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냉장고가 집집마다 있다는게 사실인가?

정삼열 | 2023.11.20 12:03
교회가 안움직인다고 걱정하는 소릴 자주 듣는다. 아직은 숨은 쉬는 것 같은데 맥박이 잡히지 않는다. 극도로 쇠약해졌거나 노후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11월도 하순에 접어 들었으니 곧 성탄의 계절이 도래할 것이다. 성탄절 무렵 구세군 자선 냄비가 등장하는 걸 보며 성탄절이 다가 온다고 짐작할뿐 이미 성탄절은 기독교의 절기가 아니다. 세상에 빼앗겨 버렸다. 

설레임도 사라지고 성탄의 의미는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제 성탄절 축하예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예전엔 12월에 접어 들면 크고 작은 교회들이 온통 성탄절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성탄절 이브를 위해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회가 한달 내내 연습을 하며 성탄을 준비했었다. 교회가 노후화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한다.

늙음을 핑게대고 아무일도 안하는 건 자신을 사지로 밀어넣는 행위이다. 늙는다는 일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며, 그럴수록 ‘나’는 세상에 우뚝 선 가장 크고 중요한 존재로 느끼기보다는 세상의 작은 일부이며 자연의 하나로도 만족스러운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게 삶에 대한 예의이자 겸손이라는 걸까? 그리고 이 또한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의 크기도 그만큼 커지기도 하는 일이다.  

‘늙음’은 ‘그리움’을 불러온다. 살아온 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보다 훨씬 많으니, 그리움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부모의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떠올리곤 한다. 비로소 그 나이가 되어서야 '達觀'이란 걸 겨우 알게 되었다. 달관이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아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멀리 바라봄'이라면 이제서야 눈을 뜬 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온갖 것들을 사이에 두고 다투고 경쟁하면서 이기고 지는 사람으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기고 성공한 사람에게 환호하고, 지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그 이유를 묻길 좋아한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일로 여겼다. 지난날이 그러한데, 늙은 지금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을 담는 그릇은 그 그릇의 크기만큼만 물을 담아낸다. 그렇지 않으면 넘치기 마련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내 그릇도 아마도 세월이 흐를수록 담아야 할 물들이 많아져 보였을 거고, 그럴수록 더 많은 것을 담아낼 만큼 키우려고 안달이었을 게다. 끌어안아야 할 것들도, 보듬어 안아야 할 사람들도 많았을 거지만 내 필요한 것만을 채우려 집착하며 살았다.   

얼마전 트로트 가수의 ‘백세인생’이란 노래가 인기였다. “못 간다고 전해라”는 가사와 공연 사진이 SNS를 중심으로 전파되면서 폭발적 인기를 모은적이 있있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이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우리사회가 의심할 수 없는 백세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있다. ‘백세인생’이 그저 비현실적인 염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백수(白壽)의 고비를 넘겨 100세에 올라서서 고종명(考終命)을 누리는 노인장들이 우리나라에서 늘고 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은 무색해지고 있고, 멀지 않아 인생 구십, 인생 백세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오래 사는 것이 복된 일이긴 하지만, 몇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60세에 은퇴한다고 생각해도 25년 내지 30년 정도의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 행복한 은퇴 후의 삶을 위해서는 건강, 화목한 가정, 다양한 교우관계, 보람 있는 취미나 직업 등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늘 현장에서 나보다 약간 년식이 더되어 보이는 지인이 쓸쓸한 표정으로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60에서 70세까지는 대충 월 300만원으로 생활하는데 약간 모자란다 싶었는데 70세를 넘기고 보니 300만원으로 충분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서히 친구들이 사라지면서 술마실 기회나 골프장에 갈 동행이 사라지는 걸 서글퍼 한다는 것이다.  

노인네들을 보면, 본인 스스로도 너무 오래사는 것이 재앙이라고 입버릇처럼 쏟아내고 가족들도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들어낸다. 천덕구니로 사는 노인들을 만나면 차라리 요양병원에 가시는게 좋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지만 꾸중만 듣는다. 요양병원에 가는 건 죽음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기에 낮인지 밤인지를 구별못해 낮에 자고 밤새도록 TV를 시청하니 가족들이 짜증을 내는 데, 거기에 부실한 이(齒) 때문인지 반찬 투정을 하여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노인들에게 아파트는 편의 시설이 아니라 천덕구니가 될 확률이 높다. 백세인생이 대세이긴하지만 아무리 장수하면 뭐하는가?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호한 식물인간 같은 삶은 자신에게나 주변사람들에게나 모두 괴롭다. 미국 시인 롱펠로는 “나는 노인을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 황혼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즉 저녁의 어둠이 눈물어린 눈가에 모이고 황혼의 그림자가 인간의 지각에 넓고 길게 드리우는 그 시기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주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 나이에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네.”라는 한탄의 소리를 낸다. 언제부턴가 자주 입 밖으로 내놓는 말이다. 70대가 되면서 느끼는 상실감 때문이라 여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잇값을 못 했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다.  

나는 나잇살, 나이값이란 소릴 듣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잔소릴 안하기로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민폐(民弊)가 될 것 같으면 아예 그런 자릴 만들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노력중이다. 민폐(民弊)가 곧 적폐(積弊)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난 그런 생각으로 살려한다. 하긴 모든게 虛해지는 시기이지만 그럴 수록 모진 마음을 가지려 노력중이다.  

노인이 되면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진다. 우울증 경향이 늘어난다. 융통성이 없어지고 사고가 경직되어 간다. 또한 늙어가면서 옹고집, 고집불통이 되어가는 경향이 많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판단하에 자기주장만한다. 자꾸 과거만 돌아본다. 왕년에 한가닥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옛날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이다. 그만큼 늙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숙한 물건에 애착이 많다.  옛날에는 나도 새로운 것으로 자주 바꾸곤했는데, 이제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한다. 자기중심이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가족 , 자기 식구, 자기 자식 생각만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물론 노인이라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생리적으로 오는 것일지 모른다.  

옛날의 노인들은 연로하여 은퇴하게 되더라도 생업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으로 동네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우대를 받았고 손자녀를 거느리면서 집을 통솔하는 권좌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들이 지닌 경험이나 지식이 쓸모없게 되어버렸고, 젊은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되었으며, 가족 내에서 노인들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극단적으로 표한다면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몸은 비록 자식과 한 집에서 동거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별거 중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원숭이 같은 노후 생활을 참다운 사람의 노후생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장수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경우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예의를 차린다. 왜 이렇게 깍듯하고 친절한 걸까. 거기에는 ‘메이와쿠(迷惑)’ 정신이 숨어 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弊)를 끼치지 말아라. 일본인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이 ‘폐(메이와쿠·迷惑)’에 대한 교육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가장 부끄럽고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노인들의 생활도 짐작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평생을 남들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지키며 모범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일찍 고령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무연사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돌보는 이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과 우울증과 질병의 고통 등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모든 사람들과 ‘연을 끊어버리고’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무연사회(無緣社會)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던 적이 있지만 이제 남아있는 '어른'의 시간이 두려워진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출발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종점은 사람을 사무치게 한다. 아직은 버스에서 내릴 때가 아니니 난 '낙엽'이 아니라 푸른 엽록소를 애써 잡고 있는 '잎'이라고 떠들어 봐야 그게 그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건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맘'이 가벼워졌기 때문 아닌가?  

나이는 크게 달력 나이, 신체 나이, 정신 나이가 있다. 신체 나이는 운동으로 잡을 수 있지만 달력 나이는 인력으로 잡을 수 없다. 더더욱 정신 나이는 저절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그러기에 젖은 낙엽으로 살지 않고 값어치 있게 살아야한다. 장미에게 이유가 없듯. 꽃은 피니까 그냥 피는 것이다.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지만 아직은 민폐(民弊)를 끼치고 싶진 않다. 민폐를 당연시하고 정당시하면 적폐(積弊)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추운 겨울의 문턱에서 벌써부터 봄을 기다린다. 늙음을 핑게대고 아무일도 안하는 건 자신을 사지로 밀어넣는 행위이다. 나에게도 쉼이 필요한 시점이 있을 것다. 현장에서 시간만 있으면 꾸벅 꾸벅 졸고 있으니 한계점에 이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나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거의 체념의 수준이지만 정신줄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정신의 노후화가 급속하게 찾아 온다면 나야말로 가장 비참한 노후가 될 것이기에 매일 매일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일게다. 여산에서 기초공사를 어렵게 마치었다. 산속이라 어둠이 빨리 찾아 오는데 레미콘 차량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이라 운전기사들에게 웃돈을 주어가며 겨우 타설을 끝마쳤다. 

틀림없이 그 다음 공정도 부탁할게 뻔해 뒤도 안돌아 보고 산을 내려 왔다. 철골작업은 우리가 최고 전문가들이지만 두시간에 걸쳐 출퇴근하는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고 겨울철에 산중에서 일한다는 건 아무리 많은 보수를 준다 해도 고생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 사양하려 마음먹었다. 조만간 몇포기라도 김장을 해야 겨울을 날 것이 아닌가? 

김치 냉장고를 설치해 놓고 우리 집에 김치냉장고가 들어 왔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더니 제기럴, 김치냉장고 없는 사람이 내 주변엔 한사람도 없다. 언제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살았을까? 심지어 조선족 소장도 김치 냉장고가 있었다니 은연중 냉장고 자랑한게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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