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만에 냉방 출애굽기

정삼열 | 2024.02.08 08:10
내 아우는 아파트 생활을 하는데 아파트는 위 아래집에서 난방을 하기에 이웃을 잘 만나면 난방비가 절약된다고 좋아라 하지만 허허벌판인 이 곳은 기댈 곳이 있을리 만무하기에 난방비가 여간 부담이 아니다. 

좀 따뜻하게 지내려면 한달에 기름 값이 30~40만원은 들기에 그냥 전기에 의존하며 겨울을 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보일러를 아예 고치질 않았다. 

거의 거실이나 부억을 들어가 보지 않아 살림이 엉망진창이다. 새벽에 나갔다가 어두운 밤에 집에 돌아오니 살림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다. 지난 겨울엔 어쩌다 거실에 있을 때나 서재에 있을 땐 작은 전기 난로 하나를 옆에 끼고 있어 그런대로 견딜만했는데 이젠 나이를 멋은 탓인지 이러단 사고가 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고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건 절약하더라도 房에 보일러를 틀지 않는 어리석음은 피해야겠다고 큰 마음을 먹고 아직은 최종 못적지가 아니지만 일단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고 보일러를 십년만에 작동시켰다. 따뜻한 물이 나오니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절약하자고 십년동안 냉방에서 살았는지 후회가 밀려 왔지만 앞으로 이주 안에 보일러를 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45평이 넘는 집에 변변한 살림이 없기에 썰렁하기는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아직은 내 원래의 목표는 아니지만 언제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숲속집을 지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공원처럼 만들어 내 사후라도 내 자식들이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일년에 몇번씩이라도 찾아와 쉬고 갈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고 오래전에 작정했었다.

아내와 큰 딸 가족이 설명절을 맞이하여 굳이 세배를 올리겠다고 오늘 출발한다는 통보를 받고 만류하지 않았다. 2시에 출발하면 틀림없이 늦은 밤에 도착할 것이고, 하룻밤 자고 귀성하려면 고속도로에서 몇시간을 허비할지 끔찍한 생각이 들지만 내가 소싯적 부모님을 명절에 찾아뵈으려 열일곱 시간동안 운전한 경험도 있거니와 부모를 뵈올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생각에 세뱃돈을 준비했다.

나 역시 명절 당일날 충청도 공주 선영으로 부모님을 뵈으려 갈 예정이다. 엎드려 혼자 지꺼리며 푸념 내지는 후회의 눈물을 쏟아내고 오겠지만 부모는 그런 존재이고 자식들 역시 언제나 부모에 대한 죄스런 마음을 가지고 살 존재들이다. 내 생애에 세번의 위기를 넘겼다. 뇌졸증, 담낭수술. 그리고 작년에 방광암 수술까지 위기를 많이 맞이했지만 난 그 때마다 부모님 묘역에 가서 슬퍼하곤 했었다. 부모님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주는 힘이되곤 했다.  

소한 대한이 지났고 입춘도 지났기에 사실상 겨울이 끝난 거로 생각되지만 이 때가 더욱 겨울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매일 저녁 냉골인 서재에서 보내는 서너 시간은 시간가는줄 모르고 지냈지만 이젠 그럴 염려는 사라졌다. 영하 10를 넘기는 한밤중에도 서재에 앉아 오래된 책을 꺼내 독서 삼매경(讀書三昧境)에 빠져 보기도 했었다. 

아예 커피포트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 향에 취해 보기도 했었다. 이젠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커피 한 잔을 가지고 창가로 간다. 지난 초겨울에 심은 남천나무 빨간 열매 사이에 서리가 내려 참 보기 좋다. 빨간색과 흰색의 조화가 경이로울 정도로 기분을 엎그레이드 시켜 준다. 

나는 연극 영화나 음악회 같은 곳을 별로 가 본 기억이 없다. 시내에 나부낀 '노래인생 50년' 효콘서트에 가자고 꼬드기는 친구가 있다. 입장권이 10만원씩이나 하는가 본데 그 돈이면 남천나무 50그루는 살 수 있는 돈인데 차라리 인터넷 동영상으로 '기슴아프게'를 듣는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이방인(異邦人)이며 몰상식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운드가 없고 동적이지 않을 거라고 폄하(貶下)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설명할 땐 입에 거품을 문다. 자연에도 소리가 있다. 속삭임이 있고 대화가 존재한다. 

자연을 찾는다는 것은 고요 속으로 나를 보내는 일이다. 그 속으로 드는 순간 귀청을 때리던 온갖 소음은 지워져버리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서걱대는 소리만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는 시끄럽지 않다. 무심한 현대인들은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변화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뭐가 그리 바쁜지 앞만 보고 걸음을 내딛는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으면서 산 얘기, 나무 얘기, 꽃 얘기는 일체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산은 그저 눈요깃거리고 무료함을 달래는 곳일 뿐이다. 때론 웃으면서 또 때론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 옆으로는 늘 그랬듯이 자연의 속삭임이 가득하다. 

설 명절이 시작되니 동네엔 낯선 차들이 들어와 골목마다 주차 전쟁이다. 지난 가을 추석 명절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늘 공동묘지와 같던 동네에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오니 온동네가 술렁거린다. 

객지에 나가 제법 성공했는지 제네시스도 보이고 체어맨도 보인다. 집집마다 명태 전을 만드는지 기름 냄세가 진동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온다니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한 모습인데, 아무래도 우리집에도 백결선생처럼 거문고라도 뜯어야 할 것 같다. 기껏해야 2~3일만 지나면 썰물처럼 한꺼번에 방문 차량이 빠져 나가고 다시 적막강산이 될텐데 불편한 거야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다. 어차피 충남 공주에 있는 선영에 성묘하러 갈 생각이기에 까치설날을 지킬 수 밖에 없다. 

나는 명절이 되면, 선물꾸러미를 받아도 고마운줄 모르는 그 흔한 선물, 다 먹지 못할 선물 보따리를 실고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찾아 다니며 나눠 주었다. 내 생각과 비슷한 친구도 여럿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눔이 있는 까치 설날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즐거움을 함께하는 풍토는 요원한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교의 성직자는 교단에서 정해주는 보수를 받고 일한다. 오직 하나. 기독교만 능력껏이다. 말하자면 돈놓고 돈먹기다. 억울하면 교회부흥시키란다. 그러니 기독교의 미래는 없다. 큰교회는 작은 교회 교인들을 빼앗아 대부분 부흥시켰다. 아니라고 하는 놈이 있다면 내가 평생 사부님으로 모시겠다. 

농촌교회에서 작은 교회에서 몰려 온 교인들로 배부른 교회가 된 것이다. 잘사는 놈은 배에 기름끼가 너무 끼어 헬스장이나 골프장을 좇아다니며 살뺄려고 죽을 지경이고, 없는 것들은 뼈가 빠져 죽을 지경이다. 있는 것들은 "세계는 내교구"라는 웨슬레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뻔질나게 해외를 드나들며 골프로 소일거리를 찾는다. 

이번 명절에 업체로 부터 꽤나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내 집엔 하나도 가져 오질 않았다. 커피외엔 인부들에게 모두 나눠 주었다. 명절은 나눔의 계절이다. 떡국 한그릇도 힘겨워하는 이웃들이 있다면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지금쯤 딸애가 천안쯤 지날 시간이다. 예상 도착시간이 8시 30분이라는데 배고프시면 먼저 식사를 하시라지만 좁은 공간에서 몸부림칠 손자 손녀들을 생각하면 이틀 정도는 굶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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