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jar

정삼열 | 2024.04.08 11:19
내 장래가 어찌될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불안 불안하기만 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뚜렷한 혜안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의 영역을 탐구하면서 우리 삶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최근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미래학'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4차 산업혁명도 미래학에 관심을 높이는 요인의 하나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대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에 쏠린 관심이 높아질수록 미래학 비판도 늘었다. 앨빈 토플러에게는 미래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그래서 앞을 내다보려는 욕구는 더 집요하다. 미래학자는 현대판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일지도 모르겠다. 앨빈 토플러는 그 신전의 제사장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지식 정보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유전자 복제, 퍼스널컴퓨터(PC)의 파급력, 인터넷 발명, 재택근무 등을 예견했다. 

한때는 모든 사람이 토플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책 ‘미래 충격’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등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몇십년 전 앨빈 토플러가 한국을 향해 남긴 조언은 "기업은 덜 집중화되고, 덜 관료화되며, 덜 수직화된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 정부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래 수출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고, 갈수록 더 많은 생산물이 생길 것이기에 이제 남들이 제공할 수 없는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서를 제공했었다. 수출만으론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고 예견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돈만 많다고 선진국이 됳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시대나 자기 시대의 예언자를 갖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몰락을 내다본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이사야 선지가의 예언은 이사야서 41장 1절부터 9절 까지 앞으로 오실 구세주에 대하여 5번씩이나 예언 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를 사는 지혜는 현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대한 통찰력에서 나온다. 

우리의 미래는 한국의 미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한국의 미래는 세계의 미래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 국가의 미래나 세계의 미래에 대하여는 일정한 이론적 체계나 뚜렷한 정설은 없지만 국내외 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흔히 이를 이른바 ‘미래학’이라고 하는데, 결코 허공에 뜬 공상은 아니다. 미래학은 미래의 예측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예측을 통하여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 예측의 내용과 성격도 그것이 의존하는 목적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갖게 된다. 만약 나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다면 그 자체가 자산이 된다. 아무리 현재 돈이 많아도 미래를 보는 안목이 없다면 그 자산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우매함이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내가 아무런 경험이 없었지만 노가다 판에서 용캐도 살아 남는 걸 보며 항간에는 나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다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일 수도 있다는 걸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나는 5분 후에 일어날 일조차도 가름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 머리로는 절대 미래를 예측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탈진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누굴 견인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한없이 부끄럽고 작아지는 느낌이다. 

현역으로 있던 시절,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사역이었지 함께 울어주고 함께 뼈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대신하지 못했다. 내 사역 기간중 투신자살한 집사가 있었다. 

그 분의 장례식을 집전하면서 내 불찰로 그의 극단적인 행동을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란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고 육군 장교 출신이고 평소에 씩씩한 기상을 보였기에 설마 그럴리가 없을 것이라고 도리질을 했다. 나는 깨진 항아리가 되어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었다.

예레미야19장에 보면 에레미야(Jeremiah)에게 백성의 어른들에게 전하라고 말씀을 들려 주신다. 깨진 항아리(Broken jar)에 관한 말씀이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심판을 예고하신다. 

또한 10절 이하에 보면,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Broken jar가 어디 예레미야 시대만의 이야기인가. 안깨진 곳을 찾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정 학교 사회 교회 등 물 부어봐야 소용이 없을 정도가 아니던가? 정말 미래학을 연구하지 않아도 미래가 끔찍할 거라는 예상은 왠만한 사람이라면 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혹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가는것"이라고 했다.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한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예측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구상한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 때문에 예측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재주가 없기에 진리를 선택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다. 진리야말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다. 진리는 항상 쓰나미가 지나간 다음에 사람들의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새 소망을 바라보고 나가도록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깨진 항아리처럼 아무리 물을 부어도 소용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교회의 암담한 현실에 괴로워 한다. 미래학의 대가에게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자문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미래학을 신봉하지 않지만 내 미래는 깨진 항아리(Broken jar)는 절대 아닐 것이다. 육신은 물론 내 정신과 영혼을 맑게 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한 빗물을 받아낼 자신이 있다. 열달란트까지는 몰라도 다섯 달란트는 남기려고 그렇게도 힘들게 산다. 

아직은 내 몸이 Broken jar가 아니지만 여기에서 잘 관리하지 않으면 수습 불가의 지경에 놓일지도 모르기에 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오늘만 해도 아침부터 수십곳을 왕래하면서 준공검사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려 만방으로 뛰어 다녔다. 게으른 설계사를 믿다간 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직접 손발로 뛰어 다녔다.

이미 2개월 전부터 준공검사를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40일을 건성으로 보내고 이제와서 여러 핑게를 대며 허둥대는 모습에 분개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인데 원망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고 내가 직접 나서서 가스안전점검 필증을 비롯 난방 안전검사 정화조 준공검사 등을 취득하여 설계사에게 가져다 주고 책산에 앉아 직접 접수시키는 걸 확인하고 돌아왔다. 

분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시장에 들려 맷돌 호박 열개와 토마토 열개, 가지 여섯개 상추씨를 구해 텃밭에 심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무일도 안하면 아마도 속터져 죽을 일이지만 흙을 매만지며 분노를 삭였고 조만간 뜻이 맞는 친구들을 불러 위로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다루기가 정말 어렵다. 아마도 선금을 주었기에 급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인데 이쯤되면 감동을 주지 못한 내 불찰이 크다. 

나도 한 땐 유명한 부흥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의 설교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자만심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통해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세례요한의 사자후는 광야에 표효했다. 헤롯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질타할 떄 통쾌하기조차 하였다. 하지만 헤롯이 변화된게 아니었다.

반면 나단산지자는 다윗에게 비유로 조용히 말했다. 아흔아홉마리 양을 가진 자의 행태를 소개하며 한마리 양을 가진 자를 착취한게 누구인가를 일러 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던지 귀인 귀빈을 맞이할 수 있음에도 우리아 장군을 최전선으로 보내 죽게 만들며 완전 범죄를 꾸며왔던 다윗을 꺼꾸러 트렸다. 내 설교를 전교인중 10% 미만만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일은 어차피 완주군으로 알바를 나가야 하기에 오늘중으로 급한 불을 꺼야겠다고 같던 곳을 두번 세번 왕래하면서 거의 파김치가 되어 버렸지만 내 대신 현장 소장이 따라 다니며 큰소리를 내어 주고 욕을 해주는 바람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지만 아무튼 이런 날이 자주 있으면 큰일나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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