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밖 나서면 저승

정삼열 | 2024.04.05 08:55
일년 24절기 중의 다섯 번째 절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청명(淸明)이 어제였고 오늘은 찬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寒食)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고 한다.   

이를 ‘사화(賜火)’라 하고, 수령들은 한식 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 한다. 속담에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는 말이 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을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 난다는 뜻으로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도 있다. 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임으로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 한식(寒食)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전통적인 4대 명절이었다. 중국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을 본따왔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진(晉) 나라에 개자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공자 중이가 제후위에 오르기 전부터 충실하게 따랐다. 중이가 훗날 진나라 제후가 되어 문공이 되었는데,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추모하는 데서 비롯됐다.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일만큼 헌신하며 망명 중인 문공을 구했지만, 문공은 왕이 된 뒤 그에게 아무런 벼슬도 내리지 않았다. 

분노한 개자추는 산으로 들어가 버렸고, 문공이 뒤늦게 후회하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산불을 놓아 유인했지만 끝내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이런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식의 기원이라 한다.  

대체로 한식과 청명은 양력 4월 5~6일쯤 하루 사이로 든다. 6년에 한번씩 겹치기도 하지만 대게는 청명 다음날이 한식이다. 여기에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란 말이 나왔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도긴개긴”과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가 있다. 모두 별 차이가 없음을 나타낼 때 쓰이는 속담들이다. 

청명에 죽는 것과 한식날 죽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고 의미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문밖 나서면 저승이라는 속담도 있다. 나는 이 말들을 묶어 우리 조상들의 사생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순서로 말하면 응당 생사관이겠지만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남은 문제는 죽음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바야흐로 100세 장수 시대다. ‘축복이 되느냐 재앙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한 때 열풍을 타던 참살이(Wellbeing)가 이제는 참죽음(Welldying)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성찰하는 삶의 출발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물질을 쫓는 삶을 살 것인지, 끊임없이 물질에 종속되는 삶을 경계하며 주체적이며 본질적인 삶을 살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명제다. 

'요수불이(夭壽不貳)'란 말이 있다. 단명(短命)하거나 장수(長壽)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나이가 들었다고 더 많이 깨닫는 것도 아니고 늙도록 살았다고 복 받은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본성을 알지 못하면 부질없는 길이일 뿐이다. 길면 100년 남짓 살다가 누구나 어느 날 홀연 대문 밖을 나서듯 죽음이라는 피안의 언덕길을 휘그적 휘그적 걸어 넘어갈 것이다. 그 때 살아 생전에 조금더 인정을 베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걸 후회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식(寒食)..... 오늘이 한식이니 굳이 따스한 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들녁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기에 나온 말이겠지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식탐이 사라져 굶는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지금 대한민국 교회들도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교회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시내 곳곳엔 벚꽃이 만개하여 혼자 보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집집마다 하얀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운치를 더한다. 개나리와 수선화도 담장마다에서 수줍은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한다. 작은 마당안에 꽃들이 가득하다. 외모로 보면 도저히 꽃과 매치가 안되는 사람같지만 꽃을 가꾸는 정성으로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동안 알바를 하면서 몸은 피곤하지만 알타리 무우와 열무를 심고 해바라기와 백일홍도 심었다. 비닐 멀칭을 했던 비닐 안에서 자라는 감자를 꺼내 주었다. 얼마나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보기가 좋다. 토란도 새싹이 나시 시작했다. 잡초만 나는게 아니다. 나는 토란을 먹는 건 질색이지만 관상수 역할을 해주기에 매년 심게 된다. 장마철 연꽃잎만한 아파리 위에 청개구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상상하다 보면 시골생활이 그리 적막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가진다.

아직은 내 정원이 황토 색체가 듬성 듬성 남아 있지만 조만간 초록으로 변할 것이다. 꼭 잔디뿐만 아니라 잡초도 한묷하겠지만 그간 심어 놓은 나무들이 새싹을 내면 이내 초록 세상으로 변할게 확실하다. 여기에 꽃이 앞다투어 피어 난다면 내 삶의 의욕은 더 커질 것이다. 어차피 밖에 나가 보았자 "대문밖 나서면 저승이라"는데 내 안에 천당을 만들면 그만이다.

김제에서 고구마 감자 농사를 짓는 분이 입맛없을 때 먹으라고 여러 상자를 가져다 주었다. 6만평의 밭에 일년에 수천 상자를 수확하는 대농이기에 아직도 저온 보관창고에 많은 량이 보관되어 있는가 본데 올해 감자 가격이 세계 최고라는데 제대로 로또를 맞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부들과 누이에게 한상자씩 전달하고 두상자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꼬불쳐 두었다. 

해마다 고구마와 감자를 얻어 먹지만 올핸 농산물 가격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그나마 어쩌다이겠지만 보관한 감자 고구마로 인해 상당한 이익을 남긴 친구가 자랑스럽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올핸 감자를 꽤나 심었기에 열상자쯤 수확할텐데 내가 풍년이면 틀림없이 가격이 폭락할게 뻔하다. 옥수수도 그럴 것이고 상추도 조만간 폭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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