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른다.

정삼열 | 2024.04.06 09:49
21세기의 일반 한국 가정에서의 가마솥은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거의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 경우가 대세였는데 이젠 가마솥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유물(?)이 된지 오래이다.

대가족이 사라지면서 가족의 수가 작아져서 큰솥이 불필요한 데다가 주방 구조가 달라져서 더 이상 장작을 연료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값싼 양은솥이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가마솥은 더욱 빨리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렇지만 양은솥은 가마솥과는 달리 열전도율이 매우 높아 빨리 끓는 대신 빨리 식어 버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마솥과 같은 맛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러한 가마솥의 장점을 살린 밥솥들이 다양한 형태로 다시 나타나고 있는 추세다. 가마솥은 한 가정을 대표하는 주방 용구로 생각하여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할 때에는 가장 먼저 이것부터 부뚜막에 걸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곧 살림을 차린다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런 관행에서 한가족이나 한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산 사람을 가리켜 한국에서는 '한솥밥을 먹고 지내는 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빵이나 피자가 우리 먹거리 속으로 파고들어 밥만 먹고 사는 세상이 아니고 솥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전기밥솥으로 바뀌었다.

‘한 솥밥 먹는’ 가족의 규모도 대가족 중심의 옛날과는 다른 세상이다. 하지만 형태는 바뀌었어도 여전히 솥으로 한 밥을 먹고 나서야 하루의 건강을 유지하는 우리 식생활은 달라지지 않았고, 밥과 솥에 소복이 담긴 우리의 전통적 정서 역시 아직은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질로 남아 있는 것이다.  

흰 쌀밥은 놋그릇으로 한공기 퍼서 아랫목 이불속에 뭍어 두었다 아버지만 드렸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이건 넘볼 수 없는 가장에 대한 예우였다. 아버지의 권위라는게 아예 존재하는지 조차 이해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가정의 중심축이 어머니에게로 넘어 간 것은 물론 순위에서도 자식 강아지 다음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이다.    

부엌일을 맡고 있던 부녀자는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하기 전에 정화수 한 주발을 떠 놓고 손을 부비며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에게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밥과 솥이 신앙으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열전도율이 낮아 강한 열을 받아도 쉽게 전달되지 않고, 따라서 뜨거워지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달구어지면 쉽게 식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마솥은 부뚜막 밑에서 장작불을 세게 때면 그 열을 머금고 있다가 솥 안의 재료에 조금씩 전달하여 음식물을 속속들이 익혀 준다. 또 한번 끓인 물을 오랫동안 식지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밥과 국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조리 기구이다. 주부들은 한끼의 밥을 지을 때에도 보통 정성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밥은 짓는다고 한다. 

집을 짓다, 이름을 짓다, 농사를 짓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중요한 것에는 ‘만들다’가 아닌 ‘짓다’라는 동사를 써왔다. 만든다는 것과 짓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만드는 것은 기술만 있어도 할 수 있지만, 짓는 것은 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먹고 자고 쉬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공간, 집. 언제부턴가 집은 성공을 드러내거나 재산을 늘리는 도구로써 크고 높게 ‘만드는’ 것이 돼버렸다.

만든다와 짓는다는 언어 표현에 있어 비슷하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만든다'가 보이는 형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짓는다'는 만드는 과정에서 정성이 들어간, 보이지 않는 간곡함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의 생명과도 같은 밥을 두고 만든다고 말하지 않음도 이러한 의미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찬은 만든다고 하지만 밥은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집 역시 만든다 하지 않고 짓는다 한다. 만드는 것과 짓는 것의 차이를 한동안 모르고 살았다. 두 단어의 정의를 내리느라 고민하다 나름 결론을 내렸다. 만든다는 것은 기술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짓는다는 것은 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 옷이나 집, 약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입고, 누군가가 살고, 누군가가 먹는가에 따라 짓는다는 말의 의미는 강화된다. 속도전을 치르는 현대사회에선 '만든다'란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옛 선조들의 말씀에는 짓는다는 표현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옷은 만든다는 단어보다 ‘짓다’라고 표현되어왔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브라더 재봉틀에 앉아 자식들 옷을 지어 입혔고 겨울이 되기 전 가족들 털옷을 만드느라 밤샘을 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밥도, 집도 모두 ‘짓는’ 대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무엇이든 잘 짓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 교회를 만든다? 최근 들어 교회 전문 컨설턴트들이 목회자와 장로간 갈등 해소,교회 이전 및 성전건축 계획 수립, 교회학교 마스터 플랜 작성 등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과거 개교회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이들 분야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 컨설턴트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교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술로 만들어 지는게 아니고 목회학으로 성취되는게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다. 겉은 화려하고 보기 좋으나 속은 별 볼 일 없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하는 속담이다. 이런 의미의 한자 고사성어는 화이부실(華而不實)인데 꽃 화(華)에 아니 불(不), 열매 실(實)자를 써서 꽃은 피었으나 열매가 없다는 뜻으로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내실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화이부실'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데, 진(晉)나라 대부였던 양처보(陽處父)는 유명세를 탄 정치인이었는데, 그가 묵었던 주막주인이 그의 명성을 흠모하여 그를 따라나서게 된다. 그러나 양처보를 따라다녀 보니 이름만 유명했지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여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유를 묻는 부인에게 그 주막집 주인은 “양처보라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 사이에 유명세를 탄 사람이지만, 실제로 같이 있어 보니 고집도 세고 남의 원망을 자주 사는 사람이라고, 화이부실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양처보는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름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다는 뜻이다.

빛좋은 개살구는 사회 구석 구석에 산재되어 있다 물론 교회도 그 범주안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개신교회의 위기설’의 이유들은 많다. 교세의 감소, 교회학교 교육의 위축, 교회의 분열, 대형교회든 작은 교회이든 성직자들의 타락, 교회의 불법과 비리, 그 속에서도 끊임없는 교권추구의 이전투구 현상, 존경을 상실한 목사들, 권위만 앞세우는 당회, 세속주의 빠진 교인들 등등,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들은 ‘이것이 교회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요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빛좋은 개살구들이 너무 많다. 모두가 너무 고단하게 사는 것 같다. 3만불 시대에 돌입했다고 떠들지만 네식구로 구성된 가정이라면 가장의 연봉이 일억 오천만원은 되어야 하는데, 내 주변엔 일년에 천오백만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허다하고 그 이하인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대한민국이 3만불 시대라면 누군가가 내 것을 가져 갔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부익부빈익빈이 심각하단 생각이 든다. 내가 일년에 몇개씩 집을 짓는걸 보며 굉장한 수입이 있을 거라 믿는 모양인데, 3만불은 커녕 만불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수입이야 5만불이 될지 모르지만 생활 수준은 만불 이상은 절대 아니다. 노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체질적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삼가하고 있기에 남들이 볼 땐 구차하게 산다고 할 것이다.  

건축 관계로 알게되어 수년째 거래하는 건축 자재상 사장의 말이 차라리 요즘은 노동자의 수입이 많을 거라고 투덜대는게 허풍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매일 노동하는 사람들이 실속이 있다며 외상이 밀리고 물품비용을 떼이기라도 하면 치명적이라며 하소연하는 걸 듣다보니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뭔가 수익이 있으니 계속하는줄 알지만 나는 이 일이 아니었어도 무슨 일이라도 계속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자멸할 가능성이 많은 성격이기에 일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어 선택한 것이 수목을 가꾸는 것이고, 정원을 꾸미다 보니 건축에 뛰어 들었을뿐이다. 오늘도 후배 부부가 내가 만든 정원을 견학하기 위해 내 집을 다녀 갔다. 

연못을 만들고 테라스를 만들어 달라는 부문을 받았지만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완주군 이서면까지 가서 알바를 하지만 수입의 거의 90%를 인부들의 묷으로 돌려주고 있다. 일감이 줄고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 안했기에 인부들 수입에 많은 지장이 있을 거란 생각에 평소의 인건비보다 거의 50%를 더 지불하기에 그만큼 내 묷이 줄어 들었지만 개구리 점프할 날만 고대하고 있는 중이다.

어찌보면 나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른다. 3만불을 바라보는 시대에 난 만불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냥 만족하며 갈려고 한다. 빛좋은 개살구 소릴 들을 땐 듣더라도 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고 내 또래들이 모두 백수 노릇을 하는데 이만하면 성공한셈이다. 

청양고추와 오이고추 열개, 오이와 춧호박 등을 하우스 안에 심었다. 아직 노지에 심으면 위험하지만 비닐하우스가 있는게 큰 자산이다. 대야장에 들려 '명자' 꽃 몇그루를 구입했다. 꽃잎이 너무 붉어 별로이지만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어 조금 비싸지만 큰 맘을 먹고 구입했다. 이제 내 정원은 나무들로 꽉차 버려 다른 작물을 심을 여유가 없다. 

여기 저기에 꽃씨를 심어 놓았기에 왠만한 사람은 접근 불가를 강요하고 있다. 나도 어디에 무슨 꽃씨를 심었는지 헷갈릴 정도이지만 11월까지는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크다. 이젠 하우스 안에 들어 갈 땐 내복을 벗어야 할 것 같다. 하우스안은 통상 10도 이상은 더 덥지만 내 보물창고이고 고양이들의 안식처이기에 범접할 수 없는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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