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왕초’ ‘보스’ ‘주군’이 존재하는 거지 집단 혹은 넝마주이 집단인가? (천호동교회 장로가 가지고 있는 이단성에 대하여....)
교회가 ‘왕초’ ‘보스’ ‘주군’이 존재하는 거지 집단 혹은 넝마주이 집단인가?
(천호동교회 장로가 가지고 있는 이단성에 대하여...)
나는 지난 4월 1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천호동교회의 모 장로님으로부터
【교단 선거를 앞두고 제가 목사님의
도움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라는 SNS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에 가끔 안부나 전하는 처지라 교단의 정치에 관해서는 서로 말을 꺼내지 않는 사이라서 답신은 하지 않았다.
내가 답신을 하지 않으니 연락드리겠다는 그 장로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4월 10일, 갑자기 하소연이라고 하면서 이런 문자가 왔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하소연입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보수교단이고
그 보수의 왕초들이 장로가
아니겠습니까. 주군(?)이
출마하셨으니 충성을 해야 하는 장로는
힘들고 어렵습니다. 못난 장로를
긍휼히 여기시고 살살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나는 이 메시지를 받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수준이 우리 교단의 교회와 장로의 수준이라니.....
그것도 담임목사가 교단 부총회장으로 출마한 교회와 그 교회의 수석장로라니 말이다.
마치 조폭들 집단에서나 쓰는 단어들, “왕초”, “보스(보수)”, “주군” 등을 사용하여 현재 그 교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일단, 천호동교회 장로님들에게 가르침을 드린다.
일전에 우리 교단의 전국장로회장을 하신 분의 말을 인용하자면 “장로들은 목사님들의 지도를 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라는 기록(녹취)이 나에게 있고, 그 장로회 회장은 우리교단의 장로님들이 전국장로회 총회에서 선출한 분이니 나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으시길 바란다. 또한 우리 교단 헌법 제43조 제1항에도 목사는 “신앙과 진리의 교사”라고 나와 있으니 헌법상 교단의 목사가 교단의 신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보수교단이고” 에 대하여
이 글을 쓴 장로님이 ‘보수교단’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보수교단이고 그 보수의 왕초들이 장로이다”라는 표현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장로님이 여기서 사용한 단어 ‘보수’는 보수(保守)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수(保守)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보전하여 지킴.
②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장로님이 사용한 ‘보수’라는 단어가 보수(保守)라고 설정하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보수교단이고....”라는 정의(definition)를 우리 교단의 헌법을 통해서 살펴보자.
우리 교단 헌법에 ‘보수(保守)’라는 단어는 전체를 통 털어 딱 한번 언급되었다. 그런데 명사형태의 ‘보수’가 아니라 동사 형태의 ‘보수하며~’로 한번만 나온다.
헌법
제1조(본 교회 목적)
본 교회는 성결교회의 초대 창립자들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며 그 중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국내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며 모든 교인에게 성결의 은혜 즉, 성령세례(聖靈洗禮)를 전하여 교회로 하여금 거룩되게 하기를 힘쓴다.
2. 교회를 설립하여 영혼을 구원함과 윤리의 실천을 힘쓰며 십자가의 복음과 성경의 권위를 보수하며 재림의 주를 대망하도록 한다.
장로님이 ‘보수교단’이라는 단어를 ‘보수주의 교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보수주의(保守主義)란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의 옹호와 현상 유지 또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흔히 ‘진보주의(進步主義)’의 반대말로 보수주의라는 단어가 쓰인다.
그렇다면 우리 교단의 헌법에 우리교단은 보수주의 교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는가? 흔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우리 교단의 헌법에 ‘보수주의(保守主義)’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교단 헌법이 정의하고 있는 우리 교단의 교리와 신조 그리고 전도표제는 ‘복음주의(福音主義)’라고 말한다.
헌법
제6조(본 교회의 전도 표제)
본 교회의 전도표제는 다음과 같다.
사중복음(四重福音)
본 교회의 기초교리는 기독교 개신교가 일반으로 믿는 복음주의니
제13조(교리와 신조(信條))
본 교회에서 믿는 교리와 신조는 기독교 개신교파가 공통으로 믿는 복음주의니 이는 신앙의 생명이며 골자이다.
따라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보수교단이고....”라는 말은 맞지 않다. 이 말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십자가의 복음과 성경의 권위를 보수하는 복음주의 교단이고....”라고 해야 맞다.
2. “그 보수의 왕초들이 장로가 아니겠습니까”에 대하여,
그 보수(保守)의 왕초들이 장로라......
'왕초'의 사전적 의미는
왕초(王-)
[명사] 거지, 넝마주이 따위의 우두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유의어 : 두목
오야붕 : ‘왕초’의 일본식 표현.
이 장로님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거룩한 교회를 거지 집단이나 넝마주이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천호동교회 장로가 스스로를 '왕초'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천호동교회를 장로 스스로 그런 집단 즉 거지집단 내지는 넝마주이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여겨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장로가 교회의 왕초 즉 우두머리라 하면 목사는 도대체 뭘까? 왕초에게 고용된 월급쟁이 바지사장쯤 될까?
자~ 이 바지사장님이 교단의 지도자가 되시겠다고 출마를 하셨단다. 대의원 여러분들은 꼭 이 바지사장님에게 한 표를 던져서 108년 된 교단의 대표로 삼아주시기 바란다. 단 왕초 밑에서 고용된 월급쟁이 바지 사장에게 교단의 대표권을 주면 우리 교단은 거지 집단이나 넝마주이 집단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3. “주군(?)이 출마하셨으니”에 대하여,
이 장로님이 사용한 ‘주군’이라는 단어는 주군(主君)이라고 여겨진다.
주군(主君)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임금, 군주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 유의어 : 군왕, 왕, 패자.
이 장로님은 우리 교단의 구조와 정치체제에 대해 아예 “나는 무식하오니 배째라~”하고 달려든 형국이다.
우리교단의 체제는 군주적(君主的)인 것과는 정반대이다. 우리 교단의 헌법 제4조 4항은 우리 교단의 정치제도가 군주제도가 아니라 대의제도(代議制度)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4조(본 교회의 지도원리)
4. 우리 교회의 정치제도(政治制度)는 신앙 양심을 기초한 대의제도(代議制度)로 한다.
군주제도는 유럽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26년 전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막을 내렸고, 우리나라에서도 105년 전인 1910년 한일합방으로 그 막이 내려진 제도이다. 그런데 아직도 천호동교회는 군주제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단 헌법 제4조 4항을 위배하여 대의제도를 부정하는 자들은 징계법으로 다스려야 맞다. 교회의 목사를 주군으로 생각하는 장로는 장로직을 박탈하고 파직 출교를 해야 옳다. 그리고 이는 이단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제도이므로 이단사이비대책특별법으로 조사 처리해야 한다.
이 장로님의 사고에서 나는 분열증을 감지한다. 한편에서는 장로들이 ‘왕초’라 하고 한편에서는 장로들이 ‘왕초’가 됨으로써 바지 사장으로 강등된 목사를 ‘주군’이라고 한다. 아하~ 그래서 ‘주군’이 아니라 ‘주군(?)’이라고 썼나 보다.
한국사회와 우리 교단, 좁혀서는 천호동교회에 존재하는 ‘왕초’, ‘주군’ 의식에 대하여, 최근 서울신학대학교의 이길용 교수의 논단이 돋보인다. 그 내용을 좀 거칠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집단적이고, 신분적이며 왕조적이다. 그래서 계급과 신분의 차이에 매우 민감하고, 그에 기초한 차별적 의식과 행위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달궜던 땅콩 회황 사건이나 최근 이슈가 되었던 모 대학 이사장의 서슬 퍼런 언사도 이런 왕조적 에토스의 한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대학 구조조정에 힘을 쏟고 있는 재벌 출신 박모 이사장은 자신의 방침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 소속 교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끔찍한 언어로 가득 채워진 메일을 보냈다.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
자신이 생각했던 기내 서비스 절차와 달랐다고 정상적 항의 수준을 벗어나 인격 살인에 가까운 충동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모 항공사의 부사장이나 위 대학 이사장이나 과연 주체적 개아를 존중하는 현대적 에토스를 갖춘 교양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더 놀랍고 끔찍한 사실은 저런 유의 갑질이 이 공화국에서는 거의 일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상대가 달라지고, 환경만 교체될 뿐이지 온통 사회는 갑질을 희구하고, 소망하고, 또 욕망한다. 어떤 식으로든 갑의 위치를 점하여 을에게 명하는 이가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풍경이다.
나는 지금 말한다.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인식하지 않고 ‘왕초’나 ‘주군’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천호동교회의 담임 목사가 교단의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교단에서 갑질을 희구하고, 소망하고, 욕망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갑의 위치를 점하여 을에게 명하는 이가 되고자 하는 욕심에 다름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를 교단의 지도자로 만들고자 운동하러 다니는 이들 역시 여전히 계몽의 강을 넘어서지 못하여 왕조의 그림자에 갇혀 있어 여전히 왕초와 주군 즉, 갑에 속한 이들이 지배하는 중세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이들임을....
4. “못난 장로를 긍휼히 여기시고 살살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에 대하여,
이 장로님은 자신이 못난 장로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SNS에는 ‘수필이 좋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있고 몇 년 전 수필집도 낸 것으로 안다. 나도 그 수필집은 그저 은퇴를 앞두신 장로님의 넋두리로만 이해를 하고 좋은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 사고들이 집단으로 확장될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교회안에서 제한된다면 단지 그 교회의 문제이나 교단으로 확장되면 교단의 문제가 된다.
나는 그 분이 스스로 무엇이 ‘못난’ 부분인지 깨달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그 분을 긍휼히 여길 것이다. 우리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또한 그 분의 부탁대로 살살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목사요 그는 장로가 아닌가? 그리고 전국장로회장의 말마따나 ‘장로들은 목사의 지도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 아닌가?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장로들이 ‘왕초’ ‘보스’ ‘주군’들이 갑질하는 거지집단 내지는 넝마주이 집단으로 이해하고 있는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이는 이단집단이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특별법에 의거 면밀히 조사하여 처리해야할 것이다.
김명기
(땅끝칼럼 201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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