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날씨가 7월 중순 정도이다.

정삼열 | 2024.05.02 09:42
나는 건축을 하면서 마음속에 작정한 것이 하나 있다. 가능하면 인건비는 깍지 않지만 자재는 한푼이라도 싼 루트를 찾으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 

싱크대 창호 도배 장판 목재 등은 여러 군데 견적을 받고 방문하여 꼼꼼히 비교하며 구매하고 있다. 발품을 팔면 최소한 10%는 절약할 수 있기에 인터넷은 물론 정보 교환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건비만큼은 익산 군산을 통털어 가장 후한 대접을 한다. 나와 함께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기술 대신 진정성에 주안점을 두고 내가 없어도 전혀 게으름을 펴지 않는다. 그래서 소장에게 일을 맡겨 놓고 외국 여행을 자연스럽게 떠나기도 한다. 내가 현장을 비우지 않는 이유는 능률때문이 아니라 안전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 근엄하고 경건한 사람들만 보아와서인지 세상속에서 약간은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이해가 필요했다. 매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가가 궁금하기도 했고, 하루종일 중노동을 하면서 희망같은게 있는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표정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는 삶이 곤고하거나 괴롭다는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런 삶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만족감을 느낄까? 미안하지만 내게는 비참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 삶의 모습이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도대체 이 안 어디에 희망을 두는 걸까. 나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수없이 던졌었다. 어리석게도 그것은, 내가 가진 기준에 그들의 삶을 대어보고 맞지 않는다며 좌절하는 나의 모습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그들의 경제적 수준이나 물질적인 안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단순함, 그리고 불확실성 속의 충만함.....이곳의 내 이웃들은 인생을 그다지 복잡하게 보는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나를 비롯해 나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 확연히 보인다.

멋있는 말로 그 이유를 대자면 단순한 삶이 가지는 아름다움일 테고,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자면 가난한 삶이 주는 불확실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와 몇년전 부터 함께 고생을 하는 현장 소장은 전 건축업자로 인해 인건비가 몇년째 밀려 폭발 직전에 있었는 인부였지만 표정은 그리 험하지 않았었다. 약 육천만원이 밀렸으니 나같으면 생사 기로에 놓였을 것이지만 표정만큼은 무척 밝았다.

그래서 인건비만큼은 무조건 현금 결제를 원칙으로 한다. 일용잡부에게는 퇴근할 때 봉투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정확하게 노임을 지불한다. 몇년동안 노임을 받지 못했기에 참으로 고마워 한다. 나를 만난지 7년동안 중국에 아파트 두채를 구입했다고 한다. 나보다 더 돈을 많이 번셈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식사비용을 대신 낼 때가 종종있다.

잔금을 받지 못했고 아직 분양되지 않은 건물이 여럿이라 당분간은 숨고르기를 하려 했는데 지인이 자기 땅에 건물을 짓고 분양후 땅값을 달라고 제안하여 이런 조건이라면 한번 고려해 볼만하여 내일까지 답변을 해주기로 했다. 일단 경계에 블럭을 쌓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소장에게 내 건물을 지을지 모른다니 우즈백 인부들에게 더 신경을 써서 블럭을 쌓으라고 잔소릴한다.

오늘도 아침 나절에는 쌀쌀하더니 한 낮에는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5월 초가 7월 중순쯤의 날씨라 인부들이 지치는 것 같아 일찍 마쳐 주었다. 노가다, 노동 일이 쉬운게 아니다. 나라면 단 몇일만 해도 벌써 나가 자빠졌을 것이다. 내일도 다국적 국가의 노동자들을 동원할 생각이지만 조선족이 오야지라 자기 친구들을 동원하겠다고 해서 오케이 사인을 했다. 

건축을 하다보면 내국인은 거의 없고 러시아인 터어키인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인도네시아인 등이 동원되어 일을 하기에 더위나 추위, 또는 폭우나 폭설이 아니라면 그대로 강행한다. 하루 쉬면 그만큼 저들의 꿈이 지연되기에 왠만하면 일을 하자고 졸라대는 실정이다. 오늘도 30도를 웃도는 날씨라 힘들었지만 앞으로가 문제이다. 
 
외국인을 잡부로 불러 사용할 때 통상적으로 일당 16~17만원을 지불하는데 그것도 인력소개소에서 10%를 공제하니 손에 쥐는게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력사무실을 통하지 않고 직접 고용하는 건 물론 힘든 날은 18~19만원씩 지급한다. 그래도 돈이 아깝지 않다. 내국인들은 힘든 일은 안하려 하기에 외국인들이 굿은 일을 도맡아 하는 실정이다. 

그 전엔 일당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었지만 인부들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그들의 삶을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충만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만큼 충만하게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말이 그들의 가난한 삶을 낮추어 보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들의 가난을 미화할 이유도 멸시할 이유도 없으니 나는 그저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할 뿐이다. 

가난한 이웃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며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 안락하고 나태하게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스스로가 괜찮은 삶이라 여기는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가지기 쉽지 않은 축복이며, 희망이라는 또 하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는 길이리라. 나는 지금 가난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얼마나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에서 나누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긍정적인 경험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은 거칠지만 단순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과격하진 않지만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여지껏 마음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이곳을 선택하면서 삶을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작정했다. 불확성이 충만한 곳이긴 하지만 남의 눈치를 안보고 이중적 태도로 상대방을 기만하는 이 지긋 지긋한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곳의 생활. 내 생전 이런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몸서리가 쳐지지만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가능하면 만족하려 노력중이다.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고시촌으로 몰린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전공무원화 한다면 좋겠지만 공무원 숫자가 작아서 문제인가? 적당한 일자리가 없으니 한쪽으로 몰리는 현상이고 너도나도 편한 일자리를 찾으려 철밥통이 되려 혈안이 되고 있을뿐이다. 편하지 않아도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얼마던지 있다. 

나는 공사장의 노동자의 삶을 비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갈취하고 사기 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직종이건 다름대로 필요한 일들이고 일할 자리는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안은 '안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 구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안되면 되는 길을 찾으라!'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달란트가 다른데 오직 하나에 올인하여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투자하는게 안스럽기만 하다. 물론 한 우물을 파면 언젠가는 샘물이 터진다고 가르친 교육의 문제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교육의 목표가 잘못된게 분명하다. 나는 내 자녀들이 노량진 근처에 가보지 않은게 너무 고맙다. 우리 집안은 재수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조카나 생질들도 재수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모두 장성하여 의사나 약사 직장인 전업주부로 있지만 재수생이란 말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대단한 집안이라 말할 순 없지만 모두가 제 갈길을 잘 찾아 가고 있어 부모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녀들이 최고가 되길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영혼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 매일 매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길 원한다. 그리고 남에게 지탄받지 않는 삶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원하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죄수"라고 말했다. 결국 나를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남이다. 이처럼 고수로 대접하고 인정해주는 것도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얼치기라고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얼굴은 육체의 영혼' 이라 했고, 키케로는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를 링컨은 마흔, 조지 오웰은 쉰을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는 누구나 삶이라는 자기만의 꽃을 피우며 살아간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배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말이다. 

올해는 유난히 꽃이 많이 피고 빛깔도 곱다. 모든 꽃은 꾸밈이 없어도 예쁘다. 치장하지 않고 저마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서로 먼저 피려고 서두르지도 않고 유유자적 여유롭다. 어쩌면 꽃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운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우스 안으로 부터 텃밭과 정원을 일제히 살펴 보았다. 고구마도 뿌리를 내렸는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농사 전문가인 옆집 고구마는 모두 시들어 타죽었는데 매일 호수를 붙들고 살았던 정성을 알았는지 이젠 왠만한 가믐에도 걱정할게 없다. 고추와 토마토 옥수수 오이 가지 대파 무우 순무 등 그간 심은 모든 작물들이 모두 잘자라고 있고 참외 수박도 이제 땅맛을 알았는지 잘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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