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달(月)이 있으면 작은 달(月)도 있는 법

정삼열 | 2023.12.04 11:03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인생은 여정(旅程)이다. 목적지가 아니고)"라는 말을 남겼다.

내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여지껏 살아 본바로는 '인생 여정(旅程)은 연습이 없다'는 사실이었고, 용캐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욕심 많은 사람은 날마다 새 옷, 새 신발, 새 자동차 등등 '나'가 아닌 '타'에서 새로운 물질을 탐닉(耽溺)하며 무한한 慾心을 부리며 살아 간다. 

그러나 자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기 위한 사람이라면 '타'가 아닌 '나'로부터 새로운 것을 追求하고 뭔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 배움을 통해서 날마다 새로워지며 깨우침의 기쁨을 追求한다.  

나는 내세울 것도 보잘 것도 없는 전력이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며 용캐도 잘 살아온 나를 토닥이며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남은 생은 여행하듯 가볍고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곤 한다. 물론 실수투성이고, 후회스런 일들만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패배자로 살아 온 거라고 단정지으며 한숨이나 쉬며 절망감에 빠져 사는 것보단 남들이 인정해 주던 말던 스스로 위안을 삼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억지춘향식으로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살기로 했다.  

혹자는 당신이 박수(拍手)받을만한 삶을 살았냐고 시비를 걸어 올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안 알아주니 내 스스로 뻔뻔해지기로 작정했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내 생애에서 본인의 인생목표점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숙제를 다 할 생각은 없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매일 즐기다 때가 되어 하늘에서 부르면 그때 자연스럽게 가면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시험에 만점 맞을 필요는 없다. 다른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채점할 수는 없다. 그 인생에 대한 시험결과는 오직 내 스스로가 채점할 뿐이다. 평균 점수만 맞아도 인생사(人生史)는 우수하다. 한번뿐인 내 인생, 너무 타이트하게 살 필요 없다. 내 스스로 나에게 매일 칭찬하면서 살고, 나에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상주면서 박수쳐주면서 살면 된다. 

시인 천상병은 인생은 잠시 소풍 왔다 가는 거라 했지 않은가? 천상병시인의 말처럼 인생이란 즐거운 소풍 같은 것 아닌가? 즐겁게 놀러왔다가 즐겁게 놀고 가는 것 그게 인생 아닌가? 나이 들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적어지고 나를 찾는 사람도 줄어드니 서두를 것은 없지않은가? 사실 나이 들면서 가장 넉넉해지는 재산은 시간뿐이다. 

내주변에서 약속 시간을 잡으려하면 바쁘다는 이야길 꺼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하루에 성가실 정도로 많은 전화 통화를 받았지만 이젠 벨소릴 듣는 것도 뜸해졌다. 보험, 태양광, 보조식품 등 불필요한 전화만 걸려오는데, 그나마 반가울 정도이다. 친구들이 전화를 해도 첫마디가 '오늘은 뭐해?'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다는 등 정말 한심한 대화가 일상이다. 

사실 나일먹으니 오늘은 뭘 할까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경우가 더많다. 그래서 처음 받은 연서(戀書)를 읽는 설레임으로, 오랜 병상(病床)에서 일어나 창밖의 하늘을 보는 마음으로 노후(老後)를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호기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못먹어도 고!'란 말을 신봉했다간 큰 일난다. 

못먹을 것 같으면 포기할줄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의 몸과 생각은 변화를 겪는다. 신체의 기능은 떨어지고 주름과 흰머리는 늘어만 간다. 외모의 변화와 함께 사회적 역할도 축소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의 호기는 사라지고 자연스레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더 가련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행복이 넘친다고 할 때 정말 천국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가급적 말수를 아낀다. 자칫하면 ‘눈치 없는 인간’ 내지는 ‘감(感) 떨어진 꼰대’로 낙인찍히기 딱이기 때문이다. 

먼저는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戰戰兢兢할 때가 많기 때문이고 관점이 다르면 아무리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게 뻔하기에 말을 삼간다.  

모두가 ‘돼지’라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그렇게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자기의 느낌을 중요시하며 근시안적으로 살아 간다. 

나 역시 한동안 신세타령에 젖어 살아왔다. 불행한 사람을 못보아서이지 나보다 훨씬 곤고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도 많을테지만 잘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처지를 비관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삶의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 오늘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농밀(濃密)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할 때나 몰두하는 것인데, 인생에서 모든 일이 몰두할만한 일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항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부분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그것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꾸미고 방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 전반에 걸친 장기적 미션이라고 믿고있다. 최근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말한다면, 내일이 당연한 것처럼 삶을 살아가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점이다.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었으니 내일도 있을 거라는 안일한 발상으로 살았으니 이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허접하고 느슨하게 살았는지 모른다. 물론 치열하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농밀(濃密)까지는 몰라도 시간을 축내며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연암(燕巖)선생은 세상에 사물을 대하며 "귀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되고(貴不可偏愛) 아무리 하찮다고 해서 지나치게 버려두어도 안 된다(賤不可偏棄)"고 하였다. 나는 근래 세상을 통달한 건 아니지만 자연속에서 살며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세상인심이란 것도 그렇고 인간관계라는 것도 알고보면 내 마음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된다. 

인생의 길에는 경사가 분명히 있다. 오르는 길이 있으면 내려 오는 길도 있을뿐이고 나는 지금 어느 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아마 내리막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면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하기도 하고 자학(自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그렇게 느낄뿐이지 인생만사는 큰 달(月)이 있으면 작은 달(月)도 있는 법이고, 더운 날이 있으면 추운 날도 있기 마련이다.  

올 한해는 내 생애에 좋은일보단 안좋은 일이 더 많은 해였다. 아직 분양하지 못한 집이 여러채이고 건강문제도 사선을 넘어 온 직후라 자랑할만한게 없고 물질적으로도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건축을 마치기도 전에 군산에서 세 채의 이층집 수주를 맡아 투입되는 바람에 분양할 기회를 놓쳐 버렸고 그 여파로 마음 고생은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첫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이후 지금까지 서너번에 걸쳐 전혀 사례를 받지 못하고 일을 했다. 처음엔 분개한 마음이 들었지만 올해를 최악으로 여기지 않고 내년에 얼마나 큰 복을 주시려고 연단하시는지를 알고자 마음을 평온시키기로 했다.  

나에게 매번 좋은일만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나쁜일만 연속되는 것도 아니다.세상사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돌고 돌아 어느 누구에게라도 예고없이 찾아들수도 있고 또한 비켜갈 수도 있다. 단지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복을 받고 화를 피할 수 있을 뿐이다. 

오랜 지인의 부탁이라 여산에서 패널집을 지어주기로 하고 거의 무보수로 일을 해주고 있다. 내가 처음 귀촌했을 때 나무 농장을 하는 그를 만나 내가 가야 할 길을 결단하도록 도와 준 인연이기에 천만원쯤의 사례비는 줘도 사양하려 마음먹었고 임업의 현실을 잘 알기에 도와 주는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것들이 농단하는 건 정말 참기 어렵지만 없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조립식 건축물이야 봉사하는게 그간 신세진 걸 감안하면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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