년이 되도록 문학중앙교회 근처에 얼씬 거려 본적이 없었다. 나는 한 시대에 쓰임을 받았을뿐 내 공로나 공적을 생각해 본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내 젊음을 바친 사역의 현장이지만 미련같은 건 전혀 없다. 지금이 좋고 텃밭에서 땀흘리는게 좋고 공사현장에서 만나는 단발마적이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좋아 그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다. 

조그만한 헛점이 보이거나 약점이 들어나면 들춰내려 혈안이 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긴장하면서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이 마음으로는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덜어내고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멋, 삶의 맛은 '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되레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삶이 역겹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강물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인생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게 스치듯 지나갈뿐이다'. 어떤이들은 나에게 착하다고 항상 너의 평판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바보 소리 듣지 않으려면 단호해지라고 충고한다. 

손해보고 양보하면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 안하고 호구 취급을 한다며 '달리 언챙이'냐고 닥달하며 절대 손해보며 살지 말고 실속을 차리라고 충고한다. 물론 한없이 착하기만 하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답답해보이고 한심해 보일 수가 있으며 오히려 상대는 나의 과한 착함과 친절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내 한심한 모습을 보며 걱정하는 친구에게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내키는대로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말한다거나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넓은 마음가짐, 선량함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남의 평판을 의식한다던지 착함에 대해 삐뚫어진 집착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착한사람과 호구는 다르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구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 시골은 오나 가나 무덤이다. 좋은 자린 죽은 사람들이 모두 선점해 버렸다. 나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무덤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언제 출생하여 언제 졸업했는지가 궁금하여 비석 뒷쪽의 이력서를 읽는다. 아마도 살아 있을 땐 혈기방장하여 거침없이 살았을테지만 죽으니 모두가 허사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저럴 운명이란 생각이 들면 숙연해진다. 

이성봉목사님의 '허사가'가 입가에서 맴돈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일생일귀 북망산 불귀객되니 일배황토 가련코 가이없구나 솔로몬의 큰 영광 옛일이 되니 부귀영화 어디가 자랑해볼까.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말라 영웅호걸 열사들아 뽑내지 마라 유수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토지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삼척광중 일장지 넉넉하오니 의복 많아 무엇 해 나 떠나갈 때 수의 한벌 관 한개 족하지 않나"      

나는 자랑할 게 많은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기만 하다. 정말 자랑할게 그렇게 많던가? 밀림의 사자는 어금니가 빠지면 무리를 말없이 떠나 동굴속에 엎드려 굶어 죽는다. 

구차하게 허세를 부리거나 남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사자후(吼)란 말도 있듯이 사자의 울음소리는 늪과 초원지대에 몰려드는 짐승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케냐의 사바나 지역의 동물들은 사자가 굶주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희생함으로서 평화를 유지 한다고 하던가. 텔레비전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는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고 포식하는 장면을 주로 보여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자가 늘 풍부한 먹잇감을 탐닉하는 걸로 착각한다. 하지만 하루 평균 40킬로미터를 걷고 달려도 만만한 먹이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   

생존의 사투는 그래서 더 치열하다. 더욱 처절한 광경은 늙고 굶주린 사자다. 어느 누구도 범접지 못했던 이빨을 상실한 뒤의 모습이란 차라리 측은하다. 늙고 굶으면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별수없나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주먹거리도 안되던 하이에나 무리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게 어찌 사자에 그칠까. 삶이 무상하기는 사자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더 겸허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 키다리는 더 큰 키다리를 만나면 마음이 위축이 된다. 반면, 난장이는 더 작은 난장이를 만나면 키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인생살이에서 자랑을 늘어 놓는 것 처럼 무모한 짓은 없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정원의 풀을 뽑고 물을 주면서 소일거릴 삼았다. 오늘 오후엔 빛고을 박목사님 무진주 박목사님 김목사님 그리고 담임목사님 내외를 초정하여 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우럭 광어 참치 등 횟감을 준비하고 돼지 갈비를 마련하여 푸성귀로 식사를 했다. 고기나 횟감보다 오랫만에 혼밥족이 아닌 왁자지껄 만찬이라 더 맛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문화에선 누군가와 같이 밥 먹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자 식사자리는 친교 도모의 목적도 가지고 있어서 남들 가운데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눈치가 보이고 남들 시선도 견뎌야 하는 그런 독특한 행위였다. 다만, 근대화 이전까지만 해도 독상이 기본이고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을 금기시했으므로 식사 자리가 친교의 자리가 되기는 어려웠다. 

예를 들어 6.25 전쟁 이전까지는 1인 1상으로 식사하는게 원칙이였으나, 6.25 전쟁을 기점으로 물자 부족으로 그냥 상 하나만 두고 온가족이 같이 식사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즉 오늘날 '젊은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 혼밥이 오히려 전통적인 한민족의 식사법이고, 기성세대가 전통이라며 극찬하는 겸상은 근현대에 만들어진 비교적 짧은 역사인 셈이다.

서구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일상 대화가 일상이었다. 이것은 사실 고대 그리스와 초기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이 큰데, 고대 그리스는 스파트타 등지에서 공동식사를 규율로 지정했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식탁교제가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이 전통이 서양에 뿌리내리면서 서양의 식사문화가 정립되었고 밥상 위에서의 가족간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랫만에 떠들썩 왁자지껄 식사를 하니 너무 좋다. 하지만 일행중 간암 수술을 하여 날 것이 별로인 걸 깜박하고 횟감을 준비한 내 불찰이 결코 작지 않아 돼지 갈비쪽은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들 식사자릴 즐기는 것 같아 자주 이런 자릴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옥수수와 감자를 캘 때쯤 다시 소집해야겠다. 지금쯤 먼 길 밤길 운전을 하겠지만 변변치 않은 자리라도 먼길을 찾아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기만 하다. 

이번에도 야채 셀러드를 만들어 오셨다. 예전엔 풀은 근처에도 안갔는데 근래엔 고기는 근처에도 안간다. 대신 야채 셀러드라면 거의 독점하다 시피하니 격세지감이다. 청소까지 깔금하게 해주고 떠나 당분간은 빗자루와 안녕일 것 같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독자의견
rss
연안부두
차오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가 에서 처음 대했던 두리 new
날짜 : 2024.05.20 12:04 / 댓글 : 0  
    
오늘은 절기상 만물이 생장하고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다. 입하와 망종 사이에 ..
'촌놈 마라톤'하듯 죽어라 뛰고 보는 군상들
날짜 : 2024.05.19 10:58 / 댓글 : 0  
    
간밤에 어깨 통증때문에 고생했다. 며칠 동안 건축 현장에서 철근을 결속선으로 묶는 작업을 ..
임을 위한 행진곡
날짜 : 2024.05.18 11:39 / 댓글 : 0  
    
오늘이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혹은 ..
몸은 하나인데 할일이 너무 많다.
날짜 : 2024.05.17 11:11 / 댓글 : 0  
    
요즘 신종어인 '호모 사피엔스(Home Sapiens)'에 비유해 스마트폰에 의해 삶이 변..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날짜 : 2024.05.16 11:25 / 댓글 : 0  
    
출근길에 지나는 마을 입구에는 수 백년 된 느티나무가 속을 비운채로 서 있는 걸 본다. 텅..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 밑에는 절로 오솔길이 생긴다
날짜 : 2024.05.15 09:10 / 댓글 : 0  
    
"작위불의태성 태성즉위(爵位不宜太盛 太盛則危) 능사불의진필 진필즉쇠(能事不宜盡畢 ..
사람이 일이 있을 때가 행복하다
날짜 : 2024.05.14 10:50 / 댓글 : 0  
    
빌립보서 1장에 보면 "너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아직은 아니다.
날짜 : 2024.05.13 10:45 / 댓글 : 0  
    
새벽에 출근하여 집에 돌아와 두시간 하우스에 물을 주고 풀과의 전쟁을 벌렸다. 사실 풀을 ..
식은 커피가 더 달다.
날짜 : 2024.05.12 10:18 / 댓글 : 0  
    
나는 참으로 어벙한 사람이다. 어벙이란 말은 '똑똑하지 못하고 멍청하다'는 뜻인데, 멍청하..
한평생 치열하게 살았던 흔적들을 지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날짜 : 2024.05.11 09:55 / 댓글 : 0  
    
새벽에 집을 나설 때 눈부신 태양을 보며 출근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날이 흐려지고 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