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하지만 착한 사람', '건방지지만 유능한 사람'

정삼열 | 2024.04.30 11:07
어느날 옛 교우중 한 분이 '목사님의 빈 자리가 유독 커 보입니다'라는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할 여유가 나에게 남아 있지 않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난 아무렇지 않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애써 찬사를 받거나 수식어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해 주었다. 딱 거기까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셨을뿐이기에 만족하며 감사하기로 했었다.

내가 귀촌했을 때, 한번도 일을 해 보지 않은 목회자가 어느날 농촌에 정착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이곳을 다녀 간 친구들은 기대반 우려반으로 날 찾아왔지만 떠날 땐 '당신은 꼭 할 수 있을거라'는 축복을 남기고 떠났다.

내가 떠난 자리가 커보인다는 말은 나를 위로하는 멘트일뿐 귀담아 들을 소리는 분명 아닐 것이다. "가까히 계실 때에는 몰랐는데, 목사님 안계신 자리가 너무 크다는걸 요즘 느낍니다. 갑자기 목사님이 주신 말씀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말이 진정에서 나온 말이라면 난 주님의 제자를 키운게 아니라는 반증이기에 실패한 사역이었다는 증거가 될뿐이다.

그들이 고백하는 순종하지 못하고 교만했다는 말은 겸양에서 나온 말일게다. 오히려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지 자신을 반추하는 사람은 실수는 해도 잘못은 하지 않는 법이다.

가끔 지난 시절을 반추하면서 나를 밭두렁에서 풀이나 뽑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인즉 그렇다. 한심하게 느끼는게 정상이다. 내가 봐도 한심한 구석이 너무 많기에 그건 저런 평가에 대하여 초연해지려고 마음먹은지 오래이다.

난 풀을 뽑을 때 장갑을 끼지 않는다. 손톱에 때가 끼고 손에 풀물이 들 정도로 맨손으로 잡초를 제거한다. 건성 건성하는 제초작업은 나중에 더 힘이든다. 농약을 하라고 강요하지만 난 잡초와 씨름하는 일을 10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데, 그래서 세밀하게, 시간이 걸리고 힘이들어도 뿌리까지 제거한다. 아마도 몇일있다가 가보면 또 잡초가 나 있겠지만 그 때에도 깔끔하게 잡초를 제거한다. 

농사꾼의 최대의 적은 잡초이다. 목회도 알곡이 자랄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급선무일게다. 처음 단추를 잘못 잠그면 나중은 없다. 나중에는 잘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어물쩡하게 넘어가는 일들 때문에 알곡들이 자라지 못한다. 개꼬리는 3년간 묻어놓아도 황모(黃毛)가 될 수없다.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다른 법이다. 

잘되는 교회, 좋은 목사, 좋은 교인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나는 아직 그 준비가 안되어 있기에 잡초를 뽑으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다. 창세기 1장3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윌리암 아메스(William Ames)는 하나님의 창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능동적 창조와 수동적 창조로 나누어진다고 말하였다. 능동적 창조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이 세상에 만물을 직접 창조하신 것이고 수동적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들의 변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아름답지 않을 게 없다. 인간이 그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시비가 생길뿐이다. 

창조하신 목적이 있음을 안다면 세상엔 하찮은 게 없다. 하다못해 버러지같은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사역 안에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버려선 안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우월이 존재한다. 머리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등 특출하고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속에 정한 기간동안 살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올 거라는 분명한 사실을 안다면 자고(自高)할 수 없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는가. 누구나 빈손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뿐이다. 그 주님 앞에 설 땐 캐리어나 공로가 필요치 않다. 예술가들은 누구나 자기의 작품에 서명을 한다. 자기의 공적이나 이름을 들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기 르네상스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작품에 결코 서명을 남기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시스틴 성당의 천정 벽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은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온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벽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그가 마침내 불후의 명작 "천지 창조" 를 완성했는 데, 흡족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교회당 문을 나서던 순간 그는 눈부신 햇살과 푸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때 문득 그에게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그 어디에 서명 같은 것을 남기시지 않았는데 기껏 작은 벽화를 그려놓고는 나를 자랑했다니....그는 즉시 되돌아가 천정 벽화에서 자신의 서명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는 어떠한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더 배운 것이 그리 자랑스런 일인가. 조금 더 크게 키운 교회가 그리 자랑하고 싶은가. 그렇게 총회장하고 싶은가. 만세반석 열릴 때 모두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이다. 오히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세상에선 쓸모없는 인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 

여의도는 원래 모래땅이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땅을 보면서 쓸모없는 땅이라고 하였다. 여의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한 임금이 여의도를 보고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여겨서 신하에게 네(汝: 아랫사람에게 가볍게 부르는 호칭) 마음대로(意) 하라고 하면서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랬던 그 땅이 지금은 가장 가치 있는 땅이 되었다. 

남들은 쓸모없다고 여겼지만 가치 있는 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한 사람에 의하여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없다한들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아도 좋다. 철학자 테모크리토스는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다면 많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필요한 일만 하라. 사회적 동물로서의 이성이 요구하는 일만을 이성에 따라 행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휼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정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적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무한 가치를 지닌다. 남을 흉내낼 필요가 없다. 

고군산열도 어디에 있다는 해송도 그 모진 풍상을 견디며 바위속에서 생명을 키웠기에 멋있고 가치있는 게 아닌가? 부잣집 정원에 있다고 다 멋있는게 아니고, 큰교회했다고 만세반석 열릴 때 프리패스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나 해송이나 자기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자신을 주의 從이라 고백했으면 종으로 살아야 한다. 뭔 종놈이 외제차에 호화호식하나. 뭐가 그렇게 당당한가. 

익산 함라면에 가보면 삼부자집이 있다. 아흔아홉칸 집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문 옆 문칸방이 종의 방이다. 한평 남짓한 방이다. 차라리 내가 교회의 주인이라고 하던지, 從이라고 의심없이 믿는다면 종탑방에 사는게 양심적이다. 신분은 종인데 권리는 주인 행세를 하는 그 종님들때문에 교회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오전에 정원의 풀을 뽑다 설계사무소로 출근하여 준공검사의 시안이 오늘까지라며 마지막으로 경고 한다고 겁박을 했다. 내 말이 허풍선이 처럼 느껴졌는지 석달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와서 서두르는데 자꾸만 예상이 빗나간다. 평생 욕을 해본적이 별로 없는데 요즘은 입에 욕을 달고 살고 있다. 아직 준공검사를 받아야 할 물건이 13개가 남아 있어 애써 참지만 앞으로 새로운 설계는 다른 곳으로 옮기려 마음먹었다. 

'무능하지만 착한 사람'과 '건방지지만 유능한 사람' 중 후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간엔 착한 사람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는데 근래는 너무 마음 고생을 한 탓인지 나쁜놈이라도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착하고 진실한 것이 소중한데 내 타락한 생각이 더 미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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