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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안부두</title>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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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내 달란트가 무엇이었던가?</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6/d43286be4167e7c1c55c941256ffce001306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 벌써 한해의 절반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는 생각을 종종한다.</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기능하면 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백 미터 경주에서 가진 힘을 다 해 뛴 사람이 4등을 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요새는 누구나 제각기 단거리 선수가 되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고들 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산다는 것은 곧 뛰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어디에다 채찍을 가하고 무엇을 뉘우쳐야 한다는 말인가.&nbsp;</span><span style="color: rgb(0, 0, 0);">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뛰었던가.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잃을 것도 없는 공백한 두 손, 이것은 어쩌면 자유를 의미한 것이며 이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주는 의도가 아닐까.</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한 무명의 수도승의 일기를 읽었다. "한 가지 작은 일에서 다른 한 가지 일로 몸과 마음을 회전시킬 때도 적잖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편력과 정학을 갈망하는 속성을 가진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체념하고 끊임없이 포기하는 생활의 연속 속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아주 떠나버리는 연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빈손이 되는 연습을 조금씩 해 왔다"는 간결하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산문이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세상이 불안할 때 가진 것을 손에 움켜쥐느라고 안간힘 할 것이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펴고 갈 것은 가라고, 놓아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빈손에는 평화와 자유가 가득 담겨 질 수도 있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고독을 벗하며 적적함으로 동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선천적(?)으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 보질 못했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전 대한민국이 굶어야 했던 보릿고개 끝자락에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추억이 남아있을뿐 고통스러웠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시인 도종환의 자서전적 고백에 기를 기우려 보기도 한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 style="font-size: 16px;"><b style="font-weight: bold;">"내가 울면서 시를 쓰지 않으면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b>는 말엔 내가 울면서 설교하지 않으면 남도 울면서 설교를 듣지 않는다는 뉴앙스가 풍기고 있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울면서 설교를 준비해 보질 못했고 가끔 격한 감정에 눈물을 보인 적은 있었지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근처에도 못가는 삶을 살았다. 철학적이며 사변적(思辨的)인 설교가 대부분이었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일주일 내내 주님의 양무리를 위해 가슴을 쥐어 뜯는 심정으로 울면서 설교 준비를 할 것이고, 강단에 오르면 피 토하는 심정으로 사자후를 외치겠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일반 유행가 가수에게도 히트곡이란게 있다. 몇십년 동안 대중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노래가 있는 데, 나에게는 히트설교(?)가 없다. 그게 나만의 비애였던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열악한 시골교회의 사정엔 아랑곳없이 교회 앞 마당에 고급 세단을 세워 놓고도 교인들이 교회를 드나들 때 이 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고민해 보지 않는 목회자들이 있다. 울면서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 교인만 울리는 교역자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가 가슴으로 울면 교인들은 감동의 웃음으로 교회를 떠나며 힘을 얻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 간다. 반면 목회자가 웃으면 교인들은 눈물을 지으며 또 험한 세상에 나가 한주간을 어떻게 살지를 걱정하게 된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 style="font-size: 16px;"><span style="font-size: medium;">처음 시골에 정착하고 시(詩)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물들과 사물들의 여행이나 움직임에 무척 신기함을 느끼고 눈길이 머물 때가 많았다. 겨울이 찾아오는 시점, 철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데, 그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span><br style="font-size: medium;"><br style="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요즘 작은 미물 하나를 보아도 예사롭게 보질 않는다. 심지어 무더운 여름 날 루드베키아 그늘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느린 여행을 한참동안 따라가 보기도 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의 행로나 심지어는 아직 땔감을 이용하여 밥을 짓는 시골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따라 시선을 따라갈 때도 종종있다.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이지만 나도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삶의 여로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 슬퍼진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그냥 거기에 있을 따름이고 주변의 모든 것은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소리 없이 떠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니,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착색된 풍선과도 같은 인생이 아닌가? 빨간색, 파란색으로 물들여진 물감일 뿐이다. 겉으로는 형형색색의 풍선이지만 바늘만 대면 그대로 터져버릴 순식간의 존재일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구한다. 내려 놓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얻으려고만 한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현역으로 목회하던 시절&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정말 어리석게 살아왔다. 박정희 정권의 삼선 개헌을 반대하며 최류탄을 마시며 화염병을 던지던 투사는 온데 간데없고 안 내려 놓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독재정권과 차원이 다른 것인가? 뭐가 다른가. 교인 하나 안빼앗기려고 혈안이 되었고, 목회자의 아성을 지키려고 안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기를 열망했고, 아장이는 걸음마로 힘겨워 하는 주변의 동역자들에게 아예 눈을 감기 일수였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교회가 전국 랭킹 몇위냐에 혈안이 되었었고 파이를 키우기에 열중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과연 이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목회자가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난 분명 아니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를 가지고 싶어했고, 멸시 천대 십자가가 나에게 찾아올까봐 지레 겁을 먹고 살아왔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6/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307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지금도 모든걸 내려놓자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한껏 욕심을 부리는 세속적인 근성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단출하게 살자고 시골로 내려왔지만 어느새 살림도구가 제법 많이 늘었다. 밥그릇도 몇벌 생겼고, 숟가락 젖가락도 십여벌은 된다. 라면 끓일 냄비 하나 달랑 가지고 내려왔지만 지금은 전자 밥통을 비롯해 없는게 없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물론 내가 산 건 별로없다. 내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이 자기들이 불편하니 가져다 놓은게 전부이지만 하여간 살림이 엄청 불어났다. 근사한 커피 잔은 없지만 머그 잔도 여섯개나 준비되었다. 손님이 열명이면 나머진 종이 컵에 커피를 마셔야 하지만 대장부 살림이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요즘 충청도 공주에 가서 한동안 은퇴목사님이 기거할 집을 짓고 있다. 고향이기도 하지만 막상 낙향하겠다는 결심을 들었을 떄 가능하면 최소 경비로 살만한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고 작정했다. 첩첩산중이긴 하지만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떤 늙은이(?)는 나일 먹을 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갑짝스런 일을 만나면 낭패라는 생각에서 하는 소린가 본 데, 갑짝스런 일을 만나면 하늘나라 가면 그만이지 자식들 고단하게 만들고 도시를 혼잡하게 만드는 건 노인네들이 할 짓이 아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이 소문을 들은 모 은퇴목사 한분이 내일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시골에 월세집을 알아 봐 달라는데 빈집은 많지만 월세집이 있을리만무하지만 일단 만나보려 한다. 짐작하건데, 시골에 집하나 지어 달라는 말같은데 그럴 능력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럴 여유가 있지 못하기에 입장이 곤란하지만 언젠가는 낙향하는 분들을 위해 내 달란트를 활용했으면 좋겠다.&nbsp;&nbsp;</span></p><div><span style="font-size: 16px;"><br></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div><div><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div><div><font color="#000000"><br></font></div><div><font color="#000000"><br></font></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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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6 May 2026 13:08:1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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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여름의 시작 입하'(入夏)</title>
			<description><![CDATA[<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5/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41536.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여름의 문턱에 들어 선다는 절기상 입하</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入夏)</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자 어린이날이다. 아직은 아침 저녁엔 쌀쌀하지만 한낮은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한다.&nbsp;</span><font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들녁엔 모내기철을 앞두고 논에 물이 가득하여 농부들의 손이 바뻐지게 생겼다.&nbsp;</span></font><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span></div><div><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동네마다 종묘장이 있어 개인적으로 볍씨를 뿌리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 입하 무렵 비가 내리면 농부들이 엄청 좋아했었다.&nbsp;</span>그래서인지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데,&nbsp;옛날 재래종 벼로 이모작을 하던 시절에는 한창 못자리를 하므로 바람이 불면 씨나락이 몰리게&nbsp;되는데,&nbsp;이때 못자리 물을 빼서 피해를 방지하라는 뜻이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식물이 성장하는 시기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이지만&nbsp;&nbsp;유독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nbsp;</span></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그래서 봄철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라고&nbsp;하는데, 이 무렵을 '보릿고개'라고 하고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목숨을 지탱하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다른 식물들이 모두 소생하는데 홀로 푸르름을 잃는 대나무를 일컬어 어머니를 회상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낌없이 모두를 내어주고 혼자 힘겨워하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 보릿고개는 가혹한 계절이지만 그걸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어버이들이 있었기에 새 죽순이 자랄 수 있었을게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본격적인 영농의 계절이라 그런지 겨우내 사용하지 않던 농기계들이 종힁무진 한다. 남녁의 성급한 곳은 이미 모내기가 시작되었고 촌노들이 대부분이지만 모두 들녁으로 나가 해질 무렵까지 농삿일에 매달린다. 건들거리는 사람이라고는 눈씻고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도 모두 소환당하는 시기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그 당시&nbsp;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하여 끔찍했었다. 나의 모친도&nbsp;오남매를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 내려고 안간힘을 쏟으셨을 것이고, 총 8남매를 낳으셨으니 평생 임신 수유 양육을 반복하셨을 것이다. 가족이 많다 보니 싸구려 옷한벌 얻어 입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nbsp;어려웠을&nbsp;시절이라 옷을 대물림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class="content" style="padding: 20px 0px; line-height: 25.6px;"><font color="#0021b0">밤이되면 희미한 전등 아래에서 오남매의 옷을 수선하느라 바쁘게 재봉틀 돌아가는 소릴 들어야했다. 양말도 거의 꼬매지 않은게 없었다. 아버지 것만 따로 구별되어 있었지 오남매는 덜 꼬맨 걸 차지하려 눈치작전이 벌어졌다. 식사 자리에 앉으면 반찬 투정같은 건 아예 존재하질 않았다. 먹다죽은 귀신은 떼깔이 좋다고&nbsp;배터져 죽는게 소원일 정도였다.&nbsp;&nbsp;&nbsp;&nbsp;&nbsp;</font></div><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추억의 자리에 서있던 풋풋한 청년은 없고 옛일을 회상하는 노년의 시간이 멈칫멈칫 해거름녘, 긴 그림자로 서있다. 그립다. 화폭속의 한 장면 같은 유년의 시간들. 그 시절 그리운 얼굴들은 흐린 기억 속에 저장되고, 그 시간들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열매를 내어주 듯, 우리도 그 시간들을 아름아름 만들어 가고 있다.</font></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자연이 일구어내는 결과물들 앞에서면, 언제나 오묘하고 신비하다. 시작과 끝의 무한 반복은 늘 새롭다. 계절이 오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변화되는 것 같지만 변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에 의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오직 변한 건 인간들뿐이고 내 모습만 바뀌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나는 지금을 중요시한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리 살이 빠졌느냐며 몸관리 좀 하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지금이 가장 숭고(?)한 시간이다.&nbsp;오늘 하루를 살면서 문득 스치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소중히 여기며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 안에서 고운 빛깔의 교훈과 감동을 찾아낼 수 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황금보다 소중하고, 소금보다 소중한 '금'이 바로 '지금'이라고 한다. 바로 지금 떠오르는 것을 적어보면 그것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험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온누리에 퍼져나갈 것이다. 이것은 어디서 얻어야하거나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숙고하는 삶을 다짐하는 내 자신이 주인공일 거라 믿고 있다.&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5/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1416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전에는 나도 꽁짜를 무척 좋아했다. 명절이면 선물이 쌓이는 걸 성공의 척도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짜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누굴 의지하거나 남 탓을 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열심히 살고 싶을뿐이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촌노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촌노들은 지독한 가난속에서도 자식들을 모두 키워 내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33, 176);">지금은 텅빈 집들이 곳곳에 남아 흉가로 변한 집들이 마을마다 몇개씩 있지만 그거야말로 위대한 기적의 산실이었을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나는 시골 사람들은 무식하고 거칠다는 편견을 버린지 오래이다. 모두 위대한 부모님들이다. 자기 몸 하나 운신하기도 어렵지만 아직도 허리 한번 펴질 못하고 일에 내몰리고 있다. 내가 죽겠다고 한숨을 토해낼 때마다 노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저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데 엄살이 너무 심하단 생각이 든다.&nbsp;농사를 짓지 않아도 기초년금이나 경로당에 지원되는 금액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아직 농기구를 손에서 놓질 못한다. 수입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농사일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하루종일 논밭에서 일하는 중이다. 해가 지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오는게 일상이다.&nbsp;</span></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늦은 저녁을 먹고 수요일 밤엔 교회도 가야 한다. 교횔 가봐야 꾸벅꾸벅 졸다가 오지만 한번이라도 빠지면 마치 불경죄라도 지은 것처럼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설교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고 탓해 본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 들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주인의 시중을 들다가 뒤늦게 예배에 참석한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던 사건을 들먹거려선 않된다고 본다.&nbsp; &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나는 시골에서 유년을 보냈다. 땅강아지처럼 흙속에서 뛰놀며 야생적으로 자랐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면서 태어난 세대이기에 가난의 대물림이 여전했고 폭탄을 장난감처럼 매만지던 어린 시절이었다. 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불구가 된 사람들이 동네마다 여럿이었고,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흉허물이 거의 없었던 시절을 보냈었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모양이다. 오늘은 충남 공주에 가서 박목사님네 신축건물의 싱크대 설치와 붙박이 장 설치, 실리콘 작업, 그리고 화장실 장식장 등의 공사를 하였다. 잠시 짬을 내어 공주 시내에 나가 공산성과 무령왕릉을 돌아 보았다. 중국인 현장소장은 아직 진시황제의 릉을 가보지 못해서인지 신기해 하는 모습을 보니 우물안 개구리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이면서도 서안은 물론 아직 장가계도 가보지 못했다니 완전 촌놈이다.</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공산성에서 여유롭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벌써 입하이고 조금있으면 입추 입동이 될 거란 생각에 세월이 참 빠르단 생각에 잠겨 보았다. 내일은 인부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옥수수와 토마토 오이 가지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적기인셈인데 이 땐 아무리 초보라 해도 적당히만 심으면 모두가 잘 자라는 시기이다.&nbsp;</span></div><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밤의 고요는 향수 한토박을 끄집어 낸다. 오늘이 입하이지만 올 여름은 조금 힘들게 보낼 것 같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산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면서 이 정도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 욕먹을게 뻔하기에 여름의 한복판을 뚜벅 걸음으로 걷기로 했다. 더위따윈 이미 내 안중에 없다.&nbsp;</font></div></div><div><font color="#0021b0">&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div><font color="#0021b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nbsp;</font></span></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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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5 May 2026 14:18:4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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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title>
			<description><![CDATA[<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1/3b9e0715a7da28d08a2ded4b2f9136db1335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시골에 정착하고 싶다는 사람들 중엔 나에게 과거에 이런 일을 해 보았느냐고 묻는다. 처음&nbsp;귀촌하기로 작정했을 때는 공기좋은 곳에서&nbsp;여유작작하면서 에너지를 충전받으려 했던게 사실이지만 시골생활이 그렇게 눅눅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정착 초기부터 느껴졌고, 차라리 그것이 몸은 고달프지만 정신 건강엔 더없이 좋다는 걸 알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보다 더 고독한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있으며, 나보다 더 괴로운 사람이 천지 사방에 한둘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태어나면서 뇌성마비에 걸린 딸을 키우면서 말못할 괴로움속에 평생을 사는 친구가 있다. 하나 둘이 아니다. 후배중에도 뇌성마비에 걸린 아들 때문에 전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했던 후배도 있다. 아버지는 직장 생활을 하니 그렇다치고,&nbsp;불구 자식을 둔 어머니는 평생동안 외출한번 해보질 못하고 30년동안을 갇혀 살다시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한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죽지 못 해 사는 분들이다. 나 역시 가진 것이 미천하고 자랑할만한 것이 없어 죽을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 비하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나이 서른이 다된 자식이 사지가 뒤틀어지고 방안에만 누어 있다면 그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차라리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너무 감사를 잊고 살고 있다. 남에게 빌어 먹을 입만 가지고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나는 내 전생애를 통털어 몇번의 위기의 순간을 맛보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겨 왔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건널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아 고민이 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연한 기회에 癌이란 진단을 받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담임목사님에게도 수술 당일날까지 병명을 말하지 않았다. 수술 날짜도 일체 비밀에 붙혔다. 아내와 딸들은 꼭 알아야 했기에 병원으로 불러 들였을뿐 소장에게도 일체 함구령을 내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수술 날짜를 잡고도 이미 오래전 매매한 집 마당에 콘크릿 타설작업을 해달라고 졸라 대는 바람에 입원 전날까지 수백만원을 들여 공사를 마쳐주고 입원하는 당일날 현장에 들려 소장에게 일을 지시해 놓고 혼자서 뚜벅 걸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소장은 날 실성한 사람 취급을 한다. 본인이 죽게 생겼는데 안해줘도 될일을 자원하는게 이해되지 않는가 보다. 사실은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른다. 그냥 그게 마음이 편하기에 결단했을뿐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만 내 안에 암덩어리를 키운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이미 지름이 7cm로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위급 지경이었지만 군산에 공사를 수주해 진행하고 있기에 일단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공정을 서둘러 끝마무리를 하고 수술을 받으려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로봇 수술의 대가로 정평이 난 교수의 집도로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것이 조그마한 위안이었지만 생사여탈이 사람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기에 마취가 시작되기 전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내 몸안에 암덩이가 오래전 부터 자라고 있었지만 그걸 모르고 기고만장한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수술실로 향하면서 아마도 속울음을 지으며 따르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3/06/04/e19a996d730696974589af61b92a8bab13314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느 누구도 일만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구와 특성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남자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에 이끌려 생활해 왔는지를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 역시 한동안 건강상 시골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일단 두려운 마음이 들고 강단에서 반평생을 보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거란 선입견이 강한 상태로 반거충이 시간을 보냈다. 혹자는, 시골생활에 정착하기 위해 몇년동안 준비를 했느냐고 묻지만 무작정 도시를 탈출했고, 인간 군상을 피해 숨고 싶은 생각뿐 미래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무모한 도전을 한 사람이란 말이 잘 믿겨지질 않는 모양이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사실이 그랬다. 자연인으로 살고 싶지만 아예 자연 자체를 모르기에 더 공부를 많이 했고, 남들보다 아는게 없기에 더욱 열심히 몸부림을 치고 있을뿐이었다.&nbsp;아직도 나는&nbsp;슬픈 일에 슬퍼하지 못하고, 울음을 참는 경우가 많다. 자연인으로 살고자 하지만 몸에 밴 관습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nbsp;</div><div><br></div><div>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돕고, 소리내서 울음으로써 고통을 줄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줄어들게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것을 참게되면서 속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그로인해서 건강을 해치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약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현재 격고있는 괴로움과 상황을 가족들에게 터놓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끙끙대다보니 이러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괴로움 등을 혼자서 감당하고 해결하려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 역시 엄청나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div>마침내 오일만에 라오스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던가? 영원한 소년으로 살았던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는 점을 실천하며 살았고 카우틸랴는 '동행 없이 여행하지 말라.'고 했으며&nbsp;독일이 낳은 천재적 작곡가 바그너는 '방랑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말을 남겼다.&nbsp;</div><div><br></div><div>그래서 일까. 나는 가끔 여행의 충동에 사로잡혀 짐을&nbsp;싸는 버릇이 있지만, 물론 '호기심이란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여행을 떠나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자 고울드 스미스의 말을 머리에 담은 채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잠시 후에 만날 이국땅의 정취를 상상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nbsp;</div><div><br></div><div>내 지론인즉, 여행이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 가면 늦는다는 걸 늘상 강조한다. 난 돈과 시간적&nbsp;여유가 있어 여행을 떠난 본 적이 없다. 또한 여행 성수기에 떠난 기억이 별로 없다. 일행에게 민폐가 되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가 보려고 작정했었다.&nbsp;지금쯤 일행들 모두는 밀린 잠에 빠져 들었을 것이다. 난 간밤에 야간 비행을 하면서 갈 때처럼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로 뜬 눈으로 깊은 고민을 하며 돌아왔다. 인간 군상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크기에 마음 아파하는지도 모르겠다.&nbsp;</div></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1/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13365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숨가프게 보낸 지난 몇일 동안의 일들로 공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 스스로 그 문제를 지상명령처럼 받아들이고 나약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 도리질을 한다.&nbsp;</div><div><br></div><div>내 문제는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게 아니기에 주님꼐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믿고 내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내가 사투를 벌리고 있는 이 곳 시골은 과거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곳이고, 내가 흙을 매만지며 살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건축일도 마찮가지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척박한 환경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사치스런 발상이라 생각한지 오래이다. 오히려 극한(極限)의 환경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걸 기회로 삼기로 했기에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박하지도 않다.&nbsp;</div><div><br></div><div>나는&nbsp;『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신봉했다.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니 그것은 무지를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식과 예민한 안목 그리고 높은 인격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으며,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연출과 적당히 예의 바른 미소,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짧고 인상적인 멘트 하나면,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nbsp;</div><div><br></div></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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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01 May 2026 13:38:0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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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aos VIentien으로 가는 길</title>
			<description><![CDATA[<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6/6453608f6e361aea9e96e308d3bf89fb1242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오늘밤 라오스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도 이번이 여섯번째 인 것 같은데 아직 라오스를 가보지 않은 빛고을 박목사님과 담임목사 그리고 임석빈 형을 위해 여행지를 정했지만 여행 매니아인 당진 박목사님은 이미 라오스를 다녀 온 것 같은데 우리 여행팀에서 단 한명이라도 안가본 곳이 있다면 모두가 어게인에 인색하지 않기에 우기가 시작되기전 날짜를 잡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 늦게 알려지기 시작한 라오스는 미얀마와 함께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사람들, 여행자들에게 가장 친절한 나라로 극찬을 받은 곳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다정한 웃음을 보여주는 라오스 사람들. 그들이 있어 여행동안 행복했고&nbsp;라오스는 한번 여행으로 끝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메콩 강과 접한 비안티안(Vientiane)은 강 건너 태국 취북단의 소도시인 농카이보다 작게 느껴지는 도시다. 한 나라의 수도이지만 지방 소도시 느낌이 더 강하다. 높은 건물도 없고, 작은 도시이다. 수도인 비엔티안은 불교의 나라답게 크고 웅장한 사찰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석가모니의 머리카락과 사리 등을 보관하고 있는 탓루앙에는 성지순례를 하는 이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성지이자 라오스민들의 자존심이라 평가되는 곳이다. 탑 주변을 세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 하여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nbsp;&nbsp;해가 채 뜨기도 전 불교신도들은 길에서 무릎을 꿇고 누군가를 기다린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새벽내음과 함께 다가오는 이들은 황갈색 장삼을 걸친 수도승들. 신도들은 미리 준비한 그릇속의 음식을 수도승의 발우에 떠 넣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그릇을 비우고, 다른 이들을 채운다. 이것이 탁발 정신이다. 라오스인들은 어느 것 하나 인상 쓰거나 큰 소리 내는 법이 없다.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눈앞 현지인들의 순박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금 불편해도, 조금 느려도, 조금 가난해도 이들은 행복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욕심을 비우고 오늘의 행복을 사는 이들이 삶을 꾸려가는 곳.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택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길에서 만나는 라오스민들은 수줍게 웃는다. "싸바잇디" 인사를 건네면 붉어진 얼굴을 감싸며 먼저 미소로 답한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라오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꽃, '독잠파'의 은은한 향과도 닮았다. 나는 이번 라오스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하지만 라오스는 관광지가 아니라 거대한 역사 박물관이고,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서 진정한 치유를 받고 돌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하려 한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켜켜이 겹쳐진 산과 그 속을 흐르는 물줄기. 막을 걷어 올리듯 그 속으로 들어가다보면 잔잔한 강물소리는 어느덧 위로의 말처럼,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흐른다. 그제서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또 다른 채움을 얻는다. 비워야 다시 채울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도 그 하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수줍어하고 들어내기를 꺼려하는 라오족과 문명과 담쌓고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도차이나의 작은 나라 라오스를 관통하는 메콩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죽기전에 가보아야할 여행지로 선정된 이후로 꽤나 인기가 많아진 라오스. 나에게 "라오스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라고 묻는다면 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방비엥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3년쯤 되었을까? 티웨이 항공으로 라오스를 방문했을 떄 아무래도 국적기이긴 하지만 190석에 불과한 저가 항공으로 소형 비행기이기에 기내 서비스는 기대할 수도 없었거니와 기류가 좋지 않은 우기에 동남아로 가는게 약간은 꺼림칙 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엔 라오항공을 이용하기로 했고 야간 비행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 작정했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그 당시 늦은 오후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상하이를 지날 무렵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 여기 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니 더 불안해져 괜히 소형 항공기를 이용했다는 후회가 밀려 왔었다. 라오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 편안한 휴식은 커녕 불안감 속에 다섯시간 동안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수없이 외워야 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기내엔 지금 어디쯤 비행하는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도 없을뿐만 아니라 아예 TV도 없고 음료수나 커피도 직접 사먹어야 하기에 역시 싼게 비지떡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그 떄 여행 중 내 생전에 보았던 천둥과 번개보다 더 많은 천둥 번개를 라오스 하늘을 나르며 목격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줄잡아 큰 것만 백여개를 보았는데, 구름 아래쪽에서 불이 번쩍이는 모습이 장관이었으며 다행히 번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리치기에 비행하는 도중은 염려할게 없으나 착륙할 때가 염려되기도 했다. 동행한 친구 녀석은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잠이 드는데, 워낙 기체가 흔들리니 불안한지 자꾸 말을 걸어 온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난 비행기는 이착륙 5분간이 문제지 일단 고도에 진입하면 추락할 확률은 1/4000000이라고 애써 강조했지만 나 역시 불안한 것은 마찮가지였다. 이럴 땐 기장이 한마디 하면 승객들이 안심할텐데, 일언반구가 없으니 더 답답했다. 기장은 비행기만 잘 조종하면 되는데 아니라 승객을 안심시키는 것도 의무일텐데, 스피커가 고장이라도 난양 말이 없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6/c63bf36054be993c97a112dcaf0c743b12441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목사의 책무도 비슷하다. 잘하는 목회는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 교인들을 안심시키고 목적지까지 잘 인도하는 것일게다.&nbsp;무뚝뚝한 나로인하여 답답했을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라오스까지 다섯 시간동안 내내 기체가 흔들렸지만 착륙하는 순간엔 거짓말처럼 날이 좋아져 드디어 라오스의수도 비안티안(Vientiane) 공항에 안착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허스름한 호텔에서 일박하고&nbsp;황토색 메콩 강이 천천히 흐르는 비안티안(Vientiane) 시내 투어에 나섰다. 비엔티엔의 원래 이름은 &lt;달의 도시&gt;라는 뜻을 가진 '위앙짠'인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위앙짠이라는 이름을 유럽풍으로 바꿔서 비엔티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맨 먼저 찾은 곳은 독립기념문 빠뚜싸이(Patouxai)였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프랑스 식민지였던 라오스가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따 또 다른 개선문을 만들었다는 점은 아이러니기도 하지만 프랑스에 대한 증오보다는 오래 전 부터 태국의 지배를 받아 왔기에 오히려 프랑스 통치를 더 선호했다는 말을 듣고 일면 수긍이 갔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 파투사이는 1960년대 라오스 전사를 기린 기녑탑이라는데, 미국에서 공항 활주로 건설에 쓰라고 보낸 시멘트로 기념탑을 만들었다고 한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방비엥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해마다 여행자들이 증가해, 지금은 여행자 천국으로 변해버린 곳.</p><p style="border: 0px;">무엇보다 한가한 자연과 저렴한 물가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고, 메콩강의 지류인 쏭 강(Nam Song)을 끼고 오른쪽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강 건너에는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낮은 산봉우리가 겹겹이 이어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내가 가 본 나라 중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곳중 한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하루종일 튜브, 카약 타기, 동굴 탐험, 점핑 포인트, 소수민족 마을 방문 등, 수많은 액티비티를 제공하는 방비엥! 물론 라오스의 수도 바엔티엔도 수많은 세계 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좋은 곳이다. 여행자들을 사로잡는 이 도시만의 매력은 유럽과 아시아를 한곳에 조화시켜 놓은 독특한 분위기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거주지 그리고 각종 불교사원들은 중앙 비엔티엔의 풍경을 압도하며, 독특한 그들만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비엔티엔을 떠나 마치 한계령을 넘는 듯한 꼬불 꼬불한 비포장이나 다름없는 길을 네시간에 걸쳐 달려 간 방비엥(Vangviang/왕위양)은 건기 최고의 관광지로 12월부터 4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한마디로 잘먹고 잘 놀 수 있는 천혜의 휴식처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라오스의 계림으로 칭하기에 충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닌 방비엥은 메콩강을 따라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과 많은 동굴들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방비엥은 여행자들이 마치 그림 속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유유히 흐르는 송강 처럼 마음이 느릿해지면서 왜 아둥바둥 살았는지를 후회하게 만드는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먹거리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코끝을 찌르는 향신료와 우리와 다른 야채가 식단을 괴롭힌다. 그렇다고 매일 햄버거를 먹을 수도 없고 입에 맞는다고 쌀국수로 매 끼니를 때울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불편한 것 몇가지를 감수하면 방비엥은 인도차이나의 에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쏭강(NamSong)을 따라 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13번 국도와 이어지는 다운타운이 길게 도심을 형성하고 있는 방비엥. 상권이 형성된 도심에 모여 사는 원주민이라고 해야 고작 몇 만에 불과하지만 성수기인 건기에는 주민보다 외국인이 많을 정도로 여행객이 북적거리는 곳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im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9/07/06/97f0b8557fb87908367514afc96e99d3121249.jpg" style="margin: 0px; padding: 0px;">훤한 대낮에, 젊은 여성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밤늦도록 여러 나라의 언어가 한데 뒤섞여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는 천국.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인도차이나 최빈국이라는 라오스에 유럽의 휴양지를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자전거로 한 시간이면 구석구석 다 둘러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 방비엥.&nbsp;이토록 작은 마을에 무엇이 있어서 많은 여행자들은 그 고생길을 견디며 이곳으로 흘러 오는 걸까?</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아름다운 자연과 여유를 먼저 떠올리지만 방비엥에서 찾은 진짜 매력은 그런게 아니다.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소들과 반갑게 인사라도 할려고 손을 내밀면 저만치 도망가 버리는 순진한 아이들.&nbsp;나무 뒤에 숨어 얼굴만 쏘옥 내밀고는 관광객을 쳐다보는 그 아이의 눈빛에서 순진한 표정에서 방비엥의 진짜 매력을 발견한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방비엔을 방문하는 사람들은&nbsp;일명 튜브킹과 캬야킹(Kayaking)을 필수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절벽에서 줄을 타고 하강하여 강물로 뛰어드는 짜릿한 체험을 즐기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는 즐길 거리중에 하나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물론 나도 군목시절 동북 유격장에서 점핑했던 경험을 살려 여러차례 몸을 날렸다. 새처럼 날고 싶었다. 가능하면 목표 지점에 이르기 전에 손을 놓아 급류속을 헤험치는 짜릿함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방비엥의 강과 산악지형 사이에 남송 강을 노을 저어 가로지르는 카야킹과 튜브를 타고 동굴을 탐험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점핑이 압권이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방비엥에서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몬도가네 시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nbsp;원래 아침에만 여는 시장이었으나 관광객의 증가로 하루종일 여는 시장으로 발전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바나나 꽃등의 야채와 함께 도마뱀, 개미, 박쥐, 야생동물등 다양한 곤충과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비위가 약해 몬도가내식 요리를 맛보진 못했지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먹었던 메뚜기 튀김은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사실 내가 재래 시장을 고집한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두리안을 비롯 망고 망고스틴 등 열대과일 때문이었다. 싱싱한 것보다 완전 숙성된 것으로 골라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데, 시장 사람들이 게걸스럽게 먹는 우릴 보며 신기해 한다.&nbsp;</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접은지 오래이다. 오늘 여행하는 라오스에 손주들을 데리고 또 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회가 찾아 왔을 때 질릴 정도로 먹어 둬야 한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이번에도 라오스인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nbsp;한 때 제국을 호령했던 라오인들의 애환을 담고 인도양으로&nbsp;도도하게 흐르는 Mekong River는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nbsp; 모르는지 급물살이 되어 무심히 흘러만 가고 있을 것이고 내 인생도 따라 흐를게 분명하다.</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3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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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26 Apr 2026 12:46:4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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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엔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4/d84f19782b7ecfc891ad36d0889155da21532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내가 자란 동네의 골목길을 자주 찾는 편이다. 아직도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여 눈여겨 살펴보곤 한다. 추억이 물씬 풍기는 그 길은 아직도 여전하지만&nbsp;골목은 도시의 외곽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사라져가는 주거문화가 됐다.&nbsp;</div><div><br></div><div>골목을 만들어내는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재개발에 밀려 부서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웃도 사라졌다.&nbsp;어슴푸레한 새벽, 리어카를 끌며 부지런히 걷는 청소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 집 앞을 쓸려고 나온 할아버지들의 인사 소리로 골목의 하루는 시작된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평상 하나만 놓이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날 ‘밖에서 놀기’는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심 속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뛰놀 수 있는 골목길 찾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아이들도 게임기, 스마트 폰 등으로 집 밖에서 노는 것 보다는 집 안이나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해가 뉘엿뉘엿 지거나 밥 때가 돼 어머니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바깥에서 놀며 지내던 여름의 긴 오후를 나는 기분 좋게 기억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 손자들이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이야길 끄집어 낼까를 궁금히 여긴다. 군산시 서수면엔 초등학교가 세개가 있지만 세학교를 통털어 30명이 안된다. 운동회도 연합으로 하지만 학급 체육시간보다 못하다. 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다. 농촌으로 시집올 처녀가 없으니 그 자릴 베트남 꽁가이들이 채워 버린 결과물이기도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히려 순수 토종 혈종이 역차별 받는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이다. 결국 세개의 학교가 하나로 통합되고 말았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미래가 불투명하다. 내 손주들도 모두 인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할에비와의 추억도 자주 만들지 못한다. 먼훗날 이 할에빌 기억이나 할까. 물론 인간은 모두가 잊혀질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이면 괜히 심숭생숭하면서 향수에 젖어 궁상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나이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니까 13세 정도무렵 충남 공주군 이인면 달산리까지 기차 한번 버스 세번을 갈아타면서 할아버지네 집을 놀러 다녔다. 비포장 도로인지라 거의 하루종일 가야하는 고행길이었지만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뻔질나게 방문을 했다. 호적초본을 제출하려면 면서기가 직접 밤새워 수기로 만들어 줘야 하기에 이틀 정도는 소요되는 본가 방문을 해야했었고 그 때 내 뿌리가 어디인지, 누구의 자손인지를 귀가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가르쳐 주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요즘 내 지친 모습을 보면서 노구를 끌고 힘겹게 노후를 보내셨던 선친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울적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한 세상을 살다 가지만 난생처음 늙어 보는 일이기에 기력이 없을 땐 인생무상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을 비관만 하는 건 아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잎이 지닌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모양과 색깔들이 크겠지만 잠시 피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피어 있는 시간은 짧다.&nbsp;</div><div><br></div><div>생각해보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사시사철 피어 있다면 누구든 지겨워지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도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세상엔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그 중에 벚꽃은 시간이 짧아서 더욱 아름답다. 지나치게 붉지 않아서, 피기 시작하면 봄에 내린 눈처럼 세상을 온통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이지만 아쉽게도 2주일을 채 못 간다.&nbsp;</div><div><br></div><div>어찌나 연약한지 중간에 비라도 한번 내리면 큰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1년에 딱 한 번 벚꽃이 필 때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꽃은 수명이 짧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벚꽃을 보노라면 나일 먹어 간다는 반증이라도 되는양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종종있다. 우리 삶의 기억 안에는 ‘추억’이라는 것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4/b9e540085c2f69f21fb914d28d87437321544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추억’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숨어 지내다 우리가 예견치 못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감정선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곤 한다.&nbsp;</div><div><br></div><div>내가 어렸을 땐, 구슬치기 딱지치기가 일상 놀이였다. 하다못해 사이다 병마개를 넓게 펴서 그것도 따먹기를 했을 정도였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까닭이었으리라.&nbsp;계집애들은 머리핀을 따먹기 하였으며 농한기로 접어들면 노름이 성행하여 마을마다 폐가 망신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야간도주를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nbsp;</div><div><br></div><div>조금은 부조화하게 생겨나는 현대식 건물과 상점들로 리모델링되는&nbsp;공간을 안타까워했다. 아마도 이렇게 변화되는 모습에 그의 추억이 빼앗기게 되는 데 대한 불안함이었는지 모른다. 옛것의 순박함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가 융화될 순 없을까. 긴말 할 필요없이 나는 ‘조화’라는 단어로 답을 얻었다. 분명히 많은 곳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재해석과 그 가치를 다시 인정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존재한다. 그러한 노력이 잃어버린 고향을 온전히 다시 찾아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nbsp;</div><div><br></div><div>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바뀌고 길도 사라져 전혀 다른 곳이 돼 있는 것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다.&nbsp; 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는 내 머리와 가슴속에 정지돼 있는 기억의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효율과 기능만을 강조한 도시는 사람의 정서와 심미적인 부분을 경시하기 때문에 시민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래된 곳을 보살피는 도시개발이라야 의미가 있다.&nbsp;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nbsp;사람들의 추억을 담긴 도심의 골목길들을 없애지 말고 보전해야 한다.&nbsp;</div><div><br></div><div>매월 16일면 고등학교 16회 동기들이 모인다. 한번인가 참석했다가 그만 두었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지나간 세월의 추억을 불러내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전혀 유익이 없는 모임으로 변절되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 핑게를 대며 매월 16일을 기피한다. 어쩜 친구 등을 보노라면 60년대에 머물러 사는지 이해 안갈 때가 있다. 생각하는게 유치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는&nbsp;단말마적(斷末摩的)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 작정했다.&nbsp;</div><div><br></div><div>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나일 먹어가면서 점점 옹졸해지는 것 같다.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몇시간 머물기가 거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난 화를 잘 안내지만 한번 감정이 상하면 최하 3년은 간다. 아예 절교해 버린 친구도 여럿이다. 내 스스로 못된 버릇이라고 질책하지만 좀처럼 고쳐질 것 같지 않다.&nbsp;</div><div><br></div><div>사내다움(?)이 없는게 사실이다. 박터지게 싸우다가도 막걸리 한잔 먹고 툴툴 털어버리는 사람을&nbsp;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싸우지 않으려 하고 최대한 양보하며 살려 노력중이다. 잘나갈 땐 친구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을뿐만 아니라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처럼 왠만하면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세월이란 천변만화(千變萬化)하기에 모든게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어 내 스스로 대화를 이어 갈 자신이 없기에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립을 자초한다.&nbsp;세월이 흘러 모습이 변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기억이 퇴색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어릴적 친구들이 가끔 수소문하여 날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가능하면 만남을 기피한다.&nbsp;</div><div><br></div><div>한 때는 그렇게 다정했었는데 얼굴이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그리움이란 추억속에&nbsp;남아 있길 소원했는지도 모른다.&nbsp;만나면 할 말이 무진장 많이 남아 있을줄 알았는 데, 사실은 그 간의 단절이 가져온 여백이 너무나 커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nbsp; 많다. 어쩜 그냥 그리움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게 아름답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핑게를 대며 만남을 피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4/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21554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일 주일예배를 드리고 밤엔 인천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아직 짐을 싸지 못했지만 몇달전 여행을 다녀 온 이루 짐을 풀지 않았기에 라오스 날씨를 감안하여 티셔츠 몇개만 바꿔 끼우면 될 일이다. 물론 신라면도 날짜를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약간 유통기간이 지났어도 상관없다. 짧은 여행이지만 오늘은 텃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내일 상추와 열무를 심고 가려고 공사장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div><div><br></div><div>한동안 공주 현장을 오가다 보니 새벽 5시에 출근하고 밤에 들어 오다보니 풀을 뽑지 못했는데 너무도 볼썽사나워 오늘은 두문불출하고 집에 있을 생각이다. 대신 우리집 상공을 오가는 비행기의 비행운을 바라보며 임석빈 형을 비롯 은퇴목사님들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nbsp;&nbsp;</div><div><br></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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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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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4 Apr 2026 21:58:0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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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원숭이 같은 노후생활</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3/688b8a4423a01a1fb3c517de2ea43f4523373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최근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짜로 위장된 불량상품’이 세계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자 중국 정부는 관련된 담담공무원의 책임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이런 조치를 두고 ‘원숭이를 겁주려면 닭을 몇 마리 죽여라’라는 중국의 유명한 속담이 적용된 것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국의 자본주의가 무질서와 무법이 요동치는 ‘난장판’을 해소해보겠다는 궁여지책인지도 모른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국이 가짜상품이 판을 치는 곳이라면 우리사회는 가짜 사람이 가짜 학력으로 어엿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짜라는 멍에로 중국이 요즘 뭇매를 맞고 있지만 우리라고 그 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김건희의 학위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엉터리 가짜 학위로 사회를 속이고 활개 치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허언증(虛言症)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거나,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왜곡하여 말하는 것을 말하는데&nbsp;'공상허언증'이라고도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만, 본인이 하는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다는 데 이 증상의 어려움이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병적 허언과 회상착오가 반복되면 공상허언증, 사기병과 연결되면 '뮌흐하우젠증후군'으로 부르는데, 자신이 행한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증상으로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 pathological lying)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상인이라도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891년 안톤 델브뤼크(Anton Delbrueck)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달리 허언증은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가장 혐오스런 거짓말은, 가장 진실에 가까운 허언(虛言)이다”.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가짜가 판을 치는 것은 허황된 욕심(慾心)이 원인이다. 욕심은&nbsp;모든 죄악과 실패 그리고 인간관계를 해치는 원인이므로&nbsp;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리려고 애를 써보지만 버려지지 않는 마음쓰레기 중 하나이다.&nbsp;욕심이란 말의 사전적(辭典的)&nbsp;의미는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하거나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설명되는 부정적인 말이다.&nbsp;</div><div><br></div><div>옛말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가 어렵지, 일단 타면 호랑이가 멈추기 전까지는 내려올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가짜 인생을 살아온&nbsp;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사회 규범이나 규칙, 법의 권위를 우습게 생각하고 자신의 행위를 다양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한다. 범죄학적으로 이들의 자기합리화 행태를 ‘중화이론(中和理論)’이라고&nbsp;하는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해 스스로가 져야 할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따라서 죄책감도 없다. 허언증과 유사한 증상으로는 소설 속 인물에서 유래한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이 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한다.&nbsp;</div><div><br></div><div>실패하여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정신없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듣고 새겨야 할 말이 “너 자신을 알라(gnōthi seauton,&nbsp;그노티 세아우톤)”라는 서양 잠언이다.&nbsp;이 말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Delphoi)의 아폴론(Apollon)신전 현관기둥에 새겨져 있었다는 말로,&nbsp;철인(哲人)&nbsp;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혜가 신(神)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 대한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 하여 이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출발점에 두었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3/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233901.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무지를 자각한다는 말은 지금 내가 알고 있은 모든 것이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어야 한다는 뜻으로 무지를 자각한 후 거기서 출발하여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nbsp;따라서 철인(哲人)이 아닌 한낱 생활인이라 할지라도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욕심은 순리(順理)에는 소극적이면서도 비리(非理)에는 극성(極盛)이라 할 정도로 아주 적극적이기 때문에 결국 극성지패(極盛之敗)하게 된다.&nbsp;</div><div><br></div><div>극성지패란 지나치게 적극적이고 드센 태도나 행동을 극성이라 하고,&nbsp;극성을 떨면 얼마 못 가서 실패한다는 말이다. 최소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허언(虛言)은 하지 말아야 한다.&nbsp;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우리도 어느정도의 허언증을 갖고 있다. 성형수술 한다고 자녀가 이쁘게 태어날까? 하지만 그렇게 믿으며 행동하지 않는가?“왕년에 내가…”를 자주 외친다고 정말 왕년으로 돌아갈까?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을 자랑한다고 내가 유명인사가 될까?&nbsp;</div><div><br></div><div>하지만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불완전한 실상 그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심지어 우리의 약함을 강함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불완전함은 수치가 아니라 선물이다.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div><div><br></div><div><div>곳곳에 대형교회당 건물은 우뚝우뚝 솟아오르고 있지만 그에 비해서 사회가 깨끗해지고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본당, 교육관 등 하드웨어는 갖춰져 있지만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성숙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을 찾기가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div><div><br></div><div>교회성장은 이미 정지 됐으며 사회에 미치는 교인들의 영향력 성적표는 낙제 점수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요인들 가운데 목회자들의 성직의식 퇴조와 창의력 상실 등이 무시 못 할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이 문제에 관한한 왈가왈부 자체가 터부시 되어온 까닭이다.&nbsp;</div><div><br></div><div>최근 한국교회에서는 철저한 자기부정과 끊임없는 개혁을 통해 현상타파의 목회에 도전하는 목회자는 줄어드는 대신 일단 커진 교회를 단순히 순환적으로 목회하려는 관리형 목회자가 급증하고 있다.</div><div>이들의 허언증은 이미 도를 넘는 수준이다.&nbsp;</div><div><br></div><div>허언증은 빨리 치료받는게 중요하다. 성취욕구가 매우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허언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남에게 과시하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div><div><br></div><div>그러다 이러한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거짓말은 점점 커지고 정교해진다.&nbsp;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이 가능한가?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거짓말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위에서 다룬 거짓말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거짓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가벼운 거짓말을 넘어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nbsp;</div><div><br></div><div>범죄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거짓말은 제외하고 본인이 의식하지 않고 하는 병적인 거짓말과 거짓이란걸 의식하면서도 충동적으로 나오는 거짓말들에&nbsp;대한 반성을 내 스스로 내리면서 이 글을 적어 나간다.</div><div><br></div><div><div>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이 들어도 존경받는지, 존중받는지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nbsp;나이를 먹어도 허풍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나잇값을 못하는 거다. 나이의 무게만큼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nbsp;다른 세상으로 갈 날이 날마다 가까워 가고 있는데 나의 곳간이 점점 쌓여간다면 불행한 일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뿐 아니라 다른 욕심도 마찬가지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3/0f19efb7eb7714c60ef7a67e81f409a923420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특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되지 않아야 한다.&nbsp;공자께서 70살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하여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허튼 욕심을 갖지 않는 태도도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nbsp;공자께서는 40살도 불혹(不惑)이라고 하여 욕심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물론 모든 욕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욕심을 찾는 것은 평생 기쁜 일이다.&nbsp;내 주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 나이에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네.”라는 한탄의 소리를 낸다.&nbsp;언제부턴가 자주 입 밖으로 내놓는 말이다. 70대가 되면서 느끼는 상실감 때문이라 여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nbsp;나잇값을 못 했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나잇살, 나이값이란 소릴 듣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젊은이들에게 잔소릴 안하기로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민폐(民弊)가 될 것 같으면 아예 그런 자릴 만들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노력중이다.&nbsp;노인이 되면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진다. 우울증 경향이 늘어난다. 융통성이 없어지고 사고가 경직되어 간다. 또한 늙어가면서 옹고집, 고집불통이 되어가는 경향이 많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판단하에 자기주장만한다.&nbsp;</div><div><br></div><div>늙으면 자꾸 과거만 돌아본다.&nbsp;왕년에 한가닥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도 옛날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이지만 그만큼 늙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친숙한 물건에 애착이 많다. 옛날에는 나도 새로운 것으로 자주 바꾸곤했는데, 이제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한다. 자기중심이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가족 , 자기 식구, 자기 자식 생각만한다.&nbsp;</div><div><br></div><div><div>원숭이 같은 노후생활을 참다운 사람의 노후생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장수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경우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예의를 차린다. 왜 이렇게 깍듯하고 친절한 걸까. 거기에는 ‘메이와쿠(迷惑)’ 정신이 숨어 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弊)를 끼치지 말아라. 일본인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이 ‘폐(메이와쿠·迷惑)’에 대한 교육이다.&nbsp;</div><div><br></div><div>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가장 부끄럽고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노인들의 생활도 짐작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평생을 남들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지키며 모범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일찍 고령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무연사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2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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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3 Apr 2026 23:43:1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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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래 살다보니 경유값이 휘발류 값을 넘어섰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2/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13439.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말은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이요 됨됨이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말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이며, 자기의 내면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창구이기도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은 남과 더불어 교류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사회적 동물로서 말은 좋은 관계를 맺어주기도 하고 때론 금이 가게도 하므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에는 파괴력이 있다. ‘말은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자를 묻을 수도 있다’라고 ‘하이네’는 말했다. ‘네 말이 네 귀에 들리는 대로 너에게 행하리라’는 성경구절도 있다. 건축현장에 오래 있다보니 사람들의 말이 참 거칠다. 왠만하면 대화에 끼어들지 않지만 말끝마다 욕찌거리를 일삼는 젊은 친구에게 집에서도 그런 말투냐고 묻는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nbsp;</span>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원망같은 같은 말은 가능하면 꺼내질 않으려 작심했다. 말하자면 긍정적인 사고와 언어를 습관화하려 노력중이다. 한마디 말에 내 인격이 있고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 말에&nbsp;<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d1289">'발빠른 년은 집안을 거덜내고 손빠른 년이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font></b>고 하셨다. 여기저기 사방팔방을 휘집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기 스트레스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이들에겐 상처만 남긴다. 손빠른 사람은 자기는 희생이지만 가족이나 이웃에겐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nbsp;<div><br></div><div>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년)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표현이고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좌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말의 중요성, 즉 대화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매일 함께 하는 현장소장이 나에게서 두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의도적이라 할만큼 말을 안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다. 오늘도 공주현장에서 민물 새우탕을 먹으면서 수제비 서너개를 건져 먹었을뿐 하루종일 굶다시피 했다. 하지만 배고프단 생각을 해본지가 오래이다.&nbsp;</div><div><br></div><div>가끔 성경적 인물을 연구하다 늙어서도 식탐이 전혀 줄지 않았던 이삭을 생각한다. 에서에게 별미를 가져 오면 축복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야곱이 이를 가로채지만 그 나이에도 사냥한 고기를 즐겼다니 대단한 식도락가였던 건 아닐까. 하지만 미각은 살아 있었지만 청각과 시각은 별로였던지 야곱을 에서로 오인하여 축복을 해버리고 만다. 심지어는 털복숭이 에서를 구별하지도 못했다.&nbsp;&nbsp;<div><br></div><div>나는 미각은 별로이지만 아직 촉각은 그대로이고 시각이나 청각 후각도 정상이다. 큰 딸 작은딸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 아직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입맛이 없거나 밥맛이 없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게 아니라, 입맛없게 만드는 사람들이&nbsp;주변에 너무 많다는 점이 내 식욕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점이다.&nbsp;&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2/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11354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입맛을 잃었다는 건 별로 중요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나이먹으면 오감중 한두개는 틀림없이 고장나게 되어 있기에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오감 모두가 살아 있는게 문제일 수도 있다.&nbsp;나일먹으면 적당히 청각이 떨어지는게 정상이다. 너무 귀가 밟아 듣지 말아야 할 소릴 다 듣게 된다면 그게 곤욕이다. 너무 시각이 좋아 세상의 모든걸 보게되는게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nbsp;</div><div><br></div><div>식탐 하나가 줄었다고 크게 염려할 사항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조모님께서는 딱딱한&nbsp;사과 하나를 깨물지 못하고 달팽이 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 잡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저렇게 잡수시면 무슨 맛이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 하나를 다 잡수시곤 했었다. 배도 그렇게 잡수셨고 감이나 백도는 이가 없기에 우물거리며 드셨다.&nbsp;</div><div><br></div><div>맛이 있는지를 물으면 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는 뜻모를 말씀을 하시곤 했다. 미각을 잃으니 산해진미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늙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난 내 삶을 불행한 삶이라고 자학해 본적이 별로 없다. 기력이 급속하게 떨어졌지만 산삼 한뿌리를 탐하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다. 걸음걸이가 씩씩했던 젊은 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60킬로의 몸을 움직이는데 큰 칼로리가 필요한 건 아니기에 그냥 지금에 만족하며 살려한다.&nbsp;&nbsp;&nbsp;</div><div><br></div><div>내가 영위하는 삶에 대하여 여러 평가가 있는 걸 잘 알고 있다. 가끔 존경스럽단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대표적으로 어리석단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죽으면 썩어질 걸 위해 자린고비로 사는 나를 그렇다고 생활에&nbsp; 어리석은 사람으로 매도하는 걸 극구 변명할 생각이 없다.&nbsp;&nbsp;</div><div><br></div><div>나는 저녁 무렵 부턴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는다. 하룻밤에도 대여섯번은 가야 하는데 한꺼번에 모아 아침에 흘려 버린다. 까짓껏 물 한번 내리는데 얼마냐고 묻는 사람에겐 할 말이 없지만 예전엔 요강이 넘치도록 방안에서 일을 보고 아침이면 팔이 부들거릴 정도로 무거운 걸 들고나가 버렸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것도 감지덕지(感之德之)가 아닐 수 없다.&nbsp;</div><div><br></div><div>그렇다고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생활습관이 그런식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보일러도 없는 냉방에서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남들의 눈엔 처량하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개념치 않는다. 겨울철에 난방 장치가 없는 방에서 지낸다는게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굳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십년이 넘도록 보일러를 작동시켜 본적이 없다.&nbsp;</div><div><br></div><div>그 정도로 절박한가를 묻는 사람도 없지만 굳이 내색하고 싶지 않다. 그냥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만족이고 지독한 가난이 아니라면 이대로 만족하며 살려고 작정했다.&nbsp;가난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없는 인류의 문제이다. 누가 스스로&nbsp;가난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쉽지 않다. 동화 '왕자와 거지' 속의 왕처럼 잠깐 동안 '거지 체험‘을 해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자처해서 가난을 선택할까?&nbsp;&nbsp;</div><div><br></div><div>그러나 역사에는 부(富) 대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없는 사람들의 빛이 됐던 예수가 그랬고, 부처는 한없이 낮아진 상태에서 생사의 깨달음을 얻었다. 마더 테레사 같은 성인의 삶도 그렇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이 삶의 잣대로 여기는, 돈이나 큰 것을 제대로 지닌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nbsp;&nbsp;</div><div><br></div><div>인간성은 그 어떤 인간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지만, 그 좋은 인간성 때문에 가난 할 수밖에 없는, 야릇하고 묘한 심성의 사람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내 일, 네 일을 넘나들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nbsp;</div><div><br></div><div>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정한 땅 분배를 명령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부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다시금 부의 공정함을 회복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부의 대물림을 꿈꾸었지 희년의 믿음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nbsp; &nbsp;&nbsp;</div><div><br></div><div>요즘은 시골도 출퇴근 시간은 물론 낮시간에도 러쉬아워(rush hour)처럼 차량들로 정체가 빚어진다. 남편이 출근하면 아내들이 차를 몰고 거리로 쏟아진다.&nbsp;공원이나 까페를 가득 채운다. 하루종일 죽어라 땅을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심해서 죽을(?) 사람들로 넘쳐 난다. 말인즉, 정말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2/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136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가능하면 단순명료하게 살려고 마음먹었다. 잔머리 굴리면서 요령껏 사는게 꼭 성공의 길이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nbsp;&nbsp;나보다 머리도 좋고 조건도 좋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교 아닌 비교를 해보니 별반 차이가 없는 걸 알았다.&nbsp;</div><div><br></div><div>돈많다고 꼭 행복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건강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남자들은 인생도 단순하다. 어느 누구도 일만 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구와 특성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공주현장의 일도 이제 거의 끝나 간다. 타이루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내일부턴 도배 여사들도 공주로 호출했다. 별일이 없지만 소장과 인부들을 공주로 오라고 지시했다. 허드레일이라도 시켜야겠고 싱크대 업자와 보일러 업자도 불러 견적을 넣었다. 내가 그렇게 이번 공사는 이윤을 남기지 말라고 했건만 교통비까지 청구할 태세이다. 트럼프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유값이 2천원을 넘겼다. 내일부턴 승용차로 출근해야 할까보다.&nbsp;</div><div>&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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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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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2 Apr 2026 11:38:0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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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착색된 풍선과도 같은 인생이 아니던가?</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0/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1211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벌써 한해의 1/3이 지나가고 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요즘 준공검사의 일로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하다. 이미 5개월 전에 준공검사를 신청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계약날짜를 넘기고 말았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인천에서 이사를 왔는데 아파트를 매매하고 입주 날짜를 정했는데 준공검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사전입주를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아직 준공검사를 접수조차 못하고 있다. 사전입주는 관행상 인정해주는데 설계사가 다른 건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핑게로 접수를 시키지 않아 거의 쌍욕 수준의 망말을 쏟아내며 심하게 다투었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싸움도 해본 사람이나 할일이지 갈등이 길어지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상대방의 입장도 있지만 어차피 내 위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고 참았지만 5개월 동안 매매대금을 받지 못해 곤경에 처한 걸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해선 안될 말들을 쏟아내고 후회를 하였다. 더 기다려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준공 때만 되면 이런일이 반복되니 나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나는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는 생각을 종종한다.&nbsp;</font><font color="#000000">가</font><span style="color: rgb(0, 0, 0);">능하면 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후회의 연속속에 살아가고 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한 무명의 수도승의 일기를 읽었다. "한 가지 작은 일에서 다른 한 가지 일로 몸과 마음을 회전시킬 때도 적잖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편력과 정학을 갈망하는 속성을 가진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체념하고 끊임없이 포기하는 생활의 연속 속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아주 떠나버리는 연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빈손이 되는 연습을 조금씩 해 왔다"는 간결하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산문이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r>세상이 불안할 때 가진 것을 손에 움켜쥐느라고 안간힘 할 것이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펴고 갈 것은 가라고, 놓아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빈손에는 평화와 자유가 가득 담겨 질 수도 있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고독을 벗하며 적적함으로 동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0/946ebbbee616042f7f28b24e72e92c5a12144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뛰었던가?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잃을 것도 없는 공백한 두 손, 이것은 어쩌면 자유를 의미한 것이며 이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주는 의도가 아닐까.&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나는 선천적(?)으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 보질 못했다. 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전 대한민국이 굶어야 했던 보릿고개 끝자락에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추억이 남아있을뿐 고통스러웠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시인 도종환의 자서전적 고백에 기를 기우려 보기도 한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b style="font-weight: bold;">"내가 울면서 시를 쓰지 않으면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b>는 말엔 내가 울면서 설교하지 않으면 남도 울면서 설교를 듣지 않는다는 뉴앙스가 풍기고 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나는 울면서 설교를 준비해 보질 못했고 가끔 격한 감정에 눈물을 보인 적은 있었지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근처에도 못가는 삶을 살았다. 철학적이며 사변적(思辨的)인 설교가 대부분이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일주일 내내 주님의 양무리를 위해 가슴을 쥐어 뜯는 심정으로 울면서 설교 준비를 할 것이고, 강단에 오르면 피 토하는 심정으로 사자후를 외치겠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일반 유행가 가수에게도 히트곡이란게 있다. 몇십년 동안 대중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노래가 있는 데, 나에게는 히트설교(?)가 없다. 그게 나만의 비애였던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열악한 시골교회의 사정엔 아랑곳없이 교회 앞 마당에 고급 세단을 세워 놓고도 교인들이 교회를 드나들 때 이 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고민해 보지 않는 목회자들이 있다. 울면서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 교인만 울리는 교역자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가 가슴으로 울면 교인들은 감동의 웃음으로 교회를 떠나며 힘을 얻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 간다. 반면 목회자가 웃으면 교인들은 눈물을 지으며 또 험한 세상에 나가 한주간을 어떻게 살지를 걱정하게 된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span style="font-size: medium;">처음 시골에 정착하고 시(詩)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물들과 사물들의 여행이나 움직임에 무척 신기함을 느끼고 눈길이 머물 때가 많았다. 겨울이 찾아오는 시점, 철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데, 그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nbsp;</span></fon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나는 요즘 작은 미물 하나를 보아도 예사롭게 보질 않는다. 심지어 무더운 여름 날 루드베키아 그늘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느린 여행을 한참동안 따라가 보기도 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size: medium;">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의 행로나 심지어는 아직 땔감을 이용하여 밥을 짓는 시골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따라 시선을 따라갈 때도 종종있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이지만 나도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삶의 여로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 슬퍼진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나는 그냥 거기에 있을 따름이고 주변의 모든 것은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소리 없이 떠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0, 0);">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니,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착색된 풍선과도 같은 인생이 아닌가? 빨간색, 파란색으로 물들여진 물감일 뿐이다. 겉으로는 형형색색의 풍선이지만 바늘만 대면 그대로 터져버릴 순식간의 존재일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구한다. 내려 놓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얻으려고만 한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 style="font-size: 16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20/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2163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얼마전 시골 농가집에서 맷돌 몇개를 보았지만 가져오질 않았다. 차 트렁크에 실고 올 수 있는 크기였지만 시골 마당에 꼭 있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고, 손때묻은 걸 가져 오기가 미안해서 였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rgb(0, 0, 0);">집을 잘 꾸며 놓으면 재산가치가 상승하는 건 당연지사이겠지만 내가 처음 이곳에 오려는 목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모든걸 내려놓자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한껏 욕심을 부리는 세속적인 근성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단출하게 살자고 시골로 내려왔지만 어느새 살림도구가 제법 많이 늘었다. 밥그릇도 몇벌 생겼고, 숟가락 젖가락도 십여벌은 된다. 라면 끓일 냄비 하나 달랑 가지고 내려왔지만 지금은 전자 밥통을 비롯해 없는게 없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물론 내가 산 건 별로없다. 내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이 자기들이 불편하니 가져다 놓은게 전부이지만 하여간 살림이 엄청 불어났다. 근사한 커피 잔은 없지만 머그 잔도 여섯개나 준비되었다. 손님이 열명이면 나머진 종이 컵에 커피를 마셔야 하지만 대장부 살림이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0000"><br></font></p><div>세상의 모든 꽃은 피워 내기 전이 가장 아름답다. 만개해 버리면 이내 질 거라는 생각에 제대로 꽃을 감상할 수가 없다. 내 주변에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본데, 나는 곧 낙화할 거라는 걸 알기에 더 겸허해질 수 밖에 없고 내 존재를 부각시키는 일은 삼가하고 있다.&nbsp; &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서있는 발아래를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나를 지독하게 초라하게 만들고 섭섭하게 만들었던 사람들, 신의를 저버려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 주었던 사람들,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야멸찬 사람들, 그들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size: 16px;">내가 그 정도로 밖에 보여주지 못했기에 돌아 온 것뿐이다. 그들이 필요하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다가 설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희희낙락(喜喜樂樂) 할 필요도 없다. 조고각하(照顧脚下)해보니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는 걸 알았기에 신대륙을 발견한 거나 다름없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p><div><span style="color: rgb(0, 0, 0);"><br></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nbsp;</font></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2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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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0 Apr 2026 12:18:0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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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 또래의 사람들은 藥을 한웅큼씩 가지고 다닌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9/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1126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항간에 떠도는 말중, '여자는 자랑할 일이 생기면 친구를 찾아가고, 남자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친구를 찾아간다.&nbsp;여자는 자기보다 예쁜 여자와 같이 다니지 않으려 하고,&nbsp;남자는 자기보다 돈없는 남자와 같이 다니지 않으려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자는 우월감이 생기면 상대를 칭찬하고, 남자는 상대를 존경하면 칭찬한다.&nbsp;여자는 몰라도 되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남자는 꼭 알아야 할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는 이러한 만남의 인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끊어지거나 인연을 끊고 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러 가지 사연으로 서로 그리워하며 헤어져 사는 가족들을 비롯하여 자식을 낳아 버리는 비정한 부모들, 그리고 이해관계로 만났다가 이해관계 때문에 헤어지는 개인이나 집단들이 바로 가까운 예이기도 하다.&nbsp;&nbsp;그리고 유인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연은 언젠가는 반드시 끊어지게 마련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예로부터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일러 왔다. 그렇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되풀이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즉 두말할 것도 없이 헤어지기보다는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헤어짐만 못한 불행한 만남을 제외하고) 때로는 헤어짐을 통해 만남보다 훨씬 더 가슴 뭉클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시 말해 함께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면목을 헤어지고 나서야 발견하는 감동적인 경우가 꽤나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면 으레 함께 있을 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그 사람의 온 몸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인간적인 체취가 내 마음 구석구석으로 하염없이 젖어들곤 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가 하면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내 주변을 맴돌며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곤 하다가 어느 날인가 예고도 없이 바람처럼 훌쩍 떠나간 다음 우연한 자리에서 서로를 발견하곤 눈길이라고 마주치게 되면 재빨리 가슴에 매달린 ‘배반의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쌀쌀히 고개를 돌리곤 하던 사람들도 더러 있다.&nbsp;&nbsp;물론 그것은 나의 일방적인 속단일 수도 있고 내가 받았던 인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따라서 나는 그것이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그 사람 또한 나에게 새로운 발견을 안겨 주며 예전의 그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러기에 칭찬에 대하여 우쭐해질 필요가 없고 비난에 낙심할 필요도 없다. 나도 현역목회를 할 때 이런 소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냥 감사할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기에 칭찬이 없어도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되면 똥지게도 짊어질 생각이다. 그냥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누굴 원망하거나 시비를 벌려보았자 자신에게만 손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나마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9/62928ecca6b3ae42d783b178eb17dbb11128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고전3:21-23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선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뉘어 서로 다투는 분쟁을 일삼았다. 그래서 바울은 분쟁의 해결책으로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권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결국&nbsp;교회 분쟁의 원인이 어떤 일이나 신조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닌 사람 때문이라는 뜻이다.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는 교회에서마저 분쟁이 생긴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대신에 인간이 교회를 움직였거나 아니면 일을 맡은 자들이 자기들의 열심과 수고를 자랑한 결과이다.&nbsp;&nbsp;</span></div><div><br></div><div>사역자가 의도적이건 아니건 자기를 과시하려 했거나 일반 성도 또한 사역자 개인의 인간적 면모나 능력에 영향을 받았거나 받고자 한 것이고, 하나님 대신에 사람이 먼저 강조되면 분쟁은 자연발생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다.&nbsp;모든 인간은 아무래도 자기 자랑하기 바쁘다. 그리고 그 본성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첩이 간드러지게 웃으면 본처는 속병을 앓게 된다”는 말이 있다. 간사한 마음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아 피를 말리고 고소해 한다. 무엇이든 분풀이를 하려 드는 간사한 마음은 무엇을 사랑할 줄 모른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 하며 공치사(功致辭)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기에 덕담은 덕담으로 받아들여야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다가는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공치사(功致辭)를 남발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지도 모른다.&nbsp;나도 공치사(功致辭)에 취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내 능력 이상의 칭찬을 받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범인에 불과하다. 아마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지만 그래도 공치사를 받으면 이성보다는 감성이 요동친다. 그것이 공치사인줄 알면서도 마음이 흔들리고 내가 그런 칭찬을 받을 사람이라고&nbsp;착각해 버린다. 나중에는 자기 자랑하기에 급급하여 오해와 불신을 받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듬직한 사람은 중하면 중한대로 무던히 견디고 편한대로 지낸다. 어질기 때문이다. 어진 마음의 사랑은 재 속의 불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저 사랑할 줄 알고 행할 뿐 그것을 앞세워 이용하지 않는다.&nbsp;또 다시 공치사(功致辭) 받을 일도 없겠지만 조롱을 받는다 하더라도 시비할 생각이 전혀없다. 설령 속병을 앓는다 해도 간드러지게 웃는 첩꼴 다 견디며 살려 작정했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일히 그런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내 자신만 더 초라해질뿐이다. 초라해지기 전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10여년 전에 당뇨로 인한 뇌경변과 스트레스로 인해 담낭제거 수술을 받으면서도 악전고투를 하다 결국 득병하여 낙향하기로 결심했을 때 사명을 천직으로 알고 죽어도 강단에서 죽어내려 오는게 사명자의 길이라며 냉소를 보낸 동역자가 있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病이 깊어져 실어증(失語症)으로 설교를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결단을 앞두고 몇몇과 상의를 했는데, 처삼촌 벌초하듯 건성으로 받아 들이는 걸 보며 더 큰 쑈크를 받았다. 정말 “첩이 간드러지게 웃으면 본처는 속병을 앓게 된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지금도 나를 혹사시키는지 모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은 제대로된 눈으로 바라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여, 이젠 공치사(功致辭) 따위엔 관심이 사라져 버렸다. 내 실상을 알게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수확이다. 발전 가능성을 말한다면 몰라도 현실적인 문제라면 나는 모두에게 추월당할 위치에 놓여있는게 사실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젠 첩이 간드러지게 웃는다고 속병을 앓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9/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112959.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아직 인생을 달관한 건 아니지만 마음은 항상 초연해지려 노력중이다. 물론 신체적으로는 내세울 것도 장담할바도 못되지만 아직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믿고 마음을 단련중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변에선 아무리 날이 따스해지는 춘계(春季)지만 신체를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으며 너무 일찍 가벼운 의복으로 갈아 입으면 않된다고 잔소릴 늘어 놓는다. 친구들은 나에게 절대로 5월달까진 내복을 벗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나는 인명은 재천인 데, 갈 사람은 가는 것이라며 염려 붙들어 매라고 장담하지만 건강 문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니 당뇨 혈압약을&nbsp;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물론 의사가 처방한 약을 복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나에게는 매일 복용하는 상비약 외에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을 복용하고 있기에 육신의 건강은 물론 영적으로도 건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주변에 임씨 성을 가진 후배 목사님이 당뇨가 조절되지 않아 인슐린 주사를 직접 맞기 시작했다는데 내 장례식 집전해 주겠다고 큰소릴 치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하늘같은 선배로서 만나는 족족 잔소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단계에서 자칫 잘못하면 투석을 해야 하는데, 하루에 두끼, 걸음 만보, 과자 빵 등 주전부리를 금지 시켜야겠다. 최소한 95세까지는 살아야 내 장례식을 집전할게 아닌가?&nbsp; &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게가 藥을 한웅큼씩 안먹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귀촌이후 내 몰골이 그 전만 못한게 사실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쭈그럼&nbsp;밤송이&nbsp;3년간다'는&nbsp;말이 있듯 병약한 사람이 오히려 오래산다는 속설이 있고,&nbsp;'삐걱거리는 문이 고장없이 오히려 더 오래 간다'는 말을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누누이 들어왔다.&nbsp;연약하기에 조심하고 부족하기에 자만하지&nbsp;말라는 지혜로 받아 들였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헬렌 켈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는데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고 하였다. 늙은이라고 꿈을 포기하면 않된다. 그래이(E. M Gray)라는 사람이 쓴 책 &lt;성공의 공통분모&gt;보면, “그들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비전이 자기 인생을 집중시켜 살아가던 사람이었으며, 소중한 것을 먼저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고 하였다.&nbsp;그것이 성공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미래는 두려움이 아니다. 미래는 희망이다. 그래서 미래를 생각 하면 가슴이 설레어야 한다. 나이 먹었다고&nbsp;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공원 벤치를 지키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열심히 나돌아 다닐 생각이다. 가능하면 할 수 있을 때까지 건축일이나 영농에 올인할 생각이다. 한 자리에 머물러 청승을 떠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나일 먹을 수록 모든게 버겁기만 하지만 세상엔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과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을 거란 거만한 생각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두려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이 없는 삶은 열매도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몇 해 전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베스트셀러 책이다.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를 향해 ‘다 아프면서 크는 것’이란 다독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만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오히려 따지고 든다. 청춘은 왜 꼭 아파야만 하느냐고 항변한다.</div><div><br></div><div>이처럼 요즘 젊은 세대는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격언에 거부감을 느낀다. 꿈과 환상을 담은 이상적인 말도, 듣기 좋은 꽃노래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탓이다. 대신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사이다 화법’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이야기한다. 나는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는&nbsp;말을 거부한다. 비록 젊은이를 헐값에 사려는 사회적인 인식이 팽배되어 가는 추세이긴 하지만&nbsp;알바생이 건축 현장에 들어오면 최소한 1~2만원은 더 지불한다. 젊다는 이유로 가장 허드레 일을 하기 때문이다.&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적한 곳에 앉아 궁상을 떨었다. 왜 일손을 놓고 여유롭게 살아야 할 나이에 사서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이 고착화되면 나는 이내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어 그대로 강행하기로 결론지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완주군 운주면에 조립식 집을 지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현장을 방문하고 집주인을 대면하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풍을 맞아 십년전에 반신불구가 된 사람인데 집이 철거되어 보상금이 나오면 결제하겠다며 선시공을 해달라는데 언제 보상금을 받을지도 모르고, 이제 가능하면 일을 줄이고 농사짓는 일에 재미를 붙히려고 다른 업자를 소개해 주려는데 내 카톡방에서 건축물을 보았는지 공주 스타일로 지어 달라고 거의 생때를 쓰는데 예감이 좋지 않아 거절을 했다. 매일 전화를 하는데 거의 받질 않는데도 막무가내로 접근하지만 이번엔 내 어줍잖은 예감을 믿기로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와 함께하는 인부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매일 운주까지 한시간 반씩 출근하려면 너무 힘들 것 같고 중증 장애인이기에 전주 우이동까지 매일 출퇴근 길에 실어 나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기에 거절했는데 한편으론 돈문제로 곤경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장애자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작용한 거란 생각에 대단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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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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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9 Apr 2026 11:43:2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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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혼자노는 법에 익숙해지는게 좋을듯 싶다.</title>
			<description><![CDATA[<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2bfabba24a5b28477771d8927f63b4d61326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친하게 지내던 몇안되는 친구가 또 죽었다. 직년에 구강암 수술을 했고 함암 치료를 받았는데, 워낙 전이된 부분이 크고 독한 항암치료를 하다보니 식도가 망가져 오랫동안 목구멍에 호수를 박아 연명하더니 며칠전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font></b><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열흘전쯤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나 싶었는데 곧바로 문자메세지로 말을 할 수 없어 문자를 보낸다 하여 그런가 했는데 죽기전에 유언으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했다며 장례를 치루고 난 후에야 죽음을 알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미친 것, 자기가 무슨 이순신장군이나 된양 '적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하여 친구들을 외면했고 가족들도 그래도 친한 친구나 지인에겐 부고를 알렸어야 했는데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괘씸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란 생각으로 그의 별세를 애석하게 받아 들였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이젠 부고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된게 서글프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홀로 그 두려운 길을 떠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친구들의 존재가 부인당한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나 역시&nbsp;'허심탄회(虛心坦懷)'한 성격이 못되지만 어쩜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과연 기탄(忌憚)없이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몇이나 있는가?&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무 꺼리킴없이 속마음을 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몇이나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엔 몇쯤 있을 거라 여겼는 데, 지금은 거의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nbsp;못났으면 못난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솔직 담백하면 좋으련만 실력이나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는&nbsp;허장성세(虛張聲勢)에 너무 길들여져 가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믿고 의지할 대상이 사라지면 공허해진다.&nbsp;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불법 다단계에 들어가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왜 그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모두 포기한 채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우리는 흔히 나약한 마음을 지녔거나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사람이 심리 조작에 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 심리 조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리 조작은 보다 더 교묘하고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의존성 인격장애 문제를 심리 조작에 걸린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판단을 의존하고 항상 타인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대신해 결정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까지 발생한다.특히 오늘날처럼 개인의 소외감이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불안정한 내면을 다스리기가 더욱 힘들다. 똑같은 환경에 놓이더라도 심리 조작에 잘 걸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취약한 마음 밭을 지닌 사람들이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328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믿을만한 사람들이 없으니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에 흔들리기도 하고 사이비에 빠지기도 한다. 내 주변에 아형아제하며 지내는 후배가 있다. 건축 자재상을 하는 관계로 알게 되었지만 몇년간 함께 하다보니 정이 들어 거의 매일 전화 통화를 하고 일주일에도 몇번씩 만나기도 한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의형제를 맺자고 당부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냥 현재의 상태에서 서로 돕는 공생관계면 족하지 너무 '허심탄회(虛心坦懷)'하면 실망이 클 거라는 생각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때로는 멘토가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허한 생각이 들 땐 누군가를 의지하고픈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완벽한 신뢰는 바라지도 않는다. 비교적 ‘신뢰 있는’ 사람과 집단을 찾게&nbsp;되는데, 불신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믿고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차선책(次善策)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 차악(次惡)이라도 찾자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신뢰도 조사’라는 것이 자주 발표된다. ‘절대 신뢰’는 불가능하니 여론조사로 신뢰를 측정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세월호의 참극에 따른 국민의 분노와 불신을, 적어도 여론의 50%는 돌려놓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가공할 ‘눈물’도 먹히지 않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살다 보니 최순실에 기댔고, 거기에서 뜻하지 않은 불운을 만나고 말았다는 신파는, 박근혜가 그동안 넘치게 보여준 불통과 아집과 부패와 권력 남용의 시궁창 속에 속절없이 파묻히고 말았다.&nbsp;‘부모를 비명에 잃은 불쌍한 공주’의 이미지는 더는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nbsp;최순실 주변의 권력 농단과 전횡이 불러온 공분의 깊이와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윤석열씨도 자기의 부모나 형제간에도 단절하고 처가집과 김건희에게 의지하더니 몰락의 길로 빠져 들었다. 정말 국정을 함께 할 파트너가 그들뿐이었을까?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할 대상이 없을 때 사람은 고독을 느끼고 복잡한 사고에 사로잡힌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목사와 교인. 가장 허심탄회(虛心坦懷)한 관계이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빌 허(虛), 마음 심(心), 너그러울 탄(坦), 품을 회(懷)가 합쳐진 사자성어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 또는 명랑(明朗)하고 거리낌이나 숨김이 없는 마음을 의미하는 데, 과연 목양관계에서 그런 면이 존재하는가.&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목회 현장에서 얻은 경험론이지만 세상에서는 똑똑하고 총명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교회에 오면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nbsp;끝없는 소모전에 말려들기 싫어서 일부러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nbsp;아니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nbsp;반면, 어줍잖은 사람일 수록&nbsp;교회에서 말이 많다. 마치 제 세상 만난듯 요란을 떤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요한3서에 보면 &lt;디오드레베&gt;라는&nbsp;사람이 등장하는 데,&nbsp;성경에 오명을 남긴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에서 말 많은 사람이었다.그는 으뜸 되기를 좋아한 교만한 사람으로 요한의 사도권에 도전을 한 사람인 데, 성도라 자처하면서도 복음 진리를 거부했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도 않고 두리어 핍박을 했으며 성도들 중에 주의 일꾼들을 대접하려는 자들을 비난하고 교회에서 쫓아버렸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러니 사도의 시름이 깊어졌고 교회 성장의 암초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말이라고 다같은 말이 아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일까? 교회 성장 전문가인 톰 레이너 박사(라이프웨이 리서치)가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말’에 대한 칼럼을 보면' 세상에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직업이 어딨어요?'라는 말이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 말은 ‘그 많은 쉬는 시간이 뭐하세요?’와 비슷한 말이다. 교인들이 보기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목회자는 주일만 일하는 아주 ‘편한’(?) 직업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그 중엔 일주일에 몇번씩 골프치러 다니고 당회(당구 모임)를 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목회자는 주중에 주일 설교를 꼬박 준비하며, 이외 교인 심방과 상담, 전도를 비롯해 교회 행정을 돌보고 때로는 교회 차량 운전까지 한다는 점에서 목회자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 중에 압권(?)은 '목사님은 신학교에 갔으니 공부를 제대로 안하셨겠네요’라는 말이다.&nbsp;목회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치곤 최악의 경우인 데, 군소 신학교가 수백개에 이르니 '할 일없으면 신학교나 가지 뭐!'하는 말이 항간에 떠 돌았던 걸 감안하면 목회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563a7e52e0773b26c4cdbd0cbb19cece13353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일이 많은 목회자이기에, 보이는 부분만 판단해 목회자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비하하는 말은 실망과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무튼, 가까운 사람이라고 마음편하게 말할 수 없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 실수를 덮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입조심해야한다. 그리고 교역자는 교역자가 세워주고 지켜줘야 한다는 그 말을 마음에 다시 새기게 되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내 생각과 의도와는 다르게 나오는 말들때문에 고개를 들지못할 일들이 생긴다. 마음이 편할때 그 때를 조심해야 한다. 난 교인들과 식사하기를 참 좋아했다. 별 일이 없으면 오늘은 누구와 식사를 할까를 생각하다 생각나는 사람을 불러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난 목회를 하면서 물론 대접받을 때도 많았지만 내가 살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때로는 고급스러운 곳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nbsp;기사식당을 주로 이용했고, 자장면 칼국수 등 서민 식당을 이용하면서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퍽이나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러나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싶어도 너무 멀어져 버렸다. 마음이 답답하고 외로울 땐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 할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설령 그런 대상이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금이다. 하도 말을 많이 했고, 말많은 곳에서 살다 빠져 나왔기에 이젠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말을 많이하면 더 공허해진다. 그리고 탈진하게 되고 더 큰 외로움에 빠진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버지이기에, 자식이기에, 남편이기에, 아내이기에, 친구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수록 감사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호의가 지나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려 한다.&nbsp;나는 그간에 마음이 모질지 못해 손해보는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몇일 몇날에 걸쳐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직은 본격적인 영농의 계절이 아니지만 빈들녁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마음속의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반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nbsp;어차피&nbsp;'허심탄회(虛心坦懷)'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니 혼자노는 법에 익숙해지는게 좋을듯 싶다.&nbsp;</font></b></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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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17 Apr 2026 13:41:0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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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명당자리</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5/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1208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뜻밖에도 생각이 같았다. 젊었을 때는 장미나 작약, 샐비어(일명 사루비아), 양귀비꽃처럼 화려하고 향기 짙은 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작고 향기도 없는 꽃들이 좋단다.&nbsp;</font></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span></div><div><font size="4"><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모든 꽃은 꾸밈이 없어도 예쁘다. 치장하지 않고 저마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서로 먼저 피려고 서두르지도 않고 유유자적 여유롭다. 어쩌면 꽃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운 결정체인지도 모른다.&nbsp;&nbsp;</span></font><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어떤 노승은&nbsp;꽃을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메신저'라고 표현을 했다. 그래서 신들에게 꽃을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팔 여인들은 아침 일찍이 메리골드 꽃을 신께 바친다.&nbsp;우리나라도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놓는다. ‘헌화가’에서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바친 꽃은 철쭉이었다고 한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나일먹으면서 야생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보잘 것 없는 화초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왜 나이 들면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 좋아질까. 늙어 시력은 나빠졌으나 세상은 더 잘 보이기 때문일까?&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 보는 눈도 달라졌다. 젊어서는 잘나고 성공한 사람들만 보였는데, 지금은 못나고 가난한 루저들이 더 잘 보인다.&nbsp;</span></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세상에 나와 보니 온통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맥을 통해 돌아가고 있었다.&nbsp;나는 매일 기도문을 만들면서 오늘은 미련한자가 되지도 말고 미련한 사람을 만나지도 말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잠언서는&nbsp;모든 사람의 마음과 귀를 향하여 외친다.&nbsp;어른들을 향하여서&nbsp;미련한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자가 되라고,&nbsp;어린이를 향하여는 어리석은자가 되지말고 슬기로운자가 되라고,&nbsp;그리고 잠언의 말씀은 이렇게 경고한다.&nbsp;차라리&nbsp;새끼&nbsp;잃은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라&nbsp;(잠언17:12)고.&nbsp; &nbsp; &nbsp; &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주말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의 성의 없는 대답이 나오는 순간, 화면 자막에 ‘영혼 없는~’이라는 말이 꼬리표로 달려 나오는 것을 종종 본다. 그만큼 천지 분간 못하고 개념이 없거나, 내켜 하지 않아 심드렁하게 내뱉는 무성의한 말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젊은 층이나 연예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유행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최근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특히 관료사회를 보면, 이 ‘영혼이 없다’는 유행어를 실감하게 된다.&nbsp;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아무리 손해가 되어도 지켜야 할 불문율(不文律)이다.&nbsp;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지만 역시 예전에 비해 감각이 많이 떨어진게 사실이다. 나일먹으면 어쩔 수없이 감각은 무디어지고 진한 추억만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난 세월의 얘기들이 기쁨을 안겨준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font color="#ff483f"><b>추억(追憶)</b></font>.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 감동으로 보았던 영화 한 장면 같이 다가온다.&nbsp;그런 추억을 가장 잘 되살려 주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여행 중에 카메라 앞에 서며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겨진 낡은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은 즐거움 그 자체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다. 또한 추억의 되새김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원동력이 된다.&nbsp;요즘은 젊은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나이를 먹고 남은 생보다 남겨진 자취가 더 길다고 느껴지면 딱히 뭐라 인식하지 않아도 과거에 심취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게 더럽고 추하건 아름답고 귀하던 사람은 그렇게 추억을 붙잡고 살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5/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210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감수불보(甘受不報)'란 말이 있는데,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원망하지 않고 달게 받으며 복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게 일어나는 화나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일들은 시련도 아니고 절대자가 별 생각 없이 주는 시험도 아닌 다 내가 지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 진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남에게 미루거나 원망대신 내가 '감수(甘受)'해야 할 일이라고 작정하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자주 느낀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삶이 모두 자기의 작품이기에 조금 부족(不足)해도 위축(萎縮)되지도 않고 누구를 원망(怨望)하거나 부러워하지않고 자기장단(長短)에 맞추어 즐거워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춤추고 행복(幸福)해 하고 싶다. 일을 좋아하며 건강(健康)하고 삶이 여유(餘裕)롭고 자녀(子女)와 남을 의지(依持)하지않고 당당(堂堂)하며 독립심(獨立心)이 강(强)하게 살려 노력중이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옛 어른들이 게으른 사람을 빗대어 "콧등에 파리가 앉아도 혀바닥으로 쫓을 놈"이란 말이 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질타하는 말일게다. 나 역시 날 성가시게 하는 파리를 좋아할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성가시게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성가시게 만들고 불쾌한 감정을 안겨 준 사람을 원망하기 보단 내가 너무 민감하게 산게 아닌지를 생각하며 너그럽게 살기로 했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The Highly Sensitive People)'은 대개 까다롭고, 비사교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시선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내가 주런 부류였다. 이젠 남들과 갈등할만큼 한가하지도 않을뿐더러 여유가 있는 노후생활을 목표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태국에 가면 파타야란 곳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두번 안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숙한 곳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유흥가로 변신했지만 원래는 베트남 전쟁중 미군들 휴양지로 개발되었던 곳이다. 전장터를 벗어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해소시키지 않으면 안되기에 전장터엔 이런 곳이 있기 마련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난 목회현장을 벗어난 은퇴자들도 일정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낙향을 권유하고 자연을 벗삼아 인생2모작을 시작하자고 꼬드긴다.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귀촌 예찬을 늘어 놓는다. 내가 전문가 못지 않는 농사꾼이란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시눙은 낼줄 알고 마음만큼은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땅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자연속에서 살면서 심미적인 치료를 수없이 경험했고 계속해서 마음을 수련중이다. 나는 종종 거울앞에 서보곤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불과 10년 전하곤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멋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내 삶을 조용히 관조(觀照)해 보면 목회자로만 일생을 살았다면 정말 멋없이 세상을 살뻔 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계속 대접을 받으면서 그걸 당연시하고 쥐꼬리만한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했을게 뻔하다. 나도 한 땐 귀공자 타입이고 선비 타입 등 세련된 매너 등으로 인해 멋있는 사람이라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말이다. 보통 '멋'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들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나 병약자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곤 한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문제는 대부분의 노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남자들이 노년을 지나면서 점차 멋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남겨 준 것이라고는 신앙심 하나뿐인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물론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이르기 까지 공부시켜 준 것은 있지만 그건 일반 부모들도 모두가 하는 일상이고, 화려한 색깔, 아름다운 소리, 좋은 맛, 신나는 사냥 등에 선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왠만하면 몇개씩 다니는 학원 한번 보내보질 못했고 한우고기 한번 실컷 먹여보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준게 너무 고마워 이제는 신앙 유산말고 화려한 색깔,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고, 좋은 음식이나 여행 스케치를 만들어 주고 싶어 일년에 한두번은 반강제적으로 여행을 주선하고 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내 딸들은 이제 자식들 걱정말고 아빠의 건강이나 챙기고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망설이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고 당부하지만 나는 내 남은 시간들에 대하여 현재로서 만족스럽고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먹는다지만 지금에 와서 내 처지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냥 더디지만 저속으로 가다 멈춰 서는 시간까지 가볼 생각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그간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만 살아 왔기에 이제는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기도하고 결심한바가 있다. 가족들은 물론 몇 안되지만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 주려 노력하고 있다. 여행은 물론 어쩌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먼저 지갑을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고 날 기억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어찌 처삼춘 벌초하듯 할까?</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5/c11b37e1df35e938bb23472cf4b9e6b31211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불문율처럼 여기는 것중에 하나는, 내가 말씀을 붙잡고 애쓸 떄 내 수고를 인정하신다는 사실이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을 떄 "나사렛에선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완강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부터 그를 알아 보셨다. 주님은 요행을 바라는 사람을 가까히 하지 않는다. 애씀과 수고의 현장에서 부르신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독실한 크리스찬인 목수 오야지가 내 사정을 알았는지 4일 정도 인테리어 작업을 예상했는데 이대로라면 3일이면 마칠 수 있을 정도로 속력을 내었다. 우리 인부들도 비지땀을 흘리면서 마당 배관작업과 정화조를 설치했다. 아직 로바시 작업 등 할일이 남아있지만 내일중 마무리 작업을 모두 마치겠다고 의욕을 불태운다. 다음주쯤 도배 장판 보일러 업자들에게 시간 약속을 받았고 전기업자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면 잔디를 깔고 공사를 마칠 생각이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늘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곳이라 일년에 몇번씩 다니는 길목이지만 막상 다녀 버릇하니 먼 길이 아니지만 처음 오는 인부들은 꽤나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 하루에 유류비로 2만원씩 더 주니 좋아라 한다. 목수들도 주택지로는 천혜의 장소라며 노년엔 속세를 떠나 이런 곳에서 살면 더 건강해질 거라며 명당 자리라고 호평한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아마도 집주인인 박목사님이 조경에 관심이 있고 꽃을 좋아하시니 시간이 지날 수록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질 것이고 총회장을 지낸 박현모목사님이 기념으로 복숭아 자두 등 과일나무들을 식재해 주셨기에 내 후년쯤이면 과일철에 방문하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대가 높아 해지는 광경이 일품일 것이며 뒤로 산이 평풍처럼 둘러쳐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 대한민국에서 몇안되는 명당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 &nbsp;&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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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5 Apr 2026 12:12:5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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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3/2c3c347fe1fde625ec54a7547a28d13922480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형색이 일용잡부만도 못하니 처음 현장을 찾는 사람들은 나에게 책임자가 누군지를 물어 올 때마다 내 몰골에 대하여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조적 오야지나 목수 오야지도 거의 현장에 있지만 넥타이 차림에 K2 정도의 의상에 초생달 모양의 표식이 있는 신발을 신고 개폼을 잡고 호령하는데, 정작 사장이란 작자는 남루한 옷차림에 인부들 틈에 끼어 허드레 일을 하니 이해하기 어려운가 보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편하게 살려 작정했다면 귀촌을 안했을 것이고 발악적(?)으로 정년을 채우려 했을 것이다. 모든 걸 내려 놓으려고 작정했고 가장 낮은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여기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nbsp;</div><div><br></div><div>내 현장안에서는 내가 분명히 갑이지만 한번도 갑질을 해본적이 없다. 누구와 얼굴을 붉혀 본적도 없지만 억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는다.</div><div><br></div><div>요한계시록을 보면,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말세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이기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풀릴 문제도 풀지 못하고, 묶여서 끌려가다가 쓰러지게 된다. 내려놓으면 쉽게 풀릴 문제가 많다. 갈등은 왜 생기는가? 통제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를 가지면, 갈등은 사라지고 묶인 것은 풀리게 되어 있다. 뭐든 빠른 시간 안에 변화시키려고 하면 폭력적이 된다. 나라를 빨리 변화시키려고 하니까, 폭력에 의한 혁명을 한다. 아이들을 빨리 변화시키려면 몽둥이를 들고 때리는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도 교인들을 빨리 변화시키려면, 강압에 의한 몰아침 밖에 없다.&nbsp;&nbsp;</div><div><br></div><div>하지만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으면, 폭력은 사라진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상황을 답답해했지만, 그냥 우셨다. 원치 않은 상황이지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는 폭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손발이 안맞으면 맞는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다. 목회 생활을 하면서 평탄한 길이 많았겠는가? 눈물의 힘든 시간이 많았다.&nbsp;</div><div><br></div><div>&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젊었을 땐, 사소한 일에도 발끈했지만 이젠 왠만한 일엔 달관까지는 아니지만 관조하는 여유가 생긴게 사실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weight: bold;"><font color="#f10b00">'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fon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라는 노랫말이 유행을 타고 있다. 그건 늙음을 합리화시키려는 자구책에 불과할뿐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게 내 지론이다. 봄에 돋은 싹들이 여름날 번성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잎새의 색이 바래지고 거칠어 지는 것과 같은 이치는 비단 겉모습만 그리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공사현장에선 왠만하면 모두가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미장공도 사장이라고 불러 주어야 좋아라 한다. 옛날엔 오야지의 권한이 막강했지만 지금은 같은 인부중에 한사람 정도의 취급을 받으니 옛날을 회상하며 그 때가 좋았지를 난발한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금방 냉각되기도 하고 살벌해지기도 한다. 나는 가능하면 우리 현장에선 큰소리가 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nbsp;&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3/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22492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자주 화를 내는 편은 아니지만 분노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게 내 최대의 단점이다.&nbsp;분노의 감정이 생기면 오랫동안 지속되기에 가능하면 화를 내지 않으려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분노는 오랫동안 인간 삶의 문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중요한 감정이다. 심한 경우 분노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스토아학파 후기 철학자인 세네카는 분노에 한번 사로잡히면 자식이 부모를 죽일 수도 있고, 선왕을 폭군으로 만들기도 하며, 가장 선한 존재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로 변하게 할 수 있으므로 분노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뿌리까지 제거할 것을 주장했지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릴 때부터 선친을 보면서 목사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오직 주님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보고 자랐기에 싫어도 싫다는 소릴 못하고 좋아도 속으로만 간직하는 소극적인 방식에 길들여 지면서 함부로 내 감정을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었다.&nbsp;그 결과 결국 병원신세를 져야 했었다.&nbsp;&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r></div><div>한 때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처방에 따르지 않은걸 후회했지만 그래도 세상을 내 기분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이고, 더군다나 교인들을 상대로 투쟁적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며, 눈엣 가시들을 다 제거하면 해결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nbsp;그래서 난 당회를 하면서 일곱명 중에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안건 자체를 결론짓지 않았다.&nbsp;물론 얼굴을 붉히며 싸울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nbsp;</div><div><br></div><div><div>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도 중용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 보았다. 분노를 적합하게 표출하고 분노를 제대로 순화해야 중용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 셈이다.&nbsp;이와 반대로 헬레니즘 철학에서는 분노를 일종의 ‘영혼의 질병’으로 분류하고, 인간의 행복과 정신적인 건강함을 위해 필히 제거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보았다.&nbsp;</div><div><br></div><div>아직도 나에게 이 문제는 결론을 내지 못한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분노를 표출하는게 좋은지, 아님 끝까지 참는게 옳은 것인지, 모든 사안은 각각 상황이 다르지만 세상을 순하게 살면 손해보는게 사실이다. 내 삶의 언저리 곳곳에 복병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였다.&nbsp;세상 곳곳에 악마의 덫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라는 걸 알기 까지는 어리석은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nbsp;대부분이다. 건강을 잃고, 인생의 쓴맛을 알고 난 다음에 덫에 걸리지 않고 사는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알게 된다.&nbsp;</div></div><div><br></div><div>한낮은 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아침 저녁은 아직 쌀쌀하다. 오늘도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날씨이다. 이런 흐린날이 지속되면 난 철학자가 되어 있을 것 같다.&nbsp;나는 기분이 언잖으면 두문불출하거나 입에 지퍼를 채우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病을 얻기도 했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방식이기에 그대로 성격으로 굳어진 것같다. 어떤 땐 내 성격이 싫을 때도 많다. 화가나면 소릴지르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nbsp;</div><div><div><br></div><div>하지만 지금껏 나는 한번도 소릴지르며 싸워 본 적이 없었고, 목소리 큰 사람관 친분 관계를 맺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 목소리 큰 놈(년)들은 남의 생명을 잘라먹는 암덩어리들이다. 교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강단에서 갑질을 부리는 인물이 예상외로 많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3/e5b4e1e8125d7c140206b451bf4c2ea02250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은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적이 없고 강단을 떠나면서 혹시라도, 부지중(不知中)에라도 나로인하여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에 집단심리치료(集團心理治療)를&nbsp;실시하고 떠나면 어떨까를 생각했었다. 경험론적으로 느낀바가 있어 제안해 보는 소리이다.&nbsp; &nbsp; &nbsp;&nbsp;</div><div><br></div><div>어려서부터 속으로만 삭이는 사람은 내면적 공상이 많고, 그 속에서 좌절된 욕구를 채우고 절제하지만,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재능이나 창조적인 면도 있다. 나에게 그런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얼음위를 걷듯 생활했다. 일회성 인생길에 서 있는 동안 멋지게 인생을 마감하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은 촌노가 다되었지만 나도 한 때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었다. 멋대가리 없단 소린 듣지 않았다.&nbsp;</div><div><br></div><div>내일부턴 다시 공주현장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기에 트럭을 빌려 정화조와 PVC 집수정 등을 실어 놓아야 하고 목수팀과 포크레인 장비를 점검하고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에 목자재를 주문해야 한다. 이란 전쟁으로 유류비가 만만지 않은데, 공주까지 배달하라니 난색을 표하지만 후한(?)이 두려워서인지 마지못해 응하지만 일단은 준비를 마쳐야 한다. 아침 6시까지 연무대 IC로 집결하라며 오늘 미리 상차를 해놓으라고 압력을 가했다.</div><div><br></div><div>전기 싱크대 설비 타이루 벽지 장판 보일러 업자 등에게도 그간의 관행을 무시하고 인건비 등은 아예 견적에 넣지 말 것을 주문했다. 교회 장로인 방통업자도 은퇴목사님이 살 집이란 말에 120만원중 105만원만&nbsp; 받아갔다니 도대체 얼마에 수주했느냐고 반문한다. 예술하는 사람은 작품에 올인하는 법이라며 세상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법이라고 일축했다.&nbsp;</div><div><br></div><div>군산시청에 가서 측량 성과도와 서울보증보험 회사를 방문하여 토지이동 강제이행금 서류를 만들어설계사무실에 가져다 주어야 한다. 이번주 안에 준공이 떨어져야 하고 누이네집 준공에 필요한 서류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몸은 부실한데 산적한 문제가 날 한곳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텃밭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전혀없다. 상추를 심으려고 땅을 일구어 놓았는데,&nbsp; &nbsp;</div><div><div><br></div></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5</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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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13 Apr 2026 22:51:38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별 걸 다 훔쳐간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264a83e8f6958a50b62da2ebe39219b02308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창세기 1장3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윌리암 아메스(William Ames)는 하나님의 창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능동적 창조와 수동적 창조로 나누어진다고 말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능동적 창조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이 세상에 만물을 직접 창조하신 것이고 수동적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들의 변이를 가리킨다.&nbsp;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아름답지 않을 게 없다. 인간이 그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시비가 생길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창조하신 목적이 있음을 안다면 세상엔 하찮은 게 없다. 하다못해 버러지같은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사역 안에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버려선 안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잘났으면 잘난대로 살고 못났으면 못난대로 살면 그 뿐이다. 가난하다고 비굴해질 필요가 없고, 못생겼다고 얼굴을 가리고 살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들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나에게 건강을 위해 골프를 배우라고 강요한다. 이렇게 공사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아둥바둥해봤자 인생무상이 아니겠느냐고 반협박조로 윽박지른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나는 내 삶을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내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고 남의 삶의 방식에 내 삶이 평가받게 되는 일을 지극히 경계하며 살고 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우리 집안은 '안되면 되게 하라'는&nbsp;해병대 구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안되면 되는 길을 찾으라!'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nbsp;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달란트가 다른데 오직&nbsp;하나에 올인하여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투자하는게 안스럽기만 하다. 물론 한 우물을 파면 언젠가는&nbsp;샘물이 터진다고 가르친&nbsp;교육의 문제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교육의 목표가 잘못된게 분명하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자녀들이 노량진 근처에 가보지 않은게 너무 고맙다. 우리 집안은 재수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조카나 생질들도 재수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nbsp;&nbsp;지금은 모두 장성하여 의사나 약사 직장인 전업주부로 있지만 재수생이란 말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대단한 집안이라 말할 순 없지만 모두가 제 갈길을 잘 찾아 가고 있어 부모가 걱정을 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자녀들이 최고가 되길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영혼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 매일 매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길 원한다. 그리고 남에게 지탄받지 않는 삶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원하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nbsp;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죄수"라고 말했다.&nbsp;</div><div><br></div><div>결국 나를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남이다. 이처럼 고수로 대접하고 인정해주는 것도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얼치기라고 부른다.&nbsp;</div><div><br></div><div>비트겐슈타인은 '얼굴은 육체의 영혼' 이라 했고, 키케로는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를 링컨은 마흔, 조지 오웰은 쉰을 기준으로 삼았다.&nbsp;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고 힘든 일의 연속이지만 내 삶에 연민을 느끼거나 동정하지 않으려 한다.&nbsp;</div><div><br></div><div>초라한 행색을 하고 다니지만 영혼없는 삶을 살지 않으려 분투중이며 내 삶에 환멸이 찾아오는 순간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매일 매일 창조적인 삶을 꿈꾸며 노력중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우월이 존재한다. 머리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등 특출하고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속에 정한 기간동안 살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올 거라는 분명한 사실을 안다면 자고(自高)할 수 없다.&nbsp;</div><div><br></div><div>뭐가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는가. 누구나 빈손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뿐이다.&nbsp;눈을&nbsp;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nbsp;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309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상을 살다보니 전혀 예상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인생을, 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nbsp;</div><div><br></div><div>예술가들은 누구나 자기의 작품에 서명을 한다. 자기의 공적이나 이름을 들어내고 싶어한다.&nbsp;그러나 여기 르네상스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작품에 결코 서명을 남기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시스틴 성당의 천정 벽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은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온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nbsp;&nbsp;그리하여 몇 달을 벽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그가 마침내 불후의 명작 "천지 창조" 를 완성했는 데, 흡족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교회당 문을 나서던 순간 그는 눈부신 햇살과 푸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nbsp;</div><div><br></div><div>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때 문득 그에게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그 어디에 서명 같은 것을 남기시지 않았는데 기껏 작은 벽화를 그려놓고는 나를 자랑했다니....&nbsp;</div><div><br></div><div>그는 즉시 되돌아가 천정 벽화에서 자신의 서명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는 어떠한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더 배운 것이 그리 자랑스런 일인가. 조금 더 크게 키운 교회가 그리 자랑하고 싶은가. 그렇게 총회장하고 싶은가. 만세반석 열릴 때&nbsp;모두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이다. 오히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세상에선 쓸모없는 인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nbsp;</div><div><br></div><div><div>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逆風)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順風)이 된다. 움켜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또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내가 평생을 꿈꿔왔다고 믿었던 오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살다보면 그 모든 것들의 ‘진짜 모습’에 대한 고민이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때가 있다. 가시 돋친 한마디에 마음을 베이는 날이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외로움까지 쏟아진다.&nbsp; &nbsp;</div><div><br></div><div>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nbsp;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가마솥은 더 늦게 끓는다'는 격언을 떠올린다.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품는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한 개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늙은이는 지름길을 안다.&nbsp;&nbsp;나일먹고 보니 이제서야 겨우 눈을 뜨고 사물을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nbsp;</div><div><br></div><div>내려놓아도 손해될 게 전혀없다. 내 시대는 끝났어도 그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가 자라고 있기에 최소한 욕심만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nbsp;그랬듯이&nbsp;시간은&nbsp;시나브로&nbsp;또&nbsp;다른&nbsp;계절을&nbsp;데려다&nbsp;놓고&nbsp;새롭게&nbsp;시작하라&nbsp;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div></div><div><br></div><div>소장을 비롯 인부들을 충청도 공주 현장으로 보냈다. 오늘중 지붕 박공공사와 물통을 설치 완료하라고 임무를 부여했다. 내일까지 중요한 일정이 잡혀있어 자릴 비울 수가 없고 그간에 밀린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 약간 염려스럽긴 하지만 인부들을 각 현장으로 나눠 투입시켰다. 공주현장 근처의 인부들이나 자재를 구입하면 조금 절약은 되겠지만 여간 어려운게 많아 익산에서 인부와 업체를 동원하려니 자연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 내 정위치는 여전히 공주현장이고 하루라도 빨리 마쳐야 다음 현장도 안정이 될 거란 생각에 올인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오늘은 예배를 마치고 그간에 방치해 두었던 작은 텃밭을 관리하려 한다. 일단 풀을 제거하고 비닐 멀칭을 하는 등 농사지을 준비를 마쳐야 한다. 오늘이 아니면 올해 농사는 접어야 될 상황이라 마음은 공주현장으로 따라 갔지만 몸은 텃밭을 주시하고 있다.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 들어오다 보니 고양이가 집을 나갔고 호미 낫 등 내 유일한 농기구를 누군가가 다 집어 가 버렸다. 별 걸 다 훔쳐간다.&nbsp;&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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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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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1 Apr 2026 23:10:3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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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3b9e0715a7da28d08a2ded4b2f9136db11225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nbsp;읽노라’&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도&nbsp;그러는지는 몰라도 우리 학창시절엔 음악 시간이 꼭 배정되어 있어&nbsp;일주일에&nbsp;한번씩&nbsp;음악실로 수업받으러&nbsp;다녔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른 반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음악실은 교정의 한쪽 구석에 있었는데, 다른 시간은 늦장을 부려도 음악시간은 지각생이 없을 정도였다. 학교에서 유일한 여교사이기에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아무개의 애인이란 소문이 꼬리를 무는 루머의&nbsp;산실이었던&nbsp;음악교실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nbsp;때 배운 노래가 박목월 시인의 노랫말 ‘4월의 노래’였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nbsp;읽노라’로&nbsp;시작하는 노랫말이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 같은 데, 음악 선생님이 이 노래를 즐겨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nbsp;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약혼자가 있는 한 여성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인 테,&nbsp;당시 이 소설을 읽은&nbsp;독일 청년들이 잇따라 자살해 ‘베르테르 효과’로 익히 알려져 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지금이야&nbsp;흔한 사랑의 열병으로 가볍게 읽힐 수 있겠으나, 당시로서는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대의 모든 금기를 민감하게 건드림으로써 식자들 사이에&nbsp;논쟁을 불러일으켰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금기와 전통의 파괴뿐 아니라 당대의 도그마적 기독교에 대한, 신분사회에 대한, 기성도덕에 대한&nbsp;반기를 들고 있는 &lt;젊은 베르테르의 슬픔&gt;에는 독일 낭만파를 이끌어간 ‘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Drang)’의 이념과&nbsp;정열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nbsp;</span></div><div><br></div><div>소설이 출간될 당시 독자들은 베르테르의 비극적 운명에 눈물을 흘렸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베르테르의 복장이 크게&nbsp;유행했다. 유부녀를 사랑하는 풍조가 유행했으며, 권총 자살을 모방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가&nbsp;나타났다. 목련의 계절은 4월이지만 가을에 더 어울리는 노래이긴 하지만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벚꽃이 지고 목련도 서서히 꽃잎을 떨구고 있는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nbsp;&nbsp;</div><div><br></div><div>마음이 울쩍할 때 자주 찾는 곳 충남 서천의 '비인' 갯마을 체험장을 찾았다. 비가 내린 탓인지 역시 쌀쌀한 기온 탓인지 주말이지만 인적이 없고 바람에 훝날리는 꽃잎이 철이른&nbsp; 바다를 더욱 을시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조용한 까페를 찾았다. 분위기는 거의 포장마차 수준이지만 음악만은 70년대의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낯익은 음악이 깔리고 있다. 학창시절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 몇곡쯤 안 불러 본 사람이 없겠지만 나 역시 7080 노래라면 거의 섭렵을 했을 정도였다.&nbsp;&nbsp;</div><div><br></div><div>공사비 내역을 기재하는 노트에 붙힐 곳이 없는, 뜻모를 편지를 낙서처럼 끄적거리고 있었다. 편지를 써본지가 까마득한 옛날이다. 굳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에 파병된 외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알린 것도, 10대 까까머리 사내와 단발머리 처녀 간 사랑과 이별을 전한 것도 편지였다. 어느 미래학자가 우리 생애에 사라질 9가지 중 가장 빠른 것이 우체통이라고 했지만 기다림과&nbsp;반가움의 정서마저 사라지는가 해서 아쉽기만 하다,</div><div><br></div><div>우리&nbsp;시대는 편지쓰는게 유행이었다. 지금은 편질 써 본 적이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선친께서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통 정도는 편지를 보내셨던 것 같다. 아현동 3가 35번지 기숙사에 대한 추억이 있어 그러셨겠지만 당신의 뒤를 따르겠다는 둘쨰 아들이 어쩜 안스러워 그러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선친께서는 형제간 친척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nbsp;곧잘 편지를 썼다.&nbsp;</div><div><br></div><div>학창시절에 펜팔을 안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편지쓰는 일은 보편적이었다. 편지는 진한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편지는 말과는 다른&nbsp;매력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nbsp;이에&nbsp;따라 글로 쓴 편지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입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nbsp;</div><div><br></div><div>편지를 쓰기 위해 일일이 편지지와 봉투를 구입했을 것이며, 그 편지에&nbsp;쓴 글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을 것이며, 또한 상대방을 생각하며 말보다는 다른 깊음으로 한번 더 생각해서 작성했을 편지에서 더욱 많은 감동을&nbsp;받는 건 당연할 것이다.&nbsp;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기 때문일까, 교과서에 실린 글이나 저자들의&nbsp;이름은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게 마련이다.&nbsp;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비롯하여&nbsp;정비석의 ‘산정무한’,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등은 교과서에 실려&nbsp;더욱 유명해진 작품들이다. 이들 명문장뿐 아니라 교과서의 저자들도 쉽게 잊혀지지&nbsp;않는 이름이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1/10/16/1f39959fa48539fcfc5341a2440523f31146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서천 '비인' 바닷가는 갯벌 냄세보단 진한 향수의 냄세를 간직한 곳이다. 썰물 때라 그런지 바다가 속살을 들어내려 한다. 억만년 전부터 반복된 일이지만 나에겐 다른 의미를 일깨워 준다. 기세등등하게 밀고 들어왔겠지만 불과 몇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비워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밀물 다음은 썰물이라는 걸 내 시야에서 비웃듯 증명해 주는 것 같다. 물들어 올 떄 노젓지 못한 회한의 자책이 긴 한숨속에 묻어 나올 무렵 내 기분을 가장 잘아는 친구가 곁에 와서 선다. 말은 없었지만 그도 밀물의 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사람일 수록 들숨보다 날숨이 길다. 이런 곳에 오래 머물면 안된다. 잠시 눈물 한방울이라면 모를까 오래 있으면 病이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바닷가에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다. 예전엔&nbsp;애완견이나 그냥 개였던 것이 최근 유행하는 ‘반려견’이란 말로 가치가 상승했다. 그것의 이면엔 인간이 아닌 동물에 자신의 고독을 달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에서 이젠 흔해진 ‘고독사’란 단어를 접할 때면, 개의 가치가 왜 상승하게 됐는지 이해할 만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끼리론 더 이상 안 되는 그런 사회가 된 것이다. 그냥 함께 모여 살다가 그냥 그렇게 헤어지는 세상,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가족의 탄생이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구성해서 미래를 책임질 구성원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제 그 의미도 감감한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점점 고독해 가며, 도리어 불행해가고 있다. 그래서 인생 말년에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나 보다. 고독사란 위험을 피할 수 없는 시대,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만 다가오는 현실이기도 하다.&nbsp;&nbsp;</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생, 참 역설적이다.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기에 뭉쳤고 관계를 맺었고 사회를 만들었고, 동료를 만들었고, 가족을 만들었다. 그런데 고독해진다. 그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필요한데 인간은 관계를 만들게 되며, 관계 속엔 피치 못하게 구속과 거래가 존재하게 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관계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더 이상 필요 없거나 버겁게 되는 순간, 혈육이든 부부든 깨지는 게 요즘이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외롭게 되는 것인가 보다.<br>&nbsp;<br>그래서 인간이 아닌 반려견이 필요하게 되었고,&nbsp;&nbsp;그것의 이면엔 인간이 아닌 동물에 자신의 고독을 달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성경을 보면 '개'가 간간히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람을 개에 빗대어 표현한 경우이다. 열왕기서에 하사엘이 자신을 낮추어 '개 같은 종'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 좋은 예인 데,&nbsp;이사야서에는 부패한 종교 지도자를 개로 서술했다. 그리고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던 가나안 여인 또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자신을 개로 묘사했다.<br>&nbsp;<br>개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심지어는&nbsp;자기를 낳아 준 부모는 나몰라라 하면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아닌&nbsp;스테이크를 제공하는 것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내 집에 있는 한 개는 여전히 개일뿐이다. 난 사람은 사람같이, 개는 개같이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개에게 나의 반려가 되어 줄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사람처럼 처신하라고 요구하진 않는다.</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도 역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개처럼 살면 &lt;개같은 놈&gt;이란 소릴 듣는다. 아니 &lt;개만도 못한 놈&gt;이 되고 만다. 약속을 천금처럼 여기고, 아무리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지만 시종이 여일해야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부득이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상습적이 되면 피차에 고달퍼진다.&nbsp;</span></div><div><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51, 51, 51); font-size: medium;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51, 51, 51); font-size: medium;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참 좋아했다. 산도 한라산 지리산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소싯적엔 날다람쥐처럼 돌아다녔지만 나이가 들면서 바다를 선호했고 지금도 여전히 바다가 더 좋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가 있는 동해안도 좋아하지만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바다를 더 좋아하고 바다 내음 물신 풍기는 갯벌의 바다를 더 좋아한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공자님 말씀에 "어진 자는 의리(義理)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하고, 지혜(智慧)로운 자는 사리(事理)에 통달(通達)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씀이다.</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골짜기를 흐르는 물을 보노라면 물은 장애물이 있으면 그 장애물을 감싸고 흐른다. 포용성, 관용성에서는 물을 능가할 자가 없다. 사람은 장애물이 있으면 부딪히며 대적하려고 하여 마찰이 발생한다. 장애물을 감싸 안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장애물을 감싸고 흐르는 물에서 포용성을 배워야 한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medium;">나는 바닷가에 설 때마다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을 얻는다. 강보다 큰 바다는 더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개방적이고 수용적이다. 쉴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85a41fcf13b0df8f5c623e3cdcdc046111430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태양도 지치면&nbsp;바다에 눕는다"고 했던가.&nbsp;바다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다. 바다는 모든걸 포용한다. 주위의 모든 것은 받아들이고 흡수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며 위대한 사람이 아니런가. 그래서 바닷가에 서면 철학자의 강의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낀다.&nbsp;&nbsp;</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바다는 작은 물 큰물이나 가리지 않고 더러운 물 깨끗한 물이나 어떠한 물이든 사양하지 않고(海不讓水 故不能其大), 산은 적은 흙이나 큰 돌이나 가리지 않고 능히 받아들여 크게 높일 수 있다(山不辭土石 故能成其高)"는 말이 있다.</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돌을 조그만 연못에 던지면 그 파장은 엄청나게 크지만 바다에 던지면 약간의 파장만 일고 만다.&nbsp;그 넓고 푸른 바다는 모든걸 포용하고 정화한다. 모든 고통, 시름 다 끌어안았기에 멍든 파란색일지 모르지만 자못 완전을 향해 노력하는 인격체라면 이를 닮으라고 무언 손짓한다.</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바람은 바다를 육지로 내몰기라도 하듯이 거세게 몰아부친다. 누군가는 파도가 바람탓이라고 또 어떤이는 바다가 거칠어서라고 한다.&nbsp;언뜻보면 바람과 바다가 뒤엉켜 한바탕 싸우는 것 같다. 그러나 바다는 바람에 저항하지 않는다.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nbsp;바람에게 모든걸 내맡겨 스스로 몸부림치며 자신을 뒤집는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것은 정화다.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이다. 땅에 사는 생명과 자신의 품에 사는 생명을 살리려는 숭고한 아픔이다. 그래서 혼자있는 시간은 바다를 찾는다.&nbsp;살다보면 미운 사람도 있고, 기피하고픈 사람도 있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nbsp;내 입맛에 안맞는 사람도 있고, 밥맛떨어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medium;">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럴 수록 바다의 마음을 닮아보려고 낙조의 시간 바다를 서성일 때가 종종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내일은 소장과 인부들만 공주로 파송했다. 하룻만에 지붕 박공 물받이 공사를 마치고 돌아오라고 했다. 약간은 무리겠지만 시간을 절약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고 오늘 전기업자를 보내 배선작업을 했기에 곧바로 실내 인테리어 작업에 돌입하려고 활당량을 선정해 주었다. 바닷가에서 오래 머무른 탓에 콧물감기에 걸린 것 같지만 지난 가을에 독감예방주사를 맞았기에 오늘밤을 푹쉬면 내일은 거뜬할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도 철석이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듯하다.&nbsp;&nbsp;</span></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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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1 Apr 2026 11:51:5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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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해로 가는 이유</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9/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215636.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다니엘서 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는 말씀이 있다.&nbsp;&nbsp;</div><div><br></div><div>다니엘의 삶에 나타난 많은 기적적인 승리의 바탕에는 그의 거룩한 삶의 습관이 있었으니 그것은 감사하는 삶이요, 기도하는 삶이었다.&nbsp;<b style="font-weight: bold;">'거룩한 삶의 습관'</b>&nbsp;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할 명제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nbsp;</div><div><br></div><div>'생각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지고 습관은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생각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일게다.&nbsp;옛말에 '제 버릇 남주랴'라는 말이 있다. 몸에 붙은 습관이나 머리에 굳어진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겠다. 요즘&nbsp;실감되는 속담이다.&nbsp;</div><div><br></div><div>제 버릇을 남 못준다. 본래 갖고 있던 버릇, 본태성 인 버릇, DNA 염색체를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버릇, 누군가에게서 배우지도 습득 하지도 않았지만 일상처럼 자신도 모르게 몸으로 행하게 되는 행위를 '제 버릇'이라고 한다면&nbsp; 그걸 고친다는 건 정말 어렵다.&nbsp;아마도 버릇은 몸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 생각 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행위 일 것이다.&nbsp;</div><div><br></div><div>머릿속으로 다짐을 했다고 해서 몸이 그것을 기억 하여 약속을 이행 한다는 보장이 없는 그런 것이다. 한번쯤의 오류를 누구나 사람들은 눈 감아 주는 형색이지만 그 오류의 번잡을 버룻 처럼 붙들고 보증 수표 처럼 난발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눈을 돌리고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외면 하게 되고 존재를 인정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의 약속이라도 어떻게 하든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 편이고 어쩌다 그 약속을 지키지못해 오류를 범 했을 땐 본인의 실수를 백배 사죄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인의 진실을 일으켜 세우려 하는게 정상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버릇이 있고 그것이 잘못된 거라면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됨의 도리이다.</div><div><br></div><div>요즘 트럼프의 행적에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못하고 그의 말한마디에 경제가 출렁인다. 휘발유 경유가 2천원을 뛰어 넘었고 한번 주유할 때마다 10만원씩 소요되는데 장거리를 운행하다 보니 사흘에 한번씩 주유소에 들려야 하고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싼 시대를 살고 있다. 싼맛에 경유차를 타던 시절은 옛말이고 전세계인이 호루무즈를 매일 검색하며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div><div><br></div><div>2주동안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을 선언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트럼프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 버리겠다고 엄청난 폭탄을 아직도 쏟아 붓고 있는 가운데 부활절을 기해 어린아이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사인을 받아가면 장차 25000달러를 받을 거라며 마치 시정잡배 장삿꾼이나 할만한 소릴를 늘어 놓는데 이런 해프닝이 한두번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사람은 안변한다. 한번 만들어진 습관을 바꾼다는 건 사막 한가운데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이야기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버릇있는 아이를 보면 그 부모의 인품을 생각하게 되고, 집안 내력까지 알 수 있다. 나도 평상시 버르장머리 없단 말을 듣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조부님께서는 어른보다 숟가락을 먼저 집어서는 안되고 어른보다 숟가락을 먼저 놓아서는 안된다고&nbsp;입에 침이 마르도록 교육하셨다. 먼저 식사를 마치면 숟가락을 밥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가 어른이 식사를 마치면 그 때서야 내려 놓는게 예의라고 배웠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현장은 사장이나 인부의 차별을 가능한 두지 않으려 밥상을 차려 놓고 아무나 먼저 식사를 하도록 배려했다. 하는 일이 각각 다르기에 일제히 식사하기가 어려워 먼저 오는 사람들이 먼저 먹는게 당연지사이겠지만 조기나 계란후라인 늦게 오면 남아나질 않는다. 분명히 숫자에 맟춰 음식을 시켰기에 일찍 오나 늦게 오나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게 상식인데 항상 모자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별 것도 아닌데 남의 것을 손대는 작자들이 있다. 무슬림들은 돼지 고기 등 가리는 음식이 많기에 이들을 배려하여 특별 음식을 따로 준비시키는데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부들이 있다. 내가 제일 늦게 식사를 하기에 꼭 바라는 건 아니지만 먹을만한 것이 없어 숟가락만 빨다 굶을 때가 많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계란이나 조기 등 생선은 일부러 좋아하지 않는다고 양보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밥먹는 습관을 보면 집안 내력을 알 수 있고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인간성을 알 수가 있다.&nbsp;나는 누이나 형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먼저 숟가락을 집어 들지 않는다.&nbsp;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습관이 되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다. 내 주변엔 음식을 먹을 때 쩝쩝소릴 내는 사람이 여럿이다. 고치기 어려운 습관이던지, 아니면 구강 구조가 소리가 나는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밥맛이 떨어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본인들이야 소리를 내던말던 무슨 상관이냐 할지 모르지만 양반집 가풍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어떤 땐 숟가락을 빼앗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동으로 먹는 찌게 그릇에 숟가락을&nbsp;넣는 순간 나는 밥을 물에 말아 버린다. 그리고 내 반찬은 김치에 한정된다. 함께 찌게 그릇을 사용할만한 비위가 없기에 남의 숟가락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내 버르장머리도 형편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정말 버르장머리 없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9/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2157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의가 없다는 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치명적이란 걸 알아야 한다. 버르장 머리를 고친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관뚜껑을 덮을 때 변한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목회여정에서 통성기도를 강요해 본적이 없다. 통성기도를 안하니 '주여 삼창'이란 말을 사용할 일도 없었다.&nbsp;</span></div><div><br></div><div>왜 '주여삼창'이 한 때 유행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nbsp;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너무나 이기적이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욕심으로 가득한 것을 본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는 그 자체를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 전에 선행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이성이 없는 짐승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기도에 대하여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 본능적이긴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 두손을 불끈 쥐고 태어난다. 손바닥을 보이는 건 죽었다는 사인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땐 손을 펴고 죽는다. 그 좋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떠난다. 그래서 어차피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고 소회(所懷)를 정리했다.&nbsp;</div><div><br></div><div>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 방랑자로 운명지워졌다. 이 땅에서 영원하지 않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근래 썬그라스를 끼는 것은 처진 눈가의 주름때문인 데, 어차피 감출 수 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아직은 젊다는 걸 알리고 싶어 발광(?)을 하고 있을뿐이다.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nbsp;썬그라스를 끼고 실내에 들어가면 너무 어두워 더듬거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썬그라스를 끼고 있다는 생각 대신 실내가 어둡다고 생각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색안경(色眼鏡)을 끼고 보면 진실을 볼 수없다. 타인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은 없다. 거기에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이 더해지면 사람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는 어느새 사실이 되고 진실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색안경 너머에는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숨겨져 있다. 이제는 색안경(色眼鏡)을 끼고 볼 사람도 없고&nbsp;처진 눈가의 주름을 감출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9/1e16e5d80d3f844d6c22ebe268102dc52159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공주현장은 방통을 했기에 이번주까진 출입할 수가 없어 비를 핑게대고 며칠간 쉬기로 했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오늘까지 비가 내릴 거라니 모처럼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소장에게 3천만원짜리 시골 주택을 구입해 주었다. 몇년간 비워 놓았기에 거의 흉가 수준이지만 뼈대가 튼튼한 집이기에 리모델링을 하면 몇천만원 정도는 이익을 볼 수 있는 집이기에 무조건 사라고 강요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기집을 가졌다고 좋아라 한다. 원래 이 집을 은퇴한 목사님에게 주려했지만 뉴라이트 사상에 쩔어사는 꼬락서니가 볼썽사나워 소장에게 넘기고 말았다. 오전에 수리할 부분을 체크하고 공주현장일을 마치면 곧바로 수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충 3천만원 정도가 소요될 거 같은데 시내가 가깝고 창고도 넓어 수리하면 재산가치가 괜찮을 거란 확신이 드는 곳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가 뜸해지니 인적이 드문 호젖한 바닷가라도 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바다는 육지에서 보면 풍경이지만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을 때는 사상이다는 말이 있지만 함부로 범접(犯接)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서해바다를 좋아한다. 일출을 보러 동해를 찾는 사람보다는 이제 낙조를 보러 서해를 찾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안면도 정도라면 내 체력정도나 운전 경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감당되는 되는 곳이기에 나들이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무쇠 덩어리가 아닌 이상 오늘은 우요일을 핑게삼아 무조건 늦장을 부리기로 했다. 목욕도 하고 오랫만에 면도도 하고 숨겨 놓았던 향수도 바르고 나들이를 해야겠다. 지난 주일은 주봉리 촌교회에서 예배를 드려 본교회를 가지 못했기에 이번 주일은 소장에게 인부들을 데리고 들어가 지붕 박공작업과 물받이 작업을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주도 빠지면 제명 처분을 받을지도 모르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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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9 Apr 2026 22:01:4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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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요일 아침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8/98e6ea0dcfc0173504024ee07271bdb123063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 오후부터 많은 비가 내릴 거란다. 어제 공주 현장에 방통을 쳤기에 일단 며칠간 양생되는 동안 출입을 할 수 없기에 현장을 퍠쇄했지만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활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위해 준비할게 많아 비 핑게를 대고 오랫만에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뭉기적거렸다.&nbsp;&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가 내리면 골사현장에 대형 차량의 출입이 어렵기에 건축하는 사람들은 비는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비는 자연을 꺠우는 단비임에 틀림없다, 봄비 머금은 천지가 촉촉할 것이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자취를 감추겠지만 본격적인 봄이 시작될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번 비가 내리고 나면 나무들이 너무도 싱싱하게 보일 것이다. 갓 피어난 새순들의 연한 푸름은 꽃의 붉음보다 아름답다. 진초록위의 연초록이란 청순한 이미지는 화가들조차 잘 그려낼 수 없는 그린 색의 난해함이자 우리들 가슴속 깊은 곳을 선연하게 만들어 주는 청량제이다.&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런 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게 봄비가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사람 세상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봄비 같은 삶이란 누구든 봄비가 지난 한참 후에라야 제 가슴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적셔졌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봄비소리는 여전히 소리 없이 내리 듯. 그때나 지금이나 조용히 생명을 일으키고 기르듯 한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까지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밭을 가는 사람, 멀칭을 하는 손길, 하다못해 부지깽이도 거들어야하는 바쁜 나날이었을테지만 오늘 하루는 모두 일손을 놓고 하늘의 고마움을 만끽했을 것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는 정말 고마운 존재이다. 이곳의 내 이웃들은 인생을 그다지 복잡하게 보는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나를 비롯해 나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 확연히 보인다.&nbsp;멋있는 말로 그 이유를 대자면 단순한 삶이 가지는 아름다움일 테고,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자면 가난한 삶이 주는 불확실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nbsp;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충만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만큼 충만하게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말이 그들의 가난한 삶을 낮추어 보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들의 가난을 미화할 이유도 멸시할 이유도 없으니 나는 그저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할 뿐이다. 가난한 이웃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며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 안락하고 나태하게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스스로가 괜찮은 삶이라 여기는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가지기 쉽지 않은 축복이며, 희망이라는 또 하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는 길이리라.&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지금 가난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얼마나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에서 나누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긍정적인 경험들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과격하진 않지만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여지껏 마음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이곳을 선택하면서 삶을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작정했다. 불확성이 충만한 곳이긴 하지만 남의 눈치를 안보고 이중적 태도로 상대방을 기만하는 이 지긋 지긋한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8/517fa0cfe467a85bb40da423aa4e8c76230728.jpg" width="480" align="left" class="photo" alt="">이곳의 생활. 내 생전 이런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몸서리가 쳐진다.&nbsp;사실 목회자 생활이 고달프다고 하지만 정신적 고뇌는 있을런지 모르지만 솔찌기 목사란 직업처럼 편한 직업이 없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으며 경제적으론 넉넉하진 않지만 초창기 선배들에 비하면 몸으로 때우는 고생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막노동판에서 한시간만 일하면 모두 거품을 물고 쓸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게 사는 사람일 수록 건강하다는 사실이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건축 자재상을 하는 고교 후배가 앞으로 건축 관련 일을 몇년이나 할 예정인지를 묻는다. 힘닿을 때까지 할 예정이지만 한 5년쯤? 이라고 답변을 했더니 자신과 협업하여 20억원 정도를 벌자고 꼬드긴다. 영 하나를 빼면 가능한 목표일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그 정도의 목표를 위해 개고생(?)하느냐고 나란 사람을 이해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개고생'이란 말에 꼿혀 한참을 상념에 잠겼다. 나는 농사를 짓고 건축을 하면서 고생은 했지만 그 걸 개고생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그런 날 한심하게 보는 후배가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나는 호구지책때문에 일하는게 아니라 아무일도 안하면 더 이상 나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일을 즐긴다고 말해주려다 그만 두었다. 고단하긴 하지만 아프단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div><div><br></div><div>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고난은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을 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고백한다. 고난이 없다면 인간은 자고하게 되고 안하무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실패는 인간을 더 겸허하게 겸손하게 만든다.&nbsp;</div><div><br></div><div>영국 속담에 보면 "사람에게는 반드시 피해 가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nbsp;<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낯선 개, 홍수,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font></b>이라고 한다.&nbsp;낯선 개를 만나면 두렵고, 홍수도 공포의 대상이다. 그중에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는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낯선개에게 물리는 것이나 홍수에 휩쓸려도 큰 일이지만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을 곁에 두면 필연적으로 망하게 된다.</div><div><br></div><div>봄비치곤 비가 꽤나 올 모양이다. 하지만 봄비는 히루종일 내리진 않는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릴 것 같아 일이 없단 핑게를 대고 오랫만에 시내로 나갈 생각이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찜질방에 가서 땀을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조금있으면 포기할게 편하기에 일단 외출할 생각이다. 대게는 이런 날이면 절친을 불러내고 취미생활에 몰두하겠지만 나는 이제 혼자있는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런 번거로운 일을 가능한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div><div><br></div><div>섹스피어의 어록중에 '힘들 때 울면 3류, 참으면 2류, 웃으면 1류'라는 말이 있다. 힘이들면 힘든대로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며 참는 훈련에 안간 힘을 쏟는 걸 보니 2류 인생 정도로 올라서는가 보다. 전에는 당연히 3류 인생을 살았다. 난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활달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가리는게 많은 편이다.&nbsp;</div><div><br></div><div>영국에서 만든 한국 안내서에 '한국에서 기업을 성공시키려면 개인적인 인맥을 파고 들라'고 했을 정도로 우리네 풍토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어떻게 맺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판가름나게 된다. 실제로, 우리의 주위를 잘 살펴보고 분석해 보면 내로라하는 사람치고 독불장군처럼 '나홀로' 성장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8/bae80cf80fec5b0bd6ee796a3cca139f2308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종종 나에게 생각을 바꿔 보라고 권면하는 소릴듣는다. 물론 적극성을 띠고 인맥도 관리하고 고지식하게 살지 말라는 말일게다. 그러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lt;일부러&gt;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에, 즉 의도적이란 의미가 포함된 것이기에 잘 안된다.&nbsp;</div><div><br></div><div>난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만큼 비위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고지식하게 살진 않으려 그 말에 귀를 기우린다.&nbsp;</div><div><br></div><div>뭔가 갈등의 앙금이 있고, 인간관계가 친밀하지 못하다면 세월의 흐름에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 첫 단계이자 핵심이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nbsp;<span style="line-height: 1.5;">일부러라도....&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사고방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이것이 금세기&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인류최대의 발견이다" - 하바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생각이 바뀌면&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세상이 바뀌고&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나는 공사현장에 있는 동안에도 왠만해선 일일히 간섭하지 않는다. 한번 지시해 놓으면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감독할뿐 차안에서 인부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볼뿐이다. 피곤한 거 같으면 쉬게하고 내 생각과 전혀 다를 때만 간섭할뿐 거의 위임해 놓고 지켜볼뿐이다. 하루종일 차안에 머물지만 소장은 수시로 나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사실은 나보다 더 전문가이기에 가능하면 잔소릴 하지 않는편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비가&nbsp;</span>내릴 거란 말에 며칠간 쉬자고 했지만 조금있으면 오토바이로 달려 올 것이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시간은 해외 여행을 떠났을 떄뿐이다. 요즘은 해외도 함께 갈 때가 많다. 살다보면 많은 인연이 있지만 이 정도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는게 흔치 않은데 이해관계를 떠난 관계로 발전시키는게 중요하다.&nbsp;</div><div><br></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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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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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8 Apr 2026 23:11:5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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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벚꽃이 피는지 지는지</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7/dd08339f6fa1633ed128580c619298881151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농촌의 봄은 농토의 풀씨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로 시작된다. 농부들의 노래도 잡초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전의를 그렇게 불태우고 있다.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편 이제 막 봄볕을 만끽하기 위해 고개를 내민 잡초들이 육중한 트랙터 바퀴에 맥없이 갈아 엎어지는 봉변을 당하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것도 모자라 이번에&nbsp;<span style="line-height: 1.5;">독한 제초제 세례를 맞는 잡초. 발 한번 붙여 보려고 안간힘 쓰려는 잡초와 이를 몰아내려는 인간과의 전쟁, 봄을 맞은 농촌은 그야말로 총성없는&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전쟁터이다.&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지금도 듬성 금성 돋아나는 잡풀이 신경쓰이지만 조금있으면 내 일상은 매일 풀과의 전쟁이 될 것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호미 한자루로 농작물을 심기위해 밭갈이를 하면서 밭에 우후죽순으로 돋아나는 잡초를 제거해 주는 일과 홀리팜 전체를 살피려면 하루 해가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언젠가 풀과의 전쟁이란 말을 무심코 사용할 때 오랜 친구 하나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24~30)를 들려주며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는 말씀이 있는 데, 풀을 안 뽑는게 성경적이라 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설명할 때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고 표현할 정도였다(막 4:34). 예수님께서 비유를 즐겨 사용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주제 자체의 특성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적인 실재인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우리가 경험해 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우리는 비유를 통해서만 겨우 영적인 실재인 천국을 조금 빗대어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유에 있는 그 자체의 특성 때문에 비유는 종종 이해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가 많았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24~30)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비유 속에서 주인이 말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 이 말씀에 따라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교회 내에 존재하는 가라지(거짓 신도)를 뽑아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망설이곤 한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참신도)마저도 뽑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하지만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권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요일 4:1),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 신도들을 분별하여 출교시키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5:13). 성경은 교회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을 때 권고하여 회개하는 것을 도울 것이지만,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출교시켜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18:15~20).&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만일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예로 들면서, 교회 안에서 죄악을 악의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을 출교시키거나 치리하지 말고 그냥 놔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교회에는 끊임없이 가라지와 같은 자들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때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들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도 생긴다(마 7:15). 심지어 그 거짓 선지자들은 귀신을 내어 쫓기도 하고 말씀도 아주 파워풀한 메시지를 선포하기도 한다(마 7:22~23).&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우리는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쉽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갈 3:1).</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마13:27절에 보면 &nbsp;'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nbsp;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씨를 뿌리셨는데, &nbsp;마귀는 가라지를 뿌렸다고 하는 대목에 내 관심이 집중되었다.&nbsp;</span>홀리팜을 거칠게 만드는 잡초를 마귀가 뿌렸다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건 아니지만 난 이 풀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교회안에 성령의 역사와 함께 마귀도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정말 가라지와 알곡은 자랄때에는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힘들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파밭엔 파처럼 생긴 풀이 자라고, 무우밭엔 무우처럼 생긴 풀들이 자란다.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열매가 맺힐 때를 보면 알곡은 익어 고개를 숙이는 반면 가라지는 쭉정이가 되어 구별이 쉽게 된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7/ae52af3c54b561c51c699dc9ec2dab92115303.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땅콩이 처음 새싹을 낼 때와 울금이 막 돋아날 때, 그리고 모든 작물의 새싹이 나올 때 이게 뭔가를 몰라 시기를 놓치는 때가 많았다.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약간 자랄 때까지 방치했다가 확연히 구별될 때 일일히 수작업으로 풀을 뽑으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이것들은 식물과 거리를 두고 자라는 게 아니라 거의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고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알곡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 진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현역에 있을 땐 가라지를 제거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nbsp;</span>그간 몇번의 텃밭을 일구면서 거의 풀이 없는 깨끗한 밭을 만들어 왔던 경험이 있기에 힘이 들긴 하겠지만 이번에도 별로 걱정하진 않는다.&nbsp;</div><div><br></div><div>다행히 내 텃밭엔 거친 풀은 별로 없다. 전엔 질경이와 억새때문에 손이 성할 때가 없었지만 지금의 텃밭엔 냉이와 쑥 그리고 토끼풀 정도여서 힘들이지 않고도 풀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nbsp;</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밭을 일구다 보니 순식간에 대파 심을 자리가 만들어졌다. 예전엔 논을 밭으로 개간한 땅이라 돌처럼 단단한 땅에서 고생했는 데, 이번 흙은 참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퇴근후엔 마치 어린 아이들이 흙장난하듯 밭에서 몇시간 동안 흙을 매만지며 논다. 시골일은 노동이라 생각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놀이라고 생각하면 몇시간쯤은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오늘도 공주현장을 다녀오는 중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들어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여산까지 갔다. 부여를 거쳐 연무대로 나와야 하는데 요즘 생각이 많아져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니 익숙한 길임에도 30분을 우회해야 하는 수고를 했다. 현장소장이라도 옆에서 귀띰을 해주면 좋으렸만 차에 타자마자 코를 고니 야속하지만 벌써 열흘동안 먼길을 다니다 보니 피곤해 하는 건 당연지사라 누굴 탓할 성질이 아니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내일 방통을 치기위해 보일러 엑셀을 까는 작업을 하는 도중 일찍 일을 마치고 공주 공산성과 무열왕릉을 구경가자고 약조했으나 준공검사가 급해 서둘러 일을 마치고 군산을 다녀와야 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헛고생을 했다. 갑짜기 피곤이 몰려온다. 방통업자에게 아침 8시까지 공주현장으로 출근하라고 점검하고 매일 여섯명이 출근했으나 내일부터 기공 두명에 잡부 한명으로 줄였다. 힘들고 중요한 일은 대충 마치었기에 이제부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늘 함께 하던 인부중 몇을 쉬게하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다음 현장에서 부르기로 하고 일단 다이어트를 했다. 매일 새벽 여섯시에 출근하려면 집에서 다섯시엔 나와야 했을 것인데 왕복 출퇴근 시간에 과속을 하면서도 세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약간은 힘들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충청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시간을 반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그래도 어느 정도 집의 윤곽이 들어나고 방통을 치고나면 전문분야의 인부들을 투입하는 관계로 우리 직원들은 조금은 편해질 것이다. 일주일이 고비지만 4월 중순 무렵까진 일을 마치려고 계획을 짜놓았다. 이왕이면 멋진 집이란 소릴 듣도록 짱구를 열심히 돌린다. 65번쨰 집이 가장 마음에 든다.&nbsp; &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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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7 Apr 2026 11:56:4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난 시간이 없어서 죽지 못한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6/8e9196482770065b0b734717ba9060a61353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청명에는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을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 난다는 뜻으로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도 있다.&nbsp;</div><div><br></div><div>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임으로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 예로부터 청명에서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3후로 나눈다. 1후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했다.</div><div><br></div><div>이날은 농가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 둑 다지기, 채소 파종 등 농사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년 24절기 중의 다섯 번째 절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청명(淸明)이 어제였고 오늘은 찬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寒食)이다.&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고 한다.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를 ‘사화(賜火)’라 하고, 수령들은 한식 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 한다.&nbsp;속담에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는 말이 있다. 오늘도 공주현장으로 총회장을 지낸 박현모목사님과 대전에서 박용규목사가 다녀갔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인부들 음료를 준비했고 감나무 살구나무 등 묘목을 사가지고 와 기념식수를 하셨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마침 새벽부터 비가 내려 나무를 심는덴 가장 적기였을 것인데, 유실수를 심는 걸 보아하니 앞으로 이곳이 동기생들 아지트가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였다. 과일이 익어갈 무렵 천혜의 공기를 마시며 왈자지껄 하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이집 주인 박목사님은 참으로 福받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인덕을 쌓은 결과가 과실이 되는 걸 목격하고 있다. 한식(寒食) 선물로는 이만한 것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식(寒食)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전통적인 4대 명절이었다. 중국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을 본따왔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진(晉) 나라에 개자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공자 중이가 제후위에 오르기 전부터 충실하게 따랐다. 중이가 훗날 진나라 제후가 되어 문공이 되었는데,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추모하는 데서 비롯됐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일만큼 헌신하며 망명 중인 문공을 구했지만, 문공은 왕이 된 뒤 그에게 아무런 벼슬도 내리지 않았다. 분노한 개자추는 산으로 들어가 버렸고, 문공이 뒤늦게 후회하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산불을 놓아 유인했지만 끝내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이런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식의 기원이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6/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1354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대체로 한식과 청명은 양력 4월 5～6일쯤 하루 사이로 든다. 6년에 한번씩 겹치기도 하지만 대게는 청명 다음날이 한식이다. 여기에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란 말이 나왔다.&nbsp;비슷한 속담으로는 “도긴개긴”과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가 있다. 모두 별 차이가 없음을 나타낼 때 쓰이는 속담들이다. 청명에 죽는 것과 한식날 죽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고 의미가 있겠는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대문밖 나서면 저승이라는 속담도 있다. 나는 이 말들을 묶어 우리 조상들의 사생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순서로 말하면 응당 생사관이겠지만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남은 문제는 죽음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바야흐로 100세 장수 시대다. ‘축복이 되느냐 재앙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한 때 열풍을 타던 참살이(Wellbeing)가 이제는 참죽음(Welldying)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성찰하는 삶의 출발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물질을 좇는 삶을 살 것인지, 끊임없이 물질에 종속되는 삶을 경계하며 주체적이며 본질적인 삶을 살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명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공주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난해한 점은 식사문제이다. 열흘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한 식당을 두번 가본일이 없을 정도로 매일 식당을 바꿔 보지만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전라도 음식에 길들여진 탓인지 충청도 음식에 거의 식사를 거르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배고픈단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nbsp;</div><div><br></div><div>오늘이 한식이니 굳이 따스한 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들녁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기에 나온 말이겠지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식탐이 사라져 굶는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지금 대한민국 교회들도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교회들이&nbsp; 몸살을 앓고 있다. 사순절의 절정인 종려주일과 부활절이 지났지만 부활신앙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길 듣지 못했다.&nbsp;</div><div><br></div><div>교회력에 따른 절기가 사라져 버렸다. 또한 이젠 주일성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금기 사항도 깨져 버렸다.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죄의식을 갖는 것도 문제지만 주일날 교회 안가도 전혀 문제가 될게 없다는 안일함이 문제이다. 흙탕물에 한번 빠지기가 어렵지 몇번 빠지다 보면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다. 고착화되는게 치명적이다.&nbsp;</div><div><br></div><div>외부적으로는 기독교는 이기적이며 독선적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내부적으로는 습관이 되어 이젠 무슨 일이 생기면 주일을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nbsp;반감될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처신한다. 내일 해도 될 일이지만 가능하면 미루지 않으려 무리를 하고 있다. 무리를 안할 수 없는 건 산적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은 아니지만 텃밭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경작해야 할 농지가 여러 곳이다 보니&nbsp;몸을 몇개로 쪼개도 부족하다. 계분을 뿌리고 나무를 심고 서서히 작물을 파종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공사현장으로, 관공서를 쫓아다니고, 틈틈히 주변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어야 하니 농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6/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356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공주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앞에 버려진 캐리어 하나를 발견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눈딱감고 차에 실어 왔다. 거의 새 것이나 다름이 없는 여행용 가방인데 이 정도를 버리는 사람이 누구일까가 궁금해진다. 그러안해도 여행용가방이 오래되어 새 것으로 구입할까를 망설였는데 착하게 살려 노력했더니 주님이 허락해 주셨다.</div><div><br></div><div>이왕 캐리어를 공짜로 얻었으나 훌쩍 떠나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기약이 없다. 물론 가방이 없어 여행을 못간 건 아니지만 지퍼가 고장나 애를 먹고 있었는데 앞으로 10년은 걱정없이 여행을 떠나도 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큰 가방을 얻었으니 유럽여행이나 한번 다녀 왔으면 좋겠다. 그간엔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찮가지라는 생각이었지만 좋은 캐리어를 얻고 보니 단 하루 차이지만&nbsp;이왕이면 청명날 말고 한식날 죽었으면 좋겠다.&nbsp;</div><div><br></div><div>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데, 하루면 그게 어디인가? 조만간 공항가는 기대감으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버린다. 멀쩡한 것도 아무런 생각없이 버린다. 하긴 제 부모도 버리는 세상이니 말한들 무엇하겠는가. 남이 버린 걸 주어다 재활용하는 걸 청승떤다고 지탄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정도라면 남눈치 안보고 가져 올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시내 곳곳엔 벚꽃이 만개하여 혼자 보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집집마다 하얀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운치를 더한다. 개나리와 수선화도 담장마다에서 수줍은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한다. 작은 마당안에 꽃들이 가득하다. 외모로 보면 도저히 꽃과 매치가 안되는 사람같지만 꽃을 가꾸는 정성으로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div><div><br></div><div>내일은 방통을 치기전 바닥에 보일러를 설치해야 하기에 스츠로폼을 구입하여 추럭에 실어 놓고 엑셀과 와이메시 차광막 등을 가져갈 준비를 마치었다. 공주 현지에도 있겠지만 거래처에서 구입하면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할 수 있고 얼마안되는 분량이라 비싼 운송비를 줘가며 현지 조달하는게 싫어 미리 구입하여 다시 내일 새벽 출발할 준비를 완료했다.</div><div><br></div><div>잠만자고 다시 공주로 떠날 채비와 온통 더 좋은 집을 지어 드리려는 구상으로 열흘동안 세수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하필 트럼프의 불장난(?)으로 기름값이 치솟고 판넬값이 두배 가까히 폭등했지만 이런 땐 가장 저렴하고 실용적인 집을 짓는게 기술자가 아니던가?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동기생들 중에 몇이 집을 지어 달라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일단 올해 스케줄은 10월까지는 죽을래야 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난 시간이 없어서 죽지 못한다.&nbsp; &nbsp;</div><div><br></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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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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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06 Apr 2026 13:57:03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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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의 종을 오랫동안 동네 마을회관에 머무르게 하는 건 불충이다.</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5/688b8a4423a01a1fb3c517de2ea43f451331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24절기 중의 다섯 번째 절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청명(淸明)이다.&nbsp;'청명'이라는 말은 봄이 짙어지며 하늘이 맑아시는 시절이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중국의 전통의학서인 &lt;황제내경(黃帝內經)&gt;(기원전 475~221)에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언급된 이래, 당나라의 역사서인 &lt;구당서(舊唐書)&gt;(945), 원나라의 &lt;수시력(授時曆)&gt;(1281) 등 여러 문헌에 청명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고 있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에는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을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 난다는 뜻으로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도 있다. 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임으로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요수불이(夭壽不貳)'란 말이 있다. 단명(短命)하거나 장수(長壽)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나이가 들었다고 더 많이 깨닫는 것도 아니고&nbsp;늙도록 살았다고 복 받은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본성을 알지 못하면 부질없는 길이일 뿐이</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다.&nbsp;</span>길면 100년 남짓 살다가 누구나 어느 날 홀연 대문 밖을 나서듯 죽음이라는 피안의 언덕길을 휘그적 휘그적 걸어 넘어갈 것이다, 그 때 살아 생전에 조금더 인정을 베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걸 후회하지는 말아야 한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淸明)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구름을 다 날려 보내므로 하늘이 가장 맑은 날이란 뜻이고, 그 날 모든 백성들은`묵은 불씨`를 끄고 `새 불씨`를 기다리는 풍속이 있었다. 임금은 새 불씨를 대신들에게 나누고, 대신들은 고을 수령들에게 전하고, 수령들은 파발마를 총동원해 전국 방방곡곡 집집 마다 전달한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백성들은 이 날부터 묵은 불을 끄고 찬음식을 먹으며 `나랏님이 내린 새 불씨`를 기다렸다가 예를 표하고 화로의 잿불로 소중히 보관한다. 이 불씨는 연중 내내 끄트리지 말아야 하는데, 이사 갈 때도 불씨를 화로의 재속에 담아 갈 정도였다.&nbsp;</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내일부턴 찬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한식이니 굳이 따스한 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들녁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기에 나온 말이겠지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식탐이 사라져 굶는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강하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예로부터 청명에서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3후로 나눈다. 1후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했다.이날은 농가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 둑 다지기, 채소 파종 등 농사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nbsp;</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을 전후로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고 하며 담근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곡우 무렵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하였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하는 데,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 들이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지금 내가 신축공사를 하는 곳이 여러곳이고 지금은 만사를 제껴놓고 은퇴목사님 집을 지어 드리고 있지만 온통 관심이 정원을 만들다 현장을 옮겼기에 따로 인부를 동원하여 정원공사를 마무리 하도록 지시하며 몸과 마음을 쪼개어 사용하려니 엄청 피곤하기만 하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그간 단풍나무 대추 사과 꽃사과 복숭아 삼색도화 셀릭스 자두 살구 포도 앵두 석류 산수유 배롱나무 에머랄드 골드&nbsp;연산홍 동백 남천 대봉시 화살나무 홍가시나무 은목서 금목서 천리향 등 수백그루를 그간 심었다. 그뿐인가, 채송화 수선화 꽃잔디 멘드라미 백일홍 등 꽃씨와 꽃나무도 무진장 심었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5/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3331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공사중 현장에서 가만히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nbsp;인부들보다 내가 더 바쁘게 움직인다. 뒷마당쪽에 대파와 감자 상추 도라지도 심어 놓았다.&nbsp;</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어차피 남의 것이 될 거라며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지만 내가 가장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간의 노하우가 쌓여 조금만 노력하면 멋진 정원이 만들어지고, 농장주들이 곁에 많이 있어 시중보다 1/3은 싸게 구입할 수 있기에 이왕 분양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제대로 된 정원을 만들어 주고 나오려 작정했다.</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span></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열흘이 넘더록 충남 공주로 출퇴근했더니 몸상테가 좋지 못하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수일내에 끝마치려고 분투중에 있다. 이렇게 하면, 과부하에 걸리는 건 자명하지만 끙끙거리면서도 가능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먹는 건 부실하고 너무 일이 힘들었는지 코피를 흘렸다. 그래도 내일싸진 벽체를 완성하고 화요일 보일러를 깔고 수요일까지 방통을 마치려고 인부들을 다그쳤다. 잠시 바닥이 양생되는 동안 내 현장을 살펴야하기에 인원을 더 많히 투입하였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없어 인건비가 만만치 않게 소요되지만 은퇴하고 부모님이 살던 집을 허물고 그곳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고와 그냥 감내하기로 했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어젠 지인들이 공주 현장을 방문하여 최00목사님 아들이 운영하는 초밥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고 오늘은 상황이 급해 군상 교회까지 갈 수가 없어주봉리 세광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렸다. 20여명이 모이는 시골교회임에도 8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미자립교회를 돕는 열린 교회였고 목사님 설교도 깔끔했으며 특이한 점은 장로님이 사회를 보는 교회였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지붕을 올리는데 열악한 환경이라 아시바를 매지 않고 지붕을 올리려니 인부들이 무척 힘들어했지만 모른척했다. 크레인을 불러 지붕을 올리면 오전이면 끝날일임에도 늦은 시간까지 자력으로 지붕을 올리다 보니 퇴근 시간이 늦어져 일당에 보너스를 지불하고도 다 올리질 못했다. 내일 완성하고 이어 내부공사를 완성하려고 우즈백 인부를 더 선정했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돌아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으니 부여에서 논산의 어간에 벚꽃이 만발하여 노무 아름다웠다. 내가 어렸을적엔 벚꽃이 흔하지 않았고 창경궁 정도에 가야 벚꽃 구경을 했었는데 이젠 봄에 피는 꽃중에 가장 흔한 꽃나무가 되어 버렸다. 대나리와 어울려 노가는 길에 꽃구경을 실컨하고 있다. 집을 짓는 박목사님도 현재 살고있는 당진을 떠나 동네 마을회관에 머무르고 있는데 오랫동안 고생시킬 수가 없어 인부들을 닥달하고 있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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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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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05 Apr 2026 13:34:4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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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봄비내리는 어둠을 뚫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3/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1957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1577년(선조 10년) 율곡 이이(李珥) 선생께서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보면,&nbsp;‘거경궁리(居敬窮理)’란 말이 나오는데, 학문수양의 방법을 알려주는 교훈으로 거경이란 모든 잡념을 끊어버리고 한 가지 일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방법이고, 궁리란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div><div><br></div><div>곧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이란 뜻이다. 갑짜기 시골로 낙향하여 무슨 귀신 씻나락까먹는 소리냐며 야유를 보내는 분도 있겠고, 내 스스로도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난 시골생활이던 귀양살이던 간에 한번밖에 없는 내 삶의 길을 떠나며 가능하면 과거에 억매이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실을 중시하기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div><div><br></div><div>남들이 보면 하찮은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허접한 일이라 할찌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하려 무던 애를 쓰고 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귀담아 들으려 했고, 곡식 자라는 소리가 정말 들리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매일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과연 눈에 보인다는 의미를 깨달아 갔다. 자연속에 빠져들어 한동안 지루하단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nbsp;</div><div><br></div><div>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면 죽을 시간도 없을 거 같아 걱정이지만 죽음의 순간을&nbsp;카운트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지만 삶을 카운트하는 사람은 불멸의 정신으로 남기에 염려는 없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을 조부님과 선친의 경우로 유추해 볼 때 앞으로 살 날이 15년 정도 남았지만 왠간해선 죽을 거 같지 않고 설령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나같은 사람이 또 나타나 내 흔적을 더듬을 것이고 따를 걸 믿고 있다.&nbsp;</div><div><br></div><div>아무튼 아직은 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려한다.&nbsp;그렇다고 일벌레는 되지 않으려 한다. 때론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nbsp;언제든 즉흥적으로 이삼일 동안 짧은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nbsp;해놓고&nbsp;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다.&nbsp;</div><div><br></div><div>몹시 힘들고 외로울 때 모든 근심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나를 향해 떠오르는&nbsp;밝은 태양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nbsp;인생은 짧고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자질구레한 일들로 삶을 채우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하고, 언제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오늘하고, 지금 내가 할 일이라면 더 잘하자' 그럴듯하게 구호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nbsp;</div><div><br></div><div><div>나는 열외되고 싶고 내일로 미루고 싶고, 남들도 대충하는데 왜 나만 사서 고생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늙으면 안아픈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골병까지는 아니겠지만 일을 무서워하거나 바쁜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일도 많지만 남의 일에 더 바쁜 경우가 많다. 내 라이프 스타일을 알기에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부탁하는 사람이 많지만 왠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사실 내 일과 남의 일의 비율이 5:5일 정도로 바보 노릇을 하고 있다.&nbsp; &nbsp;</div><div><br></div><div>그러다가 골병이 들 거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골병이란 특정한 질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각한 병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염려하지 않는다. 골병이란 치료가 곤란한 만성적인 근육통, 관절통 등을 가리키는 말로 현대인 90% 이상이 과거에 비해 적어진 움직임과 스마트 기기의 잦은 사용으로 근골격계에 다양한 ‘통증’을 겪고 있는데 노동으로 오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도 충남 공주로 출발해야 한다. 밤새 두시간만에 한번씩 깨었지만 비가 내리는지를 확인하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하기에 애써 잠을 자려 애를 썼다. 오늘같은 날은 일을 안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지만 오늘은 미리 예약해 둔 지붕판넬과 벽판넬을 입고시켜야 하고 지게차와 하차시킬 인부를 많이 동원했기에 인건비를 감안하여 비가 내려도 일을 강행해야 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벌써 소장이 여러번 전화를 하지만 일단 강행하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전달하고 자재를 전날 추럭에 실어 놓았기에 어쩔 수 없이 공주로 출발해야 한다. 더군다나 동역자 목사님들이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기에 이런 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실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살다보면 이런 일 정도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일상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만들며 지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하루를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예전부터 가진 생각은 아니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잡생각이 들 틈이 없으며 과거에 사로잡혀 내 삶의 방향을 표류시키고 싶진 않기에 난 무슨 일이던지 움직이려 작정했고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복을 타고 난 것은 아니지만 난 일이 있을 때가 더 신이난다. 건축이 올스톱된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지만 이 때가 아니면 농작물을 심고 키울 수 없기에 짬만 나면 텃밭으로 향한다. 오늘밤 부터 내일에 걸쳐 비소식이 있기에 열무와 얼갈이 배추를 심으려 땅을 파며 망중한을 즐겼다. 흙을 만지는게 나에게는 휴식이고 치료인셈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단순히 은둔생활만을 생각했다면 난 시골에 정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3/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958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주변 사람들은 일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놀자, 먹자하면 일개 소대라도 집결하지만 일 좀 거들어 달라하면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홀리팜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하긴 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막일 할 사람 한 명을 고용하면 좀 수월하겠지만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다.&nbsp;</div><div><br></div><div>난 보기와는 달리 혼자서 조용히 일하는게 편하다. 성격상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집에서도 아직까지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화가나면 말을 안하는 편인 데, 그건 목회에서도 마찮가지였다. 난 교회에서 목소리 큰 사람을 가장 혐오했다. 기분이 언잖을 땐 더욱 말을 아꼈고 가능하면 속으로 삭이려 애를 썼다.&nbsp;이건 내 성격탓도 있지만 집안적으로 기질적으로 화가나면 말을 안하는게 전통이다.&nbsp;</div><div><br></div><div>부끄런 이야기지만 조부님께서 부부싸움을 하고 일년동안 말 한마디 안했다는 일화를 무용담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정고집'이란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집안 분위기가 대게는 이러니 아내들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nbsp;화를 안내니 사람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대게는 속으로 골병이 든다. 신경성위장병,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감정이 속으로 파고들어 몸에 병을 만든다.&nbsp;</div><div><br></div><div><div>오늘 밤새 내리는 비는 단비일 것이고 오후엔 그친다니 지체되는 만큼 강행할 것이다. 비구름에서 떨어진 구름을 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분명히 눈을 지긋히 감으면 정지된 그림이지만 구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멸을 위해 또 다른 구름을 찾아가 몸집을 키워 땅을 적셔준다.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구름은 흘러간다. 의식하면 가만히 멈춰 보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구름의 모습은 다양하며, 비가 오는 날엔 새까맣기까지 하다.&nbsp;</div><div><br></div><div>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모양도 색도 다르다. 결국, 우리의 시간관념을 변하게 하는 건 삶의 목표다. 목표가 있을 때 삶은 피어난다.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마저도 연약한 내가 어찌하리. 흐르는 것이 삶이었던가. 저 강물도 흐르고 저 바람도 지나가고 저 구름도....나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기에&nbsp; 아픔 속에서도 길 떠나는 나그네 심정으로 가고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가슴시릴 뿐이다.</div><div><br></div><div>근래 공주까지 운전하다 보니 고속도로 통행료 용지가 한가득이다. 납부해야 할 날짜가 제각각이라 오늘은 모두 계좌 이체해줄 생각이다. 출발할 땐 생생하던 인부들이 출근할 땐 모두 잠들어 버리는 피곤한 나날이지만 내 운전에 목숨을 맡기고 편하게 잠든 모습들을 보노라면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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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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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03 Apr 2026 20:00:4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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