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 섭리 가운데 흘러 간다

정삼열 | 2024.04.11 11:18
대부분의 노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남자들이 노년을 지나면서 점차 멋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멋'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들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나 병약자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곤 한다.

나도 한 땐 귀공자 타입이고 선비 타입 등 세련된 매너 등으로 인해 멋있는 사람이라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불과 몇년만에 형편없는 몰골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거울을 보지 않는 걸 보며 새삼 놀란적이 있었다. 하루에 한번도, 때론 주일날 교회 갈 때만 거울을 바라 보는 게 습관처럼 반복되고 있다. 나일 먹으면 미모도 부질없는 거란 걸 깨닫는 것 같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없는 사람은 받을줄만 알고 줄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 특히 교사나 목사로 평생을 산 사람들 중에 남 대접하는걸 즐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평생 남에게 대접만 받아 온 세월의 습관이 몸에 베어 대접받는걸 당연시하고 고마워 할줄 모르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길들여진 사람의 버릇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지난 세월의 기억은 털어내고 잊으려하지만 내가 모르는 잠재된 목사의 직업의식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을 돌아보려 애를 쓴다. 때로 거울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면 익산에서 상거지중에 상거지꼴이다. 입는 것, 먹는 것, 나보다 험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도 대게는 k2나 코오롱 스포츠 정도는 입고 다닌다. 힘들게 일하고 저녁에는 말쑥하게 차려 입고 카바레에 다는 사람이 여럿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부러워 해본적이 한번도 없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어차피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할 여정이기에 가고 있을뿐이다. 다만 이 땅을 오염시키지 말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한가롭게 살고 싶지 않기 위해서 무던 애를 쓴다. 일하던 복장을 갈아 입기도 힘들고 자랑질하는 것들을 곱게 봐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욕먹으면서 까지 허접한 모습 그대로 살길 원하고 가능하면 두문불출하는게 일상화되었다.

인생은 3가지 유형이 있다. 어떤 사람은 평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산길을 오르는 사람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내리막을 가는 사람도 있다. 기쁨도 슬픔도 무상이고 사랑과 미움도 공짜다. 돈을 가지면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을 가지면 권력의 속박을 받는다. 소유라는 것은 욕망의 산물이다. 집착은 어떤 사람의 불변과 고정의 마음이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반드시 고비가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기의 순간은 더 높이 솟구쳐 오르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장자는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고 했던가? 고비가 많을수록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멋진 인생이 된다.  

외형적으로는 쪼그라 들기 시작하는 나이지만 마음만큼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가진다. 고목에는 새도 들지 않는다’는 우리 옛 속담이 있다. 나이 늙어 양물에 힘이 없어지면 여인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지역과 민족을 떠나 나무는 남성을, 꽃은 여성을 상징했다. 아무리 기골이 장대했던 사람도 늙음앞에선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내 주변인들을 보면 마음에서 먼저 노친네가 되어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어딜가나 '어르신'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익숙해진 단어인데 무엇인가 씁쓰레한 생각이 든다. '어르신'이란 말이 존경어인 건 사실이지만 솔찌기 말하면 마땅히 불러줄 말이 없기에 듣기 좋으라고 사용하는 호칭인줄 잘 안다. 

어느새 그 정도가 되었을까? 내가 머리카락에 염색을 하고 양복차림으로 깔끔을 떨었다면 그런 오해(?)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보톡스 주사라도 맞고 몸관리를 한다면 약간은 감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십볼렛'이란 발음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사사 입다 시대에 ‘‘시내’를 뜻하는 ‘쉽볼렛’을 ‘십볼렛’으로 발음해 4만2000여명이나 에브라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쉽볼렛’이라고 발음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렸던 것이다. 쉽볼렛은 서구 문화권에서 구별 짓기의 상징으로 쓰이는 수사다. 유래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사 시대의 전쟁 서사다. 암몬 족을 쳐부순 길르앗 족을 에브라임 족이 시기했다. 이번에는 두 종족 간에 내전이 발발해 지도자 입다가 이끈 길르앗 족이 승리했다. 

에브라임 족은 패잔병 신세가 되어 요단 강 서편으로 도주했다. 입다는 적군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요단 강 나루턱에서 에브라임 군사들을 기다렸다. 관문 하나를 만들어 놓고. .우리나라로 치면 대개 ㅆ(쌍시옷) 발음에 서툰 경상도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쌀' 발음을 하라는 식의 검증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쉽'을 '십'으로 발음한 4만2천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쉽볼렛은 적군과 아군을 가르기 위해 고안된 영리한 피아식별법이라 할만했다. "쥬고엔(十五円)을 발음해보시오." 우리 민족에게도 자의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던 '쉽볼렛 검증'의 역사가 있다. 관동대지진 때 일이다. 대재앙으로 흉포해진 민심이 폭동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한 일본 관료들은 재앙의 원인이 조선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일본 식민지 시대 최약자였던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도 문제를 제기할 이는 없었다. 탁음인지라 발음이 어려운 '쥬고엔'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별했다. 다수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학살이 자행됐다. 나는 노친네가 아니라고 항변해 봐야 별 수 있는가. 말투가 그렇고 생각이 그러하며 사고가 그 정도니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받아 들여야 한다. 

어쩌다 거울을 보아도 그 '어르신'이 딱 버티고 서 있는데 말이다. 요즘은 노친네의 대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평균 연령이 늘어나는데 반해 경제적 생산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가 되고, 시대별로 급격하게 달라지는 필요 지식 등으로 인해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뜻 자체가 점점 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미국에선 old man 대신 senior citizen을 쓴다고 한다. 일본에서 老人 대신에 年寄り를 쓴다. 애초에 이 말은 국가 공모로, 노인을 대체하는 단어로 당당하게 뽑힌 말이다. 하지만 외모를 꾸민다고 젊어지는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노친네'든 '어르신'이든 호칭에 초연해진지 오래이다. 이러한 흐름에 더해 요즘은 '노슬아치'나 틀딱충'이라 불리는 추세이다. 

나는 그것마저도 시비할 생각이 없다. 나이 많이 먹었다고 나이값 못하고 아랫 사람들에게 민폐부리는 못된 노인들과 구별되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그렇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랫사람들에게 민폐부리는 못된 노인들은 그냥 “노인네”, “꼰대”, “틀딱” 이라 부르는 편이고, 점잖으시고 모범이 되는 언행을 보이시는 노인분들은 “어르신” 이라 부른다지만 그게 그 것이 아니던가. 

나는 틀딱이던 어르신이던 크게 구해를 받지 않는다. 그냥 고목으로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행여 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해가는 사람이 있다면 만족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만나는 시니어들에게 은퇴후에 잃은것이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를 종종 물어본다. 잃은 것을 후회 하는 분들은 대게 “그때 내가 왜 그 사람에게 그리 못되게 굴었는지?”하는 후회, 가족과 함께 여행을 못해 본것, 쓸데없는 일에 객기를 부린 것, 영양가 없는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면서 시간 낭비 한것 등등이라고 한다. 

새로 얻는것에 대해서는 넘치는 시간, 새로운 취미생활을 할수 있는 것, 남을 위해 베풀수 있는 시간과 건강, 뭐니 뭐니 해도 너그러울 수 있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함을 얻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은 얼굴과 목의 주름살. 많은 시니어들은 이제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더이상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안찍는다고 말한다. 

사람이 세상살이를 누리는 가운데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진척이 더딜 때 한숨 섞인 푸념으로 자주 '세월을 탓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월은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세월이란 말이 바로 흘러가는 시간으로 광음 또는 때라고도 한다.

어제 6시쯤 형과 누이 내외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국회의원 선거 출구 조사를 발표할 때 얼굴 낯빛이 변하면서 마치 대한민국이 끝장 난 것 처럼 한숨쉬는 걸 보며 팔순을 내다 보는 나이에도 저렇게 정치에 몰두하는지를 의아해 했다. 조국혁신당이 선전했을 거란 말에 돌려가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내 입으로 무슨 당을 지지했는지 한번도 밝히지 않았는데 의레 조국혁신당을 지지했을 거라고 믿는 눈치이다. 

자유통일당이 최소한 일곱명은 될줄 알았다는데 기독교인이라고 특정당을 지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들도 나와 취향이 다르지만 한번도 누굴 찍으라고 강요해본적이 없었다. 역사는 사람의 의지대로 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 섭리 가운데 흘러 간다는 걸 알기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누가 도도히 흐르는 섭리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늙을 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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