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촌놈 DNA

정삼열 | 2024.04.12 10:42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 날까지 전공은 있었지만 전문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줄 아는게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건달(乾達)은 아니다. 대게는 시늉으로 끝내서 그렇지 이것 저것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하게 살았다. 지금도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전문가란 무언가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만,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 미국 작가)'의 말이다. 전문가도 사람인 이상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처럼 좁은 시야에 갇히면 곤란하다. 더욱이 시야가 좁아질수록 나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니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다른 분야와의 소통이 단절되고, 자기 분야가 최고라는 자만이 싹트며, 분야와 분야를 통합하는 융합형 인재는 사라지고 만다. 공사현장에 수십 그루의 반송이 심겨져 있지만 조경수 회사의 소유로 분을 떠서 일시로 심겨 놓은 나무 대부분이 고사했지만 내가 선금을 주고 사 놓은 나무는 거의 멀쩡하다. 

전문 조경회사에서 관리하는 나무가 거의 고사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지만 사실인즉 그렇다. 작년에 십여그루를 심었지만 소나무 재선충(材線蟲)으로 고사하여 이번엔 틈틈히 물을 주며 관리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애정을 쏟지 않으면 식물은 자라지 않는다. 모든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릴 들으면서 자란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무엇인가 언밸런스(unbalance) 한 것같아 미안하지만 정성을 쏟아 붓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나는 가끔 내 안엔 촌놈 DNA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은 본디 촌스럽게 사는게 가장 자연 스럽다. “촌스러움”은 결코 비속하고 천박함의 대명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혼연일치, 현대와 원조의 상부상조를 의미하는 통속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촌스러움”에는 녹색이 배여있다. 콩크리트 도시화는 녹색의 “촌스러움”으로 보완돼야 생명력이 넘친다.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고 노래한 수필가 이양하는 그 중에서도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 하나 하나가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 을 '초록의 청춘 시대' 라고 예찬했다. 

집에서 5분 또는 2km 미만 거리에 공원이나 운동장이 있으면 비만이 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톨대와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진은 주거지가 공원으로부터 2km 이상 떨어져 있으면 그보다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비만이나 과체중이 27%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인간은 자고로 촌스럽게 살아야 한다. ‘촌스럽다’라는 말은 지금까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촌(村)’이라는 단어가 주는 시골스러움 때문이었을까. 다분히 농어촌과 농어민을 낮잡아 보는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제 ‘촌스럽다’는 표현은 새로운 차원으로 정립됨이 바람직스럽다. 경쟁력으로의 탄생이다. 촌스럽다는 말은 자연과 가장 가깝다는 말이다.

일등이 모든 걸 독식하는 시대는 오래가지 못한다. 조선시대에는 '넘버원(NUMBER ONE)'이 모든걸 독식했다. '넘버투(NUMBER TWO)'는 역모로 몰리거나 귀양을 가던지 비명힁사하기 일수였다. 술주정뱅이가 되던지, 미친척해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정도였으니 왕족이 된게 불행한 일이었다.

홍경주라는 사람이 어느 날 밤 중종을 찾아가 조광조의 권세와 인기가 이미 임금을 능가하였고, 이에 공신들이 크게 걱정을 하고 있으며, 시중에는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말을 하는 등 가뜩이나 불안해하는 중종에게 겁을 주었다. 

야사에는 홍경주의 딸 희빈 홍씨가 시녀들을 시켜 나뭇잎에 벌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씨를 쓰게 한 후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을 임금에게 들고 가 아뢰었다고 하나 이러한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인데다 이야기 자체가 선조 이후에 등장하는 것임에 비추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홍경주가 중종에게 주초위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의 참언을 입에 올려 중종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댄 것은 사실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하튼, 조광조 세력의 과격하고 급격한 밀어붙이기식 일 추진에 가뜩이나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껴오던 중종은 홍경주의 말을 듣고, 사방이 조광조의 수족인데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고 하문하였고, 홍경주는 임금이 조광조를 치는데 뜻이 있다는 밀지를 내린다면 남곤, 심정 등 충신들과 일을 성사시키겠다는 답을 하게되고 이 일로 기묘사화가 벌어진다.

지위가 높아지면 반드시 모함이 따르고 적이 생겨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세하려는 몸짓이 멈추지 않는다. 꼭 일등만 우대받는 사회라면 얼마나 살벌한 세상인가. 인생도 그럴진데 목회도 엇비슷하다. '넘버원(NUMBER ONE)'이 되려는 욕심이 자기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언젠가 교단 주요 보직자를 인선할 때 본의아니게 참여 한 적이 있었다. 

일단 인선위원들이 한자리씩 꿰차고 주요 보직을 결정하는데 나에게도 심판위원 자리가 배정되었지만 사양했다. 나같이 소시민적이고 정에 치우치는 단점(?)이 있는 사람이 심판을 하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기에 정보통신위에 가겠다고 자청했다. 개점 휴업인 자리이다. 그나마 소집책으로 선정되었지만 위원장 자린 후배에게 넘겨 버렸다. 

대나무는 씨앗을 심은 뒤 첫 4년 동안은 죽순만 하나씩 돋아난다. 땅위로 죽순만 자라는 동안 땅 속에서는 뿌리가 깊게 내려 튼튼한 나무가 된다. 5년째 되는 해에는 대나무가 무려 25미터나 자란다. 대나무에게 4년이란 시간은 25미터 자라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준비하는 시간이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넘버원이 되려 하고, 넘버원이 된 자는 나머지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사람이 넘버원이 되기 위해 애쓰다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가 넘버원은 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온니원(Only One)이란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이 승리한 크리스찬이다. 사람이 외모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만, 능력과 가진 것에 따라 평가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Only One이다.

하루종일 현장에서 봄볕을 즐겼다. 일하기 정말 좋은 때이다. 요즘은 일을 안만드는게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이 회자되고 건축 경기가 제로이지만 그런 일말고도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내일은 텃밭에서 하루종일 보낼 생각이다. 벌써 주말인가 본데 정말 시간이 잘 간다. 도시민은 따분하여 죽을 지경인지 몰라도 내 안에 촌놈 DNA가 있는 한 지루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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