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천계(貴鵠賤鷄)

정삼열 | 2024.04.27 08:52
요즘 아이들의 대화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일단 대답이 단답형이다.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단답형 대답도 '짜증나' '아 씨…' 등이 가득하다. 

대화 도중 딴짓을 자주 한다. 일단 대화예절 자체가 없는데, 도대체 뭘 배웠는지 모를 정도이다.그러다가 갑자기 자기 할소리를 하는 이른바 '4차원'이 참 많다. 

좋은 말로 4차원이지 말귀를 못알아 먹는 게 많다. 거기에다가 조금만 말이 길어지면 요지 파악을 못한다. 난독증처럼 난청증이 있는데, 말이 짧으니 생각이 짧아져서 그냥 듣고 조금만 어려운 것 같으면 짜증을 내며 듣지를 않으려 한다.

그엄 성인이라고 다른가? 요즘 대화의 단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대간의 대화는 문자적으로도 괴리감이 있지만 문화적으로도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가정안에서도 부모 자식간의 대화도 변절되어 가고 있고 부부간에도 그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내 좁은 식견으로 경험된 것들이지만 내 주변을 보면 그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남녀는 노년의 삶에서 그 양태가 확실히 뒤바뀐다. 주변 어르신들의 일상생활을 우연히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들은 틈만 나면 친구들과 만나 사소한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주고받는다. 힘든 일이 생기면 전화통을 붙들고 울고 웃는데 그 감정풀이에 서먹함이란 거의 없다. 이와는 달리 할아버지들은 타인과 어울리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시절 집안일에 갇혔던 할머니와 직장생활을 하며 바깥을 떠돈 할아버지의 처지가 삶의 후반부에서 역전된 셈이다. 이 땅의 남자들은 대화와 감정을 나누는 일이 어색하고 낯설다. 초기 산업화 시대를 거쳐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 시스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자신의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 깨친 까닭이다. 살아 남으려면, 성공을 거두려면 자신의 속마음을, 모종의 의지를 남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말이 안통한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지금 자신의 설교를 다 듣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이는 순진한 발상이다. 내 주변 친구중에 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카토릭으로 옮긴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거의 90% 이상은 설교때문이다. 심한 경우엔 공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내가 어렸을 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유행이었고, 교회와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건 미덕 중에 미덕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에게 순종하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의 종님(?)들에게 순종하는게 믿음좋은 사람이라고 강요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주의 종이란 말조차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왜 이리 되었을까? 시대 탓인가. 18홀을 다 소화하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못보았다는 친구가 있는 데, 요즘도 일년에 10여차례 이상 필리핀에서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골프 투어는 일반 페키지 여행보다 두세배는 비싼편인 데, 그래도 비싼 여행 티켙을 감내하며 필리핀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은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이기에 각종 성장 홀몬, 농약을 과다하게 뿌린다 하여 건강을 생각하여 좀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해외로 원정을 나간다고 한다. 

몇번 국가 경제를 들먹거리며 아직은 귀족 스포츠이지만 한국에도 골프장이 남아 돌아 예전과는 달리 회원권이 없어도 예약할 수 있는 데, 굳이 해외 원정을 뻔질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을 해도 그 맛에 길들여져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는 친구이다. 물론 선교 명목으로 모든 비용은 교회가 부담하기에 걱정할바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귀곡천계(貴鵠賤鷄)란 말이 있다. 멀리 있는 고니를 귀중히 여기고 가까이 있는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텔로 짐을 보내고 골프장으로 직행할 정도이니 더이상 만류하면 우정에 금이 갈까봐 일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입을 닫는 순간 마음의 문도 닫히고 말았다. 말이 안통하고 말귀가 없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나도 일년에 한두번은 해외 여행을 하는 편이지만 나라 밖으로 나갈 때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음식때문이 아니라 언어의 불통이다. 내 외국어 실력은 한마디로 말하면 거의가 보디 랭귀지(body language) 수준인 데, 지금에 와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 보디 랭귀지도 일종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한 종류로, 몸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말하는거라는 뱃짱으로 거침없이 활보하지만 부끄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언어가 달라 뜻이 통하지 않는 건 문화적인 차이기에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데 같은 교회안에서 같은 교단안에서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은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외국인을 대하는 것보다 더 서먹서먹한 사람들이 많다. 교회와 교회, 목사와 목사간에 대화의 단절은 심각한 수준이다. 적대시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모여와 있다가 제자들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의 출신지역을 열거하는 9-11절 사이에서 언급된 지역들인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은 가히 당시의 천하 사방 각지를 다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말이 통하는 역사이다. 말이 안통하는 것보다 더 삶을 답답하고 짜증나게 하며 세상을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있어도 서로서로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면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말을 쓰는 같은 국민들 사이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 일은 수없이 많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말이 안 통하고 여자와 남자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 이북사람과 이남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며 영남 사람과 호남 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 국민과 정치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이 안 통하고, 여당과 야당 사이에도 말이 안 통한다. 

기업가와 근로자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며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간 상실의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단만 해도 이미 같이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했지만 동질감을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선후배를 찾아 볼 수 없고, 동역자 의식은 엿바꿔 먹은지 오래이다. 

영어 좀 못해도 불편할뿐 살아가는 덴 별 지장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끼리 말이 통하지 않아 반목하고 질시하며 마음을 닫고 산다면 주님께선 '이런 웃기는 짬뽕아!'라고 버럭 소리지르실게 뻔한 데, 어쩌려고 그러나? 서로가 말이 다를 때에는 누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면 되는데 통역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다. 선하고 진실한 중재자는 없고 양쪽을 이간시켜서 오히려 자기 이득을 챙기려하거나 이간질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은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다. 

성령의 오심은 단지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게 했을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함께 모든 것을 나누는 삶을 이루는 데에로 나아갔음을 사도행전 2장의 끝 부분인 44-47절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주일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에서 "성령을 믿사오며"에 이어서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러한 삶의 나눔이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나하고 코드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통은 주님이 바라시는 교통이 아니다. 원수된 자의 손을 잡는 것이 진정한 교통이다.  

'거세개탁'은 초나라 충신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로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말이다. 굴원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그 꼴이 됐느냐고 묻자, 굴원이 "온 세상이 흐리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고 답한데서 유래됐다.  

꼭 굴원처럼 살 수는 없지만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사는 상식선을 지키면 좋겠는 데, 이미 말기 암 환자처럼 백약이 별무 소용이고, 그나마 성령의 탄식 소리마저 외면하면서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통대신 이해 타산을 먼저 따지고 코드가 맞는 사람과의 교류에만 힘쓴다면 hole in one을 몇번하고 인증샷을 했어도 주님이 알아 주실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이웃 빈집에서 부추를 많이 캐왔다. 하우스 안에 씨를 뿌려 자라고 있지만 아직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하기에 잡초대신 정원에서 자라도록 옮겨 심었다. 수세미 몇개와 작두콩 모종도 함께 하우스 밖에 심어 여름에 하우스 안의 기온을 약간 떨어 트리려 잔머릴 굴렸다. 아마도 여주 수세미 작두콩이 경쟁적으로 하우스를 덮으면 조금은 시원해질지 모른다.

오늘도 하우스 밖도 영상 30도는 됨직한데 하우스 안은 찜질방이나 다름없는데 그 덕에 각종 작물들이 남의 텃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자랐다. 일찍 수확을 하겠지만 그 대신 일찍 파장할 거라는 생각에 하우스 밖에도 여러 작물들을 심었다. 수입과는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텃밭에 머물며 땀을 흘리는 순간이 도시를 방황하며 주말이라고 싸돌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시간이다. 

내일이 네 의욕이 사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겪었던 날인만큼 오늘은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일을 했다. 손가락에 경련이 생길 정도로 일을 하다보니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너무나 익숙한 컴퓨터 자판이 자꾸 에러를 일으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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