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12만 원이
통장에 12만 원이
2월이 가고 3월이 왔다. 오후 7시지만 밖은 어둠에 잠겼다. 낮이 쥐꼬리만큼 길어졌다.
오늘은 신용카드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한국인들은 90% 이상 신용카드를 쓴다.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이 된 일본은 아직 아날로그 세상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 문화 때문이다.
한국은 어르신들도 거의 신용카드를 쓴다. 약국에서 근무하니까 잘 안다. 5~6년 전만 해도 택시는 현금 결제했다. 지금은 99% 신용카드를 쓴다는 말을 택시 기사에게 들었다. 심지어 외국인 반 정도가 신용카드를 쓴다. 약국도 마찬가지로 90% 이상 신용카드를 쓴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수시로 통장을 확인한다.
오늘도 카카오뱅크를 열었다. 이상한 돈, 12만 원이 들어왔다.
"아, 이거 내 돈 아닌데."
그때 한 외국인 여자가 생각났다.
그날 오후에 외국인 여자가 약값 1만 2천 원을 계좌이체를 한 적이 있다.
요즘은 카페나 식당에 가면 WiFi 비번을 알린다. 우리 약국에도 계좌번호를 거울에 써놓았다.
그 여자가 이 계좌를 보고 1만 2천 원을 이체한 후 확인하라며 핸드폰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누구나 실수한다. 인지상정이다. 나도 작년에 단말기에 11만 5천을 0 하나를 더 붙여 입력한 적도 있고, 또 4만 8천 원을 48만 원을 찍은 적이 있다. 후에 알고 깊이 사과했다. 그 후 실수하지 않으려고 단말기 버튼에 000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내 마음과 달리 외국인 여자는 오후 늦게까지 12만 원을 입금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분 얼굴은 기억할 수 있지만, 그분 정보는 모른다. 답답했다. 그 여자가 먼저 알고 연락하기를 바랐다. 혹시 연락할는지 모른다 싶어 전화벨에 신경이 쓰였다. 그 사이 몇 번이나 카카오뱅크로 입금된 12만 원을 확인해보았다. 얼굴이 긴 여자 얼굴을 재차 확인하려고 CCTV를 돌려보았다. 이상했다. 22일 14시 25분에 입금한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여자가 이체한 날짜와 시각이 맞다. 어제・오늘 12만 원어치나 약을 판매한 적은 없다.
우리에게 12만 원은 큰돈이 아니지만, 그 외국인은 타국에서 번 피와 같은 돈이다. 가족을 고국에 남겨놓고 여기서 실수로 돈을 날린다고 생각하니 그 여자보다 내 마음이 더 저렸다.
"꼭 찾아줘야지."
다음 날, 거래 K 은행 N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는 정보가 없어 찾을 수 없다고 하면서 출금한 은행에 물어보라고 했다. 보낸 은행은 S 은행이었다.
즉시 S 은행으로 전화했다. 사정을 이야기한 후 K를 꼭 찾아 돈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담당자는 입금된 날짜, 장소, 금액, 본인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10분이 지났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순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말이 날아들었다.
"12만 원이 맞대요."
"아닌데요."
S 은행 직원은 당사자와 직접 통화했다고 하면서 입금한 돈 12만 원은 바르다고 하더란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 말을 듣고 어안이벙벙했다.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분명히 외국인 여자는 감기약 2인분 1만2천이 맞는데 12만 원이 바르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때였다. 영양제 두 통 값이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그 순간,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하루 전이다. B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웠다. 진열장에 뭔가 챙겼다. 종합비타민 두 통이었다. 몇 달 전에도 가져간 적이 있다.
B 남편 동료에게 갖다 줄 영양제 두 통이다. 외상이다. 여기에서 내가 직접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아, 맞아 그 약값이 12만 원이야."
순전 내 착각이었다. 1만2천을 입금한 날짜는 21일이고, 12만 원을 보낸 날짜는 22일이다.
이 두 날짜를 같은 날로 착각한 한낱 촌극이었다.
22일 오후 2시 25분 녹화 영상에서 외국인 여자를 확인할 수 없었던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외국인 여자 영상은 21일 오후 6시 18분에 확인할 수 있었다.
1만 2천 원도 맞고, 12만 원도 맞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내가 너무 했나 싶다.
2024.3.
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