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정삼열 | 2024.03.21 11:48
한낮엔 완연한 봄이지만 아침 저녁으론 아직 쌀쌀한 기운이 그대로이다. 왜 봄을 여자의 마음이라고 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변덕이 너무 심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출근길에 보니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시내 곳곳에 벚꽃이 꽃을 피우려 끔틀거리고 있는데, 간밤에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에 맥도 못추고 꽃잎을 쏟아낸 모양이다.

하지만 공기가 확연히 봄을 말해주고 있다. 사과나무가 일주일 사이 움이 돋아나고 자두 복숭아 살구 보리수도 가냘픈 몸짓을 시작했다. 이내 봄내음이 가득할 것만 같다. 그러나 날이 풀렸다고 방심하면 큰 일이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식물들에게도 마찮가지이지만 노인네들도 봄에 뇌졸증 증세가 많아진다고 한다. 춘분 절기에 기온이 하강(下降) 함으로 노년인(老年人)들의 혈압(血压)이 상승되고 심장병(心脏病)과 심근경색(心肌梗塞)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이런 때일수록 조심을 해야 한다. 겨울 동안은 '교감신경'이 활발하게 작용해 매서운 추위에 적응했지만, 봄이나 여름이 되면 몸은 휴식 모드에 가깝게 되어, '부교감 신경' 이 활발하게 작용하게 된다. 

봄은 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이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정이 불안정하게 되고, 따라서 자율 신경이 불안정하게 되면, 호르몬 대사도 흐트러져 자칫 건강을 해치기 쉽다.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육체나 정신적인 면에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온갖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므로 아무리 날이 따스해지는 춘계(春季)지만 신체를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으며 너무 일찍 부터 가벼운 의복으로 갈아 입으면 않된다.

지인들은 나에게 절대로 5월달까진 내복을 벗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나는 인명은 재천인 데, 갈 사람은 가는 것이라며 염려 붙들어 매라고 장담하지만 건강 문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니 당뇨 혈압약을 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닌다.  

자연속에 묻혀 살다보니 깨달아지는 것이 많다. 자연도 사람과 같이, 좀  느긋한 것과 좀 서두르는 것들이 있나 보다. 서두르는 사람들을 위해 꽃들도 먼저 피는 것이 있다. 허나, 먼저 피는 꽃이나 늦게 피는 꽃이나 모두 열매를 맺는다. 사람들도 마찮가지인 것 같은 데, 좀 빨리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늦게 성취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젊어서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부터는 별볼일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중이다. 이 걸 대기만성이라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프다. 텃밭을 비닐 하우스 안에 만들었기에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여기에 있는 동안은 시간가는줄 모른다. 비닐 하우스의 열기때문인지 화원의 꽃들은 이미 만개해 버렸지만 아직 내 집 뜰안에서 꽃을 구경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올 해는 봄꽃을 많이 심으려 계획했고 실제로 나도 어디에 무엇을 심었는지를 모를 정도이지만 내가 심은 꽃들은 온상에서 키운 꽃보다 자연이 만들어 낸 꽃이 더 오래가듯 아름다우며 향기가 진할 걸로 예상하고 있다. 아마도 내 땅엔 겨울을 이긴 꽃들이 아직 땅속에 있지만 상당수는 새봄에 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수선화가 어느새 새싹이 돋아났다. 꽃잔디도 얼굴을 내밀고 있고, 살구 복숭아도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올해는 더 많이 번식할게다. 철쭉과 연산홍 그리고 백철 등도 개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금년 겨울을 이긴 홀리팜 가족들과 힘찬 도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꽃이 피기도 전인 데, 성질 급한 나비와 꿀벌이 날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바람은 부드러워졌고 기세등등하던 추위도 조금씩 겸손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꽁꽁 언 땅들이 이제 꽃들에게 자리를 부드럽게 열어주고 꽃들은 꽃술을 열 준비를 할 것이다. 아직은 아침 저녁으론 코끝이 찡한 3월이지만 마음은 이미 봄날을 향해 내달음치고 있다. 

또 한가지 자연속에서 살다보니 자연은 겸손하다는 걸 깨닫는다. 난 고갤 쳐드는 사람을 가장 경멸한다. 자고로, 자고(自高)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는 말을 골백번도 더 들었으면서도 성공 이후 교만하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고 깝족거리기도 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정말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우쭐대기도 했었다. 평생 갈 것처럼 우쭐대거나 작은 권력이랍시고 휘두르면 자신을 해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권력에 취해 사양길로 접어든 이들을 꾸짖는 격언은 고금동서에 많다. “으스대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하느니 권세란 한갓 봄밤의 꿈과 같다.” 일본 문학의 고전 ‘헤이케 이야기’ 첫머리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기에 교세가 작다고 의기소침(意氣銷沈)해질 필요가 없고 조금 크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해서는 안된다. 비굴해져서도 안되지만 목에 깁스를 하면 반드시 꺽이게 된다. 내가 지금껏 살아 오면서 단단한 이빨이 부러지는 건 수없이 보아 왔지만 부드러운 혀가 부러지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고로 인간은 일희일비(一喜一悲)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목회 현장에서도 개척이나 건축 한번 안해보고 양지만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관 인생을 논하지 않으려 마음먹었었다. 나도 부모님의 절대적인 성원이 있어 오늘이 있지만 가능하면 자립하려 무던 애를 썼다. 선친의 친구분들이 정진경목사님을 비롯 임영재목사님 등 기라성 같은 교단 인물이었지만 아들이 목사가 된 걸 아는 분들이 없을 정도로 홀로서기를 강요했다. 

당연지사인줄로 여겼다. 내가 지금까지 믿는바는 남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 놓으려 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선친의 후광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무임승차는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고 다짐했다. 남의 것을 꽁짜로 받아 먹으려는 거지 근성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립하는 것이고 자립을 해야 어르신이 되는 것이다.

노쇠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정신적으로 황패해지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노년의 위기를 일찍 맞느냐, 늦게 맞느냐 하는 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더 문제일거라고 콘웨이(Jim Conway)는 진술하고 있는 데, 물론 노년의 위기는 나이상의 문제보다는 마음의 자세가 더 문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노력해 왔으며, 일찍이 일어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었느냐에 따라서 노년기의 성패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노인네들이 모이는 곳을 가지 않는다. 나는 노인이 아니라는 항변일수도 있고, 할 일없는 노친네라는 소릴 듣고 싶지 않아서이다. 

대한민국은 '집가진 노인이 집없는 젊은이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 나라'라는 비아냥을 듣기 싫어 앞으로도 무임승차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에 방점을 찍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지금 이 곳이 최상의 장소는 아니다. 그렇게 많은 집을 지었으면서도 정작 내가 사는 집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끌탕을 한다. 보일러 시설도 없이 겨울을 났고 수도관이 녹슬어 흙탕물이 나오는 열악한 폐가 수준의 집에서 사는 걸 보며 그 많은 돈을 벌어 어디에 쓰려느냐며 수근거리는 소릴 듣고 있다.  

십몇년만에 신축주택으로 이사를 했지만 여기가 내 목표는 아니다. 앞으로 몇년안에 공원같은 정원을 만들어 내 손주들에게 쉼의 장소를 만들어 주고 떠나려 마음먹었고 일년에 몇번씩은 이곳에 모여 할아버지는 늙어서 죽은게 아니라 꿈을 이뤘기에 떠난 거란 걸 알게 하고픈 생각이 크다. 목표가 뚜렸하기에 갈 날이 아직은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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