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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결네트워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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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팝 대신 새소릴 들으면서 귀를 순화시키는 중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7/1e329e03dc696675fabe1875e57040211411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등산과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건 머슴들 시켜서 하는 일이라고 일찌감치 단념해 버렸다. 만약 산을 오른다면 그것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함이다. 등산가들은 흔히들&nbsp;이야기하기를 산이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기만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들이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 산이 정상이 없다면 그는 산을 오르지 않을 런지도 모른다. 그가 산을 오르는 것은 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산에 정상이라는 곳이 있으며 그곳에 그에게 희열을 안겨다 줄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조건에 따라 행동하게금 되어있다. 조건부로 하는 건 보람이 없다. 그러나 보상이 없다면 일의 진척도 없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흔히 '내가 댓가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정말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거들먹거리지도 않았어야 한다. 나 역시도 힘이 들거나 짜증이 밀려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몸만 허약한게 아니라 마음도 허약해졌다는 증거일게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촌에가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하는 친구들이 종종있다. 물론 답답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노인네들이 할 일없이 도시에서 교통 혼잡만 일으키니 '혼잡세'를 신설하여 도시에 사는 사람은 주민세를 대폭 상향하고 시골에 사는 사람에겐 '촌구석 장려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nbsp;시골은 말그대로 촌구석이다. 아쉬운게 너무 많고 부족하고 불편한게 사실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구경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nbsp;</div><div><br></div><div>잃은 것이 있는 반면 얻는 것도 많다.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먹거리쯤은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각박하게 살지 않아서 좋다. 소가없으면 구유가 깨끗할진 모르지만 이로 인해 얻는게 많다.&nbsp;선배중에 한분이 나일먹을 수록 도시에서, 그것도 수도권에서, 종합병원 가까이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분이 계시다.&nbsp;</div><div><br></div><div>살면서 응급한 일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전화 한통화면 5분내에 응급차가 달려오고, 119에 연락하면 동네 미친개도 퇴치해주는 데 무슨 대수랴. 다 소용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nbsp;이곳에서 ktx를 타면 용산까지 62분 걸리고 광주까지 33분 걸린다. 동인천에서 청량리까지 전철타는 시간이면 충분하다.&nbsp;</div><div><br></div><div>더 중요한 것은 자식들 옆에 있어 민폐를 끼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한창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짐이되는 것보단 훌훌털고 일어나 시를 쓰고 난을치며 그간에 시간에 쫓겨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는 것도 인생2막에 한번쯤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7/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14124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늘상 주장하는바이지만 할 일없이 도시에서 교통 혼잡을 만들지 말고 과감히(?) 下野하라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강제한다. 도시 거주자에겐 65세 이상에게 주는 복지연금을 한푼도 주지말고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nbsp;&nbsp;서울이나 대도시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내주고 나이를 먹으면 시골에 가서 땅을 일구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nbsp;</div><div><br></div><div>할 일없는 노인네들이 전철이 꽁짜라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노약석을 차지하고 가뜩이나 혼잡한 도시에서 소일거리없이 방황하는게 영 미덥지가 않아서 해보는 소리이다.&nbsp;할 일없이 큰 집 하나씩 차지하고 빈둥거리니 집값이 상승하고 젊은이들 집 장만하느라 똥줄이 타는데, 복지 혜택만 늘리라고 큰소리치는게 정상적인지 묻고 싶다.&nbsp;</div><div><br></div><div>요즘 세태를 꼬집으며 경로 풍토가 사라진다고 개탄할게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가 군더더기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자리를 비워줄 줄 알아야 대접을 받는다. 목회도 그렇다. 2~30대 젊은 목회자들이 몇명 안되는 교인들과 씨름하며 안간 힘을 쓰는 모습을 보노라면 성원과 위로를 드리고 싶다. 그러나 지긋한 나이에 교인 몇명 붙들고 있는 선배나 동역자들을 보면 이젠 세대교체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편이다.&nbsp;</div><div><br></div><div>맞아 죽을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교인 몇명도 버거워하는 처지에 총회 대의원이랍시고 몇일동안 총회를 기웃거리다가 매년 나눠주는 가방 하나씩 받아오는 한심한 모습을 더이상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총회도 오십대까지는 몰라도 60대는 가능하면 안갔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넘겨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nbsp;</div><div><br></div><div>나는 오래 보관해도 사랑받는 묵은지같은 인생이 되길 염원한다. 사각거리는 맛은 없지만 깊은 맛이 있는 묵은 김치같은 존재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발효와 부패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썩는 과정은 쌍둥이처럼 비슷하지만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발효는 긍정적이고 의도적이고 유익한데 반해 부패는 부정적이고 자연발생적이고 유해하다.&nbsp;</div><div><br></div><div>발효의 사전적 의미는 효모나 세균 따위의 미생물이 유기 화합물을 분해하여 알코올류, 유기산류, 이산화 탄소 따위를 생기게 하는 작용을 말하는 데, 좁은 뜻으로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작용을 말한다. 술, 된장, 간장, 치즈, 김치 등이 발효의 산물들이다.</div><div><br></div><div>내 말이 꼭 맟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과 여가활동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는 육체적 발효와 감정과 생각과 신념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는 정신적 발효가 잘 결합하여야 진정한 발효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은퇴 이후 썩은 냄세를 풍기는 것보단 오랜 시간 잘 숙성된 맛을 간직할 수 있도록 발효의 과정을 가지자고 주장하는게 그렇게 싫은 소리인가.</div><div><br></div><div>오늘도 일터로 나가기 전에 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 한다. 공사장에서의 하루 하루가 힘이들긴 하지만 무료하단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의미를 부여하면 아무리 시시한 일이라도 보람을 찾을 수가 있다. 수주받은 일도 오늘 콘크리트 타설을 하면 거의 끝날 것이고 남는 자투리 시간은 인부들과 우리집 마당작업을 했다.&nbsp;</div><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7/2bfabba24a5b28477771d8927f63b4d614135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즘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길어진 석양탓에 두어 시간은 정원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 시간이 많아졌다. 녹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장담할 순 없지만 이젠 회색도시에서 살라해도 살지 못할 정도로 촌스러워졌다. 며칠전 심은 상추씨가 얼굴을 내밀었고 대파 모종도 땅맛을 알았는지 잘 자라고 있어 이들과 조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nbsp;</div><div><br></div><div>요즘 건축일로 마음이 많이 상하여 방황했는데 자라는 식물을 보노라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고 노래한 수필가 이양하는 그 중에서도&nbsp;"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 하나 하나가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nbsp;담록을 띠는 시절" 을 '초록의 청춘 시대' 라고 예찬했다.&nbsp;</div><div><br></div><div>집에서 5분 또는 2km 미만 거리에 공원이나 운동장이 있으면 비만이 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nbsp;나왔다.&nbsp;영국 브리스톨대와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진은 주거지가 공원으로부터&nbsp;2km 이상 떨어져 있으면 그보다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비만이나 과체중이 27%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nbsp;밝혔다.&nbsp;</div><div><br></div><div>인간은 자고로 촌스럽게 살아야 한다.&nbsp;‘촌스럽다’라는 말은 지금까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촌(村)’이라는 단어가 주는 시골스러움 때문이었을까. 다분히 농어촌과 농어민 인을 낮잡아 보는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제 ‘촌스럽다’는 표현은 새로운 차원으로 정립됨이 바람직스럽다. 경쟁력으로의 탄생이다. 촌스럽다는 말은 자연과 가장 가깝다는 말이다.</div><div><br></div><div>나는 잿빛도시에서 녹색 촌으로의 귀향을 했지만 아직은 촌놈 소릴 들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K팝 대신 새소릴 들으면서 귀를 순화시키는 중이다. 일부러 테라스 안에 원탁 식탁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없는 동안은 동네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시켜줄 심산이다. 사유의 시간보단 수다떠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상관없다.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이 예술이었고 숭고한 세월이었을 연배들이기에 너그러워지기로 했다.&nbsp;</div></div><div><br></div><div>밤이되면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벼를 심으려고 논마다 물을 잡아 놓아 개구리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백로들도 개구리 미꾸라지를 잡으려 논에 한가득인 풍경이 여유롭게 보여 참 좋다. 가끔 동네에 손버릇이 나쁜 친구들이 있어 호미 낫 등 농기구들을 훔쳐 가는 바람에 마음이 좋지 않지만 만원도 안가는 농기구들을 훔쳐가는 얼굴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범인을 색출할 생각은 전혀 없다.&nbsp;</div><div><br></div><div>낮에 공사현장으로 동기생 은퇴목사가 불쑥 찾아와 라오스에 다녀 온 걸 질타한다. 자신도 우리 써클에 참여시켜 달라는데 나는 친일파와 극우 세력과는 조우할 생각이 없어 기도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3천만원짜리 농가주택을 구입해 달라는데 애써 구해주면 최소한 300평 정도의 텃밭이 있어야 하고 손볼 곳이 없는 멋진 전원주택이어야 한다는데 그런 재주가 나에게 있을리 만무하기에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50년지기라 거절하기가 어려워 고민해 보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nbsp;</div><div></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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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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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7 May 2026 14:15:2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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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불교 고승과 목사의 평균 수명</title>
			<description><![CDATA[<div><h1 style="padding: 11px 0px 12px; border-bottom: 1px dotted rgb(223, 223, 223);"><font color="#000000" face="Malgun gothic" size="5">◈</font><font size="5"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불교 고승과 목사의 평균 수명</font></h1></div><div><b>1 미국에서 목사의 생명 보험 단가가 제일 높은 것은&nbsp;</b></div><div><b>&nbsp; 모든 직종 중에서 목사가 가장 장수하기 때문이라한다.</b></div><b><div><b><br></b></div>2 한국 불교 고승과 목사의 수명 차이가 20년 이상인 것을</b><div><b>&nbsp; 연구한 이종무(기성, 서울북지방회 원로) 목사에게 감사한다.<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b><div><b><br></b></div><div><b>3 이종무 목사는 스님들은 음식, 공기, 절제된 생활등&nbsp;</b></div><div><b>&nbsp; 건강면에서 목사보다 훨씬&nbsp;</b><b>앞서지만 목사가&nbsp;</b><b>수명이 월등하게&nbsp;</b></div><div><b>&nbsp; 긴 것은&nbsp; 속죄함을 받은&nbsp;</b><b>평안이라는 것을 찾아낸 것을 감사한다.&nbsp;</b></div><div><b><br></b></div><div><b>4 나는 말할 수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 십자가의 피가 나의 죄를&nbsp;</b></div><div><b>&nbsp; &nbsp;힌눈보다 희게 씻김&nbsp;</b><b>받게 하여 내게 강같은 평화가&nbsp;</b></div><div><b>&nbsp; &nbsp;넘치는&nbsp;</b><b>것을 천만번 감사한다.</b></div></div><div><b><br></b></div><div><b>5 찬송가 가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사랑, 속죄, 평안인 것을 감사한다.</b></div><div><b>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b></div><div><b><br></b></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1&amp;uid=9235</link>
			<dc:creator>김승훈</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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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7 May 2026 13:29:5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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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 달란트가 무엇이었던가?</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6/d43286be4167e7c1c55c941256ffce001306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 벌써 한해의 절반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는 생각을 종종한다.</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기능하면 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백 미터 경주에서 가진 힘을 다 해 뛴 사람이 4등을 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요새는 누구나 제각기 단거리 선수가 되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고들 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산다는 것은 곧 뛰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어디에다 채찍을 가하고 무엇을 뉘우쳐야 한다는 말인가.&nbsp;</span><span style="color: rgb(0, 0, 0);">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뛰었던가.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잃을 것도 없는 공백한 두 손, 이것은 어쩌면 자유를 의미한 것이며 이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주는 의도가 아닐까.</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한 무명의 수도승의 일기를 읽었다. "한 가지 작은 일에서 다른 한 가지 일로 몸과 마음을 회전시킬 때도 적잖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편력과 정학을 갈망하는 속성을 가진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체념하고 끊임없이 포기하는 생활의 연속 속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아주 떠나버리는 연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빈손이 되는 연습을 조금씩 해 왔다"는 간결하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산문이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세상이 불안할 때 가진 것을 손에 움켜쥐느라고 안간힘 할 것이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펴고 갈 것은 가라고, 놓아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빈손에는 평화와 자유가 가득 담겨 질 수도 있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고독을 벗하며 적적함으로 동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선천적(?)으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 보질 못했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전 대한민국이 굶어야 했던 보릿고개 끝자락에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추억이 남아있을뿐 고통스러웠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시인 도종환의 자서전적 고백에 기를 기우려 보기도 한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 style="font-size: 16px;"><b style="font-weight: bold;">"내가 울면서 시를 쓰지 않으면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b>는 말엔 내가 울면서 설교하지 않으면 남도 울면서 설교를 듣지 않는다는 뉴앙스가 풍기고 있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울면서 설교를 준비해 보질 못했고 가끔 격한 감정에 눈물을 보인 적은 있었지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근처에도 못가는 삶을 살았다. 철학적이며 사변적(思辨的)인 설교가 대부분이었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일주일 내내 주님의 양무리를 위해 가슴을 쥐어 뜯는 심정으로 울면서 설교 준비를 할 것이고, 강단에 오르면 피 토하는 심정으로 사자후를 외치겠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일반 유행가 가수에게도 히트곡이란게 있다. 몇십년 동안 대중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노래가 있는 데, 나에게는 히트설교(?)가 없다. 그게 나만의 비애였던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열악한 시골교회의 사정엔 아랑곳없이 교회 앞 마당에 고급 세단을 세워 놓고도 교인들이 교회를 드나들 때 이 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고민해 보지 않는 목회자들이 있다. 울면서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 교인만 울리는 교역자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가 가슴으로 울면 교인들은 감동의 웃음으로 교회를 떠나며 힘을 얻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 간다. 반면 목회자가 웃으면 교인들은 눈물을 지으며 또 험한 세상에 나가 한주간을 어떻게 살지를 걱정하게 된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 style="font-size: 16px;"><span style="font-size: medium;">처음 시골에 정착하고 시(詩)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물들과 사물들의 여행이나 움직임에 무척 신기함을 느끼고 눈길이 머물 때가 많았다. 겨울이 찾아오는 시점, 철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데, 그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span><br style="font-size: medium;"><br style="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요즘 작은 미물 하나를 보아도 예사롭게 보질 않는다. 심지어 무더운 여름 날 루드베키아 그늘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느린 여행을 한참동안 따라가 보기도 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의 행로나 심지어는 아직 땔감을 이용하여 밥을 짓는 시골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따라 시선을 따라갈 때도 종종있다.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이지만 나도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삶의 여로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 슬퍼진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그냥 거기에 있을 따름이고 주변의 모든 것은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소리 없이 떠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니,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착색된 풍선과도 같은 인생이 아닌가? 빨간색, 파란색으로 물들여진 물감일 뿐이다. 겉으로는 형형색색의 풍선이지만 바늘만 대면 그대로 터져버릴 순식간의 존재일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구한다. 내려 놓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얻으려고만 한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현역으로 목회하던 시절&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정말 어리석게 살아왔다. 박정희 정권의 삼선 개헌을 반대하며 최류탄을 마시며 화염병을 던지던 투사는 온데 간데없고 안 내려 놓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독재정권과 차원이 다른 것인가? 뭐가 다른가. 교인 하나 안빼앗기려고 혈안이 되었고, 목회자의 아성을 지키려고 안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기를 열망했고, 아장이는 걸음마로 힘겨워 하는 주변의 동역자들에게 아예 눈을 감기 일수였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교회가 전국 랭킹 몇위냐에 혈안이 되었었고 파이를 키우기에 열중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과연 이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목회자가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난 분명 아니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를 가지고 싶어했고, 멸시 천대 십자가가 나에게 찾아올까봐 지레 겁을 먹고 살아왔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6/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307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지금도 모든걸 내려놓자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한껏 욕심을 부리는 세속적인 근성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단출하게 살자고 시골로 내려왔지만 어느새 살림도구가 제법 많이 늘었다. 밥그릇도 몇벌 생겼고, 숟가락 젖가락도 십여벌은 된다. 라면 끓일 냄비 하나 달랑 가지고 내려왔지만 지금은 전자 밥통을 비롯해 없는게 없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물론 내가 산 건 별로없다. 내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이 자기들이 불편하니 가져다 놓은게 전부이지만 하여간 살림이 엄청 불어났다. 근사한 커피 잔은 없지만 머그 잔도 여섯개나 준비되었다. 손님이 열명이면 나머진 종이 컵에 커피를 마셔야 하지만 대장부 살림이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요즘 충청도 공주에 가서 한동안 은퇴목사님이 기거할 집을 짓고 있다. 고향이기도 하지만 막상 낙향하겠다는 결심을 들었을 떄 가능하면 최소 경비로 살만한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고 작정했다. 첩첩산중이긴 하지만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떤 늙은이(?)는 나일 먹을 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갑짝스런 일을 만나면 낭패라는 생각에서 하는 소린가 본 데, 갑짝스런 일을 만나면 하늘나라 가면 그만이지 자식들 고단하게 만들고 도시를 혼잡하게 만드는 건 노인네들이 할 짓이 아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이 소문을 들은 모 은퇴목사 한분이 내일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시골에 월세집을 알아 봐 달라는데 빈집은 많지만 월세집이 있을리만무하지만 일단 만나보려 한다. 짐작하건데, 시골에 집하나 지어 달라는 말같은데 그럴 능력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럴 여유가 있지 못하기에 입장이 곤란하지만 언젠가는 낙향하는 분들을 위해 내 달란트를 활용했으면 좋겠다.&nbsp;&nbsp;</span></p><div><span style="font-size: 16px;"><br></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div><div><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div><div><font color="#000000"><br></font></div><div><font color="#000000"><br></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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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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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6 May 2026 13:08:1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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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름의 시작 입하'(入夏)</title>
			<description><![CDATA[<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5/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41536.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여름의 문턱에 들어 선다는 절기상 입하</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入夏)</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자 어린이날이다. 아직은 아침 저녁엔 쌀쌀하지만 한낮은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한다.&nbsp;</span><font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들녁엔 모내기철을 앞두고 논에 물이 가득하여 농부들의 손이 바뻐지게 생겼다.&nbsp;</span></font><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span></div><div><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동네마다 종묘장이 있어 개인적으로 볍씨를 뿌리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 입하 무렵 비가 내리면 농부들이 엄청 좋아했었다.&nbsp;</span>그래서인지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데,&nbsp;옛날 재래종 벼로 이모작을 하던 시절에는 한창 못자리를 하므로 바람이 불면 씨나락이 몰리게&nbsp;되는데,&nbsp;이때 못자리 물을 빼서 피해를 방지하라는 뜻이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식물이 성장하는 시기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이지만&nbsp;&nbsp;유독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nbsp;</span></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그래서 봄철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라고&nbsp;하는데, 이 무렵을 '보릿고개'라고 하고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목숨을 지탱하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다른 식물들이 모두 소생하는데 홀로 푸르름을 잃는 대나무를 일컬어 어머니를 회상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낌없이 모두를 내어주고 혼자 힘겨워하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 보릿고개는 가혹한 계절이지만 그걸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어버이들이 있었기에 새 죽순이 자랄 수 있었을게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본격적인 영농의 계절이라 그런지 겨우내 사용하지 않던 농기계들이 종힁무진 한다. 남녁의 성급한 곳은 이미 모내기가 시작되었고 촌노들이 대부분이지만 모두 들녁으로 나가 해질 무렵까지 농삿일에 매달린다. 건들거리는 사람이라고는 눈씻고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도 모두 소환당하는 시기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그 당시&nbsp;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하여 끔찍했었다. 나의 모친도&nbsp;오남매를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 내려고 안간힘을 쏟으셨을 것이고, 총 8남매를 낳으셨으니 평생 임신 수유 양육을 반복하셨을 것이다. 가족이 많다 보니 싸구려 옷한벌 얻어 입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nbsp;어려웠을&nbsp;시절이라 옷을 대물림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class="content" style="padding: 20px 0px; line-height: 25.6px;"><font color="#0021b0">밤이되면 희미한 전등 아래에서 오남매의 옷을 수선하느라 바쁘게 재봉틀 돌아가는 소릴 들어야했다. 양말도 거의 꼬매지 않은게 없었다. 아버지 것만 따로 구별되어 있었지 오남매는 덜 꼬맨 걸 차지하려 눈치작전이 벌어졌다. 식사 자리에 앉으면 반찬 투정같은 건 아예 존재하질 않았다. 먹다죽은 귀신은 떼깔이 좋다고&nbsp;배터져 죽는게 소원일 정도였다.&nbsp;&nbsp;&nbsp;&nbsp;&nbsp;</font></div><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추억의 자리에 서있던 풋풋한 청년은 없고 옛일을 회상하는 노년의 시간이 멈칫멈칫 해거름녘, 긴 그림자로 서있다. 그립다. 화폭속의 한 장면 같은 유년의 시간들. 그 시절 그리운 얼굴들은 흐린 기억 속에 저장되고, 그 시간들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열매를 내어주 듯, 우리도 그 시간들을 아름아름 만들어 가고 있다.</font></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자연이 일구어내는 결과물들 앞에서면, 언제나 오묘하고 신비하다. 시작과 끝의 무한 반복은 늘 새롭다. 계절이 오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변화되는 것 같지만 변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에 의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오직 변한 건 인간들뿐이고 내 모습만 바뀌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나는 지금을 중요시한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리 살이 빠졌느냐며 몸관리 좀 하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지금이 가장 숭고(?)한 시간이다.&nbsp;오늘 하루를 살면서 문득 스치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소중히 여기며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 안에서 고운 빛깔의 교훈과 감동을 찾아낼 수 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황금보다 소중하고, 소금보다 소중한 '금'이 바로 '지금'이라고 한다. 바로 지금 떠오르는 것을 적어보면 그것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험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온누리에 퍼져나갈 것이다. 이것은 어디서 얻어야하거나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숙고하는 삶을 다짐하는 내 자신이 주인공일 거라 믿고 있다.&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5/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1416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전에는 나도 꽁짜를 무척 좋아했다. 명절이면 선물이 쌓이는 걸 성공의 척도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짜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누굴 의지하거나 남 탓을 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열심히 살고 싶을뿐이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촌노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촌노들은 지독한 가난속에서도 자식들을 모두 키워 내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33, 176);">지금은 텅빈 집들이 곳곳에 남아 흉가로 변한 집들이 마을마다 몇개씩 있지만 그거야말로 위대한 기적의 산실이었을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나는 시골 사람들은 무식하고 거칠다는 편견을 버린지 오래이다. 모두 위대한 부모님들이다. 자기 몸 하나 운신하기도 어렵지만 아직도 허리 한번 펴질 못하고 일에 내몰리고 있다. 내가 죽겠다고 한숨을 토해낼 때마다 노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저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데 엄살이 너무 심하단 생각이 든다.&nbsp;농사를 짓지 않아도 기초년금이나 경로당에 지원되는 금액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아직 농기구를 손에서 놓질 못한다. 수입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농사일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하루종일 논밭에서 일하는 중이다. 해가 지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오는게 일상이다.&nbsp;</span></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늦은 저녁을 먹고 수요일 밤엔 교회도 가야 한다. 교횔 가봐야 꾸벅꾸벅 졸다가 오지만 한번이라도 빠지면 마치 불경죄라도 지은 것처럼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설교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고 탓해 본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 들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주인의 시중을 들다가 뒤늦게 예배에 참석한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던 사건을 들먹거려선 않된다고 본다.&nbsp; &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나는 시골에서 유년을 보냈다. 땅강아지처럼 흙속에서 뛰놀며 야생적으로 자랐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면서 태어난 세대이기에 가난의 대물림이 여전했고 폭탄을 장난감처럼 매만지던 어린 시절이었다. 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불구가 된 사람들이 동네마다 여럿이었고,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흉허물이 거의 없었던 시절을 보냈었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모양이다. 오늘은 충남 공주에 가서 박목사님네 신축건물의 싱크대 설치와 붙박이 장 설치, 실리콘 작업, 그리고 화장실 장식장 등의 공사를 하였다. 잠시 짬을 내어 공주 시내에 나가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돌아 보았다. 중국인 현장소장은 아직 진시황제의 릉을 가보지 못해서인지 신기해 하는 모습을 보니 우물안 개구리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이면서도 서안은 물론 아직 장가계도 가보지 못했다니 완전 촌놈이다.</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공산성에서 여유롭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벌써 입하이고 조금있으면 입추 입동이 될 거란 생각에 세월이 참 빠르단 생각에 잠겨 보았다. 내일은 인부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옥수수와 토마토 오이 가지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적기인셈인데 이 땐 아무리 초보라 해도 적당히만 심으면 모두가 잘 자라는 시기이다.&nbsp;</span></div><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밤의 고요는 향수 한토박을 끄집어 낸다. 오늘이 입하이지만 올 여름은 조금 힘들게 보낼 것 같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산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면서 이 정도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 욕먹을게 뻔하기에 여름의 한복판을 뚜벅 걸음으로 걷기로 했다. 더위따윈 이미 내 안중에 없다.&nbsp;</font></div></div><div><font color="#0021b0">&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div><font color="#0021b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nbsp;</font></span></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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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5 May 2026 14:18:4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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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title>
			<description><![CDATA[<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1/3b9e0715a7da28d08a2ded4b2f9136db1335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시골에 정착하고 싶다는 사람들 중엔 나에게 과거에 이런 일을 해 보았느냐고 묻는다. 처음&nbsp;귀촌하기로 작정했을 때는 공기좋은 곳에서&nbsp;여유작작하면서 에너지를 충전받으려 했던게 사실이지만 시골생활이 그렇게 눅눅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정착 초기부터 느껴졌고, 차라리 그것이 몸은 고달프지만 정신 건강엔 더없이 좋다는 걸 알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보다 더 고독한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있으며, 나보다 더 괴로운 사람이 천지 사방에 한둘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태어나면서 뇌성마비에 걸린 딸을 키우면서 말못할 괴로움속에 평생을 사는 친구가 있다. 하나 둘이 아니다. 후배중에도 뇌성마비에 걸린 아들 때문에 전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했던 후배도 있다. 아버지는 직장 생활을 하니 그렇다치고,&nbsp;불구 자식을 둔 어머니는 평생동안 외출한번 해보질 못하고 30년동안을 갇혀 살다시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한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죽지 못 해 사는 분들이다. 나 역시 가진 것이 미천하고 자랑할만한 것이 없어 죽을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 비하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나이 서른이 다된 자식이 사지가 뒤틀어지고 방안에만 누어 있다면 그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차라리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너무 감사를 잊고 살고 있다. 남에게 빌어 먹을 입만 가지고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나는 내 전생애를 통털어 몇번의 위기의 순간을 맛보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겨 왔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건널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아 고민이 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연한 기회에 癌이란 진단을 받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담임목사님에게도 수술 당일날까지 병명을 말하지 않았다. 수술 날짜도 일체 비밀에 붙혔다. 아내와 딸들은 꼭 알아야 했기에 병원으로 불러 들였을뿐 소장에게도 일체 함구령을 내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수술 날짜를 잡고도 이미 오래전 매매한 집 마당에 콘크릿 타설작업을 해달라고 졸라 대는 바람에 입원 전날까지 수백만원을 들여 공사를 마쳐주고 입원하는 당일날 현장에 들려 소장에게 일을 지시해 놓고 혼자서 뚜벅 걸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소장은 날 실성한 사람 취급을 한다. 본인이 죽게 생겼는데 안해줘도 될일을 자원하는게 이해되지 않는가 보다. 사실은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른다. 그냥 그게 마음이 편하기에 결단했을뿐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만 내 안에 암덩어리를 키운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이미 지름이 7cm로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위급 지경이었지만 군산에 공사를 수주해 진행하고 있기에 일단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공정을 서둘러 끝마무리를 하고 수술을 받으려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로봇 수술의 대가로 정평이 난 교수의 집도로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것이 조그마한 위안이었지만 생사여탈이 사람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기에 마취가 시작되기 전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내 몸안에 암덩이가 오래전 부터 자라고 있었지만 그걸 모르고 기고만장한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수술실로 향하면서 아마도 속울음을 지으며 따르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3/06/04/e19a996d730696974589af61b92a8bab13314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느 누구도 일만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구와 특성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남자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에 이끌려 생활해 왔는지를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 역시 한동안 건강상 시골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일단 두려운 마음이 들고 강단에서 반평생을 보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거란 선입견이 강한 상태로 반거충이 시간을 보냈다. 혹자는, 시골생활에 정착하기 위해 몇년동안 준비를 했느냐고 묻지만 무작정 도시를 탈출했고, 인간 군상을 피해 숨고 싶은 생각뿐 미래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무모한 도전을 한 사람이란 말이 잘 믿겨지질 않는 모양이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사실이 그랬다. 자연인으로 살고 싶지만 아예 자연 자체를 모르기에 더 공부를 많이 했고, 남들보다 아는게 없기에 더욱 열심히 몸부림을 치고 있을뿐이었다.&nbsp;아직도 나는&nbsp;슬픈 일에 슬퍼하지 못하고, 울음을 참는 경우가 많다. 자연인으로 살고자 하지만 몸에 밴 관습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nbsp;</div><div><br></div><div>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돕고, 소리내서 울음으로써 고통을 줄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줄어들게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것을 참게되면서 속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그로인해서 건강을 해치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약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현재 격고있는 괴로움과 상황을 가족들에게 터놓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끙끙대다보니 이러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괴로움 등을 혼자서 감당하고 해결하려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 역시 엄청나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div>마침내 오일만에 라오스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던가? 영원한 소년으로 살았던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는 점을 실천하며 살았고 카우틸랴는 '동행 없이 여행하지 말라.'고 했으며&nbsp;독일이 낳은 천재적 작곡가 바그너는 '방랑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말을 남겼다.&nbsp;</div><div><br></div><div>그래서 일까. 나는 가끔 여행의 충동에 사로잡혀 짐을&nbsp;싸는 버릇이 있지만, 물론 '호기심이란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여행을 떠나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자 고울드 스미스의 말을 머리에 담은 채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잠시 후에 만날 이국땅의 정취를 상상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nbsp;</div><div><br></div><div>내 지론인즉, 여행이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 가면 늦는다는 걸 늘상 강조한다. 난 돈과 시간적&nbsp;여유가 있어 여행을 떠난 본 적이 없다. 또한 여행 성수기에 떠난 기억이 별로 없다. 일행에게 민폐가 되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가 보려고 작정했었다.&nbsp;지금쯤 일행들 모두는 밀린 잠에 빠져 들었을 것이다. 난 간밤에 야간 비행을 하면서 갈 때처럼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로 뜬 눈으로 깊은 고민을 하며 돌아왔다. 인간 군상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크기에 마음 아파하는지도 모르겠다.&nbsp;</div></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1/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13365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숨가프게 보낸 지난 몇일 동안의 일들로 공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 스스로 그 문제를 지상명령처럼 받아들이고 나약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 도리질을 한다.&nbsp;</div><div><br></div><div>내 문제는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게 아니기에 주님꼐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믿고 내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내가 사투를 벌리고 있는 이 곳 시골은 과거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곳이고, 내가 흙을 매만지며 살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건축일도 마찮가지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척박한 환경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사치스런 발상이라 생각한지 오래이다. 오히려 극한(極限)의 환경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걸 기회로 삼기로 했기에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박하지도 않다.&nbsp;</div><div><br></div><div>나는&nbsp;『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신봉했다.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니 그것은 무지를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식과 예민한 안목 그리고 높은 인격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으며,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연출과 적당히 예의 바른 미소,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짧고 인상적인 멘트 하나면,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nbsp;</div><div><br></div></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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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01 May 2026 13:38:0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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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태우 대통령 산소를 다녀오다.</title>
			<description><![CDATA[오늘 아내와 전 육군군종감 홍순영 목사와&nbsp; 파주<div>경모공원에 안장된 노태우대통령산소를 다녀왔다.<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br></div><div>그가 6공화국을 일으키고&nbsp;</div><div>민주화 하는 일에 큰 공을 세웠기에 폐부에서</div><div>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모했다.</div><div><br></div><div>지난날 그와 함께한 일들이 주마등 처럼</div><div>지나간다. 그를아는 자들은 누구나 그의</div><div>인격에 감동한다.</div><div><br></div><div>그는 89세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nbsp;</div><div>10년은 소뇌위축증으로 투병생활을 하였다.&nbsp;</div><div>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1&amp;uid=9231</link>
			<dc:creator>김승훈</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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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30 Apr 2026 13:49:4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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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Laos VIentien으로 가는 길</title>
			<description><![CDATA[<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6/6453608f6e361aea9e96e308d3bf89fb1242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오늘밤 라오스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도 이번이 여섯번째 인 것 같은데 아직 라오스를 가보지 않은 빛고을 박목사님과 담임목사 그리고 임석빈 형을 위해 여행지를 정했지만 여행 매니아인 당진 박목사님은 이미 라오스를 다녀 온 것 같은데 우리 여행팀에서 단 한명이라도 안가본 곳이 있다면 모두가 어게인에 인색하지 않기에 우기가 시작되기전 날짜를 잡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 늦게 알려지기 시작한 라오스는 미얀마와 함께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사람들, 여행자들에게 가장 친절한 나라로 극찬을 받은 곳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다정한 웃음을 보여주는 라오스 사람들. 그들이 있어 여행동안 행복했고&nbsp;라오스는 한번 여행으로 끝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메콩 강과 접한 비안티안(Vientiane)은 강 건너 태국 취북단의 소도시인 농카이보다 작게 느껴지는 도시다. 한 나라의 수도이지만 지방 소도시 느낌이 더 강하다. 높은 건물도 없고, 작은 도시이다. 수도인 비엔티안은 불교의 나라답게 크고 웅장한 사찰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석가모니의 머리카락과 사리 등을 보관하고 있는 탓루앙에는 성지순례를 하는 이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성지이자 라오스민들의 자존심이라 평가되는 곳이다. 탑 주변을 세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 하여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nbsp;&nbsp;해가 채 뜨기도 전 불교신도들은 길에서 무릎을 꿇고 누군가를 기다린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새벽내음과 함께 다가오는 이들은 황갈색 장삼을 걸친 수도승들. 신도들은 미리 준비한 그릇속의 음식을 수도승의 발우에 떠 넣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그릇을 비우고, 다른 이들을 채운다. 이것이 탁발 정신이다. 라오스인들은 어느 것 하나 인상 쓰거나 큰 소리 내는 법이 없다.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눈앞 현지인들의 순박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금 불편해도, 조금 느려도, 조금 가난해도 이들은 행복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욕심을 비우고 오늘의 행복을 사는 이들이 삶을 꾸려가는 곳.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택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길에서 만나는 라오스민들은 수줍게 웃는다. "싸바잇디" 인사를 건네면 붉어진 얼굴을 감싸며 먼저 미소로 답한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라오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꽃, '독잠파'의 은은한 향과도 닮았다. 나는 이번 라오스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하지만 라오스는 관광지가 아니라 거대한 역사 박물관이고,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서 진정한 치유를 받고 돌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하려 한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켜켜이 겹쳐진 산과 그 속을 흐르는 물줄기. 막을 걷어 올리듯 그 속으로 들어가다보면 잔잔한 강물소리는 어느덧 위로의 말처럼,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흐른다. 그제서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또 다른 채움을 얻는다. 비워야 다시 채울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도 그 하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수줍어하고 들어내기를 꺼려하는 라오족과 문명과 담쌓고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도차이나의 작은 나라 라오스를 관통하는 메콩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죽기전에 가보아야할 여행지로 선정된 이후로 꽤나 인기가 많아진 라오스. 나에게 "라오스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라고 묻는다면 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방비엥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3년쯤 되었을까? 티웨이 항공으로 라오스를 방문했을 떄 아무래도 국적기이긴 하지만 190석에 불과한 저가 항공으로 소형 비행기이기에 기내 서비스는 기대할 수도 없었거니와 기류가 좋지 않은 우기에 동남아로 가는게 약간은 꺼림칙 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엔 라오항공을 이용하기로 했고 야간 비행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 작정했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그 당시 늦은 오후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상하이를 지날 무렵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 여기 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니 더 불안해져 괜히 소형 항공기를 이용했다는 후회가 밀려 왔었다. 라오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 편안한 휴식은 커녕 불안감 속에 다섯시간 동안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수없이 외워야 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기내엔 지금 어디쯤 비행하는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도 없을뿐만 아니라 아예 TV도 없고 음료수나 커피도 직접 사먹어야 하기에 역시 싼게 비지떡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그 떄 여행 중 내 생전에 보았던 천둥과 번개보다 더 많은 천둥 번개를 라오스 하늘을 나르며 목격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줄잡아 큰 것만 백여개를 보았는데, 구름 아래쪽에서 불이 번쩍이는 모습이 장관이었으며 다행히 번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리치기에 비행하는 도중은 염려할게 없으나 착륙할 때가 염려되기도 했다. 동행한 친구 녀석은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잠이 드는데, 워낙 기체가 흔들리니 불안한지 자꾸 말을 걸어 온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난 비행기는 이착륙 5분간이 문제지 일단 고도에 진입하면 추락할 확률은 1/4000000이라고 애써 강조했지만 나 역시 불안한 것은 마찮가지였다. 이럴 땐 기장이 한마디 하면 승객들이 안심할텐데, 일언반구가 없으니 더 답답했다. 기장은 비행기만 잘 조종하면 되는데 아니라 승객을 안심시키는 것도 의무일텐데, 스피커가 고장이라도 난양 말이 없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6/c63bf36054be993c97a112dcaf0c743b12441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목사의 책무도 비슷하다. 잘하는 목회는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 교인들을 안심시키고 목적지까지 잘 인도하는 것일게다.&nbsp;무뚝뚝한 나로인하여 답답했을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라오스까지 다섯 시간동안 내내 기체가 흔들렸지만 착륙하는 순간엔 거짓말처럼 날이 좋아져 드디어 라오스의수도 비안티안(Vientiane) 공항에 안착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허스름한 호텔에서 일박하고&nbsp;황토색 메콩 강이 천천히 흐르는 비안티안(Vientiane) 시내 투어에 나섰다. 비엔티엔의 원래 이름은 &lt;달의 도시&gt;라는 뜻을 가진 '위앙짠'인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위앙짠이라는 이름을 유럽풍으로 바꿔서 비엔티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맨 먼저 찾은 곳은 독립기념문 빠뚜싸이(Patouxai)였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프랑스 식민지였던 라오스가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따 또 다른 개선문을 만들었다는 점은 아이러니기도 하지만 프랑스에 대한 증오보다는 오래 전 부터 태국의 지배를 받아 왔기에 오히려 프랑스 통치를 더 선호했다는 말을 듣고 일면 수긍이 갔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 파투사이는 1960년대 라오스 전사를 기린 기녑탑이라는데, 미국에서 공항 활주로 건설에 쓰라고 보낸 시멘트로 기념탑을 만들었다고 한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방비엥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해마다 여행자들이 증가해, 지금은 여행자 천국으로 변해버린 곳.</p><p style="border: 0px;">무엇보다 한가한 자연과 저렴한 물가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고, 메콩강의 지류인 쏭 강(Nam Song)을 끼고 오른쪽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강 건너에는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낮은 산봉우리가 겹겹이 이어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내가 가 본 나라 중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곳중 한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하루종일 튜브, 카약 타기, 동굴 탐험, 점핑 포인트, 소수민족 마을 방문 등, 수많은 액티비티를 제공하는 방비엥! 물론 라오스의 수도 바엔티엔도 수많은 세계 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좋은 곳이다. 여행자들을 사로잡는 이 도시만의 매력은 유럽과 아시아를 한곳에 조화시켜 놓은 독특한 분위기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거주지 그리고 각종 불교사원들은 중앙 비엔티엔의 풍경을 압도하며, 독특한 그들만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비엔티엔을 떠나 마치 한계령을 넘는 듯한 꼬불 꼬불한 비포장이나 다름없는 길을 네시간에 걸쳐 달려 간 방비엥(Vangviang/왕위양)은 건기 최고의 관광지로 12월부터 4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한마디로 잘먹고 잘 놀 수 있는 천혜의 휴식처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라오스의 계림으로 칭하기에 충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닌 방비엥은 메콩강을 따라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과 많은 동굴들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방비엥은 여행자들이 마치 그림 속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유유히 흐르는 송강 처럼 마음이 느릿해지면서 왜 아둥바둥 살았는지를 후회하게 만드는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먹거리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코끝을 찌르는 향신료와 우리와 다른 야채가 식단을 괴롭힌다. 그렇다고 매일 햄버거를 먹을 수도 없고 입에 맞는다고 쌀국수로 매 끼니를 때울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불편한 것 몇가지를 감수하면 방비엥은 인도차이나의 에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쏭강(NamSong)을 따라 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13번 국도와 이어지는 다운타운이 길게 도심을 형성하고 있는 방비엥. 상권이 형성된 도심에 모여 사는 원주민이라고 해야 고작 몇 만에 불과하지만 성수기인 건기에는 주민보다 외국인이 많을 정도로 여행객이 북적거리는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im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9/07/06/97f0b8557fb87908367514afc96e99d3121249.jpg" style="margin: 0px; padding: 0px;">훤한 대낮에, 젊은 여성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밤늦도록 여러 나라의 언어가 한데 뒤섞여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는 천국.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인도차이나 최빈국이라는 라오스에 유럽의 휴양지를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자전거로 한 시간이면 구석구석 다 둘러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 방비엥.&nbsp;이토록 작은 마을에 무엇이 있어서 많은 여행자들은 그 고생길을 견디며 이곳으로 흘러 오는 걸까?</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아름다운 자연과 여유를 먼저 떠올리지만 방비엥에서 찾은 진짜 매력은 그런게 아니다.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소들과 반갑게 인사라도 할려고 손을 내밀면 저만치 도망가 버리는 순진한 아이들.&nbsp;나무 뒤에 숨어 얼굴만 쏘옥 내밀고는 관광객을 쳐다보는 그 아이의 눈빛에서 순진한 표정에서 방비엥의 진짜 매력을 발견한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방비엔을 방문하는 사람들은&nbsp;일명 튜브킹과 캬야킹(Kayaking)을 필수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절벽에서 줄을 타고 하강하여 강물로 뛰어드는 짜릿한 체험을 즐기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는 즐길 거리중에 하나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물론 나도 군목시절 동북 유격장에서 점핑했던 경험을 살려 여러차례 몸을 날렸다. 새처럼 날고 싶었다. 가능하면 목표 지점에 이르기 전에 손을 놓아 급류속을 헤험치는 짜릿함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방비엥의 강과 산악지형 사이에 남송 강을 노을 저어 가로지르는 카야킹과 튜브를 타고 동굴을 탐험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점핑이 압권이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방비엥에서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몬도가네 시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nbsp;원래 아침에만 여는 시장이었으나 관광객의 증가로 하루종일 여는 시장으로 발전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바나나 꽃등의 야채와 함께 도마뱀, 개미, 박쥐, 야생동물등 다양한 곤충과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비위가 약해 몬도가내식 요리를 맛보진 못했지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먹었던 메뚜기 튀김은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사실 내가 재래 시장을 고집한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두리안을 비롯 망고 망고스틴 등 열대과일 때문이었다. 싱싱한 것보다 완전 숙성된 것으로 골라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데, 시장 사람들이 게걸스럽게 먹는 우릴 보며 신기해 한다.&nbsp;</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접은지 오래이다. 오늘 여행하는 라오스에 손주들을 데리고 또 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회가 찾아 왔을 때 질릴 정도로 먹어 둬야 한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이번에도 라오스인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nbsp;한 때 제국을 호령했던 라오인들의 애환을 담고 인도양으로&nbsp;도도하게 흐르는 Mekong River는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nbsp; 모르는지 급물살이 되어 무심히 흘러만 가고 있을 것이고 내 인생도 따라 흐를게 분명하다.</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0</guid>
			<dc:date>Sun, 26 Apr 2026 12:46:41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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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세상엔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4/d84f19782b7ecfc891ad36d0889155da21532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내가 자란 동네의 골목길을 자주 찾는 편이다. 아직도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여 눈여겨 살펴보곤 한다. 추억이 물씬 풍기는 그 길은 아직도 여전하지만&nbsp;골목은 도시의 외곽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사라져가는 주거문화가 됐다.&nbsp;</div><div><br></div><div>골목을 만들어내는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재개발에 밀려 부서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웃도 사라졌다.&nbsp;어슴푸레한 새벽, 리어카를 끌며 부지런히 걷는 청소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 집 앞을 쓸려고 나온 할아버지들의 인사 소리로 골목의 하루는 시작된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평상 하나만 놓이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날 ‘밖에서 놀기’는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심 속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뛰놀 수 있는 골목길 찾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아이들도 게임기, 스마트 폰 등으로 집 밖에서 노는 것 보다는 집 안이나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해가 뉘엿뉘엿 지거나 밥 때가 돼 어머니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바깥에서 놀며 지내던 여름의 긴 오후를 나는 기분 좋게 기억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 손자들이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이야길 끄집어 낼까를 궁금히 여긴다. 군산시 서수면엔 초등학교가 세개가 있지만 세학교를 통털어 30명이 안된다. 운동회도 연합으로 하지만 학급 체육시간보다 못하다. 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다. 농촌으로 시집올 처녀가 없으니 그 자릴 베트남 꽁가이들이 채워 버린 결과물이기도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히려 순수 토종 혈종이 역차별 받는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이다. 결국 세개의 학교가 하나로 통합되고 말았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미래가 불투명하다. 내 손주들도 모두 인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할에비와의 추억도 자주 만들지 못한다. 먼훗날 이 할에빌 기억이나 할까. 물론 인간은 모두가 잊혀질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이면 괜히 심숭생숭하면서 향수에 젖어 궁상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나이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니까 13세 정도무렵 충남 공주군 이인면 달산리까지 기차 한번 버스 세번을 갈아타면서 할아버지네 집을 놀러 다녔다. 비포장 도로인지라 거의 하루종일 가야하는 고행길이었지만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뻔질나게 방문을 했다. 호적초본을 제출하려면 면서기가 직접 밤새워 수기로 만들어 줘야 하기에 이틀 정도는 소요되는 본가 방문을 해야했었고 그 때 내 뿌리가 어디인지, 누구의 자손인지를 귀가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가르쳐 주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요즘 내 지친 모습을 보면서 노구를 끌고 힘겹게 노후를 보내셨던 선친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울적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한 세상을 살다 가지만 난생처음 늙어 보는 일이기에 기력이 없을 땐 인생무상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을 비관만 하는 건 아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잎이 지닌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모양과 색깔들이 크겠지만 잠시 피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피어 있는 시간은 짧다.&nbsp;</div><div><br></div><div>생각해보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사시사철 피어 있다면 누구든 지겨워지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도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세상엔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그 중에 벚꽃은 시간이 짧아서 더욱 아름답다. 지나치게 붉지 않아서, 피기 시작하면 봄에 내린 눈처럼 세상을 온통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이지만 아쉽게도 2주일을 채 못 간다.&nbsp;</div><div><br></div><div>어찌나 연약한지 중간에 비라도 한번 내리면 큰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1년에 딱 한 번 벚꽃이 필 때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꽃은 수명이 짧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벚꽃을 보노라면 나일 먹어 간다는 반증이라도 되는양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종종있다. 우리 삶의 기억 안에는 ‘추억’이라는 것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4/b9e540085c2f69f21fb914d28d87437321544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추억’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숨어 지내다 우리가 예견치 못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감정선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곤 한다.&nbsp;</div><div><br></div><div>내가 어렸을 땐, 구슬치기 딱지치기가 일상 놀이였다. 하다못해 사이다 병마개를 넓게 펴서 그것도 따먹기를 했을 정도였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까닭이었으리라.&nbsp;계집애들은 머리핀을 따먹기 하였으며 농한기로 접어들면 노름이 성행하여 마을마다 폐가 망신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야간도주를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nbsp;</div><div><br></div><div>조금은 부조화하게 생겨나는 현대식 건물과 상점들로 리모델링되는&nbsp;공간을 안타까워했다. 아마도 이렇게 변화되는 모습에 그의 추억이 빼앗기게 되는 데 대한 불안함이었는지 모른다. 옛것의 순박함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가 융화될 순 없을까. 긴말 할 필요없이 나는 ‘조화’라는 단어로 답을 얻었다. 분명히 많은 곳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재해석과 그 가치를 다시 인정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존재한다. 그러한 노력이 잃어버린 고향을 온전히 다시 찾아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nbsp;</div><div><br></div><div>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바뀌고 길도 사라져 전혀 다른 곳이 돼 있는 것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다.&nbsp; 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는 내 머리와 가슴속에 정지돼 있는 기억의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효율과 기능만을 강조한 도시는 사람의 정서와 심미적인 부분을 경시하기 때문에 시민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래된 곳을 보살피는 도시개발이라야 의미가 있다.&nbsp;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nbsp;사람들의 추억을 담긴 도심의 골목길들을 없애지 말고 보전해야 한다.&nbsp;</div><div><br></div><div>매월 16일면 고등학교 16회 동기들이 모인다. 한번인가 참석했다가 그만 두었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지나간 세월의 추억을 불러내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전혀 유익이 없는 모임으로 변절되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 핑게를 대며 매월 16일을 기피한다. 어쩜 친구 등을 보노라면 60년대에 머물러 사는지 이해 안갈 때가 있다. 생각하는게 유치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는&nbsp;단말마적(斷末摩的)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 작정했다.&nbsp;</div><div><br></div><div>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나일 먹어가면서 점점 옹졸해지는 것 같다.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몇시간 머물기가 거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난 화를 잘 안내지만 한번 감정이 상하면 최하 3년은 간다. 아예 절교해 버린 친구도 여럿이다. 내 스스로 못된 버릇이라고 질책하지만 좀처럼 고쳐질 것 같지 않다.&nbsp;</div><div><br></div><div>사내다움(?)이 없는게 사실이다. 박터지게 싸우다가도 막걸리 한잔 먹고 툴툴 털어버리는 사람을&nbsp;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싸우지 않으려 하고 최대한 양보하며 살려 노력중이다. 잘나갈 땐 친구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을뿐만 아니라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처럼 왠만하면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세월이란 천변만화(千變萬化)하기에 모든게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어 내 스스로 대화를 이어 갈 자신이 없기에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립을 자초한다.&nbsp;세월이 흘러 모습이 변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기억이 퇴색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어릴적 친구들이 가끔 수소문하여 날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가능하면 만남을 기피한다.&nbsp;</div><div><br></div><div>한 때는 그렇게 다정했었는데 얼굴이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그리움이란 추억속에&nbsp;남아 있길 소원했는지도 모른다.&nbsp;만나면 할 말이 무진장 많이 남아 있을줄 알았는 데, 사실은 그 간의 단절이 가져온 여백이 너무나 커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nbsp; 많다. 어쩜 그냥 그리움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게 아름답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핑게를 대며 만남을 피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4/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21554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일 주일예배를 드리고 밤엔 인천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아직 짐을 싸지 못했지만 몇달전 여행을 다녀 온 이루 짐을 풀지 않았기에 라오스 날씨를 감안하여 티셔츠 몇개만 바꿔 끼우면 될 일이다. 물론 신라면도 날짜를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약간 유통기간이 지났어도 상관없다. 짧은 여행이지만 오늘은 텃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내일 상추와 열무를 심고 가려고 공사장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div><div><br></div><div>한동안 공주 현장을 오가다 보니 새벽 5시에 출근하고 밤에 들어 오다보니 풀을 뽑지 못했는데 너무도 볼썽사나워 오늘은 두문불출하고 집에 있을 생각이다. 대신 우리집 상공을 오가는 비행기의 비행운을 바라보며 임석빈 형을 비롯 은퇴목사님들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nbsp;&nbsp;</div><div><br></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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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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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4 Apr 2026 21:58:0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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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원숭이 같은 노후생활</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3/688b8a4423a01a1fb3c517de2ea43f4523373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최근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짜로 위장된 불량상품’이 세계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자 중국 정부는 관련된 담담공무원의 책임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이런 조치를 두고 ‘원숭이를 겁주려면 닭을 몇 마리 죽여라’라는 중국의 유명한 속담이 적용된 것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국의 자본주의가 무질서와 무법이 요동치는 ‘난장판’을 해소해보겠다는 궁여지책인지도 모른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국이 가짜상품이 판을 치는 곳이라면 우리사회는 가짜 사람이 가짜 학력으로 어엿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짜라는 멍에로 중국이 요즘 뭇매를 맞고 있지만 우리라고 그 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김건희의 학위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엉터리 가짜 학위로 사회를 속이고 활개 치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허언증(虛言症)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거나,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왜곡하여 말하는 것을 말하는데&nbsp;'공상허언증'이라고도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만, 본인이 하는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다는 데 이 증상의 어려움이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병적 허언과 회상착오가 반복되면 공상허언증, 사기병과 연결되면 '뮌흐하우젠증후군'으로 부르는데, 자신이 행한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증상으로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 pathological lying)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상인이라도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891년 안톤 델브뤼크(Anton Delbrueck)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달리 허언증은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가장 혐오스런 거짓말은, 가장 진실에 가까운 허언(虛言)이다”.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가짜가 판을 치는 것은 허황된 욕심(慾心)이 원인이다. 욕심은&nbsp;모든 죄악과 실패 그리고 인간관계를 해치는 원인이므로&nbsp;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리려고 애를 써보지만 버려지지 않는 마음쓰레기 중 하나이다.&nbsp;욕심이란 말의 사전적(辭典的)&nbsp;의미는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하거나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설명되는 부정적인 말이다.&nbsp;</div><div><br></div><div>옛말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가 어렵지, 일단 타면 호랑이가 멈추기 전까지는 내려올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가짜 인생을 살아온&nbsp;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사회 규범이나 규칙, 법의 권위를 우습게 생각하고 자신의 행위를 다양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한다. 범죄학적으로 이들의 자기합리화 행태를 ‘중화이론(中和理論)’이라고&nbsp;하는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해 스스로가 져야 할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따라서 죄책감도 없다. 허언증과 유사한 증상으로는 소설 속 인물에서 유래한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이 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한다.&nbsp;</div><div><br></div><div>실패하여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정신없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듣고 새겨야 할 말이 “너 자신을 알라(gnōthi seauton,&nbsp;그노티 세아우톤)”라는 서양 잠언이다.&nbsp;이 말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Delphoi)의 아폴론(Apollon)신전 현관기둥에 새겨져 있었다는 말로,&nbsp;철인(哲人)&nbsp;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혜가 신(神)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 대한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 하여 이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출발점에 두었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3/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233901.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무지를 자각한다는 말은 지금 내가 알고 있은 모든 것이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어야 한다는 뜻으로 무지를 자각한 후 거기서 출발하여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nbsp;따라서 철인(哲人)이 아닌 한낱 생활인이라 할지라도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욕심은 순리(順理)에는 소극적이면서도 비리(非理)에는 극성(極盛)이라 할 정도로 아주 적극적이기 때문에 결국 극성지패(極盛之敗)하게 된다.&nbsp;</div><div><br></div><div>극성지패란 지나치게 적극적이고 드센 태도나 행동을 극성이라 하고,&nbsp;극성을 떨면 얼마 못 가서 실패한다는 말이다. 최소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허언(虛言)은 하지 말아야 한다.&nbsp;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우리도 어느정도의 허언증을 갖고 있다. 성형수술 한다고 자녀가 이쁘게 태어날까? 하지만 그렇게 믿으며 행동하지 않는가?“왕년에 내가…”를 자주 외친다고 정말 왕년으로 돌아갈까?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을 자랑한다고 내가 유명인사가 될까?&nbsp;</div><div><br></div><div>하지만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불완전한 실상 그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심지어 우리의 약함을 강함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불완전함은 수치가 아니라 선물이다.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div><div><br></div><div><div>곳곳에 대형교회당 건물은 우뚝우뚝 솟아오르고 있지만 그에 비해서 사회가 깨끗해지고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본당, 교육관 등 하드웨어는 갖춰져 있지만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성숙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을 찾기가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div><div><br></div><div>교회성장은 이미 정지 됐으며 사회에 미치는 교인들의 영향력 성적표는 낙제 점수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요인들 가운데 목회자들의 성직의식 퇴조와 창의력 상실 등이 무시 못 할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이 문제에 관한한 왈가왈부 자체가 터부시 되어온 까닭이다.&nbsp;</div><div><br></div><div>최근 한국교회에서는 철저한 자기부정과 끊임없는 개혁을 통해 현상타파의 목회에 도전하는 목회자는 줄어드는 대신 일단 커진 교회를 단순히 순환적으로 목회하려는 관리형 목회자가 급증하고 있다.</div><div>이들의 허언증은 이미 도를 넘는 수준이다.&nbsp;</div><div><br></div><div>허언증은 빨리 치료받는게 중요하다. 성취욕구가 매우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허언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남에게 과시하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div><div><br></div><div>그러다 이러한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거짓말은 점점 커지고 정교해진다.&nbsp;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이 가능한가?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거짓말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위에서 다룬 거짓말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거짓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가벼운 거짓말을 넘어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nbsp;</div><div><br></div><div>범죄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거짓말은 제외하고 본인이 의식하지 않고 하는 병적인 거짓말과 거짓이란걸 의식하면서도 충동적으로 나오는 거짓말들에&nbsp;대한 반성을 내 스스로 내리면서 이 글을 적어 나간다.</div><div><br></div><div><div>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이 들어도 존경받는지, 존중받는지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nbsp;나이를 먹어도 허풍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나잇값을 못하는 거다. 나이의 무게만큼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nbsp;다른 세상으로 갈 날이 날마다 가까워 가고 있는데 나의 곳간이 점점 쌓여간다면 불행한 일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뿐 아니라 다른 욕심도 마찬가지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3/0f19efb7eb7714c60ef7a67e81f409a923420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특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되지 않아야 한다.&nbsp;공자께서 70살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하여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허튼 욕심을 갖지 않는 태도도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nbsp;공자께서는 40살도 불혹(不惑)이라고 하여 욕심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물론 모든 욕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욕심을 찾는 것은 평생 기쁜 일이다.&nbsp;내 주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 나이에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네.”라는 한탄의 소리를 낸다.&nbsp;언제부턴가 자주 입 밖으로 내놓는 말이다. 70대가 되면서 느끼는 상실감 때문이라 여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nbsp;나잇값을 못 했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나잇살, 나이값이란 소릴 듣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젊은이들에게 잔소릴 안하기로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민폐(民弊)가 될 것 같으면 아예 그런 자릴 만들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노력중이다.&nbsp;노인이 되면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진다. 우울증 경향이 늘어난다. 융통성이 없어지고 사고가 경직되어 간다. 또한 늙어가면서 옹고집, 고집불통이 되어가는 경향이 많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판단하에 자기주장만한다.&nbsp;</div><div><br></div><div>늙으면 자꾸 과거만 돌아본다.&nbsp;왕년에 한가닥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도 옛날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이지만 그만큼 늙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친숙한 물건에 애착이 많다. 옛날에는 나도 새로운 것으로 자주 바꾸곤했는데, 이제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한다. 자기중심이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가족 , 자기 식구, 자기 자식 생각만한다.&nbsp;</div><div><br></div><div><div>원숭이 같은 노후생활을 참다운 사람의 노후생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장수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경우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예의를 차린다. 왜 이렇게 깍듯하고 친절한 걸까. 거기에는 ‘메이와쿠(迷惑)’ 정신이 숨어 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弊)를 끼치지 말아라. 일본인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이 ‘폐(메이와쿠·迷惑)’에 대한 교육이다.&nbsp;</div><div><br></div><div>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가장 부끄럽고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노인들의 생활도 짐작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평생을 남들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지키며 모범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일찍 고령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무연사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2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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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3 Apr 2026 23:43:1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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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래 살다보니 경유값이 휘발류 값을 넘어섰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2/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13439.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말은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이요 됨됨이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말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이며, 자기의 내면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창구이기도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은 남과 더불어 교류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사회적 동물로서 말은 좋은 관계를 맺어주기도 하고 때론 금이 가게도 하므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에는 파괴력이 있다. ‘말은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자를 묻을 수도 있다’라고 ‘하이네’는 말했다. ‘네 말이 네 귀에 들리는 대로 너에게 행하리라’는 성경구절도 있다. 건축현장에 오래 있다보니 사람들의 말이 참 거칠다. 왠만하면 대화에 끼어들지 않지만 말끝마다 욕찌거리를 일삼는 젊은 친구에게 집에서도 그런 말투냐고 묻는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nbsp;</span>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원망같은 같은 말은 가능하면 꺼내질 않으려 작심했다. 말하자면 긍정적인 사고와 언어를 습관화하려 노력중이다. 한마디 말에 내 인격이 있고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 말에&nbsp;<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d1289">'발빠른 년은 집안을 거덜내고 손빠른 년이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font></b>고 하셨다. 여기저기 사방팔방을 휘집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기 스트레스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이들에겐 상처만 남긴다. 손빠른 사람은 자기는 희생이지만 가족이나 이웃에겐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nbsp;<div><br></div><div>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년)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표현이고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좌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말의 중요성, 즉 대화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매일 함께 하는 현장소장이 나에게서 두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의도적이라 할만큼 말을 안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다. 오늘도 공주현장에서 민물 새우탕을 먹으면서 수제비 서너개를 건져 먹었을뿐 하루종일 굶다시피 했다. 하지만 배고프단 생각을 해본지가 오래이다.&nbsp;</div><div><br></div><div>가끔 성경적 인물을 연구하다 늙어서도 식탐이 전혀 줄지 않았던 이삭을 생각한다. 에서에게 별미를 가져 오면 축복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야곱이 이를 가로채지만 그 나이에도 사냥한 고기를 즐겼다니 대단한 식도락가였던 건 아닐까. 하지만 미각은 살아 있었지만 청각과 시각은 별로였던지 야곱을 에서로 오인하여 축복을 해버리고 만다. 심지어는 털복숭이 에서를 구별하지도 못했다.&nbsp;&nbsp;<div><br></div><div>나는 미각은 별로이지만 아직 촉각은 그대로이고 시각이나 청각 후각도 정상이다. 큰 딸 작은딸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 아직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입맛이 없거나 밥맛이 없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게 아니라, 입맛없게 만드는 사람들이&nbsp;주변에 너무 많다는 점이 내 식욕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점이다.&nbsp;&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2/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11354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입맛을 잃었다는 건 별로 중요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나이먹으면 오감중 한두개는 틀림없이 고장나게 되어 있기에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오감 모두가 살아 있는게 문제일 수도 있다.&nbsp;나일먹으면 적당히 청각이 떨어지는게 정상이다. 너무 귀가 밟아 듣지 말아야 할 소릴 다 듣게 된다면 그게 곤욕이다. 너무 시각이 좋아 세상의 모든걸 보게되는게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nbsp;</div><div><br></div><div>식탐 하나가 줄었다고 크게 염려할 사항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조모님께서는 딱딱한&nbsp;사과 하나를 깨물지 못하고 달팽이 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 잡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저렇게 잡수시면 무슨 맛이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 하나를 다 잡수시곤 했었다. 배도 그렇게 잡수셨고 감이나 백도는 이가 없기에 우물거리며 드셨다.&nbsp;</div><div><br></div><div>맛이 있는지를 물으면 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는 뜻모를 말씀을 하시곤 했다. 미각을 잃으니 산해진미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늙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난 내 삶을 불행한 삶이라고 자학해 본적이 별로 없다. 기력이 급속하게 떨어졌지만 산삼 한뿌리를 탐하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다. 걸음걸이가 씩씩했던 젊은 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60킬로의 몸을 움직이는데 큰 칼로리가 필요한 건 아니기에 그냥 지금에 만족하며 살려한다.&nbsp;&nbsp;&nbsp;</div><div><br></div><div>내가 영위하는 삶에 대하여 여러 평가가 있는 걸 잘 알고 있다. 가끔 존경스럽단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대표적으로 어리석단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죽으면 썩어질 걸 위해 자린고비로 사는 나를 그렇다고 생활에&nbsp; 어리석은 사람으로 매도하는 걸 극구 변명할 생각이 없다.&nbsp;&nbsp;</div><div><br></div><div>나는 저녁 무렵 부턴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는다. 하룻밤에도 대여섯번은 가야 하는데 한꺼번에 모아 아침에 흘려 버린다. 까짓껏 물 한번 내리는데 얼마냐고 묻는 사람에겐 할 말이 없지만 예전엔 요강이 넘치도록 방안에서 일을 보고 아침이면 팔이 부들거릴 정도로 무거운 걸 들고나가 버렸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것도 감지덕지(感之德之)가 아닐 수 없다.&nbsp;</div><div><br></div><div>그렇다고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생활습관이 그런식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보일러도 없는 냉방에서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남들의 눈엔 처량하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개념치 않는다. 겨울철에 난방 장치가 없는 방에서 지낸다는게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굳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십년이 넘도록 보일러를 작동시켜 본적이 없다.&nbsp;</div><div><br></div><div>그 정도로 절박한가를 묻는 사람도 없지만 굳이 내색하고 싶지 않다. 그냥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만족이고 지독한 가난이 아니라면 이대로 만족하며 살려고 작정했다.&nbsp;가난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없는 인류의 문제이다. 누가 스스로&nbsp;가난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쉽지 않다. 동화 '왕자와 거지' 속의 왕처럼 잠깐 동안 '거지 체험‘을 해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자처해서 가난을 선택할까?&nbsp;&nbsp;</div><div><br></div><div>그러나 역사에는 부(富) 대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없는 사람들의 빛이 됐던 예수가 그랬고, 부처는 한없이 낮아진 상태에서 생사의 깨달음을 얻었다. 마더 테레사 같은 성인의 삶도 그렇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이 삶의 잣대로 여기는, 돈이나 큰 것을 제대로 지닌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nbsp;&nbsp;</div><div><br></div><div>인간성은 그 어떤 인간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지만, 그 좋은 인간성 때문에 가난 할 수밖에 없는, 야릇하고 묘한 심성의 사람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내 일, 네 일을 넘나들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nbsp;</div><div><br></div><div>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정한 땅 분배를 명령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부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다시금 부의 공정함을 회복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부의 대물림을 꿈꾸었지 희년의 믿음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nbsp; &nbsp;&nbsp;</div><div><br></div><div>요즘은 시골도 출퇴근 시간은 물론 낮시간에도 러쉬아워(rush hour)처럼 차량들로 정체가 빚어진다. 남편이 출근하면 아내들이 차를 몰고 거리로 쏟아진다.&nbsp;공원이나 까페를 가득 채운다. 하루종일 죽어라 땅을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심해서 죽을(?) 사람들로 넘쳐 난다. 말인즉, 정말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2/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136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가능하면 단순명료하게 살려고 마음먹었다. 잔머리 굴리면서 요령껏 사는게 꼭 성공의 길이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nbsp;&nbsp;나보다 머리도 좋고 조건도 좋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교 아닌 비교를 해보니 별반 차이가 없는 걸 알았다.&nbsp;</div><div><br></div><div>돈많다고 꼭 행복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건강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남자들은 인생도 단순하다. 어느 누구도 일만 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구와 특성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공주현장의 일도 이제 거의 끝나 간다. 타이루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내일부턴 도배 여사들도 공주로 호출했다. 별일이 없지만 소장과 인부들을 공주로 오라고 지시했다. 허드레일이라도 시켜야겠고 싱크대 업자와 보일러 업자도 불러 견적을 넣었다. 내가 그렇게 이번 공사는 이윤을 남기지 말라고 했건만 교통비까지 청구할 태세이다. 트럼프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유값이 2천원을 넘겼다. 내일부턴 승용차로 출근해야 할까보다.&nbsp;</div><div>&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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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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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2 Apr 2026 11:38:0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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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착색된 풍선과도 같은 인생이 아니던가?</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0/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1211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벌써 한해의 1/3이 지나가고 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요즘 준공검사의 일로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하다. 이미 5개월 전에 준공검사를 신청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계약날짜를 넘기고 말았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인천에서 이사를 왔는데 아파트를 매매하고 입주 날짜를 정했는데 준공검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사전입주를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아직 준공검사를 접수조차 못하고 있다. 사전입주는 관행상 인정해주는데 설계사가 다른 건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핑게로 접수를 시키지 않아 거의 쌍욕 수준의 망말을 쏟아내며 심하게 다투었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싸움도 해본 사람이나 할일이지 갈등이 길어지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상대방의 입장도 있지만 어차피 내 위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고 참았지만 5개월 동안 매매대금을 받지 못해 곤경에 처한 걸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해선 안될 말들을 쏟아내고 후회를 하였다. 더 기다려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준공 때만 되면 이런일이 반복되니 나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나는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는 생각을 종종한다.&nbsp;</font><font color="#000000">가</font><span style="color: rgb(0, 0, 0);">능하면 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후회의 연속속에 살아가고 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한 무명의 수도승의 일기를 읽었다. "한 가지 작은 일에서 다른 한 가지 일로 몸과 마음을 회전시킬 때도 적잖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편력과 정학을 갈망하는 속성을 가진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체념하고 끊임없이 포기하는 생활의 연속 속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아주 떠나버리는 연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빈손이 되는 연습을 조금씩 해 왔다"는 간결하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산문이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세상이 불안할 때 가진 것을 손에 움켜쥐느라고 안간힘 할 것이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펴고 갈 것은 가라고, 놓아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빈손에는 평화와 자유가 가득 담겨 질 수도 있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고독을 벗하며 적적함으로 동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0/946ebbbee616042f7f28b24e72e92c5a12144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뛰었던가?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잃을 것도 없는 공백한 두 손, 이것은 어쩌면 자유를 의미한 것이며 이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주는 의도가 아닐까.&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나는 선천적(?)으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 보질 못했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전 대한민국이 굶어야 했던 보릿고개 끝자락에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추억이 남아있을뿐 고통스러웠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시인 도종환의 자서전적 고백에 기를 기우려 보기도 한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 style="font-weight: bold;">"내가 울면서 시를 쓰지 않으면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b>는 말엔 내가 울면서 설교하지 않으면 남도 울면서 설교를 듣지 않는다는 뉴앙스가 풍기고 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나는 울면서 설교를 준비해 보질 못했고 가끔 격한 감정에 눈물을 보인 적은 있었지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근처에도 못가는 삶을 살았다. 철학적이며 사변적(思辨的)인 설교가 대부분이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일주일 내내 주님의 양무리를 위해 가슴을 쥐어 뜯는 심정으로 울면서 설교 준비를 할 것이고, 강단에 오르면 피 토하는 심정으로 사자후를 외치겠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일반 유행가 가수에게도 히트곡이란게 있다. 몇십년 동안 대중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노래가 있는 데, 나에게는 히트설교(?)가 없다. 그게 나만의 비애였던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열악한 시골교회의 사정엔 아랑곳없이 교회 앞 마당에 고급 세단을 세워 놓고도 교인들이 교회를 드나들 때 이 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고민해 보지 않는 목회자들이 있다. 울면서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 교인만 울리는 교역자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가 가슴으로 울면 교인들은 감동의 웃음으로 교회를 떠나며 힘을 얻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 간다. 반면 목회자가 웃으면 교인들은 눈물을 지으며 또 험한 세상에 나가 한주간을 어떻게 살지를 걱정하게 된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span style="font-size: medium;">처음 시골에 정착하고 시(詩)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물들과 사물들의 여행이나 움직임에 무척 신기함을 느끼고 눈길이 머물 때가 많았다. 겨울이 찾아오는 시점, 철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데, 그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nbsp;</span></fon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나는 요즘 작은 미물 하나를 보아도 예사롭게 보질 않는다. 심지어 무더운 여름 날 루드베키아 그늘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느린 여행을 한참동안 따라가 보기도 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의 행로나 심지어는 아직 땔감을 이용하여 밥을 짓는 시골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따라 시선을 따라갈 때도 종종있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이지만 나도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삶의 여로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 슬퍼진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그냥 거기에 있을 따름이고 주변의 모든 것은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소리 없이 떠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니,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착색된 풍선과도 같은 인생이 아닌가? 빨간색, 파란색으로 물들여진 물감일 뿐이다. 겉으로는 형형색색의 풍선이지만 바늘만 대면 그대로 터져버릴 순식간의 존재일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구한다. 내려 놓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얻으려고만 한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 style="font-size: 16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0/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2163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얼마전 시골 농가집에서 맷돌 몇개를 보았지만 가져오질 않았다. 차 트렁크에 실고 올 수 있는 크기였지만 시골 마당에 꼭 있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고, 손때묻은 걸 가져 오기가 미안해서 였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rgb(0, 0, 0);">집을 잘 꾸며 놓으면 재산가치가 상승하는 건 당연지사이겠지만 내가 처음 이곳에 오려는 목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모든걸 내려놓자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한껏 욕심을 부리는 세속적인 근성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단출하게 살자고 시골로 내려왔지만 어느새 살림도구가 제법 많이 늘었다. 밥그릇도 몇벌 생겼고, 숟가락 젖가락도 십여벌은 된다. 라면 끓일 냄비 하나 달랑 가지고 내려왔지만 지금은 전자 밥통을 비롯해 없는게 없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물론 내가 산 건 별로없다. 내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이 자기들이 불편하니 가져다 놓은게 전부이지만 하여간 살림이 엄청 불어났다. 근사한 커피 잔은 없지만 머그 잔도 여섯개나 준비되었다. 손님이 열명이면 나머진 종이 컵에 커피를 마셔야 하지만 대장부 살림이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div>세상의 모든 꽃은 피워 내기 전이 가장 아름답다. 만개해 버리면 이내 질 거라는 생각에 제대로 꽃을 감상할 수가 없다. 내 주변에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본데, 나는 곧 낙화할 거라는 걸 알기에 더 겸허해질 수 밖에 없고 내 존재를 부각시키는 일은 삼가하고 있다.&nbsp; &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서있는 발아래를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나를 지독하게 초라하게 만들고 섭섭하게 만들었던 사람들, 신의를 저버려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 주었던 사람들,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야멸찬 사람들, 그들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내가 그 정도로 밖에 보여주지 못했기에 돌아 온 것뿐이다. 그들이 필요하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다가 설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희희낙락(喜喜樂樂) 할 필요도 없다. 조고각하(照顧脚下)해보니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는 걸 알았기에 신대륙을 발견한 거나 다름없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div><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nbsp;</font></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2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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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0 Apr 2026 12:18:0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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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 또래의 사람들은 藥을 한웅큼씩 가지고 다닌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9/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1126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항간에 떠도는 말중, '여자는 자랑할 일이 생기면 친구를 찾아가고, 남자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친구를 찾아간다.&nbsp;여자는 자기보다 예쁜 여자와 같이 다니지 않으려 하고,&nbsp;남자는 자기보다 돈없는 남자와 같이 다니지 않으려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자는 우월감이 생기면 상대를 칭찬하고, 남자는 상대를 존경하면 칭찬한다.&nbsp;여자는 몰라도 되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남자는 꼭 알아야 할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는 이러한 만남의 인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끊어지거나 인연을 끊고 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러 가지 사연으로 서로 그리워하며 헤어져 사는 가족들을 비롯하여 자식을 낳아 버리는 비정한 부모들, 그리고 이해관계로 만났다가 이해관계 때문에 헤어지는 개인이나 집단들이 바로 가까운 예이기도 하다.&nbsp;&nbsp;그리고 유인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연은 언젠가는 반드시 끊어지게 마련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예로부터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일러 왔다. 그렇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되풀이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즉 두말할 것도 없이 헤어지기보다는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헤어짐만 못한 불행한 만남을 제외하고) 때로는 헤어짐을 통해 만남보다 훨씬 더 가슴 뭉클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시 말해 함께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면목을 헤어지고 나서야 발견하는 감동적인 경우가 꽤나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면 으레 함께 있을 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그 사람의 온 몸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인간적인 체취가 내 마음 구석구석으로 하염없이 젖어들곤 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가 하면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내 주변을 맴돌며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곤 하다가 어느 날인가 예고도 없이 바람처럼 훌쩍 떠나간 다음 우연한 자리에서 서로를 발견하곤 눈길이라고 마주치게 되면 재빨리 가슴에 매달린 ‘배반의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쌀쌀히 고개를 돌리곤 하던 사람들도 더러 있다.&nbsp;&nbsp;물론 그것은 나의 일방적인 속단일 수도 있고 내가 받았던 인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따라서 나는 그것이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그 사람 또한 나에게 새로운 발견을 안겨 주며 예전의 그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러기에 칭찬에 대하여 우쭐해질 필요가 없고 비난에 낙심할 필요도 없다. 나도 현역목회를 할 때 이런 소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냥 감사할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기에 칭찬이 없어도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되면 똥지게도 짊어질 생각이다. 그냥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누굴 원망하거나 시비를 벌려보았자 자신에게만 손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나마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9/62928ecca6b3ae42d783b178eb17dbb11128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고전3:21-23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선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뉘어 서로 다투는 분쟁을 일삼았다. 그래서 바울은 분쟁의 해결책으로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권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결국&nbsp;교회 분쟁의 원인이 어떤 일이나 신조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닌 사람 때문이라는 뜻이다.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는 교회에서마저 분쟁이 생긴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대신에 인간이 교회를 움직였거나 아니면 일을 맡은 자들이 자기들의 열심과 수고를 자랑한 결과이다.&nbsp;&nbsp;</span></div><div><br></div><div>사역자가 의도적이건 아니건 자기를 과시하려 했거나 일반 성도 또한 사역자 개인의 인간적 면모나 능력에 영향을 받았거나 받고자 한 것이고, 하나님 대신에 사람이 먼저 강조되면 분쟁은 자연발생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다.&nbsp;모든 인간은 아무래도 자기 자랑하기 바쁘다. 그리고 그 본성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첩이 간드러지게 웃으면 본처는 속병을 앓게 된다”는 말이 있다. 간사한 마음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아 피를 말리고 고소해 한다. 무엇이든 분풀이를 하려 드는 간사한 마음은 무엇을 사랑할 줄 모른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 하며 공치사(功致辭)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기에 덕담은 덕담으로 받아들여야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다가는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공치사(功致辭)를 남발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지도 모른다.&nbsp;나도 공치사(功致辭)에 취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내 능력 이상의 칭찬을 받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범인에 불과하다. 아마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지만 그래도 공치사를 받으면 이성보다는 감성이 요동친다. 그것이 공치사인줄 알면서도 마음이 흔들리고 내가 그런 칭찬을 받을 사람이라고&nbsp;착각해 버린다. 나중에는 자기 자랑하기에 급급하여 오해와 불신을 받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듬직한 사람은 중하면 중한대로 무던히 견디고 편한대로 지낸다. 어질기 때문이다. 어진 마음의 사랑은 재 속의 불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저 사랑할 줄 알고 행할 뿐 그것을 앞세워 이용하지 않는다.&nbsp;또 다시 공치사(功致辭) 받을 일도 없겠지만 조롱을 받는다 하더라도 시비할 생각이 전혀없다. 설령 속병을 앓는다 해도 간드러지게 웃는 첩꼴 다 견디며 살려 작정했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일히 그런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내 자신만 더 초라해질뿐이다. 초라해지기 전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10여년 전에 당뇨로 인한 뇌경변과 스트레스로 인해 담낭제거 수술을 받으면서도 악전고투를 하다 결국 득병하여 낙향하기로 결심했을 때 사명을 천직으로 알고 죽어도 강단에서 죽어내려 오는게 사명자의 길이라며 냉소를 보낸 동역자가 있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病이 깊어져 실어증(失語症)으로 설교를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결단을 앞두고 몇몇과 상의를 했는데, 처삼촌 벌초하듯 건성으로 받아 들이는 걸 보며 더 큰 쑈크를 받았다. 정말 “첩이 간드러지게 웃으면 본처는 속병을 앓게 된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지금도 나를 혹사시키는지 모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은 제대로된 눈으로 바라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여, 이젠 공치사(功致辭) 따위엔 관심이 사라져 버렸다. 내 실상을 알게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수확이다. 발전 가능성을 말한다면 몰라도 현실적인 문제라면 나는 모두에게 추월당할 위치에 놓여있는게 사실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젠 첩이 간드러지게 웃는다고 속병을 앓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9/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112959.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아직 인생을 달관한 건 아니지만 마음은 항상 초연해지려 노력중이다. 물론 신체적으로는 내세울 것도 장담할바도 못되지만 아직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믿고 마음을 단련중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변에선 아무리 날이 따스해지는 춘계(春季)지만 신체를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으며 너무 일찍 가벼운 의복으로 갈아 입으면 않된다고 잔소릴 늘어 놓는다. 친구들은 나에게 절대로 5월달까진 내복을 벗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나는 인명은 재천인 데, 갈 사람은 가는 것이라며 염려 붙들어 매라고 장담하지만 건강 문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니 당뇨 혈압약을&nbsp;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물론 의사가 처방한 약을 복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나에게는 매일 복용하는 상비약 외에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을 복용하고 있기에 육신의 건강은 물론 영적으로도 건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주변에 임씨 성을 가진 후배 목사님이 당뇨가 조절되지 않아 인슐린 주사를 직접 맞기 시작했다는데 내 장례식 집전해 주겠다고 큰소릴 치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하늘같은 선배로서 만나는 족족 잔소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단계에서 자칫 잘못하면 투석을 해야 하는데, 하루에 두끼, 걸음 만보, 과자 빵 등 주전부리를 금지 시켜야겠다. 최소한 95세까지는 살아야 내 장례식을 집전할게 아닌가?&nbsp; &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게가 藥을 한웅큼씩 안먹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귀촌이후 내 몰골이 그 전만 못한게 사실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쭈그럼&nbsp;밤송이&nbsp;3년간다'는&nbsp;말이 있듯 병약한 사람이 오히려 오래산다는 속설이 있고,&nbsp;'삐걱거리는 문이 고장없이 오히려 더 오래 간다'는 말을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누누이 들어왔다.&nbsp;연약하기에 조심하고 부족하기에 자만하지&nbsp;말라는 지혜로 받아 들였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헬렌 켈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는데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고 하였다. 늙은이라고 꿈을 포기하면 않된다. 그래이(E. M Gray)라는 사람이 쓴 책 &lt;성공의 공통분모&gt;보면, “그들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비전이 자기 인생을 집중시켜 살아가던 사람이었으며, 소중한 것을 먼저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고 하였다.&nbsp;그것이 성공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미래는 두려움이 아니다. 미래는 희망이다. 그래서 미래를 생각 하면 가슴이 설레어야 한다. 나이 먹었다고&nbsp;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공원 벤치를 지키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열심히 나돌아 다닐 생각이다. 가능하면 할 수 있을 때까지 건축일이나 영농에 올인할 생각이다. 한 자리에 머물러 청승을 떠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나일 먹을 수록 모든게 버겁기만 하지만 세상엔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과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을 거란 거만한 생각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두려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이 없는 삶은 열매도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몇 해 전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베스트셀러 책이다.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를 향해 ‘다 아프면서 크는 것’이란 다독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만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오히려 따지고 든다. 청춘은 왜 꼭 아파야만 하느냐고 항변한다.</div><div><br></div><div>이처럼 요즘 젊은 세대는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격언에 거부감을 느낀다. 꿈과 환상을 담은 이상적인 말도, 듣기 좋은 꽃노래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탓이다. 대신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사이다 화법’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이야기한다. 나는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는&nbsp;말을 거부한다. 비록 젊은이를 헐값에 사려는 사회적인 인식이 팽배되어 가는 추세이긴 하지만&nbsp;알바생이 건축 현장에 들어오면 최소한 1~2만원은 더 지불한다. 젊다는 이유로 가장 허드레 일을 하기 때문이다.&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적한 곳에 앉아 궁상을 떨었다. 왜 일손을 놓고 여유롭게 살아야 할 나이에 사서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이 고착화되면 나는 이내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어 그대로 강행하기로 결론지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완주군 운주면에 조립식 집을 지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현장을 방문하고 집주인을 대면하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풍을 맞아 십년전에 반신불구가 된 사람인데 집이 철거되어 보상금이 나오면 결제하겠다며 선시공을 해달라는데 언제 보상금을 받을지도 모르고, 이제 가능하면 일을 줄이고 농사짓는 일에 재미를 붙히려고 다른 업자를 소개해 주려는데 내 카톡방에서 건축물을 보았는지 공주 스타일로 지어 달라고 거의 생때를 쓰는데 예감이 좋지 않아 거절을 했다. 매일 전화를 하는데 거의 받질 않는데도 막무가내로 접근하지만 이번엔 내 어줍잖은 예감을 믿기로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와 함께하는 인부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매일 운주까지 한시간 반씩 출근하려면 너무 힘들 것 같고 중증 장애인이기에 전주 우이동까지 매일 출퇴근 길에 실어 나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기에 거절했는데 한편으론 돈문제로 곤경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장애자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작용한 거란 생각에 대단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25</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25</guid>
			<dc:date>Sun, 19 Apr 2026 11:43:2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할머니 자화상</title>
			<description><![CDATA[할머니의 슬픈 자화상<br />
<br />
장수는 축복이다.<br />
그렇다고 병든 몸으로<br />
오래 살라는 말은 아니다.<br />
백 세 시대라 말하지만<br />
중환자실이나<br />
요양원에 가보면<br />
장수가 꼭 축복만은<br />
아니라는 사실이다.<br />
몇 년 전<br />
아흔이 넘게 살다<br />
돌아가신 P를<br />
찾아간 적이 있다.<br />
상처한 뒤<br />
혼자 큰 집에 살았다.<br />
부유한 분이었다.<br />
아흔을 넘기자<br />
생활이 불편해졌다.<br />
가끔 자전거를 타고<br />
약국에 와<br />
신문을 읽었다.<br />
노인은<br />
아파트에 살지 않고<br />
자기 건물 삼 층에<br />
살았다.<br />
집은<br />
보온이 잘되지 않았다.<br />
난방은<br />
전기장판과<br />
전기난로에 의지했다.<br />
식사는<br />
근처 식당에서<br />
해결했다.<br />
교회에도<br />
몇 번 나왔다.<br />
자녀들은<br />
아버지가 혼자 사는<br />
모습이 가여워<br />
R 요양원에<br />
보냈다.<br />
홀아버지를<br />
혼자 두면<br />
무슨 일을 당할지<br />
몰라서<br />
선택한 길이었다.<br />
어느 주일 오후<br />
아내와 함께<br />
R 요양원을 찾았다.<br />
외곽지에 자리한<br />
요양원은<br />
넓은 잔디밭이 있고 <br />
시설도 양호했다.<br />
이 층에 올라가니<br />
이십 평 남짓한<br />
입원실에<br />
열댓 명 노인이<br />
누워 있었다.<br />
움직이는 이는<br />
오직 P 한 분뿐이었다.<br />
전에<br />
중환자실을<br />
두 번 방문했다.<br />
서울에서 한 번,<br />
김해에서 한 번.<br />
모두<br />
무의식 상태로<br />
산소호흡기를<br />
물고 있었다.<br />
이곳 요양원은<br />
산소호흡기만<br />
없을 뿐<br />
풍경은 같았다.<br />
마치<br />
마지막 천국행<br />
열차를 기다리는<br />
대합실 같았다.<br />
그래서 사람들이<br />
요양원 가기를<br />
싫어하는가 보다.<br />
요양원 이야기를 하니<br />
며칠 전<br />
한 할머니가<br />
떠오른다.<br />
이른 아침<br />
허리가 아프다며<br />
약을 달라고 했다.<br />
노화로 인한<br />
허리 통증에는<br />
특별한 약이 없다.<br />
상황을 설명하며<br />
근육이완제와<br />
소염진통제<br />
며칠 분을 드렸다.<br />
“외출할 때만<br />
드세요.”<br />
할머니는<br />
자기 나이가<br />
아흔이라 했다.<br />
겉보기엔<br />
못 걸을 정도로<br />
나쁘진 않았다.<br />
잠시 후<br />
다시 말했다.<br />
입안이 헐어<br />
아프다 했다.<br />
영양 부족을<br />
설명하며<br />
아비나 파스타를<br />
건넸다.<br />
할머니는<br />
말을 이어갔다.<br />
“다음엔<br />
이 약국에 와야겠네.”<br />
작은 친절에<br />
고마워했다.<br />
정에<br />
목말라 있었다.<br />
뜻밖의 말을<br />
꺼냈다.<br />
아들과 며느리가<br />
자기를<br />
요양원에 보내려고<br />
안달이라 했다.<br />
자기는<br />
가기 싫다고 했다.<br />
오 년 전<br />
약국 근처에서<br />
장신구를 팔던<br />
L도 그랬다.<br />
재산이 많았지만<br />
상처하자<br />
자식들이<br />
요양병원에<br />
보냈다.<br />
삼 년 전까진<br />
하루 한 번<br />
밖에 나왔지만<br />
지금은<br />
보이지 않는다.<br />
어떻게 살까.<br />
자식들을 만나지만 <br />
안부를<br />
묻지 못했다.<br />
다시 할머니 이야기.<br />
따뜻한 곳에 가면<br />
몸이 가렵다며<br />
약을 달라 했다.<br />
세티리진을 주며<br />
하루 한 번만<br />
드시라 했다.<br />
요양병원에<br />
가기 싫다는<br />
병들고<br />
경제력 없는<br />
할머니가<br />
힘없이<br />
문을 나섰다.<br />
그 뒷모습에서<br />
슬픈 자화상을<br />
보았다.<br />
아흔이라면<br />
자녀도<br />
예순은 넘었다.<br />
그래도<br />
함께 살아주면<br />
좋겠다.<br />
아흔 살 할머니는<br />
행복해 보이지 <br />
않았다.<br />
어느 정도<br />
건강을 유지해야<br />
백 세가<br />
축복이다.<br />
<br />
2026.1.18.<br />
God bless you!]]></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4</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4</guid>
			<dc:date>Sun, 19 Apr 2026 11:02:1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참 예쁘다</title>
			<description><![CDATA[사진이 참 예쁘다.<br />
<br />
가끔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의 문화가 한국 문화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믿었다. 반세기 동안 우리가 너무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자가용을 가진 집은 드물었다.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지만, 2026년에는 3만 5,880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은 미꾸라지에서 용이 된 나라다. 조선업, 반도체 메모리, 방위산업, 원자력 분야에서 한국이 빠진다면 세계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이 정도로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일 수밖에 없다.<br />
인간은 삶이 풍요로워지면 미래를 더 멋지게 살고 싶어 한다. 레저와 스포츠, 여행과 사진에 관심을 돌린다. 나 역시 사진에 큰 흥미가 있다. 고가의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데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한동안 사진 보정을 위해 포토샵을 공부했다.<br />
그러던 중 2025년 말, 혁명 같은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챗GPT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1월에 구글의 제미나이가 갑자기 등장했다. 디자인·건설·광고 분야에서 필수였던 포토샵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챗GPT가 선보인 ‘지브리 스타일’은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다. 너도나도 지브리 스타일로 1%q%프로필 사진을 만들었고, 나와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br />
한 달 뒤 구글은 제미나이 플래시 2.5를 발표했다. 일정 시간 무료 사용이 가능하다는 소식에 세상은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사진 보정에 관심이 많던 나는 자연스럽게 제미나이에 빠져들었다.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증명사진도 멋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포토룸이나 에픽 같은 앱을 사용했지만 늘 어딘가 부족했고, 제대로 쓰려면 유료 결제가 필요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br />
그러다 챗GPT에게 프롬프트를 묻고, 그 답을 제미나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초보자인 나에게 프롬프트 작성은 쉽지 않았지만,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눈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여인, 프롬프트를 알려 주세요”라고 물으면 챗GPT는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챗GPT는 이미지 생성에 시간이 걸리지만, 제미나이는 즉각 결과를 보여 주었다. 명령어에 따라 사진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정되었고, 특히 인물 사진은 매력적이었다.<br />
AI로 만든 사진은 대부분 호평을 받았다. 실물보다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자기 얼굴인데 더 아름답게 표현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물론 간혹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AI는 기본적으로 본인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더 보기 좋게 표현해 준다. 마치 결혼식 날 신부가 최고의 화장을 하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AI가 해 주는 일은 바로 그런 ‘신부 화장’과 같다.<br />
제미나이로 사진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원래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나와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면 의미가 없다.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프롬프트를 찾아보고 실험했다. 교인 스무 명가량의 AI 사진을 만들어 주었는데, 대부분 “너무 예쁘고 좋아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분은 카카오톡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고, 어떤 분은 과일이나 점심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말로 고마움을 전하는 분도 많았다.<br />
가장 큰 수확은 인간관계가 더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7년간 중국인 목회 사역을 하던 L 전도사가 사임했다. 위로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가 AI 메이크업 사진을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경복궁 연못을 배경으로 한 사진 두 장과 여권사진 한 장을 전달했더니 “장로님, 사진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남을 기쁘게 하니 그 기쁨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br />
인연을 쌓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즐기는 이 AI를 통해 앞으로도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사진 참 잘 나왔습니다, 장로님.” 오늘은 또 누구의 사진을 만들어 줄까. 오늘 계단에서 K를 만났다."장로님, 최고예요." 나는 그에게 미소로 답했다.<br />
2026. 2. 8.<br />
God bless you!]]></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3</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3</guid>
			<dc:date>Sun, 19 Apr 2026 11:01:1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구피 양육기</title>
			<description><![CDATA[구피 양육기 <br />
<br />
오래전, 진영에서 금붕어를 <br />
키웠다<br />
처음에는<br />
보통 금붕어를 <br />
키우다가 <br />
붉은 오란다로<br />
바꾸었다<br />
오란다는 지느러미가 <br />
길고 색이 아름답고 <br />
유영하는 모습이<br />
여유롭다<br />
머리에는 혹이<br />
있고, 몸은 둥글고<br />
꼬리는 우아하다<br />
성격은 온순해<br />
이삼 년을 길렀다.<br />
어느 날 아침<br />
충격적인 장면을<br />
목격했다.<br />
오란다가 모두<br />
죽어 있었다.<br />
전날 동네에<br />
방역을 했다.<br />
모기와 파리가<br />
많았기 때문이다.<br />
하얀 포말로 변한 <br />
살충제가 열린 문을 <br />
통해 들어와 <br />
어항 속으로 <br />
스며들었다. <br />
그 탓에 오란다는 <br />
몰사하고 말았다. <br />
그 후로 잠시 <br />
금붕어를 키웠다. <br />
세월이 흘러, <br />
김해로 이사 온 지도 <br />
어느덧 삼십 년이 <br />
되었다.<br />
삼 년 전이다.<br />
아내가<br />
비닐팩을 들고<br />
들어왔다.<br />
“K가 구피를<br />
주었어요.”<br />
큰 유리그릇에<br />
모두 넣었다.<br />
에어펌프도 없이<br />
장난삼아 길렀다.<br />
한 달쯤 지나자<br />
새끼를 낳았다.<br />
그럭저럭 3년이 <br />
지났다.<br />
아들에게<br />
열 마리를<br />
주었다.<br />
문제가 생겼다.<br />
한 달에 한 번<br />
수십 마리씩<br />
새끼가 태어났다.<br />
감당하기<br />
어려웠다.<br />
어떤 녀석은<br />
밖으로 튀어나와<br />
죽기도 했다.<br />
아들은 구피에 빠졌다.<br />
어항을 새로 사고<br />
좋은 먹이와<br />
약도 구했다.<br />
우리 집에도<br />
새 어항을<br />
놓아 주었다.<br />
수초와 조약돌,<br />
조명까지<br />
갖추었다.<br />
넓은 어항속을<br />
헤엄치는 구피들을<br />
느긋하게 감상했다.<br />
퇴근 후,<br />
작은 즐거움이었다.<br />
몇 달 뒤<br />
이상한 일을<br />
발견했다.<br />
“왜 새끼를<br />
낳지 않을까?”<br />
아내에게 말했다.<br />
“잡아먹었나 봐요.”<br />
설마했으나, 사실이었다.<br />
배부른 암컷 둘에<br />
수컷 한 마리를 넣어<br />
따로 분리하여 두 곳을 <br />
만들었다.<br />
다음 날 아침,<br />
놀라운 광경을<br />
보았다.<br />
깨알 같은 새끼<br />
열네 마리가 보였다.<br />
그동안<br />
수많은 새끼를<br />
성어들이<br />
잡아먹은 셈이다.<br />
배부른 암컷을 계속 <br />
바꾸어 넣었다. <br />
그러자 <br />
계속 새끼를 낳았다.<br />
기쁨보다 걱정이 <br />
앞섰다.<br />
생명은 존귀하다.<br />
하지만,<br />
끝없이 늘어나는<br />
구피를<br />
어찌해야 할까?<br />
버릴 수도, <br />
키울 수도 없었다.<br />
다음날 아내가 불렀다.<br />
“저것 좀 봐요.”<br />
어항 한편에서<br />
치어 한 마리가<br />
지느러미를<br />
펄럭이고 있었다. <br />
그후 또 한 녀석을 <br />
발견했다.<br />
결국 몇 개월 동안 <br />
두 마리만<br />
살아남았다.<br />
직원 B에게<br />
물었다.<br />
“키워볼래?”<br />
처음에 망설이는 듯했으나 <br />
말했다.<br />
“네, 주세요.”<br />
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br />
“희소식이예요.<br />
열다섯 마리<br />
또 낳았어요.”<br />
새 생명은 축복이지만, <br />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br />
개미 떼처럼 많은 <br />
구피 새끼들이<br />
눈에 어른거린다.<br />
분양할 구피들을 <br />
패트병에 담았다.<br />
"너희들 잘 자라라."<br />
마지막 먹이를 <br />
넣어주었다.<br />
비록 미물이지만,<br />
 '오는 정은 몰라도, <br />
가는 정은 안다'는 <br />
우리 속담이 마음에 <br />
와닿는다.<br />
2026년 2월 22일<br />
God bless you!]]></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2</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2</guid>
			<dc:date>Sun, 19 Apr 2026 10:59:5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위대한 한국</title>
			<description><![CDATA[위대한 한국<br />
<br />
여러분은 국뽕을 아는가.<br />
나도 처음엔 몰랐다.<br />
자기 나라가 최고라 여기는<br />
의식이며, 과장된 자부심이다.<br />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br />
우리나라를 다시 보았다.<br />
88올림픽 이후 여러 나라를<br />
직접 방문하고 느꼈다.<br />
유럽은 오래된 선진국이라,<br />
모든 면에서 앞선 줄 알았다.<br />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br />
이탈리아에서는 소매치기를<br />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br />
미국에서는 아이를 혼자<br />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br />
말도 들었다.<br />
밤에는 공원을 혼자 걷기<br />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다.<br />
나는 그런 불편조차,<br />
선진국의 특징이라 여겼다.<br />
부정적인 면도 받아들였다.<br />
한국은 2021년,<br />
공식 선진국이 되었다.<br />
역사는 짧지만, 발전 속도는<br />
세계적으로 드물다.<br />
1960년 국민소득은<br />
79달러에 불과했다.<br />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br />
외국인들은 한국을 보며<br />
놀라워했다.<br />
전쟁의 폐허에서,<br />
어떻게 이렇게 발전했는지<br />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br />
외국 전문가 다섯 명은,<br />
한국 사회의 신뢰와<br />
효율성을 강조했다.<br />
독일 건축가는 편의점과<br />
무인 상점을 보고,<br />
신뢰 사회라 말했다.<br />
프랑스 요리 연구가는<br />
배달 서비스와 정성에,<br />
장인정신을 느꼈다.<br />
미국 소방관은 저렴한<br />
의료비에 놀랐다.<br />
돈 걱정 없는 치료를,<br />
진정한 선진국이라 했다.<br />
미국은 응급차 비용이<br />
약 백만 원에 이른다.<br />
하지만 한국의 119는<br />
무료로 운영된다.<br />
프랑스에서는 진료까지<br />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br />
호주 전문가는 서울 교통을<br />
예술 작품이라 표현했다.<br />
일본 기자는 인터넷 속도와,<br />
격차 없는 환경에 놀랐다.<br />
이 모든 발전은,<br />
한국인의 노력 덕분이라 했다.<br />
오늘의 대한민국은<br />
국민이 만든 결과다.<br />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은<br />
이뿐만이 아니다.<br />
밤에도 비교적 안전하고,<br />
거리도 깨끗하다.<br />
식당은 반찬을 더 주고,<br />
대중교통은 정확하다.<br />
편의점은 어디에나 있다.<br />
분실물도 잘 돌아온다.<br />
배달 문화도 매우 빠르다.<br />
한국은 안전하고 편리하며,<br />
서비스 수준이 높다.<br />
이 모든 것은 당연하지 않다.<br />
수많은 노력의 결과다.<br />
우리는 지금,<br />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산다.<br />
세계 경제 상위 국가이며,<br />
자유민주주의 국가다.<br />
이 현실은 소중하다.<br />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br />
결코 당연하지 않다.<br />
세계가 인정한 성취다.<br />
위대한 한국은<br />
멀리 있지 않다.<br />
지금 우리가 사는<br />
이 나라 자체다.<br />
2026년 3월 22일.<br />
God bless you.]]></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1</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1</guid>
			<dc:date>Sun, 19 Apr 2026 10:58:58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소동, 결혼주례</title>
			<description><![CDATA[주례 없는 예식, 그리고 어느 여름날의 소동<br />
​요즘 결혼식장에는 주례석이 비어 있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주례자의 장황한 훈화 대신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거나, 양가 부모님이 자녀의 앞날을 축복하며 전하는 진솔한 축사가 그 자리를 채운다. 시대가 변한다지만 예식의 풍경이 이토록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나 싶어 문득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는 예식의 권위와 격식보다는 당사자들의 개성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변화일 것이다.<br />
​청첩장 문화 역시 몰라보게 바뀌었다. 정성껏 봉투에 담긴 종이 청첩장 대신, 이제는 계좌번호가 적힌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급격히 확산된 이 변화는, 예전 같으면 다소 노골적이고 무례하게 여겨졌을 행동을 서로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합리적인 배려로 바꾸어 놓았다. 기쁨을 나누는 잔칫날뿐 아니라 슬픔을 나누는 부고장에도 계좌번호를 첨부하는 일이 흔해졌다. 경제적 실용주의가 오랜 세월 지켜온 명분과 격식을 앞지르는 시대의 흐름을 실감한다.<br />
​결혼 이야기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현실은 실로 준엄하다. ‘인구 절벽’이라는 단어가 결코 수사가 아님을 매년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혼인 건수는 줄고 연령은 높아지며,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귀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이 여전히 권할 만한 가치 있는 선택이라 믿는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철학자가 된다”라고 말했다. 행복을 얻든 지혜를 얻든, 결혼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소중한 과정이기 때문이다.<br />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대의 대부분은 미혼이고, 30대 역시 절반가량이 혼자다. 40대에 홀로 사는 비율도 적지 않다. 이제 비혼과 미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변화를 보며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br />
​당시만 해도 결혼식에서 주례자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교회 청년 K가 찾아와 결혼 소식을 전했다. 성실한 청년이었기에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다.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 나는 따뜻한 덕담을 전했다.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 만남이 폭풍 전의 고요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br />
​한 달 뒤 무더운 여름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전화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br />
“장로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서 오셔야 합니다!”<br />
영문을 몰라 묻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br />
“오늘이 제 결혼식입니다!”<br />
​순간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예식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급히 달려간 결혼식장은 인근 농협 2층이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주례자도, 신부도 나타나지 않아 신랑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신부는 교통체증에 갇혀 늦어지고 있었고, 주례자는 아예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K는 내게 정식으로 주례 부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내 마음을 당연히 알 것이라 여긴 착각이었으리라.<br />
​나는 급히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목사님은 흔쾌히 승낙하셨고, 신부가 늦어진 덕분에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결국 예식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그 부부와는 연락이 끊겼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지금쯤은 중년의 부모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br />
​만약 지금처럼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였다면 그런 소동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서늘하게 남아 있다. 인생에는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고, 그날의 소동은 형식보다 중요한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 사이의 명확한 소통과 진심 어린 예우다.<br />
​2026년 어느 봄날, 텅 빈 주례석을 보며 그날을 회상한다. 시대는 변하고 예식의 형태는 달라져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 도움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의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본다.]]></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0</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20</guid>
			<dc:date>Sun, 19 Apr 2026 10:57:4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왕릉과 왕능</title>
			<description><![CDATA[왕능과 왕능 이야기<br />
<br />
약국 근방에 과일 가게가 많다. <br />
요즘 외국을 상대하는 가게가 많이 생겼다. 외국인 일반 마트는 더 많다. 자기 나라 토산품을 파는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겼으나 원조인 A마트는 가게를 접고 새 주인에게 넘겼다. 외국인 가게마다 자기나라 과일들이 넘친다. Y청과는 50년이된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br />
우리 약국도 30년이 넘었는데 Y청과는 40년이 넘었다. 그 청과점은 내가 산책하는 첫 사거리에 있다. <br />
여주인은 남편을 잃은 후 그처 빈 태국식당을 구매했다. 원래 가게는 구제가게가 되었다. <br />
여주인은 새 가게를 수리하여 거기에 개업했다. 간판, 윈도우, 내부를 모두 인테리어업체에 맡겨 새 가게로 만들었다. 가게는 화려하고 더 넓다. 특히 상호가 눈에 잘 들어온다.<br />
3~4개월되었다. 그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상호를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맞춤법이 틀렸다. 무려 열 한군데다. 예전 가게에서도 오래된 맞춤법이 틀린 상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r />
"왕능청과."<br />
왕능이 아니고 왕릉이다. 혹시 내가 잘못 알았나 싶어 확인해보았다. 역시 왕릉이 맞단다.<br />
맞춤법이 틀린 상호를 버젓이 내걸고 영업하는 가게 주인이 무심하게 느꼈다. 더욱이 수많은 외국들이 지나가는 거라다.<br />
기회를 잡아 한 번 말해줘야지 했지만 마음밖에 없었다.<br />
여주인과 함께 일하는 동생을 몇 번 만났지만 기회를 놓쳤다.<br />
마침내 기회가 왔다. 평소 자주 약국에서 가글을 산다. 어제 아침에 혼자 왔다.<br />
이때다 싶어 말했다.<br />
"한글 맞춤법이 틀렸어요."<br />
"맞는데요."<br />
자기 가게 이름 왕능이 맞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왕능과 왕릉은 뜻이 다르다고 했다.<br />
"두 가지 말이 있어요."<br />
금시초문이다. 여태 왕릉을 잘못 적어 왕능이라고 쓰는 줄 알았다.<br />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알아보았다.<br />
정말 두 가지 단어가 표기되어 있다.<br />
하나는 왕릉 또 하나는 왕능이었다. 왕의 묘, 또 하나는 왕의 능력이었다. <br />
하지만 왕능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99% 쓰지 않는다고 했다.<br />
그럼왜 굳이 한국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말을 상호로 썼을까.<br />
점심 때 왕릉에 갔다오면서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br />
그래도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국 사람 99%가 사용하지 않는 말은 맞다고 주장할 수 없다. 40년 전에 왕릉과 가까운 이 곳에  작은 구멍가게를 인수할 때 그 주인이 왕능이라고 작명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왕능이 맞단다. 왕릉이 가까운 이곳에 작명할 때 왕릉을 상징하는 상호를 넣어야 외우기 쉽고 말하기 쉽다. <br />
왕릉을 왕능으로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가게 주인이 쓰도 않는 왕의 능력을 상기하면서까지 왕능이라고 작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br />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해도 가게 주인은 내 말을 수용하지 않았다.<br />
이건 자존심도 아니고 체면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br />
내 설명을 듣고도 왕릉을 왕능으로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br />
남이야 왕능이라 쓰던 왕릉이라고 쓰던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어투였다.<br />
99%가 안 쓰는 말은 틀린 말이다.<br />
1970년 인수한 그 작은 가게 주인이 99%가 쓰지 않는 '왕의 능력'이라는 뜻으로 왕능을 쓸 가능성은 별로 없다. <br />
지금 주인은 그 사람이 맞춤법을 몰라서 그렇게 쓸 가능성이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br />
두음법칙으로 왕릉이 맞다.<br />
지금 우리는 왕의 능력이라는 말을 표현할 때 '왕능'이라고 하지 않 과 왕의 능력이라고 쓴다. <br />
왜 간판이나 현수막에 쓰인 맞춤법이 틀린 글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병일까?]]></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19</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19</guid>
			<dc:date>Sun, 19 Apr 2026 10:56:14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형 오동환 장로를 추모하며</title>
			<description><![CDATA[형, 오동환 장로를<br />
추모하며 <br />
<br />
​형님은 지난 2019년 4월, <br />
화사한 봄날에 눈을 <br />
감았다.<br />
장례는 4월15일에 치렀다.<br />
​아파트 앞 벚꽃길을<br />
몇 번 지났는데,<br />
어느덧 육 년이<br />
흘렀다.<br />
요즘도 형님은<br />
내 꿈속을 찾아온다.<br />
​근엄한 그 얼굴은<br />
이별하는 날 이전으로<br />
나를 돌려놓았다.<br />
형님은 곁을 떠났으나<br />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br />
​형님이 새벽마다 앉아<br />
기도하시던 그 자리에<br />
자꾸만 내 눈이 머문다.<br />
비록 지금은 다른 분이<br />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br />
형님 숨결은 살아있다.<br />
​내가 태어난 지 불과<br />
삼 개월 되었을 때<br />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br />
나와 열 살 차이인<br />
형님은 형이 아닌<br />
아버지로 역할했다.<br />
​늘 형님은 ‘아버지’라는 <br />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br />
누나, 작은형, 나는 형을 <br />
무서워했다. <br />
"오빠한테 말할거야."<br />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br />
약대를 졸업했다.<br />
자녀들이 있었음에도<br />
두 동생을 공부시켰다.<br />
​1960년대, 동생들을<br />
서울로 유학시키는 일은<br />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br />
풍요로운 지금도 자식 둘을 <br />
서울 유학시키기는 <br />
부담스럽다.<br />
​중학교 시절이다.<br />
월사금을 못 낸 아이들을<br />
학교에서 돌려보냈다.<br />
열 평 남짓한 약국에서<br />
형수님은 돈 서랍을 열어<br />
학비를 꺼내주었다.<br />
​그때는 그 고마움을<br />
제대로 알지 못했다.<br />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br />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br />
정성으로 뒷바라지하던<br />
형님과 형수님.<br />
​그 희생 덕분에<br />
나는 약사가 되었고,<br />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br />
주 안에서 평안하게 <br />
살고 있다.<br />
이 모든 것은 형님이 했다.<br />
​내 삶은 형님과 형수님께서<br />
내게 뿌려준 씨앗이 맺은<br />
열매라고 믿는다.<br />
형님은 대단한 분이었다.<br />
​약사로서, 장로로서<br />
형님은 늘 한결같았다.<br />
열여섯 곳에 교회를 세워<br />
주님을 위해 헌신하신<br />
그 뜨거웠던 발자취는<br />
영광이요 자부심이다.<br />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br />
어머니와 우리 형제에게<br />
“신앙생활 잘해야 한다”<br />
아울러 생이 얼마 남지 <br />
않은 할머니에게 <br />
잘 하라고 당부하던 형님 편지.<br />
형님은 말보다 행동으로<br />
신앙을 보였다.<br />
​서울신학대학교에는<br />
‘동혜장학회’를 만들었고<br />
땅까지 기부했다.<br />
기도와 헌신 때문에<br />
자녀들은 훌륭하게<br />
되었다.<br />
​세 자녀가 박사 학위를<br />
받고, 막내 사위 또한 의사 <br />
장로가 되었으니<br />
천국에 계신 형님께서<br />
얼마나 기뻐할까. <br />
​나와 작은형 또한<br />
형님 뒤를 이어<br />
장로 직분을 받았고,<br />
형님이 닦아놓은<br />
그 길을 따라서<br />
믿음을 경주한다.<br />
​내 아들이 장로가 되길<br />
간절히 바라던 소원도<br />
그대로 이루었다.<br />
조카 은현이까지 장로가<br />
되어 가문을 빛내니<br />
형님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br />
​다만, 조카들이 품은<br />
숙제 하나가 있다.<br />
코로나 시국이 겹치면서<br />
교회적으로 추도 예배를<br />
제대로 드리지 못한 점이다.<br />
​형과 형수가 저세상 사람이 <br />
된 후 나와 조카들 사이에 <br />
틈이 생겼다. 인지상정이다.<br />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일은 <br />
아니다.<br />
​형님 내외분은<br />
나와 조카들 사이를<br />
이어주던 동아줄이었다.<br />
​어제는 둘째 조카인<br />
성현이에게 연락이 왔다.<br />
김해까지 내려오지 못해<br />
저희끼리 추모하겠다고 <br />
했다.<br />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br />
​형님이 자주 꿈에<br />
나타나는 까닭은<br />
내 삶에 형님이 미친<br />
영향이 그만큼 크기 <br />
때문이다.<br />
​어제도 어떤 손님이<br />
약국에 와서 말했다.<br />
“약국 참 오래 하시네요,<br />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br />
​지금 내 얼굴을 10년 전 <br />
형님 얼굴로 착각한다.<br />
이런 말을 가끔 듣는다.<br />
형님을 닮았다는 사실이 <br />
오히려 자랑스럽다.<br />
​형님이 교회에 기증한<br />
대형 버스와 인쇄기,<br />
모니터와 ‘동해실’을<br />
볼 때마다 형님 숨결을 <br />
느낀다.<br />
동해실에 걸린 형님 사진을 <br />
보면 숙연해진다. <br />
​지금 교회 교역자들은<br />
형님을 아는 분이 별로 없다.<br />
비록 형님은 떠났으나<br />
남긴 신앙 유산과<br />
깊은 사랑은<br />
교인들 마음속에 흐른다.<br />
​이제 이 글을 통해 <br />
형님을 추모한다.<br />
“형님, 아버지를 대신해<br />
저를 지켜주셔서 참으로<br />
감사합니다. 저를 약사로,<br />
장로로 키워주셨습니다.”<br />
​명절에 공원묘지에서<br />
생생하게 기도하던<br />
형님 영상을 보았다.<br />
솔베이지 노래와 함께<br />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니<br />
마음이 가라앉는다.<br />
​오늘 밤 꿈속에서<br />
형님을 다시 뵙는다면,<br />
꼭 그 말을 해야겠다.<br />
“형님, 보고 싶습니다.”<br />
​조카들은 이제 노년을<br />
향해 가는 연륜이지만,<br />
내게는 여전히 조카다.<br />
세월이 가도 혈연 관계는 <br />
변치 않는다.<br />
​“형님, 고맙습니다.<br />
세욱이, 현주,성현이,<br />
미현이 이름을 <br />
불러가며 <br />
새벽마다 <br />
기도합니다.”<br />
​2026.4.13.<br />
동생 오형칠 올림.<br />
God bless you!]]></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18</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18</guid>
			<dc:date>Sun, 19 Apr 2026 10:54:5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혼자노는 법에 익숙해지는게 좋을듯 싶다.</title>
			<description><![CDATA[<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2bfabba24a5b28477771d8927f63b4d61326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친하게 지내던 몇안되는 친구가 또 죽었다. 직년에 구강암 수술을 했고 함암 치료를 받았는데, 워낙 전이된 부분이 크고 독한 항암치료를 하다보니 식도가 망가져 오랫동안 목구멍에 호수를 박아 연명하더니 며칠전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font></b><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열흘전쯤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나 싶었는데 곧바로 문자메세지로 말을 할 수 없어 문자를 보낸다 하여 그런가 했는데 죽기전에 유언으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했다며 장례를 치루고 난 후에야 죽음을 알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미친 것, 자기가 무슨 이순신장군이나 된양 '적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하여 친구들을 외면했고 가족들도 그래도 친한 친구나 지인에겐 부고를 알렸어야 했는데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괘씸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란 생각으로 그의 별세를 애석하게 받아 들였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이젠 부고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된게 서글프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홀로 그 두려운 길을 떠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친구들의 존재가 부인당한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나 역시&nbsp;'허심탄회(虛心坦懷)'한 성격이 못되지만 어쩜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과연 기탄(忌憚)없이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몇이나 있는가?&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무 꺼리킴없이 속마음을 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몇이나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엔 몇쯤 있을 거라 여겼는 데, 지금은 거의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nbsp;못났으면 못난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솔직 담백하면 좋으련만 실력이나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는&nbsp;허장성세(虛張聲勢)에 너무 길들여져 가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믿고 의지할 대상이 사라지면 공허해진다.&nbsp;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불법 다단계에 들어가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왜 그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모두 포기한 채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우리는 흔히 나약한 마음을 지녔거나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사람이 심리 조작에 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 심리 조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리 조작은 보다 더 교묘하고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의존성 인격장애 문제를 심리 조작에 걸린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판단을 의존하고 항상 타인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대신해 결정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까지 발생한다.특히 오늘날처럼 개인의 소외감이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불안정한 내면을 다스리기가 더욱 힘들다. 똑같은 환경에 놓이더라도 심리 조작에 잘 걸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취약한 마음 밭을 지닌 사람들이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328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믿을만한 사람들이 없으니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에 흔들리기도 하고 사이비에 빠지기도 한다. 내 주변에 아형아제하며 지내는 후배가 있다. 건축 자재상을 하는 관계로 알게 되었지만 몇년간 함께 하다보니 정이 들어 거의 매일 전화 통화를 하고 일주일에도 몇번씩 만나기도 한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의형제를 맺자고 당부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냥 현재의 상태에서 서로 돕는 공생관계면 족하지 너무 '허심탄회(虛心坦懷)'하면 실망이 클 거라는 생각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때로는 멘토가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허한 생각이 들 땐 누군가를 의지하고픈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완벽한 신뢰는 바라지도 않는다. 비교적 ‘신뢰 있는’ 사람과 집단을 찾게&nbsp;되는데, 불신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믿고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차선책(次善策)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 차악(次惡)이라도 찾자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신뢰도 조사’라는 것이 자주 발표된다. ‘절대 신뢰’는 불가능하니 여론조사로 신뢰를 측정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세월호의 참극에 따른 국민의 분노와 불신을, 적어도 여론의 50%는 돌려놓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가공할 ‘눈물’도 먹히지 않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살다 보니 최순실에 기댔고, 거기에서 뜻하지 않은 불운을 만나고 말았다는 신파는, 박근혜가 그동안 넘치게 보여준 불통과 아집과 부패와 권력 남용의 시궁창 속에 속절없이 파묻히고 말았다.&nbsp;‘부모를 비명에 잃은 불쌍한 공주’의 이미지는 더는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nbsp;최순실 주변의 권력 농단과 전횡이 불러온 공분의 깊이와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윤석열씨도 자기의 부모나 형제간에도 단절하고 처가집과 김건희에게 의지하더니 몰락의 길로 빠져 들었다. 정말 국정을 함께 할 파트너가 그들뿐이었을까?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할 대상이 없을 때 사람은 고독을 느끼고 복잡한 사고에 사로잡힌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목사와 교인. 가장 허심탄회(虛心坦懷)한 관계이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빌 허(虛), 마음 심(心), 너그러울 탄(坦), 품을 회(懷)가 합쳐진 사자성어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 또는 명랑(明朗)하고 거리낌이나 숨김이 없는 마음을 의미하는 데, 과연 목양관계에서 그런 면이 존재하는가.&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목회 현장에서 얻은 경험론이지만 세상에서는 똑똑하고 총명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교회에 오면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nbsp;끝없는 소모전에 말려들기 싫어서 일부러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nbsp;아니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nbsp;반면, 어줍잖은 사람일 수록&nbsp;교회에서 말이 많다. 마치 제 세상 만난듯 요란을 떤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요한3서에 보면 &lt;디오드레베&gt;라는&nbsp;사람이 등장하는 데,&nbsp;성경에 오명을 남긴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에서 말 많은 사람이었다.그는 으뜸 되기를 좋아한 교만한 사람으로 요한의 사도권에 도전을 한 사람인 데, 성도라 자처하면서도 복음 진리를 거부했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도 않고 두리어 핍박을 했으며 성도들 중에 주의 일꾼들을 대접하려는 자들을 비난하고 교회에서 쫓아버렸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러니 사도의 시름이 깊어졌고 교회 성장의 암초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말이라고 다같은 말이 아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일까? 교회 성장 전문가인 톰 레이너 박사(라이프웨이 리서치)가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말’에 대한 칼럼을 보면' 세상에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직업이 어딨어요?'라는 말이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 말은 ‘그 많은 쉬는 시간이 뭐하세요?’와 비슷한 말이다. 교인들이 보기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목회자는 주일만 일하는 아주 ‘편한’(?) 직업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그 중엔 일주일에 몇번씩 골프치러 다니고 당회(당구 모임)를 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목회자는 주중에 주일 설교를 꼬박 준비하며, 이외 교인 심방과 상담, 전도를 비롯해 교회 행정을 돌보고 때로는 교회 차량 운전까지 한다는 점에서 목회자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 중에 압권(?)은 '목사님은 신학교에 갔으니 공부를 제대로 안하셨겠네요’라는 말이다.&nbsp;목회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치곤 최악의 경우인 데, 군소 신학교가 수백개에 이르니 '할 일없으면 신학교나 가지 뭐!'하는 말이 항간에 떠 돌았던 걸 감안하면 목회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563a7e52e0773b26c4cdbd0cbb19cece13353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일이 많은 목회자이기에, 보이는 부분만 판단해 목회자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비하하는 말은 실망과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무튼, 가까운 사람이라고 마음편하게 말할 수 없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 실수를 덮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입조심해야한다. 그리고 교역자는 교역자가 세워주고 지켜줘야 한다는 그 말을 마음에 다시 새기게 되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내 생각과 의도와는 다르게 나오는 말들때문에 고개를 들지못할 일들이 생긴다. 마음이 편할때 그 때를 조심해야 한다. 난 교인들과 식사하기를 참 좋아했다. 별 일이 없으면 오늘은 누구와 식사를 할까를 생각하다 생각나는 사람을 불러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난 목회를 하면서 물론 대접받을 때도 많았지만 내가 살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때로는 고급스러운 곳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nbsp;기사식당을 주로 이용했고, 자장면 칼국수 등 서민 식당을 이용하면서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퍽이나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러나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싶어도 너무 멀어져 버렸다. 마음이 답답하고 외로울 땐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 할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설령 그런 대상이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금이다. 하도 말을 많이 했고, 말많은 곳에서 살다 빠져 나왔기에 이젠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말을 많이하면 더 공허해진다. 그리고 탈진하게 되고 더 큰 외로움에 빠진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버지이기에, 자식이기에, 남편이기에, 아내이기에, 친구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수록 감사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호의가 지나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려 한다.&nbsp;나는 그간에 마음이 모질지 못해 손해보는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몇일 몇날에 걸쳐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직은 본격적인 영농의 계절이 아니지만 빈들녁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마음속의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반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nbsp;어차피&nbsp;'허심탄회(虛心坦懷)'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니 혼자노는 법에 익숙해지는게 좋을듯 싶다.&nbsp;</font></b></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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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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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7 Apr 2026 13:41:0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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