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은 마음공부 하는 날’

정삼열 | 2024.01.17 09:29
격의(隔意)란 "서로 거리를 두고 터놓지 않는 속마음. 또는 그 거리감"인데 나는 성격적인 탓도 있겠지만 속마음까지 모두를 오픈시키려면 몇년이나 걸릴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많은 사람을 알고 사귀어 왔지만 내 마음을 송두리쨰 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말하자면 격의(隔意)없는 사람이 별로 없었단 말이다.   

나는 소심하면서도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과격하진 않지만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여지껏 마음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긴 불확성이 충만한 곳이긴 하지만 남의 눈치를 안보고 이중적 태도로 상대방을 기만하는 이 지긋 지긋한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어 이곳을 택했다.  

이곳의 생활. 내 생전 이런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몸서리가 쳐진다. 사실 목회자 생활이 고달프다고 하지만 정신적 고뇌는 있을런지 모르지만 솔찌기 목사란 직업처럼 편한 직업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으며 경제적으론 넉넉하진 않지만 초창기 선배들에 비하면 몸으로 때우는 고생은 거의 없단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막노동판에서 한시간만 일하면 모두 거품을 물고 쓸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게 사는 사람일 수록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시골에 살다보니 일단 사람 틈바구니 속에서 갈등을 빗는 일이 현저히 살아졌다는 것이 좋았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오늘부터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했고 창호와 샤쉬 작업도 시작했다. 그간 십여년 동안 거래했던 업자들을 대폭 물갈이를 했다. 신축공사가 시작되기 전 현장소장이 은연중 내 마음을 업자에게 전달한 모양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오인하여 납품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것에서 부터 공사를 지연시키는 버르장머리 등 한번쯤은 멀리하고픈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속마음을 알고 있는 현장소장은 업자들에게 귀띰을 한 모양인데, 혹자는 '사장님과 나는 격의(隔意)없는 사이'라고 말하여 사흘후면 화가 풀릴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격의(隔意)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격식은 지켜져야 한다. 친하다고 무례하면 안된다. 내 전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친분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사람이 살면서 늘 진담만 하면서 살아갈 수만은 없지만 농담을 해놓고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았는지 혹은 오해를 사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의 사이는 절대 마음공부가 잘된 사이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내 실수일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격의(隔意)가 없어서 탈이다. 속에 담아 두어야 할 말을 너무 쉽게 발설해 버리고 후회를 한다. 몇번쯤 가슴에서 걸러내야 할 걸 생각없이 쏟아내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는 지인은 많지만 친구는 거의 없다. 그래서 외로움을 탈 때가 종종있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살면서 왠만큼만 욕심을 채우면 고독해지거나 외로워 하지 않을텐데, 너무 많이 채우려하니 점점 고독해진다. 어차피 공사판의 생리에 대하여 환멸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대고 싶은 곳은 아니기에 속마음을 들어내진 않겠지만 적당히 감추어지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감추기를 힘쓰셨다. 주님의 탄생은 화려하고 유력한 여인에게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다. 비천한 여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아무도 기대할 수 없는 여인의 몸에 자신을 감추셨다. 

주님이 태어나신 동네는 베들레헴이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흠모하는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베들레헴은 작은 고을이다.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을 촌사람이라고 했다. 대단한 인물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또한 성장하신 곳도 나사렛이라는 동네였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말할 만큼 대단한 동네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활동 무대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주로 갈릴리였다. 주님은 드러내길 꺼려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신 후 자신이 그 병을 고쳐 주었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턱하셨다. 문둥병을 고쳐주신 후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막1:43-44)"라며 부탁하셨다.  

마가는 그때의 모습을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막1:45)고 증거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왕을 삼으려고 했다. 그때도 예수님은 그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셨다.(요6:15)  

우리는 자신을 알리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을 때 불안해한다. 사람들의 평판을 자기 존재 가치와 연결시키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을 드러내기 원한다. 성취도 드러내길 원한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일을 드러내실 때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섬김을 위해,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을 함께 나누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대게는 자기 과시에 혈안이 되기에 경계를 해야 한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도 2~3일은 더 겨울비가 내릴 모양이다.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내일은 현장에 나가지 않고 소장과 함께 경암동 추억의 철길을 걸어 볼지, 아님 서천 작은 바닷가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어볼까를 생각해 본다. 겨울비치곤 꽤나 많이 내린다. 오늘밤 내리는 비는 사나운 비는 아니지만 주적 주적 보슬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내리면 사람은 상념에 잠긴다. 비오는 날에는 그리 똑똑한 사람도 그리 어리석은 사람도 아름다운 여자도 추한 여자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 어수룩하게, 어수룩한 사람이 똑똑하게, 아름다운 여자가 추하게. 추한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비오는 날에 서로 속이면서 서로 속는 날이다. 

‘비오는 날’하면 생각나는 것을 물으면 대개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만화책 보기’, ‘지지직 자작거리는 프라이팬 위에서 익은 부침개 먹기’, ‘막걸리 마시며 시 읊조리기’, ‘친구들과 고스톱 치기’,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클래식 음악 듣기’, ‘친구와 뜰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녹차 마시기’등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어렸을 땐 비오는 날을 '공치는 날’이라고 했다. 그 뜻을 물으면 대게는 들어보았다, 알고 있다는 반응과 함께 그 뜻이 ‘손해 보는 날’, ‘허탕 치는 날’, ‘먹거리나 돈을 벌 수 없는 날’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이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란 말은 원래 ‘비오는 날은 공(空)의 진리를 궁구하고 다스리는 날’이라는 뜻이며, 쉽게 풀이하면 ‘비오는 날은 마음공부 하는 날’ 이라는 뜻이다.

목수팀은 비와 상관없이 작업을 할 것이지만 우리 직원들은 그간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못했기에 하루쯤 휴식을 줄 생각이다. 비닐 하우스 안의 잡풀을 모두 수거했다. 구획을 나눠 무엇을 심을지를 고민하고 있고 하우스 안에 수도를 설치했다. 제대로 농사를 지어 볼 생각이다. 밖은 영하의 날씨임에도 하우스 안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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