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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안부두</title>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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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없이 피고지는 꽃들을 보며</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20/9268c38ef0f1f6048b68a0abc768ca8c22534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창세기 1장3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윌리암 아메스(William Ames)는 하나님의 창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능동적 창조와 수동적 창조로 나누어진다고 말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능동적 창조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이 세상에 만물을 직접 창조하신 것이고 수동적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들의 변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아름답지 않을 게 없다. 인간이 그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시비가 생길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창조하신 목적이 있음을 안다면 세상엔 하찮은 게 없다. 하다못해 버러지같은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사역 안에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버려선 안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잘났으면 잘난대로 살고 못났으면 못난대로 살면 그 뿐이다. 가난하다고 비굴해질 필요가 없고, 못생겼다고 얼굴을 가리고 살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들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친한 지인이 나에게 건강을 위해 골프를 배우라고 강요한다. 이렇게 공사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아둥바둥해봤자 인생무상이 아니겠느냐고 반협박조로 윽박지른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내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고 남의 삶의 방식에 내 삶이 평가받게 되는 일을 지극히 경계하며 살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집안은 '안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 구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안되면 되는 길을 찾으라!'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달란트가 다른데 오직 하나에 올인하여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투자하는게 안스럽기만 하다. 물론 한 우물을 파면 언젠가는 샘물이 터진다고 가르친 교육의 문제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교육의 목표가 잘못된게 분명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 자녀들이 노량진 근처에 가보지 않은게 너무 고맙다. 우리 집안은 재수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조카나 생질들도 재수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nbsp;&nbsp;지금은 모두 장성하여 의사나 약사 직장인 전업주부로 있지만 재수생이란 말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대단한 집안이라 말할 순 없지만 모두가 제 갈길을 잘 찾아 가고 있어 부모가 걱정을 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 자녀들이 최고가 되길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영혼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 매일 매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길 원한다. 그리고 남에게 지탄받지 않는 삶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원하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죄수"라고 말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결국 나를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남이다. 이처럼 고수로 대접하고 인정해주는 것도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얼치기라고 부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트겐슈타인은 '얼굴은 육체의 영혼' 이라 했고, 키케로는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를 링컨은 마흔, 조지 오웰은 쉰을 기준으로 삼았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고 힘든 일의 연속이지만 내 삶에 연민을 느끼거나 동정하지 않으려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초라한 행색을 하고 다니지만 영혼없는 삶을 살지 않으려 분투중이며 내 삶에 환멸이 찾아오는 순간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매일 매일 창조적인 삶을 꿈꾸며 노력중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우월이 존재한다. 머리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등 특출하고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속에 정한 기간동안 살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올 거라는 분명한 사실을 안다면 자고(自高)할 수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뭐가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는가. 누구나 빈손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뿐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다보니 전혀 예상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인생을, 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월이란 천변만화(千變萬化)하기에 모든게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어 내 스스로 대화를 이어 갈 자신이 없기에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립을 자초한다. 세월이 흘러 모습이 변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기억이 퇴색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어릴적 친구들이 가끔 수소문하여 날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가능하면 만남을 기피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 때는 그렇게 다정했었는데 얼굴이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그리움이란 추억속에 남아 있길 소원했는지도 모른다. 만나면 할 말이 무진장 많이 남아 있을줄 알았는 데, 사실은 그 간의 단절이 가져온 여백이 너무나 커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nbsp; 많다. 어쩜 그냥 그리움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게 아름답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핑게를 대며 만남을 피한다.&nbsp;</div><div><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광음여시(光陰如矢)’라 했던가. 마음은 붙잡아 둘 수 있어도, 몸의 쇠락은 흐르는 세월을 속일 수 없다는 현실에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단지 나만의 진부한 감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까불지 않기로 했다. 자고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결심한다.&nbsp;</div><div><br></div><div>살이 갑짝스럽게 빠지니 깊게 파인 주름이 흉물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늙는 거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할 일없는 늙은이는 되지 않으려 내 스스로 안달하며 살고 있다.&nbsp;</div><div><br></div><div>사람도 상품의 이용 가치처럼 취급하는 자본주의 세태에서는 늙은 사람은 곧 ‘낡은 사람’이기에 오래 써서 낡고 고장 난 물건 버리듯 용도 폐기 당하는 것이 점차 무슨 불문율처럼 되어가니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더 두렵다’는 내 생각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nbsp; 이런 때는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인생을 반추하며 겨울속으로 뚜벅 걸음을 걷는게 상책이다.&nbsp;</div><div><br></div>요즘들어 더 말수가 적어졌고 작아졌다. 도무지 시끌법적한 곳이 싫다. 함꼐 일하는 인부들 중에 모두가 사랑해야 할 존재들이지만 특히 우즈백 인부들을 편애(?)하는 중이다. 우즈백 언어는 엑센트가 강해 시끄러울 정도로 느껴진다. 아마도 유목민들이라 너른 들판에서 살다보니 큰소리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목소리는 크지만 필요한 말외엔 내뱃질 않는다.</div><div><br></div><div>나는 태생적으로 수다는 물론 시끄러운 걸 싫어 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가능하면 이바구를 하지 않는다. 네 공사현장은 하루에도 스무명 이상이 북쩍이지만 꼭 필요한 말외엔 일체 함구하고 하루를 보낸다. 현장이 넓어 꼭 필요한 인부를 찾으려면 전화를 걸어 호출해야 할 정도이다. 만만한게 '알리'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알리를 불러 댄다.&nbsp;</div><div><br></div><div>나는 알리를 만나면 쉬면서 하라고 역성을 들어 준다. 우즈백인 치곤 말없이 일을 잘한다. 그 점이 나와 코드가 맞는 것 같아 애정을 보일 때가 많다. 아마도 선친께서도 그러하셨고 어머니도 말수가 적으신 편이셨다. 돌아가시기 전 3개월 가량을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요양원 노인들이 잔소리와 지적질, 불평, 불만이 많아 상대적으로 말이 없는 어머니가 인기였다는 설명이다.&nbsp;</div><div><br></div><div>충청도 공주에선 말이 많으면 가난하게 살고 빌어 먹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정말 福이 달아나는진 모르지만 체질적으로 말이 많은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다. 특히 노인이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기력이 쇠하지 않는 한 말을 한다. 늙으면 어린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말이 많아지는 것도 어린 아이 같다. 다만 어린 아이는 질문이 많은데 노인은 잔소리가 많다.&nbsp;</div><div><br></div><div>인생을 다 경험해봤다고 생각하니 가르칠게 많아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지는 첫째 이유는 말을 통해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말이 많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든, 지위가 높든 자신이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말이 많아진다. 말이 곧 통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면 다른 사람이 따르는 것이 통제라고 믿는다. 말하는데도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말아 점점 많아진다.&nbsp;&nbsp;&nbsp;</div><div><br></div><div>둘째는 조금 슬픈 이유인데 말 외엔 할 일이 딱히 없어서다. 기력이 쇠해 할 수 있는 활동이 줄어드니 TV를 보면서 말하는 게 낙이 된다. 셋째는 외로워서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에 친구가 줄어 교제의 폭이 좁아지니 사람이 있으면 말이 하고 싶어지는 것일게다. 노인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침묵보다는 말을 좋아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20/f7d31de0484726d2332ae4b772a389ac225630.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대화가 끊겨 침묵이 흐르면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심지어 혼자 고요하게 있을 것을 못 견디는 사람도 있다. 노인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침묵보다는 말을 좋아한다. 대화가 끊겨 침묵이 흐르면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혼자 고요하게 있을 것을 못 견디는 사람도 있다.&nbsp;</div><div><br></div><div>이에 대해 독일의 소통 전문가 코르넬리아 코프는 “우리가 정적을 난감하게 느끼는 이유는 정적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조용할 때 찾아오는 생각이 두려워서다”라고 분석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불안하고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두려운 것이다. 코프는 또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지적 당하면 말이 많아진다고 설명한다.&nbsp;</div><div><br></div><div>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가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잘 모르니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려니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말을 통해 통제력을 확인하려는 것이나 말이 아니면 할 일이 없는 것, 외로움을 말로 해소하려는 것, 침묵을 못 견디는 것, 약점을 지적당하면 말이 많아지는 것 모두 따지고 보면 원인은 낮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강점과 약점과 성격을 두루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오랫만에 햇볕을 보는 것 같다. 어제도 비를 맞으며 텃밭을 정리했고 잡초를 제거했지만 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고추 지지대에 줄을 띄워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봤자 겨우 오이고추 몇개 정도를 따먹겠지만 누군가에는 필요한 것이기에 무작정 심는 것이지만 대충하는 건 아니다.&nbsp;</div><div><br></div><div>텃밭 일부에 심은 채송화가 만발하기 시작했다. 오색찬연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양귀비는 시들해졌지만 여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작년에 심은 수국도 탐스럽게 피어났다. 말없이 피고지는 꽃들을 보노라면 정말 신비롭다. 어김없이 자신의 시기를 아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nbsp;&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9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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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0 Jun 2026 23:10:4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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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20/d43286be4167e7c1c55c941256ffce00050653.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옛말에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013add">'호박 넝쿨과 딸은 옮겨 놓은 데로 간다'</font></b>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방향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는 말일게다. 난 딸들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 대한 자랑을 팔불출소릴 들으면서도 해대겠지만 마음이 참 고운 애들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복중에 가장 큰 복이 바로 이것이다. 그냥 방향만 잡아주었을뿐인데,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잘 자라주어 너무 고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고보니 호박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도 호박을 많이 심을 생각이다. 하나님은 경이로우신 분이시다. 마치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이런 저런 색깔을 칠한 것 같이 작은 밭 속에 욕심껏 여러 작물을 심어놓고 바라보는 사이에 행복의 씨앗을 풀어놓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땀 흘리며 일을 할 때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도 한팔 가득한 행복을 수확하게 하신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작은 것 하나를 보면서도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시골생활이 가져다 준 은헤요 축복이다. 도심에서 찌든 공기를 마시면서 부댓기며 살았다면 난 큰 욕심때문에 작은 행복을 영영모르고 살 뻔했다. 역시 시골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서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할 수가 있을까?&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행복은 마음안에 있다. 아담은 그 마음속에 들어오는 생각 중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생각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결과 아담이래로 인간 마음은 완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생각으로 가득 찼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 마음은 생각 저장고이며, 생각 활동 장소이다. 인간은 생각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 생각이 얼마나 활동적이냐 하면 인간이 잠을 잘 때, 대부분 생각들도 활동을 중단하고 이불을 덮고, 내일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단잠을 청한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데 생각 중에는 아주 지독한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인간이 잠을 자고 있을 때, 꿈이 되어&nbsp; 인간과 상관없이 수만리까지 돌아다니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식이 시작되면 잠을 자고 있던 오만가지 생각들도 이불을 걷어내고, 자기 옷을 주어 입는다. 생각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고가며 쉬지 않고 활동 한다. 그래서 로댕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고 했다. &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생각들이 주로 하나님 없는 생각들이다 보니 문제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없는 생각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인간 마음을,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 창 6 장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한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이라고 기록한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과 모든 표현은 다 이렇게 심히 부패한 인간 마음에 있는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산물이며,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태를 나타내어 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점점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사회가 매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가끔 지인들이 귀촌 이후의 삶에 대하여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데, 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사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말해준다. 억지로 만들어내고 생산해내고 갖추어진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형성해가는 그런 생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생은 곱셈이다. 어떤 기회가 와도 내가 제로(0)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그릇을 엎어놓고 있으면 한 방울의 물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제로 상태인데 무얼 기대할 수 있는가?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준다. 태양을 향해 서 있는 자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 말하자면 실패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누구나 몇번씩은 넘어져 본 기억이 있을테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넘어진 횟수만큼 일어서는 사람들이다. 슬픔이 그대의 소중한 것을 쓸어가 버리면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약이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보다 생활이 중요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요한 것은 자아(自我)를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Be yourself!). 절망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취된다. 하나님은 우리 손을 잡은 것을 절대 놓지 않으신다.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아서 노동보다 더 심신을 지치게 한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낙심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진정으로 강한 이는 치열하면서도 온화하다.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20/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0509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思考)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 지혜는 인간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다. 삶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믿든지, 기적은 절대로 없다고 믿든지 둘중에 하나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초적으로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현장소장은 매주 로또 복권을 구입하지만 오천원권 이상을 맞아 본적이 없으면서도 주말의 사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나 중국 사람들의 사행심리는 알아줄만 하지만 나는 그걸 퇴행심리라 여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나 자주 뒤돌아보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길이 가깝다 해도 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고, 일이 작다 해도 행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 다행히 현장 소장은 나를 만난 이후 제법 재산을 많이 모아 중국에 아파트 두개와 상가 건물을 구입했고, 교회로 인도하지 못한 것외엔 내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듯 싶다.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아 준 것 같은데, 계속해서 뻗어나갈 거로 믿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항상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이던 소장이 드디어 교회에 나가볼 생각이 드는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사장님 친구들 중엔 유독 목사님들이 많은지를 물어 내가 백로는 아니지만 까마귀 노는 곳에 가면 속이 까마질까봐 일부러 성직자들을 가까히 하다보니 목사님들하고 친분이 많아졌다고 하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40년동안 사역을 하면서 나 하나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누굴 변화시키겠다고 깝촉대었던 일들을 후회한다. 나일 먹어가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누굴 가르치거나 변화시켜 보겠다는 건 욕심에 불과하고 그냥 내려놓기는 나 혼자의 생각과 행동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인간관계에 난기류(turbulent air)가 생기는 것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때문이며,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비움(empty)이란 참된 세계관을 수립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반성해 보는 자기 성찰의 시작이라 할 수가 있다. 나 역시 비움에 익숙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동안 채움을 목표로 집요할 정도로 집착에 사로잡혀 살아 온게 틀림없다. 선교비나 구제비는 내 놓을 수 있지만 교인만큼은 나누고 싶지 않았다.&nbsp;&nbsp;&nbsp;</div><div><br></div><div>비움은 무능하단 중압감이 동반되기에 할 수만 있다면 사이즈를 키우기에 급급하며 살았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찾아오는 교인들을 자신들이 힘겨워 고백할 때까지 교적을 내 스스로 옮겨 준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익산사람은 꼭 원광대학교에 가란 법이 있느냐며 지방출신도 서울대학교에 가듯 좋은교회를 다니려면 이 정도는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nbsp;&nbsp;&nbsp;</div><div><br></div><div>나는 개척교회도 해보았고 무수히 예배당 건축을 해보았지만 분리개척을 해보질 못했다. 그게 가장 후회스럽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보니 '비움'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예수께서 가장 경멸했던 바리새(Pharisee) 사람들은 모두 채우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도하는 일이나, 금식하는 일 모두 '자기-비움'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망의 '채움'을 전제로 하는 기도나 금식이었기에 주님으로 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했던 것이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심지어는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다(마6:5-18).'는 책망을 들어야 했다. 자기 비움의 정신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는 예수의 말 속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비움은 결국 자기-내어줌이다. 그리고 비움이 실천되지 않는 자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공적(公賊)이다.&nbsp;&nbsp;&nbsp;</div><div><br></div><div>비움이 없는 교회는 사단의 교회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목회도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라고 생각하여 수만명을 가지고도 더 채우려 혈안이 되어 간다. 남들이 죽던말던 상관없다. 명예(名譽) 수집광(蒐集狂)이 되어 자신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로 부각시키려 안달이다. 지금 사회적으로 교회가 지탄을 받는 것은 이 비움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20/53777b08c32c6a90d15c1c590320af21051350.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제부터 비가 내려 현장에서 철수했다. 월요일부터 도로 포장공사를 시작할 생각이고 이어 창고와 농막주택을 지어 주기로 했다. 작게 지으면 평당 6백만원을 줘도 남는게 없는데 지인을 통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 오는데, 인건비만 받고 나머진 직접 결제하는 방식으로 승락을 했지만 인부들 일당을 벌어주려고 수주했을뿐 그 기간동안 내 텃밭을 가꾸려 작정하고 강행하려 한다.</div><div><br></div><div>한창 가시오이를 수확하고 있지만 조선오이를 더 심고 비가 그친틈을 타서 풀을 뽑으며 소일거리를 삼았다. 얼마나 풀이 많은지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풀이 많다. 진즉 부지런을 떨었더라면 이 고생을 안할텐데 차일피일 미루었더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 포기해야 하기에 손에 물집이 생길때까지 잡초를 뽑았다.</div><div><br></div><div>그러나 평소 가깝게 지내던 류충신목사님이 소천하셨다니 더이상 한가로히 풀을 뽑을 수가 없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좀 어눌하기는 하셨지만 이렇게 갑짜기 부름을 받게 되실줄 몰랐는데 노인네 건강은 밤새 안녕이다. 아직 빈소가 차려졌는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아야겠다.&nbsp; &nbsp; &nbsp;&nbsp;</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95</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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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0 Jun 2026 05:12:4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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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엔 풀을 이겨본 장사가 없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7/53777b08c32c6a90d15c1c590320af21220732.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느낌도 감정도 메말라 버린 내게 일주일 7일 중 한 날은 우요일로 하여 마음도 몸도 젖어보는 때를 누리고 싶다. 젖는다는 것은 나를 내놓는다는 것이리라.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리라. 가식과 위선을 벗고 순수로 돌아간다는 말이리라.&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교만과 아집의 때, 나를 두르고 있는 거짓스런 치장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저 어린 날처럼 빗속을 마구 달리고 싶다. 비를 맞는 것, 비에 젖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던 어린 날처럼 말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어떤게 진정한 행복인지 아직도 알쏭달쏭할 때가 종종있다. 모든걸 무념에서 시작하려해도 현실은 각박한 곳으로 나를 내몰고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떤 땐 '나는 아직 건재하다'고 객기를 부리지만 내가 얼마나 허접한지, 얼마나 허약한지를 내 자신이 잘 알기에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 바람이 부는 광야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을 느낄 때가 너무 많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r></div><div>나는 좋은 성격이라고 믿진 않지만 억메이기를 싫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내 날들은 넉넉히 남질 않았고, 재수가 없어 백살까지 산다해도 이 땅에서는 영원한 것이 없다. 다만 영원한줄로 착각을 할 뿐이다.&nbsp;</div><div><br></div><div><div><div>나는 고속버스를 탈 때 두명이 함께하는 자리를 기피하는 버릇이 있다. 다음 차편을 이용할망정 싱글 의자를 고집한다. 결벽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칫 통성명이라도 할까봐 기피하는 것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겨하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물론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결론을 내지 못 할 문제를 가지고 개똥철학자의 폼을 잡지만 혼자라고 안달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삶이 버겁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사람들을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스하고 맑은 웃을을 보여주는 차마고도의 사람들의 얼굴에서 행복이 느껴짐은 어떤 연유일까?&nbsp;&nbsp;</div></div><div><br></div><div><div>티벳 속담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했다"는 문구가 전해오고 있다. 인간의 생사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는 말이다. 티벳의 큰 스승(린포체)들이 어린 제자들에게 즐겨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nbsp;</div><div><br></div><div>특히 티벳의 불자들은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일 보다 죽을 날을 알 수 있도록 수행에 힘써야 한다는 스승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3보1배를 하며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다. 생일이란 그런 정도의 날일뿐이다. 나는 티벳의 문전까지는 가보았지만 티벳 내륙까지 깊숙히 들여다 보진 못했다.&nbsp;</div><div><br></div><div>더 늙기 전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좀 더 깊숙한 티벳을 경험하고 싶다. 세상엔 아직 안가본 나라가 부지기수인 데, 왜 같은 곳을 또 가느냐고 묻는 사람에겐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굳이 설명하라면 나에게는 보헤미안(Bohemian)의 기질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nbsp;성경에는 장수를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길게 사는게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길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어쩜 꿈으로 끝날런지도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이 내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남들은 하던 일도 접고 쉬고 싶어할 나이에 내일할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풀어 있으니 이것도 일종의 병이 아닌가 싶지만 오늘도 차마고도(茶馬古道)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 생각을 가지고 있다.&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7/8e9196482770065b0b734717ba9060a62208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은퇴를 앞둔 목회자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은게 있는데 은퇴전에 자격증 몇개쯤은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매월 30만원 가량을 받으면서 자격증을 딸 수 있다.&nbsp;</div><div><br></div><div>자격증, 즉 도배 타이루 방수 등 건축에 관련된 자격증을 따놓으면 현장관리자로 월 백만원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는데, 모든 건축에 의무적으로 자격증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고 출근하지 않고 수익이 보장되는 일인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nbsp;</div><div><br></div><div>70이 넘으면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노후에 많은 도움이 될 일이기에 부지런을 떨 이유가 충분하다. 물론 그런 것 없이도 노후가 넉넉히 준비된 사람은 해당 사항이 없지만 자식들을 바라볼 처지라면 쪽 팔리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런 부류였지만 진즉 자격증을 마련해 놓지 못해 신축 때마다 수백만원씩 지출해야 한다.&nbsp;</div><div><br></div><div>준비된 노후는 설레임이라고 한다. 준비가 안되어 있기에 사는 게 구차해지고 비굴해져야 한다면 그건 본인 묷이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친구를 챙길 걸, 일 좀 덜할 걸, 도전하며 살 걸, 내 뜻대로 살 걸, 내 감정에 더 솔직할 걸 등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고 하는데 나 역시 이대로라면 후회속에 인생을 마감할 것만 같다.&nbsp;</div></div><div><br></div><div><div>내가 지난날 화려(?)했던 모든걸 훌훌털고 인천을 떠나 고향이지만 낯선 곳을 향해 출발한지 12년이 되었지만 그간에 내 자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모든게 생소하기만 했고, 울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걸 내려 놓기로 하고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하루 아침에 다 바꿀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nbsp; &nbsp;</div><div><br></div><div>나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자처했던 엘리야를 곧잘 생각한다. 영웅적으로 사역을 수행해낸 바로 다음 순간 지금까지 자기의 보람이고 영광이고 가치이고 존재 의미였던 사역지도, 동역자도, 백성도 모두 던져버리고 혼자서 광야로 도피하여 허탈에 빠져 나무 아래서 죽음을 생각하다 쓰러져 잠든다.&nbsp; 하나님은 지쳐서 쓰러져 잠들어 있는 선지자를 위하여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준비하시고 선지자를 어루만지신다.&nbsp;&nbsp;</div><div><br></div><div>그리고 그에게 “일어나서 먹으라”. 어떤 음성과 어떤 어투로 이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을까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가 가장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고 싶고 그만 살고 싶을 만큼 깊은 침체와 좌절에 빠졌을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동행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힘들고 지쳐 절망 속에 나자빠져 있는 자신의 종에게 이 사실을 확인시키신다.&nbsp;</div><div><br></div><div>나에게도 그런 체험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어쩌면 매일 매일 쓰러져 허우적거리며 비틀 걸음으로 살았다. 오히려 지금이 내 생애에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가진 것없고 들어낼 것없는 상황이지만 가장 진실하게 사는 이 시간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더지처럼 죽어라고 땅을 팠다.&nbsp;</div><div><br></div><div>그러면서 내 자신을 혹사시켰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민감한 것이 내 결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감각이라는 최면을 걸었다. 오히려 예민하기에 그만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내가 평생동안 추구했던 사명적 삶이 퇴색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크고 어느날 갑짜기 의욕이 실종되고 의기소침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에게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삶에 지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고, 가능하면 긍적적인 안목으로 대하려 안간힘을 쏟는다.&nbsp;</div></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7/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2211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제 오후부터 내리는 비는 단비 수준이다. 상추와 오이 몇개, 양파를 캐어 친구의 아내 손에 들려줄 땐 독실한 크리스찬인 권사님은 목사님이 키운 농작물을 황송해서 어떻게 먹느냐고 호들갑을 떨지만 60년 지기인 친구가 먹을 것이기에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날이 좋아지면 마늘도 캐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div><div><br></div><div>외롭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미 그럴 단계는 지났을 거라 짐작하고 왠만해선 묻지 않는데 몇번 안본 탓에 내가 걱정이 되는가 보다. 내 주변엔 많은 지인이 있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두세명에 불과하다. 시골생활이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불편하냐고 물으면 주저할 필요가 없지만 외로움을 말할 때는 약간의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라면 사실인즉 그렇다. 레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심에서 살다보니 캄캄한 시골생활이 적막하다고 느껴질 것이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비로서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이 된 기분으로 내 삶을 디자인하고 있기에 아직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루종일 일하고 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으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문학과 사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뒤늦은 후회와 반성을 하노라면 외로워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수면이 극도로 부족한데 허튼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오늘 못하면 내일해도 상관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굳이 오늘 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여유있는 시간이 나를 허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니 내 감정을 표출할 기회도 없거니와 내 스스로도 그런 값싼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 대범한척하며 허탈 웃음으로 대신한다.&nbsp; &nbsp;</div><div><br></div><div>이미 늦은감이 있지만 건축일도 시급하기에 제 때 수확을 해본적이 없을 정도로 게으른 농부이다. 시장에 들려 열무와 얼갈이 배추 씨를 구해왔고 조선 오이 모종도 여러개 구해왔다. 지금은 가시 오이가 엄청 쏟아지지만 그것도 이내 시들해질 것이기에 한여름을 위해 모종을 구입하면서 들께 모종도 넉넉히 심으려 준비해 왔다.</div><div><br></div><div>조만간 손주들과 가까운 친구목사님들을 초대하여 삼겹살 파티라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비가 그치면 양파캔 자리에 심으려 한다. 비가 내리니 옥수수가 흐느적 거리는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린다. 현장에서 일하다 코스모스 몇개와 이름모를 향이 진한 꽃나무를 수거해 왔다. 일단 비를 맞으며 꽃나무를 심긴 했지만 내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셀릭스를 따라갈 나무가 없다.&nbsp;</div><div><br></div><div>불과 하루 이틀 사리에 밭고랑마다 풀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단 하루만 미뤄도 감당못할 정도로 자라날 것이기에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이 많아서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인부들을 동원하면 일당 50만원은 줘야하기에 어쩔 수 없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손수해야 한다. 세상엔 풀을 이겨본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나 역시 해마다 풀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div><br></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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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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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7 Jun 2026 22:12:23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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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찬밥 신세를 모면하려고</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6/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2158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체질적으로 뜨거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밥도 된밥에 식은 밥이 더 좋다. 방금 밥을 했으면서도 찬밥이 남아 있으면 먼저 찬밥을 먹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볶음밥을 좋아하는 데, 막 지은 밥으로는 맛있는 볶음밥을 절대 만들 수 없다. 냉장고 구석에 굴러다니던 수분 빠진 찬밥이라야 진짜 볶음밥의 소중한 재료로 변신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과학적으로 보면 갓 지은 밥은 전분이 막 호화(糊化)된 상태여서 젤리처럼 진득하고 수분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슬고슬한 건조함이 중요한 볶음밥 재료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나는 밥을 하면 작은 비닐로 한공기 정도의 분량으로 나누어 냉동시켰다가 필요할 때마다 해동시켜 볶음밥 재료로 사용한다.&nbsp;&nbsp;평소에서 찬밥 신세를 모면하지 못한 탓인지 더운밥보단 찬밥이 좋다. ‘찬밥신세’,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니다.’란 말들이 말해주듯 찬밥은 우리에게 항상 홀대받는 신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며칠전에 티브이에서 찬밥은 혈당을 낮쳐주는 아주 좋은 음식으로 판명났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모양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성경을 필사하면서 호세아 8장 8절에서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과 '홀로 떨어진 들나귀'라는 말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깨진 그릇을 어디에 쓰겠는가? 고집불통인 욕심 많은 들나귀 또한 쓸 수 없다. 그러니 호세아 선지자가 이내 이스라엘은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할 거라고 경고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에게 찬밥신세가 되는 것도 견디기 어렵지만 하나님께 버려진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말하겠지만 나는 그간 전자에 꼿혀 살아 온 걸 후회한다. 사람들에게 찬밥신세를 당하지 않으려고 부단(不斷) 애를 썼으며 내 존재감을 들어내려 혈안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록 내 초라함만 들어낼뿐이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근래들어 어딜가나 어르신 소릴 자주 듣는다. 이번 여행중 만난 70쯤 되어 보이는 중늙은이들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나이를 밝히지 않은 탓에 내 호칭을 <b><font color="#ff6600">어르신</font></b>이라 하여 난감해 했다. 아마도 팔십쯤 되어 보인 모양인데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어르신 소릴 듣는게 달가운 소린 아니었던 것 같다. 어르신이란 말이 분명 높임말이긴 하지만 들을 때마다 별로란 생각이 들고 씁쓰레한 기분을 느낀다. 과연 내가 어르신 소릴 들을만 한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른은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붙일 수 있는 명사이다. 늙은이들이 착각하는 대부분의 오류는 늙은이와 어른을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늙은이들은 어디 가서나 대접 받기를 원한다. 늙은이(=어른)이기 때문에 자리를 양보 받아야하고, 혜택을 받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남보다 우선시되는 관심을 받아야한다. 늙은이이기 때문에 젊은이를 탓할 수 있고, 자기 생각이 올바르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고 생각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것이 바로 늙은이와 어른을 동일시하는 바보같은 늙은이들의 추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이지 꼭 늙은이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는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늙은이는 꼭 어른이라는 비례되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 노인이 되었어도 추하게 늙지않고 내 할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고 사는게 중요하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6/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2000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주제 넘은 소리같지만 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존재하고 아직도 내 사명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 묷이라고 생각되면 아무리 힘든 일이더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몫'이란 ‘목숨’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한 말인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몫’이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추적해보고, 만일 그것을 발견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과업이라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러고 보면 몫이란 자기에게 돌아오는 권리쯤으로 해석할 말은 아닌게 분명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주변엔 자기 몫을 찾으려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다.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몫은 무엇인가'를 심도깊게 생각해 보질 못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맡겨진 고유한 몫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유일한 몫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힘으로 사고할 능력이 생기면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해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는 이것을 위해 배움의 길에 들어서야 하는 데, 대한민국의 학교에선 우리하곤 상관없는 남 이야기만을 학습한다. '몫'을 '사명'이라고 가르치질 않고 '권리'라고 가르친다. 다른 사람의 몫마저 빼앗으려 하니 이젠 자기의 몫을 안빼앗기려 혈투를 벌려야하는 고단한 시대를 살고 있다. 늙은이들이 이걸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찬밥 신세를 모면하기 어렵게 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카드를 일년에 손에 꼽을만큼 사용했지만 요즘은 외국인들 인건비를 매일 결제해 줘야 하기에 항상 현금이 부족하여 식당 등지에선 카드를 사용하지만 왠만하면 현금으로 지불하려 노력중이다. 9천원짜리 백반을 먹고 카드를 내미는 강심장이 아니기에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데 나중에 한꺼번에 결제하려면 꼭 빼앗기는 기분이라 현찰을 선호한다. 내 조부께서는 "외상먹는 놈은 집안 말아 먹는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카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업주에게도 미안한 일이라 삼가하고 있다. 거의 5만원 이하는 왠만하면 현금 결제를 하는데 편리한 건 알지만 내가 조금 불편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번에 결제할 때 도둑맞은 기분을 예방하려고 가능하면 현금을 늘상 가지고 다니는데, 그래서인지 어딜가나 아직은 찬밥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어쩌다 서울에 갈 때도 무료로 지하철을 타본적이 없다. 그 흔한 무료 급식소도 이용해 본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으면 반드시 대접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다. 현역시절에도 목회자라고 무조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로 여겼다. 그 덕에 아직까진 찬밥 신세를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건 그렇고 나도 때론 무엇인가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땅히 취미삼을만 한게 없다. 드론을 사서 장난감마냥 취미를 붙혀볼까 생각했는데 너무 비싸 그만 두었다. 사진찍는 걸 취미로 삼아볼까를 심사숙고중이다.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엔 땅거미가 길게 드리워지는 순간 서해바다로 침몰하는 태양의 피빛이 금강을 붉게 물들인다. 장관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들어나는 순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마지막 모습을 담기위하여 사진 작가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작가라는 사람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백장을 찍으면 한두장 건진단다. 그 한두장을 찍기위하여 수천만원짜리 카메라를 준비하고 한번 나갈 때마다 수십만원씩 경비를 지출하면서 전국을 누빈단다. 어떤 때는 비가와서&nbsp; 사진을 못찍으면 몇일씩 기다리기도 하고 맘에드는 장면을 못얻으면 다시 찾아 온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6/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22011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이 정도면 취미생활이 아니고 거의 광신적이지만 고상한 취미생활인 건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난 마음만 있지 그것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하다가 어느날 갑짜기 인천공항으로 떠나는게 유일한 취미라면 취미이다. 지인들이 당신 정도면 골프를 쳐도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다고 권장하지만 아직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늙으면 근육이 빠져 나가고 근육이 없으면 장수하지 못한다고 고기를 권하지만 그것마저도 시큰둥이다. 나는 쇄골(鎖骨)이 있는 건 알았지만 무지막지한 살은 그것을 철저히 감추고 있어 잊고 살았는데 설마 쇄골이 나에게서 발견될줄은 몰랐었다. 쇄골이 어깨를 지탱하는 버팀목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어깨가 많이 처진 기분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어깨를 펴라'는 소릴 많이 들었다. 당당하라는 뜻이엇을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습 3장 16절에 보면 "너희 남은 자들아 하나님께서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은 공동 번역에서는 “기운을 내라”고 되어 있고, 이 말은 “힘을 내라!”, “기죽지 말라”, “어깨를 쫙펴라” 라는 말씀이다. 이해타산에 너무 밝으면 찬밥신세를 모면하기 어렵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텃밭의 오이를 처치하기 어려워 대충 수거하여 자주 가는 식당에 가져다 주었다. 오늘 아침에도 친구의 아내가 마늘과 양파를 수거해 가겠다고 하여 대기중이다. 마을과 양파를 수거해 가면 내일부터 당장 열무를 심으려 땅을 일구려 한다. 전혀 먹지도 않을 농작물을 왜 심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딱히 할말이 없지만 노화방지 수명연장을 위해 투자하는 중이라고 말하곤 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9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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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6 Jun 2026 22:02:3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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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이야 말로 위대한 농부시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5/08d22a1473fd39f717549f92a60484f4235936.pn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내가 자란 동네의 골목길을 자주 찾는 편이다. 아직도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여 눈여겨 살펴보곤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추억이 물씬 풍기는 그 길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골목은 도시의 외곽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사라져가는 주거문화가 됐다. 골목을 만들어내는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재개발에 밀려 부서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더불어 이웃도 사라졌다. 어슴푸레한 새벽, 리어카를 끌며 부지런히 걷는 청소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 집 앞을 쓸려고 나온 할아버지들의 인사 소리로 골목의 하루는 시작된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평상 하나만 놓이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오늘날 ‘밖에서 놀기’는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심 속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뛰놀 수 있는 골목길 찾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아이들도 게임기, 스마트 폰 등으로 집 밖에서 노는 것 보다는 집 안이나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해가 뉘엿뉘엿 지거나 밥 때가 돼 어머니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바깥에서 놀며 지내던 여름의 긴 오후를 나는 기분 좋게 기억한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손자들이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이야길 끄집어 낼까를 궁금히 여긴다. 군산시 서수면엔 초등학교가 세개가 있지만 세학교를 통털어 30명이 안된다. 운동회도 연합으로 하지만 학급 체육시간보다 못하다. 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다. 농촌으로 시집올 처녀가 없으니 그 자릴 베트남 꽁가이들이 채워 버린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히려 순수 토종 혈종이 역차별 받는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이다.&nbsp;</div><div><br></div><div>나 역시 가족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건설 현장을 뛰어 다니고 있으니 시간내기가 말같이 쉽지만은 않다. 당연지사.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할에비와의 추억도 자주 만들지 못한다. 먼훗날 이 할에빌 기억이나 할까? 물론 인간은 모두가 잊혀질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이면 괜히 심숭생숭하면서 향수에 젖어 궁상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 내 지친 모습을 보면서 노구를 끌고 힘겹게 노후를 보내셨던 선친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울적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한 세상을 살다 가지만 난생처음 늙어 보는 일이기에 기력이 없을 땐 인생무상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을 비관만 하는 건 아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잎이 지닌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모양과 색깔들이 크겠지만 잠시 피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피어 있는 시간은 짧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생각해보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사시사철 피어 있다면 누구든 지겨워지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도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세상엔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그 중에 벚꽃은 시간이 짧아서 더욱 아름답다. 지나치게 붉지 않아서, 피기 시작하면 봄에 내린 눈처럼 세상을 온통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이지만 아쉽게도 2주일을 채 못 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찌나 연약한지 중간에 비라도 한번 내리면 큰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1년에 딱 한 번 벚꽃이 필 때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꽃은 수명이 짧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벚꽃을 보노라면 나일 먹어 간다는 반증이라도 되는양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종종있다. 우리 삶의 기억 안에는 ‘추억’이라는 것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6/688b8a4423a01a1fb3c517de2ea43f4500010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추억’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숨어 지내다 우리가 예견치 못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감정선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곤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어렸을 땐, 구슬치기 딱지치기가 일상 놀이였다. 하다못해 사이다 병마개를 넓게 펴서 그것도 따먹기를 했을 정도였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까닭이었으리라. 계집애들은 머리핀을 따먹기 하였으며 농한기로 접어들면 노름이 성행하여 마을마다 폐가 망신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야간도주를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금은 부조화하게 생겨나는 현대식 건물과 상점들로 리모델링되는 공간을 안타까워했다. 아마도 이렇게 변화되는 모습에 그의 추억이 빼앗기게 되는 데 대한 불안함이었는지 모른다. 옛것의 순박함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가 융화될 순 없을까. 긴말 할 필요없이 나는 ‘조화’라는 단어로 답을 얻었다. 분명히 많은 곳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재해석과 그 가치를 다시 인정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존재한다. 그러한 노력이 잃어버린 고향을 온전히 다시 찾아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바뀌고 길도 사라져 전혀 다른 곳이 돼 있는 것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다.&nbsp; 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는 내 머리와 가슴속에 정지돼 있는 기억의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효율과 기능만을 강조한 도시는 사람의 정서와 심미적인 부분을 경시하기 때문에 시민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래된 곳을 보살피는 도시개발이라야 의미가 있다.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추억을 담긴 도심의 골목길들을 없애지 말고 보전해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번 여행에 동행했던 친구와 다낭해변에서 꽤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출발할 때 어린애 팔둑만하게 자라는 오이를 그대로 두고 왔는데 노각이 되지 않았을까 염려된다니 진즉 목회에서 은퇴하고 사업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빈정(?)대지만 내 주업은 건축이 아니고 농업인이라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올해부턴 농사지을 여력이 없을 것 같아 밭을 약간 줄였지만 그 사이 사이에 대파도 심고 마늘도 심었으며 시간나는대로 농작물도 심으려 마음먹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건축은 농사라는 주업을 해선 먹고 살기 어려우니 할 수 없이 부업으로 하는 것이라 해도 입에 침을 바르고 거짓말을 하라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사실인즉 그렇다. 건강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노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에 하는 것이고, 일하지 않으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성격때문에 허접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nbsp; &nbsp;</span></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6/2c46655d7830268a67178ed831d86ac80002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주변인들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게 아니라고 항변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그간에 얼마나 벌었느냐는데 온통 관심을 보인다. 나는 설령 뜻하지 않은 富를 얻는다 해도 부자로 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바닥에 선 어느 정도 알아주는 건축가로 소문이 났지만 여전히 빈털털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내 기력을 다하는 날까진 무슨 일이라도 하려 작정했다.&nbsp;&nbsp;</div><div><br></div><div>현역에선 조기 은퇴했지만 일엔 졸업이 없다. 내 친구중에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녀석이 교회는 몇살까지 다녀야 졸업하느냐고 묻는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得道하고 30년이라고 대답을 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목양생활까지 50년이 넘었으니 그럼 졸업해도 되겠다며 이제 어제 다낭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만간 중국 서안이나 계림을 가자고 꼬드긴다.&nbsp;</div><div><br></div><div>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근사한 오성급 호텔에서 아침 조반을 먹었던 기억이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안해도 주일을 해외에서 보낸게 마음에 걸리는데 직장도 없는 것들이 항상 주말을 끼고 스케줄을 잡는통에 곤혹스럽고 아직 교회를 졸업하려면 20년은 남았는데 가정학습이란 핑게를 대고 학교도 결석을 인정해 주는데 그까짓 주일 한번 범했다고 무슨 대수냔데 그럴 형편이 아니래도 믿질 않는다.&nbsp; &nbsp;</div><div><br></div><div>내가 분명히 '得道하고 30년'이라고 했는데, 내 말뜻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제서야 겨우 득도하였으니 앞으로 20년 후면 교회를 졸업해도 될지 모르겠다. 나는 현역 생활을 하면서 직업적인 사역에 충실했을뿐 得道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죽어라 땅을 파면서 이마에서 땀이 흐를 때 창세기를 이해할 수가 있었고, 로만 칼라와 성의를 벗고 나서야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nbsp;</div><div><br></div><div>복음의 의미가 내 삶의 전체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내 삶의 일부분이었기에 그간 허덕이며 살아온게 틀림없다. 나의 아지트는 장항의 한적한 바닷가이다. 어릴적 교과서에 실렸던 장항 제련소의 굴뚝이 보이는 곳에 송림이 형성되어 있고 바로 서해 바다이기에 한적한 시간이면 자주 찾았던 곳이다. 난 거기에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철석이는 파도 소릴 통해 설교를 듣는다.&nbsp;</div><div><br></div><div>집에 돌아오니 마늘 양파가 모두 자빠져 수확의 손길을 기자리고 있고 오이도 어른 팔죽만하게 자라 한시도 늦출 수가 없다. 오늘중으로 모두 수확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겠다. 양파를 캔 자리에 열무를 심으려면 다시 땅을 파야하지만 그런 일상일뿐이다. 피로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여행 가방을 풀려면 몇일은 더 걸리겠지만 제일 시급한게 때를 놓치지 않고 작물을 심고 거두는 것이기에 현장엔 조금 늦게 갈 거라고 통보하고 밭으로 향한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하루 더 쉬고 현장에 나오라 만류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임에도 무슬림들은 하루에 두번씩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코란경을 암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야말로 나이롱 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 신자들이 직장에서 몇번씩 기도회를 가질 수가 있는가? 우리 현장에선 기도하는 걸 절대 금하지 않는다. 비무슬림들은 그 시간이 쉬는 시간이다. 오히려 기도를 길게 하라고 종용할 정도이다.</div><div><br></div><div>토마토가 앙증맞게 자라고 있다. 토마토가 붉어지면 의사의 얼굴이 붉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이 몸에 좋다지만 격국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두어개 정도일뿐이다. 비 한번 맞으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걸 보며 매일 고무 호스를 대고 물을 주는 내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하나님이야 말로 위대한 농부시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9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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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6 Jun 2026 00:03:3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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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때로 독종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0/d84f19782b7ecfc891ad36d0889155da1157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추억이란 어느분위기좋은 찻집 벽에걸려있는 마른꽃과 같은것이다. 생화처럼 싱그러운 향기는 없지만 오래 오래 마음속에 액자처럼 걸려 있는 것, 그래서 본래의 빛깔이나 향기는 사라졌다 해도우리들의 마음안에 늘 은은하고 곱게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nbsp;</div><div><br></div><div>사람은&nbsp;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된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 형제 자매가 어린시절 같이 살았던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 연애시절의 추억 등 불행이든 행복이든 모든 과거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의외로 사람에겐 옛 추억을 골라서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 불수의(不隨意) 능력이라선지 자신의 의지이면서도 자신의 맘대로 다룰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특별히 지정된 정보 또는 지식을 딱히 골라 뽑아 되새긴단 의미와는 분명 다르다. 나는 때로는 독종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 해가 지면 어둠속에 갇혀 버리고마는 이런 깡촌에서 어떻게 혼자 사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고 지난 십년이 넘도록 보일러도 없이 겨울을 나는 무모한 짓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나는 하루중 이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진지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있으며 우주적인 사고로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라 믿기에 외로움이나 고독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잊을만 하면 불현듯 꾸중물을 일으키는 못된 것들이 있어 탈이지만 그것마저도 長江의 물도 윗물에 밀리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고 내 삶을 디자인해 가는 중이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맑고 투명하지만, 맑은 술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매번 진회색 투성이다. 오래된 어릴 적 추억은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를 보이지만, 근래 만들어진 추억은 눈물 한 방울 ‘찍’ 묻어나는 게 많다. 아직 설익은 탓이리라. 날 살찌게 하는 추억도 있고 마르게 하는 추억도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청춘을 한참 넘어선 나이지만 추억의 깊이를 헤아릴 정도는 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젖어드는 추억은 커피색처럼 진하다. 색만 진하지 한숨 한 스푼에 온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다. 무심한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단맛은 식은 커피가 더 달다. 시간도 우려 넣고 한숨도 우려 넣고 빈 눈길로 오래 휘저었으니 마냥 우러난 커피가 더 단 건 당연하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font face="Malgun gothic">대학병원을 다녀왔다. 이제 그만 갈까를 망설이며 고민했지만 지난주 CT 촬영과 피검사 한 결과를 알아야겠기에 방광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엄청 고통스럽다. 며칠간은 소변을 보지 못할 정도로 내시경 후휴증이 수반되는데 다행히 방광엔 이상이 없고 심장이나 간 폐 등 주요 장기도 이상이 없단 진단과 함께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콩밭을 잘 관리하란 처방을 받았다.</font></div><div><br></div><div>젊은 사람같으면 관심 사항이지만 연세도 있으니 10년간은 그냥 둬도 괜찮겠다는데 그럼 내 수명을 10년정도로 본다는 말같아서 기분이 별로였지만 일단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고 역시 빈혈 증세를 지적한다. 나는 건강한 체질로 태어났지만 그걸 믿고 몸관리를 잘못한 탓에 득병했고, 몸 하나 믿고 사는데 이나마 부서지면 큰 일이라는 생각에 건강에 더 신경을 쓰는데도 나일 먹어서인지 면역력이 떨어지고 가끔 아프기도 한다.&nbsp;&nbsp;</div><div><br></div><div>아플 때마다 우울함이 함께 찾아오기에 되도록이면 몸을 혹사시키면 안되는데, 눈에 뵈는게 일인데 안할 수도 없어 지렁이처럼 텃밭을 오가고 공사장을 누빈다. 다른집들은 스프링 쿨러를 장착하여 자동적으로 물을 주지만 난 일일히 고무 호스로 물을 주기에 힘이들지만 그보다는 물 사용량이 장난이 아니어서 평소 때보다 두세배는 더 부과되는게 부담스럽다.</div><div><br></div><div>이런 생각은 공사현장에서도 여실히 들어난다. 일반 인부들이야 건축자재나 소모품을 함부로 다루지만 나는 재생하여 쓸 수 있는 것은 절대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아마도 보릿고개를 지내온 경험들이 이런 행동을 만들었겠지만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 절약이 몸에 밴 까닭에&nbsp; 우리 년배들은 거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내가 지내 온 50년~60년대 어린시절은 정말 가난했었다. 하루 밥 세끼를 제대로 먹는 사람이 없었다.지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보통이고, 의사들은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살을 빼려고 밥을 굶기도 한다.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먹을게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혹은 다이어트를 하려고 식사량을 줄이는게 보통이다.</div><div><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0/4443ef5dc115099024a48567e4d17d921159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대개 2월부터 8월까지 일곱 달 동안은 세 끼를 먹고,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다섯 달 동안은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되어 있다. 곧 해가 긴 여름 그리고 농사철에는 활동량이 많았으므로 세 끼를, 해가 짧은 겨울, 농한기에는 두 끼를 먹었다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이미 운동 정도에 따라 열량을 조절하는 슬기로움이 있었다는 말같이 들리지만 그만큼 가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시절과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지만 그렇다고 삶의 질이 좋아진 것 같지는 않다.&nbsp;&nbsp;OECD가 35개국 삶의 질(質)을 쟀더니 한국이 27위였다. 재작년 26위, 작년 24위에 이어 하위권을 맴돈다. 항목별 평가에선 '사회적 유대'가 32위로 밑바닥이다. 경제적으로는 10위권 안팍이지만 삶의 만족도에선 최하위를 유지하고 있다. 주변 사람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알고 사는 각박한 세상. 잘 먹고 잘 입은들 뭐하나 싶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잠언 19장 7절에 보면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표준새번역에 보면, "가난하면 친척도 그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친구가 그를 멀리하지 않겠느냐? 뒤따라가며 말을 붙이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고, 현대인의 성경엔, 사람이 가난하면 형제들에게도 업신여김을 받는데 어찌 그 친구들이 그를 멀리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가까이해보려고 해도 그들을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난하면 그의 모든 친척들조차도 피한다.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외면을 당한다. 그렇다면 그의 친구들은 훨씬 더 그를 피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가 간청하며 그들을 찾아다닌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나라 사람은 정이 많은 민족이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려는 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매우 사교적이다. 막걸리 한잔, 담배 인심이 세계 최고이다. 너무 이해타산을 따지면 큰 것을 보지 못한다. 어떤 공동체에 속하더라도 시종일관 서로 마음을 열어놓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서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상대는 회복하기 힘든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다른사람을 책망하거나 훈계를 하지 않으려 한다.&nbsp;</span></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이라는 자만심으로부터 문제는 꼬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만이 최고라는 오만한 사람을 만나면 심기가 편치 못하다. 살다 보면 비도 오고 눈도 내리는 법인데, 잘잘못을 떠나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에게 숙이고 들어간다고 해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며 마음을 비우자고 호소한다. 사람이 꼭 이익을 쫓다보면 당장은 유익일지 모르지만 결론 부분은 모두가 동일하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사람은 노는 물이 중요하다. 밴뎅이 속알딱지만한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쫌팽이가 되기 마련이다. 진정한 벗인지 아닌지는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당해 보아야 알 수 있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도 한 결 같이 변하지 않는 우정이 진정한 우정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찾아오는 친구가 정말 친구요, 믿을 수 있는 벗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세상에는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nbsp;</div><div><br></div><div>내가 지난 시절 놀았던 물이 너무 깨끗한 물이었는지 모른다. 일급수였는지는 모르지만 큰 물고긴 거의 보질 못했다. 잔챙이 정도만 가끔 보았을뿐이다. 태국 방콕 중앙을 흐르는 차오프라야 강을 유람할 때 보니 일미터 이상의 물고기들이 물반 고기반이었다. 관광객이 던져 주는 식빵에 새카맣게 몰려든 물고기를 보며 저런 흙탕물에서 자라는게 신비롭게 여겨졌다.&nbsp;</div><div><br></div><div>지금 내가 노는 물은 일급수는 아니지만 위선이나 가식같은 것은 없는 곳이다. 거룩하고는 멀지만 한번쯤 속내를 들어내고 살아도 될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현실은 고달프지만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들과 행복한 내일을 소망하며 사는 친구들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10/0d6b3fcec0f98ec6a386b09d71b34eef12010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즈백에서 한국돈 30만원이면 중산층에 해당되는 월급이라는데 우리 직원들은 월 최하 5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니 몇년만 고생하면 평생을 살만한 수입이 보장되지만 그런 꿈을 위해 노력하는게 가상하기도 한다. 내국인이라면 그 정도 수입에 감사하는 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삶의 의욕을 가진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div><div><br></div><div>언제까지일진 모르지만 공사판에 있는 동안은 일정한 건강을 유지해야할 것 같다. 먹는게 부실하고 하루도 쉬지 못하는 강행군을 하면서 지금까진 요행을 만났지만 이제부턴 내 스스로 자구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이가 한뼘씩 자라고 있고 토마토도 아직은 콩알만 하지만 조만간 먹을만하게 자라면 무진장 먹어볼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조선족 소장에게 시골 주택을 사주었다. 원래 은퇴 교역자에게 사주려 했지만 워낙 싼값에 구입한 걸 알고 강력하게 요구하여 넘겨 주었다. 약간만 수리하면 오천만원 이상 수익이 보장되는 집이었는데 그간 십년동안의 인연을 운운하는 바람에 양도했는데 여행을 좋아하는걸 알고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 오시라고 약간의 돈봉투를 건낸다.&nbsp;</div><div><br></div><div>마침 긴급 모객을 한다는 여행사의 문자를 받고 여행가방을 싸고 있다. 여행매니아인 인천의 임형과 두 박목사님 몰래 떠나는게 미안한 일이지만 냅다 사진이나 찍어 보내 주어야겠다. 한두번 가본게 아니지만 쌀국수로 잃어 버린 입맛을 찾으러 치료차 떠나는 날 이해할 것이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8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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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0 Jun 2026 12:02:2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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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형편없는 시력</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9/165c5b63a83e73d0fe962568d2a35b061117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더 겸허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 키다리는 더 큰 키다리를 만나면 마음이 위축이 된다. 반면, 난장이는 더 작은 난장이를 만나면 키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마음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못한 자들을 보면서 살 맛이 나기도 하고 자신보다 큰 자들을 보면서 살맛을 상실하기도 한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몇년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절대 늙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영원한 젊음을 예찬했었다. 그러나 나만 몰랐지, 눈으로 본 것은 머지않아 보았던 것이 되고 만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에 와서 뼈저리게 느꼈지만 인간은 자고로 기고만장(氣高萬丈)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다. 아무리 흥미진진(興味津津)한 것들도 시들해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nbsp;&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익산 배산공원에 모시고 가 공원을 산책시켜 드리다 시소(seesaw)에 올라타 보았다. 새털보다 더 가벼워지신 아버지는 단 1초도 못견디고 허공에 뜨셨다. 내가 무거워졌다는 생각보단 아버지가 가벼워지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였다. 불과 얼만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나에게 절대적인 후견이었지만 한순간에 내가 아버질 업어 드려야 할 존재로 변한 것이었다. 도무지 인간은 자랑할게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가끔 승용차 뒷 유리에 로타리, 라이온스클럽 맴버라는 표식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무슨 얼어죽을 사자클럽인가. 상위 10% 안에 든 지도층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어하는가 본 데, 물론 사회 봉사 활동도 많이 하겠지만 내 옹졸한 생각으로는 별로 달갑지가 않은게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모두는 자연속의 일부분이고 자연은 말없는 우리들의 질투하지 않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앞으로 나가고 또 성장하고자 하는 것들과 그 열망을 무엇으로 막을까! 그러나 조금만 돌아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퇴보’라는 말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일과 그렇게 획일적으로 살아가야 할 일이 아닌 면도 있다는 거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끄러움이 많은편이었다. 누가 본 사람이 없어도 부끄러운 짓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곤 했었다. 지금도 역시 마찮가지이다. 나는 가끔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하며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성격상 남앞에 나서길 망설이지만 사람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꽤나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믿고 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단지 '아, 쪽팔려' 이런 느낌을 넘어서서 내가 하는 행동이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다. 나는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했고 인격적으로나 도적적으로 완벽하게 산 건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은 갖추고 살아야겠다고 나 자신을 채근하며 살았다. 그리고 더이상은 나를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남들보다 실력은 없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지키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사람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물론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게 기본이 안 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기본적인 매너, 예의, 태도, 자세, 언어, 행동 등이 안 된 사람이 많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고 처음엔 손색없어 보이는 사람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아, 원래 기본이 안 된 사람이었구나”라고 혀를 찰 수 밖에 없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도덕경에는 비우는 것이 경쟁력이라며 몇 가지 비움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 마음에 와닿는 말은, 허심실복(虛心實腹)이란 말인 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근원은 욕심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또한 욕심이란 것이다. 그래서 성현들은 비움의 철학을 강조했고 스스로 실천을 하며 뭇 사람들의 본이 되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9/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119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비울 것도 많고 줄일 것도 많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늘 전쟁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span><font color="#f10b00"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b style="font-weight: bold;">'조금 더'</b></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보다는 </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weight: bold;"><font color="#f10b00">'조금 덜'</fon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게 현명한 일이다. 박제된 한마리의 생명없는 새처럼 먼지를 뒤집어 쓰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면서 보낸 나날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nbsp;&nbsp;</span></div><div><br></div><div>"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데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실존주의로 명성이 드높은 프랑스 출신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원문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사르트르와 같은 무신론자도 너와 나를 가르는 것,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주장, 나는 위에 있고 너는 아래에 있다는 태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교만을 지옥의 상태와 견줄 수 있다고 보았다는 말일 것이다.&nbsp;&nbsp;</div><div><br></div><div>좋은집에서 살고싶고 고급차에 여유있는 삶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집의 가치와 자동차, 휴가 여행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욕설이 튀어 나오게 되고, 과속을 유발하는 자동차는 실용적인 이유뿐 아니라 비용을 따져도 말이 되지 않는다.&nbsp;&nbsp;</div><div><br></div><div>팔순이 된 형과 매형이 운전면허 갱신을 하면서 과거엔 10년짜리 면허증을 발급해 주었는데 이젠 2년에 한번씩 면허를 갱신하도록 법이 제정되었고 시력검사 등 신체검사는 기본이고 치매 검사도 받아야 한다며 투덜댄다. 80이 되어서도 운전대를 잡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특혜이고 65세쯤 부턴 1년에 한번 정도 정신질환이 없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nbsp;&nbsp;</div><div><br></div><div>교통사고의 50% 정도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으키니 당연한 일일 것이고, 내 경우만 보아도 한시간 이상 운전엔 무리라는 생각에 장거리 운전은 금기시하고 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본적이 몇년이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확실히 감각이 젊은이들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군목으로 근무할 땐 비포장 도로를 달려 익산까지 10시간 넘게 운전을 하곤 했지만 이젠 모두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더 겸허해져야 한다. 까불지 말아야 한다.&nbsp;</div><div><br></div><div>며칠전 복무 CT촬영과 피검사 등의 결과와 방광내시경를 받기 위하여 원대병원에 가는 날이 임박하니 기분이 별로이다. 처음 수술을 받은 직후엔 일주일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나중엔 한달에 한번씩, 이후엔 3개월에 한번씩, 그리고 지금은 6개월에 한번씩 받지만 이제 어느 정도 완치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6개월에 한번 내시경 받는 것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번까지만 받고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div><div><br></div><div>위나 대장 검진을 할 땐 수면내시경을 하기에 부담이 덜 하지만 방광내시경은 수면이나 마취없이 해야하기에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치마를 입고 병원을 활보하며 검사 받으러 다니는게 창피한 일이기에 조속히 끝났으면 좋겠다. 내일 병원을 가기위해 목욕을 다녀와 텃밭에 앉아 한뼘씩 커가는 오이 넝쿨을 묶어주며 다들 왕성해지는 계절인데 나만 시들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씁쓰레한 마음이 들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9/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1203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집 상공을 수없이 지나는 비행기를 보며 비행운이 지워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전엔 비행기의 색상만 봐도 항공사를 알아보았는데 이젠 공항에서 비행기의 로고를 보아도 자세히 보아야하는 형편없는 시력이 되고 말았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서도 교독문할 때가 가장 답답하다. 왜 찬송가나 성경 글씨를 이렇게 작게 편집했는지 불만을 가질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내 시력이 형편없이 추락한 걸 인정하긴 싫고 대한기독교 서회를 탓하며 시력이 떨어지면서 사람보는 안목도 그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더 허전한 마음이 든다. 과거엔 시력이 1,5 이상이었는데 이젠 성경을 마음껏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을엔 백내장 수술과 인플런트 시술을 계획하고 있지만 나일먹으니 병원가는 날이 점점 많아진다.&nbsp; &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 &nbsp;</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8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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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9 Jun 2026 11:21:4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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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밥값이라도 하자</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8/3f0e883bd09a02dc0449383118e4fd981002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젊었던 시절부터 사람을 몰고 다니는 재주가 남달랐다. 남들과 특별히 다른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내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남에게 그렇게 밉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nbsp;<div><br></div><div>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도 참 재미있는 친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우스개 소리도 곧잘하여 인기만점이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아무나에게 농담을 건내고 말을 붙히는 성격은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별명 한두개는 가지고 있겠지만 어쩌다 보니 어릴 떄 붙은 별명대로 되어 간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종종있다. 어찌보면 내 운명은 주변인들이 가장 정확히 보는셈이다. 아주 친해지지 않으면 내 속을 보이지 않는 이중적인 사고와 별명이 'Kremlin'이라 붙을 정도로 내 속을 다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nbsp;</div><div><br></div><div>요즘도 하루 종일 거의 말한마디 안할 때도 있다. 특히나 오늘같이 폭설이 쏟아져 두문불출하는 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평상시에도 거의 실어증 환자처럼 살 때가 많다. 그렇다고 고독하단 생각을 가져 보질 않았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대로, 혼자이면 혼자인채로 살아 갈 나름대로의 방안을 만들어 놓고, 설령 그것이 고독이라 이름지어진 것일지라도 만족하고 자족하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마누라 없인 단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는 철딱서니들이 대부분이다. 한시도 마누라를 놓아주지 않으려한다. 아무리 사랑스런 딸이라 할지라도 스무살이 넘으면 서서히 놓아줄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랑스럽다고 죽을 때까지 품에 끼고 살 순 없지 않은가? 마누라 역시 30년쯤되면 이제 자유롭게 외출도 하고 여행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게 놓아주어야 한다.&nbsp;</div><div><br></div><div>하루 세끼 더운밥 다 찾아 먹으려 하니 '삼식이' 소릴 듣는게 아니던가? 아내들이 남편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귀찮은 존재가 된다는게 가장 서글픈 일이다. 'burdensome'은 귀찮음, 견딜 수 없도록 무거운짐이라는 의미인데 내가 남에게 짐이되는 것도 싫지만 남의 짐을 떠안는 것을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혼자이기를 자처했다.&nbsp;</div><div><br></div><div>처음에는 두려웠다. 막상 귀촌하면서 그간 가족들을 한번도 호강을 시켜 주지 못했으니 운전기사를 해서 라도 죽는날까지 생활비를 꼬박 꼬박 보내줄 거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목회 외적인 것엔 잼병이라는 걸 내 자신이 너무 잘알고 있기에 두려움이 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약간 가진 돈으로 매실밭을 사고 전원주택을 지었지만 매실을 수확하여 생활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덴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nbsp;</div><div><br></div><div>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남들이나 형제들에게, 심지어는 절친들에게 조차도 아쉰 소린 커녕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괜찮은척 했었지만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걸 절감했다. 그래서 지방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조경학교에 입학했고 건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번도 고독이라는 섬에 갇혀 본적이 없었기에 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든다는 것이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8/1e16e5d80d3f844d6c22ebe268102dc51003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느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편과의 이혼으로 외딴 산속 농가에 개 한 마리와 남게 된 여자는 "처음엔 정말 슬프고 무서웠다"고 말한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의미에서 사계절 동안 은둔자로 살아보기로 마음먹지만, 늘 가던 마트에서 "이젠 1인분 주세요"라고 말할 때, 눈구덩이에 빠진 차를 혼자 밀 때, 폭설에 갇힌 농장에서 수의사의 전화 지시 대로 아픈 개의 수술을 할 때 힘들었다고 말한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차차 두려움과 외로움이 걷혀가면서 여자는 생각지 못한 '고독'의 속살을 보게 되었다. 옆에서 종알대는 사람이 사라지고 나니 나무에서 수액을 빨아올리는 소리에서 집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까지, 시끌벅적한 자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힘든 1년을 거치면서 자신감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고독이 가져다 준 선물을 얻었다고 고백한다.&nbsp;</div><div><br></div><div>무슨 일이던지 처음이 문제이지 자신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 약간이나마 평온스런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무수한 날동안 '왜?'라는 의문 부호를 가지고 씨름해야 했었다. 내 주변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었다. 이용 가치가 있어서인지 아님 재미있어서인지 단 몇시간도 혼자있는 시간이 없었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지금은 관습이 되어서인지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편이다. 거의 매일 딸들이 아빠의 안부를 물어 오지만 설령 문제가 있어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거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항상 미소만 전해주고 싶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효'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불효했으니 내 자식들에게 봉양을 기대하지 않는다. 꼭 그렇게 될진 모르지만 숨을 멈추는 순간까진 자식들을 내가 돌볼 대상으로 여길 생각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선친께서도 그리하셨고, 조부님도 그런 생각으로 사셨다. 전통적으로 우리 가문은 '내리사랑'과 아내들에게 단 하루도 품팔이를 시키지 않으셨다. 그게 우리 집안 전통이고 내력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친구의 아내는 자식들이 용돈을 주면 절대 사양하지 말라고 닥달질 한다. 생일날 용돈과 옷과 식사를 대접받았다며 자랑질이다. 그렇게 아둥바둥하며 돈벌어 자식들에게 남겨준들 무슨 소용이냐며 자기는 안주면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는다며 효도도 일종의 훈련이라는데 난 자식들이 용돈을 주면 두배로 손주들 용돈으로 손에 쥐어주고 내려 온다.&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그나마 돈이 생기면 손주들과 일년에 한두번씩 여행하는 경비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변변한 외출복 하나없이 대충 대충 살아가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여길 것이다. 다 부질없는 짓이라며 잘먹고 잘 살라고 면박을 준다. 온갖 메이커 제품으로 도배질하며 사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내가 한심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조상의 가풍을 따르고 있을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선친께서도 자식들에게도 내리사랑을 하셨지 노후를 의탁하지 않으려 애쓰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임종을 앞두고 스스로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던 모습이 선명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는 내리사랑을 몸소 실천하려 하셨던 것 같다. 이게 잘하는 것인진 모르지만 나도 이 전통을 따를 것이고 습관적으로 지킬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8/abb73469d2ead197180fcf8c926dfd2310052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차피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고독은 에스프레소(espresso)와 같다. 쓰디 쓴 달콤함처럼, 처음에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매혹되는 최상의 향기다. 그리고 우리가 의미없는 방황을 멈추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듯 고독 속으로 침잠(沈潛)하는 기술을 익혀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깊이 사색하거나 자신의 세계에 깊이 몰입함으로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윤정이라는 작가의 글에 "태어나서 인생 처음으로 늙어가고 있다. 늙는 것은 두렵지만, 처음이기에 설렌다."는 글이 좋아서 메모해 두었다. 나 역시 처음 늙어 보는 것이라 설레임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를 안남기려 애를 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밥값이 하루에 몇만원씩 지출된다. 점심 때가 되면 지인이나 동네 영감들이 얼쩡거리는데, 밥값 안했다고 인부들하고만 먹을 수 없어 누구라도 식사 시간에 함께 하는 사람에겐 대접을 한다. 우리 현장에서 쓰레기 하나만 주워도 일단 밥값을 한 것으로 인정을 하는데, 문제는, 노임을 받으면서도 농땡이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내 마음이 서글퍼지고 분개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긴 이 땅에 밥값을 제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째튼 시간이 지나면 공정이 완성되겠지만 그만큼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은 골병이 들고 내 주머니도 가벼워진다. 그래서 '밥값만 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더 할려고 하지도 말고 자기 밥값만 하면 반대급부가 따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재미 사학자 백지원이 쓴 이 책 &lt;왕을 참하라&gt;는 기존의 역사가들이 꺼내기 어려워했던 조선사의 숨겨진 치부를 해학과 역설, 비어와 속어를 써가면서 재미있게 들춰내 보인다. 저자는 태조 이성계부터 27대 순종까지 조선 27명의 왕들을 백성의 눈으로 보면서 하나하나 평가해 나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결과 명군이라 불리는 세종(4대)과 정조(22대)를 제외한 다른 왕들 가운데 그나마 ‘밥값이라도 한 왕’은 겨우 7명. 광해군, 효종, 태종, 세조, 영조, 성종, 숙종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결국 명군 둘에 밥값을 한 일곱을 제한 나머지 18명의 왕들은 요절, 단기 재위했거나 모자라고 무능한 임금들이었다. 왕조 500년간 외침으로 딱 두 번의 국가적인 위기를 맞았을 때 임금은 조선 왕 중에서 가장 멍청한 데다 간교한 선조와 인조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바람에 그 힘든 전쟁 속에서 백성들의 삶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왕들이 다스린 조선은 백성 편에서 본다면 진작 망했어야 할 나라였다. 임진왜란이후 약 300년 동안 25년간의 정조 시대를 빼고는 존재할 가치가 전혀 없는 왕조였다. 백성의 90%를 웃돌던 상민들과 천민들, 그리고 서얼들에게 조선은 정말로 무도의 나라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양반들의 수탈과 억압 속에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든 노비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이거나 범죄자였고 타민족이었다. 동족을 단지 가난하다거나 출신 혹은 직업이 천하다는 이유로 짐승같이 취급해 사고팔고 상속하는 나라는 조선 말고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왕조가 500년을 지속한 건 기적중에 기적이 아닐 수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내가 원하는 사회는 차가운 기계적 세계로 향하는 인류 문명 속에서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따뜻한 가슴의 인간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도시에 있었으면 잊고 살았을 이야기지만 나는 매일밤 달(月)이 기우러지는 모습을 본다. 차오르는 달의 크기를 통해 인간의 성쇠를 매일 확인하면서 내 인생의 단면을 느낀다. 매일 한번씩만 하늘을 쳐다보기만 해도 인간은 착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나를 통해 더 좋은 것을 약속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정말 순수해질 수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세까지만 해도 천동설이 대세였다. 지구가 돌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에도 지동설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늘도 태양이 뜨고 태양이 진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지구는 불변이고 태양이 뜨고 진다고 믿는 것처럼 내 생각이 절대적이고 내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nbsp;</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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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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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08 Jun 2026 10:07:1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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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구가 돌고 있으니 어지러운 건 당연지사.</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7/d6a8436096655e71241177718e658b14104010.jpg" width="0" align="left" class="photo" alt=""><br><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7/9268c38ef0f1f6048b68a0abc768ca8c1040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근래 몇년동안 입에 거품이 생길 정도로 일하면서 나의 현역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걸핏하면 정치한답시고 목회외적인 일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님이 보실 때 아웃시키고 싶을 때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이걸 일꾼이라고 부른걸 후회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복음서에 나오는 포도원의 일꾼 중 아침에 포도원에 부름을 받은 일꾼과 해질 무렵 부름을 받은 일꾼의 품삯이 같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가끔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이 '노년'인지 '중년'인지 햇갈릴 때가 많다. 아이를 키우고 부모 세대를 모시며 사회에서 가정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맡고 가장 왕성하게 살아가는 세대가 중년 세대다. 그럼에도 ‘허리’의 자리는 늘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수행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0~20대 청춘에게는 나이 지긋한 어른으로 취급받고, 노년에 접어든 어른들에겐 한창 쌩쌩한 젊은이로 인식되는 낀 세대이자 애매한 나이인 것이다. 이 시기는 방황하기 쉬운 시기다. 중장년의 위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느닷없이 위기의식이 찾아든다. 나이가 들면 청춘의 방황도 끝나고 인생의 의미도 깨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중장년이 되고 보니 오히려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불안들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노년을 코앞에 둔 초로라면 오히려 묵묵히 현실을 직시할 수도 있겠지만 청년도 아니요, 노년도 아니요, 딱 그 중간이라고 하는 나이가 애매하기 그지없어서 갈팡질팡한다. 인생(人生)의 전 과정(過程)을 통(通)하여 노년이야 말로 낭만주의자(浪漫主義者)가되기에 가장 적합(適合)한 시기(時期)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 받은 연서(戀書)를 읽는 설레임으로 오랜 병상(病床)에서 일어나 창밖의 하늘을 보는 마음으로 노후(老後)를 살아야한다. 나는 내세울 것보도 보잘 것도 없는 전력이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한번 돌아보며 그동안 잘 살아온 나에게 토닥이며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남은 생은 여행하듯 가볍고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곤 한다.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인생은 여정(旅程)이다. 목적지가 아니고)"이란 말을 떠올리면서.......&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이 들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적어지고 나를 찾는 사람도 줄어드니 서두를 것은 없지않은가? 사실 나이 들면서 가장 넉넉해지는 재산은 시간뿐이다. 내주변에서 약속 시간을 잡으려하면 바쁘다는 이야길 꺼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한심할 정도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교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땐 역량이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깜냥’이라는 우리말은 혀끝에 감기는 세속적 친근함이 있다. 그러면서도 오늘 우리 현실을 비추어주는 의미 깊은 개념어로 손색이 없다. 깜냥은 우선 ‘지니고 있는 힘’을 뜻하는데, 능력 또는 역량의 의미를 품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낼 만한 능력’을 뜻한다. 그러니까 어떤 과업과 능력이 서로 응하거나 어울리는지 평가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볼 땐 ‘깜냥’이 안되는데 지도자가 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얼마전까지 대통령으로 있었던 사람들의 깜냥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곤 한다. 깜냥이 전혀 아닌데 그 자리에 앉으면 가시방석일 수 밖에 없다. 이통 박통은 물론 지금 재판중에 있는 윤석열이를 보면, 한심하다 못해 장삼이사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위직이라는 대통령이 보이는 행동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깜냥이 아닌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본인도 불행해 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깜냥이 아니면 내려와야 한다. 나는 내 깜냥이 부족한 걸 알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열성적이고 진지하게 일을 하려 한다. 병든 주인이 머슴 열명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주인과 머슴은 다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 할 순 없을테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거져 먹으려 하면 다시는 일꾼으로 부르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7/517fa0cfe467a85bb40da423aa4e8c761042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 사회는 일하라고 자리를 보전해 주었지만 놀고 먹는 사람들이 나무 많다. 일하지 않으면 주의종이 아니다. 내 주변엔 모두 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 밖에 없다. 일이 한가할 때 그렇게 전화질하고 찾아 오던 것들이 일만 터지면 콧배기도 보이질 않는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체질상 한가해지면 잡념이 생기기에 일을 만들어서라도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일년중 테레비전을 켜는 날이 열흘도 못된다. 큰 뉴스거리가 있거나 중요한 경기가 있지 않는한 티비를 켜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바보 상자 앞에 있는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해가 지면 암흑속에 갇히지만 눈만감으면 아침까지 숙면한다. 며칠전 병원에 들려 정기검진을 하는데, 혈압과 당뇨를 체크했더니 혈압도 정상에 가깝고 혈당도 약간은 높지만 그런대로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마음도 많이 안정된 것 같다.</div><div><br></div><div>문제는, 먹질 않으니 철분이 부족하여 빈혈이 심하다는데, 이건 어제 오늘 생긴 증상이 아니다. 하지만 어지럽다는게 병은 아닐 거라고 가볍게 웃어 넘겨 버린다. 지구가 돌고 있으니 어지러운 건 당연지사. 가능하면 먹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그외엔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있고 달라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인터넷을 하는 독수리 타법만 변함없지 모든게 좋아지고 있다.&nbsp;</div><div><br></div><div>당진 박목사께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단 말을 듣고 비듬나물과 소고기 고추장 멸치조림을 만들어가지고 현장을 찾아왔다. 지금도 일전에 만들어 주신 멸치조림을 책상에 두고 수시로 먹지만 빈혈이 개선된 거 같지가 않다. 하지만 이런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오시면서 단순히 음식만 가지고 오셨겠는가? 내 안부를 위해 기도하셨을 것이고 이런 성원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믿는다. 지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nbsp;</div><div><br></div><div>"바쁜 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A busy bee has no time to be sad)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이다. 일 할 시간도 부족한데 울고 있을 시간은 없다는 말인 데, 슬픔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자신의 꿈을 향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인병은 가만이 있기에 생기는 병이라는 말이 맞은 것 같다. 특히 정신 노동자인 목회자들은 어떤 직종보다 스트레스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받으면서 운동량은 작고 음식 섭취량은 많으니 성인병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다.&nbsp;</div><div><br></div><div>내가 바로 그 당사자이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목회자에게 있어 스트레스는 건강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는데,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기에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난 건강을 위해 노동을 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목회자라고 해서 아무 것도 안하는 건 좋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일년에 몇만원만 주면 주말 농장을 얻을 수 있는데, 각종 채소를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nbsp;</div><div><br></div><div>하다못해 집안이나 교회 옥상에 고추나 상추 등을 심고 가꾸는 일을 해보면 재미도 있고 경제적인 이익은 물론 스트레스도 해소될 수 있다. 엔트로피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국가경제가 회복되고 성장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실업률만 지속적으로 증가해 가는 이른 바 ‘고용 없는 성장’의 딜레마를 예측한 바 있다.&nbsp;</div><div><br></div><div>과학기술은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없는 유휴자원으로 전락시켜 마약이나 폭력으로 얼룩진 타락의 일상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몰아갈지 모를 일이다. 이번 공사를 하면서 업체를 대폭 물갈이 했다. 전기업자 벽돌업자 창호업자 조적팀 등 일적게하고 밥많이 먹는 것들을 쳐내지 않으면 항상 그 밥에 그 나물이 될 거라는 위기감이 밀려 온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7/2c46655d7830268a67178ed831d86ac81051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현장에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판이하게 다르다. 정말 인간 다루기가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노적성해(露積成海), 즉 ‘이슬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언젠가는 내 본심을 이해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고 이것도 내 깜냥을 키워 나가는 일이라고 믿어 아직은 정중히 대해주지만 더 많은 업체를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nbsp;</div><div><br></div><div>인부들에게 잔디를 심도록 지시하고 교회를 다녀왔다. 현충일이란 명목으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인부들에게 1,5배의 노임을 주었다. 외국인들이야 현충일이 특별한 날이 아니지만 일단은 관례를 따르기로 했다. 내가 외국인 노동력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열심히 살아 보려 애쓴다는 점이며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div><div><br></div><div>은퇴목사 한분이 싸고 좋은 시골집을 구해 달라고 오래전부터 조르지만 소닭보듯 했다. 세상엔 싸고 좋은집이 있을 수 없지만 설령 있다 해도 살아보려 애를 쓰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이런저런 핑게를 대고 거절하고 있다. 내가 원로(?)목사 모임에 자주 나가지 않는 이유는 유능한 총무의 수완으로 매달 지방내 교회가 돌아가며 대접을 한다고 자랑하지만 힘든 교회의 실정을 외면하고 이게 뭐하자는 짓인가?&nbsp;</div><div><br></div><div>다섯달란트 남긴 사람, 두달란트 남긴 사람에게 더 주라는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놀고 먹으려는 사람들을 도와줄 여력도 없지만 많은 달란트를 남겼다고 한달란트 밖에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건 그 사람의 장래를 망치는 길이다. 냉정하고 야박하단 말을 들어도 아무나하고 도반이 될 순 없는 법이다.&nbsp; &nbsp;</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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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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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07 Jun 2026 10:53:5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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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6/ae63f7a16b84685674cfab53adcb86451122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건설공사판에서 여러해를 보내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침부터 사소한 일로 인부들이 언성을 높히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nbsp;</div><div><br></div><div>우린 다들 ‘힐링’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쌓여버렸다. 살짝만 건드려도 울화통이 폭발하는 사람, 분노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사람이 수백만명 모여 있다면 도시는 그야말로 폭탄이다.&nbsp;</div><div><br></div><div>사람에 따라 이런 일이 하찮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어떤 일이던간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간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호기심이 존재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나일먹어 아무 할 일도 없이 우두커니 세월을 허비하는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div><div><br></div><div>만약 내가 은퇴하고 아무런 할일이 없이 빈둥거린다면 내 자신이 먼저 견딜 수 없을 것이고 주변이나 가족들, 특히 자녀들 볼 면목이 없었을 걸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힘든 나날이지만 아무렇지 않은듯 하루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름대로 씩씩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div><div><br></div><div>내 주변엔 그간 만들어 놓은 년금이나 재산으로 노후를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게는 화려했던 과거 전성기를 회상하며 진즉 은퇴 이후를 생각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빨리 다가 올줄 몰랐다고 한탄한다. 나도 내 생전에 은퇴라는 걸 생각해본적도 의식해본바가 전혀 없었으니 준비가 있었을리가 만무하다.&nbsp;&nbsp;</div><div><br></div><div>30대 부터 준비했다면 몰라도 4~50대엔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해 노후를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자식들을 분가시키면서 그나마 재산을 줄이다 보니 노후가 초라하단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아무 할 일이 없다는 사람과 무엇이던 간에 일을 만들어 하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경제생활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삶의 의욕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nbsp;</div><div><br></div><div>&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변인들을 유심히 살펴볼 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가정생활에도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다. 출퇴근이 없다보니 아내들이 힘들어 하는 추세이다. 가만히 앉아 삼시 세끼를 다찾아 먹으려니 좋을리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소일거릴 찾아 무엇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삶이 황패된다는 걸 알면서도, 힐링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게 된다.&nbsp; &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목회만 해왔던 사람이 어느날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그랬다. 그래서 관련서적을 뒤적거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견습을 많이 했다. 일생에 집 한칸 만들기도 힘들다는 데, 난 경험을 축적하려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며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 동안은 더 시도하겠지만, 그리고 한계가 있는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원하던 그런 그림을 그리는 순간 멈추게 될 것같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엔 편한게 없다. 남들이 보면 쉬워 보이는 일도 직접해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지인들이 농담으로 건네는 말중에 '어이 친구 집 하나 지어줘!'이다. 금방 똑딱하면 집이 만들어지고 그럴듯하게 정원을 꾸며 놓으니 손쉬운 거로 생각하는가 본 데, 한번 지어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건축 설계를 의뢰하는 순간부터 준공검사를 마칠 때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모른다. 안전사고는 물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건축과정에서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싶을 때가 수없이 든다. 예상에서 빗나가기 일수여서 정말 못해먹을 것중에서 건축이 의뜸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 일이 재미도 있고 즐겁다. 아니 즐기는 편이다. 지난 10여년 전에 막연하게 귀촌하려 결심하고 무작정 이사를 했지만 전혀 준비없는 내 자신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속수무책이었던 내 현실에 자지러지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날 동안 가슴앓이를 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직 고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날마다 불태우고 있다. 그 결심으로 52개의 집을 지어 분양을 했고 불황시기를 견디어 내고 있다. 얼마만큼 이윤을 냈느냐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간엔 외형적으로 볼 땐 그런대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6/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1240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세한 바람에도 흩어지는 구름이 상황에 따라, 삶의 허무를 연상시켜 줄 때는 흘러가는 방향이나 제대로 알고 찾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빛을 받는 방향과 질량에 의해 자신의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지듯, 살면서 겪어야 하는 우여곡절로 인해 행동반경의 울타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나가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색깔을 가늠한다.&nbsp; &nbsp;&nbsp;</div><div><br></div><div>눈을 지긋히 감으면 정지된 그림이지만 구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멸을 위해 구름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구름은 흘러간다. 의식하면 가만히 멈춰 보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구름의 모습은 다양하며, 비가 오는 날엔 새까맣기까지 하다.&nbsp;&nbsp;</div><div><br></div><div>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모양도 색도 다르다. 결국, 우리의 시간관념을 변하게 하는 건 삶의 목표다. 목표가 있을 때 삶은 피어난다.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마저도 연약한 내가 어찌하리. 흐르는 것이 삶이었던가. 저 강물도 흐르고 저 바람도 지나가고 저 구름도.. 당신도&nbsp; 나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기에&nbsp; 아픔 속에서도 길 떠나는 나그네 심정으로 가고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가슴시릴 뿐이다.&nbsp;</div><div><br></div><div>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있었다. 멍하니 앞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이 오늘의 행복이든 과거의 불행이든 간에 시간은 항상 정적을 유지한다. 그러나 시간은 정적인 동시에 역동적이다. 나는 그동안 고독이나 외로움들은 무조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왔지 정작 문제의 근원지인 자신에 대해선 소홀했던 것 같았다. 이제 보니 타인이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기에 고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nbsp;</div><div><br></div><div>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도 따라 흐를뿐이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세상사에 지칠 때는 사람 외적인 것의 위안이 필요하다.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이 없는 조용한 숲속이나 바닷가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히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흙을 밟고 걸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면 적잖은 위안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nbsp;&nbsp;</div><div><br></div><div>노자 &lt;도덕경&gt;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무릇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자연과 인생의 순리를 말해 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고 정화하면서 만물에 생명을 준다. 흘러가는 물은 먼저 가려고 앞을 다투지 않기에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고 하였다. 다툼을 피해갈 수 있는 삶은 지혜로우며, 물처럼 담담하게 흘러야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바다에 이를 것이다.</div><div><br></div><div>내일부터 잔디를 심기위해 포크레인을 불러 땅을 고르고 집수정을 만드는 동안 집으로 돌아와 양파 마늘 대파 토마토 오이 가지 애호박 참외 수박 고추 등 농작물을 돌보며 손에 물집이 잡히기 까지 텃밭에서 일을 했다. 불과 이삼일 사이에 풀이 엄청나게 번져 버렸다. 이대로 라면 포기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애써 시간을 내어 작업했다.&nbsp;</div><div><br></div><div>포크레인이 작업하는 동안 내일 잔디심을 할머니들을 선정해 놓고 텃밭을 오가며 하루종일 작업을 했더니 몹시 고단하지만 마음만큼은 더할 나위없이 날아갈 것 같다. 역시 바쁘게 사는게 내 체질이 된 것 같다. 오이도 몰라보게 자라고 있고 토마토도 앙증맞을 정도로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부추와 상추를 수거하여 인부들에게 나눠 주었다.&nbsp;</div><div><br></div><div>어느 정도 건축일을 마치면 토마토가 익어갈 때쯤 삼겹살을 구해 푸성귀와 함께 여름 입맛을 찾으라고 친구들을 불러야겠다. 내 텃밭의 푸성귀들은 거의 보약이나 다름이 없다. 농약이나 비료 심지어는 거름도 거의 사용하지 않기에 벌레들의 천국이다. 이 녀석들에게 모두를 빼앗기기 전에 친구들을 불러야겠다.&nbsp; &nbsp;&nbsp;</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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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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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6 Jun 2026 11:26:0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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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민폐(民弊)가 곧 적폐(積弊)</title>
			<description><![CDATA[<b style=""><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5/394ff49a24db101240bf876fe60acfee09431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font><font color="#0021b0">젊</font></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font color="#0021b0">어서는 무쇠도 씹을 정도로 건강했는 데, 이젠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부실한 몸을 혹사시키니 당연지사일게다. 하지만 미친듯 일하면 숙면을 할 수 있고 구질구질한 추억에 잠기지 않을까 하여 어떤 일에라도 올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남의 일이라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nbsp;&nbsp;</font></span></b><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b><font color="#0021b0"><br></font></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b><font color="#0021b0">요즘 적폐(積弊)란 말을 많이 듣는다.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일컫는 말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정치계 용어, 그중에서도 비방으로 한정되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누적된 폐단', 즉 '오랫동안 점차 누적된 그릇된 것들이 뭉친 것'을 의미하며,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사회적 풍습을 가리킨다.&nbsp;<div><br></div><div>나는 꼭 부정부폐와 관련지어 적폐(積弊)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인물'같은 개념으로 아무 일도 안하는 세력을 적폐(積弊)세력이라고 부른다. 고인물은 결국 썩게 되어 있다. 우리 교단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오래된 잡지인 활천(活泉)이 있지만 교단이 활천(活泉)이라고 오래전부터 믿지 않았다. 정말 우리 교단처럼 陳腐한 교단이 어디에 있을까? 정말 달라지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민폐(民弊)가 곧 적폐(積弊)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난 그런 생각으로 살려한다. 하긴 모든게 虛해지는 시기이지만 그럴 수록 모진 마음을 가지려 노력중이다. 노인이 되면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진다. 우울증 경향이 늘어난다. 융통성이 없어지고 사고가 경직되어 간다. 또한 늙어가면서 옹고집, 고집불통이 되어가는 경향이 많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지금껏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판단하에 자기주장만한다. 자꾸 과거만 돌아본다. 왕년에 한가닥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옛날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이다. 그만큼 늙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숙한 물건에 애착이 많다. 옛날에는 나도 새로운 것으로 자주 바꾸곤했는데, 이제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한다. 자기중심이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가족 , 자기 식구, 자기 자식 생각만한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나는 그렇지 않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물론 노인이라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생리적으로 오는 것일지 모른다. 옛날의 노인들은 연로하여 은퇴하게 되더라도 생업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으로 동네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우대를 받았고 손자녀를 거느리면서 집을 통솔하는 권좌에 있었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들이 지닌 경험이나 지식이 쓸모없게 되어버렸고, 젊은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되었으며, 가족 내에서 노인들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극단적으로 표한다면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몸은 비록 자식과 한 집에서 동거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별거 중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원숭이 같은 노후 생활을 참다운 사람의 노후생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장수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경우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예의를 차린다. 왜 이렇게 깍듯하고 친절한 걸까. 거기에는 ‘메이와쿠(迷惑)’ 정신이 숨어 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弊)를 끼치지 말아라. 일본인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이 ‘폐(메이와쿠·迷惑)’에 대한 교육이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가장 부끄럽고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노인들의 생활도 짐작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평생을 남들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지키며 모범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일찍 고령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무연사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심지어는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것조차 민폐로 여긴다.&nbsp;</div><div style=""><span style="font-size: medium;"><br></span></div><div style=""><span style="font-size: medium;"><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5/946ebbbee616042f7f28b24e72e92c5a09443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시편에 보면, "자식은 전통에 가득한 살"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과녘을 향해 힘껏 당겨 멀리 날아가도록 쏘아주면 된다는 말씀이다. 어떤 부모라도 자식들이 힘겨워 하는 걸 마냥 강요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노후를 스스로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고, 나는 가능하면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span></div><div style=""><span style="font-size: medium;"><br></span></div><div style=""><span style="font-size: medium;">작년에 이어 올 가을에도 가족동반 동유럽 여행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의 부담을 염려해서인지 힘들면 올해는 쉬고 내년으로 미루자고 하지만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라는 걸 잊은 모양이다. 작년에도 서유럽 여행을 하면서 손주들 걸음을 따라 다니다가 바티칸 시국앞에 주저앉으며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하는&nbsp; 생각이 들었다.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전동차라도 구입해서 성지순례까지 동반시킬 생각이다.&nbsp;&nbsp;</span></div><p style="border: 0px; font-size: medium;"><br></p><p style="border: 0px; font-size: medium;">사람마다 정황은 다르지만 가능하면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짐이되는 건 하지 말아야되고, 자식들도 부모에 대한 공양을 잊지 말아야 한다.&nbsp;<span style="font-size: 16px;">돌보는 이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과 우울증과 질병의 고통 등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모든 사람들과 ‘연을 끊어버리고’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무연사회(無緣社會)로 가고 있다는 것이 잘하는 일인진 모르지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nbsp;</span></p><div style=""><br></div><div style="">나는 무연사회(無緣社會)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라도 몸을 혹사시킨다. 오늘만 해도 텃밭에 풀을 뽑으며 하루종일 작물들을 보살폈다. 내가 먹지 않을 식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넉넉히 심는다. 마치 노익장을 자랑하듯 텃밭을 종힁무진한다. 비록 로마에선 뒤쳐져 낙오될뻔 했지만 텃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div><div style=""><br></div><div style="">하루가 다르게 식물들이 성장하기에 내 쉼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일손을 놓을 수가 없다. 다른집에 비해 내 텃밭은 물과 정성만을 가지고 키우기에 힘이 배나 더 든다. 제초제로 풀을 제거하고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 벌레를 퇴치하면 훨씬 일이 줄어들고 수확도 많아지겠지만 일일히 수작업으로 풀을 뽑고 물만으로 키우려니 내 손은 항상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되어 가고 있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저녁이면 바늘로 물집을 터트리고 일회용 밴드를 붙히고 잠에 들고 자가가도 다리에 쥐가 나 한두번씩 깨어자지만 그래도 고달프단 생각보다는 시골생활을 하면서 가능하면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난 원래 콩밥을 싫어하여 어렸을 적부터 콩은 골라내고 먹는 버릇이 있었고, 청국장이나 된장은 생김새가 꼭 거시기 같아서 입에 대지 않았는데, 요즘은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로 까다로운 식성이 변했다.&nbsp;</div><div style=""><br></div><div style="">변한게 식성만이 아니다. 모든걸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기에 세탁기 사용법에서 부터 농작물을 키우는 법, 농기구 다루는 법까지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며 응용하고 있다. 시골에 살려면 억척스러워지고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봐도 대견스럽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시골로 가겠다고 했을 때 석달을 못견디고 올라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친구들은 이제 지치거나 실증이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난 지금 생활에 내 삶의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nbsp;</div></div><div style=""><div><br></div><div>일하는게 즐겁다. 지금의 나는 비닐 하나도 그냥 버리질 않는다. 시골생활은 모든걸 재활용할 수가 있기에 버리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모두 모아놓았다가 재 사용한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하소연 할 사람도 없기에 모든걸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버린지가 오래다.&nbsp;</div><div><br></div><div>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떨지는 모르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매일 매일 쏟아 붓고 있을뿐이다. 최고는 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려 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찾으려 노력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편하고 너무 흔했기에 소중한걸 놓치고 살아 온 지난 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nbsp;</div><div><br></div><div>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너무 많으면 귀한줄 모른다. 가까히 있으면 소중한줄을 모른다. 부모도 세상을 떠나야 불효한 것이 생각난다. 난 개척교회로 부터 중형교회를 담임하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처음 개척교회 시절 신자 한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살이라도 뜯어 먹여주고 싶은 심정으로 목회를 하였었다.&nbsp;</div><div><br></div><div>나중에 교인이 많아져 할 일이 많아지니 의도적은 아니지만 초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론 세상도 마찮가지이지만 많아지면 손길이 덜 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누구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lt;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gt;는 성경구절을 목양실에 걸어두긴 했지만 목회 외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겨 전심전력을 하지 못한걸 후회한다.&nbsp;</div></div></font></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5/06/14/c60cd2a6cafcf50caf99bac8d2ba2b7322332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b><font color="#0021b0">세상에 쉬운 일이 없겠지만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그만큼 힘든 생각이 살아진다. 모든게 감사할 일이다. 요즘은 시간이 왜 이리 빨리가는지 정신차릴 수가 없다. 그래도 할 일없이 지난 추억에 사로잡혀 궁상을 떨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느껴질 때까지 나를 훈련해야겠다.&nbsp;&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새소리가 들리고 모내기를 끝낸 논에선 개구리 소리가 요란한 이 풍광이 이젠 낮설지가 않다. 토방에 앉아 땀을 식히는 동안 KTX가 빛의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광경을 보노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텃밭을 거닐며 지지대에 한뼘이나 커진 토마토 애호박 넝쿨을 고정시켜주며 대화를 나눈다. 남들이 보면 누군가와 대화하듯 구시렁거리는 모습에 실성한 사람쯤으로 보겠지만 이들과의 대화엔 꾸밈이 없고 감춰진 언어가 없다. 속과 겉이 다를리가 없다. 이제 이러한 일 정도는 일상이 되어버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21b0">저녁이면 내 시야에 교회 십자가 레온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만 세개인데 저기엔 몇명이나 앉아 예배를 드릴까가 궁금해진다. 시골교회의 형편이 예전만 못할펜데 어찌 운영될지가 궁금해 진다.&nbsp; &nbsp;&nbsp;</font></b></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7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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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05 Jun 2026 09:47:0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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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정이 식지 않도록!</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4/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00413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수님은 전직 갈릴리 순회목수였지만 나무에 대하여도 일가견이 계셨던 것 같다. 비유중에 농부와 농사에 관한 말씀을 자주하셨다. 빌립의 권면으로 나다나엘이 주님을 찾아 왔을 떄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세기에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자주 쓰던 표현이었다. 토라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의 회당에나 있는 것이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당시 랍비 문헌을 보면, 회당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토라를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로 추천된 곳이 바로 무화과나무 아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그가 무화과나무 그늘아래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 율법을 연구하고 말씀을 묵상 했구나!”라고 생각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토라를 공부하고 진리를 찾던 구도자였다. 예수님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토라를 묵상하던 나다나엘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으면 주님이 알아 보신다. 누구나를 부르셨지만 아무나를 부르시진 않는다. 내가 말씀을 붙잡고 애쓸 떄 내 수고를 인정하신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눅13:6절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nbsp;<div><div><br></div><div>열매를 내지 못하고 땅만 차지하는 나무를 보는 농부의 심정은 편치 않았을테지만 한해만 더 기다려 보겠다는 것이 또한 농부의 심정이다. 우리집 울안에도 커다란 나무가 여럿이다. 조만간 잘라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살이고 있다.&nbsp;&nbsp;그외에도 거의 쓸모없는 나무가 여럿이고 주변에서는 잘라 버리라고 조언하지만 제대로 전지를 하고 거름을 주어 키우면 내년엔 열매를 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성을 들여 다듬었다.&nbsp;</div><div><br></div><div>아무리 흔하다 하더라도 몇년씩 키운 나무를 잘라내는 것이 국가적인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요긴하게 사용하려 일단 전지를 했는데 올해는 별로이지만 내년엔 혹시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반드시 열매를 맺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농부의 심정을 흉내내어 나무를 함부러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nbsp;</div><div><br></div><div>묘목에서 이 정도의 나무로 자라기까지 상당 시간 공을 들였을텐 데, 쓸모없다고 버리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실한 허리지만 틈틈히 전지작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쓸모없으면 너무 쉽게 버린다. 이용 가치가 사라지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세상 인심이다. 정말 세상에서 알다가도 모를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 걸 원망할 필요가 없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려니 하며 살다보면 달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초연한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nbsp;</div><div><br></div><div><div>몸이 피곤하고 아플 때에도 육신이란 다 그런 거라고 받아 들이기 까지가 어렵지 일단 받아들여지면 그런대로 고통중에도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다. 나도 한 땐 찬사도 받아 보았고 인기를 얻기도 했으며 융숭한 대접도 받아 보았다. 하지만 그 환상은 언젠가는 깨어지게 되어 있다. 몇번이고 되뇌이는 말이지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애써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은 내 생애에서 가장 불편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육신은 고달프지만 가식과 이중성을 더이상은 안보아도 되고, 앞면과 뒷면이 각각 다른 얼굴인 야누스(Janus)를 내 의지에 따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만족한다. 그냥 자연스런 삶을 살길 원하고 물흐르듯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너무나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건 실증이 나기 마련이다. 남들처럼 사는게 편할 것 같지만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nbsp; &nbsp;</div><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4/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00431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모두 살리지만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모두 죽인다."&nbsp;&nbsp;그래서 유대인 부모들은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친다. 그들의 관심사는 아이의 지능이 아닌 개성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이 있다. 아이의 개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nbsp;&nbsp;</div><div><br></div><div>나는 귀촌하면서 '감수(甘受)'라는 말을 내 삶에 적용하기로 작정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력을 남겼느냐는 중요한 의미가 아니다. 지금부터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지만 아무리 힘겨운 일이라 할찌라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해 볼 수록 '감수(甘受)'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nbsp;</div><div><br></div><div>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쓴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비난을 감수하고, 고통을 감수하고, 아무리 쓴 거라 해도 달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nbsp;</div><div><br></div><div>'감수불보(甘受不報)'란 말이 있는데,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원망하지 않고 달게 받으며 복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게 일어나는 화나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일들은 시련도 아니고 절대자가 별 생각 없이 주는 시험도 아닌 다 내가 지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남에게 미루거나 원망대신 내가 '감수(甘受)'해야 할 일이라고 작정하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자주 느낀다.&nbsp;&nbsp;&nbsp;</div><div><br></div><div>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마침 '그 농부'가 주인의 말대로 나무를 잘라 버렸으면 영영 구제받지 못했을텐데 한 해만 더 '감수(甘受)'해 볼 거라는 결단이 있었기에 겨우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던 것 처럼 주님께서 나를 위해 골고다에 오르시기 까지 감수하셨기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감수 못할 일이 없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적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무한 가치를 지닌다. 남을 흉내낼 필요가 없다.</div><div><br></div><div><div>나는 운동삼아 일부러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기에 정말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으로 혼동될 지경이다. '무사분주’라는 말이 있다. 무사는 ‘아무 일이 없다’는 말이다. ‘분주’라는 말은 몹시 바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무사분주’는 아무 일이 없지만 몹시 바쁘다는 뜻이다. 앞뒤가 모순되는 것 같은 이런 분위기를 실생활에서 체험하게 된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어떤 일을 하였다고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게 백수들의 일상생활인 것 같다.&nbsp;</div><div><br></div><div>나는 어느 틈에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종말이라고 느껴진다. 그것은 과로사에 이르는 일들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을 이어본다. 어느 백수가 과로사하자, 보이지 않는 조문객이 태산을 이루었다. 설령 조문객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자. 그래도 백수는 행복하였을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말이다.&nbsp;</div><div><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5/01/14/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08382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나는 귀촌을 결심하면서 직업난에 '백수'라고 적는다. 내가 하는 일은 거의가 수입과는 거리가 멀기에 틀림없는 백수이지만 나름대로 '바쁜백수' '과로사 할 백수'하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이다. 나는 내가 안해 본 일이라면 사양하는 법이 없다. 비록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할 일이 너무 많다. 익숙지 않은 살림살이에 바쁘기만 하다.&nbsp;</div><div><br></div><div>대학시절 잠시 자취를 해보긴 했지만 하루종일 바쁘게 살다보니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밀린 빨래는 가능한 한꺼번에 모아서 하지만 가능하면 오랫동안 입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하지만 내가 이런 선택을 할줄 몰랐지만 이것도 삶의 일부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니 그런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div><div><br></div><div><div>삶의 열정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사회는 정말 무기력하다. 목회를 하려 마음먹었으면 목숨을 걸고 하는게 맞다. 대충하거나 어영부영하려면 일찍 접어 버리는게 옳다. 열정없는 목회는 피차가 고통스럽다. 나이드는 것이 서글픈게 아니라 삶의 열정이 식어가는게 가장 괴롭다. 삶의 열정이 식어버리면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더 곤혹스럽다.&nbsp;</div><div><br></div><div>내가 뭐라도 하려고 꼼지락거리는 이유는 식어가는 열정을 되살려 보려는 자구책일 수도 있다. 오늘도 아둥바둥하며 사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10b00">'열정이 식지 않도록!' </font></b>그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기에 열정이 식지 않도록 조절중이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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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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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4 Jun 2026 00:44:0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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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14518.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nbsp; 사람은 절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돛단배의 돛을 조정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원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혼사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혼밥족은 알겠지만 혼사족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더니 혼자 죽는 고독사를 일컫는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은 어차피 혼자 죽는다. 문제는 그 임종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고 죽음을 알지도 못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주의 사자의 손에 이끌려 천당가는 사람이 혼사족인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고독때문에 아무나 하고 교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만약 둘만 내 곁에 있었더라면 오히려 일을 기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혼자이기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노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름답게 디자인해야겠다는 열정이 내 안에 존재했기에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span>십년이 넘는 동안 거친 공사판에서 살다 보니 내 성격도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오가는 말투가 너무 쌍스럽고 거칠다 보니 내 생리에 맞지 않았지만 적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nbsp;<div><br></div><div>별 거 아닌 일에도 흥분하기 일수이고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가 난무하는 곳이고 특히나 외국인들에겐 거의 쌍욕을 해대는 걸 들을 때가 가장 안스럽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일 때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이 바닥에선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모기도 새'</font></b>란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무조건 목소리 큰 놈이 정의라고 인정되는 곳이다. 나도 예전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많이 했지만 최근엔 가능하면 줄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주변에 말도 안되는 생각과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라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말이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나 공사장은 이런 부침이 심한 곳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1153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새로운 신(神)을 섬기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가 기소돼 사형 선고받은 게 BC 399년쯤이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패한 뒤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희생양이 필요했고, 소크라테스는 좋은 제물이었다.&nbsp;</div><div><br></div><div>`너 자신을 알라’며 평소 권력자·작가·시인 등 아테네의 실력자나 지식인들을 깨부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에게 박힌 미운털의 역습이었다. 하지만 따져보면 소크라테스는 대책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가장이었지만 평생 돈을 벌어본 적 없이, 허구한 날 시장에서 젊은이들과 공론했다. 가장이 내팽개친 가정사를 책임진 건 아내 크산티페였다.&nbsp;</div><div><br></div><div>`악처’의 대명사로 남은 그 이름이다. `세기의 재판이야기’ 저자는 크산티페의 명예 회복을 주장한다. “지아비 섬기고 대문 밖은 얼씬도 하지 않은 정숙한 부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살기 위해 몸부림 친 이 여인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는 것이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죽었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게 있네. 기억해뒀다가 꼭 갚아주게.’ 마지막 유언이 이랬다. `철학자의 가장 완벽한 죽음’(`세기의 재판이야기’)이라는 평가 이면 `무책임한 가장의 허세’로도 이해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택했고, 독이 든 잔을 건네 받았다.&nbsp;&nbsp;</div><div><br></div><div>그는 슬픔에 빠진 동료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영혼의 불멸에 대하여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죽음은 곧 육체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라고 보았고,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크리톤 등은 소크라테스에게 도주를 권유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했다.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네.”&nbsp;&nbsp;</div><div><br></div><div>BC 399년 5월에 소크라테스는 한 달 동안 제자들과 담소하다가 독차를 마시고 죽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에게 평온한 죽음을 보장해주는 독약을 내려준 것에 감사하였고, 곧 독약을 마시고는 숨을 거두었다.&nbsp;</div><div><br></div><div>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패는 철학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나 언론에서 철학을 발견한다는 건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울 정도이다. 요즘 언론의 양태에 대하여 실망감을 넘어 허탈감에 빠져 거의 뉴스나 만평을 시청하지 않는다. 전엔 연속극을 기피했지만 요즘은 뉴스까지도 귀를 막아 버렸다. 기대와 달리 대개의 보도는 주변적인 호기심, 또는 알아도 몰라도 그저 그런 주변적 담론만 되풀이하고 있다.</div><div><br></div><div>생각이 다른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곤혹(困惑)스러운게 없다. 요즘 내 주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nbsp;&nbsp;담론(談論)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제가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더더욱 아니며 영양가없는 말을 주고 받는게 전부인데 왜 내가 이런 저런 말을 다 들어주며 시달려야 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노인이 되어갈 때 아름다워야 한다. 뒤에 나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면 어서 좁은 길을 비켜서서 앞서가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연륜이 묻어난 당부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도 있다. 결코 좋은 뜻은 아님에는 분명하다. 순수해진다는 좋은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순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6d63541cb88b66fac6ce4ea0412aff2f1155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한 때 생각이 많아 몹시 곤고하게 산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 앉아 왜 나만 거머리같은 상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청승을 떠는지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분노도 용서도 사그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갑짜기 피곤이 몰려 오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힘든 나날이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고지가 바로 눈앞이기에 견디는 방법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귀촌의 삶의 질이란 여가 만족도와 직결한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귀촌하였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뭐가 유익하고 이득인가를 버린지 오래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 하다못해 하루종일 남의 일에 동원되었어도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운동을 하여 근육량이 늘어 났을 것이고 혈당을 떨어트린 날이었다고 자평하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노동에 매달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난 농사 일은 커녕 평생 낫 한번 잡아 본 일이 없다.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조경을 하고 식물을 심는다. 아마도 얼마 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자리잡아 갈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없는 일에 녹초가 될 지경이지만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왕초보에게 배울게 뭐가 있다고 이곳을 찾아 준 분들에게 한편으론 미안하고 고마웠다. 은퇴를 앞둔&nbsp; 목사님 한 분이 이 정도를 가꾸는 데 얼마가 소요되었느냐고 묻는다. 막연한 질문이다. 워낙 땅을 구입하는 문제가 힘들고, 택지로 전환하여 집을 지었을 때의 경관을 고려해야하고 지형에 맟추어 정원을 꾸미고 장식하는 문제를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하였기에 딱히 얼마가 소요되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직접 만들어 보라고 조언해 드렸다. 남의 손으로 모든걸 갖추려면 족히 몇억원은 들어 갈테니 경험삼아 직접 시도해 보라니 목회 외적인 일은 잼병이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제길헐! 나도 잼병이긴 마찮가지였는 데, 노력하고 연구하고 배우고 힘쓰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미리 못한다고 발을 뺀다. 그렇다면 거져줘도 관리도 어렵다. '죽을뻔' 몇번해야 작품이 나오는 법이지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않된다. 난 은퇴를 앞둔 그 분에게 '죽을뻔' 몇번 넘기고 깨달은바가 있어 도를 닦는 중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죽을뻔' 몇번 넘기지 않는 인생은, 목회는, 공허한 결과를 만들어 낼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원광대학교 병원을 다녀 왔다. 이젠 6개월에 한번씩 가는데 CT 촬영과 피검사 그리고 방광대시경 검사가 에정되어 있어 인부들에게 일을 지시해 놓고 병원엘 갔는데 그 큰 병원이 북새통이다. 대게는 70대 이상이고 8~90대 노인들도 눈에 띈다. 틀림없이 노인이 되면 한두가지 병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얼마나 더 살자고 이처럼 병원 문턱을 드나드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금있다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하고 인플런트도 몇개쯤 더 해야 한다. 옛날같았으면 벌써 죽었었을텐데 의학의 힘으로 수명을 이어가곤 있지만 병원가는게 정말 싫다 어릴적엔 학교가는게 싫었고 젊어서는 군대가기가 싫었으며 나일먹으면서는 병원가는게 싫다. 은퇴 후엔 교회가는 것도 의무적일 때가 대부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태극기 부대가 광화문을 점령하면서 이삼년 사이에 기독교인 백만명이 줄었다고 한다. 익산만 해도 교회가 엄청나게 줄었다. 이층 개척교회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목회자들도 알바에 나갈 정도로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골교회는 할머니 몇명이 교회를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 아! 어쩌다 그리 되었을까? 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7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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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2 Jun 2026 12:22:34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허리 사이즈를 30인치로 늘리기 운동</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f745df3b8c794f267bc5c83f402aa67f141722.jpg" width="2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생각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모바일 시대의 생활양식이 문제이다. 모바일 기기는, 인간을 정보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로 만든다. 검색하고, ‘좋아요’를 클릭하고, 톡을 보내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젊은이들의 놀이터 쯤으로 치부하던 SNS의 세상에는 언제부턴가 중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팩트럼이 확대되었고 그들도 알게 모르게 온라인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내 주변을 보면 나이 불문하고 작은 틈만 있으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공사현장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잠시 쉬는 시간이면 모두가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대세가 그러니 크게 한탄할 순 없지만 외연상으로 긍정적인 문화확산이 점점 온라인 세계 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주장이 강해지고, 생각과 사상이 집단의 광기 속에 갇혀 개성이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같은 사이버세계의 엄청난 영토확장은 긍정적인 부분 못지 않게 부정적 요소도 많이 가져 왔는데 그 폐해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마 악플이 아닌가 생각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최진실씨의 자살을 필두로 수를 헤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연예인들이 악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자살의 길을 택했으며 자신과 뜻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의정활동을 못할 정도의 문자폭탄을 보내고, 종내는 의견충돌로 오프라인에서 살인이 발생하는 등 이미 금도를 넘어선 행태를 보이고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세상이 辱이 아니면 대화가 안될 정도로 거칠어지고 있다. 하지만 辱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스탠퍼드대, 홍콩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일반인 276명 대상으로 게임에서 속임수를 쓴 적이 있는지, 남을 속여 이용한 적이 있는지 등을 설문해 참여자들의 정직도를 파악했다. 입이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거짓말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nbsp;&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연구에 참여한 데이비드 스틸웰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사회 규범에 덜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거친 표현이 걸러지지 않은 진솔한 감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통적으로 온화한 말을 사회적 덕목으로 여겨왔지만 욕설을 자제하는 사람이 종종 더 기만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그럼에도 불구하고 辱은 습관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는 말을 남겼다. 상대방과 온전한 대화가 가능한 자신의 철학, 이성, 지식, 경험, 생각 등이 소진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말이 아닌 욕설을 쏟아낸다는 의미일 것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 style="font-weight: bold;">나도 전혀 안해본바는 아니겠지만 가능하면 辱을 하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욕'을 모르고 자랐다. 선친의 영향이 컸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큰 소리나는 걸 들은 적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욕하는 사람이 우리 형제들 중엔 없었다. 기껏해야 '요녀석' 정도가 심한 욕설이었고, 아무리 화가 나도 '욕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에 아예 욕이란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여겨질 정도였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흉악하고 징그러운 욕을 일상용어로 알면서 듣고 자랐다. 내 주변 어른들은 “미친놈”이나 “지랄한다” 정도는 너무 고운 말이었다. 내가 자랄 때는 그 정도는 '욕'을 욕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욕은 상대를 얕보거나 무시하고 부모를 저주하거나 잔인하게 죽는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천부적으로 '욕쟁이'가 있다. 욕설이나 거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입이 걸다' 나 '걸레를 물다' 라는 표현을 쓰는 일도 많이 있지만, 욕쟁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군대에 가거나 주방에 들어가면 멀쩡한 사람도 욕쟁이가 된다는 풍문이 있다. 욕쟁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고 사람을 구분한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1419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화초 두 개를 놓고 키울 때, 하나에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다른 하나에는 욕을 하면 욕을 들은 화초가 말라죽는다고 한다. 욕은 듣는 사람도 나쁘지만 욕을 하는 사람의 뇌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평소 욕을 자주 하는 아이일수록 충동성과 공격성이 높고 학습 능력은 떨어진다고 연구 결과도 있는데, 그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엔 이러한 점들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div><b style="font-weight: bold;">순화된 말로 의사가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에 사용되어지는 욕(辱)이라도 인격적인,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기성찰에 기반을 둔 표현이라면 좋을 것이다.&nbsp;</b><b style="font-weight: bold;">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란 독설을 퍼붓었지만 그의 욕(辱)은 강단에서 설교로 미화되고 교훈이 되고 있다. 춘성(春城)스님이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辱)쟁이 스님으로도 통했으나 그는 평생 옷 한벌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다간 무소유의 실천가였기에 욕먹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았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할 것 다하고, 가질 것 다 챙기면서 남을 정죄하는 차원에서 욕(辱)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기분만 상한다. 가능하면 순화된 용어로 살아야겠지만 辱먹을 짓도 삼가야 한다. 공사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도 많이 거칠어졌고 내 말투도 예전같지가 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매일 성찰의 시간을 가지긴 하지만 가능하면 깊은 인간 관계를 맺지 않으려 노력중이다.</b></div><div><b><br></b></div><div><b>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nbsp;</b></div><div><b><br></b></div><div><b>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nbsp;</b></div><div><br></div><div><b>나는 지난날들을 반추해 보면 역시 실패를 부끄러워 했었지만 두려움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 날이 있는데 미리 내가 그걸 선택해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별이 참 많다. 이별이라는건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기 어렵다.&nbsp;</b></div><div><b><br></b></div><div><b>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내가 속해있는 조직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내가 아끼는 물건과의 이별 등등. 신기한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 때 그렇게 망설일 필요가 없었는데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별엔 좀 더 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쿨한 척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감정에 쿨할 필요는 있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eaae8a91ee98758d5f1d95d177317216142053.jpg" width="249"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즐겁고 의욕이 생기고 순간순간 기쁨을 느낀다면 이별은 필요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이별을 하려고 한다. 물론 100% 만족하고 100% 싫은게 어디 있겠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순간의 느낌에 충실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별로 인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나는 어떨지 등등을 생각하는건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을(그리고 꼭 내 생각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 것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다.&nbsp;</b></div></div><div><b><br></b></div><div><b>넝쿨식물들을 위해 지지대를 세우고 빵끈으로 고정시켜주는 작업을 했다. 사모님이 건내주신 화초도 심었고 내 텃밭안의 잡초도 모두 뽑았다. 그간 바쁜단 핑게를 대고 게으름을 핀 후휴증이 만만지 않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아 무리하게 작업을 마쳤다. 시간이 부족하여 전지작업은 내일로 미루었지만 전지를 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기에 내일 컨디션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다.&nbsp;</b></div><div><b><br></b></div><div><b>인부들과 자주 가는 식당에 부탁하여 멸치조림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영양실조에 철분이 부족하단 말에 탄수하물과 철분을 보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창한 표현이지만 햇반에 물말아 멸치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해야겠다는 말이다. 먹기 싫어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갈 순 없기에 조금씩이라도 하루 세끼를 모두 찾아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허리 사이즈를 30인치로 늘리는 걸 목표로 삼았다. 한창 때는 바지 사이즈가 38로는 부족하고 40까지 육박했었는데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nbsp;&nbsp;</b></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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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31 May 2026 14:22:2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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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영양실조에 걸린 재벌</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24a81a10b447ba9d1868b91a2c784f4a11475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구두수선공의 아이들이 맨발로 다닌다(The cobbler’s children go barefoot)"는 말이 있다. 비슷한 속담중에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말도 있다. 보통 남의 일은 잘 해결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말은 자기 일은 자기가 못한다는 이야기다. 원래부터 세상사는 인인성사(因人成事)였다. 남의 인연에 기대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면서 독불장군이란 없다. 다만 그런 것처럼 착각할 따름이다. 독불장군이란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나 가당한 말이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은 그 방면에서는 제일 잘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처리할때는 할 수가 없거나, 잘 못하거나 또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들에 보통 사용하는 속담이다. 건축현장에서 이들과 전적으로 애환을 함께 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가능하면 이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들어주려 노력중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귀촌 이후 먹는 것, 입는 것은 대충하기로 했다. 없으면 안되는 것외엔 일체 지출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가혹하지만 남에게는 할 수 있는한 너그럽게 베풀며 살기로 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 삶을 뒤돌아 보면, 잘 살았단 생각보단 후회스러운 일들이 나무 많아 나에게 한시적으로 남은 인생 2모작은 정 반대로 살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젠 '나의 바람'만을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성직은 '너의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젊어서는 '나의 바람'을 주장해 왔다. 내가 가장이기에 아내는 무조건 내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자식들도 '나의 바람'대로 살길 소원했다. 교회도 '나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이젠 가능하면 '너의 희망'을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바람'을 위하여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대면 그 때가 망령의 시작이고 은퇴의 시점이다. 이젠 가능하면 '나의 바람'을 줄여 살려 한다. 설령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의 희망'이 크다 할찌라도 원망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매일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진즉 이렇게 철든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면 득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삶의 무게에 허덕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자 절반의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현장에서 외국인이라고 하대하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에겐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색을 하며 질타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거친 말투는 용납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거의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사장엔 특히나 엄격한 갑을 관계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살피고 다독여 준다. 가능하면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애로 사항을 드어주는 편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b5a5107e665a09846201103b9247e5b71149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밀레니엄 맨'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는 말을 신봉한다. 경청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통의 90%는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라고 해서 다는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은 힘이다. 자기 말만 늘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 주변을 떠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부부나 가족간에도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면 대화의 문이 닫히고 불통이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주변에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이 정말 많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하는 자기도취는 물에 비친 제 얼굴을 제가 사랑하다 연못에 빠지는 나르시스처럼 스스로 황홀감에 빠져드는 일이다. 요즘 그런 사람을 공주병, 아니면 왕자 병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말이 되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해치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지나친 자기도취는 자칫 다른 사람을 무척 불편하게 할 수가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일 먹으면 잘 듣지 못하는 난청(難聽)은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질병으로 어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 청각 기관이 약해져 생기기도 하지만 요즘은 소음에 오래 노출돼 생기는 소음성 난청도 늘고 있다고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 소음성 난청은 어지러움과 전신피로, 수면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하면 고혈압, 소화 장애까지 일으킨다고 하는데 난청(難聽)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문제는 생리적인 난청도 문제이지만 도무지 남의 말에 귀를 기우려 주지 않는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다. 자기 말만 늘어 놓는 사람도 문제이고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바른 말이 잦으면 사이가 벌어지는 법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사람에게 가장 서글픈 것은 사람들이 여러 번 말하다가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라도 그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어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일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급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남의 눈으로 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일에는 늦고 빠름이 없다. 내가 내 모습을 알려고 할 때가 가장 좋을 때이고, 알려고 하지 않아 때를 놓치면 이미 주변 사람이 떠난 다음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요즘 현상을 타개하려고 애써 변명하려는 사람을 측은(惻隱)한 심정으로 대하고 있다. 성격이 너무 급하고 단순하여 몇번씩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 대략난감일 때가 많아 조금 거리를 두었더니 그게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정사를 비롯해 부부관계 가족관계 등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해결해 주어야 하는 곤욕(困辱)을 치루다 보니 이젠 내 자신을 위해 멀어지고 싶은 심정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철저하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게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귀도 물론 닫아 버렸다.&nbsp;&nbsp;</span></div><div><br></div><div>'폴 투르니에'는 “소통이 잘 안된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내 방식대로 결론내거나 상대방을 말을 자르기 때문”이라며 “경청과 공감은 신뢰를 부르는 소통의 비밀”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절반만 듣고, 들은 것은 절반만 이해하며, 이해한 것의 절반만 믿는다. 나도 그런 부류이지만 정말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일이 더욱 힘들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11511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은퇴후 시골에 사는 지인과 함께 부안을 다녀왔다. 오랫만에 변산 해수욕장의 추억을 떠올려 보고 채석강 내소사 줄포 등지를 쏘다녔다. 모항에 있는 가족 호텔에 머물며 그간의 근황을 물었다. 처음 시골에 적응하느라 무던 애를 쓴 모양인데 이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박수를 보냈고, 곰소에 들려 낙지젓과 갈치 속젓을 한보따리 사들려 보냈다.</div><div><br></div><div>어디에서 잘못된 소문을 들었는지 건축을 하여 대성공을 했다는 말에 대하여 속빈 강정이라고 대답해 주었지만 쫄딱 망해 거지처럼 산다는 소문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제 농협에 들려 고유가 피해 보상금 신청을 하였더니 대상자가 아니라며 면사무소에 들려 확인하란 말을 듣고 찾아 갔더니 한참동안 확인해 보더니 여직원 둘이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는 뜻모를 제스처를 보낸다.</div><div><br></div><div>사실인즉, 전국 30% 안에 들어 지원금 대상자가 아니라며 상위권에 든 걸 축하한다는데, 시골집 하나 가진 사람이 상위 30% 안에 든다는게 말이 안되지만 아무런 시비를 벌리지 않았다. 인천에 있는 아내도 20만원인가를 받았다는데 부부 재산은 합산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나만 못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생각해 보니 차가 두대라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나는 지금부터 전국 상위 30% 안에 드는 재벌이라고 턱빠지게 웃었다.</div><div><br></div><div>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상위 30%의 고귀한 부자임에도 아직까지 스타벅스에 한번 가보질 못하고 맥심 커피만 마시는데 계속 부자인척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남에게 손 안벌리고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며 이 나이에도 일을 하며 새로운 구상을 한다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div><div><br></div><div>내일은 교횔 다녀와 고추를 비롯 오이 토마토 등에 지지대를 만들어 주고 빵끈으로 고정시켜 주는 일을 계획했다. 무엇인가 자꾸 꼼지락거려야 그나마 건강을 유지시킬 수 있기에 건강도 상위 30%안에 들기를 열망하면서 일을 한다.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 당뇨 120, 혈압 110/85 콜리에스톨, 간 위장 대장 등 대부분이 정상이지만 다만 빈혈이 심하다며 철분이 많은 식품을 먹으라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먹는일이다. 도무지 먹고 싶은게 없고 먹는 것보다 귀찮은 일이 없을 정도이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div><div><br></div><div>세상에 주요한 병명은 다가져 보았지만 21세기 전국 상위 30% 안에 드는 재벌이 영양실조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누군가를 꼬드겨 베트남에 가서 쌀국수와 반미라도 먹고 와야할 모양이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영양실조에 걸린 재벌이 있다면 믿어지는가?&nbsp; &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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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30 May 2026 11:53:4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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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사람은 ?</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8/6453608f6e361aea9e96e308d3bf89fb1045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엊그제 옥수수 100개를 심었는데 오늘 다시 70개 정도를 더 심었다. 대충 두개씩 열매가 열린다면 300개 이상을 수확할텐데 옥수수 장사를 할 것도 아니면서 욕심을 부렸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별히 옥수수를 즐기는편도 아니면서 이렇게 많이 심는 것은 우선 담장에 심어 어설픈 농사꾼의 치부를 감추기 위함이고, 지금도 입맛이 여전한지는 모르지만 귀촌 첫해 많은 옥수수를 심어 손자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았던 기억때문이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벌레가 먹지 않는 유일한 농작물이고 소만과 망종 사이에 심는 옥수수는 그냥 던져 놓아도 살기에 사이비 농부에겐 더할나위없는 식물이기에 욕심을 부렸다. 결험적으로 볼 떄 옥수수는 성장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잘 자라기에 이 글을 마치는 순간 수확하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식량 대체식물론 그만이기에 많이 심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986년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에 아름다운 깊은 슬픔을 전해준 도종환의 &lt;접시꽃 당신&gt;에 </span>"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는 첫구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리며 살려했었는데 내가,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 하루의 앞날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div><br></div><div>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오고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nbsp; 아파해야 합니다.(중략)</div><div><br></div><div>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싯구 한 구절 정도는 읊조리며 삶을 사랑을 슬픔을 노래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그 당시에만 해도 불치병이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랑하는 부인에게 순간순간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겪어야만 했던 어느 한 남자의 순애보에 많은 이들이 같이 울고 갗이 슬퍼하며 같이 사랑했었다.&nbsp;</div><div><br></div><div>접시꽃 당신은 그렇게 국민들 가슴에 깊고도 강하게 묻혔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날,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다고 하던 그 순애보의 주인공 도종환 시인이 처녀장가 든다고 할 때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으로 인해 ‘접시꽃 당신’을 불태워버렸던 수많은 독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기엔 내 식견이 너무 짧지만 많은 이들은 배신을 당했다며 허탈해 했었다.</div><div><br></div><div>애 딸린 혈기 왕성한 젊은 홀아비가 새장가 든다는데 그것도 처녀장가를 든다는데, 보통인 경우에는 축하를 해주고 이해를 해줄만 한데도, 많은 이들이 극한 배신감을 느끼고 멘탈이 붕괴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구절들이 가슴 속 깊이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울려퍼져 올라오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내 집안 홀리팜 주변에 접시꽃을 많다. 직접 정원에 심진 않았지만 이웃 이장님 댁을 비롯 집집마다 접시꽃이 바람에 건들거린다. 누가 처음에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유독 접시꽃이 많아 '접시꽃 마을'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흔한 꽃이 되었다. 접시꽃은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nbsp;</div><div><br></div><div>할머니들이 좋아하고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멀리서 보면 무궁화처럼 보이지만 아욱목 아욱과 식물이며 두해살이 풀로 분류되고 있다. 아마도 꽃 모양이 접시모양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하여 접시꽃이라 불리워진 모양인 데, 예전엔 덕두화 촉규화 단오금 무당풀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다.</div><div><br></div><div>무당의 옷처럼 화려한 점에서 착안된 이름인 것 같은 데, 장미꽃과 한데 어울려 있으니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장미와 접시꽃은 전혀 다른 식물이지만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넝쿨 장미가 휘감아 버렸어도 불평없이 자태를 자랑하고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여름내내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한다.&nbsp;</div><div><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2/06/02/f47c6da96f96f04dff39e8fa3ada698f113451.pn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난 접시꽃을 보면서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 해도 잘 자라는 것이 그렇고, 태풍이 지나가도 생체기를 감추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에서 이 땅의 어머니를 연상한다.&nbsp;</div><div><br></div><div>성장 속도가 빠르고 2m 이상 자라기에 창가에 심으면 시야가 가리기에 금기시하고 있지만 이웃 빈집의 담장을 수놓은 접시꽃을 그대로 두고 감상하기로 했다. 내가 거실에 지쳐 잠들어 있을 때에도 방안을 기웃거린다. 창문을 열면 끝내 거실까지 밀고 들어 올 기세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따라 도는게 아니라 사랑해 주는 사람을 향해 피어나는 신비로운 꽃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div><br></div><div>옥수수를 심으면서<b style="font-weight: bold;">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b>를 몇번이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옥수수 잎은 바람을 맞을때 부대끼며 서걱인다. 그 소리는 너무 서늘해 요의(尿意)가 자연스럽다. 게다가 옥수수 잎에 비라도 들이치면, 보기에 듣기에 사뭇 낭만이다. 그래서 올해도 작심하고 옥수수를 많이 심었다. 처치하기 곤란할 정도이지만 심는 사람이 있으면 따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하여 나눠줄 사람을 떠올리면 행복한 감상에 젖을 수가 있다.&nbsp;</div><div><br></div><div>역시 옥수수 하면 뻥튀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팝콘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처음 맛봤던 강냉이 빵맛은 잊을 수 없다. 성조기와 태극기가 엇갈려 그려진 부대자루에서 나온 그 강냉이로 만든 빵 말이다. 잉여농산물 구호물자가 배고픈 우리 아이들에게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던 식량이었다. 노릇하며 갈색으로 잘 구어진 강냉이 빵은 냄새도 맛도 구수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나는 도시락을 지참하는 사람에겐 배급이 안되었기에 도시락과 바꿔 먹기도 했었다. 아예 도시락을 일부러 가지고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금같으면 거들 떠 보지도 않겠지만 옥수수 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옥수수 차(茶)도 맛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맛이 구수하기가 보리차나 엽차와 버금간다. 차가워도 뜨거워도 맛이 삼삼한데 퍼지는 냄새 또한 그윽하다.</div><div><br></div><div>고향의 맛인지도 모른다. 사족이지만 옥수수를 심을 적엔 씨를 서너개씩 구덩이에 넣는다. 한 알만 넣으면 자라면서 쓰러진다 했다. 우리네 짧은 인생도 비오고 바람이 부는 때까지 서로 기대고 버티고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가 보다. 비오는 날 옥수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텃밭을 바라보며 꽃과의 대화를 하다가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시들 땐 더 훙물스럽게 지는걸 알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은 노력한만큼 풍성함을 선사한다. 아직은 초보이기에 내놓고 자랑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땀흘린 이상의 것을 자연은 선물한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난 많은걸 깨달아 간다. 또한 생소한 것이기에 이곳 할머니들도 나에게는 모두 스승이시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만 알려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경험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 들인다고 했던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간에는 사람 농사짓는 일을 했지만 지금 식물을 키우는게 훨씬 재미있다. 자연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이시다. 자연은 배신하지 않는다. 살아 쉼 쉬는 자연 속에 있다 보면 인간도 미물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사실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은 언제나 다가서면 자리를 내주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오늘도 자연은 모나지 말고 둥글게 살라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진 안하무인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잃는 것도 많고 손해 볼 때도 많다. 그 중에서도 사람을 잃는게 가장 치명적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8/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10474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주공(周公)이 제후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교훈하길,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은 큰 잘못이 없다면 버리지 말고(故舊無大故 &nbsp;則不棄也)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를 바라지 마라.(無求備於一人 )" 고 신신당부했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재를 감동시키려면 호선망세(好善忘勢) 해야 한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이용 가치를 따지는 사람은 군자가 되질 못한다. 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이지만 달다고 간이라도 빼줄듯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때로는 쓴 것도 꾹 참고 삼킬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간사하게 살아선 않된다.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다.&nbsp;</div><div><br></div><div><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nbsp;</font></b></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5</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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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8 May 2026 11:08:2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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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국화와 이름모를 야생화</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23587bee833f7b6c49f9dcd4bd0cc0432244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은 가면 갈수록 불투명한 미래는 근심을 내려 놓을만한 여유가 없다. 어떤 사물을 보고 감성을 자아내기란 쉽지 아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에게는 많은 교훈적으로 행하고 나서야 할 일들이 많지만 답습하는 과정은 때로는 사치인 듯 당장 시간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만 산재하여 가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여유(餘裕)를 잃었다. 노정객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말했을 때 내용은 차치(且置) 하고서라도 일단 마음에 확 와닿는 명제임에 틀림없어 감명을 받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안해도 웃음에 인색한 편이지만 요즘 웃을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지만 어떤 것 하나 끄집어내 미소 지을 일 하나가 없는듯 싶다. 생활은 늘 긴장 속에 반복이고 전투적인 삶을 살아간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은 여유의 시간을 찾지 못한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거나 생각 속에 즐겨갈 일들이 점점 현실에서 벗어나 버린다. 양보와 배려는 커녕 여유(餘裕)를 가진 사람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조선조 세종 때 유관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그는 정승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도 없는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청렴결백하고 낙천적이었던 유관은 언제나 평안한 표정을 지으며 누구보다 기쁘게 살았는 데, 비가 오던 어느 날, 방안까지 빗물이 새어 들어오자 유관은 삿갓을 쓰고 앉아 비를 피한다. 그러면서 걱정하고 있는 부인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삿갓이 없는 사람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nbsp;</div><div><br></div><div>진정한 삶의 멋은 여유로움에 있다. 여유로움은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여유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自足)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멋스롭고 여유로운 삶일 것이다. 나는 과연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득병하였으나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겨우 빠져 나왔기에 약간은 여유(餘裕)롭게 살고 싶지만 아직 여유만만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nbsp;</div><div><br></div><div>적어도 나에게는 삿갓 하나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삿갓없는 사람을 걱정해주는 여유가 없다. 여유는 품격의 조건이며. 인내는 품격의 형성 과정이며, 인성은 품격의 결과다. 인생은 여유로 풀어가는 품격의 게임이다. 여유와 품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욕망의 광장은 거칠고 흉하고 사납다.&nbsp;</div><div><br></div><div>여유와 품격이 없으면 실수가 잦고 견고하지 못하며 남에게 피해를 준다. 여유와 품격은 내실과 평온을 만드는 생필품이기 때문이다. 다투지 않고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생활의 품격이고, 버리면서 새로워지는 것은 정신의 품격이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게 최고의 품격이며 속이고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품격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2307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한 박자 쉬어서 실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을 버려서 견고한 내공을 쌓으며, 때로는 곡선으로 돌아가는 여유로 삶의 진미를 찾는게 현명한 길이다. 그래서 늙그막의 삶은 너무 촐랑대며 살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nbsp;</div><div><br></div><div>난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언젠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두 집사가 불원만리하고 이곳을 찾아 왔다. 반가운 마음이야 그지없지만 어찌할지를 몰라 쩔쩔맬 때 "목사님 악수를 하던지 아님 안아주셔야죠?"할 때 귀밑까지 붉어지며 난처해한 때가 있었다. 전혀 활달하지도 않고 좋게 말해서 세심하긴 하지만 솔찌기 말하면 소심한 성격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처음이 힘들지 마음을 트기 시작한 이후로는 걷잡을수 없을만큼 깊은 정을 나눠주는 스타일이다. 혈액형은 O형이지만 A형 기질을 완벽하게 타고난 결과, 든든하고 뿌리깊은 인맥을 자랑한다.낯을 가리는 처음의 벽만 잘 극복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와도 베스트 프랜드가 되는 허물없는 성격이야말로 더 쫀득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더 관심받고 싶어하는, 더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성격이다. 처음엔 활달한 성격을 부러워 했으나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 소심하기에 나를 컨트롤할 수가 있었다.&nbsp;</div><div><br></div><div>어제 빈집 철거작업을 하면서 뒷뜰에 버려진 국화와 이름모를 야생화를 괘나 많이 수집해 왔다. 아마도 그 집 노친네가 어디에선가에서 가져다 심었을 텐데 이젠 꽃을 보아도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잊혀진 모양이지만 아직은 꽃을 보면 살레이는 나에겐 안성맟춤이란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가져 왔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어차피 이사할 거라면 애써 정성을 쏟을게 뭐냐며 대충해서 대충 넘기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대충'이다. 내가 과실을 따려고 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내가 수확하지 못하면 내 후손이 거둘 것이고, 내가 덕을 심으면 반드시 결실의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데,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쏟아낸다.&nbsp;</div><div><br></div><div>같은 말이라도 좀 크리스챤다운 말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말들은 가리지 않으면 믿는자의 품격에 문제가 있고 복음에 역행하는 사람이 된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div><div><br></div><div>"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그런 팻말을 목에 걸고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한 장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걸인에게 당신이 이렇게 해서 구걸하는 액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10프랑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nbsp;&nbsp;</div><div><br></div><div>그 소리에 행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걸인의 목에 걸려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으며 다른 어떤 말을 적어놓았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그 행인이 그 곳에 다시 나타났을 때 걸인은 행인의 손을 붙잡고 감격해 하며 묻는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 가신 뒤 요사이는 50프랑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놓았기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nbsp;&nbsp;</div><div><br></div><div>그러자 행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쓰여 있는 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말 대신에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써 놓았을 뿐이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nbsp;</div><div><br></div><div>'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이라는 무미건조한 말만 가지고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지만 같은 의미이지만 거기에 좀더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서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말, 같은 생활이라도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주면 보다 맛깔스럽고 정감어린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런 생각없이 즉흥적인 말들을 너무 쉽게 쏟아낸다.&nbsp;</div><div><br></div><div>내 현실이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아직은 비관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전에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고 동정심을 유발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조금 더 세련되게 나를 표현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nbsp;</div><div><br></div><div>괘나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겨우 땅을 적실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다. 인부들을 현장에 투입시켜 놓고 국화와 야생화를 심으려 집으로 돌아왔다. 양파가 자빠지기 시작했고 마늘도 누렇게 시들해지는 걸 보니 곧 수확할 시기인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수확하고 그 자리에 아내의 부탁으로 당근을 심을 생각이지만 당근과 생강으론 재미를 못본 탓인지 망설여지고 그것도 틀림없이 내 것이 아닐 가능성때문에 생각을 정리중이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8a7741485a8fa0240af02652c4140524230906.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전북 부안 위도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바다가 보이는 땅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다가 보이면 무조건 70만원 이상간다는데 어촌일수록 빈집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땅값이 그리 비싼지 알 수가 없다.&nbsp;</div><div><br></div><div>아마도 도시의 투기꾼들이 쓸만한 곳은 묻지마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아직 내 한몸 운신할 곳이 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했다.</div><div><br></div><div>현장소장에게 백평 남짓한 땅을 구해 주었다. 평당 3만원에 구입했으니 열흘 인건비 정도에 불과한데 이 땅에 시간이 나는대로 농막을 지으라 선물했더니 좋아라 한다. 건축자재도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그럴듯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큰 집을 구해 함께 살았으면 하지만 내 체질이 <b>독고다이</b>란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여럿이 있으면 시상이 떠오르지 않고 중국인들도 나 못지 않게 지저분한데 둘이 함께 살면 돼지우리가 될게 뻔하기에 사양하기로 했다. 소장도 한곳에서 십여년 살다보니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본데 자투리 땅에 농막 정도의 집을 만들어줄 생각이다.</div><div><br></div><div>사장님 노후는 자기가 책임지겠다는데, 그건 어림없는 수작(?)이다. 내 노후는 주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고 설령 고독사하여 백골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주의 천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세상을 하직하는게 내 소원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nbsp;</div><div><br></div><div>&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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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26 May 2026 23:05:5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title>
			<description><![CDATA[<div><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5/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2326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추억이란 어느 분위기 좋은 찻집 벽에걸려있는 마른꽃과 같은것이다. 생화처럼 싱그러운 향기는 없지만 오래 오래 마음속에 액자처럼 걸려 있는 것, 그래서 본래의 빛깔이나 향기는 사라졌다 해도우리들의 마음안에 늘 은은하고 곱게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사람은&nbsp;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된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 형제 자매가 어린시절 같이 살았던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 연애시절의 추억 등 불행이든 행복이든 모든 과거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하지만 의외로 사람에겐 옛 추억을 골라서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 불수의(不隨意) 능력이라선지 자신의 의지이면서도 자신의 맘대로 다룰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특별히 지정된 정보 또는 지식을 딱히 골라 뽑아 되새긴단 의미와는 분명 다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나는 때로는 독종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 해가 지면 어둠속에 갇혀 버리고마는 이런 깡촌에서 어떻게 혼자 사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고 아침 저녁으론 아직도 쌀쌀한 날씨인데 보일러도 없이 어떻게 나는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하루중 이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진지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있으며 우주적인 사고로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라 믿기에 외로움이나 고독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가끔 잊을만 하면 불현듯 꾸중물을 일으키는 못된 것들이 있어 탈이지만 그것마저도 長江의 물도 윗물에 밀리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고 내 삶을 디자인해 가는 중이다.&nbsp;</b></font></div><div><div><font color="#0021b0"><b>서울에서 오랫만에 친구가 내려와 60년된 인연을 그렇게 무우자르듯 할 수 있느냐며 자주 만날 것을 종용하지만 미워서가 아니고 싫어서도 아니라 피차에 갈 길이 다르기에 더이상의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게 좋다 생각하여 찾지 않았을뿐인데, 어거지로 관계를 복원시키자 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냥 추억속에 묻어 두고 가끔 빚바랜 사진첩을 꺼내 보는 정도로 위안을 삼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억지춘향이 되라고 강요한다. 내 지론인즉, 사람은 관뚜껑을 덮기 전까진 변하지 않는다. 모래 사장에 똥덩어리를 묻었어도 일시적으로 가려졌을뿐이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듯 본성이 변하려면 바울사도처럼 날마다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nbsp;&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래서 때로는 추억에 잠길 때도 있을테지만 추억은 아련하게 남아 있을 때 좋은 것이지 매시간 꺼내 보는 건 차라리 고통이라는 생각으로 혼자 가는 길을 선택했다. 친구는 나를 독종이라고 타박을 하겠지만 더이상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苦肉策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친구가 아니기에 그러는게 아니라 내가 좋은 친구가 될 자신이 없어서라고 볼멘 소릴했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냥 추억속에 간직하는게 더 나을 거란 말에 더이상 강요를 하지 않는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추억과 잊어버리려 애쓰는 추억이 간단히 구분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잊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가슴에 각인되는 깊이는 거꾸로 더 깊어진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의지는 기억의 창고에 수납되기가 쉽고 무의지한 감성적 느낌이라야 추억의 골방에 남겨진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추억이란 말이 붙으면 그건 이미 절반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자신의 옛일일 따름이다. 추억은 바다와도 같은 것 날씨에 따라서 잔잔히 흐르는 것도 있고 격랑을 이루며 구비치는 것도 있다. 좋은 날씨의 추억은 햇살을 닮아 맑고 투명하지만 흐린 날씨의 추억은 역시 회색이며 무겁다. 가장 괴롭고 어려운 추억은 거친 격랑에 휩쓸리듯 사나운 추억이 아니다. 끝도 모르는 바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방향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오리무중인 것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맑고 투명하지만, 맑은 술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매번 진회색 투성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젖어드는 추억은 커피색처럼 진하다. 색만 진하지 한숨 한 스푼에 온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다. 무심한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단맛은 식은 커피가 더 달다. 시간도 우려 넣고 한숨도 우려 넣고 빈 눈길로 오래 휘저었으니 마냥 우러난 커피가 더 단 건 당연하다.&nbsp;&nbsp;</span></b></font></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font color="#0021b0"><b>오래된 어릴 적 추억은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를 보이지만, 근래 만들어진 추억은 눈물 한 방울 ‘찍’ 묻어나는 게 많다. 아직 설익은 탓이리라. 날 살찌게 하는 추억도 있고 마르게 하는 추억도 있다. 이미 청춘을 한참 넘어선 나이지만 추억의 깊이를 헤아릴 정도는 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5/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23273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실 때에 떡과 잔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이것들을 나누어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19～20) 그 후 제자들은 박해의 위기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누며 주님을 기념했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지낸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nbsp;&nbsp;그래서 성만찬은 주님을 추억하는 행위이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며 주님을 추억했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했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양심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비내리는 날에는, 비가 뿌리는 우수(憂愁)에 젖어드는 건 괜찮은 느낌이다. 한번쯤 무상을 느껴보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들어도 좋을 것이다. 잠시 감성의 비를 맞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 그런대로 견딜만한 시간이 될 것이다.&nbsp;</span></b></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br></b></font></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font size="3">비에 젖어 본 새는 다시 비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가 처한 환경을 탓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고, 찾을 수 없을 때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까지 한다. </font><span style="font-size: medium;">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나를 그곳에 다 던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medium;">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온몸을 던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자유로워진다. 지금 열심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멈추면 안 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쪽 문은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왜 많은 일과 장소가 있음에도 일단 촌구석을 선택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에만 급급해 일상을 즐길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기에 이젠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을 반추해 보기로 했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당시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 일조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trong style="font-size: medium; letter-spacing: 0px;"><font color="#0021b0"><br></font></strong></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medium; letter-spacing: 0px;">"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시인의 말처럼. 떠날 것은 그저 집을 떠나 낯선 도시와 먼 외국어로 가는 것뿐 아니라, 내 익숙해져 버린 타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기도 하겠다. 아니 사실은 그게 더 필요한 것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로부터 떠나는 시간들 역시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div><font color="#0021b0"><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nbsp;</b></font></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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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5 May 2026 23:29:1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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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타벅스와 넝쿨장미</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img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2/seoul/20260522001420028fyrl.jpg" alt="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판매 촉진 행사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합성해 이를 조롱하는 듯한 사진·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등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2026.5.21 온라인 커뮤니티"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동기생이 스타벅스에 관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요즘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에 신세계 그룹이 뜬금없이 탱크데이란 이벤트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저급한 장사치의 속성을 들어내었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스타벅스가 얼마나 유명한지 잘모르지만 나는 커피하면 맥심외엔 별로 아는바가 없고 베트남 커피 G7나 다람쥐 커피가 맛있다 하지만 입에 달달한 맥심외엔 마시지 않기에 스타벅스가 그렇게 유명한 브랜드인지를 알지 못했다. 스타벅스를 기독교가 지켜야 한다고 선동하는 김아무개 목사를 향해 미친놈 날굿이 한다고 욕해 주려다 참았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우리들의 생애 어느 한 날 무의미한 날이 없겠지만 무미건조(無味乾燥)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을 향한 상술이 만들어 낸 기념일은 지나칠 정도로 많다. 이런 상술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일상에 뭔가 스토리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서 영업을 확대하는 전략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특히 현대와 같이 매스컴이 발전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정보제공은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당길 수 없으므로 뭔가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스토리를 만들어 이를 통해서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두는 전략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원래 스토리텔링은 문학용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을 말하는 것인데, 사건과 사물에 대한 사실보도(report)가 아닌 인물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로 지어서 말하는 것으로, 마케팅에서도 상품에 대해 이와 관련한 인물이나 배경 등을 설명하는 기법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모든 장사꾼은 거짓말쟁이다(All Marketers Are Liars)’라는 책을 써서 스토리텔링 마켓팅의 전도사가 된 세쓰 고딘(Seth Godin)은 또 이렇게 말한다.&nbsp; "People buy what they want, not what they need, and that they demand stories from marketers to help convince themselves to buy what they already decided they want."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산다. 그리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이미 결정해 놓고도 그것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장사꾼들로부터 스토리를 원한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스토리텔링은 최근 경영의 화두로도 부상하고 있는 데, 목회도 원래가 말씀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말씀에 심어지는 스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아무 고민없이 아무 준비없이 자신만의 경험이나 느낌만으로 설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공부해야하는 것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역사와 철학등의 문제제기와 문학적 뒷바침이 없는 설교가 힘을 줄리가 없다. 이러한 인문학적 연구와 사회과학적 고민없이 목회를 한다는 것은 교회를 하나의 물건 파는 가게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0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회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48.4%로, 2009년 33.5%보다 무려 14.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발표되었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지금은 수치를 말하기에 너무 부끄러운 정도이다. 이는 특정 사건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하면서 비기독교인의 개신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개신교회 성장에 중요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교기관의 신뢰도 순위를 보더라도 가톨릭교회(41.4%), 불교(33.5%), 개신교회(20.0%)의 순으로 3개 주요 종교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아무리 옥수수 밭이 탐이나더라도 한 곳에 머물면 철새는 죽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금강하구는 겨울철 철새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수십만 마리의 군무를 보노라면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철이 지나면 황망한 땅으로 비워진다. 철새들을 위해 일부러 추수하지 않는 너른 평야의 곡식 낱알이 이들에겐 매력적이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떠날 때를 알고 비워주어야 할 때를 알기에 북쪽으로 향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안주하고 있다. 미래를 너무 낙관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지를 잊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른 체감온도라는게 있다. 실제보다 훨씬 춥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교회가 혐오시설이라고 인식된지가 오래이다. 심지어는 방폐장이 들어서는 것보다 교회가 들어오는걸 꺼질 정도라면 지나친 경고인가? 목회자에게 허울뿐인 직함을 맡기는 것은 목사를 상품화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단체들은 목사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후원금과 회비만 잘 내면 무분별하게 감투를 씌워주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 중 일부는 명예욕에 불타 이를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후원금과 회비는 거의가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중 일부는 자신을 상품화시키고 있다. 또한 자신을 포장하는데 들어가는 경비를 자신이 부담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물 쓰듯이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목소리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여기에 염증을 느낀 교인들은 목회자의 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목회자들은 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아고 하셨던 요 2:15∼16절의 예수의 성전정화가 다시금 필요한 시기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오늘날 한국교회 전반에 만연한 사행과 물질주의의 첨예화는 이미 지적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갱신과제다. 지금 급선무는 평판을 바꾸는 일이다. 너무 평판이 안좋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성공의 첫 번째 요소로 ‘평판’을 꼽았다. 성공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다른 건 다 제쳐놓고 평판을 최고로 강조했다. 그만큼 평판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4/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2315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모든 평판은 평생 가는 것이다. 연기는 잠깐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본성까지 평생 연기할 수는 없다. 정말로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남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전혀 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는 속일 수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속일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연기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신뢰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값'은 경제생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바로 자신의 브랜딩 값이 자신의 연봉과 직결되는 시대이다. 경제 위기 이후 자신의 이름값으로 먹고 살아가는 직업군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의 평판 산업은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왔고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나는 가끔 세상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할까에 시선이 고정될 때가 많다. 남이 뭐라하던 내 방식대로 살 순 없는 일이기때문에 더욱 고민스럽다.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부풀려지거나 축소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평판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평판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구약 성경’의 ‘열왕기’에는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아라비아반도 시바라는 곳에 사는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하고 많은 예물을 바친 뒤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간의 손가락질이나 비난을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염두(<span class="phonetic"><daum:word id="hhw000002700">念</daum:word><daum:word class="over" id="hhw000011231">頭)</daum:word></span>해 두고 살았지만 그것도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다. 때로는 내 생활이 자꾸 어려워지는 이유중에 하나는 주변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여 훗날 나쁜 소리라도 들을까 늘 긴장하다보니 힘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 소심해진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나는 2011년 5월 마지막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그간 정들었던 인천을 떠나 귀촌이란 이름으로 촌으로 숨어 들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음성을 역행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처럼 그런 기분으로 무작정 내려 왔다.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토록 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냥 "너무 오랫동안 시무했기에 이젠 자리를 비워주는게 좋겠어!"라는 말 한마디만 남겼다.&nbsp;&nbsp;1988년 5월 30일 울산에서 인천으로 올라 갈 때에도 무작정이었다. 어떤 교회인지 몇명이나 모이는지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다만 담장마다에 눈부시게 핀 넝쿨 장미를 보면서 핑크빛 감상에 젖어 아름답게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im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rc="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5/05/31/1602c5bc11f74ddfe0f3c9fa933e7fd4205306.jpg" style="margin: 0px; padding: 0px;"></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리고 24년을 고운정 미운정 들이면서 숨가쁘게 달려왔다. 마지막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전 난 사십회에 걸쳐 &lt;화려한 외출&gt;이란 글을 연재했었다. 교회 카페에도 동시에 올렸으니 대게는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컨셉을 &lt;88년 장미&gt;로 정하고 심정을 솔찍 담백하게 적어 내려 갔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처음 인천의 부름을 받았을 때 00교회는 불과 열명 남짓 모이는 교회였고, 예배당은 하꼬방 수준이었다. 상견례도 할 틈이 없이 부임부터 이루어졌다. 처음 부임 설교를 하고 부터 교회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임 교역자와의 불화로 교회가 분열되어 교인들이 거의 다른 교회로 떠나고 00교회는 희망이 없는 교회로 지방회에서도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교회였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러나 나는 희망을 보았다. 최소한 내가 몇년간 시무할지는 모르지만 반듯한 교회로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의욕이 있었고, 교인들도 모두 안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짓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래도 00교회는 훨씬 양호한 형태였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런대로 교회가 몰라보게 변했고, 어느 덧 지방내 세번째 크기의 교회로 성장했으며, 예배당도 4층으로 지었다. 한 때 많은 부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선교비만큼은 줄여 본 적이 없었다. 목회의 여정에서 때로는 질식할 것 같은 숨막히는 답답함이 치밀어 오를 땐 5월의 장미를 연상하며 참는 연습을 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난 배고픈 건 잘 참는 편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 땐 모든걸 내려놓는 버릇이 있다. 난 어느날 이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지론인 &lt;양은 뿔이 없다&gt;는 모토로 살아 왔기에 내가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뿔로 받지는 않을거라고 믿어 왔다. 설령 그래도 받는다면 그대로 감내하리라고 수없이 되뇌이며 지내왔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러나 갑작스런 득병으로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이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이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임지를 옮기거나 조기 은퇴를 늘 마음 한자락에 깔고 있었다. 나는 목회하면서 마음속으로 날 반대하는 사람이 세사람 이상이면 미련없이 사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교인들과 인상찌뿌리며 주접떨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젠 떠날 시기라는 생각이 들자 지체하지 않고 오월에 와서 오월에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하니 같은 오월이지만 내 눈에는 그전의 장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설레임도 감동도 모두가 벌레먹은 장미뿐이었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난 꽃중에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 아마도&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겨울철 흰 눈이 내릴 때까지도 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길고 다른 꽃들이 흉내를 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난 시간이 허락된다면 현재 장미가 백여종 유통된다는데 더 많은 장미를 홀리팜으로 가져 올 생각이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20세기의 천재 시인인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달리 장미를 좋아했는데, 그가 만년에 살았다는 론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오래된 성의 정원에는 지금도 수많은 종류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차가운 돌로 지어진 오래된 성에서 수도승처럼 혼자살며 시를 지었던 릴케. 그는 어느날 자신을&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찾아온 손님을 정원까지 배웅하다 나무 뒤에 피어있는 장미를 발견한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그리고 그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리는 바람에 패혈증으로 고생하다 그해 12월 29일에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 사인이 백혈병임에도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nbsp;&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아마도 릴케라는 시인의 섬세한 이미지와 함께 생전에 그가 기이할 정도로 장미를 좋아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인천으로 부임할 때 주안2동은 장미넝쿨이 집집마다 있어 너무 감명이 깊었었다. 이처럼 화사하게 교회를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난 장미를 보면 그 때의 교회와 그 때의 몇사람의 얼굴을 떠 올린다. 참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어 가까히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임자는 교회를 떠난지 얼마만에 나를 찾아와 두사람을 조심하라고 간곡하게 충고했다. 난 두사람을 조심할게 아니라 두가지를 빼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b></font></div><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쓸개는 빼버렸는데, 간을 빼주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간이나 쓸개는 결정적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다. 물론 인생사 스트레스 없는 직업이 없을 수는 없지만 특히 목회자에게 있어 정신적인 압박은 치명적일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기를 충고 드린다. 난 목회의 여정에서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처음 보았던 장미를 떠올린다. 장미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꽃이 아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b></font></div><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 style="font-size: 16px;"></b></font></p></div><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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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24 May 2026 23:17:3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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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思惟)하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된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3901161a27feecf9bf2835a96ad512451136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몇년을 살았는지와는 상관이 없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 돌아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살아온 그 시간이 의미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이기도 할 것이다.&nbsp;&nbsp;</span><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나는 할일없이 가만히 있는 것보단 무엇이라도 하려 마음먹었기에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다. 물론 그것이 수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이기에 무모한 짓이란 소릴 듣지만 내가 세상을 살면서 무모한 일을 한두번 한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거의 올인하는 버릇이 있다.&nbsp;</div><div><br></div><div>목회만 해왔던 사람이 어느날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그랬다. 그래서 관련서적을 뒤적거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견습을 많이 했다. 일생에 집한칸 만들기도 힘들다는 데, 난 경험을 축적하려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며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몇번은 더 시도하겠지만, 그리고 한계가 있는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원하던 그런 그림을 그리는 순간 멈추게 될 것같다.&nbsp;&nbsp;</div><div><br></div><div>세상엔 편한게 없다. 남들이 보면 쉬워 보이는 일도 직접해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지인들이 농담으로 건네는 말중에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ba4b01">'어이 집 하나 지어줘!'</font></b>이다. 금방 똑딱하면 집이 만들어지고 그럴듯하게 정원을 꾸며 놓으니 손쉬운 거로 생각하는가 본 데, 한번 지어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nbsp;&nbsp;</div><div><br></div><div>건축 설계를 의뢰하는 순간부터 준공검사를 마칠 때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모른다. 안전사고는 물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건축과정에서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싶을 때가 수없이 든다. 예상에서 빗나가기 일수여서 정말 못해먹을 것중에서 건축이 의뜸이다.&nbsp;&nbsp;</div><div><br></div><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 일이 재미도 있고 즐겁다. 아니 즐기는 편이다. 아파트가 정말 편리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편한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는 독신생활이 좋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소가없으면 구유는 깨끗할지 모르지만 이로인하여 얻는게 많기에 소를 키우는게 아닌가?&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의미를 상실한 사람에겐 세상에 어떤일도 만족을 얻을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장)를 설교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장구한 교회 역사와 현대교회 강단에서 수없이 해석되고 가르쳐진 내용이다. 모두에게 친숙한 이야기이기에 굳이 사족을 보탤 의도는 없지만 예수님 당시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nbsp;</div><div><br></div><div>이타적으로 그를 도왔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현대적 적용은 무엇인지, 도대체 제사장과 레위인은 무슨 핑계와 합리화로 피해자를 외면한 것인지, 복음의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현대교회가 짐짓 회피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등 지금도 던져지는 질문들이 이 비유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1381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대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불편해지는 지점은 강도 만난 사람을 앞장서서 도울 것으로 기대됐던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유기다.&nbsp;&nbsp;만일 제사장과 레위인을 종교법정에 소환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회 칠한 무덤’(마 23:27)처럼 고상하고 설득력 있게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 종교 업무상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고 핑게를 댈지 모르겠다.&nbsp;</div><div><br></div><div>불교계에 이판승(理判僧)보다 사판승(事判僧)이 더 많았던 것처럼 경건이나 선교에 소홀히 하고 정치한답시고 나돌아 다니는 사판목(事判牧)들이 너무 많다. 교단의 주요 요직을 몇번이고 사양하는게 정상인데 그 자리에 가고 싶어 안달이고 꼼수가 난무한다.&nbsp;</div><div><br></div><div>그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아니었다. 꼭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현대적 해석으로 목사나 성직자가 강도 만난 이웃이 아니고, 오히려 질시를 받는 사마리아인이 선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면 그건 아니라고 강변할 수있는가? 이재록 사건이 그렇고, 명성교회 사건도 일반 사회인들로 부터 교회와 성직자는 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내려졌던 결과물이다.</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제는 당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목회자가 어떤지를 살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맹목적 순종을 강요한다면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탈을 쓰고 무속신앙으로 범벅이 된 언어가 지금도 공동체 속으로 깊이 파고 들고 있다. 교회 강단위에서 “목사를 내 쫓더니 암 걸려 죽었다” “십일조 내면 암에 안 걸린다” “예수 잘 믿으면 고속도로에서 펑크 안 난다” 이런 말을 듣고 열광하는 대형교회 신도들 중에는 지식인들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너무 맹목적으로 길들여져 사유(思惟)하는 힘을 잃었다. 사유(思惟)하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되는데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 제군은 내게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철학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즉 다만 흉내 내기 위해서 사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유(思惟)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생각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모바일 시대의 생활양식이 문제이다. 모바일 기기는, 인간을 정보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로 만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검색하고, ‘좋아요’를 클릭하고, 톡을 보내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다보니 전혀 예상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인생을, 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 '자연도태(自然淘汰)'라는 말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세태를 나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 미래에도 여전히 그 때의 세태를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록 교과서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고, 꼭 들어맞는다고는 말할 수없지만 그렇다고 완전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써놓은 책도 아니고, 세상의 밝은 면만 강조하기 위해서 거짓말만 잔뜩 써놓은 책도 아니기에 참고서보단 교과서적으로 살려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139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살인과 도적질을 빼놓고는 무엇이던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때로는 생각치도 못했던 난맥상(亂脈相)이 있을 수도 있고 난기류(亂氣流)를 만날 때도 있을 것이다. 난기류는 방향과 속도가 불규칙하게 바뀌면서 흐르는 기류. 항공기가 운항할 때 기체가 흔들리거나 고도(高度)가 갑자기 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듯 내 인생에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믿진 않는다.&nbsp;</div><div><br></div><div>과거에도 있었고 사는 날까진 또 찾아 올 것이다. 강한 기류가 산맥을 넘을 때 그 산맥의 바람이 아랫쪽에 강한 회오리 바람이 생기기 때문에 발생하고, 성층권과 대류권 사이의 경계면에서 생기는 것은 강한 제트기류(Jet Stream)로 인해서 그 주변 공기가 교란되기 때문에 난기류가 형성된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항공기가 순항 중에 난기류 지역을 지나게 되면 기체가 요동을 치면서 순간적으로 급강하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고도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그 폭이 무려 상하 60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이 세상엔 난맥상(亂脈相)없는 곳이 없고 난기류(亂氣流)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러기에 인류는 진보한다.&nbsp;</div><div><br></div><div><div>그나마 난기류(亂氣流)가 적게 일어나는 곳이 시골이고, 비록 전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농사일이 다. 아예 기대하지 않고 시작하는 일이니 놀랄일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늙으막에 시골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소릴하는 데, 농사짓는 것이 가장 속편하다는 말은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다. 뙤약볕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농부를 보면 그런 사치스런 말이 안나올 것이다. 벌레에 물리고 모기에 피를 빨리면서 죽어라 땀흘리고도 본전도 못 건지는게 농사다.&nbsp;</div><div><br></div><div>내가 농사짓는 대부분은 지인들에게로 돌아 간다. 오늘도 가위로 부추를 베어 친구에게 주었다. 고생하여 키운걸 그냥 가져가기 미안한지 망설이는 녀석에게 기대 이상으로 상추도 수거해 가고 조금있으면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이 생길텐데 내가 없어도 가져 가라고 허락해 주었다. 현장에서 일찍 돌아와 차를 파킹하면서 보니 동네 할머니 한개(?)가 오디 열매를 따고 있다.&nbsp;</div><div><br></div><div>아무리 시골이지만 남의 집에 들어와 오디를 딴다는게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눈감아 주었지만 혹시 이 할멈이 낫과 호미를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벌써 몇번째 농기구를 가져가는 손버릇 나쁜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이다. 지인에게 몇번 얻어다 놓았지만 계획 없어진다. 군산 공설시장 대장간에서 만들어 온 호미는 꼭 현관에 들여 놓을 정도이다.&nbsp;&nbsp;</div><div><br></div><div>하늘이 더 크린해지고 공기가 상쾌해졌다. 비가 그치니 풀벌레 소리가 더 청아하게 들린다. 자연의 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해가지면 적막강산에 빠져드는 곳이지만 대신 자연의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소쩍새가 울고 산비들기들이 구구대는 소리에 내 마음이 가장 순수해지고 맑아진다.&nbsp;</div><div><br></div><div>보름달이 아니면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둠속에 잠기는 곳이지만 조명을 끄면 상념의 세계가 열린다. 조명을 줄이면 자연의 세계가 열린다. 도시의 레온사인은 인간의 혼줄을 빼어버린다. 정신을 황패시켜 버리지만 불을 끄면 자연이 보이고 삶의 방향이 더 잘 보인다.</div></div><div><br></div></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nbsp;&nbsp;<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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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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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3 May 2026 11:39:5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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