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엔 쓸만한 식칼이 없다

정삼열 | 2024.04.03 10:23
나는 가능하면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 하고,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값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실속이 없을 때가 많다. 어떤 땐 왜 나만 손해를 보며 살아야 하는지 불만이 생길 때가 많다. 

"구두수선공의 아이들이 맨발로 다닌다(The cobbler’s children go barefoot)"는 말이 있지만 내가 여지껏 살아 오면서 정말 실속없는 일에 휘말려 고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땐 나도 남에게 손해 안보고 이용당하지 않으며 살고 싶을 때가 많다. 

이익이 없는 일엔 관여하지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작심해 놓고도 어느새 또 휘말려 허덕거릴 때가 많다. 흔히 의사가 감기라도 걸리면 환자들은 “의사선생님도 아파요?”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의사는 감기도 안걸리나?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그 방면에서는 제일 잘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처리할때는 할 수가 없거나, 잘 못하거나 또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들에 보통 사용하는 속담이다. 보통 남의 일은 잘 해결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말은 자기 일은 자기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쩜 나에게 해당하는 속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을 반드시 빌려야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누군가가 깎아 주어야 할 것인데 나를 돌아 보면 '제머릴 깍으려' 무모한 발상으로 살 때가 많았다. 그러니 제대로 인물이 만들어질리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차 안에 가위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백미러를 보면서 가위질을 해댄다. 이발소에 가본지가 20개월은 된 것 같다. 

서양속담에 '대장간엔 쓸만한 식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구비되어야 할 곳에 빠져있는 안일함을 빗댄 말이지만 누구에게도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앞으로는 식칼을 잘 구비한 대장장이가 되어 보려 노력하지만 남의 식칼은 잘도 갈아주면서 정작 내 것은 준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의 반복이 때로는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살 순 없을 거란 생각이 들면 지금까지 살아 온 것에 후회는 없다. 세상사는 인인성사(因人成事)이다. 남의 인연에 기대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 갈 순 없지 않은가? 다만 그런 것처럼 착각할 따름이다. 독불장군이란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나 가당한 말이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은 그 방면에서는 제일 잘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처리할때는 할 수가 없거나, 잘 못하거나 또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들에 보통 사용하는 속담이다.

이러한 예를 몇개 들어보면 의사들이 보통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병에 수술하기는 쉽지가 않은 경우, 또 무당이 굿을 잘하지만, 자신의 굿을 하지 못하는 것, 점쟁이들이 남의 운세를 잘 봐주지만, 자신의 운세에 적용은 못하는 것, 또, 교사들이 학생들을 일반적으로 잘 가르치지만, 자기 자식들에게는 과외를 별도 선생을 붙여 하는 예도 그러하다.

나는 지금까지 숱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의 어려운 사정을 잘도 이해하고 도와 주었지만 정작 내 문제를 가지고 누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간 수백명의 내담자(client)를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상담해 왔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데, 나는 스스로 머리를 깍아보려 몸부림을 치다 득병하고야 말았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해야 하는데, 온갖 세상의 짐을 홀로 진 사람처럼 힘들어 하면서도 안그런척하면서 살아 왔다. 선친께서는 생전에 나에게 두번의 집을 사주셨다. 나중에 목회 현장에서 은퇴하면 오갈데가 없을 거라며 교회처럼 인정머리가 없는 곳이 없는데, 미리 준비하라고 아파트를 장만할 돈을 주셨다. 

하지만 하필 그 때가 한창 예배당을 건축할 무렵이라 이 때를 위해 예비해 주신 거라 믿고 솔선수범하기로 했다. 또 한번은 생전에 사시던 이층집을 오남매 중에 주의 종이 되어 헌신한 걸 미덥게 여겨 남겨 주셨다. 이 또한 두딸을 결혼시키는데 요긴하게 사용했다. 남들이 보면 잘 사는줄 알지만 사실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교회 사택이 있으니 집 걱정할 일이 없고 은퇴가 보통 사람보다 긴 70세이니 다 늙어서 돈이 있어도 쓸 곳이 마땅치 않기에 준비같은 것은 불신앙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요즘 후배들을 만나면 절대 교회에 짐이되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고 일침을 가한다. 아무리 개척교회를 하더라도 하다못해 교단 년금이라도 들라고 강요한다. 국민연금도 꼬박 꼬박 들라고 독려한다. 

교회에 기댈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며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은 배신 행위라고 설파한다. 젊어서는 배고파도 살 수 있지만 늙으면 밥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믿음이란게 뭐냐?'고 따지듯 묻는다. 자식들에게 기대어 살고 교회에서 원로로 추대해주길 바라는 망상을 버라라고 충고한다.

나는 내 자력으로 삶을 지탱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찌라도 자식이나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짐이 되기 전 주의 나라에 가는게 소원이다. 살다보면 서로가 기대어 살아 가야하는 데, 우리 형제들은 서로가 무거운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들이 확고하다. 그런점에서 보면 각자의 머리를 깍으면서 용캐도 험한 세상을 견디어 온 것 같다. 

남에게 손벌리는 재주가 없기에 주제넘은 짓은 아예 하지 않아야 한다. 내 성격도 소심한 편이지만 그 중엔 내가 제일 개방적이고 모험적(?)인데, 비가 내려도 피하려 하지 않고 아파도 아픈 기색을 들어내지 않기에 속뜻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랑은 '나의 바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행복을 유지하는 조건은 '차이에 대한 존중',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의 길은 '진솔함'이라고 믿었기에 너의 희망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했다. 나는 귀촌 이후 먹는 것, 입는 것은 대충하기로 했다. 없으면 안되는 것외엔 일체 지출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가혹하지만 남에게는 할 수 있는한 너그럽게 베풀며 살기로 했다. 나는 '나의 바람'만을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성직은 '너의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다. 나는 젊어서는 '나의 바람'을 주장해 왔다. 내가 가장이기에 아내는 무조건 내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자식들도 '나의 바람'대로 살길 소원했다. 교회도 '나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었다. 

하지만 이젠 가능하면 '너의 희망'을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행여나라도 나를 위하여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대면 그 때가 은퇴의 시점이다. '너의 희망'을 읽지 못하기에 교회가 침체기에 빠져 들었다. '나의 바람'을 더이상 주장하면 교회는 미래가 없다. 중이 제 머리를 깍으려 하면 곤란해진다. 이젠 서로를 보듬아 안아야 희망이 보이게 된다.

교회는 절대 당신을 원로로 추대해 주고 싶어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추대를 받았다 해도 그건 교회의 본심이 아니다. 정말 원로에게 매달 지급하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최소한 짐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하루종일 비가 내려 잔디밭에 내려가지 못하고 오늘 열무를 심으려 땅을 파놓고 씨앗을 구입해 놓았는데 주말로 미루었다. 내일은 전주로 알바를 가야 하고 모래는 사전선거를 하려 작정했기에 주말쯤이 적당하단 생각에 해바라기 백일홍 등 꽃씨도 잘 보관해 놓았다. 이제 이 비가 그치면 벚꽃과 모란이 지면서 우리 정원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올해는 크게 기대하지 못하겠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숲이 만들어지고 원하는 사람은 내 집 안에 수목장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열흘안에 사역에 지친 동역자들을 불러 쌈 파티를 열어줄 걸 생각하면서 상추 등에게 일주일 정도 지나서 만개하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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