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즉 철들었으면 좋았을 걸!

정삼열 | 2024.05.08 10:40
오늘은 어버이날, 국경일(國慶日)이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날을 나만이겠지만 국경일이라고 생각한다.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법률로 정해 놓은 경축일인 데, 우리나라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 지정되어 있다. 

공휴일로 지정된 신정(양 1/1) 설날(음 1/1) 삼일절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현충일 광복절 추석 개천절 성탄절 그리고 매주 일요일 등이 공휴일이다. 전엔 공휴일이었으나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식목일 제헌절 국군의 날 국제연합일은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만든 기념일이기에 왈가왈부하지 말아야겠지만 문제는 젊은이들에게 있어 5대 국경일보다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가 더 친숙하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 불만은 어린이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었는 데, 어버이날은 왜 공휴일이 아닌가? 어버이날이 새삼 주목받는 건 갈수록 팍팍한 현실에 놓인 어버이들의 고단함 때문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의 신록이 점점 짙어가고 있다. 아무리 건축일이 주무가 되었지만 명색이 농업인인데 아무 것도 안 심을 수가 없어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밭을 일구고 몇일동안 내린 비로 인하여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풀을 뽑았다. 현장에서 자생 머우가 있는 걸 발견하고 이 걸 우리집 너른 텃밭에 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 인부들에게 맡겨 놓고 꽤나 많이 심었다. 이런 짜투리 시간이 아니면 밭을 그대로 놀릴 판이기에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거사(?)를 치루었다. 

오랫만에 노가다와 농사일을 병행하니 엄청 힘이 든다. 어쩌다가 한번씩 하는 것도 이렇게 힘이든데 매일 논밭에서 사는 촌노들은 얼마나 힘이들까? 얼마전 유업 여행 중 손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내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아이들 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다. 불과 3~4년만의 일이다.  

걸핏하면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 딍그는 처지이고 저혈당 쇼크도 종종 일어나니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인식하게 되고 몸이 산성화되어 피곤이 풀리려면 오랫 시간 걸리는 불량 체질이 야속하단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지칠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을 끄집어 내며 미소를 지어 보았다. 

나는 나이 사십에 로마 트레비 분수앞에서 '어게인 로마'를 외치며 동전을 던졌는데 작년에 가족들 유럽 여행 중 내 손자들도 다시 로마를 오고 싶은지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던진다. 아마도 할에비하고 로마를 또 갈 수 있을진 모르지만 기운이 있을 때 몇번 더 유럽을 가려하고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스 터키도 가려하지만 어게인 로마는 작년으로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아내는 애들은 잘사니 우리 걱정이나 하자고 하지만 어디 부모의 심정이 그런 것인가? 분명히 나보다 잘 살지만 그래도 안스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 진다. 아내가 키운 자식들보다 자식들이 손주를 키우는 것이 더 힘들 거란 생각이 드니 아내에게 대접을 못받고 사는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신 살아줄 순 없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항상 이럴게다.  

나는 즐거움은 본인들의 묷이고 어려운 일은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주님께서 자식의 축복을 주셔서 한번도 자식문제로 고심해 본 적이 없고 자식들도 어려운 내색을 보이지 않고 자기의 길을 잘 가고 있다. 피차에 안스러워하며 살아 간다.   

나는 자식들에게 늙은 아빠란 소릴 듣지 않으려 무던 애를 쓴다. 난 아직 늙은이가 아니다. 옛날에는 60세가 되면 시골에서 회갑잔치를 크게 열었다. 그 나이가 되기까지 사는 사람들이 적어서 50대도 노인 행세를 했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생활이 비교적 안정을 찾은 1960, 70년대부터 평균수명이 차츰 늘어나 이제 한국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80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한다. 천재지변이나 역병이 없는 한 유가(儒家) 5복(福) 중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장수’(長壽)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노인들이 어찌하여 앙앙불락(怏怏不樂)의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가? ‘헬(hell)조선’은 희망이 전혀 없는 지옥 같은 한국 사회를 일컫는 신조어다. 헬조선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공자가 주유천하(周遊天下)하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데,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었다. 너무도 비통(悲痛)해 하는 이 사람이 애처로워 공자가 슬퍼하는 까닭을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 온 말이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왕이불가추자년야(往而不可追者年也), 거이불견자친야(去而不見者親也)"이다. 즉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시다는 뜻인 데,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흔히 풍수지탄(風樹之嘆)·풍목지비(風木之悲)으로도 쓰이는 데, 예로부터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했다. 조선후기 학자 아정(雅亭) 이덕수(李德洙, 1577 ~ 1645)라는 사람이 있었는 데, 그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전부(典簿)가 되었고, 사후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追增)되었던 인물이었다. 

그가 쓴 ‘사소절(士小節)’에는 어른에 대한 공경의 방식과 효의 규범이 집약돼 있는 데, 여기에 언급돼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어른 앞에서는 이를 쑤시지 말고, 코를 풀지 말며, 귀를 후비지 말아야 한다. 어른이 들어오고 나갈 때에는 반드시 일어서고 어른이 말씀할 때에는 반드시 두 손을 합쳐 쥐고 조용히 들어서 잊어버리지 않으며, 의문이 있으면 반드시 공손히 물어서 그 조리를 알아야 하지, 엄한 것에 구애되어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대로 두면서 “예예”하거나 억지로 대답해서는 안된다. 

노인이 집에 들어오면 아래에 내려와서 맞이할 것이며 부축하여 오르시게 하고, 가실 때에도 신을 정리해 드리고 부축하여 내려 가시도록 해야 한다. 어른과 함께 구경을 갔을 때는 항상 어른을 옆에서 모시고 어린 자식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여 어른이 신경을 써서 찾게 해서는 안된다.  

어른과 함께 식사할 때는 먼저 먹었더라도 수저를 던지고 먼저 일어나지 말고 어린이가 연장자의 모임에서 말과 웃음이 너무 방자하면 좋지 못하니 겸손하고 공경하고 삼가야 한다. 이런 교훈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요즘은 그 걸 지키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언제부터였는지, 누구로 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교회는 신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 영적 아버지, 그리고 육신의 부모를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래서 어버이날엔 극진히 대접을 받고 용돈도 얻어 쓴 기억이 생생하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건 그렇다 치고, 나를 낳아 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데, 여기에 편승하여 왜 목사가 영적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는 현역시절 어버이 주일이 되면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교회 예산을 편성하여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식사와 함께 5만원씩 넣어 드렸다. 때때론 관광차를 대절하여 나들이 시켜 드렸다. 

내가 목회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은 오월이 돌아오기 전 교회식당에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시엔립 호수를 배경으로 대형 걸게 그림을 한달 동안 붙혀 놓고 자식들을 한명씩 당회장실로 불러 들여 너희들 생전에 후회하지 않을 일들을 만들어 주겠다며 해외여행을 시켜 드릴 걸 제안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알바를 해서라도 여행비를 준비해 오라고 강제했는데, 32명 전원을 베트남 항공에 착석시켰다. 당사자들도 엄청 좋아했지만 자식들도 너무 감격해 하는 걸 보았다. 서너명을 제외하곤 비행기를 처음 타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하롱베이 유람선을 타고 사이공 맥주 몇잔에 취기가 올라 마이크를 잡고 덩실 덩실 춤을 추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효도는 강제로 라도 해야 한다. 나도 깜냥에 효도 한다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잘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아 후회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비내리는 고모령이란 복음 찬송을 따라 부르며 우울 모드에 빠져 들어 간다. 진즉 철들었으면 좋았을 걸!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는 그 날 밤이 그립구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 어린 인생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는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가면서 오늘밤도 불러본다 망향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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