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정삼열 | 2024.01.18 09:48
흔히 예절이라고 하면,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극존칭어를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떠올린다. 

그러나 본래 예절이란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바탕을 말하는 것이다. 무조건 남에게 깍듯히 하는 것만이 예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품위를 지켜 나가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를 예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이 상당히 친절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앞에 문 열고 들어가는 깡패 같은 아이가 별 생각 없이 다음 사람이 들어 오도록 문을 잡고 있어 주기도 하고, 누구나 일단 미소를 머금고 얘기를 시작 한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우리같으면 남이 들어 갈 떄까지 문을 잡아주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한다.

나는 동방예의지국 사람이란 자부심과 함께 '서양 사람들은 친절하기만 했지 나를 정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면, 친절하고 예의 바른 것은 곧 정(情)이어야 하는가? 물론 아니다. 한국에 정은 아직도 넘친다. 동네 설렁탕 집 아줌마를 조금만 알게 되어도, 안부도 묻고 국물도 더 준다. 

어린 시절 동창들을 근 40년 만에 만나면 옛 시절 그랬던 것처럼 정겹다. 그러면, 예절은 어떠한가? 친한 사람끼린 예절이 없는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paradox (역설) 중 하나다. 정은 그렇게 깊고 만연하나, 그 것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끼리 만의 것이고, 객관적인 예절을 따져 보면 사회 전체에 무례가 만연한다. 

정은 정이고, 예의는 예의다. 한국에는 아직도 정은 있으나, 예절은 부족하다. 예절이란 윗사람에게 대하는 태도쯤으로 인식한다. 요즘 들어 퍼뜩 느낀 것이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라고 칭찬하는 말 속엔 무질서, 수준미달 같은 뜻이 포함돼 있다. 

‘역동’은 대개 개발도상국에 붙는 수식어다. 동남아 중국 중남미 국가처럼 한참 성장하는 국가에. ‘국제사회에 손 안 벌리고 쑥쑥 커가는 모습이 기특하니 조금 모자라고 천박한 구석이 있어도 봐주자’는 시선이 깔려 있다.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에는 그런 말을 안 붙인다. 그럴 단계도 지났지만 사회 구성원이 한결같이 남을 배려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 가면 사회가 평온하고 안정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우리 사회는 남을 배려하는 의식부재가 만연되어 가고 있다. 자기 외에는 부모도 형제도 몰라보는 살벌한 시대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한마디로 눈치를 안보는 세태이다. 나는 15년, 혹은 30년, 늘 같은 그 자리에서 존재하면서 충분하게 추억을 생산하는 사람들과 장소들을 만나면 참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곳이 문구점이든 자장면집이든, 오래된 서점이든 한곳에 마음을 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한번도 객지를 떠돌지 않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남다르게 본다.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을 사는 소박함이 고맙다. 더 크고 싶고 더 넓은 꿈 누리가 그리웠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안분지족’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더 멋져 보인다.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나누고 살면서 때로는 그들의 삶으로 타인들을 치유해내는 사람들이 좋다. 얼마나 치유가 많이 필요하고도 부족한지 세상에 넘쳐나는 말들이 무슨 무슨 “힐링” 그리고 “치유”와 같은 말들이다. 힐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면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삶이 더 소중함을 순수한 경험으로 만난다. 

세상에는 누구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내 친구중에 돈은 많이 벌어 놓아 노후 걱정은 없는 데 자식때문에 고민하는 걸 자주 본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한지 모르겠다. 

나는 자식들 때문에 고민하거나 아파해 본적이 없는 걸 감사한다. 아마도 노년에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립하는 자식들만 봐도 저절로 배가 부른 느낌이다. 

이빨이 강한 라이온과 같은 짐승은 뿔이 없다. 뿔이 있는 소와 같은 짐승은 이빨과 발톱이 없다. 오늘 내가 가지는 것이 뿔인지 이빨인지 알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남과 달리 가진 것들 덕분에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환한 빛이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그리고 고마운 것 한가지는 어떤 시점이 되면 우리는 단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행복해 하는 순간이 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다녀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그 당시 함께 작당하던 악동들이 이제는 初老가 되어 백발이 성성하고 이빨 한두개씩 안빠진 녀석들이 없을 정도로 세월이 참 무상하다. 

기장측 목사가 되었던 한녀석은 나이 50이 되기전 교회 분쟁에 휘말려 몇년간 고생하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은행원이 되었던 친구도 한국은행 과장으로 재직하다 은퇴했고 그 후 증권에 종사하다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가 보다. 중학교 교장으로 있는 친구도 정년 퇴임했고, 낙하산을 타고 한전에 들어갔던 친구도 은퇴하여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3군 사관학교에 들어갔던 친구도 중령으로 전역하여 보험 세일즈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 안늙을줄 알았던 녀석들을 만나면 피차에 '왜 이렇게 파삭 늙었냐'고 놀리며 이영감, 김영감 등 노인네라고 부른다. 겨우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 키우느라 집한채 정도가 전 재산인 데, 요즘 혼사를 앞두고 있어 아들가진 녀석들은 자식놈 집마련해 주느라 은행 융자를 신청했다며 끌탕이다. 그래도 며느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것만 본다. 그래서 간혹 친구나 연인이나 혹은 가족이라도 섭섭하고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섭섭할게 무엇인가?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누굴 원망할 이유가 없다. 요즘 업체를 바꾼 문제로 갈등이 남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그 원인  제공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삶이란 이슬처럼 금방 사라지고, 저 광활한 우주의 한 점 티끌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그 무엇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서 말인즉 타인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그저 사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한 길이다. 나는 세상에 짧다는 것들 중에 부모님의 수명처럼 짧은게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86세, 어머니가 79세를 사셨기에 그 당시로는 장수하신게 틀림없지만 지금도 가장 아쉬운게 조금 더 '내가 철이 빨리 들었었더라면'하는 생각과 세월이 한참 지났음에도 그리움이 더해 간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달콤하게 잠에 푹 빠져서 살아갈 동안 우리 부모님들은 ‘베갯머리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를 상상해본다. 

자신의 안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가족과 자식들 때문에 겪어야 하는 근심이었을 것이다. 왠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게 일상화된 분들이셨다. 이를 악물고 사셨기에 이빨이 성성한 사람들이 드물었다. 요즘은 노인네들도 임플런트를 하여 이빨빠진 사람이 드물지만 당시엔 야매도 돈이 없어 틀니도 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나의 조부도 충청도 공주 산골짜기에서 배가 아프면 소다를 먹는 것으로 처방을 끝냈다. 

그래서 아프면 교회로 안수 기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음을 기억하고 있다. 조금만 일찍 철이 들었어도 휄체어를 태워서라도 그 흔한 동남아라도 한번 모시고 나갔을텐데 이젠 그 기회마저 사라져 늘 불효란 레떼루를 붙히고 살아갈 내 운명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곳 시골은 오나 가나 무덤이다. 좋은 자린 죽은 사람들이 모두 선점해 버렸다. 나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무덤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언제 출생하여 언제 졸업했는지가 궁금하여 비석 뒷쪽의 이력서를 읽는다. 아마도 살아 있을 땐 혈기방장하여 거침없이 살았을테지만 죽으니 모두가 허사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저럴 운명이란 생각이 들면 숙연해진다.

비가 예보되어 있어 인부들에게 하루 휴식을 주고 늦장을 부리며 집에서 뭉기적거렸다. 친구가 돼지 머리를 삶는데 와서 장작불을 지펴 달란 부탁에 흔쾌히 수락하고 노가다 10년만에 불장난엔 도가 튼 걸 인정하는 녀석이 기특해 보였다. 돼지 머리를 삶아 머릿고기로 만들 모양인데 돼지 머릿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입도 대질 않았다.

거의 100% 보살네 집에서 고사를 지냈거나 굿을 하고 보내 온 돼지 머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가끔 이 녀석이 전달하는 고기는 거의 버리거나 개나 고양이에게 줘 버리는데 요즘 굿하는 사람이 많은지 냉장고마다 돼지고기가 넘쳐 난다. 시국이 어려우니 굿이라도 해야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는 몰라도 한번 굿하는데 가장 저렴한 것이 500만원 정도고 천 삼천 일원원짜리 굿도 있다는데 점쟁이 무당에겐 불황이 없는 것 같아 씁쓰레한 생각이 든다.

실내 인테리어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일주일 24품 정도가 소요되는데 내 사정을 감안하여 이번 주말까지 끝내겠고 작정하고 애쓰는 모습이 무척 보기가 좋았다. 내일부턴 물받이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고 도배 장판 타이루 싱크대 등이 인테리어 작업이 끝나길 대기하고 있다. 모든게 순조롭지만 즉각 결제를 못하는 내 주머니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내 전 생애를 통들어 한번도 돈에 자유로웠던 때가 없었던 걸 감안하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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