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있는 사람끼리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봤자

정삼열 | 2023.12.11 10:57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베르 카뮈가 1957년 12월14일에 웁살라 대학에서 행한 강연의 첫 부분에서 "흥미(興味)위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설파한 이후 카뮈의 시대로부터 70여년이 다되는 오늘, 세상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곳이 되고 말았지만 그것이 '행인가, 불행인가?'를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삶을 표류시킬 때가 많다.  

삶이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세상은 술명하고 조촐한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산다 해도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은 마치 먼지처럼 덧쌓여 우리 마음의 안식을 방해한다. 

영문도 모른 채 토끼 뒤를 따라 질주하는 우화 속의 동물들처럼 우리는 갈 곳을 알지 못한 채 질주한다. 숨이 가쁘지만 멈추지도 못한다. 모두가 들떠 있다. 흥분상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오고가는 말들이 거칠기 이를 데 없다. 

말은 더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지 못한다. 막힌 것은 트고, 갈라진 것을 잇는 게 소통이라면 우리 시대는 불통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새상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바다에 이르지 못한 채 잦아드는 강물의 슬픔처럼, 상대의 가슴에까지 당도하지 못하는 말처럼 슬픈 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치명적인 위험은 설화(舌禍)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요즘 가능하면 한 사람을 피하여 의도적으로 그 치가 현장에 나타나면 다른 핑게를 대고 현장을 나설 때가 많다. 매일 내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는 단골손님(?)을 피하고 싶어서이다. 

요난히 수다가 많고 변덕이 심한 데,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두어 시간씩 찾아와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나서야 속이 후련하다며 사라지곤 한다. 내가 그 소릴 다 들어주기까지 시간적인 손해를 떠나 사고의 혼선이 생길 정도로 머리가 복잡해지고 실제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처음엔 체면치레로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나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피하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그 작자가 등장할 시간이 되면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다. 나도 힘들지만 왠만하면 찾아오는 사람 막지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걸 철칙으로 삼고 살지만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이고 일방적인가 하는 생각에 좀 멀리하려고 거리를 두었지만 그래도 눈치를 못채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보면 내가 더 한심하단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듣기 싫으면 정중히 사양하면 간단하지만 그럴 처지도 아니기에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선다. 일단 고리타분한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나중엔 타인이나 심지어 가족을 비난하는 이야기까지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데, 분석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거의가 불평불만 원망이 90% 이상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차게 되면 무엇보다도 우리 몸이 견디지를 못한다. 열이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이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잠을 이룰 수 없고, 안절 부절 못하고...... 가슴에 가득 차 있는 화, 분노, 적개심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죽이는 독소들이다. 이러한 독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우리 안에 차곡 차곡 쌓여가는데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주나라의 속담에 "여울 속의 고기까지 뚫어보는 것은 불길한 일이다. 남의 비밀까지 밝혀내는 재간에는 화가 미친다"는 말이 있다.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속담인 것 같다.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다양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남을 지배하거나 조종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고, 그런 만큼 소통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 

늘상 느끼는 감정이지만 소통이 안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 할 말만 있고 들을 것은 없다는 듯이 처신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다. 계몽된 사람은 '차이'를 오히려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낯섦은 편협한 자아를 허물고 더 큰 자아를 얻으라는 초대이니 말이다. 이것은 개인의 경우에도 해당하지만, 모듬살이의 현장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죄지은 것처럼 사람을 피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나에게 트라우마가 있다고 상처있는 사람끼리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방황을 선택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렵고 허튼 소리 않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줄 이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전혀 없다. 장례의 일은 커녕 한시간 후의 일도 장담할 수가 없다. 더불어 어우러져 살아 가는 세상, 무던하게 비바람에 닳아 모나지 않는 조약돌처럼 살고 싶지만 고요속의 폭풍은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나는 상당히 급한 성격이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이루기까지 내 자신을 엄청 학대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가 시골행을 결심하면서 제일 먼저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은, 남들과 경쟁하지 말자, 천천히 하자는 슬로건이었다. 

비록 변화를 따르지 못해서 낙오되었지만 내 방식대로 한번 살아보자는 오기같은 것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남들과 경쟁의식을 가지면서 동역자를 잃었다. 지금도 '수년내에 부흥케 하소서'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문을 '수년내에 잘 살게 하소서'라고 잘못 인용하는 분들이 있을테지만 나도 그 중의 한 부류였다. 

큰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큰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건강을 잃고나서야 천천히 가리라고 작정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슬로 운동은 모든 것을 달팽이 속도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병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빠름과 느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더욱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영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때로는 한 템포 늦추고 생각을 깊이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느끼면서, 열흘가는 꽃이 없는 걸 서글퍼하면서, 그렇게 살려 노력중이다. 결국 저렇게 피고 질텐 데, 아둥바둥하며 살아 온 시절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모든게 보인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멀쩡한 거 같아도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 같은 운명이란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황혼의 시간만큼은 항상 기우러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곤 했다. 집에 가봤자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고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질 않지만 그럼에도 황혼의 시간만큼은 혼자있는게 편하다. 

기껏해야 햇반을 뎁혀 3분 카레나 3분 짜장으로 덮밥을 만들어 먹는 수준이지만 어떤 진수성찬보다 더 미각을자극한다. 하루종일 노가다 현장에 있었으니 황혼의 시간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랫만에 비가 내리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비는 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지만 가슴이 시려오고 비라도 내리면 가슴이 먼저 어딘가를 향해서 젖어드는 느낌이 생긴다. 빈 하늘이 더 없이 크게 느껴지고, 바람 타고 흔들리는 갈대의 몸부림이 내 몸부림 같아 마음 속이 아려올지도 모른다. 

마음은 텅 비어 있고, 무념도 아닌 것이, 무상도 아닌 것이 흘러가는 시간앞에 지나가는 바람앞에 사정없이 흔들릴 것이다. 비울래야 쉬 비워지지 않고 채울래야 쉬 채워지지 않는, 늘 2% 부족한 그 무엇을 느끼며 시간 앞에 바람 앞에 기대고 싶어질게 뻔하다.  

나는 성격상 비를 참 좋아 한다. 하기야 비 건 눈이 건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면 나는 도대체 가만히 있질 못하고 주인 맞으러 달려 나가는 강아지 마냥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물론 갈만한 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방안에 갇혀 있는 것 자체가 구속당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시심(詩心)을 부르는 밤비가 내리고 제법 굵은 빗방울이 낙엽위에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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