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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안부두</title>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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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마음이 천 리면 지척도 천리'</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9/6bb87f1e28039ea6231b750ef7aee40122430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공사현장이 여러 곳이다 보니 약간만 신경을 안쓰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눈앞에 들어난다. 소장이 시골집을 구매하여 여러날 리모델링을 하느라 현장을 가볼 수가 없었고 나도 텃밭에 신경쓰다 보니 현장을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동네 이장이 내가 신축한 집에 여러날 전기가 들어와 있단 말을 듣고 달려가 보니 정말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러 부동산 업체에 분양을 맡겨 놓았더니 손님에게 집을 보여주고 제대로 단속을 안하고 떠난 흔적이 보이는데 화장실이며 창문도 제대로 닫질 않고 개방된 상태이며 입주 청소까지 마쳐 놓았는데 신발을 신고 출입한 흔적이 역력하다. 여러 업체에 매물을 내놓았기에 범인을 색출할 순 없지만 이럴 때 기분이 몹시 상하게 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공사현장이 세 곳이기에 일일히 관리하기가 어렵고 상주하는 직원이 없기에 관리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함부러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간 짜증이 나는게 아니다. 나는 열두가지 공정을 지휘하면서 우리 인부들을 시켜 쓰레기를 많이 만든 팀을 가려 낸 적이 있었다. 조적이 가장 심했고 타이루도 만만치가 않다. 큰 공사장이라면 자기 쓰레기는 자기들이 처리하는게 일반적이지만 개인이 직영하는 현장은 관습적으로 멀쩡한 자재도 마구 버리는게 습관이 되어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이런 업체들을 볼 때마다 이미 결제가 끝났지만 다음 공정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려 작정하고 '나쁜 시끼들'이란 辱을 입에 달고 산다. 결국은 우리 인부들이 청소를 대행해야 하고 쓸만한 자재를 수거하여 재활용하는데 일단 돈을 떠나서 기분이 별로이다. 주인이 없다고 이런식으로 처신한다면 공정을 일일히 지켜 보지 못하지만 불을 보듯 뻔하기에 그간의 일들에 대한 불신이 깊어감을 느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앞으로 모든 공정에 청소비 10%를 공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용하지 않고 버려진 자재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심뽀는 주인을 망하게 하려는 의도적 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재를 알뜰하게 사용해 주인에게 이익을 만들어 줘야 또 다른 공사를 할 수 있고 본인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선순환을 과연 알고나 있는지 의아스런 생각이 들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확신할 순 없지만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면 하루종일 기분이 별로이다. 혹여 내가 잘 나간다고 교만을 떨었는지도 모르고 이런 나를 달갑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은 자재가 마구 버려진 것에 대하여 나를 무시하거나 나를 망치려는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회에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가지게 된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옛말에 '마음이 천 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처럼 마음에서 멀어지면 가까이 있는 사이도 멀어지는 법이고, '막술에 목이 멘다'고 탈 없이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 일이 힘들어질 수 있는게 인간관계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현장소장은 각 분야별 오야지들에게 연락하여 사장님 기분이 별로인데 당장 달려와 청소를 하라고 압박하지만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 누가 가장 심했는지 한눈에 알 수가 있는데도 서로 자기들 쓰레기는 별로 없다고 극구 변명으로 일관한다.&nbsp;</div><div><br></div><div>난 소장을 만류시키며 대신 비싼 노임을 지불하면서 우리 인부들에게 청소를 시키면서 일단은 자기것이 아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며 노가다판에서 주인의식을 가져 달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걸 실감하고 있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들인데 무리한 요구라는 걸 인정은 하지만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내가 잘되는 걸 진정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런식으로 처신하면 안되는데 날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 거라고 단정해 버렸다.&nbsp;</div><div><br></div><div>독일어 중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풀이되는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생겨나는 것이 ‘샤덴프로이데 증후군’이다. 샤덴프로이데란 독일어의 불운을 뜻하는 ‘샤덴’과 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가 합쳐진 말로서 한 마디로 ‘너의 불운이 나의 기쁨’이란 뜻이다.&nbsp;</div><div><br></div><div>쇼펜하우어는 "샤덴프로이데를 즐기는 건 사악하다. 타인의 불행을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악의를 숨기지 않는 성향만큼 마음이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가치가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징표는 없다'고 했다. 이런 성향이 관촬되는 사람은 끝까지 피해야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9/ea49a2f30887fa493edd40971f9088d7224402.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거나, 명예가 하늘을 찌르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면 자신이 덕을 본 것도 아니면서 고소한 마음이 드는 이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차마 내보이기 싫은, 또는 인정하기 싫은 이 감정은 자존감을 위해 끊임없이 우월해지고자 남과 비교를 시도하는 뇌구조에서 발단한다.</div><div><br></div><div>사람들은 남보다 나은 부분을 발견하면 쾌감을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한다. 문제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자존감이 아닌 타인의 불행을 들춰내거나 ‘누가 누가 카더라’라는 가십거리를 인용해 악의적 댓글로 얻는 자존감에 샤덴프로이데가 작용한다는 것이다.</div><div><br></div><div>난 골프에 대하여 전혀 아는바가 없지만 일반 골퍼들 사이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라는 말이 자주 회자 된다. 남이 공을 잘못치면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웃는다는 이중성을 꼬집는 말이다. 정치는 더욱 그렇다. 즉 내 노력과 의지에 관계없이 남의 불행으로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심산이 크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 경쟁자가 잘못해서 실패할 때 더 카타르시스가 된다는 말이다.&nbsp; &nbsp; &nbsp;</div><div><br></div><div>내 또래의 사람들의 화두는 주로 자식 손자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문제만큼은 내 맘대로 안 된다!'에 아주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내 맘대로 안 되는 자식'이 당연한 거다. 오히려 '내 맘대로 되는 자식'이야말로 나중에 큰 걱정거리가 된다. 왜 자식을 내맘대로 키우려하는 것일까. 세상사가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화내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나름대로 성공한' 이 땅의 중년 남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일들이 맘대로 안 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른다. '통제 강박'이다. 자신의 성공을 불굴의 투지와 노력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통제 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자꾸 새벽 4시면 잠을 깨는 거다. 가족 다 자는 새벽에 혼자 일어나 신문이 왔나 하며 자꾸 현관문을 열어보게 되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나도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반면 할 수없는 일도 많다는 걸 시인하는게 건강의 지름길이다. 너무 잘하려다가 다들 한 방에 훅 간다. 이러한 샤덴프로이데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 중 하나가 ‘루머’다. 쌤통 심리는 자신만 느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들은 말은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이 더해져 재생산되며 다시 제삼자에게 이어진다.</div><div><br></div><div>쇼펜하우어와 같은 입장이었던 칸트는 샤덴프로이데를 '악마의(diabolical)' 이라고 불렀다. 샤덴프로이데 심리는 악마나 놀부의 심보에 가깝다. 상대방의 고통을 통해 흥분을 느끼는 사디즘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심리는 인간이 오랜 생존경쟁을 거치면서 본성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nbsp;</div><div><br></div><div>디아볼리크(diabolica)는 어쩜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가 종종 샤덴프로이데 감정을 느끼더라도 도덕적으로 덜 고민해도 될 성싶은 착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시기심은 가장 파괴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이다. 시기심은 가장 오래된 죄의 형태이며(사 14:14), 인간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우리 몸의 건강도 위협한다(잠 14:30).&nbsp;</div><div><br></div><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기심을 가지고 있다. 시기심은 나같이 철없는 사내만 느끼는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시기심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예를 들어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등) 시기심은 더 적나라하고 치밀하다. &nbsp;내가 아는 한, 교수들의 시기심이 가장 심하다. 특히 인문사회분야 교수들의 시기심은 하늘을 찌른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과학과는 달리 인문사회과학에는 객관적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 타인의 우월함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열등함을 수긍하는 순간, 존재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래서 남 칭찬하는 교수가 그렇게 드문 거다. 목회자들도 마찮가지이다. 칭찬하는데 인색하고 남의 교회가 부흥하다는 소리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간다는 관점에서 보질 않고 상대적으로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9/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22451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원하던 것을 채우고 나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늘 마음을 비운다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에 덕지덕지 욕심이 달라붙어 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했다. 저울에 무게를 단다면 똑같거나 아니면 내 떡이 더 무거울 수도 있다.&nbsp;</div><div><br></div><div>그래도 내 눈에는 내 떡이 작아 보이기 십상이다. 나의 욕심 때문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면 그것은 나의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은 서로 비교하는 데서 비롯한다. 남의 떡과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내 떡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나에게 충분하다.</div><div><br></div><div>남의 떡이 커 보이는 마음은 내 현실의 부정이다. 현실의 부정은 마음에 분노를 갖게 하고 그 분노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에빠질 수도 있다. 행복은 각 개인의 자존감이 만들어내는 각자만의 충만한 감정의 상태이다. 나의 행복을 남에게 양보해서도 안 되고, 결코 남의 행복과 견주어서도 안 된다. 행복의 주어는 오로지 ‘나’이어야 한다.&nbsp;</div><div><br></div><div>남의 행복을 아무리 기웃거린들 그것은 나의 행복이 될 수 없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자존감을 키우는 가장 근원적인 자세이다. 남들 하니까 나도 따라 해서는 불행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div><div><br></div><div>오후엔 내일 충청도 공주 선영에 가서 벌초를 하려고 예초기를 점검하려 한다. 공주 박목사님이 도와 주겠다는데 소장과 함께 두대로 풀을 깍으면 좀 더 수월할 거 같은데 난 그 시간에 선산에 알밤을 수거해야겠다. 산소 바로 아래에 사는 팔촌 형님이 이미 주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몇개쯤은 남겨 두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휴게소에 들려 공주 정안밤을 사오려 마음먹었다.&nbsp;&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5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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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9 Sep 2026 22:52:0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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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이 칠십을 넘기고 제대로 대접받으며 사는 사람은 10% 미만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8/73352a2dfe0ed32083ff9b4817ce06d82348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동기생 중에 70 은퇴전에 전국 100대 산을 모두 정복하고 인증사진을 올려 부러움을 사고 있다. 나도 젊었을 땐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명소를 등정해 본적이 있었지만 나이 40을 넘기고 나서는 입구에 있는 사찰 정도를 감상할뿐이고 지금은 해발 98m에 불과한 익산의 배산도 헐떡 거려 자주 오르질 못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관리를 잘못한 탓에 불량 체질이 되고 보니 등산은 엄두도 못낼 형편인데, 그 나이에 전국 백대 산을 다 등정했다니 놀랍기는 하지만 나 역시 내 젊음이 다 가기 전에 100개의 집을 지으려고 결심하고 56번째 집을 지었고 지금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44개를 더 지으면 그 때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인증사진을 올릴 생각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 겨울부터 다섯개의 건축을 시작하여 봄에 완성했고 지금은 분양하려 준비중이지만 일년에 다섯개씩을 짓는다면 팔순을 넘길지도 모르지만 가볼 때까진 가볼 생각이다. 칠순에 100대 산을 등정했다니 나 역시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있다. 전문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두어번 예배당을 지어 본적은 있었지만 건축에 전무했던 내가 이런 일을 할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이기에 힘주시는 날까진 매진할 생각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내 또래의 친구들의 주로 가는 놀이터는 배산 아래에 있는 공원이다. 그 곳에 가면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는데 2천원이면 한끼를 해결할 수가 있고 지루박이나 사교춤을 배울 수 있다하여 노친네들이 점령해 버린 노인해방구가 되어 버렸다. 주로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소일거릴 하는데 집에 있으면 할멈이 자꾸 꼬집는다고 푸념이다.&nbsp;</div><div><br></div><div>70대에 접어드는 남성의 가슴 한켠에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고 경쟁하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뒤돌아보면 직장 동료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고향이나 학교 친구들은 서울 올라와서 각자 먹고살기 바쁜 탓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nbsp;</div><div><br></div><div>험난한 사회생활에서도 '내 새끼, 내 마누라만은 따뜻한 밥 한 끼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지만,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곳은 역설적으로 집이다. 나이 칠십을 넘기고 제대로 대접받으며 사는 사람은 내가 볼 땐 10% 미만이다. 나머진 모두 찬밥 신세인 것 같은데 그래도 큰소릴치며 가식적(?)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다.&nbsp;</div><div><br></div><div>사람은 두가지 나이를 먹는다. 신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 정신적 나이를 뇌의 건강도라 한다면, 사무엘 울만이 말한 ‘청춘’을 비로서 이해할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겉모습은 늙지만 속은 날로 날로 새롭다고.....만약 삶의 아무런 변화없이 살아갈 때 신체적 나이는 당연히 먹지만, 뇌의 나이는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에 의해 더 빨리 늙는다.&nbsp;</div><div><br></div><div>고인 물이 썩듯 뇌의 ‘가소성의 역설’에 의해 천성적으로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싫어한다). 그러나,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뇌의 가소성에 의해 사람은 새롭게 변한다. 청소년기에 공부를 억지로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공부에 미쳐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경우처럼 뇌의 가소성은 양날의 검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뇌의 가소성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서와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설파한다. 독서야 눈이 침침해져 젊었을 때 담아 놓은 걸 꺼내 사용할 수 밖에 없지만 여행은 그런대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의기투합만 하면 언제던지 결행할 수 있기에 권장하기도 하고 주선하기도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상호간에 깊은 교감을 이룰 수 있어 좋고 막연한 벽을 허물 기회를 얻기도 한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8/0d6b3fcec0f98ec6a386b09d71b34eef23501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본시 ‘인간(人間)’이란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존재라는 정의에서 가장 핵심은 ‘사람 사이’이다. 곧 더불어 살아가므로 인간다움이 나타나고 인간의 멋과 맛이 드러나는 법인데 요즘엔 ‘더불어’가 아닌 뭐든지 ‘혼자’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이 우릴 우울하게 한다.&nbsp;&nbsp;<div><div><br></div><div>이전엔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일들을 본인도 민망해 하고 타인은 그런 모습들을 측은히 여겼건만 지금은 모든 것을 혼자하려고만 애를 쓰고 실제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기아 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nbsp; ‘나 혼자 산다!’라는 방송까지 생기지 않았던가. 무엇이 삶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얼마나 실망스런 일들이 많았으면 독거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갈까?&nbsp;</div><div><br></div><div>부채도사 같은 소리겠지만 내가 알기론 인생 만사 문제는 단순하고 해결도 알고 보면 단순하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게 내 지론이다. 여기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1인 가구를 말하기 보다는 열등감과 소외감에 사로잡혀 이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인생을 의미한다. 스웨덴 출신의 뇌과학자가 인류 역사상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뇌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을 적절하게 가질 때 오히려 인간의 집중력, 창의성 등이 더 발달한다고 강조한다.</div><div><br></div><div>침대에서 늦잠을 자다가 천장의 파리를 보고 X축과 Y축을 발견한 데카르트, 정원에서 멍하니 사과나무를 바라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등의 사례를 든다. 인간이 진정 업무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면 집중력, 창의성이 필요한데 그 기본은 생각을 멈추고 뇌가 휴식을 취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들에겐 정신적인 휴식이 진정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몸의 휴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뇌를 쉬게 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nbsp;</div><div><br></div><div>나는 근래에 이르러 머릴 쓰는 일이 거의 사라졌지만 대신 몸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할 일은 많은 사람이다. 일부러 일을 만들고 거기에 집중한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나이 육십이면 청춘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과연 그런가? 나는 좌우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때부터인가 강노지말(强弩之末)이란 말을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緋緞)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强)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衰退)하고 만다는 의미(意味)의 고사성어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젊었던 시절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도 뚫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았다. 어쩜 지금까지도 강노(强弩)라고 믿는 구석이 약간은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지말(之末)에 무게 중심이 이동한 걸 인식한다. 애써 '지말'이 아니라도 부정해도 내 삶의 봄날을 저만큼 떠나보낸 텅빈 가슴이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양 쓸쓸해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인즉, 4~5년 전까지만 해도 강노(强弩)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전에는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허나, 이젠 '법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함이 발견된다. 법이 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없는 무력한 존재로 인간은 전락한다. 그래서 인생의 가을을 서글퍼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날을 반추해 보니, 쪽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항해해 왔다. 그 쪽배에서 내려 뭍에 올라 지나온 세월을, 그리고 그 거친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생각해 본다. 어느 땐 거센 풍랑을 이기며 무사히 건너왔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 가슴을 때리는 후회가 있다. 그것은 ‘세월의 바다’를 항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임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모할 정도로 항해를 계속해 왔다는 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한 마디로 무식했다는 얘기다. 항해 지식이 부족했다. 그러니 나는 바람과 물결에 쉽게 흔들리는 쪽배일 수밖에 없었던 것. 도대체 신학서적 몇 줄밖에는 읽은 것이 없으니 무식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무식이라는 말은 지식의 부족, 결핍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경직성’이 더 문제였다.&nbsp;</div><div><br></div><div>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생각이 꽉 막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나만의 논리’로 세상을 대하고 말았다. ‘남의 논리’에는 언제나 귀를 닫았던 것. ‘나만의 논리’에 내가 갇혀 버렸던 것이다. 자연히 변화를 거부했다. 따라서 세상과 나는 언제나 유리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내 논리에 따르지 않는 세상을 나무랐다. 그럴수록 세상은 더욱 멀어져갔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8/abb73469d2ead197180fcf8c926dfd232351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변화 즉 자기혁신을 통해서만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는데. 그것을 모른 무식쟁이이었던 것. 또 한 가지, 나 자신을 엘리트라고 믿는 턱도 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한 마디로 있지도 않은 환상만을 좇고 있었던 것.&nbsp;</div><div><br></div><div>그 때문에 언제나 ‘우월한 자’가, ‘누리는 자’가 되고자 했다. ‘섬기는 자세’, ‘겸허한 자세’는 입으로만 읊었을 뿐이다.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게으른 사람임을 몰랐다.</div><div><br></div><div>한 사람의 인간은 하나의 시대밖에는 살 수 없다. 따라서 내 시대는 끝나 간다. 나는 선친을 기억한다. 그리고 윗대 선조들은 몰라도 내 눈으로 보았던 조부모나 당숙 삼촌 등 내 눈에서 살아져 간 분들을 보면서 불원간에 내 차례가 올 걸 생각한다. 다시는 쪽배든 큰 배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설령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나는 더 겸허해질 걸 다짐해 본다.&nbsp;</div><div><br></div><div>잘 자라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더니 배추와 무우가 잘 자라고 있다. 매일 물을 주고 정성을 들였더니 이제 제법 커졌고 무우는 이삼일 안에 속아주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성장했다. 드디어 벌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더지도 출현하여 뿌리를 건드리나 보다. 지인에게 고양이와 강아지를 입양해 달라고 부탁했다.&nbsp;</div><div><br></div><div>우리 소장도 오늘 시골집을 구입하여 리모델링을 하고 이사를 하는데 청계와 거위 그리고 토끼를 키우려나 보다. 일단 오늘중 이사를 마치고 내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가기로 했다. 명절날은 부안 모항으로 외국인 근로자들과 갯바위 낚시를 가기로 했지만 내 예상으론 망둥이 두어마리 정도를 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백합죽 한그릇에 잃은 식욕을 되찾을 기회로 삼으려 싱글들의 나들이를 기다리고 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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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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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8 Sep 2026 23:54:4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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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일 먹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7/2c3c347fe1fde625ec54a7547a28d139231435.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열아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마칠 때까진 부모님의 후광으로 살았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24세 첫 임지에서 이만칠천원의 사례비를 받았고 군목으로 입대하여 중위 월급으로 15만원씩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div><div><br></div><div>개척교회 시절엔 월급이란 개념이 없었기에 무진장 고생했지만 그나마 굶지 않고 산게 신기할 정도이고 은혜라는 사실을 지나고 보니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div><div><br></div><div>오늘 건방진 소릴 한번 해보려 한다. 마지막 내가 현역생활을 청산할 때 사례비가 도서비를 포함하여 350만원 정도였지만 전체적으로 오늘날 가치로 환산해 볼 때 24세부터 60세까지 월 평균 200만원이라고 볼 때 36년 동안 총 8억원 정도의 수입을 가지고 잘먹고 잘 살았으며 자식들을 키워 냈다. 큰 돈이긴 하지만 먹고 살다보니 통장에 쌓아 둔 것은 거의 없었다.&nbsp;</div><div><br></div><div>어려운 가운데 꼬박 꼬박 36년동안 교단 년금을 들어 36호봉이 되었지만 조기 은퇴했다고 년금 지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억울하지만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았다. 군인이나 공무원도 19년 동안만 년금을 부으면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은퇴후에도 년금 신청 전달까지 계속 불입했는데 년금 지급을 거부하는 건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어차피 교단에게 내 장래를 맡길 순 없기에 훌훌 털어 버렸다.&nbsp;</div><div><br></div><div>은퇴한 동기생들이 월 백만원 정도의 교단 년금을 받아 퍽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가 본데 나에겐 고정적인 수입이라곤 국가에서 전체 노인들에게 매달 지급하는 기초년금 27만5천원이 전부이다. 한달에 나에게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를 계산해 본적이 없지만 최소한 5백만원 이상은 가져야 아내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자동차 두대를 운영하는 경비, 보험료 의료비 전기료 수도세 식비 난방비 의류비 등 숨쉬는 것조차도 모두가 돈이 들어가니 하루 하루를 사는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이다.</div><div><br></div><div>숨을 안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약 5천일(日)은 더 숨쉬며 살아야 한다면 도대체 얼마 정도가 더 있어야 될지 가름이 안되지만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고 설마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어제도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역전앞에서 무료 급식을 받으려 줄 서 있는 행열을 보았는데, 배산공원이나 큰 교회에서 주는 급식도 꽤나 있어 일단 안심이다.</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처음 내가 귀촌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달 후엔 못견디고 상경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내 가족들 역시 조만간 상경할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지금은 내 존재감을 조금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신기(神氣)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nbsp;<div><br></div><div>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돕는 주님이 계시지만 그 전에 죽을만큼 일하고 배운다는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거의 매일 채근한다. 처음 내가 귀촌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자 지나가는 소도 웃었다. 아주 어렸을 시절을 빼면 땅을 밟아 본지가 가물 가물한 데, 시골행을 고집하니 '웃기는 짬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7/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2317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시중에서 사면 6000원만 주면 살 수 있지만 일부러 대장간에 가서 만원을 주고 내 체질에 맞는 호미와 낫을&nbsp;주문 제작했다. 일주일만 견디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첫해 남의 땅 몇평을 빌려 고구마를 심었다. 다음해엔 600평 땅을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다.&nbsp;</div><div><br></div><div>손가락 마디마다 수지터널증후군, 일명 방아쇠증후군이 생겨 손가락이 마치 방아쇠를 당기듯 뚝뚝 소리가 나면서 펴지질 않아 고생 꽤나 했다.&nbsp;</div><div><br></div><div>그래도 귀촌학교에 입학하여 농사학을 배웠고, 인터넷을 뒤척거리며 열심히 배웠다. 무던히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농사꾼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다음해엔 약간의 자신감이 생겨 750평의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지고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농사일을 병행하면서 조경업자를 따라 다니며 배웠고, 나무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nbsp;</div><div><br></div><div>이 땐 솔찌기 시간이 없어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고, 가족들이 있는 인천에도 거의 올라가지 못했다.매주 상경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격주로 변했고 한달에 한번 정도는 올라가려 했지만 이젠 일년에 한주번 정도 상경한다. 할 일없이 노닥거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예전엔 관심조차 가져 본 적이 없는 하찮은 일이라도 배우려 노력했고 은퇴 후 소일거릴 즐기는 사람들의 권유를 무시하고 일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았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허리가 부실하여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오직 호미 한자루로 세상을 평정하겠다는 돈키호테 발상으로 무모할 정도로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엔 이젠 어느정도 노하우가 생겨 집을 더 잘 만들고 정원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생겨 다시 600평의 땅을 구입하고 황무지와 같은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일년내내 꾸몄다. 내 손이 안간 곳이 없을 정도로 나무나 꽃 한송이까지 직접 키워 만들어 나갔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중에서 꽃을 사다 장식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젠 야생에서 씨를 받아 포트에서 키워 옮겨 심는 재미에 푹빠졌고, 꽃을 키워 무상으로 나눠주는 재미에 월별의 꽃을 키우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꽃은 한 때 피고지는 거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계절별 블럭을 만들어 년중 꽃이 피는 동산을 만들었다. 한겨울만 빼고 꽃을 볼 수 있었고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도 부지런히 꽃과 나무를 심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만이겠지만 이젠 일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셈이다. 낙향할 때 가지고 온 자산이 변변치 않아 곳감 빼먹듯 했더라면 벌써 노숙자 신세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농사라는 걸 시작하면서 이 일로 입에 풀칠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알기 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출을 아무리 줄인다 해도 수입이 없는 상태에선 현상 유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운전이라는 생각에 택시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과거의 뇌졸증 병력이 문제가 되어 부적격 대상이란 통보를 받았다.&nbsp;</div><div><br></div><div>내 처지가 한심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도 내 절박함을 말하기도 어렵고 형제들에게도 내 속사정을 말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주저 앉을 운명이 아니고 분명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을 걸 믿는 확신이 있는데 아직 보이지 않을뿐 언젠가는 보여주실 거라고 믿었다.&nbsp; &nbsp; &nbsp; &nbsp;&nbsp;</div><div><br></div><div>가끔 산을 오르다 보면 밑동을 자른 고목나무를 보게 된다. 주어진 목숨을 다했는지 넘어진 나무기둥의 절반은 썩어 있다. 고목이 잘려나간 그루터기엔 나이테가 희미하게 보인다. 모진 세월을 보낸 탓인지 나이테에는 갈라진 틈이 몇 개 보인다. 이는 나무의 눈물이 흘러내린 자국이다. 나이테 위의 검은 자국은 마치 치마폭에 속을 토해낸 응어리를 말리고 있는 것 같았다.&nbsp;</div><div><br></div><div>계절 변화가 없는 열대우림 지역의 나무에서는 나이테를 볼 수 없으며, 열대라도 건기와 우기의 구별이 뚜렷한 곳에서만 나이테가 생기지만 나무줄기나 가지의 가로 단면에 나타나는 둥근 모양의 테를 보노라면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지만 나는 나무의 아픔의 흔적을 본다. 매년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생기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사람에게도 주름살이 생기게 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상징과도 같다. 나이가 들면 피부 속 탄력을 주관하는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살이 처지는 등의 노화현상이 나타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7/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3193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얼굴의 주름은 부끄러움이 아니고 &nbsp;인생의 훈장이다. 오랜 세월의 연륜이 쌓이지 않고서는 &nbsp;감히 어느 누가 그 귀한 훈장을 평생 가지고 &nbsp;살수가 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만나는 시니어들에게 은퇴후에 잃은것이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를 종종 &nbsp;물어본다.&nbsp;</div><div><br></div><div>잃은 것을 후회 하는 분들은 대게 “그때 내가 왜 그 사람에게 그리 못되게 굴었는지?” 하는 후회, 가족과 함께 여행을 못해 본것, 쓸데없는 일에 객기를 부린 것, 영양가 없는 &nbsp;정치 이야기에 &nbsp;열을 올리면서 시간 낭비 한것 등등이라고 한다.&nbsp;</div><div><br></div><div>가장 확실한 것은 얼굴과 목의 주름살. 많은 시니어들은 이제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더이상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안찍는다고 말한다. 세월은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세월이란 말은 바로 흘러가는 시간으로 광음 또는 때라고도 한다. 나는 매일 습작을 하면서 언제가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덩그런히 남아 있을 언어의 조각들, 삶의 흔적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nbsp;</div><div><br></div><div>작고하신 선친의 설교 노트를 볼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는데 그 메세지의 내용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질곡(桎梏)의 세월을 살아왔을, 그 삶의 언저리를 회상하며 서글픔을 느낄뿐이다. 늘상 야매로 끼운 틀리를 만지작거리며 잇몸에 맟추어 보려고 골몰(汨沒)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면 치과로 모시고 가지 못한 회한(悔恨)보다 인생의 끝자락이 왜 저러해야 하는지를 슬퍼하게 된다.</div><div><br></div><div><div>한 선배가 요즘 버릇없는 후배들이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소연한다. 때론 그 선배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후배들이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는 생각이 들면 세월의 무상함도 들 것이다. 그러나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나일 먹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뜸해지는 안부가 아예 없어지는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잊혀질 건 잊혀지고 버림받을 시간이 되면 누구라도 버려지게 된다는 걸 께닫는 순간 오늘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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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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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17 Sep 2026 23:21:0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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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젠 진짜 가을인가 보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6/204da78a1f4aaad04961d2365a4e83dc23230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요즘 피하고 싶은 전화가 많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 입력되지 않은 전화는 거의 받질 않는다. 아직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 토마토 제배방법이나 산성화된 토양을 알카리성으로 바꾸는 방법을 물어오면 애써 찾아가 상담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하지만 촌놈에 불과한 나에게 목회나 교단 정치를 물어오면 대략난감이다.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모두가 부질없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과거의 내 모습이 연상되어 씁스레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엔 귀촌하고 나서 너무 시끄러워 짜증이 났지만 이젠 만성이 되어 오히려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상하리만큼 시골화되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직은 도회적인 모습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어 촌놈 소릴 듣지 않지만 머지 않아 촌놈 소릴 들을 것이다.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점점 내 모습이나 생각하는 것이 시골스러워져 가기 때문에 촌놈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도 자연스럽게 사는 방식이 좋다. 틀에 억메이지 않고 체면치레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멈추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멈추는 것이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고민하는 순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span><span style="line-height: 1.5;">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시간내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볼 수가 있고, &nbsp;아침에 기도를 하든지 사색을 하든지, 또는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운동하거나 산책하면서 내 스스로가 가슴속에서 하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는 시간을 종종 가진다. 남과 </span><span style="line-height: 1.5;">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나만의 고유한 빛깔이 있어 그 빛깔로 세상을 밝히면 된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는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눈앞엔 모현동 신도시가 펼쳐져 있지만 바로 한블럭 떨어진 내 집 주변에 아직 꿩이 나르는 모습을 보며 땀을 식히면 여기가 바로 </span><span style="line-height: 1.5;">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웃집&nbsp;</span>작두콩이 지지대를 타고 오르며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 즐겁고. 호박 넝쿨이 하루가 다르게 뻗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식사를 걸러도 배고프지 않다.&nbsp;</div><div><br></div><div>오늘도 새벽 기도를 가는 대신 이른 아침부터&nbsp; 홀리팜 전체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일과로 시작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풀과의 사투를 벌리겠지만 아직도 한낮의 온도는 30도를 웃도니 힘에 겨워 쉬는 시간이 길어질게 뻔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가 나에겐 적격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남들 눈엔 쉬운 것 같아도 촌노가 다된 나에게는 모든게 힘에 버거운 것들이다. 하지만 아직은 거름 포대 20kg 정도는 나혼자의 힘으로도 나를 수가 있다.&nbsp;</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모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몸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마음이 피곤하면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생활의 편의성이 높아지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들은 줄고 있지만 반대로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늘고 있다. 정신 없이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 새 하루가 다 가 버렸다고 느껴 본 적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바쁜 생활 속에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마음의 에너지가 방전되면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힘겹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평소에는 한두 시간 만에 처리하던 일들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계속 붙잡고 있거나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작은 실수에도 크게 짜증을 내며 갈등상황을 만들어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여지가 높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련하며 활력을 줄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그래서 나는 그토록 피곤하게 하루를 보내고도 내 자신을 성찰해보는 작업을 쉬지 않고 한다. 어떤 땐 글을 만들다 책상에서 잠들어 버리지만 목회의 길에 들어서면서 36년동안 수작업으로 설교를 만들었던 그 기분을 되살리며 귀촌일기를 적어내려 가고 있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생각없이 살면 머지않아 무뇌아적인 현상이 올지도 모르기에 사소한 일들도 기록으로 남기려 애쓰고 있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span style="line-height: 1.5;">나는 아침에 기상하여 텃밭으로 나가면 어디 부터 손을 댈지 망연자실이지만 일단 눈에 뵈는대로 잔디 밭의 풀을 뽑는 일부터 두서없이 일을 시작한다. 거의 </span><span style="line-height: 1.5;">매일 풀을 뽑는대도 자라는 속도를 못따라 갈 지경이다. 돌아서면 다시 풀이 돋아나는데,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span><span style="line-height: 1.5;">정도이다. 이러니 하루라도 풀을 뽑지 않으면 이내 예전 황무지로 돌아갈게 뻔하기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 하루를 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nbsp;</span></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span style="line-height: 1.5;"><br></span></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6/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2324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span><span style="line-height: 1.5;">말없이 텃밭을 기어 다니며 풀을 뽑다 나를 포함한 목회자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곡은 더디게 자라는데 풀은 한시만 </span><span style="line-height: 1.5;">눈을 돌리면 겉잡을 수 없도록 땅을 황폐시켜 버린다.&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또한 잔디인지 풀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유사한 풀이 많아 애를 먹는데, 전심을 기우려 </span><span style="line-height: 1.5;">관리하지 않으면 나중엔 후회하게 된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난 목회를 하면서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생각에 여유작작 목회를 해 왔는데, 이거야말로 내가 얼마나 </span><span style="line-height: 1.5;">어리석었고 불충한 일을 저질렀는지 이제야 깨달았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목회자가 건강 관리를 위해 골프를 치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 일면 수긍이 </span><span style="line-height: 1.5;">가고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침에 풀을 자르고 저녁에 다시 돋아나는 풀을 보면서 교인들의 영적인 생활과 교회를 파수해야 할 목회자들이 너무 </span><span style="line-height: 1.5;">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일주일에 몇번씩 골프를 치고 운동하는걸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 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nbsp;</span></div><div><br></div><div>낮에는 공차고 사우나하고 밤에는 당구치고 잡담하는 사이 사단은 가라지를 뿌려놓아 교회를 폐허시키고 교인들의 심령상태가 위기에 빠져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나도 현역시절 낮에 사우나에 자주 다녔지만 엄밀히 따지면 근무 시간에 사우나에 가는 공무원이 있다면 단연 징계감이다. 단 하루만 일손을 놓아도 걷잡을 수 없이 잡풀이 번지는데, 무슨 교단 정치를 하고 여가 생활을 하려는지...&nbsp;</div><div><br></div><div>목회자의 입장에서 극구 변명하고 싶고, 목회자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 양떼에 마음을 두고 이들을 지켜야 할 소명의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즉 이 사실에 눈을 떴더라면 그렇게 안일하게 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래서 더욱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으려 매일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지금 내가 하는 일들은 경제적 가치를 따지면 별거 아니지만 가라지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알곡들을 보노라면 내 손이 쉴 틈을 얻지 못한다. 이런 노력과 정성이 있었기에 별다른 거름을 사용하지 않고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대도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다. 대파와 쪽파 그리고 무우와 배추, 또한 시금치와 아욱도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어 얼마후면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nbsp;</div><div><br></div><div>조금있다가 양파와 마늘도 심겠지만,&nbsp;<span style="line-height: 1.5;">어쩌다 시내에 나가면 얼굴과 팔이 너무 타서 친구 녀석들이 </span><span style="line-height: 1.5;">아프리카 가봉에서 왔느냐고 놀려댄다. 그러고 보니 너무 썬텐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피부는 검어졌지만 몸은 최상이다. 난 어께를 보여주며 </span><span style="line-height: 1.5;">이게 원래 내 색깔이라니 완전 팔과 어깨가 딴 사람이다. 흑인과 백인을 섞어 놓은듯하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허리 사이즈가 40에서 30미만으로 줄긴했지만 탐스럽게 열린 열매들을 보노라니 피로가 저만치 물러간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석양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면 천국이 따로없다. 지난 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풀벌레 소린 마치 교향곡을 듣는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니 너무 좋다. 좋아!</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나는 역설적인 논리에 익숙해져 있다. 한 인간이 완벽하게 살려고 과잉 욕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것을 훔치는 행위다. 완벽하게 살려는 강박적 자세가 인간을 더 험하고 냉정하게 만든다. 완전하지 못함도 능력이다. 아쉬울 것이 있어야 겸손하고, 겸손해야 과잉 욕심을 내지 않는다. 완전한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처음엔 그렇게 근사하게 보이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시시한 것들뿐이고, 반대로 하찮아 보이던 것들도 눈에 익숙해지면 멋있어 보이는 법이다.</div><div><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33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2/07/20/9a6e887fded5bedac9ff2e255cd626d911470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에펠탑은 세계적 관광명소이다. 그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고 또 1889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에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진 것인 데, 속으로는 세계 최고 높이의 건축물을 세워 프랑스의 국력을 알리려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div><div><br></div><div>그런데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한 이 철탑이 세워진 후 파리 시민들에게 에펠탑은 흉물 취급을 받았다. 작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 매일 에펠탑 아래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곳이 파리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div><div><br></div><div>에펠탑은 원래 박람회가 끝나면 20년 후에 철거할 예정으로 세워졌었다. 50인의 작가와 예술가들로 구성된 건립반대위원회는 20년도 길다고 조기 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그 에펠탑은 철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탄생 때부터 비난과 찬탄의 양극단을 줄타기하며 수많은 별칭을 지닌 이 탑은 박람회가 끝나고 100년이 훨씬 넘도록 당초 예정과 달리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20세기와 21세기를 여는 파리의 상징물로 자리잡고 있다.&nbsp;</div><div><br>눈에 거슬린다고 철거하지 않고 오랫 동안 기다린 탓에 파리를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 잡을 수가 있었다.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해 보라. 사람은 오랫동안 보아 온 것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는 법이다. 당장은 거치장스럽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구스타프 에펠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는 때가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기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에서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면서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황혼을 곱게 만들자고 어깨를 토닥거려 본적이 있었다.&nbsp;</div><div><br></div><div><div>지금은 누가 내 주변에 가까히 오는게 별로이지만 예전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참 좋아했었다. 단 둘이서 대화하는 건 와이프하고도 서먹하지만 대중 앞에 서면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다. 지금도 둘이 만나는 것보단 여럿이 만나는게 더 자연스럽다. 아마도 스타 기질이 있는듯 싶다. 그러기에 특히나 주일날 교인들의 출석에 무진장 신경을 썼다. 대범한 것 같아도 이런 사소한 일에 알러지 반응을 보였다.&nbsp;</div><div><br></div><div>설교를 하고 내려와 설교 내용을 곱씹어 보며 자책하기도 했고, 교인들의 반응에 민감함을 보였다. 예배를 마치면 설교 동영상을 보면서 잘못된 부분이 없었는지를 살펴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교회 카페에 올려도 된다고 허락했다. 지금이야 공적인 자리를 떠나 자유를 만끽하지만 공직에 있는한 그게 최소한의 예의이며 자존심이라 생각했다.&nbsp;</div><div><br></div><div>나는 강단이 무소불위의 장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의 양식이라며 어거지로 먹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맞기 싫은 매는 맞아도 먹기 싫은 밥은 못먹는 법이다. 무조건 먹으라고 강요했던 일이 부지중에라도 있었는지를 반성해 본다.&nbsp;</div></div><div><br></div><div>&nbsp;</div></span></div></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span></span></div></span></div></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5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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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6 Sep 2026 23:26:51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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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능하면 오늘은 열심히 살 생각이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5/8cadb6f19ac9389246025a6582bcad4823113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재 대한민국엔 몇백만명의 장애자가 있다. 그런데 신체적 장애보다는 심리적 인격적 정신적 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는 사람들이 드물다.&nbsp;</span><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타인의 관심을 얻으려 거짓정보를 유포하고, 자신의 생활 모습을 꾸며내며, 비상식적인 행동을 일삼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부르는 '관심병'은 정신질환 중에 '인위적인 장애(Factitious disorder)', 즉 꾀병이라 불리는 질환과 비슷하다.&nbsp;</div><div><br></div><div>이 장애는 경제적 이득 없이 단지 환자의 역할을 해서 타인을 관심을 유발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만약 주변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는 일부러 자해를 시도하는 극단적 경향이 있는데 정신과에서는 '뮌하우젠 증후군(Mnchausen syndro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나도 매일 인터넷을 하지만 그 정보를 절대시하진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지만 대게는 앞선 경험자들의 행동을 유심히 눈여겨 보며 따라한다. 또한 무작정 따라하는게 아니라 생각을 해보고 기록해 놓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실패를 경험삼아 지식을 습득하고 식물들이 자라는 걸 보며 사색하고 열매는 남의 손에 쥐어지지만 그 실루엣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맛본다. 이런 내가 어리석어 보이는지 타박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div><div><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왜 굳이 먹지도 않을 작물들을 심느냐고 만류하지만 식물을 심을 시기가 있기에 누가 실과를 따던 상관이 없다. 가을에 수확할 고추가 그렇고 여름 과일을 잔뜩 심었지만 새로 이사 온 사람의 묷으로 그대로 남겨주고 떠나왔다.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너무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살려는 세대중에 그래도 몇명쯤은 우직하게 사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고, 내가 이것으로 호구지책을 삼으려 하지 않기에 그냥 과정을 즐길뿐이다. 사각거리는 오이 하나보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재미를 모르면 오이 한개에 얼마인가를 따지게 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부유층들이 걸핏하면 불리할 땐 신체적 장애를 주장하며 법망을 피해 가려 하지만 공사 현장에서 만나는 내 이웃들은 정신적으론 건강하신 분들이다. ‘공항장애’나 ‘회폐’해진 사람들이 아니다. 하루종일 일하고 밤엔 끙끙대지만 오늘 일을 해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괴로움을 참아야 하는 선량한 분들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중에 하나는 바쁘고 힘든 생활에 지쳐서 “다 때려치우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고 푸념하는 도시 사람들의 말이다. 시골 분들은 농사는 아무렇게나 지어도 되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나도 그러했지만 농사야말로 예술이며 창조이다. 도시 사람들이 물론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기도 하지만 농사를 지어보면 말처럼 정말 만만하지 않다.&nbsp;</span></div><div><br></div><div>&nbsp;<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5/c60cd2a6cafcf50caf99bac8d2ba2b7323124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왜 사람들은 쉽게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할까? 그들은 농사가 어렵거나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말에는 농사가 쉽거나 농사로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것보다 오히려 어렵더라도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농사를 짓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렇다면 농사짓기가 정말 쉬울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뜻에서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무리 새내기 농사꾼이라도 옆집 전문 농사꾼 하는 대로 따라만 하면 그럭저럭 농사일을 해낼 수 있다는 뜻에서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농사일은 감추며 할 수가 없다. 어느 집이 어느 날 무슨 작물을 심었고, 무슨 농약을 뿌렸는지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느 날 농약을 쳤는지 알 수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 어느 마을이든지 농사를 잘 짓는다고 소문난 사람이 있어 새내기는 이런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하면 농사를 망칠 확률이 거의 없다. 가끔 보면 새내기 농사군 가운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농사일을 흉내 내다 마을 사람들한테 흉을 떨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도 그런 부류중에 하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농사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논은 멀리있어도 되는데 밭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밭은 매일 가서 가꿔야 하기에 교통이 편리한 곳이 좋다. 농사는 흙을 살리는게 핵심으로 좋은자재, 좋은 종자가 있더라도 흙이 좋아야 잘된다.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집 주위에서 하는 텃밭들이 대부분 잘자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버리고 오줌도 이곳에 누고 쌀뜰물도 아무대나 버리지 않고 밭에 뿌려 퇴비로 잘 이용해 땅이 비옥해 질수 밖에 없단다. 흙은 색이 검고 모래가 절반정도 되는 땅이 좋다. 손으로 뭉쳤을때 너무 잘 뭉쳐지지 않으며 뭉친것을 손으로 뚝 쳤을때 무너지는 흙이 좋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전체적으로 배수가 잘 되면서 잘 가물지 않은 땅이 좋다. 텃밭을 여럿이 분양 받아 같이 지을때는 한쪽으로 몰아서 짓는것이 좋다. 그래야 옆에 있는 사람이 화학농약을 뿌리더라도 전체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다. 화학비료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화학비료가 나쁜 점은 그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서 엄청난 석유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 먼저이고 작물을 크고 이쁘게 키우기 위해서 흙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과도한 투입에 있는 것일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동차 면허가 갱신되었으니 찾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예전같았으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겠지만 새로운 면허증을 받으러 간다는게 설레이기만 하다. 1976년에 1종 보통 면허를 받았으니 만 50년이 된셈인데 이젠 시력이 안나와 2종 면허로 강등한다는데도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진다. 혹시 이번 면허 갱신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번 가을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 1종 면허를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이 상태로 2종 면허를 준다는 말에 할렐루야를 연발했다. 과거엔 15인승 봉고차를 몰고 교인들을 태우고 전국을 누볐지만 이젠 봉고차 몰 기회도 그럴만한 교인도 없기에 2종 면허도 감지덕지이다. 전에는 하루에 500km를 운전할 때가 허다했었다. 인천에서 부산 경주 목포 여수 등을 수시로 달렸었지만 이젠 교회갈 정도가 내 적당거리가 된지 오래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5/85a41fcf13b0df8f5c623e3cdcdc046123263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서도 시속 80키로를 넘어선적이 없을 정도로 굼뱅이 운전을 한다. 뒤따르는 25톤 압사바리들이 빵빵거리며 위협운전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걷는 것 보다 좀 빠를 거란 생각에 만족한다. 전북 고창에 집을 지어 달라고 요청을 하는대도 한사코 사양했다. 매일 인부들을 실고 겨울철에 운전한다는 건 요단강을 건너는 지름길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보험을 갱신하는데 승용차와 추럭의 게기판 사진을 찍어 전송해 달라는데 일년동안 달린 거리에 따라 보험료가 결정되는 모양인데 10만원을 활증받았다. 아마도 내년도엔 더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일년에 최소한 3만킬로는 운행했었는데 이젠 그 절반만 달린다. 아마도 두 차를 합해 만킬로 정도를 운행할 거라고 짐작이 가는데 그 순간 순간이 위험천만한 일들이다. 운전을 안했으면 좋겠지만 매일 일을 해야하기에 운전대를 놓을 순 없는 일이고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간절한 기도가 나온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나마 일거리가 있다는게 즐겁기만 하다. 80만 넘으면 나들이도 부자연스럽고 방구석에 앉아 티비만 보면서 오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직은 짐싸는게 능숙하지만 조금있으면 패케지 여행도 감히 꿈꾸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 자유여행을 하자니 언어가 달리고 페케지 여행을 하려니 다리가 떨려 일행에서 뒤쳐지니 어쩌면 좋을까?</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중에 나아가리"란 찬송을 자주 부른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날이 안저물었어도 오라 하시면 영광중에 나아가리"가 오히려 성경적이다. 날이 저물었건 안 저물었 간에 "오라 하시는" 날이 인생 모두에게는 반드시 한번씩은 있다. 그 오라 하시는 날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오늘 가능하면 열심히 살 생각이다.&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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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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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5 Sep 2026 23:27:5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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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을로 가는 길목에서</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4/3f0e883bd09a02dc0449383118e4fd9823531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는 편이지만 내 자신에 관한 문제라면 대체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체하는 편이다. 내가 조금 손해보고 해결되는 일이라면 거의 양보하는 쪽을 선택한다.&nbsp;</div><div><br></div><div>살다보면 무수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나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하연 통과의례(通過儀禮)라 생각하기로 했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피할 수 없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 문제는 훨씬 작아진다.&nbsp;</div><div><br></div><div>나는 결정된 운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떤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인과성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예측하지 못했던 그것을 운명이라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운 혹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세상 만물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사람은 본시 연약한 존재이며 한계를 갖는 존재이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그렇기에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내 스스로 너무도 나약한 존재하는 걸 잘 알기에 사유하는 시간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살다보면 미운 사람도 있고, 기피하고픈 사람도 있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내 입맛에 안맞는 사람도 있고, 밥맛 떨어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럴 수록 바다의 마음을 닮아보려고 낙조의 시간 바다를 서성일 때가 종종있었다.</div><div><br></div><div><div>나는 무식한 사람이나 못난 사람에 대하연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꼴값' 떠는 사람에 대하연 병적인 혐오감을 들어낸다. 단 한순간도 마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피해 버린다. 심지어는 '꼴값' 떠는 한두사람 때문에 내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nbsp;</div><div><br></div><div>우리나라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생김새는 낙지와 비슷하지만 볼품없는 모습 때문에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변변치 않은 것이 망신스럽게 굴다가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릴 때 쓰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영국 속담에 ‘썩은 사과가 수프를 망친다’란 말이 있다. 썩은 사과 때문에 요리사의 이름에 먹칠을 한 꼴이 된다는 말로 이 또한 못난 것이 언제나 주위에 해만 끼치는 경우 이런 표현을 쓴다. 행여 나도 꼴값을 제대로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꼴값도 못하는 것들이 위세(威勢)를 부릴 때 마음속으로 많은 죄를 짓곤 했었다.</div><div><br></div><div>가룟인 유다의 꼴을 끝까지 참으며 기다려 주셨던 그 예수의 심장이 나에게는 없었다. 다만 가식(假飾)이 있었을뿐이었다. 바다처럼 모든걸 포용한다면서도 꼴값떠는 걸 용납하지 못하고 드디어 깊은 마음의 병이 들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때이긴 하지만 깡촌에 살면서 꼴값 떠는 사람을 자주 안보아서인지 마음만큼은 새털보다 가볍다.&nbsp;</div><div><br></div><div><div>요즘들어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누구의 간섭이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사장을 누빈다. 내가 육체적으로 힘이 들 때면 가끔 '과거 꼴값떠는 사람 곁으로 갈래?'하고 자문을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한결같은 생각이지만 도리질을 하며 지금으로 만족한다며 군소리없이 호미와 낫을 쥐고 흙을 매만진다. 이게 훨씬 편하다. 영양가 없는 인간 군상들 틈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 고독하지만 이대로 살길 원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4/ffa51010e37cddc416baa6f2a0e5d1fa2354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여름의 꽃 수국이 올해는 늦게까지 피어있고 가을의 꽃 맨드라미가 꽃을 피어 너무 아름답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이다. 행여 내가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축 전원주택 부지안에 자연석으로 큼직한 연못을 만들고 띄워 놓은 부레옥잠도 제법 많이 번식했다.&nbsp;</div><div><br></div><div>많은 자금이 소요되고 연못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굳이 이 일을 하는지 답답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무엇을 하던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nbsp;</div><div><br></div><div>내가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주변에 콩놔라 대추놔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해도 되는 지금이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요즘은 입맛이 없다. 거의 한달 가량 찬물에 밥을 말아 들이킨다. 음식 맛을 잃었다. 안먹으면 죽을 것같아서 먹을뿐 식도락(食道樂)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이 나에겐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다.&nbsp;</div><div><br></div><div><div>나이 칠십을 넘기고 보니 지금에야 무슨 원대한 꿈이 나에게 있을리 없겠지만 눈앞의 이익을 쫓는 작은 어항에 머물고 싶지 않은게 내 바람이다.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더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매일 다짐한다. 마음을 비우니 이제서야 별이 보이고 달이 보인다. 하지만 계절의 허전함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nbsp;&nbsp;</div><div><br></div><div>모르긴 해도 어딘가에 감추어진 한 가닥 실낱같은 그리움이나 꿈과도 같은 희망의 절대치가 똬리를 틀고 있는 까닭이리라. 보름달은 하룻 밤새 쟁반같이 둥근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둡고 지루한 밤을 삭이며 눈썹달이 반달이 되고, 반달의 기다림 속에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되는 것이다. 세상사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nbsp;</div><div><br></div><div>대개의 경우 모든 일이 처음부터 원만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이지러지고 어긋나고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다. 일이 원만하게&nbsp; 풀리는 것은 그런 시련을 통해서이다.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면서 느낀바가 그랬다. 착하게 살면 언젠간 만월의 기쁨이 올지 모른다.&nbsp;</div><div><br></div><div>노는 물이 다르다는 말이 있던가? 큰고기는 큰물에서 사는 법인데, 이거 좁아 터진 웅덩이애서 아옹다옹하니 함께 쪼잔해지는 느낌이다. 공사현장에서 하루 종일 같이 하다보면 쌍시옷 소릴 백번쯤은 듣는다. 쌍욕이 아니면 대화가 어려울 정도이니 이 바닥에 살다 간 좋은 성격 다 버릴 것 같아 불안하긴 하지만 거친 공사판에서 독야청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은행 잔고가 넉넉하면 그게 안전장치인가? 부인이나 남편을 의지하며 사는게 노년의 행복인가? 나일먹으면 가족, 사회, 교회, 명망, 이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혼자가 된다. 교횔가도 늙은이는 찬밥 신세이다. 더군다나 은퇴한 교역자를 반기는 곳은 없다. 그래서 나는 위험한 방식을 택해 보고 싶은 것이다. 세상엔 안전장치는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위험하게 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신체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험, 최종적으로는 영적인 위험까지 포함시켜서 말하는 것이다.&nbsp;</span></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4/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23553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벌써 벌레들이 몰려들고 있다 아직은 심각한 건 아니지만 배춧잎이 조금 더 자라면 본격적으로 활동한게 뻔하다. 어제 지인에게 복합비료를 약간 얻어왔다. 가능하면 거름외엔 비료도 사용하지 않으려 작정했지만 벌레가 파먹는 속도보다 먼저 더 키워야 먹을게 남을 거라는 생각에 복합비료를 사용하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이른 아침에 텃밭에 물을 주고 막 자라나기 시작하는 풀을 뽑기로 했다. 한 여름이 아니기에 풀도 자라나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엔 풀속에 숨어있는 벌레를 잡아내기가 어려울 것이고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지금 아니면 올 농사를 망칠 수도 있을 거란 불안감이 있어 작업을 할 생각이다.</div><div><br></div><div>점점 가을 색체가 들어나고 있다. 벼도 누렇게 변해가고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자랑하던 나무잎도 시들해져 가는 중이다. 볕엔 길고양이들이 몸을 말리려 옹기종기 모여있고 이따금 새소리도 들리는 한가로운 아침이다. 바로 눈앞엔 익산의 자랑인 배산과 아파트숲이 펼쳐져 있고 내 집 뒤론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도농 복합지역이다.</div><div><br></div><div>행정상으론 시민이지만 환경적으론 군민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기에 좋은점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시내에서 이만한 텃밭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 기회일 수도 있고 그나마 주변과 왕래가 자주없는 단절된 곳이기에 그런대로 한동안은 정붙히고 살아 볼 생각이다. 가을 햇살이 따스해서 참좋다.&nbsp;&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5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50</guid>
			<dc:date>Tue, 15 Sep 2026 00:04:3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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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의 콧구멍으로 숨쉬며 살아온 생애</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3/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2325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언행휘찬(言行彙纂)'에 수오탄비(羞惡歎悲), 즉 인생에 부끄럽고 미워하고 탄식하며 슬퍼해야 할 네 가지 일을 꼽은 대목이 있다. 그 글은 이렇다.&nbsp;</div><div><br></div><div>'가난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 부끄러운 것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는 것이다. 천함은 미워할 만한 것이 못된다. 미워할 만한 것은 천하면서도 무능한 것이다.&nbsp;</div><div><br></div><div>늙는 것은 탄식할 일이 아니다. 탄식할 일은 늙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슬퍼할 것이 못 된다. 슬퍼할 것은 죽은 뒤에 아무 일컬음이 없는 것이다.('늙을수록 더욱 씩씩하고, 궁할수록 굳세야 한다(老當益壯, 窮當益堅).'&nbsp;</div><div><br></div><div>마원(馬援)의 말이다. 노익장(老益壯)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늙어 주눅든 모습처럼 보기 민망한 것이 없다.'살아서는 뜻을 빼앗을 수가 없고, 죽어서는 이름을 빼앗을 수가 없다(生則不可奪志, 死則不可奪名).' '예기(禮記)'의 구절인데, 남이 뺏지 못할 뜻과 이름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해야지, 남이 안 알아주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얘기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좀처럼 거울을 보지 않지만 오랫만에 대형 거울 앞에 앉아 내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내 모습이라곤 상상이 안갈 정도로 변해 버린 모습에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고운 모습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초라하고 깡마른 노인네가 거울속에 앉아 긴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소싯적엔 한 인물 한다는 소릴 하도 많이 들어 내가 정말 잘 생긴줄로 착각하며 살아 왔었는데 이제보니 내 진면목(眞面目)은 전혀 자랑할게 없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언제 이렇게 변해 버렸는가. 늙음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괜시리 서글프단 생각이 들어 거울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 선친의 모습이 그 속에 있고, 어머니의 병색에 지친 모습도 엿보였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 왔다고 자부하면서 왜 초라함에 눈을 감으려 하는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불어나는 체중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이젠 초라한 몰골앞에 아연실색하는 모습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럽단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것(羞惡)은 빈천이 아니다. 그 앞에 기가 꺾여 제풀에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탄식하고, 슬퍼할 일(歎悲)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망령 떨고, 이룬 것 없이 큰소리치다가 죽자마자 잊혀지는 일이라고 자위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니, 나는 지금까지 남의 손을 빌려서 살아왔다. 남의 콧구멍으로 숨쉬며 살아왔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모를 바라보았고, 막연한 도움의 손길에 기대어 살아 온 것 같다. 지금은 그렇다치고 더 기력이 떨어지면 가족들의 콧구멍으로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콧구멍으로 자가 호흡을 할 수 있을 때까진 남의 손길을 바라지 않으려 결심했다.</div><div><br></div><div>아내에게도 나와 교회를 위해 그만큼 희생했으니 이젠 하고 싶은일이 있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자유의 시간을 주었다. 자식들에게도 아빠 걱정을 말고 각자의 인생을 사는게 효도라고 일축해 버렸다. 내 호흡을 하고 싶다.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나는 타자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해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3/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2339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조국과 민족과 인류공영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고 싶지도 않고, 돈많이 벌어 재벌이 되고 싶지도 않고, 권력을 갖고 싶지도 않다.&nbsp;</div><div><br></div><div>아니 그렇게 하고 싶은 맘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싶지 않으며 거기서 내 삶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아직은 독립적 존재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도 분명치는 않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타자에 의존하는 삶에 내 삶의 존재가치를 두지는 않을 것이며 독립적 삶을 살기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내가 내 전 생애를 통해서 의지할 분은 단 한분뿐이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전성기같이 살고 싶은 욕망을 키우고 있다.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고 이제부턴 의미 있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삶의 전성기를 허송 세월로 보내고 싶지않아 고생을 자처한다.</div><div><br></div><div>현역시절 좀 더 최선을 다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질 못했기에 또 몇년이 지난후 더 큰 후회가 남기전 인생을 진지하게 돌아 보며 채근한다. 지금이 아무리 곤고하다 한들 조금있으면 여름을 밀어내고 가을이 올 것이다. 가을엔 정말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오늘 고달픈 시간들도 조금있으면 내 기억속에서 살아질 것들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분투하는 중이다.&nbsp;</div><div><br></div><div>젊어서는 무쇠도 씹을 정도로 건강했는 데, 이젠 움직이는 종합병원이긴 하다. 부실한 몸을 혹사시키니 당연지사일게다. 하지만 미친듯 일하면 숙면을 할 수 있고 구질구질한 추억에 잠기지 않을까 하여 어떤 일에라도 올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남의 일이라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난 일년에 몇차례이지만 인천을 갈 때면 '삼베바지에 방귀새듯' 슬그머니 다녀온다. 오래전 친구들을 불러낼 여유가 남아 있질 않다.&nbsp;</div><div><br></div><div>인생, 그 거 별 거 아닌데 아둥바둥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타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목적은 아니지만 목표치가 있기에 시간을 쪼개어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만나는 시니어들에게 은퇴후에 잃은것이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를&nbsp;&nbsp;종종&nbsp;&nbsp;물어본다.&nbsp;</div><div><br></div><div>잃은 것을 후회 하는 분들은 대게 “그때 내가 왜 그 사람에게 그리 못되게 굴었는지?” 하는 후회, 가족과 함께 여행을 못해 본것, 쓸데없는 일에 객기를 부린 것, 영양가 없는&nbsp;&nbsp;정치 이야기에&nbsp;&nbsp;열을 올리면서 시간 낭비 한것 등등이라고 한다. 새로 얻는것에 대해서는 넘치는 시간, 새로운 취미생활을 할수 있는 것, 남을 위해 베풀수 있는 시간과 건강, 뭐니 뭐니 해도 너그러울 수 있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함을 얻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은 얼굴과 목의 주름살. 많은 시니어들은 이제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더이상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안찍는다고 말한다. 사람이 세상살이를 누리는 가운데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진척이 더딜 때 한숨 섞인 푸념으로 자주 '세월을 탓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월은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세월이란 말이 바로 흘러가는 시간으로 광음 또는 때라고도 한다.</div><div><br></div><div>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처를 하는 편이지만 내 자신에 관한 문제라면 대체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체하는 편이다. 살다보면 무수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나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하연 통과의례(通過儀禮)라 생각하기로 했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피할 수 없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 문제는 훨씬 작아진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3/79fd5b1470db81c093d3194897da35bf23564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결정된 운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떤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인과성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예측하지 못했던 그것을 운명이라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닐까?&nbsp;</div><div><br></div><div>그러나 운 혹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세상 만물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사람은 본시 연약한 존재이며 한계를 갖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nbsp;</div><div><br></div><div>내 스스로 너무도 나약한 존재하는 걸 잘 알기에 사유하는 시간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살다보면 미운 사람도 있고, 기피하고픈 사람도 있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내 입맛에 안맞는 사람도 있고, 밥맛 떨어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럴 수록 바다의 마음을 닮아보려고 낙조의 시간 바다를 서성일 때가 종종있었다.</div><div><br></div><div>나는 '꼴값' 떠는 사람들로 인하여 심적 고통을 많이 받았다. Daum 국어사전에 보면 "꼴값"은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격에 맞지 않는 아니꼬운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어준다. 말 그대로 격이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형편없는 행동하는 것을 비아냥대는 말이다. 즉, 제 모습이나 제 모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찌질한 행동을 말하는 모양을 두고 '꼴값하는 짓'이라 했다.&nbsp;</div><div><br></div><div>거울을 한동안 지켜보던 시선을 지워 버렸다. 텃밭에 물을 주고 집안일을 대충해 놓고 오늘은 차를 승용차로 바꿔 나들이를 가려 마음먹었다. 선유도까지가 내가 운전할 수 있는 최장 거리인셈이라 가볍게 칼국수를 먹고 해풍에 나를 던져볼 생각이다. 소장이 타고 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열시까지 오라 했는데 바다로 간다는 말에 기다릴 수 없었던가 보다. 짜사! 놀러가자면 좋아라 한다.&nbsp;</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br></div><div><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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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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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14 Sep 2026 00:05:2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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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길거리 음식이 그리운 것은?</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3/d43286be4167e7c1c55c941256ffce00054734.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전철안의 풍경을 보면 젊은이들은 이동전화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 예배시간에도 핸드폰을 끄지 못하는 사람들, 설교시간에도 문자 메세지를 열심히 날리는 사람들, 한시도 그냥 있지 못하는 조급성(躁急性)때문에 우두커니 있으면 불안 심리에 휩싸이고 그래서 현대인에겐 명상(meditation)의 시간이 없다.</div><div><br></div><div>적어도 공중 목욕탕에 가면 두세시간은 기본이요, 살갗이 벗어질 정도로 문지러대야 직성(直星)이 풀리던 시대를 살아와서인지 물만 묻히고 사라지는 젊은이를 보면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탕속에 앉아 이런생각, 저런생각에 골몰(汨沒)하며 상념(想念)에 잠겨 개똥철학자가 되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구닥다리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잠시 일상을 멈추고 왔던 길을 돌아보는 것이 결코 무료한 일은 아닐텐데 말이다.</div><div><br></div><div>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는 말도 있거니와 서두른다고 선착(先着)하는게 아니건만 42,195km를 단거리 선수처럼 전력 질주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애처롭다. 때로는 커피 한잔의 여유속에 젖어 보고 마쉬멜로우의 달콤함에 취해 보기도하며 샤넬 No5의 향수로 기분을 전환시켜 보는 것도 좋은듯한데 도무지 여유(餘裕)가 없이 달리기만 한다.</div><div><br></div><div>결국은 니힐리즘(nihilism)에 빠져들어 허무한 감상에 사로잡히는 순간까지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아인슈타인(Einstein,Albert)은 바이얼린을 연주하며 일상의 권태로움을 해소했다고 하던가? 나는 요즘 권태로움을 자주 느낀다. 권태로움은 거미줄 같아서 고운 명주실처럼 느껴지나 멀지않아 온 몸을 휘감아 운신(運身)하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마음의 병이며, 권태(weariness)는 일직선일 때 생긴다.&nbsp;</div><div><br></div><div>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증후군이란 증세가 심각하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을 줄여 e피로라고 부른다. e피로는 스트레스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인을 특징지어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난해한 일이겠지만 조급성(躁急性)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진다.&nbsp;<div><br></div><div>진중(珍重)하지 못하고 경박부허(輕薄浮虛)한 모습이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런 증상은 컴퓨터, TV, 휴대폰 등 우리가 늘 곁에 두고 쓰는 전자기기 때문에 생기는, 일명 e피로 증후군이다. 전자기기가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문명의 이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다는게 정설인 것 같다.</div><div><br></div><div><div>나는 요즘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보다는 구불구불한 호젓한 길을 선호한다. 충청도 공주에 박목사님댁 집을 지으면서 두어달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를 달려본 것외엔 거의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편인데, 반듯하고 곧은 길 대신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길을 달리면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생각에서 이다. 현대인들이 권태(weariness)에 빠지는 이유는 여유(餘裕)가 없어졌다는 것과 유머(humor)의 상실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생긴 버릇인데, 가능하면 직선보단 곡선을 선호하려 작정했다.</div><div><br></div><div>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영국 버킹엄(Buckingham)궁의 벽이 무너졌다. 그러자 영국 왕실은 이렇게 말했다."국민 여러분!안심하십시오. 독일의 폭격으로 그동안 왕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얼굴을 더 잘 볼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div><div><br></div><div>극도의 불안감과 의기소침(意氣銷沈)했던 영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은 그 상황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지도자들의 침착성(沈着性)을 풍자하는 유머이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적마다 나에게 찾아오는 조급함을 경계한다. 이미 늦어버렸는데 무엇이 조급하단 말인가? 석양속에 걸어가는 내 뒤로 길게 드리워진채 나를 쫓고 있는 그림자처럼 조급함이라는 괴물은 오늘도 나를 쫓고 있다. 그래도 문경지교(刎頸之交)하는 벗이있고, 폭격맞아 벽이 무너지지도 않았는데 아직은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3/8e5d3c08a378aa1c87ee2d7290dba7170549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李창림(昌林)이란 스님의 법명은 춘성(春城)인데,1891년 강원도 인제군원통리에서 태어나 백담사로 출가하여 만해 휘하로 들어가 승려가 된 분인데, 그는 생전에 얼마나 욕을 잘 했든지 그 앞에서는 단 10분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그의 거침없는 언변에는 해학이 있고,번뜩이는 재치가 있었기에 당장은 아프지만 뒤돌아 되새겨보면 여운이 남는 그런 욕쟁이로이름을 떨쳤다.</div><div><br></div><div>욕(辱)은 대게가 남을 저주하거나 미워하는 말, 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스스로 나무랄 때 사용되는데,욕이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배경과 유래 또한그 수없이 많은 욕에 따라 각각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순화된 말로 의사가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에 사용되어지는 욕(辱)이라도 인격적인,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기성찰에 기반을 둔 표현이라면 좋을 것이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란 독설을 퍼붓었지만 그의 욕(辱)은 강단에서 설교로 미화되고 교훈이 되고 있다. 춘성(春城)스님이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辱)쟁이 스님으로도통했으나 그는 평생 옷 한벌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다간 무소유의 실천가였기에 욕먹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았다. 할 것 다하고,가질 것 가 챙기면서 남을 정죄하는 차원에서 욕(辱)을 하는 것은 되게 기분만 상하게 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침부터 텃밭을 돌보다가 시계를 잘못 보아 군산 교회를 가지 못했다. 아홉시쯤 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일을 마쳤는데 거의 열시에 가까워진 시간이다. 서둘러 가보았자 설교를 마쳤을 시간인지라 부득불 인근 교회로 걸음을 옮겨 마치 이방인라도 된양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축도를 마치자마자 수인사도 나누지 않은채 서둘러 돌아왔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3분 거리에 성결교회가 있지만 담임목사님은 물론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하면 접근을 꺼려하는데, 그러안해도 어쩌다 만나거나 통화가 되면 어디로 이사했느냐고 물어 어물거릴 때가 많다. 전에 살던 곳에도 불쑥 찾아 오는 지인들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명절이 다가오니 업자들이 내 위치를 추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일히 사양하기가 쉽지 않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소장과 건축 자재를 가지러 심부름 다니는 우즈백 인부 한명 그리고 박목사님외엔 내 거주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딸들도 아직 아빠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고 아내도 이사했단 말을 전했을뿐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다. 얼마 안있어 명절에 인사차 가족들이 올 거지만 형이나 동생, 누이에게 조차도 이사했단 말은 전달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거래하는 은행에서 추석 선물을 전에 살던 곳으로 선물을 보낸 모양인데 새로 이사한 사람에게 개봉하여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선심을 썼다. 거래하는 업체에서도 내 집을 방문했다가 이사한줄 알고 위치를 물어 오지만 사양하니 소장에게 물어오는가 본데 어려운 시기에 나같은 사람에게 선물할 생각말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사양하곤 한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시 텃밭으로 발걸음을 옮겨 불청객 풀을 뽑았다. 입추가 지난지 오래이고 처서 백로가 지난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풀이 자라고 있다. 이미 무우나 대파 쪽파 그리고 시금치 아욱 등이 자리를 잡았기에 별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뽑아내지 않으면 한 겨울이 될 때까진 끈질기게 자랄게 뻔하기에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왜 채소를 심고 가꿔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먹을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손해보는 장사를 한다. 늘 이런식으로 세상을 살아온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실속을 차리려면 얼굴이 먼저 붉어져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헛똑똑한 면을 들어낸다는 점이다. '헛것 헛걸음 헛기침 헛소리 헛소문 헛웃음 헛돌다 헛되다 헛듣다 헛디디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라 하더라도 앞에 '헛'자가 붙으면 모든게 부정되고 말지만, 그래서 영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보지만 체질적으로 잘 안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3/c60cd2a6cafcf50caf99bac8d2ba2b730551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요즘들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명분과 실리 중에 나는 어느쪽에 치중하며 살았는지를 반추해 본다. 딱히 규정짓기가 쉽지만은 않다.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리쪽을 기읏거렸고, 실리를 취하면서도 명분이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의 대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nbsp;</div><div><br></div><div>모든 명분은 사실상 그 내부에 실리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곧 명분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이기에 그 주장하거나 고수하는 측면에서는 하나의 실리라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또한 실리라는 것도 명분이 없다면 어느 사회에서든지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실리를 주장하는 입장도 그 실리 자체가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명분과 실리는 서로 다른 가치가 아니라 보완적이며 동일한 가치의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포도가 먹고 싶단 생각이 들어 3kg짜리 한 상자를 구입했지만 얼마안가 다먹질 못하고 버릴게 뻔하다. 어떤 땐 팥빙수 한사발 먹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사이즈가 너무 커서 엄두를 내지 못할 형편이다. 수박도 먹고 싶지만 한두 조각이면 입에 물리고 조각으로 파는 과일이나 낱개로 파는 곳이 없기에 모든게 화중지병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과일의 천국이란 태국에 가보아도 비닐 봉지에 일인분 정도의 분량을 포장하여 파는데 주제넘게 대한민국은 쪼개어 파는게 별로 없고 있다 해도 비싸다. 수박 한덩이를 사면 한달 이상을 먹어야 하는데 한조각을 먹자고 무리할 수가 없어 모든게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에 체념을 한지 오래이다. 대형 마트들이 생기면서 길거리 음식이 사라진지가 오래이다. 길거리 음식이 흔했던 시절을 살아온 것인지 더 정감이 가는데 이젠 대형 마트에서 무더기로 사야하니 버리는게 더 많아진다.&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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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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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3 Sep 2026 05:53:0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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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뱀과 여자는 가을에 조심해야 한다</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2/a6e238b3084375c78cdaa315fe76bb2c0658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인부들을 동원하여 전원주택 단지안에 있는 풀을 모두 제거했다. 처음 귀촌했을 땐 당연히 예초기를 손수 짊어졌고 3~4년 전만 해도 예초기의 달인이라 불리울 정도였는데 이젠 현장소장이 대신해 주기에 무거운 걸 짊어지지 않는다.&nbsp;<div><br></div><div>물론 꽁짜란 말이 오가긴 하지만 나는 한번도 인부들에게 거져 일을 시켜 본적이 없다. 애써 이삿짐을 날라줘도 일당을 주고 텃밭에서 허드레 일을 해도 일당을 준다. 나와 언제까지 일하게 될진 모르지만 그 안에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충언을 한다.&nbsp;</div><div><br></div><div>한사람은 고시 부분에 페인팅 작업을 시켰고 소장은 예초기를 나는 갈꾸리로 깍여진 풀을 한군데 모으는 작업을 하는데 한참 일하다 말고 소장이 혼비백산 하여 소리를 질러 달려가 보니 족히 일미터는 넘어 보이는 살모사가 똬리를 툴고 노려보고 있다.&nbsp;</div><div><br></div><div>예초기로 당장 두토막을 낼 수 있지만 요즘 뱀보기가 어려운데 살생을 금하라고 지시하고 작대기로 살살 건드리며 이웃집 논으로 쫓아내었다. 이제 조금있으면 동면에 들어가야 하기에 먹이 활동을 활발하게 할 때이고 이 때 독이 가장 많기에 조심해서 다루라고 거리를 두게하고, 뱀과 여자는 9월에서 10월이 가장 위험한 때임을 주지시켰다.&nbsp;</div><div><br></div><div>뱀이 동면하기전 가을이 위험하단 말을 들어 보았는데 여자는 왜 가을이 위험하느냐고 묻는데 그걸 내가 알 까닭이 있겠는가? 그냥 터진 입이라고 나오는대로 지껄여본 말인데 소장은 그 말을 진지하게 듣는다. 아무튼 가을뱀과 가을여자는 절대 함부로 다루면 안된다는 걸 주지시켰는데 그 말이 중국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인양 기억해 두려는지 몇번 읊조린다.&nbsp;<br><div><br></div><div><b><font color="#bb005f">"뱀과 여자는 가을에 조심해야 한다"&nbsp;</font></b>한마디 더 해주려다가 하도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기에 농담을 삼가했다. 가을뿐만 아니라 상시 조심해야 할 것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조심해야 할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나 환절기이다 보니 난 더욱 몸을 사리는 편이다. 아직은 이상한 곳이 없지만 행여 몸이 고장이라도 나면 나를 돌볼 간병인이 없기에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nbsp;&nbsp;</div><div><br></div><div>요즘 식욕이 없어 밥을 거를 때가 많다보니 내 절친중에 하나가 틀림없이 뇌졸증 전조 증상이라고 반협박조로 위협하지만 나는 두번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축해 버린다. 뇌졸증도 한번이면 족하고 쓸개도 이미 제거했기에 이제 빼낼 쓸개도 없는 쓸개 빠진 놈이다. 친구녀석이 심심한지 다가와 일하는게 재미있느냐고 묻는다. 제일 짜증나는 말이 바로 이 소리이다.<div><br></div><div>노가다 생활이 편할리가 없고. 농촌 일이 재미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사생결단하고 하는 것으로 비쳐진 모양이다. 어쩔 수없이, 할 수없어 하고 있을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는 데,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nbsp;&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2/9fdcf664aaa78f8a5117988a42f217080702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몸은 고달프고 생활은 척박하지만 행복지수만큼은 그렇게 낮다고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무료(無聊)하기는 하다. 외로운 것도 사실이고,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 젖을 때는 몹시 아쉬운게 많다. 그렇다고 모든걸 돌려 놓아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주변에 은퇴하고도 개척을 꿈꾸는 분이 계시지만 난 그 자체(自體)를 이해하기 힘들다.&nbsp;</div><div><br></div><div>&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 낯설고 외롭고 지루해 보이는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삶을 꿈꾸며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낸 나만의 시골 생활 적응 비법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먹을 것은 물론이고 반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계속 몸을 부지런히 놀려야 하는 노동집약적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느린’ 일상 이야기를 적고있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때가 되면 일하고, 때가 되면 노는' 그런 삶.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삶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도,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무엇을 해도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 그간 잊고 있었던 ‘자연스러운’ 삶을 살면서 이왕이면 기쁘게 하려고 마음먹었었다.&nbsp;&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대도시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중소 도시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하였고, 군목으로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잠시 복무하다 울산경비사령부로 옮겼고 전역하자마자 부대 앞에 옥동중앙교회를 개척하여 땅을 구입하여 예배당을 건축한 후, 인천으로 올라와 내 생애 절반쯤 살았으니 시골과의 인연은 아예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전력을 잘 알면서도 일하는게 재미있느냐고 묻는 건 대단한 결례이다. 오랫동안 살아 온 내가 가족과 친구, 일터 등 모든 것을 밀어놓고 다른 곳에서 살겠다는 게 만만한 일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난 한 가지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난 살고 싶어. 다시 살고 싶어.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린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마치 이곳에서 사는 것인 양 난 다른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 무작정 시골에 오니 “뭐 하고 살 거야?” “어떻게 살래?” “무섭지 않겠어?” 요약하면 이렇게 딱 세 가지였다. 어느 정도 집을 짓고 들어앉으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삶의 자리를 옮긴다는 일. 그것도 사는 공간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다는 것과 한술 더 떠 현대적 주거 공간을 떠나 열린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데 많은 사람들은 ‘용기’라는 단어를 들먹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용기 있다. 대단하다.” 처음엔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그런 줄 알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나는 용기가 있나 봐. 하지만 보는 이마다 그런 말들을 하니 다시 한 번 그 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일이었을까? 아마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아주&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신중히 결정을 내려서 이곳에 왔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용기’라는 단어를 들어도 마땅할지 모르겠다.&nbsp;</span></div><div><br></div><div>그런데 그런 건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굳이 생각했다면 도시에서 사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수입에 비해 삶의 유지비용이 더 많이 발생할 텐데 그렇다고 그걸 준비하기 위해 도시에서 머무는 시간을 더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돈보다는 시간을 벌고 싶었다는 말이다.&nbsp;</div><div><br></div><div>예전에는 연탄 가스에 충독된 사람이 연일 신문 지상에 보도되었지만 자살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보질 못했다. 당시가 행복지수에서 만큼은 훨씬 높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꼭 잘먹고 잘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건 얼토당토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동남아 후진국들이 우리나라보다 행복지수에서 만큼은 월등히 높다.&nbsp;</div><div><br></div><div>자신이 왜소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쓸쓸해 진다. 사실 외롭다는 생각은 엄밀히 따져보면 환경적인 요인이라기 보단 본질적인 것이기에 쓸쓸하다는 표현이 옳은지 모른다. 나는 가끔 혼자있으면 내가 누군지,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에 빠질 때가 많다. 아마 죽을 떄쯤 알게되겠지만 죽을듯한 인상은 짓지 않으려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2/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0703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친구녀석이 걱정하느라 한 질문인 데, 너무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라 생각하여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할수만 있으면 이 쓴 잔을 마시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가 지금의 내 심정이라고 말해줬다. 절박한 건 아니지만 이젠 내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가지기 시작했다. 이젠 잘 늙고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nbsp;</div><div><br></div><div>나는 노쇠해져 가는 선친을 보면서 일년에 열번 정도는 찾아 뵈었었다. 앞으로 10년을 더 사신다면 백번 정도를 더 뵐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카운터하기 시작했었다. 돌아가시면 보고 싶어도 그리워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거의 매달 한번씩은 먼 길을 오갔다.&nbsp;</div><div><br></div><div>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세월(歲月)은 언제든 가게 되어있고 더불어 나이는 먹어가게 되겠지만 고독(孤獨)하게 머물러 썩어가기 보다 숙성(熟成)된 노년(老年)이 되어 제대로 살고 싶다. 늙는다는 것은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숙성되어 가는 것이란 걸 보여주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점심은 생선구이집에 가서 인부들을 먹였다. 많은 인원이라면 엄두도 못내겠지만 단촐하기에 약간 비싼 생선구이를 제공했는데&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모시고(?) 있는 인부들은 모두가 외국인들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분들이고 나에게 큰돈(?)을 벌어주는 사람들이기에 특별 대우를 해준다. 말이 잘 안통하지만 마음은 제대로 소통되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거칠게 대하거나 함부러 대하는 사람을 보면 가만히 있질 않는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록 조선족이지만 소장의 이름을 부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내 현장에 드나드는 사람은 소장님이라고 깍듯이 예우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즈백 친구들에게도 '야 자'를 하지 못하게 당부한다. 외국인이라고 반말을 하고 차별을 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식사시간에도 가장 먼저 먹도록 하고 식당에 갈 때도 돼지고기를 안먹기에 가능하면 쇠고기를 사준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회식을 시켜 주지만 같은 식당을 반복으로 가지 않는다. 한국 음식을 골고루 맛보게 하기 위함이다. 오는정이 있으면 가는정도 있다고 내가 피곤해 하는 것 같으면 커피를 끓여와 내 기운을 북돋운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관계로 보통 특별히 할일이 없다면 일단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 정원을 가꾸는 일을 시키려는데 이런 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인건비가 식대를 포함하여 74만원이니 작은 돈이 아니지만 하루라도 놀리지 않으려 배려 차원에서 이들에게 일자릴 만들어 주고 있다. 내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사람중에도 가끔은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며 예수믿는 사람중에도 가믐에 콩나듯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nbsp;</span></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인즉 크리스찬 중에도 좋은 사람이 가끔은 있긴하다. 목회자 중에도 표리부동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는 소릴 언젠가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해 보지만 세월이 우리 모두를 병들게 만들었고 우리는 그 피해자들이다.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을 들고 활보했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근래는 이런 미치광이(?) 조차도 나오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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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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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47</guid>
			<dc:date>Sat, 12 Sep 2026 07:04:3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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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title>
			<description><![CDATA[<div><font size="3" face="Gothic"><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0/3b9e0715a7da28d08a2ded4b2f9136db225934.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좀처럼 물러갈줄 몰랐던 여름이 이제 저만치 멀어진 느낌이다.&nbsp; 남도에선 첫수확을 했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아직 여긴 한창 곡식 익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데 아무튼 가을은 이미 성큼 다가 선 것 같다.</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날씨와 기분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적인 근거도 있지만 경험론적으로 볼 때에도 날씨에 따라 기분도 달라진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정신치료 전문가들은 사람의 기분은 어느 정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날씨가 나쁠 때에는 피곤, 무기력, 건망증, 어지러움, 신경과민, 우울, 수면부족, 편두통, 주의력 감퇴, 공포, 오한, 식욕부진, 소화불량, 신경질, 짜증 등이 쉽게 생긴다. 반대로 화창하고 맑은 날에는 유쾌한 기분이 들어 심신건강을 유지하기 쉽다. 이런 기분 변화를 단순히 ‘감상적이어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날씨가 기분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이다.</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div><font size="3" face="Gothic">정원 구석 구석에 설치해 놓은 태양전지판이 날이 흐린 날에는 충전이 덜되기에 작동이 안되어 밤이되면 어둠속에 적막감이 더한다. 바로 직전에 살던 사람이 건축업자였던 모양인데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이런 침울한 분위기속에서 투병생활을 했으니 오래 살지 못했을 거란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보았다.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둑해서 살기가 불편할 정도로 집 둘레 전체에 차양막을 설치하여&nbsp; 집을 동굴처럼 만들어 놓았다.</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커다란 차양막은 빗물을 막아주긴 하지만 햇볕은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여기에 창문마다 검정색 썬팅을 해놓았고 블라인드로 바람마저 차단해 놓았으니 밖에 있다가 실내로 들어 올 땐 마치 영화관에 온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환경속에선 건강한 사람도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나야 워낙&nbsp;<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b style=""><font color="#f10b00" style="">melancholy</font></b></span>한 사람이기에 별반 영향을 안받지만 결국 사별한 아내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이사를 떠났을 거라고 예단해 보았다.</font></div><div><br></div><div>우울증 환자들은 지속적으로 우울하고 공허감에 시달리며 세상만사가 귀찮고 재미가 없어지며, 항시 피로하고 생각도 행동도 느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런 감정은 흔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우울함이 정상 범위를 넘어서도 치료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기 쉽기에 병을 키우기도 한다.</div><div><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div><div><span style="font-family: Gothic; font-size: medium;">이사하기 전 창문에 부착해 놓은 썬팅지를 모두 떼어내고 벽지도 밝은색으로 새로 도배했다. 나는 집을 지을 때에도 난방에 약간 문제가 있는줄 알면서도 가능하면 설계도보다 창문을 크게 만들어 설계 변경할 때가 많다. 정말 인간이나 식물에게도 햇볕이 요긴하고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는 것처럼 인간도 햇빛이 잘 드는 집에서 살아야 건강해진다는 데, 일단 조명으로 밝음을 연출하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Gothic; 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Gothic; font-size: medium;">대신 야외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Gothic; font-size: medium;">아직도 짐 정리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 바쁘단 핑게로 창문의 스티커를 다 떼어내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대체적으로 방이 어둡다. 어차피 이 집은 설계부터 잘못되었기에 대대적으로 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체념해 버렸다. 요즘은 새벽녁엔 한기를 느낄 정도이고 귀찮단 생각에 창문을 활짝 열기가 싫어 그대로 놔두었더니 기분이 살아나지 못하는 것 같다.&nbsp;</span></div><div><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햇빛이 충분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더 활발하고 생기가 넘치는 것으로 나타냈다. 자폐적 성향의 사람을 빛이 충분한 지역에서 생활하도록 했더니 자폐적 행동이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빛이 부족하면 눈의 피로와 구토, 두통, 우울, 답답함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데, 정신의학에서는 가을부터 봄사이 기분이 가라앉아 우울해지는 것을 계절성우울증이라고 한다. 낮이 짧아지고 흐린 날씨가 이어져 인체에 도달하는 빛의 양이 줄어들면서 뇌화학성분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font size="3" face="Gothic">심하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 계절성우울증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흐리고 비오는 날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우울증 환자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질병관리국은 환자들에게 빛을 쬐게 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인공태양치료법을 실시하여 치료효과를 톡톡히 봤다.</font></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font size="3" face="Gothic"><br></font></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font size="3" face="Gothic"><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0/c11b37e1df35e938bb23472cf4b9e6b323005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날씨는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한 사람의 성격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보았다. 그 지방의 풍토가 그 지방 사람의 특징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습윤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정이 많고 민감하고, 초원에 사는 유목민은 대부분 성격이 호방하다.</font></span></div><div style="color: rgb(0, 33, 176);"><font size="3" face="Gothic"><br></font></div><div style="color: rgb(0, 33, 176);"><font size="3" face="Gothic">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솔직하다고 한다. 한편 창작활동을 하는 데는 맑고 쾌적한 기후가 가장 적당하다. 이런 곳에서 장기간 생활한 사람들은 두뇌가 잘 발달하여 문학과 예술적 성과가 비교적 많은데 날씨와 기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font></div><div style="color: rgb(0, 33, 176);"><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br></span></div><div style="color: rgb(0, 33, 176);"><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나일 먹어갈 수록 기후에 민감해진다. 가능하면 밝게 살고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하겠지만, 또한 내 나이 정도야 아직 애들 취급받을 나이이지만 이 나이가 일찍 간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정도로 인간의 수명이 무진장 길어졌다. 내가 지금 죽으면 부고장도 돌리지 못할 정도이다.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지만 아직은 노인네라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칸트는 '스스로 결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했다. 나이를 먹었다는 건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나일 많이 먹었어도 결단력이 없으면 어른이 아니다. &nbsp;칸트의 가르침은 더 나은 삶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나는 어릴적엔 어른이 되기를 그렇게 열망하며 살았다. 하지만 근래에는 한살이라도 내리려 용트림을 하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철없는 10대적 일이 생생한데 벌써 칠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이만 먹었지 실은 진정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언지 아직까지 잘 모르고 산다. 강요에 이끌려 살 때가 많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고 후회하는 날들이 많다. 그러므로 생리적인 나이로 보면 늙은이가 맞지만 아직 철부지인셈이다. 요즘은 부쩍 건강에 대하여 염려가 많다. 노친네들에겐 '밤새 안녕'이란 말이 회자된다. 겨울 날씨와 늙은이의 건강은 믿을게 못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김혜남은 &lt;어른으로 산다는 것&gt;에서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는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 역시 '안되면 되게 하라'는 공수특전단 구호를 믿고 노력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걸 부정하는 게 많아지는 걸 보니 나도 늙어가는가 보다. 차라리 어릴적엔 약간의 제약(制約)이 있었지만 그 시절이 내 마음대로 살았던 시절인 것 같다.&nbsp;</div><div><br></div><div>부모님의 잔소리, 선생님들의 무서운 훈육, 그리고 사회의 눈초리 등으로 제재(制裁)를 받았지만 그 시절을 동경할 때가 많다.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땐 무거운 짐이 주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이 막중해지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난후였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라고 정의를 내린다.&nbsp;</div><div><br></div><div>또한 어떤 잘못도 용서받고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어릴 적의 기대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세상에는 19세만 지나면 성인이라 하고 생물학적인 무수한 종류의 어른이 있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되곤 한다. 그들은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각기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아니면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div><div><br></div><div>사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선과 악을 비롯한 다양한 힘들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안팎에 널려 있는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상대를 보호하면서 세상을 좀 더 재미있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div><div><br></div><div>우리가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노예의 지위로 하락시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데,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10/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23074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자연에 묻혀 살면서 만20년 동안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철학을 비로소 배우고 있다.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는 하찮은 묘목 한그루를 심으면서도 철학을 담으려 노력한다.&nbsp;</div><div><br></div><div>'흔들리지 않고 높이 성장하려면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지극히 평범한 진리이지만 그걸 실천하지 못했다. 나무의 높이는 잎이나 줄기가 아니라 뿌리의 튼실함이 결정한다.</div><div><br></div><div>철학자 알랭은 "행복은 기분이 아닌 의지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행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라는 말이다. 즉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사람에게만 행복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별 생각없이 습관적으로만 사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다.</div><div><br></div><div>김수영 시인의 '풀'이란 싯귀에 보면,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적고 있다. 바람에 맞서지 않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능력,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 능동적인 능력이 작은 풀의 생명력이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div><div><font size="3" face="Gothic"><br style="color: rgb(0, 33, 176);"></font></div></div><div><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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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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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10 Sep 2026 23:11:0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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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추억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9/dd08339f6fa1633ed128580c619298882247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19세기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 5월 25일∼1882년 4월 27일)은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식이며 흉내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라고 말한다.&nbsp;</div><div><br></div><div>마땅히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책임이 있음을 설명하는 데, 인류는 이 몫을 추구하고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문명을 구축했다.&nbsp;</div><div><br></div><div>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몫은 무엇인가'를 심도깊게 생각해 보질 못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맡겨진 고유한 몫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유일한 몫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그런 관점에서 '늙은티'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날마다 다짐한다. 사람이 약해지면 추억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잘 나가던 시절을 끄집어 내며 향수에 젖기도 한다. 돌아 갈 수없는 시절이란 걸 알면서도 공연히 센티맨탈(sentimental)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복고가 지나치게 판을 치게 되면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 진취적으로 향하려는 경향을 약화시킬 소지가 생겨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복고 흐름이 현재 지나치게 환영받고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뒤로 돌아가는 것은 앞으로 뻗어가려는 분위기가 가득할 때에 ‘다양성’을 꾸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복고가 구세주인양 떠들어대고 그것만을 찬양하는 모습은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복고 열풍에 빠질 때가 많다. 때론 어머니의 무한 사랑안에서 살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단 하룻만이라도 살고 싶을 땐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통키타 하나를 덜렁매고 주말이면 기찻길에 앉아 '바닷가의 추억'을 부르며 흘러가는 구름에 우리의 우정을 새기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가끔 교회도 복고열풍이 불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순수함을 잃은 교회의 미래를 초기교회의 열정과 접목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한다.&nbsp;</span></div><div><br></div><div>며칠전 세상을 타계한 친구가 생각나던차 부인에게서 전화가와&nbsp; 어떻게 사는지 근황을 물었다. 벌써 4년이 조금 지났지만 이미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는 인상을 받고 씁쓰레한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지독한 치매에 걸려 요양원을 전전하다 결국 나이 70에 세상을 떠났다. 그 때 요양원에 집어 넣은 것이 결정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친구들이 수근거리는데 하필 코로나에 감염되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nbsp;</div><div><br></div><div>다른 건 몰라도 치매만큼은 걸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뇌세포의 40%가 파괴되어 인지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에 요양원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긴 하지만 젊었을 때 총기가 좋았던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떠났다.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 16세에 만났으니 50년을 넘긴 긴 세월의 언저리에서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몹쓸 인간이 추억만 듬뿍 남겨놓고 떠나 버렸다.&nbsp;</div><div><br></div><div>요즘들어 추억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미래의 일은 아예 접어 버리고 추억의 시절로 돌아 가 향수에 젖는 시간만이 존재한다는게 서글프기도 하고 한쪽 날개가 찢겨진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 야속하기만 하다. 조금 더 잘해 주지 못한게 미안하기도 하고 헛소릴 할 때마다 타박을 하던 지난 시절이 더 허탈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nbsp;</div><div><br></div><div>황혼증후군이 심해 어둑해지면 더 불안해 하는데, 조금만 낯설면 불안한 기색을 들어내며 중국집에 가서 음식나오길 기다리는 순간에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느 공항이냐'고 묻는다. 당연히 자장면이 나오니 베이징 공항이라면 안심하니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치매에 걸린 상태라도 좀 더 살았으면 좋았을 걸 단명하고 말았으니 가끔은 그리움에 젖게 만든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치매는 아니지만 요즘 정신나간 녀석들이 내 얼굴이 노랗다며 황달끼가 있는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보라는데 사실은 속알머리가 보여 모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햇볕을 보지 못해서인데, 억지로 환자를 만들려 한다. 사실, 무쇠 덩어리보다 더 강했던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내가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목회의 현장에서 잠시 비껴나 있었으니 옛날에 대한 향수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9/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3001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가늘고 길게 살려 마음먹었다. 막내딸 칠순잔치까진 살려고 작정했다. 그래봤자 백세 미만이지만 '늙은티'는 내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노인이 되었어도 추하게 늙지않고 내 할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고 사는게 중요하다.&nbsp;</div><div><br></div><div>나는 주제 넘은 소리같지만 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존재하고 아직도 내 사명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nbsp;&nbsp;그래서 내 묷이라고 생각되면 아무리 힘든 일이더라도 주저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내 주변엔 지긋한 나이임에도 자기 몫을 찾으려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다.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한날 부질없는 일임에도 아쉬워 하며 추억에 젖어 사는 부류들이 많다. 나는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에 갔을 때 가안을 목전에 둔 곳에서 모세를 떠올려 본적이 있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모세가 자기는 들어 갈 수 없는 땅을 강 건너로 넘어다 보며 그곳으로 들어갈 백성들의 앞날을 우려하여 행한 긴긴 설교의 마지막 즈음에 간곡하게 부탁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복고(復古)해 보라는 뜻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어느새 노인층에 편입된 것인지 옛 것에 대한 향수에 잠길 때가 많다. 그리운게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복고 마케팅(Comeback Marketing)’이란 걸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그러나 한번쯤은 내가 지나 온 길을 회상해 보는 것도 크게 책잡을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걸어 온 길이 호화스런 길은 아니었다. 내세울만한 것도 별로없다. 그렇다고 해서 닭똥이나 만지며 살고 있는 지금이 진부하다고 느껴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신을 반추해 보면 그만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립다. 그리고 아픔이 되어 눈을 감으면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까. 그 땐 정말 몰랐다.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무조건 떼쓰면 되는 줄 알았고 갖고 싶은 거 못 가지면 서러워서 펑펑 울면 그만이었다. 그럭저럭, 자신의 아품을 어루만져주고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고 나서야 그 지난날들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알게되니 이런 바보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굶어 죽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식빵을 구입해 왔다. 박목사님이 선물한 쨈을 발라 간편식으로 식사를 대용하려 작정했는데 젊어서는 빵은 질색이었지만 지금은 간편식 빵을 더 선호한다. 토스트에 딸기쨈을 발라 한끼를 해결하는게 위에 부담이 없어 더 선호하기도 한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외에 나갔을 때에도 입이 짧아져 다른 음식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토스트를 구워 버터와 쨈을 듬북 발라 민생고를 해결하는데 다 길들이기 나름이다. 어떤 땐 가지고 간 고추장을 발라 먹기도 하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갓을 쓰고 양복바지를 입은 것처럼 어색하지만 토스트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한끼 식사가 </span><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51, 51, 51); font-family: -apple-system, BlinkMacSystemFont, Helvetica, &quot;Apple SD Gothic Neo&quot;, arial,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yetHangulFont, sans-serif; letter-spacing: -0.25px;">언밸런스(unbalance)</span><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51, 51, 51); font-family: -apple-system, BlinkMacSystemFont, Helvetica, &quot;Apple SD Gothic Neo&quot;, arial,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yetHangulFont, sans-serif; letter-spacing: -0.25px;"> 한 것 같지만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럴듯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9/ffa51010e37cddc416baa6f2a0e5d1fa2314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 내 처지가 격식같은 걸 따질 처지가 아니다. 안먹으면 죽을 거란 절체절명이 느껴지는게 무슨 격식이 필요한가?&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함께 일하는 중국인 소장은 식당에서 누릉지를 주문해 놓고 된장을 약간 풀어 먹는데 난 아무리 굶어 죽는다 해도 그럴 비위는 없다. 고기를 고수 나물에 쌈싸먹는 것에서 부터 내 식성관 판이하게 다르지만 식성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쿠팡에서 황금 사철나무 열그루를 택배로 받았다. 일단 화분에 심어 테라스 위에서 키우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 심으려 하는데 원래 사철나무는 울타리용이긴 하지만&nbsp; 단독으로 키워 수형을 잡아 가며 몇년안에 멋진 나무로 키워 볼 생각이다. 사철나무도 독고다이로 키우면 봐줄만 하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젯밤에 홑이블을 덮고 자다가 추위를 느껴 전기장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금방 계절의 변화를 느낄 정도로 이미 가을은 내 생활속에 깊히 스며들고 있다. 현장소장과 우즈백 인부들을 데리고 추석무렵 바다 낚시를 가기로 했다. 갯바위 낚시를 가봤자 복어새끼 두어마리 건지는 수준이겠지만 툭터진 서해 바다에서 고향쪽을 바라보며 성묘하도록 배려해줄 생각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마다 중추절 무렵엔 월병을 미리 주문하여 전달해 주곤 했는데 올핸 중국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지 말이 없다. 대신 송편과 전을 구입하여 도시락으로 대용식할 생각인데 그러고 보니 추석이 두주 남았다. 곳곳에 벌초하느라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미리 벌초하고 성묘를 한 후에 정작 명절엔 긴 연휴를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가 보다.&nbsp; &nbsp;&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4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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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9 Sep 2026 23:48:0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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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愛之重之</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8/6121425e687cef2318162d32b09be0d22233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빌립의 권면으로 나다나엘이 주님을 찾아 왔을 떄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1세기에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자주 쓰던 표현이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토라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의 회당에나 있는 것이었다. 당시 랍비 문헌을 보면, 회당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토라를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로 추천된 곳이 바로 무화과나무 아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그가 무화과나무 그늘아래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 율법을 연구하고 말씀을 묵상 했구나!”라고 생각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토라를 공부하고 진리를 찾던 구도자였다. 예수님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토라를 묵상하던 나다나엘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으면 주님이 알아 보신다. 누구나를 부르셨지만 아무나를 부르시진 않는다. 내가 말씀을 붙잡고 애쓸 떄 내 수고를 인정하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예수님은 전직 갈릴리 순회목수였지만 나무에 대하여도 일가견이 계셨던 것 같다. 비유중에 농부와 농사에 관한 말씀을 자주하셨다. 일상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것들을 비유하시면서 가르치기를 힘쓰셨다. 수준 높은 철학적 논조 대신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일상이 설교의 내용이셨고, 빈 투망질로 허탕을 일삼던&nbsp; 어부들에게, 3년동안 수확을 올리지 못했던 농부들에게 말씀을 주셨다. 성공자를 대상으로 삼지 않으셨고 실패를 밥먹듯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안겨 주셨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귀촌하면서 '감수(甘受)'라는 말을 내 삶에 적용하기로 작정했었다. 워낙 내 재주가 부족하기에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하고 수고가 뒤따라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력을 남겼느냐는 중요한 의미가 아니다. 지금부터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지만 아무리 힘겨운 일이라 할찌라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nbsp;</span></div><div><br></div><div>생각해 볼 수록 '감수(甘受)'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 내 부족함을 인식하고 어차피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마찮가지지만 있는 그대로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쓴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비난을 감수하고, 고통을 감수하고, 아무리 쓴 거라 해도 달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nbsp;</div><div><br></div><div>'감수불보(甘受不報)'란 말이 있는데,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원망하지 않고 달게 받으며 복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게 일어나는 화나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일들은 시련도 아니고 절대자가 별 생각 없이 주는 시험도 아닌 다 내가 지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 진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8/b9e540085c2f69f21fb914d28d8743732235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남에게 미루거나 원망대신 내가 '감수(甘受)'해야 할 일이라고 작정하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자주 느낀다.&nbsp;</div><div><br></div><div>삶이 모두 자기의 작품이기에 조금 부족(不足)해도 위축(萎縮)되지도 않고 누구를 원망(怨望)하거나 부러워하지않고 자기장단(長短)에 맞추어 즐거워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춤추고 행복(幸福)해 하고 싶다. 일을 좋아하며 건강(健康)하고 삶이 여유(餘裕)롭고 자녀(子女)와 남을 의지(依持)하지않고 당당(堂堂)하며 독립심(獨立心)이 강(强)하게 살려 노력중이다.&nbsp;&nbsp;</div><div><br></div><div>옛 어른들이 게으른 사람을 빗대어 "콧등에 파리가 앉아도 혀바닥으로 쫓을 놈"이란 말이 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질타하는 말일게다. 나 역시 날 성가시게 하는 파리를 좋아할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성가시게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nbsp;&nbsp;나를 성가시게 만들고 불쾌한 감정을 안겨 준 사람을 원망하기 보단 내가 너무 민감하게 산게 아닌지를 생각하며 너그럽게 살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The Highly Sensitive People)'은 대개 까다롭고, 비사교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시선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내가 그런 부류였다. 이젠 남들과 갈등할만큼 한가하지도 않을뿐더러 여유가 있는 노후생활을 목표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nbsp; &nbsp;</div><div><br></div><div>태국에 가면 파타야란 곳이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유흥가로 변신했지만 원래는 베트남 전쟁중 미군들 휴양지로 개발되었던 곳이다. 전장터를 벗어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해소시키지 않으면 안되기에 전장터엔 이런 곳이 있기 마련이다. 난 목회현장을 벗어난 은퇴자들도 일정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nbsp; 그래서 낙향을 권유하고 자연을 벗삼아 인생2모작을 시작하자고 꼬드긴다.&nbsp;</div><div><br></div><div>만나는 사람마다에게 귀촌 예찬을 늘어 놓는다. 내가 전문가 못지 않는 농사꾼이란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시눙은 낼줄 알고 마음 자게만큼은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땅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 나는 종종 거울앞에 서보곤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불과 10년 전하곤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멋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다.</div><div><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내 삶을 조용히 관조(觀照)해 보면 목회자로만 일생을 살았다면 정말 멋없이 세상을 살뻔 했다. 계속 대접을 받으면서 그걸 당연시하고 쥐꼬리만한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했을게 뻔하다. 나도 한 땐 귀공자 타입이고 선비 타입 등 세련된 매너 등으로 인해 멋있는 사람이라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등이 굽어지고 어깨가 줄어들면서 초라함이 묻어나는 외모로 변해 버렸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랑드롱이나 쏘피아 롤렌의 늙은 사진이 화재가 된적이 있었다. 잘 생긴 사람들이 늙으면 더 초라해진 걸 보게 된다. 얼마전 무심코 미스트롯이란 화면을 본적이 있었는데 유명 가수 최아무개가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는데 형편없이 일그러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젊어서는 화장빨로 감추고 성형으로 아름다움을 유지했는데 나일먹으니 자연산보다 더 추하게 변형된 모습에 아연실색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보통 '멋'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들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나 병약자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곤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노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남자들이 노년을 지나면서 점차 멋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8/d1ab6181c876eadf22c8d575d763595322371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가족들에게 남겨 준 것이라고는 신앙심 하나뿐인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물론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이르기 까지 공부시켜 준 것은 있지만 그건 일반 부모들도 모두가 하는 일상이고, 화려한 색깔, 아름다운 소리, 좋은 맛, 신나는 사냥 등에 선 별로 내세울 게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왠만하면 몇개씩 다니는 학원 한번 보내보질 못했고 한우고기 한번 실컷 먹여보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꼭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회자 생활이란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없어도 있는척, 있어도 없는척하며 살아야 한다는 되먹지 않은 지론을 앞세우며 가족들에게 희생을 강요한게 마음에 걸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준게 너무 고마워 이제는 신앙 유산말고 화려한 색깔,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고, 좋은 음식이나 여행 스케치를 만들어 주고 싶다. 내 딸들은 이제 자식들 걱정말고 아빠의 건강이나 챙기고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망설이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고 당부하지만 나는 내 남은 시간들에 대하여 현재로도 만족스럽고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먹는다지만 지금에 와서 내 처지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냥 더디지만 저속으로 가다 멈춰 서는 시간까지 가볼 생각이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 하루종일, 정확히 추럭으로 일곰번 쓰레기나 건축 자재 등을 나르면서 일을 하다 코피를 쏟았다. 일단 판넬은 창고를 지으려고 공주로 일부 옮겨 놓았지만 보관하기가 마땅치 않고 건축하면서 사용하고 남은 것들이 쌓여있어 몇군데로 분산시켜 놓았다. 아직도 내 집엔 전임자가 버리고 간 쓰레기가 많은데 난 청소를 해주고 가란 부탁을 받고 인력을 동원하는게 어리석단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흔적을 지우고 가야 한다는 상식을 지키려니 엄청 힘든 하루였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침엔 날씨가 쌀쌀하여 가디건을 걸치고 나갔지만 일하는 동안은 비지땀을 꽤나 흘렸다. 불과 일년 남짓 살았는데 이렇게 버려야 할게 많은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모두가 버려질 것들뿐이다. 애지중지(</span><font face="Malgun gothic">愛之重之)</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할게 못된다. 일하면서 들녁에서 자연산으로 자란 부추를 캐다가 옮겨 심었다. 부추전이나 부추김치를 선호하기에 자라면 양식으로 삼아야겠다.&nbsp;&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span>&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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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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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8 Sep 2026 22:38:3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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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출발점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을 때</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7/3901161a27feecf9bf2835a96ad5124519165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거주하는 시골에서는 내가 가장 젊고 애송이 소릴 듣는데, 밖에 나가보면 내가 가장 늙은이 측에 속하니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있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칠십을 기념하기 위해 전가족들을 대동하고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새삼 깨달은바는 어느새 내가 일행중 최고령 나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무심한 세월이 야속해지는 걸 느꼈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전철안에서나 음식점에서나 내 윗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날 슬프게 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여행의 출발 선상에선 도무도 당당했는데 두바이를 거쳐 18시간을 비행하여 런던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런대로 견딜만 했는데 프랑스에 입성하면서 부터 서서히 뒤쳐지고 있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결국 스위스를 거쳐 로마에 입성해서 거리에 주저 앉아 민폐를 끼쳤다.&nbsp;</div><div><br></div><div>다른 옵션은 안해도 로마 시내 벤츠투어만큼은 더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벤즈를 타고 투어를 했지만 그래도 바티칸에선 여러번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젠 손주들 걸음을 따라 가기엔 역부족이다. 나도 한때,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던 적이 있지만 이제 남아있는 '어른'의 시간이 두려워진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출발점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을 때 종점은 사람을 사무치게 하고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nbsp;</div><div><br></div><div>아직은 버스에서 내릴 때가 아니니 난 '낙엽'이 아니라 푸른 엽록소를 애써 잡고 있는 '잎'이라고 떠들어 봐야 그게 그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건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맘'이 가벼워졌기 때문 아닌가? 나이는 크게 달력 나이, 신체 나이, 정신 나이가 있다. 신체 나이는 운동으로 잡을 수 있지만 달력 나이는 인력으로 잡을 수 없다. 그래서 허송세월은 안되고 진즉 값어치 있게 살아야한다.&nbsp;</div><div><br></div><div>이태리 말을 모르지만 보디랭귀지에 귀재 소릴 듣는 사람인데 이런 사정을 알 까닭이 없는 가이드는 투어 중 일행과 지꾸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전속 가이드 한명을 나에게 따라 붙혀 주었다. 내가 '로마의 휴일'을 여러번 보았고 실제로 세번쨰 방문인데 가이드 손에 끌려 다녀야 하는 내 부실한 체력에 초라해짐을 느껴야했다. 하지만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nbsp;&nbsp;</div><div><br></div><div>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지만 아직은 누구에게도 민폐(民弊)를 끼치고 싶진 않다. 민폐를 당연시하고 정당시하면 적폐(積弊) 소리 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노친네들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한쪽으로 치우쳐 자신 안에 있는 평범함과 순수함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기 독선과 고집이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nbsp;</div><div><br></div><div>내 안에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데, 오늘 하루 어떤 감정을 나의 주된 감정으로 붙들고 생활했는지에 따라 오늘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려 할 것이다. 그러다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며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인생을 단순하게 살려 노력중이다. 단순한 남자들은 인생도 단순하다.&nbsp;</div><div><br></div><div>어느 누구도 일만 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구와 특성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 지난 10년을 뒤돌아 보면 전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운명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건축업자라는 소릴 듣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처음처럼'이라는 슬로건을 떠올리며 건성으로 하려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nbsp;&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7/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9571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실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대충 대충하겠다는 사람은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nbsp;&nbsp;대충 대충이 사람잡는다. 우리나라는 성실히 열심히하면 바보취급하고 대충대충 하면서 자기이득 챙기는게 최고라는 사상이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다.&nbsp;</div><div><br></div><div>난 이게 우리나라의 가장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게 교육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각종 회사 군대 사회 정치 학교 공공기관 모든 부분에서 들어나고 보여주기식 행정과 이득 챙기려는 사기꾼 마인드 콜라보로 정작 일은 엉망진창이고 일이 터지면 떠넘기기 바쁘고 제대로 해결할 생각도 없는게 병패이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살던 곳에서 이사를 나왔지만 내 집으로 내일 이사 오는 분을 위해 어제부터 주변 청소를 해주고 있다. 창고마다 건축 자재가 널려있어 입주자가 도착하기 전에 청소해 주는게 맞는 일이지만 정작 내가 이사한 집은 덜렁 짐만 빼간 상태이기에 쓰레기가 널려있고 허물어져 가는 창고가 몇동 있어 제대로 집을 꾸미려면 일년은 걸릴 거라는 우려가 드는 건 사실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잔금 날짜를 넉넉히 일년으로 게약하고 일단 월세를 지불하기로 했기에 완전한 내집은 아니지만 시간에 쫒겨 제대로 청소를 할 수 없기에 일단 텃밭을 일구며 서서히 집을 어떻게 디자인할까를 연구하고 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집으로 내일 경기도 고양에서 이사오는 분을 위해 풀을 제거하고 거주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깔끔하게 정리해 주려 인부들을 불러 대청소를 해주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도심을 떠나 귀촌하려는 분이 실망할까봐 일손을 덜어주려는 내 진심을 알아줄진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처음부터 실망하지 않도록 배려해줄 생각이다. 회색도시에 지친 현대인들의 로망이 전원주택이라고 했던가? 나를 비롯해 경험이 전무한 도시인들이 시골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물론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해도 해도 끝이없는 시골 일에 진저리를 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시골 생활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 해도 그런대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곳이고 흙속에 묻혀 사는 생활이 고독감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도시 생활보다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이런 사람들을 실망시킬 순 없는 일이기에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집을 지어 분량하려 마음먹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럴 때 양심이 작동되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건축업자의 8~90%는 사기꾼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이건 자업자득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공자의 입장에선 이익을 남기려니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지만 잘못된 집떄문에 귀촌하여 실망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내가 업자를 잘못 만나 당해본 일이고, 오기가 생겨 내가 직접 집을 지어 보겠다고 뛰어 든 것이 내 인생의 후반을 이렇게 고달프게 만들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귀촌생활 시작은 마음들뜬 기분이라 처음 1년은 정말 열중이다. 복잡한 도심생활에 지쳐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시골에 터잡고 집지어 아기자기 텃밭도 가꾸며 마음과 몸을 쉬어보려는 맘 누구나 같은생각일 것이지만 주변에 정착하려 안간힘을 쏟는 사람들의 귀촌생활을 들여다 보면 꿈을 이루고 난 후 1~2년동안은 정말 열심이지만 점차 로망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귀농 귀촌해서 제2의 삶을 살겠다는 야무진 포부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를 일단은 환영한다. 귀농 귀촌해서 잘 살겠다는 그 희망과 의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림같은 집을 저 푸른 초원 위에 짓고... 유행 가사같은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도 환영한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연 촌(농촌, 산천)에서 농사 지어 돈을 벌어서 그림같은 집 즉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느냐의 확률을 따지면?&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 수밖에 없다. 귀농한 뒤의 전원생활이란 개념이 동일시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귀농은 말 그래도 농사 지어서 돈을 버는 거다. 전원생활은 돈이 충분해야만 가능한 생활이다. 즉 농사 짓지 않아도 전원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촌구석으로 들어 가 돈을 벌겠다. 더 나아가 그림같은 집 안에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야무진 희망과 꿈은 그 누구도 꿀 수 있다. 그런데 실현가능성은 거의 80%는 실망으로 끝난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7/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9583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은퇴하고 충남 공주 고향집으로 귀촌한 박목사님이 요즘 농삿일에 열중인가 보다. 배추를 심은 모습을 보내왔는데 나완 차원이 다른 솜씨이다. 내 배춧 잎은 매일 물을 주는데도 시들한데 박목사님의 배추는 허리를 곳곳하게 세운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알고보니 물만 주는게 아니라 이파리에 묻은 흙도 닦아 주어야 한다는데 나는 물만 주면 될줄 알고 고생을 사서 한 모양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신학대학에 입학하기 전 부모님들이 농사짓는 걸 등너머로 보아 온 것이 주효한 모양인데 눈썰미가 그만큼 중요하단 걸 알았다. 난 소도시에 살았지만 농사란 한번도 본적이 없기에 중구난망이다. 더군다나 농약 사용을 안하고 벌레도 제 때 잡아내지 못하기에 확실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음주쯤 선산에 벌초하러 가면서 조언을 구하고 제대로 배워야 할 것 같다. 조만간 배추농사가 풍작을 이루면 김장을 마치고 스승님들을 모시고 쓰시마 섬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바닷 낚시도 조예가 깊어 충남 일대의 물고기가 씨가 마를 정도라니 원래의 우리 땅 대마도로 낚시를 다녀 왔으면 좋겠다. 현장소장은 자기 고향인 제남 곡부 태산으로 함께 가자고 하지만 머리를 식히려면 시끄러운 중국보단 일본쪽이 나을 것 같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귀농과 귀촌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가 처한 환경을 탓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고, 찾을 수 없을 때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까지 한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나를 그곳에 다 던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온몸을 던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자유로워진다.&nbsp;&nbsp;</div><div><br></div><div>지금 열심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멈추면 안 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쪽 문은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왜 많은 일과 장소가 있음에도 일단 촌구석을 선택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에만 급급해 일상을 즐길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기에 이젠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을 반추해 보기로 했다.&nbsp;&nbsp;</div><div><br></div><div>당시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 일조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nbsp;</div><div><br></div><div>시인의 말처럼. 떠날 것은 그저 집을 떠나 낯선 도시와 먼 외국어로 가는 것뿐 아니라, 익숙해져 버린 타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기도 하겠다. 아니 사실은 그게 더 필요한 것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로부터 떠나는 시간들 역시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한 은퇴는 임지를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나로 부터 떠나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나라는 존재가 귀하고 아까운 건 사실이지만 그걸 떠날 수 있을 때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아직도 나는 내 존재성에 대하여 강한 미련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후회하며 내 자신을 버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걸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div><div><br></div><div>6.25가 끝난 다음해 태어난 이후 출발선상에서 너무 멀어져 이제 가물가물하고 종착점이 가까워지기에 버릴 걸 버린다는 건 쉬울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이 깊어지는게 내 솔찍한 고민이다.&nbsp;&nbsp;</div><div><br></div><div>&nbsp;&nbsp;</div><div><br></div></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3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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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07 Sep 2026 20:16:5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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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람이 불어 올 땐 엎드리는 것도 지헤이다.</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6/23587bee833f7b6c49f9dcd4bd0cc04323162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옛 어른들은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은 다산(多産)의 상징이고, 조선 백자에 포도 무늬가 많은 것도 역시 같은 뜻이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어떤 어른들은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이다.</p><p style="border: 0px;">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했다. 이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으로 먹여주던 것을 일컫는다.</p><p style="border: 0px;"><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이 절기상 백로(白露)이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기로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한다.</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잠을 자다가 새벽엔 약간 한기를 느껴 담료를 꺼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시간의 길이는 수천년 동안 한번도 달라진 적이 없었다. 어릴 땐 시간이 이리 더디 가는지 답답했을 것이고 젊었을 때도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낄새가 없이 지나갔지만 이젠 계절의 변화는 물론 분초를 느낄 정도가 되어 버렸다.&nbsp;</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일 먹으니 좀 더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열해 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어갈 때 아름다워야 한다. 뒤에 나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면 어서 좁은 길을 비켜서서 앞서가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연륜이 묻어난 당부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도 있다. 결코 좋은 뜻은 아님에는 분명하다. 순수해진다는 좋은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순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nbsp;</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생각이 다른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곤혹(困惑)스러운게 없다. 요즘 내 주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nbsp;&nbsp;담론(談論)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제가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더더욱 아니며 영양가없는 말을 주고 받는게 전부인데 왜 내가 이런 저런 말을 다 들어주며 시달려야 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nbsp;</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한 때 생각이 많아 몹시 곤고하게 산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 앉아 왜 나만 거머리같은 상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청승을 떠는지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분노도 용서도 사그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갑짜기 피곤이 몰려 오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힘든 나날이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고지가 바로 눈앞이기에 견디는 방법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nbsp;</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6/4443ef5dc115099024a48567e4d17d922325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nbsp; 사람은 절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돛단배의 돛을 조정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원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혼사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혼밥족은 알겠지만 혼사족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더니 혼자 죽는 고독사를 일컫는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은 어차피 혼자 죽는다. 문제는 그 임종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고 죽음을 알지도 못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주의 사자의 손에 이끌려 천당가는 사람이 혼사족인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고독때문에 아무나 하고 교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만약 둘만 내 곁에 있었더라면 오히려 일을 기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nbsp;</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혼자이기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노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름답게 디자인해야겠다는 열정이 내 안에 존재했기에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십년이 넘는 동안 거친 공사판에서 살다 보니 내 성격도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오가는 말투가 너무 쌍스럽고 거칠다 보니 내 생리에 맞지 않았지만 적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nbsp;<div><br></div><div>별 거 아닌 일에도 흥분하기 일수이고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가 난무하는 곳이고 특히나 외국인들에겐 거의 쌍욕을 해대는 걸 들을 때가 가장 안스럽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일 때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이 바닥에선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모기도 새'</font></b>란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무조건 목소리 큰 놈이 정의라고 인정되는 곳이다. 나도 예전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많이 했지만 최근엔 가능하면 줄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주변에 말도 안되는 생각과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라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말이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나 공사장은 이런 부침이 심한 곳이다.&nbsp;</div><div><br></div><div><div>요즘은 왠만하면 외출을 삼가하고 텃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른 아침 농작물에 물을 주는 일에서 부터 풀을 뽑고 사색에 잠기고 해질 무렵엔 다시 물을 주는 일을 반복한다. 내 먹거리 문제가 걸려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열심히 농부를 자처한다. 귀촌의 삶의 질이란 여가 만족도와 직결한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귀촌하였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6/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23333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뭐가 유익하고 이득인가를 버린지 오래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nbsp;</div><div><br></div><div>하다못해 하루종일 남의 일에 동원되었어도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여 근육량이 늘어 났을 것이고 혈당을 떨어트린 날이었다고 자평하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nbsp;</div><div><br></div><div>그렇다고 무조건 노동에 매달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난 농사 일은 커녕 평생 낫 한번 잡아 본 일이 없다.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조경을 하고 식물을 심는다. 아마도 얼마 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자리잡아 갈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없는 일에 녹초가 될 지경이지만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nbsp;</div><div><br></div><div>인간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하기에 갈등이 생기고 고민이 깊어진다.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되 피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최선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눞는다고 한다. 시련의 바람 고난의 바람이 불어 올 땐 엎드리고 바람으로 인해 생체기가 심할 땐 가능하면 자가 치료하려 심히 애를 쓴다.&nbsp;</div></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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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35</guid>
			<dc:date>Sun, 06 Sep 2026 23:42:3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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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비도 떠나고 매미도 자취를 감췄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5/2c3c347fe1fde625ec54a7547a28d139234553.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내일이 절기상 백로(白露)이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간밤에도 쌀쌀하여 이블을 꺼냈고 아침엔 긴팔을 입어야 했지만 아직 내복을 입을 시기는 아닌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른 식물은 자리를 잡고 잘 자라는데 배추는 단 하룻만에 시들해져 걱정하던 차 어제 늦은 시간에 물을 훔뻑 주었더니 아침엔 어제완 달리 제법 몸을 치켜 세우는 걸 보며 아침 일찍 다시 물을 주었다. 다행히 울안엔 지하수가 있어 물 걱정은 없지만 당분간은 외출을 금하고 특별 관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대게는 봄에 파종하는 것들은 땅에 던져만 놓아도 잘 자라지만 처서가 지나 심는 작물들은 특별히 신경을 써야하고 자라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에 벌레가 먹기 시작하면 거의 초토화되는 걸 경험상 알고 있기에 벌레가 모여 들기 전에 어느 정도까지는 키워야 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에 일일히 벌레를 잡아 내야 한다. 벌레가 덜 먹는 식물로 대파 쪽파 부추 시금치 아욱 등을 심었지만 배추와 무우는 매일 텃밭에 앉아 지키고 있어야 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가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기에 귀농은 몰라도 귀촌하겠다는 사람에겐 과잉 친절을 보인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끈질기게 하라는 충언을 한다. 나는 그야말로 무작정 낙향하였기에 애로 사항이 많았으므로 나보다 더 초보를 만나면 과잉이라 할 정도로 도우려 한다. 사람이 이정표도 없이 길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정말 불모지와 다름없이 길을 걸어 왔던 것 같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갈 길을 도와주는 것은 바로 친절한 이정표다. 묵묵히 서있는 이정표는 길안내를 하고 나서 대가나 인사를 바라지않는다. 하루에 수 백명이 길을 물어도 말없이 안내만 해 줄 뿐 생색을 내거나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시골행을 결심했을 때 설마 내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줄은 정말 몰랐다. 지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疲弊)해지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남은 여생은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생각했지 한번도 고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더군다나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마치 이 길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떠나고 말았었다. 그래서 후배들과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더군다나 취향이 같거나 시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무작정 귀촌을 꿈꾼다면 일단 만류를 하거나 동정심이 일어나면 이정표가 되어 주려 노력한다. 최소한 부부간에 합의가 있었는지를 반드시 묻는다. 손발이 안맞으면 피차가 고생한다. 나도 현역시절 손발이 안맞아 애를 먹은 경우가 허다했었다. 담임목사와 당회원 간 손발이 안맞으면 치도곤을 치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둘중에 하나가 그만 두어야 한는 일이 발생하면 내가 떠나겠다고 다짐했었고 선친께서도 절대 교인을 이기려 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교인을 이기면 사단에게 지는 것이라고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일러 주셨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말세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이기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풀릴 문제도 풀지 못하고, 묶여서 끌려가다가 쓰러지게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5/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2346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려놓으면 쉽게 풀릴 문제가 대부분이다. 갈등은 왜 생기는가? 통제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를 가지면, 갈등은 사라지고 묶인 것은 풀리게 되어 있다. 뭐든 빠른 시간 안에 변화시키려고 하면 폭력적이 된다. 나라를 빨리 변화시키려고 하니까, 폭력에 의한 혁명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이들을 빨리 변화시키려면 몽둥이를 들고 때리는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도 교인들을 빨리 변화시키려면, 강압에 의한 몰아침 밖에 없다.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으면, 폭력은 사라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상황을 답답해했지만, 그냥 우셨다. 원치 않은 상황이지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는 폭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목회하면서 나에게 잘하던 사람, 헌금 많이 하던 사람들이 보따리를 먼저 싸는 경우를 엄청나게 많이 보았다. 나중에 보니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사람들을 믿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많이 울다가, 회개도 하다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씀을 들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을 바라보지 말자!’ 내가 언제 사람을 바라보고 목회했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자. 내 인생의 핵심은 예수 그 분, 나는 낮아지고 그 분은 높아지고, 그분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고 나는 그림자로 보이고, 그분은 아름다워지고 우리의 삶은 추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목회의 철학과 가치관이 되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 선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친절한 멘토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무조건 이 숨막힐 것 같은 현실을 이탈하는 것만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다. 그리고 올인했다.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정표도 없이 스텐바이 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기에 나같은 길을 가려는 분들이 있다면 참조하라고 주절거림을 계속하고 있다. &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학창시절, '지구는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에게 중력을 행사한다.'는 이론을 배웠건만 높히 비상하려고 애를 쓴 결과 중병을 얻었다. 언젠가는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질 것을 모르고, 높히 오를수록 떨어지는 가속과 충격은 만만치 않다는 걸 모른체 남들보다 다 빨리 더 높히 비상하고 싶었다. 지금은 황새처럼 여유로운 날개짓으로 살고싶어 날개를 펴 금방이라도 비상하려다 이내 날개를 접어버리는 그 게으름을 닮아가려 노력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나는 할 일없는 늙은이로 기억되는게 싫고 남에게 천덕구니로 인식되는게 싫다. 나도 젊었던 시절 나이 많으신 목사님들이 찾거나 만나자면 이런 저런 핑게를 대며 부담스러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접하는거야 얼마던지 할 수 있지만 강단에 세워 주는 건 정말 후회막급이었다. 나일먹으면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부담스러워 기피하기도 하고 잔소리가 많아지기에 피하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곱게 늙고 싶었다. 후배들에게 잔소리는 금물이고 가능하면 신세를 안지으려 내가 먼저 만나자는 말은 일체 하지 않으려 결심했었다. 할 일없는 늙은이, 골방 영감 소릴 안들으려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늙는다는 건 기대하는 바가 쇠하여졌다는 증거이고, 나이를 먹으면 추억만 자꾸 생각나고 몸은 꼼지락거리길 싫어 하는가 보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도 이제 시들해지는 걸 보니 말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일 먹으면서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걸 실감한다. 지나간 시절의 앨범을 뒤척거리며 향수에 젖어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나마 사진찍는 취미가 있었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진 한 장은 누구에게는 인생을 담은 의미와도 같다. 부모님과 찍었던 사진이 단 한장뿐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 수많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브라질 사진작가 레오나르도 센스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아름답게 찍기 위해 3년을 공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마치 팔 벌리고 있는 예수상이 보름달을 들어 올린 듯 한 장면을 사진 한 장으로 남겼다. 그야말로 그 작가의 인생샷과도 같은 이 사진은 이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며 리우데자네이루를 찾게 만들었는데, 이처럼 사진 한 장은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해외에 나갔을 땐, 꼭 감동을 줄만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몇 커드 정도는 담겨오곤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지난 시절을 반추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고 특히나 여행지에서 얻어 온 화면에선 내가 어느 곳을 다녀 왔는지를 은근히 자랑하고픈 생각에서 이다.&nbsp;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이야 스마트폰을 안가진 사람이 없지만 예전엔 카메라를 들춰매고 다니는 것이 낙이었고 비싼 필름을 사서 사진찍는 걸 취미로 삼아 용돈 대부분을 여기에 소진하기도 했었다. 심한 경우엔 필름을 열통 정도 구입하여 여행을 다닐 정도였다.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다닌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기록물을 남겼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5/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2347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즘도 해질 무렵 일을 마치고 하늘을 바라보며 비행운을 길게 드리우고 사라지는 비행기를 보면 갑짜기 여행이라도 떠날까를 생각한다. 장소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여러차례 다녀 온 곳이라도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취향이나 사고에 따라 여행지를 평가한다. 똑같은 여행지를 놓고도 사람마다 그 답변은 제각각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행지에 어떻게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마는, 취향에 맞는 여행지가 최상의 여행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행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자의 각기 다른 기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모두 소화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태국이란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볼거리 먹거리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해외 첫여행지였던 태국을 30여번 넘게 다녀 온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가끔 현재의 위치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시큰둥한 생각이 드는 건 그만큼 식탐이 줄었다는 말일게고, 장가계를 안가보았다면 백세를 살았어도 헛살았다는 그 풍광도 내 정원안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 먹지도 못할 컵라면을 끓여 놓고 식기도하는 간절함이 한우고기집에서 고기굽는 냄세보다 크게 느껴진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설렘'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건 돈주고 살 수 있는게 아니고 남들에게 선물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그래서 설렘의 회복을 꿈꾸며 어제와 똑같은 날을 만들지 않으려 오늘 분투하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벼 익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벌써 이삭이 영글어가고 있고 추석도 20여일 앞으로 다가 온다. 이대로 가을이 도래한 것 같은데, 불과 일주일 어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다음 주말쯤 공주 선영에 들려 벌초도 해드려야겠고 전원주택을 돌며 잔디를 깍아야겠다. 가을이 되니 몸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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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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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5 Sep 2026 23:45:0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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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관계의 죽음도 죽음이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5/cb18c95744fbec4b8afbb7fa64c56bc700135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보기보단 달리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활달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가리는게 많은 편이다. 또한 사람보는 눈도 예리하지도 못하고 정확하지도 않아 낭패를 볼 때가 많다. 몇십년을 함께 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볼 혜안(慧眼)이 없어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nbsp;</span><div><br></div><div>나에게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감히 인간 관계(人間 關係)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이 빚어 내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계는 추론, 사랑, 연대, 일상적인 사업 관계 등의 사회적 약속에 기반을 둔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하여 후회를 하지 않으려 애쓰긴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내&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혜안(慧眼)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nbsp;</span>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도 형편없고 항상 후회의 연속이다. 그러니 사람인들 제대로 볼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남들이 비난하고 폄하할 때도 아닐 거라고, 잘못 보았을 거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아님,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동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망하고 돌아설 때가 많았다. 나는 정말 사람보는 눈이 근시안에 가깝다.&nbsp;</div><div><div><br></div><div>“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전해주듯이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는 정말 힘들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다루는 심리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nbsp;&nbsp;언뜻 보기에는 인격자고 사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짜기 돌변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양면성을 보는듯하여 섬짓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가족, 연인, 동료 인간이란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속의 많은 이해관계 집단이나 조직과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활동하고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작은 집단에서 시작하여 점차로 그 활동범위를 넓혀가면서 생활하게 되지만, 이러한 사회생활의 변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러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주요 목적은 무엇보다 조직구성원 상호간의 협력관계를 촉진하고 경영질서의 유지발전을 통하여 조직의 목표달성과 개인의 욕구충족을 이룩하는 것에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골프에 대하여 무식하지만 듣기로는 골프에서는 그 사람의 성격만이 아니라 인품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18년 동안 같은 직장에 있을 때보다 18홀을 같이 돌때 더 잘 알게 된다"는 스코틀랜드의 속담이 있다. 이런 말도 있다. "사람을 사귀어서 만 년 걸려서 알게 되는 것보다 단 한번 골프 라운딩을 &nbsp;같이 할 때 더 많이 알게 된다."&nbsp;</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골프의 마력은 호락호락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골프가 잘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전혀 볼이 제대로 맞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잘 맞지 않는 날이다. 이때 이맛살을 찡그리거나, 구차한 핑계를 대고 화풀이 하거나, 포기하고 무성의하게 치거나, 자조적이 되기 쉽다. 사람들은 그런 골퍼를 혐오한다. 두 번 다시 같이 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골프에서는 그런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절대로 삼가야 한다. 세상에는 좋은 골퍼와 나쁜 골퍼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골프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다. 게임 도중에 혹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었다고 하자. 일반 사회에서는 서로 이해가 얽혀 있기 때문에 다소간의 무례가 허용이 된다. 그렇지만 심신의 기분 전환을 위해 나오는 골프장에서는 나쁜 인상이 증폭되기에 돌이킬 수 없게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5/0d6b3fcec0f98ec6a386b09d71b34eef00161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종종 나에게 생각을 바꿔 보라고 권면하는 소릴듣는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lt;일부러&gt;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의도적이란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뭔가 갈등의 앙금이 있고, 인간관계가 친밀하지 못하다면 세월의 흐름에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 첫 단계이자 핵심이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일부러라도....&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하바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사고방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 이것이 금세기 인류최대의 발견이다"고 하였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 한국을 방문했던 케네디 2세가(그는 그 후 비행기사고로 사망하였음) 사람만나기를 즐겨 하지 않으면 대성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인간관계의 법칙은 동서양이 마찮가지인가 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내가 인생을 실패했다면 인간관계에서 원인을 찾으면 틀림없을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처음 맺는 부모와의 관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것을 흔히들 운명이라 한다. 이외의 관계는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다. 비슷한 동네에 사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비슷한 학업능력을 갖춘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회에 나와도 비슷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고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역시 비슷한 주관과 사고를 가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된다. 작금의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그것을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 자체가 인터넷이나 여러 SNS를 통해 물리적·현실적으로 서로 만나거나 알고 지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끼리도 쉽게 알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지만 반면에 모든 관계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인간관계의 폐허(廢墟)를 낳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그렇지만 훗날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학교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쌓았던 인맥이 졸업 후 무용지물 되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난다. 휴대폰에 쌓여 있는 SNS 친구 중 정작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슬픈 현실에 외로움을 느낀다. 결국 SNS 설정에 들어가 친구 관리 속 '차단' 버튼을 눌러 관계를 손질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나도 여러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관계의 죽음도 죽음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감정에 휩쓸려 ‘욱’하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내가 내 마음의 주체가 돼 냉철하게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는 관계의 문제나 평생을 겪는 사랑과 이별의 문제, 인생 전체를 의미 있게 만드는 삶의 문제까지 '차단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낮달이라는 말이 있다. 해 떨어지기 전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하늘에 뜬 흰 달을 말한다. 낮달을 보면 어쩐지 서늘한 느낌이 든다. 밤에 떠야 할 달이 왜 대낮에 부유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땅 위의 이 좌표에서 당신을 만났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섞이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겉돈다. 심지어 아주 가깝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까지 별반 다르지 않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잘 아는 지인중 한사람은 SNS에 일상을 올리는 게 취미였는데, 최근 인스타그램을 비공계로 전환했다. 원래는 지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했던 공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가면을 쓰고 글을 올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직장동료, 대학원 선후배 등 팔로우가 늘자 ‘보는 눈들이 많아져’ 맞춤법까지 신경쓰게 됐다. 친구 리스트가 늘 수록 마음은 공허해져 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는 “지인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역설적으로 외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SNS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속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도 늘었는가’라고 물을 때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일이 인간 관계(人間 關係)라고 서두에서 말했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5/f4f0070fcc10032bd78d72f1943fcbbe0023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를 유심히 돌아보면 정말 인간 관계를 잘못 맺고 있단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쉽게 다가 서지 못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피해의식이 내 안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인간 관계를 가능하면 만들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요즘은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공사현장에 매일 열명 이상이 드나들지만 정말 수다를 떨만한 사람이 없다. 업무적인 대화외엔 말을 아끼고 있다. 아니, 슬쩍 자리를 피할 때가 많다. 힘든 노가다 일을 하는 도중 찾아오는 사람이 귀찮을 정도로 많다. 십여명의 비위를 다 맟추려니 육신이 피곤한 것 보다 정신적으로 곤고함을 느낄 때가 많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말 인간 군상이 다양하다. 모두가 다 나같길 바라지도 않지만 내가 그들과 똑같아 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내 안에 존재한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자가 누군지를 눈여겨 보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만 경영자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니 자꾸만 사람을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니 무슨 인간 관계가 형성될 것인가? 막상 사장 소릴 들으니 내가 딴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벌써 주말이다. 모처럼 공사를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주로 텃밭에서 살았다. 땅을 일구고 여러가지 작물을 심으면서 많은 상념을 했다. 매일 물을 주며 키운 덕분에 대파도 흙맛을 알았는지 자릴 잡았고, 배추도 아침 이슬에 눈부실 정도로 자라고 있으며 쪽파 부추 무우도 앙증맞을 정도로 싹이 올라왔다. 다음주면 시금치와 아욱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간밤엔 약간 춥다는 느낌이 들어 비록 홑이블이긴 하지만 몸에 거적같은 걸 덮으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두터운 이블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웃집 노인네들은 밤엔 보일러를 작동하는지 소리가 요란하지만 난 올해도 보일러 없이 겨울을 날 생각이다. 책상 밑에 전기난로 하나면 몇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고 침상엔 전기장판이 깔려있어 지내는덴 별 지장이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거의 티브이를 켜지 않기에 거실에 머물 시간이 없고 밥을 자주 하지 않으니 부억 싱크대에 서성일 필요도 없다. 오직 집에 있는 동안은 책상과 침상만 오가며 가끔 커피포트에 스위치를 올려 놓는게 일상이다. 그나마 엄청 살이 빠져 걸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꼬리뼈가 아파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자세가 변형되는 느낌이 들고 쇄골이 선명하게 노출되어 동남아 등지에 가면 수영장에서 물개 소릴 들었는데 이젠 쪽팔려서 수영복 입을 생각은 엄두도 내질 못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직 한낮엔 따가운 햇살을 피해야 하지만 아침 저녁엔 반팔로 지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쌀쌀한 기온을 보인다. 더운 건 참을 것 같은데 이젠 추운게 너무 싫다. 젊어서는 한 겨울에도 내복을 입어 본적이 없고 11월달 까진 선풍기를 들여놓질 않았는데 이젠 에어컨은 올 여름 한번 틀어본 것 같고, 그나마 선풍기도 방안 한구석에 처박아 둔지 오래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29</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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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5 Sep 2026 00:24:2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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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폐가 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3/8cadb6f19ac9389246025a6582bcad4822450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생각없이 사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아무런 할일이 없다는 것도 우울한 일이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되는대로 사는 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똑똑한 현대인은 자기사유를 한다.&nbsp;<div><br></div><div>그러나 자기사유력이 미흡한 사람도 많다. 그들에게 사이비성 종교가 묘하게 침투한다. 신천지가 극성을 부리는 것도 알고 보면 사유하는 힘이 없고 그럴만한 공간을 가져 본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nbsp;</div><div><br></div><div>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집을 지을 떄 거의 테라스를 만들고 어떤 용도로 사용할진 모르지만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지금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공급하지만 언젠가 인조 바위로 만든 폭포를 설치하여 작은 찻집을 만들어 제공하여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nbsp;<div><br></div><div>물론 너른 정원도 만들어 제공하지만 겨울철을 제외한 야외 활동이 가능한 시기에는 이런 공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 서비스 면적으로 설치해 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특히 나일 먹을 수록 사유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경제적으론 큰 부담이지만 기꺼히 부담해 준다.&nbsp;</div><div><br></div><div>고독을 즐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현대인은 고독하다. 물질문명이 끝없이 발전하고 쾌락이 극을 가도, 생각하는 인간은 고독하다. 그 고독은 잘 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호모 사피엔스의 것이다. 그게 다락방일 수도 있고 테라스일 수도 있지만 그 서비스 면적을 난 반드시 만들어 준다.&nbsp;</div><div><br></div><div>&nbsp;나는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지만 최소한 음표 사이에는 빈공간이 있어 쉬어 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만일 음표 사이에 빈 공간이 없다면 음악은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네 삶에도 침묵의 시간과 사유의 빈공간이 없다면 삶은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삶이 충만한 것은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야 날개를 편다”란 말이 있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서 철학의 한계를 지적한 말인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혜를 뜻하고, ‘날개를 편다’라는 말은 ‘깨달음’을 뜻한다. ‘황혼’이란 말은 ‘일이 끝난 뒤’를 뜻한다. 일이 끝난 뒤에야 모든 것이 명확하여지고, 우리가 진실을 깨닫는다. 놓치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된다.&nbsp;</div><div><br></div><div>부엉이는 시신경(視神經)이 발달하여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의 100분의 1정도에서도 사물을 정확히 바라보고 행동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엉이는 밤에도 큰 눈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살피고 신에게 세상의 동정을 알리고 또한 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전달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nbsp;</div><div><br></div><div>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 세상을 응시하는 지혜의 눈빛이 가장 밝아진다. 한낮의 시간을 두루 거친 이후의 여유로운 황혼의 풍경 속에 선 정양(靜養)의 시선이 번뜩이고 싶다. 내 인생의 황혼의 시간이 다가올 수록 나도 부엉이 한마리 키워야겠다. 어둠속의 일들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으면 좋겠다.&nbsp;&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국인 현장소장은 테라스를 크게 만들 수록 소요 예산이 많이 들고 그런다고 집값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가능하면 축소하자고 제안하지만 전원생활은 외부와 담을 헐기위해 선택하는 것인만큼 다른 건 다 양보해도 테라스만큼은 양보를 하지 않는다. 집을 많이 지으면서 생긴 노하우이긴 하지만 테라스가 없는 삭막한 집을 만들어 분양할 생각은 아직 없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3/5097b1926e5dd1a33aa4f21b9e727dd122461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발코니를 지지하기 위해 코벨(돌을 연속으로 내쌓은 수평층) 또는 큰 나무나 돌로 된 까치발(bracket) 등이 사용되었다. 19세기 이후부터 지지재로서 주철, 철근 콘크리트, 그외 여러 재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발코니는 특히 정원이나 잔디밭이 없는 주거환경에 활동범위와 생활공간을 확장시켜 준다.&nbsp;&nbsp;</div><div><br></div><div>대개 아파트형 주택에서는 햇빛과 그늘을 함께 얻기 위해 발코니를 부분적으로 후미지게 설치하는 반면, 열대지방의 경우 발코니는 건물 꼭대기에 미늘창(louver)으로 된 개구부를 설치해 통풍이 잘 되도록 한다. 이탈리아는 발코니와 로지아가 많기로 유명한데, 그중 교황이 축성미사를 드리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가 가장 유명하다.&nbsp;</div><div><br></div><div>이처럼 발코니가 종교적 기능을 하는 예는 이슬람 세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교 국가에서 때때로 이슬람교도들의 기도회가 사원 철탑의 꼭대기에 위치한 발코니에서 열리기도 한다. 수십 년에 걸쳐 한국인의 사랑을 받던 '발코니'가 찬밥 신세가 되면서 사람들의 일상도 달라졌다. 발코니의 사전적 의미는 ‘건물 외부에 거실의 연장으로 달아 외부로 돌출되게 만든 공간’이다.&nbsp;&nbsp;</div><div><br></div><div>보통 ‘베란다’라는 용어와 혼용해 사용한다. 10년전만 해도 아파트엔 발코니(Balcony)라는 공간이 유행했다. 가정주부는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나면 거실 옆 발코니로 직행한다. 발코니 한쪽에 만들어 놓은 작은 화단을 가꾸기 위해서다. 이곳에 꽃을 심고 텃밭도 조성해 상추와 고추를 키운다. 발코니 공간에서의 시간은 가정주부들에겐 취미이자 낙이었다. 주택 규모를 책정할 때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면적’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nbsp;&nbsp;</div><div><br></div><div>하지만 최근 발코니를 거실에 붙여 쓸 수 있게 법으로 허용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최소한 난초 하나쯤은 키웠지만 그나마도 살아졌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쓰고 싶은 마음에 너도나도 발코니 없는 아파트를 찾았고, 건설사도 이에 부응해 아파트를 내놨다.&nbsp;&nbsp;이런 경향이 굳어지면서 최근엔 발코니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반면, 사유의 공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거칠어졌다. 사색이 없으니 꿈도 불투명해 진다. 작은 테라스 하나를 치웠을뿐이지만 너무나도 큰 걸 잃고 살아간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남들보다 조금 특이한 생각으로 살려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자연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자주 다니는 길에 '사주까페'란 곳이 있는데 상상해 보건데 작명 운수 등을 보는 점쟁이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가 많은 걸 보니 손님이 많은가 본데 요즘은 별별 까페가 많다. 내가 조금 나이가 젊었다면 까페를 만들고 싶었다. 세상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 공유하고 싶었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작은 까페의 쥔장이다. 십여년전 다음(daum)에 까페를 개설해 놓았다. 회원은 단 한명이다. 내가 까페 쥔장이고 유일한 회원이기도 하다.&nbsp;&nbsp;그간 강단에서 설교했던 수백편의 동영상이 보관되어 있고, 내가 여러 곳에 올렸던 어줍잖은 글들과 듣고 싶은 노래도 수백곡 저장되어 있으며 매일 성경 필사하는 房과 수천개가 넘는 사진, 그간 함께 했던 교인들의 사진을 모아 둔 방도 있어 여기에 들어가면 몇시간씩 머문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아무도 들어 올 수 없도록 철저히 문단속도 해 놓았다. 매일 매일의 단상을 기록하고 사진도 보관하며 흘러간 가요는 물론 크래식 음악, 유언장도 만들어 놓았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통반장을 다 해 먹기에 가끔은 욕찌거리도 한다. 회원이 달랑 혼자이기에 이 아무개로 부터 정 아무개까지 무진장 난도질한다. 나에게는 안성맟춤인 장소인셈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무엇을 결단하거나 장고(長考) 할 일이 생기면 거의 혼자있는 시간을 가진다. 그 곳이 공원 베치던 강가이던 상관없이 혼자서 골몰(汨沒)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지인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멘토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내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없기에 우선은 낮선 곳을 찾아 고민을 해 보고 사색하며 독백에 빠진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들은 혼자있는 걸 참지 못한다. 혼자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혼자있는 시간을 고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치이다 보면 어떨 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더러는 사람이 별로 없는, 그러니까 장사가 잘 안되는 곧 망할 것만 같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또 더러는 동행 없이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나가기도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특히 일상의 생활 영역에서 사람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은 길거리로 나가 사람 구경하는 것이 일종의 일탈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3/1e16e5d80d3f844d6c22ebe268102dc52248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젠 참으로 묘한 생각에 방황을 했었다. 아직 몇개월 남아 있긴 하지만 교통 범칙금을 납부하러 경찰서에 간김에 자동차 면허증을 갱신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접수하는데 얼마전에 종합검진을 받았기에 신체검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뜻밖에 시력이 0.2 미만이라 1종 보통 면허는 안되고 2종 면허는 갱신이 가능하단 말을 듣고 젊었을 땐 양쪽 시력이 1.5 이상이었고 지금까지도 안경을 쓰지 않는데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들어 씁스레한 기분이 들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차피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지 않는 이상 1종이던 2종이던 상관이 없기에 수긍을 했지만&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력 하나만큼은 자랑할만 했는데 이젠 그것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었다. 하지만 백내장이 끼어 있어 흐릿하게 보일뿐 수술하면 곧 시력이 좋아질 거라고 믿지만 운전면허증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자칫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천만다행인 것은 75세가 넘으면 치매검사까지 받아야 한다는데 미리 면허증을 갱신했으니 그럴일은 없을 것이고,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치매는 안걸릴 자신이 있다. 화장실에 앉으면 지갑을 꺼내 돈을 세는 버릇이 여전하고 나일 먹었어도 매일 매일 무어라도 꼼지락 거리기에 치매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거라고 믿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 낮에도 먹는 시늉만 했을뿐 여러날 식사를 못했는데 저녁에 인부들과 고기를 구었지만 구토증이 나고 속이 울렁거려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도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헛구역질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음식 냄세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식사 도중에 귀가 했더니 인부들이 본죽을 사가지고 뒤따라와 뭐라도 요기를 하라고 주문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집에 돌아와 따스한 커피 한잔에 속이 달래졌고 편안해졌는데 낙지죽에 버섯죽을 사가지고 찾아와 먹기 싫은제 자꾸 강요하는 것 같아 일단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다.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어떤 땐 이유없이 음식을 사주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도 있다. 두달전에 위내시경 검사를 했었는데 지극히 정상이란 진단을 받아 염려는 없지만 식탐이 줄어든게 나에겐 가장 아쉬운 일이 되고 말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치매에 걸려 방금 식사를 했으면서도 밥안준다고 행패를 부리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남들에게 걱정이 되는 것도 원치 않지만 민폐가 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목표로 삼는 건 당연지사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div><div><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2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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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3 Sep 2026 22:53:0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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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추 모종을 심으면서</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2/2bfabba24a5b28477771d8927f63b4d62308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벌레들의 만찬 장소가 될게 뻔하지만 배추를 심으려고 모종을 구해 왔다. 농약 살포없인 꿈도 못꿀 일이지만 남들이 배추 심는 걸 보니 텃밭을 놀리느니 벌레를 키워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농약이 아니면 배추 농사는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나무 젓가락으로 일일히 벌레를 잡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십포기만 심으려 모종을 구입했는데 거의 100%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무슨 재간으로 벌레를 다 체포할 것인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배추가 다 자라기 전&nbsp; 어린 새싹부터 파먹어 들어갈 것이고 배추 파먹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할 걸 알면서도 일단 내 눈에 띄는 순간 요단강 건너 갈 거라고 엄포를 놓으며 강행하려 한다. 어제도 텃밭에 앉아 벌레가 기어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10분 동안 일미터 정도를 움직이는 미물이지만 채소를 먹어 치우는 건 순식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벌레먹은 채소는 무공해 먹거리라고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것도 왠만할 때의 이야기지, 그냥 방지하면 뿌리까지 작살내기에 나처럼 게으른 농부에겐 애당초 배추를 심는 건 무모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 벌레 퇴치를 다짐하며 결행하려 한다. 어차피 김장을 할줄도 모르고 하지도 않겠지만 김장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애써 배추 모종을 사온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김장’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김장’의 ‘김’은 ‘담그다’의 의미를 갖는 ‘침(沈)’에서, ‘장’은 ‘보관하다’의 뜻을 가지는 ‘장(藏)’에서 왔을 것으로 보는 데는 대체로 의견 일치를 보는 듯하다. 겨울철에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으므로, 초겨울에 김치를 많이 담가서 저장하는 풍습이 발달하게 되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김치는 밥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먹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저장성이 뛰어나며 비타민이 많이 보유되어 있고,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채소염장식품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김치는 효용성이 큰 필수식품이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 해도 김장만큼은 거르는 집이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김장김치는 겨울의 반 양식이라고까지 불렀다. 혹여 김장을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십시일반으로 김치를 나눠 먹던 훈훈한 풍속이 있었고, 예전엔 김치독에서 김치를 훔쳐가는 일도 종종 있었을 정도로 한국인의 김치 사랑은 각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배추를 나르고 씻어 소금물에 절여 건조시키고,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는 데, 일주일 내내 형제들이 모여 김장하는 모습이 솔찍이 부럽기만 했다. 저게 사람사는 재미 아닌가? 돼지 보쌈에 파전, 동동주를 마시며 20여명이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그립기만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2/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2310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사이 밥맛이 없을 때 어머니의 김장김치 맛이 생각난다. 김장을 한 뒷날은 우선 먹을 김치는 약간 싱겁게 양념을 하고 거기에는 참기름을 듬뿍 넣어 죽죽 찢은 김장 김치를 밥 위에 올려 주면 맛있게 먹던 순간들이 추억이 되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nbsp; &nbsp;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러한 김치를 저장하는 풍습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동국이상국집≫에 무를 소금에 절여 구동지에 대비한다는 구절이 있고, 고려시대에 채소가공품을 저장하는 요물고(料物庫)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김장에 들어가는 젓갈도 함경도·평안도 등 북부지방과 중부지방은 새우젓·조기젓이 많고, 경상도·전라도 등 남부지방은 멸치젓을 주로 사용한다. 이밖에 해산물을 즐기는 함경도지방에서는 생선(주로 명태)을 넣고, 평안도에서는 쇠고기 국물을 넣으며, 전라도에서는 찹쌀풀이나 쌀을 넣는다. 어머니도 황석어와 명태를 집어넣어 김치가 감칠 맛이 나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김치였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요즈음에는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식생활양식도 많이 변하여 김장이 겨울의 반 양식이라는 말이 퇴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주거양식도 많이 변하여 김치독을 땅에 묻는 일이 드물어졌고, 특히 도시일수록 김치독도 스티로폴이 들어간 이중벽의 플라스틱 김치독이 이용되기도 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누이가 해마다 내가 먹고 남을만큼 김장을 하여 나눠주고, 여기저기에서 받는 것만으로도 김장을 한 사람보다 풍성하지만 왜 배추를 심느냐고 묻는 사람에겐 한국인이기 때문이란 모호한 답변을 늘어 놓는다. 사실 김치 냉장고엔 작년 겨울에 얻어 온 김장이 그대로이다. 필요한 사람들에겐 김치찌게용으로 돌려주지만 그래도 내 텃밭을 비워 두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돈키호테라 해도 애써 변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nbsp;&nbsp;내가 하는 일들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밭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도 거의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냥 땀흘리면서 지난 세월을 반추하고 있을뿐이다.&nbsp;&nbsp;</div><div><br></div><div>그렇다고 미친 사람 취급이야 받지 않겠지만 또한 날 염려하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잘 알고 있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이상하게 취급하면 않된다. 사실인즉 그렇다. 나와같지 않으면 모두가 비정상적으로 취급하는 시대에서 때로는 돈키호테라고 불리워질지도 모르지만 눈에 콩깍지 씐 돈키호테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어떤 땐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풍차로 돌진할 때도 있다.&nbsp;&nbsp;</div><div><br></div><div>트렉터를 빌려 로타리를 치면 불과 십만원 정도면 텃밭 200여평 전체를 갈아 엎을 수 있는데도 난 호미 한자루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는 장애가 진즉 왔는데도 난 내 자신을 혹사시킨다. 난 내 글을 누가 보는지, 어떤 반응이 있는지를 한번도 의식해 본 일이 없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구상도 없이 내 마음이 가는대로 스케치하듯 졸필이지만 내 일상을 적고 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2/c11b37e1df35e938bb23472cf4b9e6b32312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결국 내 삶을 유턴시켜야 했던 멍울진 가슴을 진정시키기엔 이 순간이 필요하기에 무모한 짓을 하고 있을뿐이다. 인생도 허업, 목회도 허업이라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주님을 위한 헌신이야 생명을 쏟아부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퇴색되어 가는 사명감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nbsp;</div><div><br></div><div>수많은 사람과의 대접 받음을 누리고 가슴에 꽃 달고 단상에 앉고 박수도 받지만 다 바람과 같다. 이걸 알기까지 칠십년이 넘게 걸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최소한 나이 이른을 되어야 한다. 나 역시 조금있으면 내 것은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이란 걸 알게되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에 불과하다. 지인들도 내 텃밭을 보면 이젠 전문가가 되었다며 어쩜 이리 잘 키웠느냐며 부러워 한다.&nbsp;</div><div><br></div><div>그 거야말로 나에게는 虛業이다. 농사를 지어 수익을 올리는 것도 아니며 잘 키워 놓아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1/100도 안된다. 옥수수 토마토 고추 등을 심어 놓고도 매수자에게 그대로 다 주고 떠났다. 어차피 생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즐겼으니 알맹이는 내가 모두 가진셈이다.</div><div><br></div><div>아침마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오늘 하루도 지독한 열기속에 용캐도 살아 남으라고 덕담을 건네는 이 기분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이제는 그늘속으로 피하면 찜통 더위는 아니지만 자외선이 강한 노지에서 생명을 키우는 식물들을 보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쏟아진다. 모두가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데 나는 그렇게 악랄(?)하게 살질 못했다. 죽을 각오를 했더라면 더 많은 결과를 얻었을테지만 너무 한가롭게 살아 온 지난날의 미숙함이 나를 아프게 한다.</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2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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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2 Sep 2026 23:14:4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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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생 못볼꼴을 많이 보아서 시력이 나뻐진 거</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2/ae63f7a16b84685674cfab53adcb86450133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는 말을 골백번도 더 들었으면서도 성공 이후 교만하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고 깝족거리기도 했었을 것이다.&nbsp;<div><br></div><div>지나고 보니 정말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우쭐대기도 했었다.&nbsp;평생 갈 것처럼 우쭐대거나 작은 권력이랍시고 휘두르면 자신을 해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권력에 취해 사양길로 접어든 이들을 꾸짖는 격언은 고금동서에 많다. “으스대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하느니 권세란 한갓 봄밤의 꿈과 같다.” 일본 문학의 고전 ‘헤이케 이야기’ 첫머리에 나오는 대목이다.&nbsp;</div><div><br></div><div>아직 늙은이 축에도 못끼는 나이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겸손이나 겸허함 대신 의시댐이 전반적인 내 삶의 패턴이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도 쥐꼬리만한 걸 들어내길 좋아했었고, 낙오되지 않으려 혈안이 되어 아둥바둥하며 살아온 것 같다. 현역시절에도 백명 정도의 작은 교회를 만들어 진정한 사목이 무엇이라는 걸 실천하리라 마음먹었음에도 백명이 되니 200명 정도는 되어야 교회다운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목표치가 이뤄지니 자꾸만 욕심이 커져만 갔다.</div><div><br></div><div>나는 근래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큰스님의 다비식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장작더미를 쌓아놀고 '큰스님 불 들어 갑니다' 지켜보던 스님과 신자들이 일제히 따라 외쳤다. "큰 스님, 불 들어 갑니다∼." 법구를 품은 연꽃 장식의 연화대는 순식간에 불타올랐고 스님은 마침내 육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가 처음 떠나왔던 한줌 티끌로 돌아갔다.</div><div><br></div><div>누구라도 모두 그 길로 가는게 인생이다. 천년만년 살 것 처럼 착각을 하지만 순식간에 인간은 예외없이 불 들어 간다는 그 소리 듣는 날이 오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척하고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꼴볼견을 연출한다. 나는 조만간 인도 겐지스 강에 가서 다비식 장면을 직접 보려 마음먹었다. 여행을 그렇게 많이 해보았지만 인도는 아직 가보질 못했다. 더럽다는 선입견이 있어 동행자를 찾지 못했었는데 더 나일 먹기 전에 혼자서라도 4대문명의 강가를 거닐어 보려 작정했다.&nbsp;</div><div><br></div><div>요즘은 장례식장에 가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한다. 온나인으로 조문을 받고 문상객을 받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는데 이러다간 3일상도 사라지고 당일 초상을 치룰지도 모르는데 그게 무슨 대수인가? 분명한 것 하나는 누구에게 라도 불 들어가는 날이 온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불변이다. 그러니 잘난척하고 거드름 피우는 꼴볼견은 연출하지 말아야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2/abb73469d2ead197180fcf8c926dfd2301350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지금이 내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내 삶의 종착역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을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옛말에 "물길에는 배가 가장 좋고, 육로에는 수레가 최고"라는 말이 있다. 만약 배를 육로로 밀고가면 평생 걸려도 가지 못한다. 내 방식이 정통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가능하면 내 방식을 고수하려니 불편한 것쯤은 참아야 한다.&nbsp;</div><div><br></div><div>남이 장에 가니 따라 나서는 사람은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없다. 나중에 번뜻한 집을 가질 수 있을런진 모르지만 아직까진 이만하면 훌륭하단 생각을 가져 본다. 하꼬방 수준이지만 손님을 초대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형색이 초라하단 소릴 듣기 싫으면 외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촌놈 소릴 듣기 싫으면 도시에 안나가면 될 일이다.&nbsp;</div><div><br></div><div>뒤늦게 ‘도시의 흉년’을 경험한 세대는 도시를 탈출하고 싶어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다. 전원생활은 풀과의 전쟁이라고 넌저리를 내는 사람이라면 그냥 도시에 사는게 현명하다. 직장생활, 자녀 교육 등에 발목이 잡혀 마치 거미줄에 달린 잠자리처럼 발버둥치지만 그러다가 삶의 허무를 이야기한다.&nbsp;</div><div><br></div><div>요컨대 어디 먼 곳으로 떠나서 숲 속을 걷고 새벽 안개와 더불어 명상을 하고 청신한 가을 기운을 쐬는 것을 ‘힐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마치고 돌아온 후의 삶에 뭔가 작은 변화의 기미라도 있어야 할 테지만, 삶이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간단한 것이 못 된다. 한 인간이 완벽하게 살려고 과잉 욕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행위다.&nbsp;</div><div><br></div><div>완벽하게 살려는 강박적 자세가 인간을 더 험하고 냉정하게 만든다.&nbsp;완전하지 못함도 능력이다. 아쉬울 것이 있어야 겸손하고, 겸손해야 과잉 욕심을 내지 않는다. 완전한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처음엔 그렇게 근사하게 보이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시시한 것들뿐이고, 반대로 하찮아 보이던 것들도 눈에 익숙해지면 멋있어 보이는 법이다.&nbsp;</div><div><br></div><div>내 주변을 보노라면 애들은 자고 나면 예쁜 짓을 하는데, 늙은이는 자고 나면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는 말에 수긍이 갈 정도로 찬밥들이 되어 간다.&nbsp;나이 덜 먹은 사람의 추태도 보기 싫지만 늙은이의 추태는 더 보기 싫은 법이다. 그런데 근래에 半壽를 넘어 望九를 바라보는 늙은이가 날선 혓바닥을 치켜들고 기세등등하게 날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nbsp;&nbsp;앞으로 내딛을 날보다 등 뒤에서 이미 굳어버린 날들이 많은 이가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nbsp;</div><div><br></div><div>나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낡음'이 찾아 왔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이는 저절로 든다. 그러나 얼마나 잘 늙는 가는 또 다른 문제다. "어떻게 늙어야 할지 아는 것. 그것은 지혜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고 삶의 기술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다." 프레데릭 아미엘의 말이다. 노년이라고 하면 기력의 쇠진, 병치레와 허약만을 떠올리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nbsp;</div><div><br></div><div>고령이 되어도 긍정적 가능성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성장, 성숙 완성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잘 늙는다는 것은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판단이 너그러워진다는 것뿐 아니라 온 존재 자체로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가끔&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딸들이 전화하여 아무일없느냐고 추궁한다. 아무일이 없는 곳은 공동묘지뿐이다. 세상을 사는데 아무일이 없을리가 없지만 아버지의 건재함을 확인하고 싶은가 보다.&nbsp;</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이를 먹으니 이젠 꺼꾸로 자식들에게 염려의 대상이 되어 간다는 생각에 씁쓰레함을 느끼게 된다. 나이를 한살 두살 먹어감에 따라 절감하는 것은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가졌던 것을 빼앗아 간다. 그것이 힘이든, 의지든, 창의성이든, 기회든 내게 허용된 나의 재산을 하나 둘씩 앗아가며, 빈털털이로 만들어 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9/02/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01364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젊었을 때는 어휘가 풍요해서, 필요한 때에는 적재적소에 적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 순발력 있게 튀어나와,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고급스런 지적영역의 표현들 까지도 거의 막힘이 없었는데, 이제는 무슨 표현을 하려면, 마땅한 단어가 머릿속 에서만 빙빙 돌 뿐 도대체 떠오르지를 않는다.&nbsp;&nbsp;참, 황당한 순간이며 내가 늙어 가는가? 하는 나를 확인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동차 면허를 갱신할 날짜가 다가 오고 있다. 과거엔 면허 기간을 10년 주었는데 이젠 나일먹으니 5년으로 줄었고, 운전할 수 있는가를 철저히 따지는가 본데 눈이 침침하고 어두워 시력검사를 통과하려면 조만간 백내장 수술을 하려 마음먹었다. 평생 못볼꼴을 많이 보아서 시력이 나뻐진 거라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직 하늘이 어둑하긴 하지만 몇일간 비가 내리더니 그칠 모양이다. 다른 작물은 모두 심었지만 약간 남은 터에 김장 배추를 심으려 모종을 부탁해 놓았다. 틀림없이 벌레들의 만찬장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무 젓가락으로 벌레를 매일 잡아낼 순 없기에 반타작만 하려 마음먹었다. 이사는 마쳤지만 아직 연장이나 건축 자재를 다 가져오질 못했기에 구매자가 다음주 수요일 이사오기 전에 모두 옮겨와야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경기도 고양시에서 이사오는 모양인데 퇴직하고 고향을 찾는 분이기에 가능하면 불편하지 않도록 선처를 해주려 마음먹었고 도움을 주려 한다. 건축하시는 분이기에 직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여 여러가지를 부탁하는데 나도 내 인부들을 사용하려면 아무리 사소한 일라도 일당을 주어야하는데 일단 귀촌한다는 걸 감안하여 도와주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부모님 산소 벌초해 드리는 것에서 부터 내 집 일까지 인부들이 얼씬거리면 모두 인건비가 소요되기에 일부러 텃밭을 일궈 준다는데도 사양했다. 20kg짜리 거름더미를 나르면서 허리에 약간 무리가 갔지만 30만원을 절약했고, 대파 쪽파 무우 부추 시금치 아욱 등을 손수 심으면서 또 몇십만원을 절약했다. 이 정도는 눈깜빡할 사이에 해결했는데 겨우 20키로 거름더미를 옮기면서 끙끙대다니.....</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2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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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2 Sep 2026 01:38:1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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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일'이 얼마만큼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에 올인하다 보면</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8/31/194a56e330c6bf3197def37d5a48653f23192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지난 주말부터 가을 장마가 지속되면서 약 300mm가 넘는 물폭탄을 퍼부었다. 오늘도 날이 화창하지 않는 걸로 보아 조금은 더 내릴 모양인데 텃밭엔 아직 물이 흥건하다.</div><div><br></div><div>아침 나절엔 시금치와 아욱을 심으려 씨앗을 구입해 놓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워낙 많이 비가 내린 탓으로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지만 시급을 다투는 일은 아니기에 여유를 부리며 게으름을 펴고 있다.&nbsp;</div><div><br></div><div>인부들이 거름을 텃밭까지 날라주겠다는데 이 정도는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거절했더니 거름을 나르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20kg 정도에 불과한데 이건 내 한계의 범위를 넘는 거란 걸 실감하고 있다. 어깨에 짊어지자니 거름냄세가 온몸에 배일 것 같고 애인을 보듬듯 양팔로 껴안고 오리 걸음으로 걷다보면 불과 2~30 미터임에도 아득하게 여겨질 정도로 숨이 차고 하체가 흔들린다.</div><div><br></div><div>그래도 농약도 살포하지 않는데 거름없인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에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하루에 서너포씩 옮겨 이것 저것을 심고 있다. 비가 내린 까닭인지 대파도 자리를 잡은듯하고 쪽파와 부추도 싹을 내어 나를 반기는듯 하다. 아마도 이 삼일 후엔 무우도 앙증맞은 모습을 들어낼게 뻔하다. 처서가 지났기에 풀이 자라나는 속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매일 텃밭을 바라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이만한 소일거리도 찾아보기 어려울듯 하다.&nbsp;</div><div><br></div><div>전국적인 현상이겠지만 이 곳도 건축 경기가 바닥이라 공사를 하는 시공업체들이 몸을 사리고 있어 일자리가 없어 외국 근로자들이 난리이다. 내가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군산에 다섯개의 전원주택을 지은 이후 거의 3개월 가까히 쉬고 있으니 인부들이 나를 바라보며 언제 다시 시작할지를 물어 오는데 분양이 안되는데 자꾸 일을 벌릴 수 없기에 개점 휴업 상태로 관망할뿐 움직이기가 어렵다.&nbsp;</div><div><br></div><div>가끔 창고나 농막을 지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지만 시공할 수록 적자가 늘어나기에 인부들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손해를 보며 시공할 순 없기에 거절하고 있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건축 자재는 물론 인건비가 상승하여 전엔 평당 400만원도 가능했던 것이 500만원을 받아도 적자이니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움직이기가 어렵다.&nbsp;</div><div><br></div><div>이런 때 농삿일이 없었다면 더 견디기 어려웠을텐데 소일거리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친구들을 만나 한바탕 떠들면 스트레스가 풀릴 거 같아도 나는 정반대이다. 번잡한 걸 싫어하기에 차라리 호미를 잡고 텃밭을 서성일 때가 더 즐겁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 든다. 괜히 영양가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구설수에 오르고 한심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기에 스스로 차단벽을 세운다.&nbsp; &nbsp;&nbsp;</div><div><br></div><div>사람은 보통 하루에 5만 마디의 말을 한다는데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창 19장 8~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라고 하면서 폭언을 하고 있다. 당시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상당한 나이였을 것인데 소돔성 사람들은 '이 놈'이라고 호칭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8/31/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2321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애당초 롯이 머물 자리는 소돔이 아니었지만 삼촌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돔성을 택하면서 결국 말할 수 없는 수모와 가정의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다. 성서에 의하면 소돔성이 멸망당한 이유가 동성애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동성애를 ‘소돔이즘’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성한 결혼의 질서를 깨틀인 것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단 말이다.&nbsp;</div><div><br></div><div>오늘 우리는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볼 때 너무나도 많은 도덕적 부패와 윤리적 타락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그 중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슈가 있다면 동성애 문제다.&nbsp;</div><div><br></div><div>서로 쉬쉬하는 가운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동성애의 문제는 이미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버리고 말았다. 롯이 소돔성에 살면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아 끝내 삼촌 아브라함을 등지고 살아야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소돔성이 불타며 겨우 알거지가 되어 탈출했다는 소문을 들었을테지만 아브라함은 끝내 롯을 찾지 않았다.&nbsp;</div><div><br></div><div><div>소돔성을 멸하러 가는 천사에게 간청하기를 반복하였고, 몇번은 롯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소돔성에서 나온 이후엔 이들의 교류가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롯의 소문이야 들었겠지만 그를 받아들이진 않았다. 이미 소돔성에 길들여져 있기에 삼촌 아브라함은 롯과의 관계를 단절했던 것은 아니었을까?&nbsp;&nbsp;</div><div><br></div><div>사람사는 곳엔 항상 루머(rumor)가 회자된다. 소문이란 그 내용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저런 소릴 안듣고 살려면 무인도에나 가야할까 남말하기 좋아하는 군상은 어디나 있기 마현이다. 거의 같은 의미이지만, 거짓이라는 쪽에 무게를 둔 표현으로 뜬소문, 루머(rumor), 유언비어, 풍문이라는 말도 있다. 심리학자 니콜라스 디폰조와 프라산트 보르디아는 소문을 '어떤 집단이 모호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설명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이라고 설명하였다. 심리학자 알포트와 포스트만은 소문(rumor)의 강도는 그 내용의 중요성(impotance)과 불확실성(ambiguity, 모호함)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였다.&nbsp;</div><div><br></div><div>군종사관 제 38기 전우들의 카톡방이 생겼다. 예성 총회장을 지낸 고등학교 동기인 조일구목사가 초청하여 입장했는데 은퇴후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소문을 퍼트렸는가 보다. 루머(rumor)라고 애써 변명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나마 객사했다는 소문이 안나온 것만해도 감사한 일이다. 내 건재함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라도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매일 새롭게 한다.&nbsp;</div><div><br></div><div>이제 항암치료도 거의 마쳤고 병원에서 나온 이후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여자는 얼굴로 늙는다"라는 영국 속담 처럼 정말 마음으로 늙는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그 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끼니 때가 되면 오늘은 뭘 먹을까? 입맛이 있을 땐 아무 것이나 없어서 못먹었지만 근래는 진수성찬을 받고도 물말아 먹는 지경이니 끼니가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nbsp;</div><div><br></div><div>늙으며 식욕은 줄고 탐욕은 늘어 난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 탈무드(Talmud)를 보면 늙는 것을 재촉하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tremblewith fear), 노여움(anger), 자손(子孫-chil-dren), 악처(惡妻-bad wife)"라고 한다. 나일먹으면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또한 공연한 일에 버럭질을 하게되고, 자식문제, 남성화되는 아내 등이 늙음을 제촉한다. 좀더 젊게 살려면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순수를 읽어버리고 고정관념에 휩싸여 남을 무시하려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왠지 뻔뻔스러워지고 우연한 행운이나 바라고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심리가 발동된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8/31/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3240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가능하면 가지지 않으려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남을 섬기기보다는 대우를 받으려는 생각만 든다면 늙어 간다는 증거일 것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누구나 숨어서 많은 눈물을 삼키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은 우리 삶에서 일상적(日常的)인 것이며 상처(傷處)위에 상처를, 아픈 기억 속에 가슴 아픈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현존(現存)의 감정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설마 내가 이렇게 늙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심정적으로는 젊은이 못지 않지만 어느새 목이 메는 가운데 지난 세월(歲月)의 거품이 사라지고 아픈 추억(追憶)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현실적(現實的)인 꿈도 이상적(理想的)인 꿈도 다 허사(虛事)가 된 듯하다. 후회(後悔)나 회한(悔恨)이 아니라, 그저 매순간(瞬間)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늙어가면서 느끼는 다양(多樣)한 상실감(喪失感) 때문이리라. 열정(熱情)의 세월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빈 가슴이 아닐 수 없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 성격상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120%라고 믿고 있다. 발표력이 부족하고 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내길 꺼려하는 성격이기에 친구가 많지 않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기에 나를 방임시키지 않으려고 일을 만들어 내 심신을 고달프게 만든다. 뭔가라도 해야 내 존재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채근한다. 어차피 고민하지 않고 살 순 없지만 가능하면 빈 공간에 무엇인가를 채우려 의도적으로 애쓰는 것은 싸구려 감상에 빠져 나를 파괴시킬까봐 두려워 내 인계점을 넘나들며 일을 하고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 친구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보내?” 하고 물으면 그 답(答)이 궁색(窮塞)하다. ”글쎄 왜 사는지?“ 하고 혀를 차며 쓸쓸해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나온 삶을 서로 나누다 보면 말라붙은 주름살속에서 어려웠던 삶을 헤아릴 수 있다. 만나는 노인들 모습에서 미세(微細)한 얼굴색깔, 근육상태(筋肉狀態), 고뇌(苦惱)와 고통, 기쁨과 슬픔이 중첩(重疊)되어 있음을 발견(發見)하게 된다. 정도의 크기는 약간 다르지만 나일먹으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지인들이 많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 전문직에 종사했던 친구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과거의 향수병에 시달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화려했던 시절이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키워 내는 것같다. 그래서 '내 사전에는 왕년이란 말이 없다'는 슬로건을 마음속에 새겨 놓았다. 내 '어제'는 모두 지워 버리기로 작정했다. 나에게 '내일'이 얼마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에 올인하다 보면 웃기는 짬뽕이란 소린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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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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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31 Aug 2026 23:25:5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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