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면 언젠간 열린다.

정삼열 | 2024.03.13 10:32
나이 80을 넘긴 자린고비 영감이 있었다. 그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는 걸 본 사람은 많지만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근검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다.

하도 인색하단 소문을 들은 지인이 '그렇게 돈을 아껴 뭐하려느냐'는 질문에 '이 다음에 늙으면 쓰려 한다'며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하더란다.

나이 80인데 다음에 늙어서 쓰려고 돈을 모은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왠만해야지, 요즘은 죽는 사람이 없다.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친동생이 "요즘은 장례식장에 노인네들은 없고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사고사가 아니면 죽을 생각을 안하는 모양이라며 볼멘 소릴 한다.

나 역시 미처 준비하지 못한 노후 문제로 고민을 하다 늦은감이 있지만 어떤 일이던 간에 수입 창출을 위해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말로는 농사를 짓겠다는 뚯을 피력했지만 농사에 대한 무경험과 실질 소득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건 상식에 속하기에 일찌감치 생계 수단에서 제외시켰다. 

그 다음으로 흔히 하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개인택시를 구입하여 운전기사로 살면 어떨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에 15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는 걸 잘 알기에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정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했고 유산으로 영업용 택시를 몇대 상속받았지만 배당금을 받아 본적이 없었기에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알고 있었고, 내 체력으론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일찌감치 포기라고 말았다.

사실인즉, 목회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반거충이였다. 가진 것으론 2~3년 정도면 당장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극한적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평온했었다. 일년 정도를 그렇게 허송세월로 보내면서도 주께서 나를 인도해 줄 거라는 믿음만큼은 어느 시절보다도 강열했고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를 부르며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수백편 동영상으로 보관되어 있는 내 지난날의 설교를 감상하면서 '사방팔방이 막힐 때 위를 바라 보라'는 말씀에 꼿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교만한 발상을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그리고 내 할일이 결정된다면 구체적으로 무슨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서원을 드렸다. 

혹자는, 그 10년 동안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이고 탄탄대로를 걸었을 거라고 상상을 할 수 있겠지만 자존감이 병적일 정도로 철저히 고집하는 성격이라 수많은 날들, 남모를 눈물을 흘렸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렙다 과부의 심정까지는 아니지만 내 자신이 처량하고 삶이 곤고하다는 생각에 걸핏하면 충청도 공주로 향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지만 조금은 숨돌릴만 하니 지나온 세월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은혜 아니면 설명하기가 어려운 세월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공사 현장에서 기둥 세우는 작업을 지휘하면서 건축일이 가장 익숙해진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칠십을 넘기고도 왕성하게 일하는 것이나 마치 천직처럼 흥미를 가지는 것도 내 전력으로 볼 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요즘 공사 현장에서 냉수에 밥을 말아 단숨에 들이키고 식사를 마친다. 김치 두쪽이면 족하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전에는 먹는 즐거움이 엄청 크다는 걸 느꼈지만 지금은 삶의 한 과정 정도라고 느끼기에 예전의 왕성한 식욕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냉수에 밥말아 먹으면 간편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고, 금방 부자가 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햇반 800원짜리 하나면 한끼로 족한데, 누군가 그렇게 절약해서 어디에 쓰려느냐 묻는다면 이 다음에 늙어서 쓰련다고 대답하려 마음먹었다. 그러다간 제명에 못간다며 잔소릴 늘어 놓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BBC 다큐멘터리 <행복>은 행복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감각적 경험에 따른 쾌락, 불쾌감(고통, 불안)의 부재, 그리고 만족감.(감각적 만족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만족감을 의미한다.)" 

이 요소들을 충족하려면 행복 호르몬 중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고 여러 개가 모두 함께 작용해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행복은 장기간에 걸친 평균 감정을 지칭하는 용어다. 가끔 불만족스럽다고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혹자는 이 정도의 소소한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행복'을 운운하느냐 하겠지만 그게 모여서 행복이 되는 거다.

기분이 좋다는 건 즉각적인 행복감이다. 떨어져 나온 옥수수 낟알과 흘러나온 와인 한 방울이 여전히 옥수수와 와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분이 계속 들쭉날쭉한다면 행복의 평균치가 낮아지니 평균치를 높일 수 있도록 행복 호르몬을 계속 방출시키는 게 좋다. 내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 나도 전엔 먹는 즐거움이 세상에서 제일 큰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진장 먹어 치웠다. 

마음놓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당시엔 흔했던 소고기 부페에 가서 1kg정도는 먹어야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지금은 고기 먹자는 사람 곁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식성이 변했지만 도대체 배가 고프질 않은 걸 보니 병이 아닌가 싶지만 다른 사람이 평생을 먹어야 할만큼 젊은 시절 다 먹었기에 지금 식탐이 줄어든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누구도 후회를 원하지 않지만 인생은 어떤 식이든 후회를 피해갈 수는 없다. 짬뽕과 짜장,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부터 하루에도 수없이 무수한 선택 앞에서 후회는 쌓이게 된다. 하지만 후회는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은 후회를 통해 인생은 변신의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후회란 사람들이 이미 결정을 내린 것 중 다시 원상태로 돌리고 싶은 것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 박탈감 등의 부정적 생각과 감정 상태로서 많은 사람이 피하고 싶은 정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 후회를 하게 될까?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일이 많을까, 아니면 뭔가 하고 나서 후회를 더 많이 할까? 미국 코넬대에서 이뤄진 조사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 모두에서 후회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저질러서 후회하는 일과 저지르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 중에 어떤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지를 알아본 결과, 60.5%가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답했다. 

즉 뭔가 하지 않아서 후회스러운 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반추하게 되는 거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지만 가능하면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꽃이 지고 나면 눈물이 난다`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짧은 시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빈틈이 존재한다. 

빈틈이 하나 씩 늘어가다 보니 걷잡을 수 없는 슬픔, 후회 등이 밀려오고 극단적으로 인생 낙오자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오점들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일에 치여 사는 고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 빈틈을 채우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 구멍들이 점점 커지고만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주변을 거닐면서, 산을 오르면서 보게 되는 꽃들이 소소한 희망을 심어준다고 믿고 있다. 반대로 꽃이 지게 되면 가슴 한 쪽이 미어지듯, 우리 삶 역시도 소소한 희망 하나를 잃을 때마다 슬픈 감정을 느낀다. 하긴 내가 세상을 살면서 한두번 후회했는가?  

朝三暮四란 고사성어가 있다. 내가 여지껏 살면서 조삼모사하는 사람을 수없이 만났다.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는 걸 모른척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잔머리 굴리는 사람이다.

朝三暮四는 중국 송나라때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니 화를 내고 ,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하니 좋아라 하더라는 고사성어이다. 키 작은 놈이 전장터에서 단검을 들고 설쳐대는 모습을 보며 난 그냥 원숭이 목회하려고 작정하며 전힁을 눈감아 버렸다.결국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한방에 나가 떨어지는 약체라는게 들어나는 순간 오히려 연민의 마음까지 들었다. 

난 행여라도 언젠가 만날 날이 온다면 한번 물어 볼 생각이다. "나라는 사람은 아침에 네개주면 정말 좋아하는줄로 알았느냐고" 난 朝三暮四이던 朝四暮三이던 간에 그걸 초월하며 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더티한 놈은 먹는걸 가지고 장난질하는 족속이다. 주께서 40일 금식을 마치신 후 극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고 temptation했던 사단의 치졸함이 한국교회 안에도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다. 냉수에 물말아 먹으려 작정하면 비굴해지지 않을 수가 있다.

어제부터 라마단(Ramadan)이 시작되었다. 성스러운 달의 이름이기도 한 라마단은 아라비아어로 ‘타오르는 더위’ 또는 ‘메마름’을 뜻하는 ‘아르 라마드(ar-ramad)’에서 유래했다. 라마단의 기본이 금식인 것에서 보듯, 이 이름의 의미는 아마도 물과 음식을 뜨겁게 갈구하는 욕망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달이 다시 찰 때까지 노인과 환자, 임산부나 수유중인 여인, 그리고 12세 이하 어린아이를 제외한 모든 건강한 성인은 매일 해가 뜨고 질 때까지는, 즉 낮 동안 먹거나, 마시거나, 또는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한다. 

여기서 낮이라 하는 것은 흰 실을 검은 실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건축하면서 무슬림 여럿을 알고 지내고 있는데, 라마단 기간동안 일하러 와서도 식사를 거르는데 해가지면 엄청 많이 먹는 걸 보았다. 그럴바에야 먹으면서 기도하지 저녁에 폭식하는게 이상하기만 하다. 라마단이 시작된 모양이다. 우즈백 카자흐스탄 등 무슬림 등을 대거 고용했더니 점심식사를 할 수 없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식사는 물론 간식이나 음료 등도 먹지 않는다. 심지어는 침도 삼켜서는 안된다는데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금식을 한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며, 이후 해가 지면 다시 음식물 섭취가 가능하다는데, 라마단은 많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중동에서 국가적인 행사나 다름없다. 

우리 인부들중 무슬림들에게 점심이나 간식 등을 섭취하지 않기에 일인당 삼만원씩 더 주었다. 건축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슬림 보호대책을 시행했다. 나도 커피를 숨어서 마실 정도로 저들의 프라이버쉬를 지켜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내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인부들은 저들 보는 앞에서 술담배를 금했고 음료수도 멀찍히 놓고 목이 마려운 사람은 무슬림들 곁에서 먹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조선족 현장소장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무슬림들을 타박하지만 윤리나 법을 떠나 종교문제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국만리에 와서도 자신들의 신앙심을 지키겠다는 뜻을 일단 존중해 주기로 했다. 힘드면 충분히 쉬라고 권면하고 공사장 전체의 템포를 라마단 기간까지는 무슬림이 있는한 늦추려 마음먹었다. 한 때는 사순절 기간동안만이라도 금식하던 전통이 사라지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기독교 신자보단 무슬림들이 훨씬 진지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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