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런치타임은 언제인가?

diakonie | 2013.10.03 23:50


이 책을 집어든 나는 숨 가쁘게 읽어내렸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풍성한 삶의 의미를 추구했던 그리고 그 삶의 의미를 기꺼이 타인과 공유하고픈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아티스트의 잔잔한 삶의 성찰이 이제 갓 50에 접어든 나에게 남의 일 같지 않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주었던 것이다. 

그는 거대 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네와 다른 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고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후반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일상의 삶을 잠시 접고 용감한 도발(?)을 감행했다는 데에 있다. 그 것(?)을 찾기 위해 저자는 로키 산맥의 아름답고 작은 마을 재스퍼로 놀.러.갔.다. 그것도 아내와 두 아이 식솔들을 다 데리고 말이다. 

자신을 찾기 위해 감히 재스퍼를 향해 떠났던 그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이렇게 말한다. 

  “퍼내기만 했던 영감의 밭을 이제 쉬게 하리라.”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고민과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해서 그는 그 실천 방법으로 ‘런치타임’을 고안해 내었다.

  “푸른 자연 속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보리라. 내 인생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의 제목 런치타임은 그렇게 시작한다. 40년 전반기의 삶을 살아온 그로서 후반기 50년 삶을 기대하면서 잠시 쉬는 ‘점심시간’을 창조해 낸 것이다. 푸른 자연 속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 보겠다던 그는 이렇게 본문을 시작한다.

  “나는 재스퍼에 놀러 갔다. 놀아야 내가 보일게 아닌가.”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재벌의 아들 쯤 되는 양, 숨막히는 서울의 일상을 탈출하여 가족과 함께 경치 좋은 로키 산맥의 그림 같은 작은 마을로 신선놀음을 하러 간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럼에도 그는
책 속에서 여전히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아무런 장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한 힘없는 가장이며, 한 여인의 지아비요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에게는 자신의 삶 뿐 만 아니라 가족의 삶도 책임져야 하는 모든 중년의 나이에 있는 아버지들이 가져야 하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모아온 돈을 하루 하루 축내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불확실성에 대해 무기력한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숙명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불완전한 놀이와 동거하면서 그 속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신을 성찰한다. 특별히 갈 곳이 없는 그가 하는 수 없이 이방의 작은 시골마을의 어느 집 2층의 작업실에 올라가서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옹송그레 앉아 있는 사내, 45년 이상을 살아온 육체, 변화를 싫어하는 묵은 정신을 가진 한 중년의 사내를 만나면서 말이다.

 “재스퍼에서 나는 미술사책 한 권 읽지 못했다. 재스퍼에 나른한 오후 같은 한가함은 사실 없었다. 거기엔 나의 잘못된 생활 습관, 불안감 안달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들과 정면으로
대면했다. 재스퍼는 그동안 살아온 방식에 대한 반성의 토대가 되었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나는, 내면에 쌓여 있던 잘못된 신념들과 싸웠다. 나는 2년 동안 나와 불화했다. 재스퍼 안식년이 평안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본문인용)
 
그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렀던 The Sound of Silence 의 노랫말처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재스퍼에서 부끄러운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허울만 좋은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재스퍼에 간 지 일 년쯤 지나자, 나의 오래된 문제들과 나쁜 습관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한편으로, 내 삶의 가능성과 소원들도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본문인용)
 
그는 로키산맥의 대자연 속에서 놀.면.서. (그러나 마음 편안한 놀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해나간다. 그가 자신을 성찰하고 돌이켜 새로운 자세를 곧추 세울 수 있었던 이유로 나는 감히 그가 예수가 말한 복의 정신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본다.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울만 좋은 거짓의 삶을 감히 버릴 줄 아는 가난한 마음을 가졌었고, 자신의 부끄러운 속을 들여다 본 애통함이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 독일, 문화사학자)가 말한 ‘호모 루덴스’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그는 “놀이는 문화 그 자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일정한 크기로 존재해 왔으며, 태초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기에 이르기까지 항상 문화 현상 속에 함께 있었다. 인간 사회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에는 처음부터 전부 놀이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놀이는 진지함에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놀이와 진지함의 대립은 결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쉬는 것이 좋지만, 우리는 쉬려고 살지는 않는다. 노는 것이 일상이 되면 거기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놀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며 사는 존재들이 아닐까?” (본문인용)
 
그렇다. 놀이는 진지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이다. 그의 글에서 나는 진지한 삶을 찾기 위해 놀이를 선택한 그의 혜안을 보았다. 로키산맥의 평화롭고 작은 마을 재스퍼는 단지 진지한 삶을 찾기 위한 그 원형적 행위인 놀이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런치타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 답을 본문 269쪽 에필로그에서 찾았다.)

 “아내에게 물었다. 재스퍼 2년간 대자연에 살면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 행구는 기간 아니었을까?
40년 넘게 쓴 기계를 맑게 닦는 기간.” (본문인용)
 
그는 재스퍼의 2년을 이렇게 말한다.

 “너무 오랜 길을 돌아왔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이제야 제대로 깨닫고 있다. 비로소 평화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일러스트레이션, 그것은 빛의 나눔이며 정신의 나눔이다. 보석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게 되는 행운이 있게 되길 소망한다.”
  
나는 그가 런치타임 이후의 소망을 꼭 실현하기를 기원한다. 특히 본문 속에 들어 있는 그가 직접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은 나를 로키산맥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 재스퍼에 살았던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는 것을 저자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김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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