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먹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삼열 | 2024.05.03 11:06
독일어 중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풀이되는데 우리 나라 속담 중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 일맥상통한 말이다.

샤덴프로이데란 독일어의 불운을 뜻하는 ‘샤덴’과 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가 합쳐진 말로서 한 마디로 ‘너의 불운이 나의 기쁨’이란 뜻이다. 

쇼펜하우어는 "샤덴프로이데를 즐기는 건 사악하다. 타인의 불행을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악의를 숨기지 않는 성향만큼 마음이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가치가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징표는 없다'고 했다. 이런 성향이 관촬되는 사람은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 

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거나, 명예가 하늘을 찌르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면 자신이 덕을 본 것도 아니면서 고소한 마음이 드는 이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차마 내보이기 싫은, 또는 인정하기 싫은 이 감정은 자존감을 위해 끊임없이 우월해지고자 남과 비교를 시도하는 뇌구조에서 발단한다.

사람들은 남보다 나은 부분을 발견하면 쾌감을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한다. 문제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자존감이 아닌 타인의 불행을 들춰내거나 ‘누가 누가 카더라’라는 가십거리를 인용해 악의적 댓글로 얻는 자존감에 샤덴프로이데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국립방사선의학연구소의 다카하시 히데히코 박사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았는데, 먼저 ‘동창생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부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니 이들 뇌의 ‘전대상피질 (anterior cingulate cortex)’활동이 활발해짐을 발견되었다. 뇌의 전대상피질은 불안한 감정이나 고통이 관여하는 곳이다.

반대로 ‘그 부러웠던 동창생이 불의의 사고나 배우자의 외도 등으로 불행에 빠졌다’는 사실을 상상하게 하니 전대상피질 대신 쾌감을 발생시키는 보상회로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 활동이 활발해졌다. 즉 남의 불행에 본인은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반 골퍼들 사이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라는 말이 자주 회자 된다. 남이 공을 잘못치면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웃는다는 이중성을 꼬집는 말이다. 

정치는 더욱 그렇다. 즉 내 노력과 의지에 관계없이 남의 불행으로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심산이 크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 경쟁자가 잘못해서 실패할 때 더 카타르시스가 된다는 말이다. 내 또래의 사람들의 화두는 주로 자식 손자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문제만큼은 내 맘대로 안 된다!'에 아주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내 맘대로 안 되는 자식'이 당연한 거다. 오히려 '내 맘대로 되는 자식'이야말로 나중에 큰 걱정거리가 된다. 왜 자식을 내맘대로 키우려하는 것일까. 세상사가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화내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성공한' 이 땅의 중년 남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일들이 맘대로 안 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른다. '통제 강박'이다. 자신의 성공을 불굴의 투지와 노력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통제 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자꾸 새벽 4시면 잠을 깨는 거다. 가족 다 자는 새벽에 혼자 일어나 신문이 왔나 하며 자꾸 현관문을 열어보게 되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나도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반면 할 수없는 일도 많다는 걸 시인하는게 건강의 지름길이다. 너무 잘하려다가 다들 한 방에 훅 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이러한 샤덴프로이데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 중 하나가 ‘루머’다. 쌤통 심리는 자신만 느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들은 말은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이 더해져 재생산되며 다시 제삼자에게 이어진다. 쇼펜하우어와 같은 입장이었던 칸트는 샤덴프로이데를 '악마의(diabolical)' 이라고 불렀다. 샤덴프로이데 심리는 악마나 놀부의 심보에 가깝다.

상대방의 고통을 통해 흥분을 느끼는 사디즘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심리는 인간이 오랜 생존경쟁을 거치면서 본성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디아볼리크(diabolica)는 어쩜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가 종종 샤덴프로이데 감정을 느끼더라도 도덕적으로 덜 고민해도 될성 싶은 착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시기심은 가장 파괴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이다. 시기심은 가장 오래된 죄의 형태이며(사 14:14), 인간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우리 몸의 건강도 위협한다(잠 14:30).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기심을 가지고 있다. 시기심은 나같이 철없는 사내만 느끼는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시기심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예를 들어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등) 시기심은 더 적나라하고 치밀하다.  

내가 아는 한, 목사들이나 교수들의 시기심이 가장 심하다. 특히 인문사회분야 교수들의 시기심은 하늘을 찌른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인문사회과학에는 객관적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 타인의 우월함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열등함을 수긍하는 순간, 존재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래서 남 칭찬하는 교수가 그렇게 드문 거다.

몇일전 지인이 동창회에 다녀 온 이후 마누라가 심통이 발동되었는지 밥줄 생각을 안하고 연신 자기를 공격하는 데, 죽을 지경이라며 하소연한다. 아내의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가정이 화목하고 돈 걱정도 안 하는 사람들인 데, 거기만 갔다 오면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게 불만이라며 도대체 지금 나에게 도둑질을 하라는 것인지, 아님 죽으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난 못난 이 인생의 말을 들으며 불현듯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떠올랐다. 간단했다. 행복이란 타인의 행불행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원하던 것을 채우고 나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늘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에 덕지덕지 욕심이 달라붙어 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했다. 저울에 무게를 단다면 똑같거나 아니면 내 떡이 더 무거울 수도 있다. 그래도 내 눈에는 내 떡이 작아 보이기 십상이다. 나의 욕심 때문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그 욕심은 서로 비교하는 데서 비롯한다. 남의 떡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내 떡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나에게 충분하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마음은 내 현실의 부정이다. 현실의 부정은 마음에 분노를 갖게 하고 그 분노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행복은 각 개인의 자존감이 만들어내는 각자만의 충만한 감정의 상태이다. 나의 행복을 남에게 양보해서도 안 되고, 결코 남의 행복과 견주어서도 안 된다.

행복의 주어는 오로지 ‘나’이어야 한다. 남의 행복을 아무리 기웃거린들 그것은 나의 행복이 될 수 없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자존감을 키우는 가장 근원적인 자세이다. 남들 하니까 나도 따라 해서는 불행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나는 지난 4월 한달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제 겨우 사지를 벗어난 기분을 느끼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실정이다. 건축설계사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준공검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자금줄이 막혔고 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여 땜빵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마이너스 통장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기회였다. 

겨우 3개월만에 준공검사가 나와 등기중에 있어 중도금을 약간 받아 급한 곳을 차례대로 막으며 이번 기회에 거래처나 설계사를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말같이 될지는 모르지만 좀 더 철저히 계획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도 안되는 일이지만 몇일 동안 도로 포장일을 대행해 주며 일단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인건비를 줄이려 인부 한명을 줄이다 보니 날은 덥고 시멘이 굳기 전에 밀대를 밀어야 하는데 부지깽이라도 거들어야 할 판이라 미장 칼을 들고 작업을 돕다가 저혈당 쇼크가 왔는지 두다리가 후덜거리며 주저 앉아 버렸는데, 하늘이 노랗다는 걸 오랫만에 실감했다. 급히 알리가 나무 그늘 아래로 옮겼고 커피를 타다 주어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사장님 몸무게가 여자보다 가볍다며 농담을 건낸다. 

포크레인 기사도 콘크리트 타설에 동원되고 겨우 작업을 마쳤는데 운전하는덴 지장이 없지만 속이 울렁거려 오늘중 당근을 심으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내일 아침 소장과 함께 심기로 했다. 내일부터 삼일간 비소식이 있어 잠시 쉬는 틈을 타서 군산 현장을 다녀 오기로 했다. 군산쪽은 이미 관심에서 지워 버렸지만 콘트리트 타설을 부탁하니 다음주쯤 거기까지만 해주기로 했다. 

일단 응급조치는 했지만 오늘 저녁은 잘먹어야 하는데 마땅히 먹고 싶은 것이 없다. 냉장고 안엔 딸기 사과 참외 군고구마 등 먹거리가 가득한데 별로 땡기질 않는다. 이러다간 금방 부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참외 다섯개에 만원을 주고 샀는데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4개가 남아 있다. 딸기도 냉장고 안에서 말라 비틀어지고 있으니 별일이다. 안먹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는 것만큼 먹는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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