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너무 좋아하면 그 끝은 정말 고독하다.

정삼열 | 2023.12.18 09:42
한 낮은 견딜만 하지만 아침엔 정말 춥다. 특히 오늘같은 날은 그간 따스한 날이 계속되어서인지 더 춥게 느껴지고 내 생전에 다시 없을 것만 같은 살인적인 추위였다. 

방안의 온도는 영하까지는 아니지만 밖의 수은계는 영하 11도를 가르키고 있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긴 하지만 도로는 눈이 치워져 몇일만에 현장으로 출근을 준비하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강풍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는 됨직한데, 소변을 보면 5분이 안되어 얼음으로 변할 정도로 최강 추위였다. 벙거지 모자를 썼지만 몸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린다. 현장에 도착하여 인부들을 돌려 보낼까를 고민했지만 본인들이 자원하니 결단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모닥불을 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우리 인부들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잠시동안 몸을 녹일 순 있겠지만 일하는 인부들에겐 영하 20도의 추위와 맞짱을 뜨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런 날 외주 인부들은 추위로 인해 자동 휴일이 되었지만 애끗게 우리 인부들만 사지로 내몬 셈이다. 우즈백 인부는 자기 나라는 더 춥다며 애써 위로하지만 오늘 날씨는 거의 시베리아 수준이다.    

너무 추우니 서러움이 북받혀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왜 이 나이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겨울이 너무 힘들기만 하다.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지내온 것이 무모한 일이었지만 사실은 보일러를 돌릴 돈이 없다. 돈이 없는게 아니라 혼자 살면서 보일러를 돌리는 게 낭비인 것 같고 아직 견딜만 하다고 믿는데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사치스런 발상인 것 같아 미루고 있지만 정말 미련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전기장판도 침상에 들기 20분 전에 틀었다가 새벽 3시에 일어나면서 습관처럼 꺼버린다. 나도 한 때 사택에 살 땐 기름 아까운줄 모르고 뜨거운 물이 펑펑 쏱아지는 곳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사례비는 작았지만 이런 저런 혜택을 누리며 살았던 시절이 내 생애 가장 좋았던 봄날이었다. 물론 그 시절이 봄날이란 걸 알지 못하고 감사 부재로 살았으니 록독한 추위에 서러움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매일 별을 보고 출근했다가 별을 보며 돌아오니 내가봐도 정상이 아닌 건 틀림없다. 아무리 일이 급하다 하더라도 지병이 있는 사람이 몸관리를 이렇게 안하다간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어 일단 출근하여 인부들에게 일을지정해주고 차 속에 앉아 히타로 몸을 녹였다. 기름이 아까워 10분쯤 엔진을 가열시켰다가 끄기를 반복하면서 나 처럼 미련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육체로 하는 일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 두가지 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다. 더군다나 건축이나 농사일 모두가 나에겐 생소한 일이다. 설마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사현장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게 일이니 안할 순 없어 매달리다 보니 피곤이 누적되어 가는 것 같다. 가능하면 이번주 안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주 부턴 내가 살 집을 지어야 하니 하루도 허송세월을 보낼 수 없지만 주변인들이 극구 만류한다. 

어떻게 30일만에 집을 짓느냐는데, 소장도 오랫만에 집에 가려 비행기표를 티켙팅해 놓은 상태라 단 하루도 쉴 여유가 있지 못하다. 이런 날씨에 현장에 있단 소릴 듣고 지인들이 몰려와 이번주만큼은 공사를 중단하라고 닥달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보면서도 헛소릴 한다. 커피 한잔에 카이젤 수염이 멋있다며 설레반을 놓는데 난 나름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벙거지 모자를 방안에서도 벗지 않는 이유는 모자를 쓰면 체온을 1도 이상 올릴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공개되었고 카이젤 수염을 기르면 기분학상 약간 덜 춥다는 나름대로의 이론에 근거하여 게을리 했을뿐인데 공연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종종있다. 

지구 반대편에서의 나비의 날개짓도 나비효과를 말하는데 전혀 근거없는 일이 아닌데 수염에 대하여 난색을 표하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 19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지만 주일날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카이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80%는 반대할 거라고 믿지만 나는 20%를 더 존중하기로 했다. 누가의 복음에 보면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고 했는데, 억지라 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것이기에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무시하기로 했다. 내 편에 서지 않아도 좋다는 오기같은 것이 발동했다. 

특히 수염이 안나는 여자들이 더 반대가 극심하다. 시133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It is like precious oil poured on the head, running down on the beard, running down on Aaron's beard, down upon the collar of his robes.)”라는 말씀이 나온다. 

히브리 사람들은 빈약한 수염을 흉한 것으로 생각했고 길고 밑에까지 흘러내리는 수염을 아름다움과 위엄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수염은 사람의 명예와 연관되어 중요했으며 따라서 말로나 행동으로 그것을 욕되게 하는 것은 위엄을 깎아내리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오른손으로 그것을 붙잡고 입을 맞추는 것은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허락된 존경과 사랑의 표시였고 그래서 누구나 수염을 소중히 간직했다(시133:2). 

수염을 자르거나 깎는 것은 큰 슬픔을 의미했고(스9:3; 사15:2; 렘41:5; 48:37) 또 수염을 없애는 것은 불명예와 굴종을 뜻했으며 그래서 그것보다는 죽는 것을 택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은 아론의 수염 꽃(Aaron's beard flower)이라는데 어찌 성경도 안보는지 수염을 깍으라 하는가? 하긴 수염이 안나는 여자들의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지만 수염을 기르면 지저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추운날 면도하다 베이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꺼여! 

한해의 끝자락에 지난 날을 회상해 보니 참으로 기구했단 생각이 든다. 분양되지 않은 주택이 근본이겠지만 군산에서 시작된 엇갈림이 이후 연속되어 그간 세군데에서 보수없이 일을 한 꼴이 되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신체적으로도 위기를 맞이했던 일들이 추억의 주마등이 되어 뇌리를 스친다. 이번에도 건축 업자들 몇명을 멀리하기로 했다. 전화번호를 차단시켰더니 난리를 친다.

옛 어른들이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다'는 말을 자주했었는데 나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대가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 숱한 배신의 주인공은 대부분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사람에 대한 여러 선입견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곤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안경은 짙어지고 언제부턴가 자신이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  

법륜 스님은 상대방은 절대로 못 고치니 생긴 대로 살다 자멸하게 내버려두라는 냉정한 즉설을 남겼다. 물론 자신도 못 고친다고 말하면서 현실은 시궁창임을 강조했다. 즉, '옳지 않으니 바꾸겠다'는 생각은 본인에게 하나도 좋을 게 없다는 말이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사람에 대한 애증 관계를 피력하는 바울의 심정에 꼿혀 한동안 가슴앓이를 한적이 있었다.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자신의 심경을 밝힌 내용을 보면, 한때 사도 바울의 제자이자 선교사역의 동역자였던 데마(Demas)의 이름를 거론하며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적고 있는 내용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데마는 바울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골로새서(4:14)와 빌레몬서(1:24)의 문안 인사에 기록되어 있을만큼 애정을 쏟았던 인물이었는 데, 헬라어 명칭 ‘데마’는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는 주후 1세기 새로 설립된 아시아의 그리스도인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던 지도층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도 바울의 세계 선교 사역을 위한 신실한 조력자였고, 바울은 데마가 자신의 동역자로 하나님의 교회에 끝까지 남아있을 것으로 신뢰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배신해도 데마만큼은 절대 떠나지 않을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바울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제자 누가와 데마를 같은 지면에 두 번이나 기록한 것을 보면 바울이 자식처럼 여기며 말년에 위로를 받고 싶어했던 것이 분명하다.(골 1:14, 몬 1:25).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두번째로 투옥되어 있을 때 데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 그리고 인간적인 정분 모두를 버렸다. 늙고 병든 스승 사도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향했다(딤후 4:10).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떠났다고 한 것은 단순히 지역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인 변이까지를 동시에 말한다. 세상을 사랑한 데마는 오래 전부터 영적인 스승 사도 바울을 떠나고 싶었지만, 차마 제자로서 마지막 남은 양심과 의리 때문에 얼마간 멈칫하고 있었지만 드디어 스승 사도 바울의 죽음(순교)이 다가오자 데마는 즉시 결단을 내리고 세상을 향해 떠났다.   

세상 인심이란게 모두 그렇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어 늙으면 쇠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주후 34년 회심하고 68년 순교할 때까지 굶고 헐벗고 투옥되는 등 엄청난 고통을 당했던 바울의 노년은 더욱 쓸쓸하고 고독했다. 老사도 바울을 배반한 데마의 사악한 행동은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됐다.  

아직도 내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반면 몰인정하게 데살로니가로 떠난 사람도 있다. 난 모든걸 접기로 작정했기에 그들을 원망하거나 질타하려는게 아니다. 다만 기대감을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 사회는 연약한 스승이나 지도자를 함부로 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과감히 떠나는 경향이 많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만을 만나며 베푸는 기회주의자보다, 한번 맺은 의리를 끝까지 지키며 지조를 보수하는 우직한 인물이 오늘날 공동체에 필요하다. 사람 너무 좋아하면 그 끝은 정말 고독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다'는 말이 통용되는 이 사회가 두렵기만 하다. 그만큼 변화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겠지만 근본을 바꾸는 일은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누구를 변화시켜야갰다는 주제넘은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다. 다만 내가 참고 이해해 보려 노력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무진장 받았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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