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정삼열 | 2023.12.24 10:48
간밤에 또다시 폭설이 내렸다. 벌써 일주일 내내 밤에만 게릴라성 눈이 내리는데 당장 내일부터 신축공사를 시작하려는데 대략난감이다.

꼭두 새벽에 많은 눈이 내리고 빙판길이 예상되니 나들이를 삼가하라는 문자 메세지가 당도하면서 고민에 빠져 들었다. 밖을 내다보니 과연 오늘 주일예배를 드리러 갈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일단 왠만하면 교회에 가기로 결정하고 대신 시속 20키로로 군산까지 한시간 30분만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차량 시동을 걸어 놓았지만 일단 큰 길까지 나가보고 위험하다 판단되면 뒤돌아 서는 한이 있더라도 첫번 크리스마스 때 동방박사들의 정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에 주저 앉을 수는 없다는 오기같은게 작동되어 거북이 보다 더 느린 속도로 언덕위를 올라섰다. 

우리 동네는 들어오는 길이 두군데인데 모두 비탙진 언덕이 있어 큰 길은 눈이 녹았어도 일단 어귀까지 나오는 것이 만만치 않다. 한번 내렸다 하면 영상의 날씨로 바뀌어도 보통 몇일씩은 쌓인 눈이 녹질 않는데 일주일 내내 눈이 내려 거의 갇혀 지내온 것 같다. 당장 내일부턴 인부들을 동원하려면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자동차 도로로 들어서니 듬섬듬성 눈이 녹아 운전하는덴 지장이 없지만 최대한 저속으로 운전하여 한시간만에 교회에 도착했다. 겨울철에 눈이 내리는 건 당연지사이지만 이렇게 자주 내리니 이젠 지겹단 생각마저 들고 당장 내일부터 내가 살 집을 신축하는 디데이로 잡았는데 첫날부터 차질이 생길까봐 노심초사중이다. 

瑞雪이 내리면, 지금의 삶이 남보다 못한 것 같고 때론 풍요로운 것 같지만, 온 天地가 골고루 눈에 덮이기에 마치 삶과 죽음의 가치를 공평하게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고, 인간의 모든 죄악을 하얀 순결과 침묵의 힘으로 덮어버려 평온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한편, 人生旅程에도 계절이 바뀌듯이 겨울 끝자락에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이미 가슴속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오늘의 눈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폭설주의보가 발령된 탓인지 거리에는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고요하다. 도시는 휴식 중이다. 눈은 ‘풍년의 징조(豊年之兆)'라고 하고,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하얘지는 백은세계(白銀世界) 건곤일색(乾坤一色)이 된다하여 검은 겨울에 흰 눈이라는 뜻에서 현동소설(玄冬素雪)이라고도 한다. 하늘나라 선녀들이 꽃을 뿌려준다는 천녀산화(天女散花)라는 말도 있다. 

함박눈이 내리니 생애 처음 눈구경을 하는 탓인지 고양이들만 좋아라한다. 그렇게 좋나? 나 역시 눈을 좋아했지만 이젠 모든게 귀찮다. 특히나 이번주에 하필 눈이 내려 내 심사를 이렇게 흩트러 놓는가? 직원들에게 밤새 눈이 내린다면 순연시킬 거라고 통고했다. 일하는데도 지장이 있겠지만 일단 시내까지 나가는 건 큰 모험이기에 아무리 바뻐도 추위와 상관없이 눈내리는 날은 휴일로 정했다.

주변에선 서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하지만 그간 인부들을 너무 놀렸기에 시작을 안할 수 없는 형편이긴 하다. 여유란 말을 생각하면 ‘여유만만(餘裕滿滿)하다’, ‘여유작작(餘裕綽綽)하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여유가 있어 느긋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일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한다. 삶이 팍팍한 이유는 자율(自律)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족(自足)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간밤에도 눈이 많이 내려 백설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동네 어귀로 들어오던 차가 빙판에 미끌러졌는지 한동안 헛바퀴 도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잠잠해진다. 눈내린 이른 아침 뭐가 그리 급해 차를 가지고 나왔는지 모르지만 설령 빙판 길에 미끄러져도 이 동네에선 구난해줄 사람이 없을뿐더러 나와 볼 사람도 있지 않다. 몇일전 부터 눈이 내리자 동네 어르신들 콧배기도 볼 수가 없다. '고관절이 부러지면 최하 사망'이란 말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몸을 사린다. 

눈길에 미끄러져 거의 논바닥으로 떨어질 지경임에도 마땅히 구난해줄 방법이 없어 방관만 할 수 밖에 없었다. 폭설이 내려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덮이고 자동차 길도 미끄럼판이 되었는 데, 스노우 타이어를 끼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스노우 타이어를 너무 과신한다. 인생 길이 얼마나 미끄러운 줄 모르고 껍죽대다가 망하는 사람을 한두번 본게 아니다.  

나는 여유를 찾아 시골을 찾았다. 울산에서, 인천에서, 내 젊음의 열정을 쏟으면서 쫓기듯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이대로 계속 가면 죽을 것만 같았다. 허겁지겁, 아니 허둥지둥 사는 것에 대한 회의에 빠져 들었다. 스스로 자족(自足)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유를 잃고 살았었다. 

여유(餘裕)있는 사람은 넉넉하고 느긋하여 서두르지 않고, 독립체로 존속하기에 어떤 공간에서도 당당하다. 여유는 학습으로 얻는 품목이 아니다. 여유(餘裕)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한 박자 쉬면서 주변과 반대편을 살피며, 절제력으로 욕심을 조절할 때 생긴다. 거친돌을 조약돌로 다듬는 것은 부드러운 물결이고, 거친 자기를 다듬어서 미움보다 감성과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마음 여유(餘裕)다. 

여유(餘裕)는 낭비가 아니다. 여유는 성취를 돌아보고, 또 한 걸음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잠시의 여유도 없이 승승장구(乘勝長驅)라는 올무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란 바로 일상적인 생할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끝낸 후 또는 어떠한 기획한 것을 끝냈을때 우리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로움 또는  무엇을 해야할까를 생각하게하는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마음의 여유라고 정의내려본다. 

젊어서는 남과 경쟁하며 살았지만 이젠 내 자신과 경쟁하며 살아야 한다. 현저하게 나약해진 모습이 점점 익숙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유(餘裕)를 잃지 않으려 한다. ‘속도’가 빨라지면 ‘각도’가 줄어들어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속도를 줄이고 밀도를 늘려야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려면 곡선의 물음표를 던져 직선의 느낌표를 만나야 한다. 곡선의 ‘물음표’를 사랑해야 직선의 ‘느낌표’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실 나일먹어가면서 여유(餘裕)있는 삶을 소망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내 자신이 더 알고 있다. 흔히 '한물갔다'는 소릴 많이 한다. 이는 채소나 과일, 어물 따위가 한창 거두어지거나 쏟아져 나오는 제철이 지나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싱싱한 정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진다. 

즉 전성기를 지났는 뜻이다. 이런 소릴 들으면 기분이 좋을리 없건만 사실이 그런즉 어찌 할 수 있는가. 목적 없는 삶은 공허하지만, 목적만 남은 삶은 살벌하기만 하다. 험난한 경쟁의 바다를 지나 마침내 인생을 찬찬히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된 노년. 권위주의와 허세로 무장하는 대신 '내가 욕심내던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다. 

더 이상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살기로 했다. 공자는 인간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했지만 나이 예순을 넘어서도 남의 말소리가 귀에 거슬려 마음 상할 때가 많다. 듣기가 거북하면 못들은 척, 흘려버리면 그만인 일에 얼굴을 붉히고 억울하단다. 때론 분노와 울분을 토하며 곱씹어 생각한다. 보고도 못 본 척 가볍게 넘길 일에 과민하고 가슴앓이 하던 일들… 노인이면 노인다워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질 않은 모양이다.  

고전 인문학자 전호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책 <선배수업>에서 '삶이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삶의 무게가 늘어나는 건, 가진 게 늘어서가 아니라 잃어 버린 게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잃어 버린 게 많아서 초라해진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며 '성숙'을 기하는 것이 중년 이후 중요한 삶의 과제'라는 것이다.  

'여생(餘生)'....이 말이 '죽을 때까지 남은 생애'를 말한다면 대충이나마 그 끝을 짐작할 수가 있을게다. 10년, 혹 20년쯤의 자투리 시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아무 할 일없이 남겨진 시간으로 보낸다면 끔찍하기만 하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획책(?)한다. 남들이 보면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쓰고도 남은 시간으로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날마다 다짐한다. 

‘산다고 살고도 남은 인생’, 여생을 그렇게는 생각지 않는다. 무엇인가 쓰다 남은 군더더기가 여생의 여(餘)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여생의 여는 넉넉하고도 충족한 것이다. 풍요(豊饒)의 ‘요(饒)’와 뜻이 통하는 글자가 바로 여(餘)다. 모자람 없이 풍족한 것이 곧 여(餘)다. 여유(餘裕)의 ‘여’가 그걸 익히 보여주고 있다. 여유(餘裕)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한 박자 쉬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다. 이 날은 교회마다 떠들석했는데 예배당에 불켜진 곳을 찾는다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다. 교회에 사람이 없다. 아니, 교회를 찾는 사람이 없다. 이브날 동방박사를 만나고 성냥팔이 소녀를 보곤 했는데 이젠 굳게 닫힌 예배당 철문이 흉물스럽단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건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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