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이 넘어서야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삼열 | 2023.12.01 09:31
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치이다 보면 어떨 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더러는 사람이 별로 없는, 그러니까 장사가 잘 안되는 곧 망할 것만 같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또 더러는 동행 없이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나가기도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특히 일상의 생활 영역에서 사람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은 길거리로 나가 사람 구경하는 것이 일종의 일탈이 되기도 한다. 생각이 많으면 번민(煩悶)도 많고 인생을 고달프게 살 게 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하거나 장고(長考) 할 일이 생기면 거의 혼자있는 시간을 가진다. 

그 곳이 공원 벤치던 강가이던 상관없이 혼자서 골몰(汨沒)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지인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멘토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내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없기에 우선은 낮선 곳을 찾아 고민을 해 보고 사색하며 독백에 빠진다. 

사람들은 혼자있는 걸 참지 못한다. 혼자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혼자있는 시간을 고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문제는 일부러 길을 찾으려고 내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고, 길이 없다면 체념하는게 쪼끔 남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년전 중국 황산에 갔을 때 허리가 부실하여 빨리 걷지 못하는 까닭에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었다. 천자문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漢文을 깨우쳤다고 자부하는데, 모두가 실용한문으로 바꿔 이정표가 있지만 대충만 짐작할뿐 무용지물이었다. 이럴 땐 感으로 짐작을 해야 한다.  만약 感이 없었더라면 낭패를 당할뻔했는데 그나마 아직까진 感이 살아있다는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인생길에서 난감할 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祈禱대신 感을 의존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기가 있다. 장사에 능한 사람은 물건을 보는 눈이 있고, 예능에 능한 사람은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  그리고 운동선수는 운동신경이 발달하여 남들보다 동작이 뛰어나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특별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사건과 환경을 보면서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직 어려운 환경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 지난 일에 집착하여 앞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The Highly Sensitive People)'은 대게는 까다롭고, 비사교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시선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내가 주런 부류였던 것 같다. 전문가란 무인가?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 미국 작가)'는 "모든 것을 알지만,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전문가도 사람인 이상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는 없다. 나는 '목사는 목회의 전문가'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한번도 전문가를 자처해 본적이 없다. 성경이나 신학에 대한 박식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가 있겠지만 그 왼 젬병일 때가 많았다. 40년쯤 목회하고 나서야 이제 인생에 대하여 약간 알 것 같은 시기에 현장을 이탈했다. 40년이라고 하면 한평생이라 할 수 있지만 설교의 중압감에 눌려 다른 분야를 섭렵하지 못했다. 

독서를 해도 설교의 소재를 위한 독서였을뿐이었다. 그러니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처럼 좁은 시야에 갇혀 살아왔던 것 같다. 문제는 시야가 좁아질수록 나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간파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다른 분야와의 소통이 단절되고, 자기 분야가 최고라는 자만이 싹트며, 분야와 분야를 통합하는 융합형 인재는 사라지고 만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 날까지 살아오면서 전공은 있었지만 전문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줄 아는게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건달(乾達)은 아니다. 대게는 시늉으로 끝내서 그렇지 몇년동안 이것 저것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하게 살았다. 너무 설교를 많이 하다보니 그외 것들은 等閒視했었던 것 같다.     

다윗은 자기의 모든 생애가운데 펼쳐진 것들을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감각이 있었다. 그래서 시편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영적인 감각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토록 많은 연단을 받았으면서도 영적인 감각이 둔하면 실타래처럼 엉켜 고초를 당하게 된다. 그나마 내가 바이블이라는 이정표를 가지고 산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알 수가 없다. 

고은 시인이 ‘그 꽃’이라는 시에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상을 향해 숨이 차고 힘들어도 오르기 바쁘다 보니 주변의 아름다운 꽃 을 볼 여유가 없었지만 천천히 내려 올 때 지천에 널린 꽃을 비로써 볼 수 있었다는 싯귀이다. 비록 오르막 길이라 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꽃을 보자고 한 것처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자는 의미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집착하면 그 외적인 일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보이질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만 보고 달려갈때 우리가 놓치는 것들이 많다. 젊은 시절에 꼭 누려야할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지낸다.  당장 필요한 공부, 스펙에 매달리다보면 소중한 것들을 지나치게 된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스펙이 좋은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깨진지 오래이며, 급변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공식이 필요하다.  

일이든 개인 생활이던지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데, 과거의 획일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예측불허의 시장을 이겨나갈 수 없다. 산을 오를 때는 정상에 오를 때까지 앞 사람의 궁둥이만 쳐다 본 기억 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러다 산을 내려올 때는 마음에 여유가 다소 있어 자연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먼 산도 보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고, ‘그 꽃’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목표에 이르기 위해 옆도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면서 달려가는 애처로운 모습이 안타깝다는 표현이다. 한 가지 목표만 정해놓고 가는 사람은 단순한 진실도 보지 못하고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말이 아닌가. 빈 마음으로 내려올 때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듯 언제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하리라. 

경험론적인 이야기지만 물러날 때가 되니까 과거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 모든걸 내려놓으니 모든 것이 제대로 보였다. 나는 귀촌한 이후 시골스럽게 살기를 자처했다. 제일먼저 넥타이를 모두 버렸다. 12여년 동안 세번의 결혼식 주례로 인해 넥타이를 매어 보았지만 그왼 노타이로 살기로 작정했다. 

거치장스런 걸 버리니 마음의 평정심이 찾아왔고,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 덜떨어진 사람에게도 애정을 보일 정도가 되었다.  나는 고은의 ‘그 꽃’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외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우리는 성공지향적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들이 있다. 그래서 앞만 바라보며 건강을 해치는 순간까지 달음질 한다.  

일등이 아니면 도무지 알아주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꽃이 보일리가 있겠는가. 옆을 바라보는 사람은 일등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남들이 비정하다 욕하던 말던 무조건 빨리만 가려다 보니 내 주변에서 피고 지던 꽃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조금 템포를 천천히 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지 않고 사람과 자연을 보고, 아래도 보고 좌우도 살피면서 여유 있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올라가야 한다는 조급성에 사로잡혀 살 때는 누구 이런 말을 귀뜸해주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기 일수였다.  

채근담에 보면 ‘성긴 대숲에 바람이 지나가면 대숲은 소리를 남겨두지 아니하고,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연못은 그림자를 남겨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일 할 때는 열정을 가지고 해야 되지만 일이 끝나면(지나가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어제 보지 못했던 '그 꽃'을 찾는 일에 열중이다. 무분별한 성장만을 강조하다 보니 잃고 있는 거 또한 상대적으로 더 많다.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늘 원광대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와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병원 복도에 여성의 치마같은 걸 입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웬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소변에서 혈뇨가 나오는 사람, 방광에 호수를 끼고 있는 사람, 스스로 소변을 보지 못해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 등 배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 처지가 그랬었는데 '이상무' 진단을 받고 나오면서 내 생애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지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도 엄청 추운 날씨임에도 실질 소득이 없는 일에 매달린 걸 한탄했는데 소변 주머니를 차고 병상에서 전전긍긍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감사하기로 했다. 나로인해 인부들의 수입이 늘어나고 중장비 기사를 비롯 자재상들에게 수입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중요한 일을 한 것이라고 자위하기로 했다. 이젠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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