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장미 찔레꽃

정삼열 | 2024.04.04 10:52
24절기 중의 다섯 번째 절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청명(淸明)이다. '청명'이라는 말은 봄이 짙어지며 하늘이 맑아시는 시절이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기원전 475~221)에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언급된 이래,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여러 문헌에 청명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고 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을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 난다는 뜻으로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도 있다. 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임으로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 

예로부터 청명에서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3후로 나눈다. 1후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했다. 이날은 농가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 둑 다지기, 채소 파종 등 농사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명을 전후로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고 하며 담근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곡우 무렵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하였다.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하는 데,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 들이다. 

청명이지만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비소식이 없어 일을 잡았는데 오후들어 이슬비가 내려 철근작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일찍 귀가했다. 완주군 이서면에 전원주택 단지가 형성되고 있는데 력신도시라 그런지 고급스런 집들이 많아 익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택들이 자웅을 겨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짬을 내어 산야에서 찔레꽃을 수집했다. 지천에 널린게 찔레꽃이고 정원수로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말하자면 조선장미꽃인데 내 집안에 심겨진다고 해서 흉이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꽤나 많은 량을 수집했다. 내일은 할미꽃이 있는지를 살펴볼 생각이다. 예전엔 무덤가에서 흔히 불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할미꽃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휘귀종이 되어 버렸다.

집에 돌아와 짤래꽃을 어느 곳에 심을지를 고민하는데 몇몇 친구들이 진해 군향제를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내 약올리지만 벚꽃이야 익산도 진해 못지 않다. 

나는 절정에 이른 벚꽃과 목련에 시선이 꼿치는게 아니라 빈 나뭇가지에는 표피를 찢고 터져 나오느라 여린 싹들이 돋아 나오고, 산수유나무에도 그 거품 같은 노오란 꽃들이 조용히 피어날 준비를 끝내었고, 동백나무도 이제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는 듯 산고의 고통을 이기느라 무진장 애를 쓰고 있는 장면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오랜 기다림 끝에 변신을 하는 그 꽃들은 절대 서두름이 없다. 갑짜기 꽃망울을 터트린게 아니다. 긴 겨울을 이겨낸 인고의 산물인 것이다. 나도 그 자연을 통해 인생을 반추하는 법을 깨달았다. 처음 이곳에 와서는 급하게 달리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정지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속도를 되찾은 듯하다. 

하지만 도시의 속도감과는 여전히 다르다.  때때로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기도 하니 단순히 '느리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제서야 조금씩 시차에 적응하고 있다. 처음엔 모든걸 잊기 위한 탈출구를 찾았지만 이제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촌스러움과 遭遇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느껴질 정도가 되었으니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버텨낸 시간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일말의 자신감이 교차한다.  

그렇다고 고통스럽게 이겨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아직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지난 몇 해 동안 그러했듯 조금씩 배워갈 것이다. 나는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었다. 더군다나 낯가림이 심해 사람을 사귀는 데에 있어선 거의 병적으로 거부 반응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한가지 일에 몰입하려 애를 썼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은 새로운 노동으로 채워나갔다. 출근과 퇴근이 따로 없는 삶은 자유롭지만 한동안 부자연스러웠다.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 후 주어진 '자유'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의 노인이 이해되었다. 

요즈음의 세태를 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말들이 있다. 더 높은 빌딩과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지만 성질은 더 급해지고 시야는 더 좁아졌다. 대체로 돈은 더 쓰지만 소소한 즐거움은 줄어들었고 오막살이에서 사각의 콘크리트 집으로 공간은 커졌지만 같이 생활하는 식구는 줄었다. 

일을 해도 끝이 없어 대충 넘겨도 시간은 늘 모자라며, 정보 통신의 발달로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줄었다. 과거보다 약은 더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지며 가진 것은 수량적으로 몇 배되었지만 그에 대한 가치는 줄었다. 

늘 그래왔지만 이런 비가 내리는 밤엔 처량맞은 생각에 잠긴다. 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백 미터 경주에서 가진 힘을 다 해 뛴 사람이 4등을 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요새는 누구나 제각기 단거리 선수가 되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고들 있다. 산다는 것은 곧 뛰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어디에다 채찍을 가하고 무엇을 뉘우쳐야 한다는 말인가.   

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뛰었던가.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잃을 것도 없는 공백한 두 손, 이것은 어쩌면 자유를 의미한 것이며 이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주는 의도가 아닐까.   

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관련은 없이 살고 있지만 훌쩍 두고 떠나는 연습을 하면서 살고 싶다. 가령 원고를 쓰다가도 어디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치면  그만 원고지를 덮어두고 그냥 빈손으로 불쑥 떠나와 버리고 만다. 

어느 날인가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뛰어나갔다가 돌아와 책상 위에 쓰다 만 편지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일이 있었다. 편질 두어 글자만 더 쓰고 봉투만 봉했더라면 한 가닥 글의 매듭이 지어졌을 원고를 그만큼에서 내동댕이쳐 놓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불혹을 넘어선 한 대학교수가 강단을 떠나 생전 해보지 않은 사업을 한다며 동분서주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두 손을 털털 털고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나의 미완성의 편지에 어미를 적어넣고 문장을 완성하면서 문득 그렇게 가버린 P교수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모두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 세상을 떠나려니 생각하면 금세 가슴 구석이 저미어 옴을 감지한다. 

오늘 하루동안 오간 카톡을 보면서 갑짜기 짜증이 밀려와 동기회 카톡에서 탈퇴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 동기회는 거의 뉴라이트들이 활개를 친다. "판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쪽으로 기우러지는듯 보인다" "국민의 힘 실패하면 이0명손에서 탄핵이 추진될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등등 입에 담기가 민망할 정도로 편협한 수준을 벗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모르고, 정말 하나님이 특정당이 이기면 기뻐하시고 지면 슬퍼하시는지를 알지 못한다. 왜 그런 저급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나는 강단에서 단 한번도 정치 이야기를 꺼내 본적이 없었다. 복음도 제대로 해석을 못하는 주제에 지금 한국적 상황이 정치적인 편향으로 볼 때 51:49인데 한쪽 편을 마귀처럼 취급하면서 어떻게 강단에서 안쫓겨나고 은퇴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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