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날 밤의 서정

정삼열 | 2023.12.31 11:06
예전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 보다 더 강했던 것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시절엔 문풍지가 떨리는 소릴 들으며 겨울을 났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화롯불을 방안에 디밀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만 하여도 지금보다는 기온이 훨씬 낮았을테고, 워낙 난방시설이 부족해 추위를 느꼈을 것이다.

난방이라고는 가정에서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고 난 후에 남는 숯불과 재를 화로에 담아 두고 하루 종일 방안이나 마루의 온기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화롯불을 뒤적여서 공기가 들어가면 빨리 연소가 되어 온기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므로 불기를 유지하려고 재를 꼭꼭 덮어두고 지냈다. 

때로는 고구마, 감자, 밤을 구워 먹기도 하였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이라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이 시간은 매우 즐거운 간식 타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인두를 화로에 달구어서 한복에 동전 붙일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언젠가 지인의 집에 화로가 있는 걸 목격하고 선뜻 줄 것같지 않아 적절한 때 훔치려 마음먹었지만 예전엔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그 흔하던 화로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도 화로 한두개는 있었는데 모두 엿바꿔 먹고 고물상이 수집하여 용광로 속으로 들어 갔을 것이다. 놋화로, 놋요강이야말로 겨울철 필수품이었는데 이젠 골통품이 되고 말았다. 사라진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양력이긴 하지만 섣달 그믐날 밤을 맞이 하니 진한 추억이 여운으로 남는다.  

비가 내린 끝자락이라 그런지 상당히 춥다. 21세기를 살고있지만 우리집은 20세기 말쯤 지어진 집이라 난방 시설이 제대로 된 집이 아니고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보일러를 켜지 않고 냉방에서 열적외선 난로 하나 틀면서 사는 꼬락서니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미련하게 사는 놈이라는 질타를 많이 받고 있지만 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보낸다.   

낮에는 볼 일을 보러 다니느라 추운줄 모르고 지내지만 밤이 되면 책상에 두세 시간은 앉아 있으려니 괴롭기만 하다. 대신 열적외선 난로가 있어 얼굴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발이 시려워 실내용 털신을 구입했다. 안죽으려 용쓰는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침대엔 전기장판이 있어 예전 사람들 보단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온통 시내가 망년회(忘年會)로 이름있는 음식점들은 초만원이다. 조그만한 음식점들은 파리를 날리고 대형 음식점들은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이다. 빈익빈 부익부 시대이다. 하긴 교회도 마찮가지이니 더 말해서 무슨 소용이랴! 대형교회들은 돈이 많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이고 작은 교회들은 년말이 되면 더 고달퍼진다.   

큰 교회 목회자들은 연말이 되면 각종 선물이 답지하여 현금이 아니면 고마운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내 경험상으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하나라도 더 못주어서 안타깝고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감격해 한다.   

사회가 온통 망년회(忘年會) 분위기다. 도대체 뭘 잊자는 건지, 아니면 왜 망년회를 해야 하는지, 이미 그 의미와 목적은 한잔 술 속에 사라져 버리고 대부분 부어라 마셔라의 처절한 반복이 진행된다. 

망년회(忘年會)...많은 사람들이 망년회를 통해 지난 한해의 안 좋은 사건들을 잊으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안 좋은 일들을 잊으려고 자리를 만들면서 힘들게 잊었던 일들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는 점이다.   

힘들게 잊은 일 다시 꺼내놓고 잊으려 하니 더 힘들어진다. 나야말로 2023년의 망년회를 진짜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망년회를 한다고 그게 잊혀질 일인가? 아마도 내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한 해였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점점 더 선명해지는 아픈 세월의 흔적을 언제쯤이면 고운 추억으로 간직할 날이 올까? 아마도 그런 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아 고민이다.   

주님은 "If your brother repents, forgive him"이라고 명령하셨는데, 난 아직 이런 저런 핑게를 대며 차가운 감옥에 스스로 갇혀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젠 모든걸 내려 놓으면 그만인데.... 정말 힘겨운 나날들이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려 한다. 주가조작을 저지르고 명품백을 받은 김여사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수만명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거리로 나섰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 아니라 송김영신(送金迎新)의 수많은 촛불이 타오르며 결국 정권이 위험수위를 넘다들고 있다. '정말 이게 나라인가?'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니 미래가 참담하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위기감에 잠을 못이룰 정도이다. 내년은 더 어려울 전망이라니 암담하지만 그래도 가는 해는 어김없이 가야하고 오는 해는 희망속에 맞이하고 싶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보니 올 한해동안 주님의 은혜로 지내온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전문 업자도 아니면서 일곱번째 집을 짓고있다. 몸이 부실하여 당장 요양하지 않으면 안될 위기감을 가지고 낙향했지만 지금까지 용캐도 견디어 왔다. 올핸 방광암으로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런대로 전위된 흔적없이 잘 치료를 받고 있고, 숙원했던 가족들과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등 유럽여행도 다녀왔고 동역자들과 베트남 태국여행도 다녀왔다. 지금까지 지내온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송구영신’이란 말은 옛날 중국 관가(官家)에서 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하는 신·구관 이·취임식 때 사용하던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음력 섣달그믐 밤에 신년의 운수대통을 기원하던 무속적인 민속행사에서 ‘송구영신’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점차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회에서도 12월 31일 자정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 기록에 의하면 송구영신 예배가 한국 교회에 처음 도입된 시기는 1887년 12월 31일로, 새문안교회와 정동감리교회가 연합예배를 드린 것이 최초였다. 장로교회에서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니 역사가 오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아칸소대학 심리학과 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거를 과거사로 잊어버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더 건강하다고 한다. 과거의 아픈 경험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거사를 잊어버린 사람들보다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현재진행형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신뢰도가 떨어지고 의사를 자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안 좋은 경험은 세월이 흐른 후 아픈 과거사로 기억되는데 이런 기억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면 시간상으론 현재에 있으면서도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역시절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신년 축복 안수로 새벽까지 교인들을 한사람씩 강단으로 초대하여 안수기도를 하며 한해의 고단함을 잊고 새술은 새부대에 담고 새 날을 맞이하도록 격려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리워진다. 

적어도 150명 정도와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며 함께 기도하고 새벽이면 함께 해장국을 나누면서 신년 하례식까지 마치고 피곤한 몸을 눕히던 그 시절이 그리워 진다. 

올 한해동안 정말 다사다난했다. 새해라고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새 힘을 주시길 기도한다.오늘밤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고 싶지만 주변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아 볼 수도 없지만 컨디션이 별로이다. 내일 부터 큰 일을 앞두고 있기에 몸을 아껴야 한다는 핑게를 대고 담뇨를 뒤집어 쓰고 책상머리에 앉아 청승을 떤다.   

현재 짓고있는 집도 1월안에 완성해야겠고, 이제서야 허가가 나온 탓에 한가한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다. 작은 딸애가 서울은 날씨가 몸시 춥다며 한해의 마지막날 혼자있을 걸 생각하며 안부를 전한다. 왜 혼자라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난 어둑한 시간이 되면 정신이 더 맑아지며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뉴스를 시청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뻐진다.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흥밋거리를 찾기 위하여, 인터넷을 통해 여러 웹 사이트를 둘러보는 일은 기본이고, 밀린 성서일과와 시상이 떠오르면 기록하고 다듬는 일까지 오히려 더 분주해진다. 이제 몇시간 후면 2023년이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어제같은 오늘이겠지만 2024년이 다가 온다. 올 한해동안 정말 다사다난했다. 새해라고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새 힘을 주시길 기도한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걸 할 수 있다"는 성구로 한해를 맞이하고 싶다.

내일 정월 초하루날 오픈하는 식당이 없어 인부들을 굶겨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강행하기로 했다. 떡국을 파는 집을 찾아 보려 수소문중인데, 이번주 안에 기둥과 벽, 지붕까지 완성하고 다음주에 방통을 하려 작심했기에 이유불문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즈백 인부들은 좋아라 한다. 여기도 겨울철이긴 하지만 워낙 건축 경기가 안좋아 개점 휴업한 곳이 대부분이고 중견 기업들도 부도를 염려하는 실정이니 인부들 구하기가 수월해진 건 사실이다. 

이번주 안에 조경수는 거의 심었고 유실수도 구색을 맟추었지만 복숭아와 자두 등을 심고 남천 연산홍 회양목 화살나무 등 꽃나무도 주문해 놓았다. 청단풍과 배롱나무도 준비가 되어 있고 잔디와 꽃잔디도 공사 중 시간이 나는대로 심을 예정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 방안에 있어 보았자 오히려 더 힘들고 우울증만 생길뿐 아무런 유익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참 잘한 선택이라고 자위해 본다.

섣달그믐날에 잠을 자면 눈섭이 희어진다는 미신이 있지만 내일을 위해 보신각 타종하는 장면은 녹화된 화면으로 볼 생각이다. 겨울의 한복판으로 비장한 각오로 걸어 가기로 했다. 이번주가 제일 신나고 즐거운 한주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23년을 함께 하신 주님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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