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김교신)
작은 일
어려서 신동이란 명성을 그 시대에 날리는 자와 인생의 반을 거의 지나면서도 단어 카드를 아직도 그 손에서 놓지 못하는 자를 비교할 때, 홍등가에 방탕하다가도 능히 한 사회나 국가에 아주 큰 업적을 세우는 자와 매일 일과로써 간신히 노력하나 서재를 청소하고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는 것외에는 전혀 선한 업적이 없는 자를 비교해볼 때, 항상 염두에 솟아오는 것은 강태공의 낚시질이다. 원래 동양인은 영웅이 못 되면 백치 노릇 함을 장하게 알았다. 일확천금이 아니면 장사의 이익을 알리지 않았고, 일약 재상이 못 될 바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시대의 운을 만나지 못한 영웅도 영웅으로 자처하였고, 세상이 또한 그를 영웅으로 용납하는 법이었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동양에 살려면 영웅답게 살아야 살맛이 있었다. 즉 후일에 영웅다운 하루를 살기 위하여 보통 때의 99일을 작은 일에 손을 대지 않고 살면, 그는 일평생 영웅 노릇 한 셈이 되었었다. 영웅으로 난 자에게는 살만한 곳이요, 호걸이 되지 못한 자에게는 폭이 맞지 못하는 나라가 동양의 조선이란 곳이다.
이런 영웅호걸국에서 태어나서 덕이 닦아지지 않는 것(德之不修), 학문이 탐구되지 않는 것(學之不講)을 걱정하면서, 오로지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는 것이나 하며 매월 작은 잡지의 교정이나 하고 있으려니, 나사렛 목공 예수가 절대로 필요하게 된다. “지극히 작은 데 충성 있는 자는 큰 데도 충성이 있고,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큰 데도 불의하니라”(눅16:10)하며, 99마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으시는 그리스도,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니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5-14)라고 하시는 예수,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될 것이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리라”(마20:26-27)하시면서 제자의 발을 씻으신 구주, 모든 씨 중에 제일 작은 겨자씨와 서 말 가루를 발효케 하는 누룩의 힘으로써 천국을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특히 작고 약한 평범한 사람에게 하늘에서 온 아름다운 신뢰(嘉信)로 들린다.
조롱할 자는 하라. 우리는 예수와 함께 작은 일을 행하고 만족하려 하며 감사하리라. 기독교는 특히 평범한 사람의 종교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닌 줄 안다.
(1933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