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보다는 '조금 덜'

정삼열 | 2023.12.19 09:38
인간은 자고로 기고만장(氣高萬丈)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흥미진진(興味津津)한 것들도 시들해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 

나는 몇년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절대 늙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영원한 젊음을 예찬했었다. 

그러나 나만 몰랐지, 눈으로 본 것은 머지않아 보았던 것이 되고 만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익산 배산공원에 모시고 가 다시 시소(seesaw)에 올라타 보았다. 새털보다 더 가벼워지신 아버지는 단 1초도 못견디고 허공에 뜨셨다. 내가 무거워졌다는 생각보단 아버지가 가벼워지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였다. 도무지 인간은 자랑할게 없다. 

나는 승용차 뒷 유리에 로타리, 라이온스클럽 맴버라는 표식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무슨 얼어죽을 사자클럽인가. 상위 10% 안에 든 지도층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어하는가 본 데, 물론 사회 봉사 활동도 많이 하겠지만 내 옹졸한 생각으로는 별로 달갑지가 않은게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더 겸허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 키다리는 더 큰 키다리를 만나면 마음이 위축이 된다. 반면, 난장이는 더 작은 난장이를 만나면 키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마음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못한 자들을 보면서 살 맛이 나기도 하고 자신보다 큰 자들을 보면서 살맛을 상실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는 자연속의 일부분이고 자연은 말없는 우리들의 질투하지 않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앞으로 나가고 또 성장하고자 하는 것들과 그 열망을 무엇으로 막을까! 그러나 조금만 돌아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퇴보’라는 말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일과 그렇게 획일적으로 살아가야 할 일이 아닌 면도 있다는 거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끄러움이 많은편이었다. 누가 본 사람이 없어도 부끄러운 짓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곤 했었다. 지금도 역시 마찮가지이다. 나는 가끔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하며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성격상 남앞에 나서길 망설이지만 사람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꽤나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믿고 있다. 

단지 '아, 쪽팔려' 이런 느낌을 넘어서서 내가 하는 행동이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다. 나는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했고 인격적으로나 도적적으로 완벽하게 산 건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은 갖추고 살아야겠다고 나 자신을 채근하며 살았다. 그리고 더이상은 나를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남들보다 실력은 없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지키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사람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물론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게 기본이 안 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기본적인 매너, 예의, 태도, 자세, 언어, 행동 등이 안 된 사람이 많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고 처음엔 손색없어 보이는 사람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아, 원래 기본이 안 된 사람이었구나”라고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에스라 9장에 보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나온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큰 덕목중에 하나이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그것은 동물과 다를바가 없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잠깐을 견디고 나면 모든것은 제자리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침묵하는 법을 터득했다. 

애당초 무엇에게든 사랑받을 자신 같은건 언제나 늘 없었다. 모든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속에서 더는 상처를 받고 싶지 않고, 더는 무엇을 믿고 싶지 않아서 우회하는 연습을 한다. '나만 빼고' 다들 쉽게 잘 살아가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힘을 느슨히 빼두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편이 있다면 좋을테지만 지금은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다는 것에 승복해야 할 때인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뿐 아니라 단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단점이나 결점이 드러나는 것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단점이나 결점이 없다는 것은 인간적 매력이 없다는 의미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불완전함에 있다는 역설로 볼 때 그렇다. 나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허물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헛점 투성이지만 나이가 나이인만큼 지금 실패하면 재기 불능이란 생각으로 노심초사하곤 한다. 세상에는 누구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평생 안늙을줄 알았던 친구 녀석들을 만나면 피차에 '왜 이렇게 파삭 늙었냐'고 놀리며 이영감, 김영감 등 노인네라고 부른다. 

겨우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 키우느라 집한채 정도가 전 재산인 데, 요즘 혼사를 앞두고 있어 아들가진 녀석들은 자식놈 집마련해 주느라 은행 융자를 신청했다며 끌탕이다. 그래도 며느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그럭저럭 한 세상 살다보니 여기까지 이르렀다. 

도덕경에는 비우는 것이 경쟁력이라며 몇 가지 비움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 마음에 와닿는 말은, 허심실복(虛心實腹)이란 말인 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근원은 욕심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또한 욕심이란 것이다. 그래서 성현들은 비움의 철학을 강조했고 스스로 실천을 하며 뭇 사람들의 본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비울 것도 많고 줄일 것도 많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늘 전쟁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조금 더' 보다는 '조금 덜'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게 현명한 일이다. 박제된 한마리의 생명없는 새처럼 먼지를 뒤집어 쓰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면서 보낸 나날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데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실존주의로 명성이 드높은 프랑스 출신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원문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사르트르와 같은 무신론자도 너와 나를 가르는 것,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주장, 나는 위에 있고 너는 아래에 있다는 태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교만을 지옥의 상태와 견줄 수 있다고 보았다는 말일 것이다. 

좋은집에서 살고싶고 고급차에 여유있는 삶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집의 가치와 자동차, 휴가 여행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욕설이 튀어 나오게 되고, 과속을 유발하는 자동차는 실용적인 이유뿐 아니라 비용을 따져도 말이 되지 않는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형과 매형이 운전면허 갱신 날짜가 다가 온 모양이다. 과거엔 10년짜리 면허증을 발급해 주었는데 이젠 2년에 한번씩 면허를 갱신하도록 법이 제정되었고 시력검사 등 신체검사는 기본이고 치매 검사도 받아야 한다며 투덜댄다. 80이 되어서도 운전대를 잡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특혜이고 65세쯤 부턴 1년에 한번 정도 정신질환이 없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교통사고의 50% 정도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으키니 당연한 일일 것이고, 내 경우만 보아도 한시간 이상 운전엔 무리라는 생각에 장거리 운전은 금기시하고 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본적이 몇년이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확실히 감각이 젊은이들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군목으로 근무할 땐 비포장 도로를 달려 익산까지 10시간 넘게 운전을 하곤 했지만 이젠 모두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더 겸허해져야 한다. 까불지 말아야 한다. 거의 일년만에 오남매가 모두 모였다. 아직도 믿겨지지 않지만 내가 벌써 칠순을 넘긴다는 것과 손아래 동생들도 환갑을 넘어 70을 향해 다가 서는 걸 애석해 하며 올망졸망하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깊은 회환의 시간을 가졌다. 단순한 해후인줄 알았는데 두툼한 봉투를 내밀며 백세 시대이니 30년은 더 건강하라고 덕담을 건낸다. 

봄에 인도로 가족여행을 하고 가을엔 북유럽을 가잖다. 여기서 더 늦추면 영영 기회가 없을 거로 생각이 든 모양인데 난 여행이라면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의욕은 앞서지만 몸이 과연 허락해 줄지가 미지수이다. 젊어서는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나들이를 못했는데 이젠 건강문제가 발목을 잡는 노친네들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낄낄대었다.

평화동 골목길에서 쌈치기 하던 이야기로 부터 기성회비를 못내어 학교에 가지 못했던 이야기 까지 다양한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겨울이면 문풍지 떨리는 소릴 들으며 방안에서도 하얀 입김을 품어내던 긴 겨울밤을 지새웠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용캐도 모두 긴 터널을 지나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 다시 만날 걸 약속하며 헤어졌지만 왠지 가슴 한구석이 텅빈 느낌을 받으며 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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