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ting For Godot

정삼열 | 2024.05.04 11:36
입맛이 없어 식욕이 땡기는 반찬이 있기나 한지를 확인하러 시장을 들렀다. 갈치찌게가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어린 시절 고구마 순을 넣어 찌게를 끓여 주시던 그 솜씨를 흉내 낼 수도 없지만 아직 고구마 순을 구할 수 없기에 포기했다.

반찬은 구입하지 않았지만 작은 꽃을 구입했다. 그간 꽃씨를 엄청 뿌렸으니 조금있으면 온통 꽃대궐이 되겠지만 방안에서 키우려고 난종류의 포트 하나를 구입했다. 

이천원에 불과하지만 몇일이나마 삭막한 방안이 화사해질 전망이다. 시골이지만 꽃을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촌로들도 비닐봉지에 꽃 하나씩은 담아 간다. 꽃은 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실제로 꽃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나 향기, 모양이 인간의 몸에도 굉장히 좋은효과가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꽃에는 음양의 균형이 있어서 화려하고 큰 꽃, 난색계의 꽃은 양에 속해 활력을 더 해준다고 한다. 기분이 우울한 음일때는 장미꽃이나 백합, 난 등과 같은 양의 꽃을, 기분이 들떠 있는 양일 때는 안개꽃이나 스타티스와같은 음의 꽃을 장식하면 균형이 잡힌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꺾지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 물을 준다."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것과 좋아하는것의 차이점이다. 사랑하는것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것이고, 좋아하는것은 그 사람의 좋은점만 받아드리는것이다. 진정 사랑을 아는 사람은 겉포장보다는 그사람 상처까지 사랑한다.

내일부터 3일 동안 꽤나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나와 있다. 이번 비는 모든 식물이나 꽃나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더이상은 어렵다는듯 부풀린 몸을 풀어헤치려는 몸짓이 눈에 선하다. 계절의 순환은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시장에서 돌아와 밭에 시금치를 모두 뽑아내 버리고 당근 씨를 뿌리고 주변에 남은 꽃씨를 뿌렸다. 시금치를 가져 갈 사람이 없어 방치했더니 결국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사가 이런식이지만 그래도 빈 공간을 좋아하지 않기에 무엇인가를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당근을 심었다. 특히 꽃씨를 심으면서 선홍빛 맨드라미가 너무 아름다워 동네 어귀에도 씨를 뿌렸다. 

나 혼자 이 일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씨앗 나누기와 심기를 반복한다.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꽃씨를 나눠 준다. 해마다 씨앗을 받아 두었다가 내가 머문 곳엔 반드시 꽃이 있도록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은퇴목사님 한분과 후배님이 다녀갔다. 어려운 사정을 가지고 찾아왔지만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예전엔 '해선위'와 '국선위'가 있어 체계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하려 노력했는데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모양이다. 그나마 해선위는 잘되는 것 같은데, 미자립교회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여 심각한 존폐의 위기에 내몰리는가 보다.

선교비를 줄이는 교회가 많다고 한다. 내 코가 석자라고 여겨 과감히(?) 선교후원금을 줄이는가 본데, 다른 건 몰라도 미자립교회는 반드시 돌보아야 할 과제이다. 빚에 시달리고 헌금 전체를 이자로 지불해도 모자라는 판에 교역자 생활비는 언감생심인 미자립교회들이 너무 많다.

나도 개척교회를 해보았고, 여러번 건축을 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요즘 후배들이 겪는 고충하곤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나무 호사스럽게 살았다. 그나마 생활비 봉투를 꼬박 꼬박 아내에게 주었고, 지금도 내 생활비보다 약간 많은 액수를 상납(?)하고 있다. 사내 '男'이란 입(口) 열개(十)를 힘(力)으로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풀이도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오죽이나 하면 나를 찾았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생활비를 더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매달 약간이나마 도움을 주려 마음먹었다. 내 주변엔 왜 이리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은퇴 목사들을 가끔 만나는데 자가용은 물론 버스비도 없어 집밖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계시다.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가꾸는 내 모습속에 'bourgeois'의 모습이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몇일전에도 선배목사님을 불러 내어 낙지복음밥을 사드렸다. 근황을 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초췌(憔悴)하다. 내 현장에서 일하면 하루 일당이 얼마냐고 묻는데, 18만원이란 말에 한달에 열흘 정도 일하면 안되느냐는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현역에 있을 때 정말 잘나가던 분이셨는데, 이젠 찾아주는 후배도 없고 다닐만한 교회도 없다면서 시내를 떠돌며 예배 드리고 있단다.

노인복지연금으로 지급받는 20여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라는데, 과연 나같으면 그 돈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현역으로 있을 땐 남부럽지 않게 사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간에 댓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인간적으로 신세를 진 친구들이 있을테고 목회도 제법 성공하셨던 분인데 어느날 갑짜기 이렇게 초라해질줄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내그릇이 그 정도였었고 내가 뿌린 씨앗이기에 누굴 원망하겠는가?"라는 말씀에 당장 후임자를 찾아 가 경을치고 싶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날이 추워진 다음에야 푸르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지 않지만 어려움에 처하면 본색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좋을 때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관계의 백과사전 격인 사마천의 ‘사기’의 맹상군과 풍환의 인간관계는 바로 그런 사례다. 잘나가던 맹상군은 제나라 왕에게 의심을 사는 바람에 자리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쟁에서 밀려난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식객들은 하나둘 슬그머니 맹상군 곁을 떠났다. 식객들의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사로잡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맹상군으로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이 "풍환"이 끝까지 남아서 맹상군에 대한 제나라 왕의 의심을 풀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맹상군의 수천명 식객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아 홀대했던 인물이었었다. 그런데 비참한 나락에서 오로지 풍환만이 남아서 맹상군을 지켜준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지를 정처 없이 여행하다가 1937년 파리에 정착한 이후 창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이던 1952년 불어로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남겼다. 오지 않는 고도는 대체 누구인가? 고고와 디디는 무엇을 위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대명제처럼 고도를 한없이 기다릴까? 

이 작품에서 고도에 대한 해답은 끝내 없다. 그러나 극의 흐름으로 보아 고도는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운명의 굴레거나, 자본과 정치권력이거나,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와 고뇌거나, 아니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처절하게 신음하는 인간 구원, 또는 희망과 자유의 형상화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고도의 실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소망하는 바 가치체계면 된다.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상을 수상하자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재빠르게 그의 작품을 번역 출판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즉시 출판되어 서양에서 날아온 '고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심취하고 있었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그 제목(Waiting For Godot)을 '고도(孤島)를 기다리며'로 용감하게 내세웠던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다. 

아마도 오역이 아니라 고도(godot=절대가치, 구원자, 진리 등)라는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 의미로 형상화하기 위하여 '외로운 섬', '동경의 세계' '꿈과 이상의 나라'를 뜻할 수 있는 '고도(孤島)를 차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이제 와서 해보게 된다. 

오늘 밤부터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도 지방 부터 차츰 비가 북상할 모양이다. 모내기 철이라 비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우리집 식물들을 위해서도 비가 좀 넉넉히 내렸으면 좋겠다. 적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일일히 물을 대야하는 번거로움이 남아 있기에 비를 기다리는게 사실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찹찹해 비라도 흠뻑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빗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마음 고생을 많이 했고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저혈당 쇼크를 경험했고 무지하게 일한 탓인지 간밤엔 다리에 경련이 생겨 죽을만큼 고통을 당했다. 한동안 쥐가 나지 않았는데 생각이 복잡해 지니 몸의 이상이 생기는 것 같다.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고 좀 대범하게 해야 하는데 점점 옹졸해지니 컨디션이 별로이다. 그래서 비를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사회에서 거부당했다거나 조직에서 벗어나 혼자라는 외로움의 현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직접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성공을 추구하고 인정을 받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슴 속 깊이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있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때 심리적 불안과 초조함, 혹은 막연한 질병의 증상으로 불쑥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신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 그 때까지 지탱해 온 나의 삶의 의미를 단번에 잃어버리게 만든다. 외로움은 우리의 내적 고통과 공허감을 잊으려는 욕구를 이용해서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이런 괴로움을 잊게 만드는 중독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외로움을 애써 피해보려고 내 자신을 학대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근원적인 것이다. 근원적인 외로움은 세상의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외롭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외로움은 영혼완성의 장애가 아니라 외로움이 있기 때문에 영혼은 완성될 수 있다. 외로움의 진정한 뜻은 완전해지고자 하는 열망이다. 기다림에 대해 혹자는 기약 없는 막연함에 고통이라 하고, 또 혹자는 그 끝에 찾아올 기쁨에 행복이라 한다.

지극히 사적인 기다림일 수도,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거시적인 기다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삶은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고도가 있다. 하지만 누구를, 무엇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오기는 하는 것인지, 왜 기다리는지, 기다릴 만한 가치는 있는지 모른다.

무수한 물음이 해결되지 못하고 내일은 꼭 오겠지 하는 희망을 지리멸렬하게 거듭하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늘 구원을 갈망한다. 그리고 멈추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 모리스 블랑쇼의 성찰처럼 마모되지 않는 마모인 기다림은 기다리는 자를 그 자리에 ‘꽁꽁 묶어’ 놓으니까 말이다. 

형이 형수때문에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국전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분이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이후 삶의 의욕이 많이 저하되었는지 우울증세를 보여 가족들이 선친 추도식으로 모여 가족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내의 갑작스런 질고와 오십을 바라보는 자식들이 모두 장가를 가려 하지 않으니 걱정이 그칠날이 없는가 보다. 

비록 3천원 미만이지만 작은 화분을 구해 형에게 주려 마음먹었다. 나야 인천에 가면 '꽃보다 손주'인 영운 성운 정운과 유준이 있지만 아직 형은 손주가 없다. 사계절용인데, 볼 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일년에 몇번씩은 '할아버지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불러주는 맛에 생의 의지가 아소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정작 꽃이 필요한 사람은 형이다. 조만간 여행 가방을 싸기로 했다. 이젠 내가 형을 위로해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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