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의 재롱만으로 30년을 살고 싶은가?

정삼열 | 2024.01.05 10:04
또 한놈이 세상을 떠났다. 작년에도 절친 중 두명이 세상을 하직했는데 몇일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이 심근경색으로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얼마전 내가 병상에 있을 떄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며 제발 몸을 돌보라고 잔소릴 늘어 놓더니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나이에도 헬스 클럽을 다니며 철근을 씹어 먹을 것만 같았던 강인함은 어딜 갔는가? 일주일엔 한번씩은 필드에 나가고 동남아로  뻔질나게 골프 여행을 다니며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았는데 예고없이 다가온 죽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오늘 리무진을 타고 말았다. 

차용증을 받지 않고 돈을 빌려 준 친구들이 더 죽을 맛인가 본데 난 달포전에 금전 관계를 청산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조의금을 전달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그날'이 있지만 그 걸 준비해 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문제만큼은 반드시 예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여호와이레가 준비되는 건 아니다. 

독자 이삭을 칼로 토막내어 제단불로 사를 결단을 보일 때 수풀에 걸린 양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지 아무 일도 안하면서 여호와이레만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잘 아는 목사님 중 한분은 젊어서 부터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 아니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어 아내는 식사 때가 되면 허겁지겁 목사님 식사를 준비하러 귀가 한다. 

자기 손으로 라면 하나를 끓여 먹지 못할 정도이다. 하지만 젊은 아내와 결혼했지만 늙은 아내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내 지론은, '쌀독에서 인심나는 건' 사실이지만 아내의 치마폭이 그리 넓은게 아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치마자락으로 모든걸 감쌀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손주들의 재롱만으로 30년을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섯살만 넘기면 지들끼리 놀려하지 늙고 냄세나는 할아버지를 가까히 하겠는가? 그걸 섭섭해 하는 늙은이들의 문제이지 손주들의 탓이 아니다. 그 나이엔 자기 또래하고 놀아야지 왜 할아버지에게 재롱을 떨어 주어야 하는가? 

이미 현업에서 물러나 쉬고 있는 퇴직자라면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은 ‘방콕’이다. 온종일 방에만 콕 들어앉아 있으면 삼식이가 되면서 빠르게 늙어간다. 노후 생활자금이 부족하면 재취업에 나서는 게 좋다. 퇴직 후 집에서 그냥 놀고 있으면 돈이 더 든다. 뭘 하더라도 자기 지갑을 열어야 하는 게 퇴직 후 백수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인간수명 연장과 고령화로 삶과 죽음의 형태가 달라졌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거의 20%를 상회하여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00세 넘은 노인의 장수 비결은 더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이제는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애매모호하다. 최소한 90세는 넘겨야 호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참으로 무지막하게 오래사는 시대이다.

나는 젊은날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런 나를 나 자신의 신으로 추대했으며, 내가 벌이는 하찮은 짓거리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모두 착각이었다. 나는 질서를 어지럽혔고, 쾌락을 쫓아 터무니없는 규칙을 만들어 선포했으며, 기존의 규칙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 위해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화려한 포장으로 그 이름을 감쌌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참회라는 심정으로 죽어라 일을 한다. 일을 만든다. 왜 돈도 안되는 일을 자꾸만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안하면 뭘하고 사느냐고 묻는다. 아무 것도 안하며 사는 생활은 끔직하기만 하다. 그래서 죽기 사흘전까진 뭐라도 할 생각이다. 늙었지만 낡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내 일은 물론 남의 일도 도맡아 해주고 있다. 

자신은 젊어서 사업을 하며 꽤나 돈을 많이 벌어 본 사람을 잘 알고 있는데, 술과 노름과 여자에 빠져 오늘날 이 꼴이 되었다면서 이젠 돈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처지가 야속하단 말을 계속한다.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그 때 조금만 절제했더라면 오늘날 이 꼴은 아니었을 거라며 이 동네에서 내 술 안먹어 본 사람없고 내 밥 안먹어 본 사람이 없는 데, 모두가 외면한다며 세상 인심을 탄식한다.

세상 탓을 하며, 남의 탓을 하며, 시절 탓을 하며, 엉뚱한 밖의 여건이나 환경을 억지춘향식으로 끄집어내어 그럴듯한 이유나 핑계를 대면서, 이토록 멍청하게 살아온 한 평생이거늘, 해답은 커녕 그 비슷한 공식조차 발견치 못하여 안달하던 긴 삶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회전하면서 새삼 서글퍼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상당히 억울한 모양이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벌써 여러번 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가룟 유다는 배신자의 대명사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대의 배신자를 꼽는다면 단연 가룟 유다일 것이다. 그가 배신을 하고 받은 돈은 고작 은 30닢이었고, 나중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목매달아 자살하고 말았다. 오늘날의 사회현실은 거짓과 속임수 위선이 난무하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있다. 결국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내 진정을 보이지 말고 혼자 벽을 쌓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공공연할 정도이다. 

성공하려면, 또는 손해 보지 않으려면 그 무엇도 믿지 말라, 그래서 마침내 자신까지도 믿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다. 남을 믿지 못하는 건 내 진정성이 부족하거나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욕하고 비난하는 건 내가 그보다 못하다는 열등감과 자괴심에서 비롯된 초조가 빚어내는 지극히 어린행위이다.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여긴다면 대상이 무엇이건, 무슨 시비를 걸어오건 굳이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일에 대거리나 하고 있을 만큼 시간이 그리 한가롭지도 않을 것이다.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 지백의 복수를 하려는 예양이 말하기를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단장을 한다"고 말했다. 의리와 신의를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여자가 사랑받는 것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남자는 누군가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것을 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것을 주는 여자처럼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남자는 수치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라 하였고 가보리오는 “남자는 운명을 만들고, 여자는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라 하였다. 모두가 공감이 가는 말이다. 주님이 날 알아주시고 날 인정해 주시는게 첫째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성원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힘이들 때면 이런 불신앙(?)적인 생각이 가끔들기도 한다. 전적으로 그 말에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나도 사람때문에 실망을 한 적이 종종있었다. 상점에 가보면 진열대의 상품 앞에 하나하나 품질의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가격도 제각각으로 표시해두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동차마다 붙어 있는 에너지효율 소비등급처럼 이 사람이 얼마나 먹고, 얼마나 일을 해내는지 그런 딱지만이라도 이마든 뺨이든 어디라도 붙여주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를 것이고 내 자신이 그런 평판을 만들어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지붕 트러스를 사고없이 모두 올렸다. 동네 길을 크레인으로 막았기에 행여 민원이 발생할까봐 전전긍긍했지만 불평없이 우회하여 주어 고맙기도 하고 공정에 대하여 가능하면 서두르지 않지만 오늘같은 날은 시간을 다투며 공사를 진행했다. 인부들이 일하는 동안 나무를 식재하며 정원을 꾸미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집만 잘 짓는줄 알았더니 나무박사라고 호칭해 주어 얼굴이 붉어졌다.

내일도 크레인이 도로를 점거하고 지붕 징크판넬과 벽채를 붙히는 힘든 작업이 예정되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다. 내일의 공정이 끝나면 큰 자재 반입이 없고 실내 공사이기에 한시름 놓겠지만 지금부터가 더 쿤 문제일 수도 있고 자금이 많이 소요된다. 준비된 거 없이 강행하는 일이라 시름이 깊어가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평온하다. 무슨 뱃짱인지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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